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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작업을 위한 1차 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추후에 Plan B로 넘어가면서 팀의 구성은 달리된다.)
1. 전략 (인하우스+ 경영/회계 컨설팅 펌)
2. 자금 (인하우스 + 은행/투자기관)
3. 법률 (인하우스 + 로펌)
4. 커뮤니케이션 (인하우스+ PR에이전시)
내가 총괄해야 하는 팀은 4번 커뮤니케이션팀. 본사와의 상시적인 커뮤니케이션 채널 또한 확보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시차와 한국 언론 시장을 잘 모르는 본사 커뮤니케이션 임원들.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으면 항상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한다. 유럽은 우리가 퇴근하는 시간에 업무가 시작되기 때문.
서슬퍼런 기자들을 앞에다 놓고 무슨 비밀 전화를 할 수 있나. 기자들은 1월 첫날부터 과연 누가 J인수 비딩에 참여할 것인지를 연일 써대고 있다. 아무도 컨펌을 하지 않았지만 “아니면 말구”식의 기사들이 경쟁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었다. 즉, 기자들은 왠만한 식음료 주류 회사들에 전화를 걸어 인수 의사를 타진한다. 컨펌을 해주지 않아도 “일단 리스트에는 올려 놓을께. 아니면 아니고…” 이런식이다.
본사의 커뮤니케이션 임원들은 이게 영 못 마땅하다. “왜 컨펌하지 않았는데 기사가 나가느냐?”하는 식이다. 1월중순경 모경제지 기자가 저녁 식사시간에 전화를 걸어왔다. 다른 종합지 기자와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경제지 기자의 전화가 울렸다.
“예, O기자님” “어, 지금 모해?” “밥먹습니다. 어디세요?” “응, 나 회사. 근데 한가지 물어 볼께?” “네…” “당신네 본사가 J 인수작업을 시작한다며? D컨소시엄으로 참여한다는데? 맞어?”
그는 증시 바닥에 떠도는 찌라시에 정통한 기자다. 그가 컨펌받고자 하는 것은 예스냐 노냐다. 이미 99% 취재로 확신을 가지고 있는 확정적 질문자인 거다.
일단 시간을 벌기로 했다. “어? 그래요? 아직까지 제게 전달된 사항은 없는데요. 한번 제가 본사에 확인을 해보고 다시 전화드릴께요.” “그래? 그러면 꼭 전화주라. 내가 기다린다.”
본사에 전화를 걸기전, 일단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OO경제지의 O기자가 저희가 이번 비딩에 참여할 것이라는 사항과 D컨소시엄에 참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컨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카나다인 사장의 반응은 역시나 이성적이다. “본사의 결정이나 움직임에 대해 우리가 논평할 것은 없다. 문의가 있으면 본사 커뮤니케이션팀으로 직접 연락을 하라고 해라”
그러나 한국기자에게 “우리는 본사의 움직임을 알지 못하니 본사로 연락해보시져. 영어 배우셔가지구…” 이럴순 없지 않은가?
내가 본사로 연락을 했다. 한정식집 마당에 혼자 나와 영어로 시끄럽게 통화를 하는 꼴이란…
본사의 의견 “우리는 어떠한 마켓 루머에 관해서도 코멘트하지 않는다” 이상.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 경제지 기자에게 전화를 다시 했다.
“O기자님, 제가 우리 사장님과 본사에 확인한 바로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해당기업 인수를 둘러싸고 많은 루머들이 있는데, 저희는 그런 루머에 코멘트할 수가 없습니다. 이해해 주시죠?”
당연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아니 결정된게 없다는 것은 현재 고려중이라는 거잖어. 당신 당신네 본사가 100% 참여 안할거라는 확신이나 증거가 있어?”
나의 답변 “100% 개런티는 원래 어떤 상황에서도 불가능한거죠. 중요한 건 아직 어떤 결정도 내려진게 없고 현재 고려중인 사항도 없다는 것입니다.”
반응 “암튼 내가 확인한 바로는 당신에 본사가 이번 딜에 들어온데. 거의 확실해. 그럼 아무튼 기사로 나간다. 아니면 내가 책임질께..”
이걸 어떻게 제어 할 수 있는가. 플랜상으로는 드라이하고 심플하게 ‘컨펌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플랜과 실제는 이렇게 다르다. 내가 그 기자에게 당시에 달려가서 억지로 울며 불며 사실이 아니니 기사를 빼달라고 하기에도 또 웃긴 상황이다. 한 몇일 후면 세상에 알려질 일이기 때문에…그 기자에게 나는 신용을 잃게 되는거다.
다시전화를 했다. “형님, 사실 이번건 같은 경우에는 어떤 기업에게도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형님께서 정확하게 쓰시지 않으면 괜히 애꿋은 회사들만 어려워집니다. 왠만하시면 우리 본사관련 멘트는 빼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부탁해요.”
반응 “아니 당신 본사만 쓰는게 아니야. 여러 캔디데이트들을 다 나열할 꺼야. 신경쓰지마.”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아무것도 없다.
본사에서 다시 확인전화가 왔다. “제임스, 어떻게 됬니? 그 기자에게 뭐라고 했니?”
“그 기자에게 아무것도 컨펌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기자는 우리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 확신이 너무 강했다. 내가 정확하지 않는 정보로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는데, 모르겠다. 한국의 기자들은 100% 컨펌을 받지 않아도 기사를 쓴다.”
“이해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공식적으로 컨펌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사에서 그런 문구가 들어가는것이 좋다.”
아………그렇구나. 이게 본사의 짬밥이다. 역시 커뮤니케이션의 프로페셔널리즘이란…대단한 내공을 느낀다. 간단하지만 중요한 그들의 사고방식.
다시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 본사에서 요청인데요. ‘우리회사측에서는 그러한 루머에 대해 컨펌을 해주지 않았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문장을 넣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탁해요.”
기자왈 “알았어. 그렇게 나도 쓸꺼야. 걱정하지마…”
돌아와서 다시 한정식 식사 자리에 앉았다. 모두 식어버린 음식들. 약간 상기된 식탁의 기자. “뭐야? 누구전화야?”
“아니에요. 본사랑 뭐 하는일이 좀 있어서…”
이제 M&A Communication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긴장해야지…
![](https://i0.wp.com/pds4.egloos.com/pds/200702/22/97/d0046497_0202227.jpg?resize=354%2C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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