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의 위기 커뮤니케이션

7월 132026 0 Responses

왜 불완전한 사과도 효과가 있을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더피알=정용민|최근 기업 위기 현장에서 묘한 장면이 반복된다. 한참 늦었고, 표현도 군데군데 부적절하고, 책임 인정과 재발 방지 약속마저 어딘가 허전한 사과가, 그럼에도 논란을 비교적 빠르게 가라앉히는 장면이다. 원칙대로라면 불완전한 사과는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자꾸 어긋난다. 이런 장면을 몇 번 목격한 실무자들은 이내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이런 의문은 최근 상황에서 당연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위험하다. 한 발만 더 나가면 “어차피 운과 분위기가 좌우한다면 사과는 적당히 형식만 갖춘 통과의례 아닌가”라는 냉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실무자가 이미 사과를 그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냉소는 한 가지 결정적인 구분을 놓친 데서 비롯된다. 바로 ‘불완전한 사과’에도 전혀 다른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불완전한 사과는 겉으로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열어 보면 두 종류로 갈린다. 하나는 ‘구겨진 상자’다. 겉면이 찌그러지고 모양이 빠졌을 뿐, 그 안에는 책임 인정과 진심, 구체적인 시정이라는 알맹이가 멀쩡하게 들어 있는 사과다. 말이 좀 거칠었고, 타이밍이 늦었고, 전달이 어설펐던 정도다. 사람들은 구겨진 겉상자는 너그럽게 용서한다. 상자의 값어치는 겉모양이 아니라 그 안의 내용물에서 나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사과가 통하는 것은 당연하다. 완벽하진 않아도 제 몫은 하는, 이른바 ‘그럭저럭 괜찮은(good-enough) 사과’다. 우리가 ‘불완전한데도 효과가 있었다’고 말하는 사례의 상당수가, 실은 겉만 구겨졌을 뿐 알맹이는 온전했던 이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빈 상자’다. 겉포장은 번드르르하고 리본까지 묶였는데, 막상 열어 보면 비어 있다. 책임은 슬그머니 회피하고, 가해자의 해명과 자존심이 사과보다 앞서며, 시정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려진다. 알맹이가 없는 사과다. 원칙대로라면 이런 사과는 절대 통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가끔 논란이 가라앉는다. 바로 여기서 실무자의 착시가 시작된다. 빈 상자를 건넸는데 상대가 화를 풀었으니, ‘빈 상자도 괜찮구나’라고 잘못 배우는 것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모든 오해의 뿌리다. 그래서 현장 실무자들이 사과에 대해 흔히 품는 일곱 가지 오해를, 이 구분을 기준으로 하나씩 짚어 보고자 한다.

“사과문 한 장 잘 내면 기사도 줄고 댓글도 식는다. 결국 사과란 이 소란을 멈추는 일 아닌가?”

사과를 불 끄는 소화기로만 본다. 그러나 불에는 두 종류가 있다. 활활 타오르는 겉불과, 그 아래 숯처럼 남아 오래 가는 속불이다. 어설픈 사과로도 겉불, 즉 기사와 댓글의 불길은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속불이다. 훼손된 신뢰라는 속불은 겉이 잠잠해진 뒤에도 재 속에서 빨갛게 살아 있다. 소화기로 겉불만 끄고 ‘불 껐다’며 돌아서는 기업은, 며칠 뒤 같은 자리에서 다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사과의 진짜 임무는 겉불 진화가 아니라 속불 진화다.

“지난번 그 회사도 사과는 엉망이었는데 결국 잠잠해졌잖아. 사과의 완성도가 그렇게 중요한가?”

가장 위험한 오해다. 빈 상자를 건넸는데도 상황이 잠잠해졌다면, 그것은 사과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운’이 대신 해 준 것이다. 시간이 흘렀거나, 더 큰 뉴스가 터졌거나, 충성 고객이 많았거나, 회사가 워낙 커서 버틸 체력이 있었을 뿐이다. 이는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나갔는데 마침 처마 밑으로만 걸어 비를 피했다고 해서, ‘우산은 필요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격이다.

게다가 사과는 운 옆에 가만히 앉은 들러리가 아니다. 제대로 된 사과는 그 운을 직접 만들어낸다. 좋은 사과는 언론이 기사를 거두게 하고, 충성 고객을 붙들며, 비판자에게 빌미를 주지 않는다. 반대로 빈 상자 사과는 스스로 악운을 부른다. 사과 자체가 또 다른 기삿거리가 되고, 조롱의 소재가 되며, 비판자에게 새 탄약을 쥐여 준다. 빈 상자가 통했다면 운이 좋았던 것이고, 구겨진 상자가 통했다면 그 안의 알맹이가 운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타이밍을 잘 잡아 그럴듯하게 연출해서 한 방에 터뜨리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빈 상자를 화려한 포장으로 덮으려는 발상이다. 그러나 연출된 사과는 잠깐의 침묵은 살 수 있어도 신뢰는 사지 못한다. 요즘 대중은 사과의 무대 조명을 보면서 그 뒤의 계산까지 함께 읽는다. 공들인 연출일수록, 그 속내가 들통나는 순간의 역풍은 더 사납다. 사과는 남을 향해 쏘아 올리는 한 발의 폭죽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회사인가’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선언문이다. 폭죽은 터지는 순간 가장 화려하고, 곧바로 차갑게 식는다.

“사과문을 더 절절하게, 눈물 한 방울 쏙 빠지게 다듬자.”

진정성은 문장을 다듬어 짜낸다고 생기지 않는다. 진정성은 말이 아니라, 그 말 앞에 놓인 행동에서 새어 나온다. 피해를 실제로 복구했는지, 보상이 구체적인지, 재발을 막을 조치가 손에 잡히는지가 먼저다. 옳은 행동이 9할이고 그에 대한 말은 1할이다. 행동이라는 9할을 비운 채 말이라는 1할만 화려하게 꾸미는 사과는, 알맹이 없이 리본만 예쁜 빈 상자일 뿐이다. 사과문의 미사여구를 손보기 전에, 보상안의 빈칸부터 채워야 한다.

“급할 것 없다. 충분히 검토하고 완벽하게 다듬어서 내보내자.”

지연된 사과가 그럭저럭 넘어간 사례를 보고 타이밍을 사소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과에서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가 또렷한 메시지다. 사과가 늦어진 만큼 사람들은 ‘버티다가 떠밀렸구나’, ‘계산하느라 늦었구나’라고 읽는다. 식어 버린 음식은 원래 맛과 다르다. 늦었는데도 통한 듯 보였다면, 그건 식은 음식을 손님이 배가 고파 그냥 먹어 준 것일 뿐이다. 적시성은 사과의 곁가지가 아니라 재료의 일부다.

“우리가 이만큼 고개를 숙였으면 됐지, 뭘 더 바라나?”

완전한 사과와 빈 상자를 가르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누구를 바라보는가’이다. 제대로 된 사과는 상처받은 상대를 바라본다. 그가 무엇에 아팠고 무엇을 듣고 싶은지에서 출발한다. 빈 상자 사과는 거울을 바라본다. ‘사과하는 나’의 입장, 억울함, 체면이 한가운데 놓인다. 최고의사결정자의 개인적 속내나 서운함이 사과문에 끼어드는 순간,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두 번째 상처가 된다. 사과라는 선물의 주인은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다.

