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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한가지 잊은 사건이 이 기간동안에 있었다. 2001년 3월 21일 현대 정주영 회장이 별세를 했다. 숙환이지만 그간 왕자의 난이니 뭐니 해서 현대출입기자들은 말그대로 입에 신물이 나도록 뛰어 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저녁 늦게 속보형식으로 TV에서 정회장의 별세 사실이 보도되었고 현대아산병원입구가 생방송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자동차 담당기자들이 TV화면 여기저기에서 보이는게 난리가 터진 모습이었다. (참고로 자동차는 1진이 국내산자동차, 2진이 수입차를 맞곤한다. 그들은 둘다 현대그룹 (자동차 중심)을 담당한다.)
다음날 우연히 나와 내 부사수는 중앙일보 기자의 시승차량을 픽업해야 했다. 그 기자왈 “야, 일이 터졌는데 바쁘니 너희가 가지러 와라” “어디계셔요?” “어디긴 청운동이지..” 참 심난하다.
정주영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청운동 자택. 살아 있을 때도 한번 안가봤던 그 곳에 다른 외산 자동차 레이블을 달고 방문을 해야 하다니.
택시를 타고 정회장의 청운동 자택 입구 골목에 내렸다. 화환행렬이 보인다. 골목 입구부터 청운동 자택은 한 500m가 훨씬 넘는 언덕이다. 그 언덕 한켠으로 화환들이 단 1m의 틈도 없이 줄을 섰다. 거물이긴 거물이다. 입구부터 무전기를 들고 리시버를 귀에 꼽은 현대의 행사요원들이 이리 뛰고 조리 뛴다. 일단 골목으로 자동차 출입을 막는 것 같았다.
화환접수처가 골목 입구에 세워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화환 각각에도 등급이 매겨져서 500m간 순서를 지킨다고 한다. 만약 장관급 화환이면 몇번째 이런식이다. 높은 사람의 화환이 나중에 오면 그 사람 등급 이후의 화환들이 다 후진 배치다. 이 일을 십여명의 현대 사원들이 검정양복에 하얀장갑을 끼고 한다. 초봄인데도 땀이 나보인다.
자택입구에 서있는 많은 사람들 들어가던지 왜 기웃거릴까. 암튼 우리는 중앙일보 기자를 찾아야 했다. 휴대전화 “어디계셔요?” “여기 기자단 있는데 정회장 집 바로 앞집이야..테니스 코트 있는데 보여?” “아..예” 정회장 자택 주변에 많은 집들이 정씨 일가 소유다. 앞에 테니스 코트가 크게 마당에 있는 집에 기자취재구역을 만들었다. 기자들이 앉을 수 있도록 교실 수준의 차양과 책걸상들을 일렬로 깔았다. 열지어 착하게 앉아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들이 우습다. 한 100명정도.
TV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무척이나 부산을 떤다. 가만히 보니 1,2,3진이 총출동이다. 기자취재 천막옆에는 언제든지 밥과 술을 먹을 수 있도록 차양 밑에 돗자리가 깔려있다. 현대 여직원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아가씨들이 검정 바지 투피스를 입고 음식을 나르고 있다. 떡이랑 그런 음식들이다. 기자들이 추울까봐 열난로도 군데 군데 킬 태세다.
중앙일보 기자가 눈에 띈다. 다른 기자들을 처음에는 피해다니다가 여기저기서 불러대서 인사를 안할 수 없었다. 그 기자왈 “어이 토요타가 여기 왜 왔어?…뭐 먹고 가라. 떡 먹을래?” ” – – 아뇨 됬습니다.” 다른 TV기자왈 “어? 자기 ‘정(鄭)’씨? 무슨관계?”하고 농을 한다. 하긴 기자들은 전장에서도 농을 한다니.
여기 저기서 어? 토요타가 여기 왜?…한다. 조금 더 있다가는 “토요타 조문”으로 기사를 쓸 태세다. 문제의 그 중앙일보 기자에게 키를 낚아채서 자리를 나서는데, 현대 홍보담당자가 언론 브리핑을 한다. 정 회장의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귀가 솔깃해서 들어보니 이건 기자들이 마치 빚장이들 같다. MH, MK에게는 뭘 남겼냐? 그건 어디 몫이냐? 참 웃기는 질문이다.
한쪽에서는 다른 기자들이 브리핑에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 정 회장의 일대기를 쓰는 것 같다. 여기 저기 인터넷을 뒤지고 살을 붙여 ‘정주영 송별가”를 짓는 표정이다. 하긴 최근에 이렇게 큰 상(喪)이 없었으니 기자들도 참 상기될만도 할 것이다.
기자들에게 계속 여기 있어야 하냐고 물으니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벌써 얼굴에 수염이 성성한 선수들도 있다. “야유 큰일이세요들. 그럼 고생 하세요…”하고 내려왔다.
나중에 기자들과 밥먹으면서 “강OO의 통곡 조문 이야기” “고OO 설” “정회장의 OO편력” “아들들의 뒷 이야기”등등을 들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
과연 현대 답다는 것을 이렇게 초대형 상가 경영을 보면서 느낀다. 일단 일하는 사람이 많고 돈이 많은 느낌이다. 대통령 부럽지 않게 갔다는 평이 와 닿는다. 이상하게 그렇게 반감을 가졌던 정회장에 대한 내 생각도 눈처럼 녹아 바뀐다. 사람의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오늘 아침 정몽헌 회장이 아버지를 따라갔다. 몇일전 부터 정주영 회장의 상가 이야기를 여기다 쓰려고 생각 중이어서 더욱 섬뜻하다.
MH는 개인적으로 내 선배다. 미국 대학원 선배. 우리학교 메인 빌딩 중 하나인 Dreyfuse Building에 가면 그의 얼굴이 새겨진 유리판이 있다. 우리 학교가 배출한 대표적인 100명의 선배들 중 하나였다. 그가 죽음으로 우리학교의 힘도 없어졌다. 학교 총장님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 했는데…
왜 죽었든, 어떻게 죽었든 사람의 죽음은 성스럽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하는 성스러움이다.
아빠와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맘이 참 좋지 않다. 성스러움이 좋지 않다니…..안녕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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