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거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기업은 없을 것이다. 어쩌다 사회적으로 대형 위기라도 발생되면 회사 대표께서는 “우리도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보자”는 주문을 하신다. 어떤 대표께서는 “우리 회사에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신다. 어떤 회사에서는 전체적으로 “우리는 위기에 대한 의식이 적고, 실제 위기관리를 해 본 경험이 없으니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보아야 하겠다”는 공감대가 생겨 시스템 구축을 추진해 보기도 한다.
대표께서 주문이나 질문을 하셔서 시작된 경우나, 내부적으로 공감대가 있어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을 시작한 경우나, 그 첫 시작 직후 엄청난 고민이 시작되는 것은 비슷해 보인다. “자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지?”하는 거대한 질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내 어떤 사람은 위기관리 시스템은 곧 매뉴얼이라 이야기한다. 또 누구는 위기관리 매뉴얼은 예전에 만들어 보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반박한다. 위기관리 시스템 보다는 직원이나 경영진이 위기관리 의식을 먼저 고양해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훈련을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더 실전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위의 생각과 의견 그리고 조언들은 대부분 맞다. 그러나 그 하나로 충분한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 우선 자기 회사가 정확하게 원하는 위기관리가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하는 것이 첫 걸음이다. 그 정의를 기반으로 어떤 형태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은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어야 사후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서 실망하거나 놀라지 않게 된다.
이런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기업들이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혼동하지 않아야 하는 것들과 핵심적 강조 포인트들을 정리해 본다.
첫째, 위기관리 시스템과 위기관리 매뉴얼을 동일시하지 말자
위기관리 매뉴얼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위기관리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다. 위기관리 매뉴얼 없는 위기관리 시스템은 없다. 그러나 반대로 위기관리 시스템이 없는 위기관리 매뉴얼은 존재 가능하다.
위기관리 매뉴얼만 만들어 놓고, 실제 그 매뉴얼을 기반으로 위기관리를 하지 않는 기업이나 조직은 생각보다 많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원래 그것을 만든 담당자나 컨설턴트들만 읽어 봤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실제 현장에서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을 확보해 점검해 보면 대부분이 위기 발생시 활용도가 적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제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사내 최고의사결정자와 위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이 위기관리 매뉴얼을 숙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자사가 위기관리 매뉴얼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곧 위기관리 시스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자사 위기관리 시스템을 그대로 기록해 놓은 것일 뿐, 그 이상이나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위기관리 매뉴얼에 대한 고민을 하기 전에 위기관리 시스템을 어떤 형태로 구축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고, 완성된 그 시스템을 매뉴얼화 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인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이 프로세스를 반대로 밟아 나가는 기업들이 상당히 많다.
둘째, 위기관리 매뉴얼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을 혼동하지 말자
회사에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답을 하는 부서는 홍보실이다. 나름대로 수 십에서 수 백 페이지짜리 매뉴얼을 인쇄 상태로 철까지 해서 가지고 있는 부서다. 그러나 그 매뉴얼을 제공받아 펼쳐 보면 열에 아홉은 위기관리 매뉴얼이 아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이 라는 사실에 놀라 된다. 심지어 어떤 기업에서는 홍보실무 매뉴얼을 위기관리 매뉴얼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전사적 위기관리 주체인 위기관리위원회 또는 위기관리팀의 운용과 관련된 매뉴얼을 의미한다. 특정 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해당 위기에 대한 감지, 분석, 보고, 공유, 의사결정, 대응 방안, 실행 가이드라인, 관제 평가 방식 등을 위기관리 조직 기반위에서 프로세스로 서술한 매뉴얼을 위기관리 매뉴얼이라 한다. 위기 대응을 위한 각 부서의 역할과 책임을 규정해 놓은 것이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위기 발생 시 해당 위기관리를 위해 누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지를 정해 놓은 매뉴얼이다. 앞의 위기관리 매뉴얼을 기준으로 보면 그 매뉴얼의 한 챕터나 부록으로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위기 시 커뮤니케이션 창구 역할을 해야 하는 대변인 성격의 임무를 수행하는 부서와 부서장이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없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의미가 없다. 무엇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지가 생략되어 있는 일반론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이 생략된 위기관리 매뉴얼은 관리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한계를 지닌다.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는 위기관리는 말하지 못하는 성악가의 모습과 같다.
셋째, 매뉴얼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위기관리 매뉴얼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을 아주 멋지게 만들어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위기관리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두꺼운 매뉴얼은 실제 현장에서의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주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위기 발생 시 위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이 자사 위기관리 매뉴얼을 펼쳐 페이지를 넘기며 자신의 역할을 찾고 있다면 그 위기관리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매뉴얼은 평소 위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이 암기 또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수준과 범위면 족하다. 매뉴얼이 수백에서 수천페이지가 된다면 그 매뉴얼은 일단 활용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아주 아카데믹한 경영진이라 평소에 매뉴얼을 꼼꼼하게 읽고 기억한다고 해도, 그 매뉴얼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
그렇게 세세한 매뉴얼이 위기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오히려 위기관리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스스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못한다. 매뉴얼은 그냥 종이 위에 쓰여진 활자의 집합일 뿐이다. 실제 위기를 관리하는 주체, 즉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핵심이다. 매뉴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넷째, 위기관리 시스템은 사람이 핵심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어떤 시스템도 그 속안의 핵심은 사람이다. 사람이 빠진 시스템은 실체가 없는 껍질일 뿐이다. 위기를 발생시키는 것도 사람이다. 그 위기에 영향을 받고 여론을 형성하는 것도 사람이다. 또한 그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 없으면 위기도 없다. 그 속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위기라는 것이 생겨난다.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사람이 위기를 관리하는 주체라는 생각을 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모든 시스템이나 매뉴얼 또는 프로세스에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매뉴얼이 두껍기만 해서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사람들이 그 매뉴얼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매뉴얼로 대변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사람들이 매뉴얼 없이도 위기관리를 제대로 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기를 관리하는 사람들 즉, 위기관리위원회 또는 위기관리팀 구성원들이 위기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그들을 평시에도 훈련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험을 주려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위기나 이슈 요소들을 찾아내 케이스 분석을 하고, 그 경험을 한 타사들의 위기관리 방식을 벤치마킹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자사의 사람들을 시스템화 하기 위함이다. 제대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위기관리위원회가 어찌 보면 제대로 된 위기관리 시스템이라고 하겠다.
