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 대표와 임원들을 대상으로 미디어트레이닝을 진행하다 보면, 아주 다양한 임원들의 시각과 커뮤니케이션 습관 그리고 성격을 접하게 된다. 언론과 기자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이 있어 각자의 태도 자체에 차이가 생긴다. 또한 그와 상관없이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습관이 서로 달라 기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적절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캐릭터가 분별된다. 성격 또한 마찬가지다.
미디어트레이닝을 진행하기 전에 종종 참여 임원들에게 언론과 기자에 대해 평소 품고 있는 생각을 질문해 보기도 한다. 일부 임원은 신중하게 언론과 기자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생각을 말씀하시기도 하고, 반대로 좋지 않는 느낌을 토로하는 분도 있다.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임원은 이전에 기자의 취재로 인해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았던 경우들이 많다. 나에게 피해를 준 나쁜 사람들이 기자라는 개념이다.
회사 차원에서는 회사의 아주 중요한 위치에서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임원들이 자꾸 개인적으로 언론에게 상처를 입는 상황을 중대한 위협 또는 위기로 해석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평시 임원들에게 언론과 기자에 대한 이해를 비롯하여, 기자와 전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을 훈련한다. 기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 입는 임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야 하겠다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주로 언론에게 상처를 입는 임원이 가지는 공통적 원인에 대해 정리해 본다. 왜 우리 임원은 언론에게 자꾸 상처를 받을까? 무엇을 알고 고치면 언론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될까? 상처를 입더라도 이전과 같이 치명적인 수준을 어떻게 해야 면할 수 있을까? 한번 알아보자. 언론에게 상처받는 임원들은 대부분 이런 공통점이 있다.
첫째, 기자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길 수 없다. 의도적으로 계획해서 질문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답변자는 없다. 만약 답변자가 기자보다 훨씬 더 많이 준비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기자의 전화를 받거나, 기자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임원의 대부분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어떤 기자가 언제 나에게 접근해 어떤 질문을 할지를 어떻게 알고 미리 준비할 수 있을까? 따라서 일단 임원이 언론과 대화를 시작하면 이길 확률보다는 질 확률이 엄청나게 더 높다. 백전백태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고, 아주 신중하게 게임에 임해야 그나마 생존이 가능하다.
둘째, 임원은 언론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 영업부사장이 기자와 통화하며 회사의 영업 상황에 대해 설명 하나? 왜 인사부서장이 기자에게 자사 인사정책에 대한 직접 해명하나? 대부분 임원의 직무기술서에는 ‘언론과 대화하는 업무를 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기자와 대화한다는 것은 그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 이외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로 인해 회사에 피해를 끼치게 된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자에게 잘 설명해서 좋은 기사가 나오게 했다? 기자는 이길 수 없다고 바로 앞에서 조언했다. 만약 그런 결과가 있었다면 해당 임원은 그냥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그 운이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셋째, 기자와 말을 섞어도 나는 대변인이 아니어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임원들은 지인인 기자와 대화하고 나서 ‘개인적인 통화’라거나 ‘개인적인 대화’였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것이 개인적이냐 아니냐를 판별하는 아주 중요한 기준은 통화나 대화의 주제가 순수하게 개인과 관련된 것이지 아니면 회사와 관련된 것인지에 따라 나뉜다. 만약 지인인 기자와 골프 실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대화를 마쳤다면 그것은 개인적 대화일 수 있다. 그러나 회사가 계획중인 골프장 인수 건에 대한 자랑을 섞었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대화일 수 없다.
기자도 재무 임원인 자신이 회사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기자가 함부로 내 자신의 이야기를 기사화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기사를 쓰려면 그 내용을 회사 홍보실에 다시 한번 확인하고 쓸 것이다? 아무리 기자들의 수준이 낮아졌다고 해도 그 정도로 몰지각하게 기사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잘 아는 기자라서 그렇게 걱정할 것은 아니다? 글쎄다. 바로 맨 앞에서 조언한 것을 다시 기억해 보자. 기자를 이길 수는 없다.
넷째, 말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말 실수는 단 한 번으로도 자신과 회사를 망치기에 충분하고 차고 넘친다. 실제로 기자와 통화 한번, 지나가며 한 말 한 마디, 술자리 실언 한 조각으로 자신의 커리어가 망가지고, 회사와 조직에 큰 데미지를 남긴 케이스들이 지천이다. 하지만 임원들이 볼 때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하기도 한다. 그건 회사 홍보실이 해당 기사를 사후에 적극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후유증은 최소한 소스인 자신에게는 남는다.
개인적 대화에서 말 실수는 개인적 창피함이나 우스움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기업 임원이 기자와 회사관련 주제를 이야기하다가 한 말 실수는 그리 단순하게 정리되는 성격이 아니다. 그것이 기사화되거나 TV 방송을 타게 되는 경우에는 더욱 더 상황은 심각 해 진다. 온라인과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통제 불가능한 노이즈로 불 타오르면 해당 실수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구글은 결코 잊지 않는다(Google Never Forgets)”는 유행어처럼 자신의 이름에 실수가 붙어 평생 가는 온라인 주홍글씨를 남기게까지 된다. 기자도 그냥 실수라는 것을 이해해 줄 것이다? 글쎄, 다시 기억하자 기자를 이길 수는 없다.
