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규모가 큰 기업으로 기존 투자해 놓은 관계 자산도 많고, 명성이나 위기관리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경우는 예외가 되겠지만, 많은 기업들은 위기가 발생하면 외부로부터 지원과 조언을 원한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현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듣기 원한다.
대기업 임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외부 위기관리 컨설턴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나요?” 이 질문에는 전제가 있다. ‘우리 회사에서 대부분 위기관리를 하는데, 외부 컨설턴트는 그 외 어떤 위기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같은 전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위기관리 보다 더 낫거나 다른 형태의 관리는 불가능해 보인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대신 이런 질문은 어떨까? “우리가 매번 위기관리를 하면서, 외부 이해관계자 시각에서 우리의 전략과 메시지를 사전 검증받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혹시 이런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요?” 이 질문 속에는 내부의 심도 있는 고민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요청 사항이 정리되어 있다. 컨설턴트도 이런 고민을 끝낸 클라이언트와는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선다.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위기관리 매뉴얼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함께 위기를 관리해 나갈 외부 컨설턴트 그룹을 비상연락망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기록되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다양한 이슈와 소규모 위기들을 함께 관리해 나가면서 외부 컨설턴트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나 컨설턴트에게 가장 위험하고 괴로운 것이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상황이다. 온갖 사내 비밀이나 중요 정보들이 정신없이 오가며 공유되는 위기관리 상황에 처음 명함을 나눈 사람들이 끼어 있다면 누구든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VIP 입장에서도 갑자기 자사의 부름을 받고 위기관리 워룸에 앉은 낯설 컨설턴트에게 신뢰를 주기는 힘들다. 홍보실에서 파트너십을 이루고 있다 소개하는 컨설턴트에게도 일정 기간 눈길을 주지 않는 VIP도 있다. 이런 불편한 상황이 유지될 수록, 위기관리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진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들과 같이 기업내 위기관리 실무자들은 위기관리 컨설턴트들을 평소에도 자사의 위기관리위원회 또는 위기관리팀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조언을 제공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VIP부터 일선 위기관리 조직 구성원들까지 외부 컨설턴트가 어떤 사람들이고, 위기 시 어떤 업무를 지원하는지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에서 가정마다 그 가정을 담당하는 주치의를 두는 형식을 따르는 것이다. 주치의는 한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원의 의료정보와 치료 이력을 알고 있다. 심지어 나중에는 그들의 손주와 며느리들까지 하나 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중 의료적 문제가 있으면 일단은 주치의에게 전화한다. 주치의 조언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받거나, 더 적합한 의료기관을 소개받기도 한다.
이 가족에게 주치의는 낯선 사람이 아니다. 오랜 기간 자신을 치료했던 주치의를 신뢰하며, 평소에도 친하게 지낸다. 서로 경조사를 챙기고, 마치 가족처럼 지내는 경우도 생긴다. 주치의 입장에서도 그 가족 구성원 각각을 친 형제나 자식처럼 생각한다. 이 모든 파트너십은 오랜 기간 상호간에 신뢰를 쌓아 왔기 때문에 만들어 진 것이다.
기업 위기관리도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급한 조언을 얻기 위해 여기 저기 위기관리 컨설턴트들을 찾아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위기가 발생하면 시간도 부족하고, 깊이 있는 의사결정도 힘든 상황이 되는데, 외부 조언자들을 찾아 다니며 그 귀중한 시간과 역량을 허비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조언자들을 구해도 초기 대응해야 하는 시간은 이미 놓친 후가 되기 때문이다.
그 후 대응을 한다고 해도 상호간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위기관리 컨설턴트라 해서 위기가 발생할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전문적 시각을 정확하게 내 놓기는 힘들다. 우선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와 문화를 이해해야 하고, VIP의 진짜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 회사의 위기관리 자산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한다. 일선의 실제 역량도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낯선 외부 조언자들은 이런 확인 작업에 상당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게 된다. 평소에 주치의를 만들고 친해지자, 위기 시 낯선 조언자들과 일하는 것이 상당히 고통스럽다는 것을 기억하자.
# # #
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 # #
Communications as Ikor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