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13편] 숙제는 미리 해 놓으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많은 기업들이 국내외 타사들의 위기관리 케이스를 공부한다. 타사의 위기관리를 통해 자사가 배울 수 있는 점들을 찾겠다는 취지다. 또한 타사가 겪은 위기를 자사는 겪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어서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상당수 기업들은 타사 사례를 일종의 ‘구경’ 수준으로 소비한다.
그들의 위기관리에서 부러운 점을 발견했다면, 이후 자사의 위기관리 체계에 그 부러운 점을 도입해 보는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 반대로 타사로부터 발견한 문제점들은 자사에게도 동일하게 확인 해 보아 유사한 문제가 있으면 교정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얻은 인사이트가 관련된 노력으로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최근 여러 회사의 사내 성추문 관련 이슈를 알고 있다면, 일반적으로 기업 내부에서는 자사의 관련 사례나 처리 및 대응 프로세스를 둘러 보게 마련이다. 우리에게도 저런 형태의 이슈 발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발생한다면 우리 회사는 저 회사들 보다 훨씬 더 잘 대응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생각해 보고 주어진 숙제를 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몇 년 전 자사가 특정 내부고발 이슈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 몇 년이 지난 지금에는 어떻게 관리 해 문제 소지를 없앴는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아직도 일부 문제 소지가 잔존해 있다면 그에 대한 조치를 숙제로 푸는 것은 필수다. 위기관리 인사이트라는 것은 딱히 타사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통해서도 얻어 지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얻은 ‘숙제’를 제대로 적시에 하고 있어야 위기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주어진 숙제들을 그대로 남겨 놓으니 나중에 그 숙제가 성장해 위기가 되는 것이다. 숙제를 하지 않았으니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더욱 당황스럽고 어렵게 느껴진다. 문제는 숙제를 했냐 하지 않았느냐가 된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이 비유는 더욱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학교에서 받아온 숙제를 하지 않았던 느낌을 기억해 보자. 항상 찜찜하고 불안하다. 어쩌다 선생님이 숙제검사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안도감이 들고 신 나지만, 숙제검사가 시작되면 스스로의 패닉은 극에 달하게 된다.
상습적으로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들은 숙제를 성실히 하기 보다, 숙제를 왜 하지 못했는지 또는 숙제는 했는데 학교에 가지고 오지 않은 이유가 무언지 등을 거짓말하며 임시방편적 대응에 몰두한다. 선생님은 절대 그런 변명에 속지 않고, 숙제 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응분의 벌을 내린다.
기업의 위기관리도 그와 똑같다. 평소 떠오른 문제를 깨끗하게 숙제로 개선 실행 하지 않은 기업은 항상 내부적으로 불안해 한다. 언젠가 숙제 검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찜찜함이 계속된다. 그렇다고, 실제 중요한 숙제를 하지 않고, 어떻게 숙제검사를 넘겨야 할지 공부하고 준비하고 있다면 더더욱 심각성은 더해 진다.
반대로 숙제를 해 놓은 기업은 보다 자유로워진다. 해당 문제 소지를 숙제로 깨끗이 풀어버린 기업은 보다 생산적인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위기 발생 비율이 줄고,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금새 관리 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럴 역량도 보유하게 된다. 한마디로, 걱정이 없게 된다. 숙제를 성실하게 한 학생이 우등생인 것처럼 기업도 그렇게 우등 기업이 된다.
항상 정기적으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위기를 맞는 기업들은 대부분 공통점이 있는 곳 들이다. 숙제를 제때 하지 않은 기업이다. 숙제를 정확하게 하지 않았던 기업이기도 하다. 숙제가 어려우니 그냥 숙제검사를 그대로 견뎌 내겠다는 내부 의지가 생긴 기업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에서 기업의 많은 자산들이 손실되어 피해를 입게 된다. 숙제를 상습적으로 하지 않는 학생이 학교에서 얻게 되는 명성과 똑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이다. 단순히 숙제를 하지 않는 학생이라서, 여러 위반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더욱 더 가중된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다. 불량학생이라는 딱지도 붙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숙제와 관련된 결과라니 놀랍지 않은가?
일부 독자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숙제를 하지 않아도 공부만 잘하면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 학교에서는 실제 그런 학생들도 있을 수는 있다. 공부는 잘하고 시험도 잘 보는 우등생인데, 평시 숙제만 하지 않는 것이 사소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기업 위기관리에서는 조금 의미가 달라진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해당 기업이 어떻게 위기를 관리하는 가 하는 모든 것은 일종의 ‘시험’이라 볼 수 있다. 숙제를 전혀 하지 않았던 기업이 상당수의 문제 소지를 그대로 안고 위기를 잘 관리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기업 위기관리에서는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기업이 위기관리라는 시험을 통과할 수는 없다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싫어도 숙제는 그때 그때 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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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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