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2007 0 Responses

일본 맥주 아사히를 살린 역발상 경영 수정 | 삭제

일본 맥주 아사히를 살린 역발상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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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맥주 아사히를 살린 역발상 경영

 

1986년 일본의 맥주 브랜드 ‘아사히(Asahi)’는 창사이래 최악의 경영상태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6년 후 ‘아사히’는 일본최고의 우량기업으로 변신했다.  ‘슈퍼 드라이’라는 병기를 앞세워 업계의 선두 주자 ‘기린(Kirin)’의 목을 조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드라마 같은 ‘혁신’의 이야기에는 한 명의 ‘이상한’ 사장이 등장한다.

 

정용민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히구치 히로따로우 사장. 그는 만년 은행 직원이었다. 1986년 아사히의 주거래 은행인 주우은행(住友銀行) 부행장인 늙스구레 한 이 은행원이 아사히의 사장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사히 전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경험도 없는 사람이 무슨 경영을?” “맥주에 대해 알기나 한데?” “은행 출신이라 우리 모두 거리에 내 모는 것 아니야?” 여러 이야기들이 분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히구치 사장이라는 사람은 정말 이상했다. 그는 사장 취임 즉시 라이벌 맥주 회사들을 방문해서 경영진들에게 아사히의 결점에 대해 지적해 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업계 1위인 기린 맥주의 회장은 “좋은 원재료를 써야 한다”고 방문한 아사히의 히구치 사장에게 따끔한 일침을 주었다. 삿뽀로 회장은 히구치 사장에게 “상점에는 오래된 아사히 제품 재고뿐이다. 신선한 상품들로 싹 교체해라”고 비아냥 거렸다. 히구치 사장은 고개를 끄떡이며 그들의 험담을 그의 수첩에 자세히 적었다.

 

그 이후 히구치 사장은 아직 낯설기 만한 자신의 아사히 맥주 공장을 방문 했다. 현장 책임자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우리 공장은 원가절감을 통해 회사 이익 실현에 공헌하고 있습니다”라고 브리핑을 하는 것을 들었다. 당시 그의 표정은 기뻐하기 보다는 오히려 충격을 받은 것 같이 보였다.

 

또한 그는 직접 가장 불평이 잦은 고객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한 고객은 “맥주를 마실 때 입안에서 좋은 향기가 나야 하고, 목에서는 시원한 느낌을 나게 만들어야 한다”라는 까다로운 요구를 해댔다. “맥주에서 향기가?” 영업 담당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히구치 사장에게 그냥 무시 하시라고 조언했지만, 그는 그냥 고객의 소리에 고개를 끄떡이고 있을 뿐이었다.

 

젊은 사원들을 불러 놓고 히구치 사장은 ‘색다른 맛의 맥주’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특이한 맛은 항상 실패한다’라는 징크스가 있던 일본 식품 음료 업계에 히구치 사장의 이러한 지시는 그를 아마추어로 비춰지게 했다.

 

아사히 맥주 공장에 장애인 직원들이 속속 입사를 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직원들은 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불황에 직원이 더 늘어나다니… 그것도 장애인 직원들이 상품 제조라인에서 자신들과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뿐 아니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급료는 삿뽀로 맥주 이상주고, 보너스는 산토리 이상으로 주겠다”고 공표했다. 직원들은 대부분 이 때 환호성을 질러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아사히의 대회의실에서 히구치 사장은 마케팅 담당자들을 불러 놓고 “광고비를 향후 3년간 3배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 이 불황에…광고비를 3배씩이나?” 임원들의 입에서는 “올 것이 왔다”라는 탄식이 흘러 나왔다.

 

대신 히구치 사장은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정말 큰일 났다” “매우 어렵다”등의 부정적인 말을 쓰지 말고 대신 “힘내자” “훌륭한 회사를 만들어 보자”라는 말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직원들은 그 당부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히구치 사장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라는 마이너스 발상 대신에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다”라는 플러스 발상을 기반으로 한 것 이었다.

 

먼저 좋은 재료를 쓰기 위해 독일 뮌헨에서 재배되는 최고 품질의 ‘아로마 호프’를 사들였다.  3개월 이상 된 ‘아사히’ 제품들을 상점에서 모두 회수해서 새 제품으로 바꿨다. 원가를 아껴 인정 받으려던 공장 책임자에게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려고만 노력해라. 원가 걱정은 내가 한다”고 지시했다.

 

까다로운 고객의 요청에 따라 마침내 젊은 ‘아사히’ 직원들이 그 맛을 찾아 냈다. 이 맥주는 ‘슈퍼드라이(SuperDry)’로 이름 붙여졌다. 이 새로운 맥주는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에서 장애인 직원들과 일반 직원들은 행복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급여통장에는 약속에 따른 보너스가 두둑하게 채워졌다.

 

TV에서는 ‘아사히 슈퍼드라이’ 광고가 쉴새 없이 흘러 나왔다. 물론 직원들은 “정말 어렵다”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직원들은 이 마술 같은 경험에 놀랐다.

 

업계를 주도하던 기린 맥주도 놀랐다. 단지 “좋은 재료를 쓰라”고 비아냥 거렸을 뿐인데, 눈깜짝할 사이에 그 비아냥은 시장의 판세를 아사히로 기울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1989년에 기린은 ‘이찌방 시보리’라는 경쟁 제품을 내놓았지만, 아사히의 ‘슈퍼 드라이’에게는 벌써 2년이나 늦었다.

 

이렇듯 ‘이상한’ 사장 한명이 아사히를 살렸다. 히구치 사장이 재임한 6년간 아사히의 매출은 3.1배, 경상이익은 5.3배, 시장점유율은 2.4배 성장했다. 그의 퇴임 이후에도 아사히는 승승장구하며 1995년에는 어려웠던 1986년보다 14배가 넘는 영업이익을 계속해서 거둬 들였다. ‘슈퍼드라이’는 우리나라 맥주에도 브랜드화 되어 출시되었고, 조선맥주가 ‘하이트’라는 제품으로 OB맥주를 추월하는 유사사례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 것이 모두 ‘이상한’ 사장의 ‘이상한’ 발상에 의한 엄청난 힘, 바로 혁신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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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마미 | 2006/12/05 14:21 | 옛글들(200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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