다섯째,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답을 한다
내가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되어야 생존할 수 있다. 기자가 질문한다고 해서 내가 꼭 답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기자가 질문하더라도 내가 그 질문에 대해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답을 주면 안 된다. 준비되지 않은 답은 일단 회사내에서 합의되지 않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답변은 애드립 일 가능성이 높다
아는 범위 내에서만 이야기해 주었다고 변명해도 소용없다. 아는 범위 내에 어떤 준비되지 않은 메시지가 있었을 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아는 범위 내 이야기가 기자에게 공개하기 적절한 것이었는지 여부도 따져볼 겨를이 없었지 않나? 임원이면 기자가 한 어떠한 질문이라도 받아 쳐 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글쎄, 다시 기억해 보자. 기자를 이길수 없다는 것을.
여섯째, 자신의 메시지가 적절한지를 따지지 않는다
임원들이 기자와 대화한 뒤에 종종 하는 해명이 있다. 내가 임원으로서 못할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임원으로서 틀린 말을 했을 리 없다. 내가 임원으로서 그런 말도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런 사후 이야기를 한다. 맞다. 못할 말도 아니고, 틀린 말도 아닐 수 있다. 물론 임원으로 그 정도 이야기를 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적절했는가다. 만약 그 말이 부적절했다면 그 이후 모든 해명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적절한 메시지인가가 가장 우선되어야 할 필요 충분조건이다. 적절한 메시지는 충분한 준비를 거쳐서 탄생한다. 충분한 준비는 곧 사내에서 공식적인 합의를 의미한다. 기자에게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면 그 결과는 긍정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기자가 우리 메시지를 알아서 잘 해석해 줄 것이다? 아직도 오해를 하는 것 같다. 기자를 이길 수는 없다고 조언했다. 기자 마음에 희망을 품지 말라는 의미다.
일곱째, 오프더레코드를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너무 자주 강조해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기자와의 모든 대화는 온 더 레코드다. 그리고 기자를 이길 수 없다는 조언은 절대 잊지 말자.
여덟째, 기자 응대의 일관성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기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는 즉답하지 않겠다 생각했다면 끝까지 그 대응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내가 충분한 준비를 거쳐 기자에게 우리의 준비된 핵심 메시지를 반복해 전달하겠다 싶으면 그리 하는 것이 좋다. 어떻게 해서 든 그 기자가 쓴 기사에 우리 핵심 메시지를 집어넣어야 하겠다는 결심을 버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최초 전략적 결심을 이내 잊어버리고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즉답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기자가 기술적으로 반복해 질문하니 결국 답을 줘 버리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 우리의 핵심메시지를 반복 전달해야 하겠다 하다가, 곧 다른 길로 빠져서 준비하지 않은 메시지들로 말잔치를 하며 대화를 끝내는 경우도 그렇다. 어떻게 임원인 나도 인간인데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하게 같은 태도를 기계처럼 유지할 수 있나? 아니다. 임원께서는 인간이시기 때문에 더욱 더 기계적인 훈련을 받으셔야 했던 거다. 기자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해야 하는 최소한의 준비였던 거다.
아홉째, 안전섬에 머무르는 것을 부자연스럽다 한다.
핵심 메시지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일종의 안전섬 역할을 한다. 각종 차량이 빠른 속도로 오고 가는 10차선 도로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도로 중간의 안전섬이다. 일단 안전섬에 머무르기만 하면 치명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다. 그 위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살피는 여유도 허락된다. 이내 차량이 줄거나 속도가 잦아들면 안전하게 길을 건너갈 기회도 생기게 된다. 그런 소중한 안전섬에 머물러 있는 것을 부자연스러워 한다면 그건 극한 위험을 즐기겠다는 의미가 된다.
백악관에서 매일 수차례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펼치는 프로 대변인들도 두꺼운 브리핑북을 언제나 품고 다닌다. 그냥 애드립으로 답변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미 그 두꺼운 브리핑북을 장시간 숙지한 뒤에 하는 답변을 우리가 구경하는 것일 뿐이다. 대변인실에서는 그 브리핑북을 계속해서 업데이트 하는데 상당한 인력이 상당한 시간까지 투입한다. 말 그대로 매일 매일 안전섬을 짓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기자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로드킬은 당하고 싶지 않은 거다.
열 번째, 창구일원화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기자와 백 번의 대화가 있다면 그 중 백 번 모두 가장 먼저 시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창구일원화다. “김기자님, 저희 회사 규정상 언론과의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홍보실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창구일원화의 대표적 메시지다. 그렇다고 기자가 바로 질문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추가 질문이 이어진다면, 임원께서도 방금전과 같은 창구일원화 메시지를 추가해 전달하면 된다. 누가 지치는 가의 게임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것은 기자의 취재를 회피하는 것 아니냐며 질문하는 임원도 있다. 그렇지 않다. 기자가 취재하는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홍보실에 대한 창구일원화는 중요하다. 자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잘 정리해서 전달해야 기자도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다. 그 지원 업무를 프로페셔널 하게 담당하는 부서가 홍보실이다. 임원께서는 기자에게 그런 창구를 소개하고, 프로세스를 가이드해 주는 것이다. 이는 자사와 함께 기자를 위한 것일 수 있다. 기자가 창구일원화를 싫어 한다? 절대 잊지 말자. 기자를 임원이 이길 수는 없다는 걸. 임원은 일단 생존이 목표여야 한다는 것을.
이상과 같이 일반적으로 임원들이 가지는 생각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노력은 필요하다. 계속해서 언론으로부터 상처 받고 회사에 데미지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내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것이 곧 회사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더 해야 한다.
위와 같은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 준비하고 훈련하는 것은 전쟁을 위해 갑옷을 챙겨 입는 것과 같다. 갑옷이 원래 무겁고 답답하고 자연스럽지 않지만, 최소한 자신을 지켜 줘 생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기억하자. 성공적인 기업의 임원은 누구나 그렇게 튼튼한 갑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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