다섯째, 위기관리 시스템의 수명은 6개월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
매뉴얼에 기록되어 있는 위기관리위원회 리스트를 한번 찾아보자. 아마 1년전에 만들어진 매뉴얼 해당 페이지를 들쳐 보면 낯설거나 오래된 사람들의 이름이 몇몇 나올 것이다. 인사이동이 있었거나, 퇴사나 입사로 변동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매뉴얼상 위기관리조직은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
당시에는 상당히 집중적인 매뉴얼 학습과 그에 기반한 트레이닝 및 시뮬레이션을 경험해 위기관리에 감을 잡고 있던 경영진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가 회사를 떠나고 새로운 인력들이 새롭게 위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게 되면 그 이전의 팀워크와 역할과 책임 개념은 새롭게 시작되어야 하는 숙제가 된다.
위기관리 위원회 구성원의 4분의 1만 바뀌게 되면 일단 그 위기관리 위원회는 이전과 같은 퍼포먼스를 내기 어려워진다. 특히나 홍보, 법무, 대관, 영업, 마케팅, 인사 등의 위기관리 핵심 부서 인력들이 대거 새롭게 바뀌면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 작업은 다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그에 더해 최고의사결정자가 바뀌어 버린 기업인 경우에는 기존 위기관리 시스템을 전부 새롭게 바꾸거나, 다시 시작하는 수준의 개정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훈련이나 시뮬레이션 또한 처음부터 다시 시작돼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정기적인 개정과 반복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이유다.
여섯째,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추면 위기가 없을 것이라는 희망은 무리다
제대로 갖춰진 위기관리 시스템은 크게 두가지 효과를 만들어 낸다. 평시 기준으로는 위기의 발생 빈도를 줄여준다. 지속해 주목하고 감시와 모니터링을 병행해 예상되는 위기의 발생을 현저하게 억제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를 기준으로 보면 위기관리 시스템은 해당 기업이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위기대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의미가 있다. 준비된 조직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는 빠르고 정확 해진다.
그렇다 해도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춘 기업에게는 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평소 주목과 방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되는 것이 위기의 특성이다. 미리 준비하며 대비하여 신속 정확한 대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점점 예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도 위기다.
강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에게 전쟁 억제력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면 위기 발생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아질 수 있다. 강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가 실제 전쟁 발발 시 보다 유리한 전쟁 수행을 할 가능성도 높다. 기업도 그렇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기업은 그런 것을 갖추지 못하고 있던 기업보다는 유리하다. 훨씬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 뿐이다.
일곱째, 최고의사결정 그룹이 참여하지 않는 위기관리 시스템은 신기루다
위기관리는 기업이나 조직내 상위 1%의 경쟁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게임이다. 그들의 상황판단과 의사결정이 위기관리의 큰 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험과 역량은 해당 기업이나 조직의 경험과 역량으로 바로 연결되어진다. 위기관리에 성공하는 기업에서는 최고의사결정자가 보이지만, 실패하는 기업에서는 최고의사결정자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최고의사결정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위기관리 매뉴얼은 아무 의미가 없다. 최고의사결정자가 참여해 경험을 쌓지 않은 위기관리위원회도 별 의미가 없다. 최고의사결정자가 훈련받지 않고,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의사결정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면 위기관리에는 성공 가능성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관리 시스템은 곧 최고의사결정자’라는 말을 하기까지 한다. 문제는 기업들이 위기관리 시스템 속에서 최고의사결정자를 현실적으로 배제하거나, 상징적 역할로 편제하고, 실제 시스템을 운용해 보는 많은 훈련과 시뮬레이션에서 열외 시키는 이상한 의미의 의전을 하는 경우 발생된다.
위기관리 매뉴얼에도 최고의사결정자는 정확하게 명기되어 있어야 하며, 그의 역할과 책임 또한 최대한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그룹의 역할과 책임을 모아 놓은 것이 매뉴얼이라 할 정도로 최고의사결정자의 가치는 중요한 것이다. 위기관리 시스템 그 자체다.
이상과 같이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 핵심 주제들을 정리해 봤다. 대부분 이해는 쉬우나 실행이나 구현이 어렵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위기관리 매뉴얼을 두꺼운 종이책으로 가지고 있기 보다는 실제 위기관리를 수행할 사람들을 학습 훈련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험을 반복 제공하는 노력에 좀더 주목해 보자.
그런 반복이 쌓이고 쌓이면 그것이 위기관리위원회 사람들에게 문화가 된다. 새롭게 조인한 구성원들도 오래된 문화에 빨리 물들게 된다. 그런 문화를 그대로 기록해 업데이트 하면 그 자체가 매뉴얼이 된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가의 문제라기 보다는 순서를 어떻게 시작해 반복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서도 핵심은 ‘반복’이다. 위기관리 명언 ‘예방하지 못하면 준비하라(Prevent or Prepare)’에서도 ‘반복’이 빠지면 별 의미가 없다. 반복처럼 중요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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