“책임을 인정하면 소송에서 불리하다. 표현은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가자.”

빈 상자가 만들어지는 가장 흔한 통로가 바로 이 법적 방어 논리다. 법적 위험을 챙기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책임을 요리조리 피한 모호한 사과는 받는 사람에게 ‘사과가 아니라 변명’으로 읽히고, 줄이려던 여론의 불길을 오히려 키운다. 법정에서 한방으로 이기려다 광장에서 열방을 먼저 얻어 맞는 셈이다. 법무의 방패와 평판의 회복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손에 함께 쥐고 균형을 잡아야 할 두 개의 공이다.

결국 사과의 값어치는 날씨에 비유하면 분명해진다. 날씨는 못 바꿔도 외투는 챙길 수 있다. 햇볕이 좋았다고, 폭풍이 너무 거셌다고 외투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똑같은 날씨라면 외투를 챙긴 쪽이 늘 덜 고생한다. 사과는 위기라는 궂은 날씨 속에서 기업이 챙길 수 있는 유일한 외투다.

그래서 사과는 보험을 닮았다. 우리는 보험의 가치를 ‘어차피 올해 집에 불 안 났잖아’로 따지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빈 상자로도 한 번은 넘어간다. 그러나 운이 나쁜 날을 대비하는 것, 그것이 사과가 존재하는 이유다.

불완전한 사과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실패’가 아니다. 빈 상자가 운 좋게 통해 버리는 ‘성공’이다. 그 한 번의 요행이 조직에 가장 나쁜 교훈을 새기기 때문이다. “사과는 알맹이 없이 겉만 그럴듯하면 된다, 나머지는 분위기가 해결해 준다.” 이 학습이 쌓이면, 기업은 위기에서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능력, 곧 ‘제대로 사과하는 힘’을 스스로 녹슬게 만든다. 그렇게 능력이 텅 빈 자리에 정작 운 나쁜 위기가 찾아오는 날, 기업의 손에는 운도 사과도 없이 빈 상자 하나만 남는다.

게다가 빈 상자 사과가 남긴 신뢰의 빈자리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외상값처럼 장부에 차곡차곡 적힌다. 그리고 다음 위기 때 ‘그때도 그러더니’라는 이자까지 얹어 한꺼번에 청구된다. 빈 상자로 불을 껐다고 믿는 기업은, 실은 불을 끈 것이 아니라 다음 화재의 불씨를 곳간에 쌓아 둔 것이다. 불완전한 사과가 통한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이, 기업이 가장 비싼 청구서에 외상으로 서명하는 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6월 302026 0 Responses

기업은 항상 선의의 행위자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1982년 미국 시카고. 익명의 누군가가 약국 진열대에 놓인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를 주입했다. 일곱 명이 사망했다. 제조사인 맥닐컨슈머프로덕츠와 모회사 존슨앤존슨은 범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유통망 어딘가에서 저질러진 외부 범죄의 피해자였다. 그럼에도 맥닐은 시장에 유통 중이던 타이레놀 3100만 병을 즉각 전량 회수했다. 당시 기준으로 1억 달러가 넘는 비용이었다. 사과했고, 투명하게 공개했으며, 피해자 중심으로 움직였다. 위기관리론의 교과서가 된 사건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기업 위기관리 강의실과 컨설팅 현장에서 이 케이스는 반복적으로 소환된다. “타이레놀처럼 해야 한다”는 말은 위기관리의 불문율처럼 통용된다. 그런데 타이레놀 케이스와 한국의 기업 위기 케이스들은 과연 유사한 구조인가?

기업은 더이상 선의의 행위자가 아니다

기존 위기관리론은 암묵적으로 기업을 선의의 행위자로 전제한다. 위기는 기업 밖에서 오고, 기업은 그것을 당한다는 구조다. 타이레놀 모델이 그 전제의 정점에 있다. 범죄자가 위기를 만들었고, 맥닐은 피해자이면서 위기를 관리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 위기의 실제를 들여다보면 이 전제는 대부분 통하지 않는다. 기업 내부 갑질 케이스에서는 누가 위기를 만들었는가? 대리점 갑질 폭언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을 때, 그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나? 데이터센터 화재로 수천만 명이 서비스 장애를 겪었을 때, 단일 장애점 구조를 설계하고 방치한 것은 누구였는가? 통신사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을 때, 보안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은 책임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타이레놀 케이스를 만능 교과서로 삼는 한국 위기관리론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다. 한국 기업 위기의 실질적 다수는 기업이 피해자가 아니라, 기업 자신의 행위 또는 부작위가 위기의 직접 원인인 구조다. 이 차이를 무시한 채 타이레놀 모델을 적용하면, 위기 자체를 잘못 판단하게 되는 오류에 빠진다.

두 축으로 위기의 실체를 바라보자

한국 기업 위기를 있는 그대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축이 필요하다. 첫 번째 축은 주체 ‘책임도’다. 해당 위기에 대해 관리 주체가 지는 사회적, 도덕적, 법적 책임의 총량이다. 두 번째 축은 ‘위기유발의도의 강도’다. 위기 발생 구조에서 특정 행위자의 목적적, 의식적 의도가 얼마나 강하게 개입되었는가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두 축 모두 시작점이 0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위기로 판정되는 순간, 해당 주체에게는 최소한의 사후 대응 ‘책임’이 이미 발생해 있다. 마찬가지로 위기 발생 이전 주로 목격되는 ‘방치, 방관, 방목’은 의도가 없는 현상이 아니다. 위기관리의 본질적 정의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을 위반하는 소극적 선택으로서, 약한 형태의 위기유발의도인 셈이다. 이렇듯 모든 위기에는 의도와 책임이 존재한다. 분류되어야 하는 것은 그 존재 여부가 아니라 강도의 차이다. 이 두 축을 교차시키면 네 개의 영역이 도출된다. 이것이 이슈, 위기 통합 관리 매트릭스다.

제1사분면: 작위형 위기, 가장 중한 유형

주체 책임도 크고, 위기유발의도도 강한 조합이다. 식별 가능한 특정 행위자의 의식적, 선택적 행위 자체가 위기의 직접 발생 원인인 경우다. 핵심 판별 기준은 하나다. “해당 행위자가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이 유형에는 개인 일탈형, 계획적 논란화형, 조직적 불공정거래형, 허위, 기만 마케팅형, 안전, 환경 기준 의도적 위반형, 재무 조작형, 채용, 노동 착취 설계형이 포함된다. 대표적인 내부 갑질과 거래처 등 외부 갑질, 폭언, 부적절한 정치성 강요, 분식회계, 가격 담합 등이 이 유형의 대표 케이스들이다.

두 축 모두 최고값에 위치하는 이 사분면은 성격상 가장 중한 유형이다. 대응 전략의 핵심은 행위자 격리와 행위에 대한 직접적 책임 인수다. 언어적 사과만으로는 수습이 불가능하며, 구조적 재발 방지의 가시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한국 오너 기업에서 자주 목격되는 패턴은 가해 당사자가 동시에 위기관리 의사결정자인 이중 구조다. 이 구조에서 행위자 격리 없이는 어떤 대응 전략도 공중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종종 목격해 왔다.

제2사분면: 부작위형 위기, 한국 위기의 실질적 다수

주체 책임도는 크지만, 위기유발의도는 약한 조합이다. 주체에게 위기를 유발하려는 명시적 의도는 없었지만, 조직 시스템의 설계 부재, 방치, 방관, 방목이 위기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경우다. 핵심 판별 기준은 “조직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했다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까?”다.

