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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2월 새해 연휴에도 나는 쉬질 못했었다. 부모님들이 와 계시는데도 나는 내 서재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유럽 본사와 컨퍼런스콜을 해야 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아주 유럽본사는 안달복달을 한다. 아직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기 전이라서 나에게 프레스를 넣지는 않지만, 무조건 모른다 아니다라고 말하라고 반복적으로 당부한다. (이미 한국기자들은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유럽의 한 조그만 도시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르쇠 타령이다….)
휴일이 지나고 출근을 하니 모니터링이 불이 난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가 J기업 최대 채권자 중 하나인 투자은행 G사의 보도자료를 인용하여 “J기업의 자산가치는 지난 2년간 성공적 경영으로 기존 25억불에서 36억불로 상승했다”는 평가 리포트를 내 놓은 것이다.
자기가 팔 물건에 대해 자기가 값을 올려 놓은 것이다. 최초 기자들은 자산가치를 약 2조원대 초반쯤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일반 감정가를 거의 두배로 올려 놓은 것이다. 이때부터 기자들은 이 3조 5-6천억원이라는 산정 가치가 어떤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를 놓고 취재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기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G사의 관련 리포트 발표 이유였다. 왜 하필 G사는 J사와 민감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기전에 이런 논란꺼리가 생길만한 리포트를 발표했는가?
파이낸셜 타임즈는 어느 투자전문가의 말을 빌어 “G사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3조원대가량의 돈을 내고 J기업을 사는 곳은 없을 것”이라는 멘트를 후반에 달았었다.
G사는 이전에도 J사의 사내기밀 유출을 통한 채권확보 및 매각추진 혐의로 재판을 받은적이 있었다. 물론 혐의 없음으로 판결이 났지만, 전문가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만약에 혐의가 발견됬다면 G사는 프로가 아니겠지.
어째든, 각 컨소시엄은 이번 G사의 발표에 대해 촉각을 곤두 세웠다. 기존에 세워둔 투자 플랜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약 1조원 가량을 더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1조원을 더 쏟아 부어 넣어도 수익성이 있을까…
본사와 우리 모든 컨소시엄 멤버들이 컨퍼런스콜을 했다. 본사측에서 회의 초반에 G사의 발표에 대해 이야기하자 누군가가 뇌까렸다. “Fuck… Fuck… Fuck…” 콜에 참여한 모든 전문가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데 동감을 하는 분위기 였다. 그러나…어찌하랴. M&A 비딩은 숫자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기싸움인데…
기자들은 각각의 컨소시엄들이 과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과연 어느 정도선이 적정가일까라는 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비딩전에 우리가 쓸 가격에 대해서 말해주는 컨소시엄이 어디 있나? 그래도 기자들은 각 컨소시엄을 간 보고있다.
“당신네 컨소시엄은 J기업을 어느정도 가격대로 보고 있나? 아니 그냥 어느정도대로만…”
“글쎄요. 아직 인수의향서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말씀드리기는 불가능한데요. 일단 인수의향서를 내고 예비실사(Due Dilligence)를 거쳐 봐야 하지 않겠어요? 중요한것은 G사의 일방적인 산정 기준과 액수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래. 그렇지? 말도 안되지? 이 자식들…아주…”
기자들은 전반적으로 G사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나서 적극적으로 그리고 공격적으로 G사를 치받을 수는 또 없었다. 거의 모든 컨소시엄들이 침묵하면서 긴장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G사의 언론 플레이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그 시기 측면, 그리고 그 파급력은 진짜 성공적이었다. G사의 내공이 보이는 활동이다. 발표 직후에도 G사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강건함을 보여 주었다. 일단 입에 물은 쥐의 숨이 끊어 질때까지 절대 입을 벌리지 않는 큰뱀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옆에서 본 G사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우리가 꼭 하고싶은 말만 한다.’ 그러나 ‘크게하거나 여럿에게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메시지를 왜곡하거나 오해하는 언론에게는 선별적으로 적극 대응한다.’ 이렇다. 투자기관으로서 당연하고 상당히 이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고 본다. 이들에게 공중과의 Goodwill 이라던가…뭐 이따위의 PR기초 논리는 쓸모없다. (이 사실은 내가 2000년대 초반 잠깐 G사의 press officer를 해 봤기 때문에 잘 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G사는 정확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투자금을 받아냈다. 힘들게 돈을 마련해 지불해야 했던 H사는 그 금액을 전략에 근거한 자랑스러운 금액으로 보지만….글쎄다…
두고 볼일이다.
P.S. 이 G사의 움직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지속적으로 관리되어 하반기에 전면적인 네가티브 캠페인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된다. G사에게도 사실 약간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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