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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접대는 갑과 을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접대는 친구끼리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다. 비지니스적인 목적이 있다. 갑이라는 소스로 부터 을이라는 사업자가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다. 취할수 있는 이득이 예상이 안되거나, 그것이 의미없이 미미하다면 접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2. 접대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접대는 개인적인 친분 쌓기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따라서 접대를 하는 을이 원하는 것을 하기 보다는 갑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내가 좋은데로 내 취향대로 접대를 한다면 이미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접대가 아니다.
3. 접대는 윤리의 잣대로 잴 대상이 아니다.
항상 비지니스에서 윤리를 따지는 데, 접대는 그러한 잣대로 잴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공정한 경쟁을 해친다는 우려를 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모든것이 경쟁일 뿐 공정함이라는 형이상학적인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4. 접대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사악한(?) 관행은 아니다.
추가적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실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중국의 C맥주회사를 인수 (우호적 인수)하기 위해 미국의 A맥주회사와 유럽의 I맥주회사가 경합을 벌이고 있을 시절이다. 유럽의 I맥주회사는 인수작업을 위해 우수한 전문가팀을 꾸려 직접 C맥주회사가 위치한 중국의 해당 도시에서 인수 작업을 벌이면서 피인수 회사 임원들과 실사작업을 진행했다. 그 유럽회사는 회의를 마치면 곧바로 자신들의 호텔로 돌아와 본사에 보고업무를 계속했다. 반면에 미국의 A맥주회사 인수팀은 간단한 실사 미팅만을 가지고나서 중국 C맥주회사 임원들에게 ‘초청장’을 돌렸다. 직접 미국에 와서 우리회사를 보고 우리회사에서 회의를 하자는 제의였다.
중국임원들은 부부동반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미국의 A맥주회사는 회의와 동시에 이 중국방문객들을 미국 각지로 여행시켰다. 일종의 접대를 한 셈이다. 왕복항공권, 호텔체류비, 식대, 교통비, 각종 관광비용등 미국의 A사는 중국여행객들을 위해 흔쾌히 투자를 했다.
마침내, 비딩의 순간이 왔고, 유럽과 미국의 양사는 인수금액을 중국 C사에게 전달했다. 결과는 유럽 I사의 인수제시가격이 미국의 A사보다 매우 높았다. 그러나 연이은 회의를 거쳐 인수업체는 미국의 A사로 결정이 됬다. 결국 미국의 A사는 접대비 몇억으로 인수가격을 수십억 줄여 C사 인수에 성공 한 셈이다. 일종의 돈내고 돈먹기다.
이에 대해서 유럽의 I사도 미국 A사를 욕하지 않는다. “우리가 미숙했다”는게 결론이다.
미국 방산 업체들이 우리나라 FX(차세대 전투기 사업)등을 앞두고 국방부 출입 기자들을 미국 본사에 초청한다던지, 우리나라의 모 자동차 회사가 미국 알라바마에 첫번째 미국내 공장을 짓는 역사적인 사건을 두고 자동차 기자들을 미국 알라바마에 초청한다던지, 일본 자동차를 최초로 한국에 론칭시키기 위해 미리 한국의 자동차 기자들을 일본에 초청한다던지…수많은 소위 ‘접대’ 사례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물론 PR적인 관점에서, Journalism을 논하면 골치 아파진다.)
물론 이러한 언론에 대한 favor 제공이 언론의 신뢰성을 떨어 뜨린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PR인들이 언론을 spoil 시키고 있다는 비판 또한 익숙하다.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비판도 그 역사가 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비판이 언론의 양심과 지적 수준을 무시하는 비판이라서 실제로는 그 설득력이 약하다. 일본 토요타 본사에 가서 토요타 회장을 인터뷰하고, 한국 언론인으로는 최초로 렉서스를 사전 시승해보고, 토요타가 지불한 호텔과 음식점에서 밥을 몇끼 먹었다고, 향후 예컨데 렉서스의 치명적인 제품결함에 대해 눈감아 줄 기자는 없다.
하지만 요즘 일부 언론에서 회자되는 이명박 후보의 MB언론장학생류의 인사들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저널리스트라기 보다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는 의미다. 이런 사례는 예외로 하자.
단, 기업대 언론의 관계에서 ‘접대’라는 관행은 business report를 위한 journalism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한 업계에는 여러개의 경쟁사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언론을 접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그대로 ‘접대’라는 것은 그냥 ‘관행’일 뿐이다. 차별화 되지 않는…커뮤니케이션 형태라는 말이 더 적절한 듯 하다.
이 글을 쓰면서 몇몇 비판을 예상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비지니스맨들보다는 선비들이 너무 많다는 거다. 모두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삶을 지향’한다는 것. 숨막히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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