보안 방목형, 인프라 방치형, 노동안전 방관형, 가치관, 문화 방관형, 운영, 마케팅 과실형이 이 유형에 포함된다. 대규모 고객 개인정보 유출, 데이터센터, 생산시설, 물류센터 화재, 근로자 연속 사망, 남혐, 여혐 이슈, 기업의 정치 사회 아젠다 몰이해로 발생된 위기들이 이 사분면의 대표 케이스들이다.

이 유형에서 방치, 방관, 방목의 삼분법은 내부 귀책 수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방목은 시스템 자체를 설계하지 않은 것, 방치는 시스템이 있었지만 작동을 내버려둔 것, 방관은 문제가 가시화되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개입하지 않은 것이다. 방관의 귀책이 가장 무거운 이유는 인지 이후의 무선택이 위기유발의도 선택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 위기의 실질적 다수가 이 사분면에 분포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기업의 위기관리 실패가 대부분 악의보다 무관심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공중은 무관심을 악의보다 가볍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알면서도 하지 않았다”는 방관의 증거가 드러나는 순간, 공중의 판단은 더욱 가혹해진다.

제3사분면: 이슈관리 핵심 영역, 위기 이전의 공간

주체 책임도가 적고, 위기유발의도 약한 조합이다. 아직 위기로 전환되지 않은 사회적 갈등 잠재력의 영역이다. 관리 주체의 직접적 귀책이 낮고 위기를 유발하려는 의도도 약하거나 부재하지만, 방치하면 위기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적 긴장 상태다.

중요한 것은 이 사분면이 이슈관리 유형 전체를 포괄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임도나 유발의도가 사회적 가시화의 임계점을 넘는 순간, 그 이슈는 위기로 판정되어 다른 사분면으로 이동한다. 즉, 이 사분면은 두 축 모두 임계점 이하인 가장 순수한 형태의 이슈만을 포함하는 영역이다.

사회적 의제 충돌형 이슈, 규제 환경 변화형 이슈, 업계 전반 신뢰 하락형 이슈, 기술, 사회 변화 충돌형 이슈가 여기에 속한다. ESG 관련 이슈들, 플랫폼 경제와 기존 규범의 마찰, 인공지능·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이 영역에 위치한다.

이 사분면에서의 개입비용은 위기로 전이된 이후의 수습비용과 비교할 수 없이 낮다. 이슈관리의 실패는 이슈를 위기로 악화되는 것을 방치한 것이다.

제4사분면: 외부공세형 위기, 타이레놀이 속하는 곳

주체 책임도는 적지만, 위기유발의도가 강한 조합이다. 실질 귀책은 낮거나 최소인데, 강한 위기유발의도가 위기를 구동하는 경우다. 이 강한 위기유발의도의 출처는 주로 외부다. 주체의 책임이 적은데 강한 위기유발의도가 존재한다면, 그 의도의 주체는 논리적으로 외부일 수밖에 없다.

1982년 타이레놀 케이스가 바로 이 사분면에 위치하는 케이스다. 외부 범죄자의 강한 위기유발의도가 위기를 구동했고, 맥닐사의 실질 귀책은 최소였다. 타이레놀 모델이 교과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분면 안에서만이다. 한국 기업 위기의 다수가 제2사분면에 분포하는데 타이레놀 모델을 적용해온 것, 이것이 한국 위기관리론의 가장 큰 구조적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이 유형에는 외부범죄 공격형, NGO, 시민단체 공세형, 경쟁사 마타도어형, 정치적 표적화형, 전직 임직원 보복형, 미디어, 인플루언서 표적형이 포함된다.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 대표 케이스다. NGO 연계 연구팀의 공세 구조가 위기를 구동한 반면, 결과적으로 실질 귀책은 최소였다.

이 사분면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전략 오류는 제2사분면의 대응 방식, 즉 내부 개선과 사과 중심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수습할 내부 귀책이 없는 상황에서 사과를 선택하는 순간, 공중은 귀책이 있다는 신호로 읽는다. 분류가 잘못되면 처방이 잘못된다.

분면에서의 위치는 계속 고정되지 않는다

이 매트릭스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위기는 진행되고, 대응이 개입되며, 공중의 해석이 축적되면서 케이스의 사분면 위치는 이동한다.

두 축의 이동 메커니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X축(주체 책임도)은 객관적 사실의 확인과 변경에 의해 움직이는 경성(硬性) 변수다. 추가 사실 발견, 반복 발생, 은폐 시도 발각, 법적 판결 확정이 X축을 상승 이동시킨다. 반면 X축의 하강 이동은 극히 어렵다. 한번 확정된 귀책은 사실상 사라지지 않는다.

Y축(위기유발의도)은 공중의 인식과 해석에 의해 움직이는 동적 변수다. 위기 발생 이후 주체의 대응 방식을 관찰하면서, 공중은 위기유발의도를 소급하여 재평가한다. 늦장 대응, 축소 시도, 형식적 사과는 모두 사전 의도의 증거로 해석된다. 반대로 진정성 있는 적시 대응은 Y축의 추가 상승을 차단한다.

즉, 실무적으로 위기관리 주체가 실질적으로 통제 가능한 변수는 Y축이다. X축, 즉 이미 발생한 귀책은 사후에 없애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Y축, 즉 공중이 인식하는 위기유발의도는 대응의 적시성과 진정성으로 방어할 수 있다.

가장 파국적인 경로는 제2사분면에서 출발한 위기가 대응 실패를 거쳐 공중의 Y축 재판단을 통해 제1사분면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보안 방목형의 부작위 위기였던 케이스가 있다. 그러나 늦장 공지, 형식적 사과, 피해 규모 축소 시도가 반복되면서 공중의 판단은 바뀌었다.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의도에 대한 판단이 소급하여 형성된 것이다. 대응의 실패가 위기 성격 자체를 바꿔버린 경우다.

분류가 달라지면 처방이 달라진다

처방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진다. 타이레놀 케이스는 제4사분면의 이야기다. 한국 기업 위기의 다수는 제1사분면과 제2사분면의 이야기다. 이 두 세계에는 같은 처방이 통하지 않는다. 핵심은 위기유발의도라는 개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평시에도, 위기 국면에도, 이 개념은 작동한다.

X축의 책임은 때로 시간이 소멸시켜 준다. 사건은 잊히고 귀책은 희미해진다. 그러나 위기가 불타오르는 국면에서 살길은 단 하나다. 공중이 인식하는 위기유발의도를 최소한으로 인정받는 것. 그것이 타이레놀이 40년 뒤에도 교과서로 남아 있는 진짜 이유다. 맥닐은 귀책이 없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위기유발의도를 단 한 순간도 의심받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의 위기가 어느 사분면에 위치하는지를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 그리고 그 사분면에서 공중이 위기유발의도를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주시하는 것이다.

6월 302026 0 Responses

기업 경영진을 위한 위기관리 리터러시(Literacy)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리터러시(Literacy)라는 단어는 원래 ‘읽고 쓰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이 개념은 단순한 문해력을 훨씬 넘어섰다. 오늘날의 리터러시는 특정 영역의 언어와 맥락과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기반하여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실행하는 능력 전반을 의미한다. 금융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표현들이 이미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 경영진에게 리터러시는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의사결정의 질을 결정하는 근본 역량이다. 위기는 대부분 무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알면서도 제대로 읽지 못했거나, 읽었지만 잘못 해석했거나, 해석은 맞았지만 실행이 틀렸거나 하는 데서 온다. 리터러시의 결핍이 위기의 진짜 원인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 글에서는 이슈관리와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기업 경영진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리터러시를 정리해 본다.

