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 삭제 |
내가 PR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기자들은 나에게 큰 형님뻘들이었다. 솔직히 만남이나 술자리에선 그들의 대학생활 느낌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학교를 다닐때의 캠퍼스 환경, 대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읽었던 책들, 보았던 영화들,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들까지…그때 그들은 나와는 약간 동떨어진 형님들이었던 기억이 있다.
한참이 지난 지금.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는 종종 ‘우리’ 시절의 이야기들이 공유된다. 거의 같은 시기의 군생활 이야기들과, 대학교때 유행했던 헤어스타일들, 돌아다니면 마셨던 생맥주의 가격대까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느낌을 느끼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새로 출입기자로 들어오는 일부 기자들은 나보다 무려 대여섯살이 더 어린 친구들까지 있다. 반대로 이들이 우리의 옛 이야기들을 이해 못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거다.
예전 PR을 처음 시작했을 때 “짭밥’을 따지는 선배들이 그렇게 아니 꼽더니만, 이젠 ‘물불’ 못 가리고 미숙하게 맨땅에 헤딩하는 후배들이 반대로 안쓰럽다. (우리 와이프는 사람이 일관성이 없다는 표현을 쓴다. 내가 뭔가 모자란 사람이라는 뜻인거다)
얼마전 여러명의 홍보담당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모여 기자들을 모아 놓고 낮술을 했다. 물론 그 낮술은 새벽술(?)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이었지만…느낀게 많다.
경쟁사 H사의 홍보담당자께서 얼큰이 취하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올해 남은 기간 동안에는 조용하게 갑시다. 정팀장” 내가 그랬다. “이휴…그러시죠. 저희도 이젠 예산도 다쓰고…죽겠습니다.” “거기는 예산이라는 것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네..후후”
아무리 경쟁사라고 해도 나는 그 회사의 홍보담당자들이 좋다. 나보다 PR을 10여년 이상 더 하신 분들이지만, 아직도 회사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풋내기인 나처럼…팔팔 끓는 라면국물 같지 않다. 손을 넣어 봐야 정말 뜨거운 줄 아는 달궈진 기름 같다. 이게 짬밥인거다. 이런 형님께서 나에게 “그만하자. 됬다” 하신다…이게 PR안에서 느끼는 동지애다.
쪼금 더 술을 마시다가..S기업의 젊은 홍보과장 하나가 입을 열었다. “O기자가 지금 없어서 이야긴데…저렇게 구악이 없죠? 아마 아직까지 남아있는 마지막 구악일 꺼에요. 얼마나 고생들 많으세요 형님들?”
그 과장은 우리를 위로할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또 하나의 경쟁사 홍보 담당자 형님이 말씀하신다. “언제 어디에나 그런 기자들은 있어요. 지금까지 항상…그랬죠. 그게 생활입니다.” 그 젊은 홍보과장은 “아…그러세요. 역시 터프한 업계군요…” 말을 흐린다.
더 거나하게 술을 마시다가 한잔을 더하자는 합의하에 다른 맥주집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그 젊은 홍보과장이 내게 말을 건다. “OO기자…지금은 양반된 거에요. 예전에는 술마시다가 별 짓을 다했답니다. 많이 나아진 거 에요…형님…” 나는 그의 말에 그냥 웃으면서 고개만 끄떡 거렸다.
그간 여러 기자들과 홍보담당자들 그리고 회사내의 다른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겐 기자에 대한 험담을 하면 안된다라는 것. 그래봤자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것.
기자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주면 처음에는 “아이구, 그런 사람들을 맨날 관리하셔야 하니 힘드시겠어요…”하는 피상적인 위로가 들려온다. 그러나 점점 그들은 ‘그렇게 안좋은 기자(?)’들과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을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또는 “그렇게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보니 자기가 좋아서 저러는 거 아냐?”하는 피상적인 평가를 받게 된다.
더구나, 홍보담당자들끼리 기자를 험담하는 것은 동병상련의 위로는 되겠지만, 발전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기자에게 다른 기자 험담을 하면 안되듯이, 준기자인 홍보담당자들에게도 다른 기자의 험담은 하지 않는게 좋다. 여러모로. 그리고 더 나아가 기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회사내 다른 function에게 절대 하지 말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주어 봤자…힘든건 우리들 뿐이니까…
젊은 홍보담당자의 패기있는 말들에 웃으면서 고요히 미소지을 수 있으니…나도 이젠 늙은이가 되가나 보다.

Communications as Ikor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