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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業 & 2000年 12月 1日 (2000) 수정 | 삭제

PR業 & 2000年 12月 1日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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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인 2000년 12월 1일은 우리나라 최초로 PR 대행사들만의 협회가 발족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 PR에이젼시 산업의 역사는 1987년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의 설립으로 시작됩니다. 그 이전에 한스PR이라는 대행사가 생기기는 했지만, 진정한 PR대행이라기 보다는 영문자료 번역쪽의 일이 주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88년 올림픽의 국내 개최 (버슨 마스텔러의 활약)로 이 땅에는 진정한 PR이라는 (유가)서비스가 소개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홍보란 그냥 회사내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업무의 하나로 여겨졌었습니다만, 1988년 부터는 이 PR이라는 것이 돈을 주고 사야하는 전문 서비스라는 개념이 소개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PR에이젼시의 주고객은 거의 대부분이 국내에 들어온 다국적 기업이었습니다. 이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선뜻 PR 서비스를 엄청난 돈을 내고 살 생각을 하지 않았던 때이니까 말입니다.

 

90년대 중반까지 PR업은 황금기를 맞습니다.

많은 대규모 다국적 기업들이 거의 외국 수준의 Professional Fee를 선뜻 내놓고 일상적인 PR을 의뢰해왔었습니다. 외국의 거대 PR 에이젼시들과 파트너식의 계약을 맺은 주요 대행사들은 이 기회를 충분히 이용했고, 나름대로의 명성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동안 국내 PR대행사들의 PR 업무 형태는 일반 국내 기업내의 인하우스 인력들이 보기에는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모습이 었던게 사실입니다. 거의 “한국적 PR”의 전형들을 그들의 업무 활동에서 찾아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당시 인하우스 인력들은 에이젼시 인력들이 쉽게 일하는 사람들로 보였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적극적(!)인 홍보방식을 무시하는 그들의 업무 행태가 가소로와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에이젼시 인력들은 그 클라이언트들의 요구대로 충실히 행했을 뿐이었습니다. 잔잔한 해변에 앉아 있으면 옷이 촉촉해 지듯이 단기간의 무언가를 바라고 뛰지 않는게 다국적 기업들의 PR자세이었기에 그들은 그냥 그렇게 따랐을 뿐이었습니다.

 

90년 중반에 들어서며 전문분야의 대행사들이 생겨나기 시작 했습니다. 소위 IT전문을 표방한 몇몇 대행사들이었습니다. 지금은 큰 어른이 되어버린 몇몇 IT전문 대행사들이 다 이 기간에 발아를 했습니다. 그들은 순수하게 국산을 표방하며, 또 전문분야를 강조하며 열심히 뛰어왔습니다.

 

IMF가 왔을 때, 많은 PR 대행사들도 어려움을 겪었고, 약간의 절망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외국기업을 클라이언트로 많이 가지고 있던 외국계 에이젼시들은 엄청난 환차익에 소리없는 환호를 지르기도 했던 희비의 교차기 였습니다.

 

IMF상황이 마무리되자마자 우리나라에는 벤쳐열풍이 들어 닥쳤고, 이러한 트렌드는 거의 폭발적으로 국내 PR 서비스 수요를 확장 시켰습니다.

 

PR인들의 몸값이 치솟기 시작했고, 대행료도 따라 올라 에이젼시들도 금방 벼락 부자가 되는 듯한 기쁨의 시기 였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외적인 팽창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했습니다. 만약 지난 우리 PR계의 호황이 우리자신들의 내적인 Potential에서 기인한 것이 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마치 뜨거운 바람이 잔뜩 들어간 갖쪄낸 찐빵을 덥석 물고 놀라 우는 아이의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시장에 경쟁은 있는데 실력은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비지니스 경쟁이 이전투구의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서비스와 질의 경쟁이 되어야 할 경쟁에 예의와 윤리가 없었습니다.

PR계의 원로들은 이전의 황금기를 그리워 하기만 할뿐, 자생적인 생존력을 키우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PR계의 중진들은 우리 산업에 대해 그리 깊게 고민하거나 이끌려는 마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PR계의 신진들은 소모적인 직업 및 직무상의 고민에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PR 시장에는 Rule이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PR 실무자들에게는 윤리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PR계의 원로들은 수많은 후배들에게 비젼을 제시하고 직업상의 철학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가 되었습니다.

PR계의 중진들은 자신의 양명과 함께 우리 산업에 대해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도모하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줄때입니다.

PR계의 신진들은 어제같지 않은 오늘, 오늘 같지 않은 내일을 위해 소모적인 방황과 이별해야 합니다. 열심히 배우고 연구하고 실행하는 “무서움 없는 아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일 2000년 12월 1일은 PR대행사들의 협회가 발족한답니다.

17개 에이젼시가 참여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많은 에이젼시가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이 2년 미만의 에이젼시는 입회를 제한하는 규정이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저도 이 2년 관련 규정에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 2년이 어디서 어떻게 나온건지 참 궁금합니다. 비판의 일각에서는 이 2년 조항이 최근 벤쳐 붐으로 생겨난 많은 소규모 에이젼시들을 의도적으로 제외하기 위한 발상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과연 무었이 진실일찌는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본 PR기업 협회의 중심의의가 “공정한 PR시장 질서 확립과 에이젼시간의 상호 발전 및 공정한 경쟁 촉진”이라고 봅니다.

 

본 협회가 아직까지 특정 금전적인 특혜를 회원사들에게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자기들의 밥그릇을 확보하려는 음모”라는 주장은 약간 과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1998~9년사이에 생긴 많은 벤쳐전문 에이젼시들도 내년이나 내 후년 정도면 모두 본 협회에 가입하리라 봅니다. 그때에는 2년 룰을 탓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취지입니다.)

 

한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궂이 지적하자면, PR기업협회가 주요 에이젼시들 중 “사장님들”만의 잦은 만남으로 발족되었다는 것입니다. 모 에이젼시의 간부님께서 중심적인 주축을 이루셨다고 하지만, 좀 더 폭넓은 쌍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 노력이 업계 전반에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내일 개인적으로도 롯데호텔에서 열릴 협회 발족식에 참여 할 예정입니다. 큰 선배님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우리 PR 에이젼시계 모두의 잔치가 될 수 있도록 애정어린 마음으로 참여하려 합니다.

 

앞으로 우리모두가 종종 에이젼시 및 협회에 대한 따가운 비판과 따뜻한 격려를 함께 아끼지 말았으면 합니다.

 

곧 개편되는 우리 홍사모 사이트에도 PR대행사 AE들의 모임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PR기업 협회의 하부조직으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으로 봅니다. 젊은 우리 PR AE들의 열정과 멋을 과시하는 좋은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내일 발족식 참석후에 느낀 후기를 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홍보!!

by 우마미 | 2006/12/03 18:40 | 옛글들(200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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