첫째, 여론 리터러시: 정무감각이라는 이름의 나침반

여론 리터러시는 흔히 ‘정무감각’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회사의 사업적·비사업적 의사결정들을 여론의 시각에서 역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이자, 아직 일어나지 않은 반응을 미리 그려낼 수 있는 예측의 능력이다.

정무감각이 있는 경영자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 결정이 우리 회사 밖에서 어떻게 읽힐 것인가?” 정확한 예측이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던지는 습관, 그리고 여론이 이 의사결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대형 제조기업이 공장 자동화 투자를 결정했다.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이라는 경영 논리는 완벽하다. 그러나 그 결정의 이면에는 대규모 생산직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게 따라온다. 여론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라면 이 지점에서 멈춘다. ‘고용 불안’이라는 키워드가 어떻게 기사화되고, 어떻게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되며, 어떻게 지역사회와 노동계의 반응을 촉발하는지를 미리 그려본다. 그리고 그 그림에 맞게 소통 전략과 실행 순서를 설계한다.

여론 리터러시가 부족한 경영자는 여론과 마주하면 항상 흔들린다. 여론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첫 반응이 나올 때 당황하고, 당황한 상태에서 내린 두 번째 결정이 또 다른 논란을 만든다. 정무감각이 있는 기업은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다. 여론의 반응을 사전에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 파도를 머릿속에서 한 번 겪었기 때문에, 실제로 파도가 왔을 때는 쉽게 조타를 잃지는 않는다.

둘째, 언론 리터러시: 여론과 언론은 다르다

많은 경영자들이 여론과 언론을 혼동한다. 이 혼동이 치명적인 실수의 출발점이 된다. 여론은 사회 전반의 인식과 감정의 총체이고, 언론은 그것을 매개하는 제도적 메커니즘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같은 것이 아니다.

언론 리터러시는 언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기자와 매체의 시각과 행동 양식을 예측하는 능력이다. 언론에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그것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현장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이 있다. 기업이 내부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언론사 기자로부터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 담당 임원은 기자와의 ‘관계’를 믿고 비공개를 전제로 배경 설명을 한다. 그 배경 설명이 기사의 핵심 프레임이 되어 다음 날 지면에 오른다. 이것은 배신이 아니다. 언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언론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는 기자와의 관계를 인간적 신뢰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기자는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고, 그것이 그의 직업적 본능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한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못지않게,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명확하게 정해두는 것이 언론 리터러시의 실천이다.

또 하나. 나쁜 뉴스가 생겼을 때 언론을 피하려는 본능적 반응이 있다. 그러나 언론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는 안다. 침묵은 종종 유죄의 언어로 읽힌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에 대한 치밀한 전략적 판단이 언론 리터러시의 본질이다.

셋째, 내부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 안과 밖의 경계는 사라졌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오랫동안 ‘대내용’이라는 이름으로 안전하게 관리되는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직원들에게 하는 말, 사내 게시판에 올리는 공지, 임원 회의에서 나누는 대화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제 그 믿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내부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의 출발점은 내외부 커뮤니케이션 사이의 벽이 사라졌다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사내 메신저의 스크린샷이 소셜미디어에 올라가고, 임원의 전사 이메일이 언론에 전달되며,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직원의 내부 폭로가 기사화된다. “내 주변 모든 사람이 기자다”라는 말이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현장의 현실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리터러시는 단순히 ‘직원들에게 말을 조심하라’는 수준이 아니다. 밖에서 할 말과 안에서 할 말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기반으로, 무엇을 어떻게 직원들에게 커뮤니케이션해야 외부 커뮤니케이션까지 일관성 있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실행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보자. 회사가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대외 발표는 “사업 효율화와 미래 경쟁력 강화”라는 언어로 설계되었다. 그런데 같은 날 사내에서 팀장들에게는 “원가 절감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취지의 브리핑이 이루어졌다. 그 말은 며칠 안에 밖으로 나간다. 대외 메시지의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내부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는 직원들을 단순한 내부 구성원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들은 회사의 메시지를 외부 세계에 가장 먼저, 가장 광범위하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다. 그 사실을 전제로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이 리터러시의 실천이다.

넷째, 온라인 리터러시: 소셜미디어를 넘어 소셜 아젠다로

한국에서 소셜미디어의 원년은 대략 2010년으로 본다. 그로부터 16년여가 지났다. 초기에 기업들이 소셜미디어에 접근하는 방식은 주로 플랫폼 중심이었다.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관리하고,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소셜미디어 전략’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온라인 리터러시는 그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오늘날 기업이 집중해야 할 것은 소셜미디어 플랫폼 그 자체가 아니라 소셜 아젠다(Social Agenda)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어떤 의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확산되며, 어떻게 여론화되는가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현대적 온라인 리터러시의 핵심이다.

또한 이제 레거시 공중(언론 독자, 방송 시청자)과 소셜미디어 공중은 더 이상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둘은 하나로 합쳐졌다. 같은 사람이 아침에 종이신문을 읽고, 낮에 유튜브를 보며, 저녁에 커뮤니티에 댓글을 단다. 공중은 통합되었고, 기업의 모든 의사결정은 이 통합된 공중 앞에 동시에 놓인다.

온라인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가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이 의사결정은 소셜 공중에게 어떤 감정으로 읽힐 것인가?” “결국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이후 그들은 어떤 질문을 해 올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사전에 답을 준비해두는 것이 온라인 리터러시의 실천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식품기업이 원재료 원가 상승을 이유로 제품 용량을 소폭 줄였다. 가격은 그대로다. 마케팅팀은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크게 주목받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며칠 뒤 소비자 커뮤니티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적나라한 비교 사진이 올라온다. 그것이 주요 온라인 밈과 언론의 기사로 이어지고, 브랜드 신뢰도에 타격을 입는다. 소셜 아젠다의 메커니즘을 읽지 못한 결과다.

온라인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는 자사의 의사결정이 소셜 공중의 언어로 어떻게 번역될지를 미리 상상한다. 그리고 그 번역이 왜곡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맥락을 설계한다.

이상 네 가지 리터러시는 각각 독립된 능력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연결된 역량 체계다. 여론을 읽는 눈, 언론을 다루는 전략,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일관성, 소셜 아젠다에 대한 감각. 이 네 가지 모두 기업에게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있다. 전략, 투명성, 그리고 충분한 고민과 준비다.

이제 이전과 같이 전략 없이, 불투명하게, 고민과 준비 없이 움직이는 기업은 매일매일이 이슈이고 위기다. 경영진은 점점 더 당황스러운 상황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적절한 리터러시 없이는 적절한 의사결정도 불가능하다. 그 결과는 기업과 경영자 자신 모두를 최악의 상황으로 이끈다.

위기관리에서 이상향으로 삼는 개념이 있다. 세네카가 말한 에우티미아(Euthymia), 즉 평정(平靜)이다. 외부의 소란과 무관하게 내면의 중심을 잃지 않는 상태. 그러나 리터러시 없는 경영자는 절대 그 평정에 다다르지 못한다. 폭풍 속에서 지도도 없이 배를 몰듯, 매 순간 방향을 잃고 표류할 뿐이다.

