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2020 Tagged with 0 Responses

[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103편] 이번만 넘기자 하지 말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여러 임직원이 모여 앉으면 주어진 상황에 대해 여러 해석과 대응 아이디어가 나오게 마련이다. 일부에서는 원칙이나 회사의 철학에 근거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자는 의견을 피력한다. 또 다른 일부에서는 이번 상황은 이런 이런 아이디어로 해결 할 수 있으니 너무 크게 일을 벌일 필요 없다는 자신감도 피력한다.

의사결정자 입장에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원칙과 철학을 따르자니 회사의 비용이나 부담이 크고, 아이디어로 해결해 버리자니 사후 후폭풍이나 비판이 두렵다. 적당한 중간 선에서 상황을 관리할 수는 없을까 하는 묘안을 찾는다.

이런 고민의 순간에 전문가들이 나선다. 법적으로 그렇게 큰 부담까지 감수해야 할 수준은 아니니 걱정 말라는 전문가 의견이 들려온다. 여러 케이스를 경험해 본 결과 이번과 같은 경우는 그냥 일부에서 이야기한 아이디어를 통해 상황을 넘기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수 있다는 의견도 들린다. 의사결정자는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다.

법적으로도 큰 문제 없고, 다른 케이스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다니 그러면 이번 상황만 어떻게든 넘겨보자는 의사결정을 한다. 그렇게 해서 상황은 운이 좋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상황만 어떻게든 넘겨보자’ 했던 그 생각이 ‘이번 상황이 넘어갔으니 끝난 것’이라는 마음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번 상황만 어떻게든 넘겨보자 라는 지난 생각은 이번 상황만 별 문제 없이 처리되면, 그 후 좀더 시간을 가지고 해당 문제를 개선하고 재발 방지책을 함께 마련해 보자’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과 고민의 시간이 지나가면 그런 생각은 눈 녹듯 사라진다. 언제 그런 문제가 있었는지 대부분 잊어버린다.

누군가 지난 문제를 언급하면서 개선이나 재발방지에 대해 이야기 하면,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한다는 비판이 돌아온다. 위기라는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무슨 좋은 이야기라고 자꾸 화제를 만들어 위기관리 타령을 하는가 하는 핀잔도 나온다. 이런 상황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번만 넘겨보자. 이번만 모면해 보자. 이번만 어떻게든 해 보자. 위기관리에 있어 이만큼 위험한 생각이 없다.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이번이 마지막인 듯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관리 전반에 있어 진정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번만 이번만 하는 생각이 기반이 되면 어떤 위기관리도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게 된다.

피해 고객들에게 고개를 숙이면서도 ‘이번만 어떻게든’이라는 생각을 한다 상상해 보자. 심각한 사과문을 내면서 ‘이번만 좀 어떻게든’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상상해 보자. 엄청난 사고 재해 상황을 관리하면서 ‘이번만 좀 어떻게’라는 생각을 하는 위기관리 주체의 얼굴을 떠올려 보자.

모든 사람은 인간이기 때문에 현재의 고통에서 어떻게든 일단 벗어나 보려 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본능이다. 고통 속에서 그 고통을 진지하게 해석하고 즐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일단은 벗어나고 보자 하는 본능이 기업 위기관리에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평소 원칙과 철학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앞에서 예로든 의사결정자는 왜 양쪽의 이야기와 외부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마음이 흔들렸을까? 그 스스로도 자사의 원칙과 철학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그 기반에서 해당 상황과 위기의 핵심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자가 평소 자사의 훌륭한 원칙과 철학에 기반해 모든 상황을 바라본다면, 위기관리를 위한 의사결정은 보다 쉬워진다. 어떻게든 이번만 넘겨보자는 의견을 들어도 고민 되지 않는다. 어떤 회사에서도 원칙과 철학이 ‘위기상황은 어떻게든 넘겨라’이야기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소비자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우리에게는 안전과 위생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 ‘직원의 행복은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다’’우리는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뢰와 사랑 받는 회사가 되자’ 이런 기업의 생각이 위기를 관리한다. 그 속에 위기관리 해법이 들어 있다.

위기상황은 기업이 평소 주창하던 원칙과 철학을 그대로 시험하는 순간이다. 그 회사가 소비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실제 소비자 관련 위기를 관리하는 방식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 안전과 위생을 중요한 가치라 해 왔던 기업에게 위생과 안전 논란이 발생되면 회사가 그 가치를 기반으로 위기를 관리하는지 쉽게 확인 가능하다. 이번만 어떻게든 넘겨보자는 이야기는 그런 원칙과 철학을 적용하는 중요한 기회를 넘겨보자는 이야기다. 위기관리를 하지 말자는 의미다.

# # #

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 # #


Communications as Ikor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Communications as Ikor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