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고객이 왕’이라는 이야기는 들어 보았지만 ‘피해자는 왕’이라는 말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평소 고객은 항상 우선순위 상위를 차지하면서 기업 경영에 있어 하나의 좌표가 되고, 심지어 종교의 경지에까지 이를 추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 고객은 자신이 진짜 왕이라도 된 것처럼 기업의 일선 직원을 하인 부리듯 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일부 그런 과도한 왕놀음 현상이 있어도,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은 고객을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적극 관리한다. 이번 글에서 이야기하는 ‘피해자는 왕’이라는 개념은 꼭 고객이 입은 피해만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모든 활동과 관련 해 피해를 입은 어떤 이해관계자도 ‘피해자’로 볼 수 있다. 물론 피해를 입은 고객은 당연히 포함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항공사 기내에서 정원 초과로 하기를 요청받은 한 동양계 남성이 그를 거부하다가 공항 경비원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질질 끌려 나가는 모습이 유투브에 공개되었다. 이를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목격자의 여러 증언에 온라인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이내 해당 항공사의 대표가 사과를 했지만,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 섞여 있었고, 재차 여러 번 사과하는 해프닝이 이어졌다.
항공사 주가는 급격하게 떨어졌고, 대표이사의 자리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피해를 입은 그 고객은 대형 소송을 언급하며 고급 변호사를 통해 압박을 해 왔다. 해당 항공사는 더 이상 사건이 확산되고, 소송에까지 이끌려 들어가는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고자, 대형 합의금을 제시했고, 해당 사건은 이내 공중의 시각에서 사려져 버렸다.
늦었지만 그래도 후반에는 깔끔하게 처리된 케이스다. 여기에서 목격되는 개념이 ‘피해자는 왕’이라는 개념이다. 위기 시 피해자는 왕이다. 평시 고객이 왕이라면, 위기 시 피해자는 황제다. 받들어 모셔야 하는 대상이고, 압도적으로 피해를 보상 해 불만을 신속히 없애는 것이 최선이다.
만약 해당 항공사가 ‘피해자는 왕’이라는 개념을 빌리지 않고, 피해 고객을 맞서 싸워야 하는 적, 회사를 성가시게 하는 귀찮은 존재, 의도적으로 주도 면밀하게 돈을 뜯어 내려는 진상과 같은 개념으로만 바라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사건이 바로 그리 쉽게 사라져 갔을까?
결과적으로 그 항공사가 피해자는 왕이라는 개념을 선택한 것이 전략적이었다는 평가 반면에, 실제 자사가 그런 상황에 처하면 위와 같은 다른 생각과 개념에 눈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기업이 화를 내고, 기업이 울분을 가지고, 기업이 억울 해 하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경영진의 개인 감정들이 모여 의사결정에 반영되니 문제가 더 꼬인다. ‘절대로 합의는 안된다’ ‘이번에 본 때를 보여줘야 한다’ ‘이 사람은 악성이다’ 이런 내부 감정들이 모이고 모여 위기관리를 해친다.
일부 기업 경영진은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번 한번이 문제가 아니라 다음 번에 이런 동일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쩝니까? 우리가 또 그렇게 대형 피해 보상을 해줘야 하는 건가요? 이거 이렇게 하면 습관되거든요?” 참 흥미로운 생각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영자는 해당 상황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있어서는 안될 상당한 실수와 잘못을 저질러 일반 고객을 피해자로 만들었는데, 그런 과정에 대한 반면교사가 부족한 것이다. 다시 그런 피해자가 나오면 어쩔 겁니까? 이 이야기는 자사가 다시 그런 동일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와 다름이 없다. 개선이나 재발방지에 대한 심각한 각오가 부족한 것이다.
이번에 그렇게 엄청난 피해 보상의 위기를 경험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런 상황을 다시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 근본적 개선을 하는 것이 맞다. 이를 통해 다시는 그렇게 아까운(?) 비용을 발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내에 강하게 자리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개념 위에서 모든 실행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위기관리다.
반면 항상 피해 보상의 규모에만 주목을 하니 어렵다. 해당 피해자가 피해를 과장하고 있다는 시각으로 바라보니 어렵다. 차라리 이미 발생한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여러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시간에, 어떻게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인지 토론하는 것이 더 이롭다.
이에 더해 적절한 초기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면, 여론으로부터도 일부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사회적 압력이 한층 줄어든다. 이에 기반하면 피해자와의 합의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정상을 참작 받을 여지가 생긴다. 이런 전체적 위기관리 시각이 사내의 ‘아까운 감정’을 그나마 관리하는 실질적 방법이다. 그 후 다시는 이런 위기를 발생시키지 않겠다. 이게 핵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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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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