리터러시는 지도다. 완벽한 지도는 없다. 그러나 지도를 가진 항해사와 지도 없이 바다에 나선 항해사의 결말은 다르다. 기업 경영진에게 리터러시란, 더 나은 항해술과 그 자신에 대한 확신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가장 실질적인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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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에 대한 스토아 철학자들의 조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10년 전, 필자가 스토아 철학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게 기업 위기관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철학 공부를 한다고 펼쳐 든 책이 대부분 스토아 철학 책이었다. 2000년도 더 된 고대 그리스·로마의 철학이, 지금 이 순간 쏟아지는 언론 보도와 SNS 여론, 규제기관의 조사와 소비자 불매운동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오히려 그 어떤 현대적 위기관리 이론보다 더 본질에 가깝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스토아 철학은 기원전 3세기, 철학자 제논이 아테네의 스토아 포이킬레라는 주랑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시작된 철학이다. 이 철학의 핵심은 단순하다.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며, 현명한 사람은 그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통제 가능한 것에만 에너지를 집중한다는 것이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으로 판단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덕스러운 행동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스토아 철학의 핵심이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네카, 크리시포스. 이들이 남긴 글과 사유는 지금도 경이로울 만큼 생생하게 살아있다.

위기관리 컨설턴트로서 필자가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있다. 위기가 터지면 경영진이 패닉 상태에 빠지고, 그 패닉이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며, 그 잘못된 결정이 위기를 더 키우는 악순환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조언만 제대로 따랐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가치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는 걸 보면서, 필자는 확신하게 됐다. 스토아 철학은 기업 위기관리의 가장 깊은 뿌리가 될 수 있다고.

스토아 철학자들의 여덟 가지 조언을 세 단계로 나눠 살펴보자. 위기가 오기 전에 갖춰야 할 것들, 위기가 터진 순간부터 수습까지 지켜야 할 것들, 그리고 위기가 끝난 후에도 멈추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첫 번째 조언: 위기는 예고 없이 오지 않는다

세네카는 이렇게 경고했다.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준비 없이 미래를 맞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늘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하고 대비하는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역경에 대한 사전 명상)을 강조했다.

위기 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면 설마가 아니었던 경우가 태반이다. 내부 제보가 있었고, 현장 실무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비슷한 사례가 경쟁사에서 먼저 터졌는데도 흘려보낸 경우. 위기의 전조는 대부분 존재했다. 다만 경영진이 불편해서, 바빠서, 설마 하는 마음에 외면했을 뿐이다. 세네카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당신은 가장 나쁜 상황을 충분히 상상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그 상상에 대비해 오늘 무언가를 하셨습니까?

두 번째 조언: 감정은 판단을 흐리고, 조직 전체를 흔든다

스토아 철학의 체계를 완성한 크리시포스는 감정의 위험성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분노, 공포, 과도한 낙관, 이 세 가지가 위기 상황에서 경영진의 판단을 가장 심각하게 왜곡한다고 했다. 그런데 크리시포스의 이 경고는 단순히 개인의 감정 절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리더의 감정 상태는 조직 전체로 즉각 전파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조직 차원의 위기관리 문제다.

위기가 터진 다음 날 아침, CEO의 첫 마디는 30분 안에 조직 전체로 퍼진다. “우리 망하는 거 아니야?”라는 한마디가 떨어지면 오전이 지나기 전에 “위에서도 답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말이 돌고, 대응팀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브리핑 도중 감정이 격해진 CEO가 내뱉은 한마디가 다음 날 헤드라인이 되고, 밤새 불안 속에서 내린 새벽 네 시의 결정이 오전에 번복되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한편으로는 밤새워 작성하고 법무 검토까지 마친 공식 입장문이 발표 직전 CEO의 감정 하나로 뒤집히는 일도 있다. “이 기자 예전부터 우리 회사 물어뜯으려 했잖아.” 그 순간부터 입장문에 공격적인 문장들이 추가됐고, 결국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

감정을 느끼는 것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판단과 행동만큼은 이성의 궤도 위에 올려놓는 것. 그것이 크리시포스가 말한 진정한 평온이며, 위기 앞에서 리더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전략적 자산이다. 그리고 이 평온은 위기가 터진 후에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위기 이전부터 꾸준히 단련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조언: 상황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판단이 문제다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다.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의 위기인데, 경영진이 “이건 회사 역사상 최악의 사태”라고 규정해 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 판단이 내려지면 실무자들은 우울한 시나리오만 보고하기 시작하고, 의사결정은 공포 위에서 이루어지며, 실제보다 훨씬 더 큰 위기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반대로 심각한 위기를 “이 정도는 곧 지나가겠지”라고 흘려버리는 경영진도 있다. 그 판단 역시 재앙의 씨앗이 된다. 위기 그 자체가 기업을 무너뜨리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위기에 대한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이 기업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네 번째 조언: 목적지 없는 배에는 어떤 바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그 다음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항구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

위기가 터지면 대응팀을 꾸리고, 긴급 회의를 열고, 보도자료를 쓰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가 이 위기를 통해 최종적으로 어디에 도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는 경영진은 생각보다 드물다. 목표가 없으니 전략도 없고, 오늘의 대응이 내일의 대응과 충돌하고, CEO 발언이 실무진 행동과 따로 논다. 위기관리의 출발점은 대응 속도가 아니라 대응 방향의 설정이다.

다섯 번째 조언: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라

방향을 바로잡았다면, 다음은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들은 우리 안에 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 밖에 있다.

위기 대응 회의실에서 경영진의 시선은 온통 밖을 향해 있다. “저 기자가 왜 저렇게 쓰는 거야”, “경쟁사가 이 기회에 우리를 흔들려는 거 아니야”. 한 시간짜리 회의에서 우리가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10분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머지는 전부 통제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분노와 불안이다. 그러는 사이 골든타임은 조용히 흘러간다. 경영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자기 회사가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이 원칙 하나만 지켜도 위기 대응 회의의 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여섯 번째 조언: 역할에 충실하라

에픽테토스는 모든 사람은 삶이라는 연극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그 역할에 충실한 것이 덕이라고 했다.

CEO가 직접 기자들과 통화하며 배경을 설명하는 사이, 홍보팀은 그 내용을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다. 법무팀은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는데 영업팀장은 고객사에 이미 사과 메일을 보낸 상태다. 재무팀이 보상 규모를 산정하기도 전에 홍보팀은 “신속히 보상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혼선들이 동시에 터지는 순간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초과하거나 회피하지 않는 것, 그것이 위기 대응 체계의 기본이다.

일곱 번째 조언: 명성보다 행동이 먼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좋은 평판을 얻으려 노력하지 말고, 평판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라.

피해자 지원은 아직 검토 중인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메시지가 먼저 나오고, 재발방지 시스템은 설계도 안 됐는데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이 앞선다. 처음 한두 번은 통할 수 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의 간극이 드러나는 순간, 신뢰는 위기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은 곳으로 추락한다. 실질적인 피해 복구와 진정성 있는 사과, 구체적인 재발방지 조치. 이것이 선행되지 않은 위기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역풍을 맞는다.

여덟 번째 조언: 위기 이후의 개선 없이는 위기관리도 없다

세네카는 말했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것, 그것이 철학의 목적이라고.

위기가 수습되면 기업들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대응팀은 해산되고, 모니터링은 종료되고, 임원들의 관심은 다음 분기 실적으로 이동한다. 위기에서 배워야 할 것들은 서랍 속 보고서 안에서 조용히 잠든다. 그렇게 2년, 3년이 지나면 비슷한 위기가 다시 터지고, 또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무엇이 취약했는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시스템과 문화를 실제로 바꾸는 것, 그것이 위기관리의 진짜 완성이다. 세네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같은 위기에 두 번 무너지는 기업은, 첫 번째 위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기업이라고.

스토아 철학자들의 이 조언들은 어느 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00여 년간 동서양의 수많은 리더들이 이들의 사유에서 위기를 버텨낼 힘을 얻었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CEO들 중에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책상에 두고 읽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것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위기관리 현장에서 일한 필자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의 기업 경영진들도 오늘부터 스토아 철학을 가까이하시기 바란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는 것에서 시작해, 조직의 위기 대응 역량을 한 차원 높이는 데까지, 스토아 철학은 분명 좋은 교사가 되어줄 것이다. 위기는 반드시 다시 온다. 그때 당신 곁에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세네카가 있다면, 그 위기의 무게가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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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진은 위기 시 왜 ‘소통 강박’에 빠지나?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이 부정 이슈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경영진이 가장 먼저 취하는 행동을 상기해 보자. 대개의 경우 홍보팀을 긴급 소집해 사과문을 다듬거나, 언론 보도의 흐름을 전환하기 위한 전방위적 커뮤니케이션을 지시하는 것이 그 첫 수순이다. 그러나 위기관리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는 이러한 필사적 노력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귀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소통 강박(Communication Obsession)’이라 정의한다.

소통 강박이란, 기업이 위기 해결을 위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상황관리(Action)를 실행하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수단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병적 증상을 말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발현된다. 첫째는 ‘강박적 소통 폭주’로, 실효적 해결책이 뒷받침되지 않은 메시지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전시 효과에 집착하는 형태다. 둘째는 ‘전략 없는 마비’로, 냉철한 전략적 판단 대신 공포와 무력감에 사로잡혀 의사결정 자체를 유예해 버리는 상태다.

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경험이 풍부한 커뮤니케이션 부서장이나 임원들은 종종 “대응을 자제하자” 혹은 “대응할 실익이 없다”는 조언을 건넨다. 외부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판단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사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적 목적은 문제 해결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로 인한 데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에 있다. 내외부 베테랑들이 대응 자제를 권고하는 것은, 해당 사안이 아직 임계 수준의 위기가 아니거나, 대응의 시점과 대상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경험적 판단에 근거한다.

그러나 소통 강박에 사로잡힌 경영진은 이러한 조언을 실무진의 무능이나 무관심, 혹은 책임 회피로 곡해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불이 났는데 가만히 있자는 것이냐”는 식의 경영진발(發) 강박은 결국 무리한 소통 시도로 이어진다. 대응이 불필요한 작은 불씨에 소통의 연료를 무차별적으로 투입해 문제를 오히려 키우는, 이른바 ‘미필적 실수’가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미국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선구자 아서 페이지(Arthur W. Page)는 “PR이란 90%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고, 10%는 그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 명제는 위기관리 현장에서도 변함없는 진리로 통용된다. 성공적인 전략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실질적인 상황관리(행동, 개선, 보상)가 전제되거나 병행될 때에만 그 가치를 발휘한다.

90%에 해당하는 실질적 조치 없이 10%의 커뮤니케이션에만 매달리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다. 경영진은 소통의 기술을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 조직이 과연 90%의 ‘옳은 일’을 실행하고 있는지, 즉, 상황을 실질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를 먼저 자문해야 한다. 9:1의 균형이 무너진 소통은 자칫 기만에 가까운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소통 강박에 빠지는 일곱 가지 원인

위기관리 현장에서 관찰되는 경영진의 소통 강박 증상은 단순한 개인적 실수가 아니라, 다음과 같이 고착화된 심리적 오류와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다.

첫째. 소통은 상황관리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는 가성비 함정

“지금 당장 사과문 올리고 보도자료 배포해. 비용이 드는 보상안은 나중에 검토하고, 일단 말로라도 사태를 진정시켜야 하지 않겠어?”

경영진에게 리콜, 보상, 시스템 전면 개편과 같은 ‘상황관리’는 막대한 비용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고통스러운 결단이다. 반면, 메시지는 즉각 작성해 배포할 수 있고 비용도 미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체 없는 소통은 대중에게 ‘언젠가는 갚아야 할 부채’로 차곡차곡 누적된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언어는 결국 더 큰 이자를 얹어 상환해야 하는 치명적 위기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경영진은 간과한다.

둘째. 무대응은 곧 패배라는 공포와 통제력 과시 욕구

“가만히 있을 거야? 우리가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 아무것도 안 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꼴밖에 안 돼.”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무능해 보인다는 공포가 경영진을 지배한다. 특히 위기 국면에서 자신의 통제력을 내외부에 가시화하려는 리더십 증명 욕구가 강박적 지시로 이어진다. ‘전략적 인내’와 ‘무능한 방치’를 구별하지 못한다. 의미 없는 활동량으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 하지만, 이는 전술적 목적도 없이 제한된 자원만 소진하는 패착에 불과하다.

셋째. 기술적 해결주의와 프레임 전환에 대한 맹신

“우리에게 유리한 기사들로 포털을 채워. 댓글 여론만 잡으면 이번 고비는 넘길 수 있어. 기술적으로 어떻게든 프레임을 바꿔봐.”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알고리즘 제어나 검색 결과 정화, 혹은 고도화된 언론 플레이가 본질적 결함을 은폐할 수 있다고 믿는 오류다. 구조적 결함이라는 몸통은 방치한 채 여론의 흐름이라는 깃털에만 에너지를 쏟는 셈이다. 오늘날의 대중은 메시지의 기교보다 행위의 일관성과 진정성을 먼저 읽어낸다는 사실을 망각한 지시다.

넷째. 이해관계자를 공감 대신 제압 대상으로 간주하는 태도

“저들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집단이야. 대화해봤자 소용없어. 법무팀과 협의해서 우리 논리로 밀어붙여. 입도 못 열게 만들어.”

피해자나 여론을 소통을 통한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무력화해야 할 ‘장애물’로 간주할 때 소통 강박은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전략 없는 마비’ 증상은 대중에게 오만과 폭력으로 읽히며, 내부 고발이나 추가 폭로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어 위기를 전이·확산시킨다.

다섯째. 내부 보고 체계의 왜곡과 ‘보고를 위한 소통’의 악순환

“사과문 조회수가 얼마야? 기사는 몇 건이나 나갔어? 수치가 부족해. 더 적극적으로 우리 입장을 뿌려!”

위기 상황에서 실무진은 경영진으로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소통 활동을 보고용 실적으로 활용한다. 경영진은 이 수치에 안도하며 더욱 강도 높은 소통을 주문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로 문제가 얼마나 해결되었는지가 아니라, 메시지가 얼마나 많이 노출되었는지가 성공의 척도가 되는 전형적인 ‘활동성 함정’에 빠진 상태다.

여섯째. 한국적 망각 주기에 대한 요행과 전략 없는 마비

“일단 소나기만 피하자. 담당자 없다고 하고 시간을 끌어봐. 며칠 지나면 다른 이슈가 터져서 다들 잊어버릴 거야.”

과거의 위기가 시간의 흐름 속에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던 경험은 나쁜 학습 효과를 낳는다. 이는 전략적 인내가 아닌, 무책임한 방치로서의 침묵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기록은 영구적이며, 이러한 마비 상태는 훗날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강박적 폭주’를 불러오는 시한폭탄으로 작동한다.

일곱째. 전략적 현실주의의 부재와 감정적 호소에 대한 과의존

“사과문을 더 절절하게 써! 진정성이 느껴져야 해. 눈물 한 방울 쏙 빼낼 수 있다면 여론도 돌아서지 않겠어?”

법적 배상 규모를 냉정하게 산정하고 비즈니스 안정성을 검토하기보다, 감성적 호소로 여론을 전환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다. 실질적 행동이 수반되지 않은 감정적 호소는 대중에게 기만으로 비치며, 기업의 도덕적 신뢰를 앞당겨 소진시킨다. 위기관리 전략가라면 사과문의 수사(修辭)를 다듬기 전에, 보상안의 구체성부터 먼저 점검해야 한다.

전략의 부재가 강박을 낳는다

결론적으로, 경영진이 경험하는 이 모든 소통 강박의 증상들은 단 하나의 근본 원인에서 기인한다. 바로 ‘전략과 준비의 부재’다. 사전에 위기를 진단·분석해 구체적인 대응 시나리오를 갖추지 못한 기업은, 위기가 실제로 닥치는 순간 본능적 공포에 사로잡힌다. 준비되지 않은 경영진에게 소통은 가장 달콤한 도피처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감옥이 된다.

소통 강박은 전략 보유 여부에 따른 조직적 병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성공적인 전략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상황관리라는 실체가 수반되어야 한다. 90%의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소통은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 평시의 안일함이 위기 시의 강박을 낳고, 그 강박은 다시 실패한 소통으로 이어져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소통 강박이 매번의 위기에서 아무런 성찰 없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실수를 넘어 기업의 DNA 자체를 파괴하는 조직적 재앙으로 진화할 수 있다.

경영진 스스로 자문해보기를 권한다. 우리 기업은 지금 소통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소통 강박을 앓고 있는가? 소통 강박에서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소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소통의 기술을 연마하기 전에, 위기 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상황관리 전략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

미리 준비된 전략을 토대로 위기 시 조직의 의사결정과 실행을 철저히 통제·관리해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위기관리의 성공은 얼마나 화려하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아서 페이지의 조언처럼 얼마나 충실하게 90%의 ‘옳은 행동’을 선행하고 그 결과를 10%의 정교한 소통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강박이라는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략이라는 강력한 치료약을 손에 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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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2026 0 Responses

위기관리 매뉴얼이 쓸모 없는 이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얼마 전 클라이언트와 식사하던 중 홍보팀장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희도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관리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위기가 발생하면 매뉴얼을 따르기 보다는, 어떻게든 관련 담당자들이 모여서 대응하게 되더군요.” 이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흔히 말하듯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상황이 떠올라, 그런 현실적인 모습에 일견 공감이 갔다.

예전 글에서도 몇 번 강조했지만, 위기관리 매뉴얼은 없어도 문제고 있어도 문제인 계륵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매뉴얼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위기관리 매뉴얼도 없이 대응했다”거나 “우리는 왜 매뉴얼조차 없었나?” 같은 사후 비판이 이어진다. 여기서 ‘보유’라는 표현에 주목하기 바란다. ‘보유’가 곧 ‘활용’이나 ‘참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계륵으로서의 위기관리 매뉴얼

반면, 매뉴얼을 보유한 상황에서 위기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 많은 사람은 “매뉴얼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거나 “매뉴얼이 낡아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는 매뉴얼을 그대로 따랐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을 수도 있는데, 비판자들은 마치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한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한 번 만든 매뉴얼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도 고역이다. 사내 직제 개편은 수시로 일어나고, 위기관리 팀원도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뀐다. 새로 온 인력들은 매뉴얼을 이해하지 못할 뿐 더러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홍보실은 물론 다른 유관 부서를 통틀어 매뉴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없다. 관리 책임이 있는 홍보 임원도 점차 매뉴얼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된다. 실무 담당자가 업데이트 업무를 맡아보지만, 몇 개월 지나 다시 들쳐보면 마치 고서적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매뉴얼은 생명력을 잃는다. 그래서 위기관리 매뉴얼의 유효 기간은 제작 후 딱 6개월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위기관리 매뉴얼을 보여주세요”

클라이언트사에 이런 요청을 할 때가 있다. 컨설턴트들이 매뉴얼 교정이나 개선 작업을 하기 전 기존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서다. 이럴 때 아주 당당하게 매뉴얼을 내놓으며 자신감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여러 이유를 대며 해당 매뉴얼이 별 쓸모 없었음을 강조할 뿐이다. 기존 매뉴얼을 신속하게 전달해 주는 경우는 담당자조차 평소에 그 매뉴얼을 전혀 들여다보지 않은 경우다.

“사실 쓸모는 없는데, 윗분들이 보고를 원하셔서”

홍보실뿐 아니라 다른 위기관리 부서에서도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을 품는다. ‘어차피 실무선에서 대응 가능한데 매뉴얼이 무슨 소용인가’ 생각하는 부서도 있다. 단지 매뉴얼이 윗분들에게 “우리도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위기 시 매뉴얼에 따라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는 식의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도구로 쓰인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핵심은 구성원 대부분이 매뉴얼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잘 되어 있는 곳은 어디인가?”

다른 기업도 상황이 이토록 불만족스러운지 묻는 질문이다. 혹은 어딘가에 ‘진짜 매뉴얼’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수많은 기업의 매뉴얼을 접해본 경험으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매뉴얼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여 전 조직이 즉각 활용할 수 있게 관리하는 조직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비슷한 고민과 번뇌를 겪으며, 일단 ‘보유’하는 데 의미를 둔다.

“홍보실만이라도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을 가지는 건 어떨까?”

모든 매뉴얼은 수명이 짧고 현실을 즉각 반영하지 못한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매뉴얼에 제시된 시나리오 그대로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 희박하며, 설령 그렇다 해도 매뉴얼 문구를 그대로 복사해서 소통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상황별로 할 일(Do)과 하지 말아야 할 일(Don’t)을 정리하자는 의견도 나오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홍보 업무 매뉴얼과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에는 답이 궁해진다. 모든 상황을 예측해 메시지와 근거를 완벽히 갖추겠다는 생각은 대개 실패로 끝난다.

“위기관리팀 차원에서 계속 정리하고 있다”

사내 위기관리팀 구성원들이 스스로 할 일과 대응 방식을 정리하려고 노력한다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토론을 거쳐 현실적인 프로세스를 만든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리한 프로세스가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생각과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야 할까? 그렇다면 그간의 논의는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누구 마음대로 이렇게 책임과 역할을 나누었나?”

새 매뉴얼을 보고 유관 부서들이 가장 흔히 내놓는 피드백이다. 예를 들어 매뉴얼에 ‘위기 시 특정 공간을 확보하고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내용이 있고, 설치 책임을 총무팀으로 지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소집 명령 하달 후 1~3시간 내에 모든 설비를 갖춰야 한다’는 구절을 본 총무팀장의 반응은 과연 어떠할까?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산은? 누가? 어떻게? 이런 질문들이 이어진다.

“위기관리 매뉴얼 가져와 봐!”

위기가 발생해 대응 회의가 시작되었다. 어떤 임원은 매뉴얼을 팔에 끼고 회의에 참석한다는데, 그렇게 회의실에 들어갔다고 치자. 이때 회장님께서 매뉴얼을 보자고 하신다. 수백 페이지 분량의 매뉴얼과 부록을 쌓아 놓으면 “이 중 어떤 게 매뉴얼인가?”, “어디부터 봐야 하지?”, “지금 상황은 어디에 적혀 있나?” 같은 질문이 쏟아진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심각한 것이다. 위기 발생 후에야 매뉴얼을 읽기 시작하는 것은, 비행기가 추락하는 중에 기장이 매뉴얼을 처음 펼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안 만든다”

평상시에는 이 주장이 상당히 세련되어 보인다. 형식보다 실질적인 역량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응 훈련을 하고 사례를 공유하며 역량 강화에 힘쓰는 모습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런 멋진 모습도 위기가 터지는 순간 사라지곤 한다. 준비한 대로 잘 움직여도 누군가 “매뉴얼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이는 건가?”라고 한마디 던지면 분위기는 급변한다.

“매뉴얼을 핵심만 담아 간단하게 만들면 어떨까?”

일본 모 대형 백화점 매뉴얼은 A4 3장이라거나, 미국 대기업 CEO는 연락처 위주의 핵심 페이지를 품고 다닌다는 식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매뉴얼이 굳이 수천 페이지일 필요가 있을까? 모든 변수를 담는 게 가능할까? 부서별 역할을 간단히 명기하는 형태 등 다양한 실무적 논의가 계속된다. 그러나 문제는 의사결정자 회의에서 발생한다. “이렇게 대충 만든 매뉴얼로 위기관리가 되나?”라는 피드백이 나오면 핵심만 담았다는 해명도 무색해진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건가?”

이 질문은 매뉴얼 관련 회의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대기업 것을 베껴도, 전문가들이 수개월 고생해서 만들어도 말은 끊이지 않는다. 사내에서 만든 것은 전문가 검증을 받아오라 하고, 두껍게 만들면 누가 보느냐고 하며, 얇게 만들면 부실하다고 한다. 예전 것을 유지하면 낡았다고 하고, 업데이트를 하려 하면 새로 만드는 게 낫다는 의견이 나온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묘안은 없다. 어떤 홍보 임원은 농담조로 “홍보실이 위기관리를 전담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뜨거운 감자를 계속 쥐고 있어 봐야 득 될 게 없다는 뜻이다.

자사에 맞는 매뉴얼이 최고

어렵지만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면, 반드시 ‘자사에 맞는’ 매뉴얼을 만들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사에 맞는다는 것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의도와 의지에 기반한다는 의미다. 그들에게 맞는 매뉴얼이 좋은 매뉴얼이다.

또한 한 번에 완성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핵심 버전을 먼저 만들고, 피드백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여기에서도 계속이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알려져야 사랑받는다

그와 함께 중요한 것은 제작과 업데이트 과정에서 위기관리팀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는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외국 속담이 있다. 매뉴얼의 내용을 구성원에게 알리고, 이해시키고,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노력이 쌓일 때 비로소 그 매뉴얼은 조직 내에서 사랑받고 생명력을 얻게 된다.

현재 자사의 매뉴얼에 문제가 느껴진다면, 이러한 기본적인 노력이 생략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결국 위기관리 매뉴얼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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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대중이 가지는 위기관리에 대한 오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언론사 기자들의 경우에도 특정 기업에 위기가 발생하면 자기 나름의 취재를 기반으로 그 회사의 위기관리 방식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의견들의 대부분은 해당 기업 홍보실의 대응 방식이나 홍보실 핵심 인력에 대한 뒷담화, 혹은 대표나 일부 고위 임원으로부터 전해 들은 단편적인 내부 정보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누가 보아도 뻔한 해결책을 실행하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업은 많다. 전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비치는 기업도 꽤 보인다. 심지어 큰 위기가 발생했는데도 기자가 보기에 별로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업도 있다고 한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더 혼나 봐야 한다”, “개념 없이 대행사만 보내서 기사에 대해 하소연만 하더라” 등등, 자신이 경험한 단편적인 경치를 감상하며 해당 기업의 위기관리에 대해 사적인 감상평을 이야기하곤 한다.

기업의 위기관리 현장 내부 깊숙이 접근해 본 경험이 많지 않은 일반인들이 주로 가지는 기업과 위기관리에 대한 공통적인 오해를 몇 가지 꼽아 보려 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실제로는 내부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현실감 있게 그려 보고자 한다.

위기인데도 기업은 듣지 않는다?

기업에게 위기 시 리스닝 하라는 조언을 하는 분들이 많다. 공중과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잘 새겨들으면 거기에 위기관리의 해답이 있는데, 그걸 잘 못 한다고 핀잔을 준다. 일부 화 난 공중은 위기가 발생하니까 기업은 아예 입과 귀를 막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한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천만의 말씀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일단 위기가 발생되면 평시보다 수 십에서 수백 배 더 많이 보고 듣는다. 모니터링의 영역과 빈도를 급격하게 늘린다. 자사에 대한 부정 기사가 수백 개라 해도, 그 기사 하나하나를 밑줄 치며 읽으며 뉘앙스를 해석한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상에서 부유하는 엄청난 목소리들을 정리 분석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이해관계자와 영향력자들의 전화를 받으며 온도를 감지한다. 위기 시에 눈이나 귀를 막고 있는 기업은 없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차가 시속 100킬로 이상으로 달리고 있는데,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운전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을 잘 모른다?

언론을 보든, 국회에 나가 보든, 사회 전문가들의 주장을 찾아보든, 심지어 주부나 노인들이 써 놓은 소셜미디어 포스팅을 봐도 해답이 뻔해 보이는데 기업만 해답을 모르는 것 같다. 해법을 찾지 못하니 계속해서 지지부진한 대응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직접 만나 그 회사 핵심 임원에게 조언했는데도 감감무소식인 상황을 보니, 답을 줘도 답인 줄 모르나?

오히려 반대다.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그 위기관리 주체인 기업이 아마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해답을 알아도 일반인들보다 훨씬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그 해답이라는 것을 기업의 최고의사결정자가 해답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일한 해답이 아닐 수도 있으니, 다른 해답을 찾아보라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즉, 그 최고의사결정자는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해답이 그냥 ‘싫은 것’이다. 그 뿐이다. 그 회사의 임직원들은 최고의사결정자가 좋아할 만한 또 다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위기관리에 ‘위’자도 모르는 것 같다?

그 기업이 위기관리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는 평가도 많다. 내부적으로 봐도 위기관리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홍보실이나 핵심 임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중구난방이니 아무래도 전문가가 필요할 것 같다. 갈피를 못 잡고 개념이 약해 보이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 또한 오해다. 위기관리는 기업이 상당 수준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어떻게 든 움직여 해결 방안을 만들려고 하는 아주 진지한 행위다.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기업은 더 많이, 다양하게, 그리고 자주 움직이며 위기관리를 수행한다. 수면 위에 고요히 떠 있는 백조처럼 보이지만, 그 발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방향을 튼다. 누군가 내부에서 중심(Anchoring)을 잡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누군가는 항상 존재한다. 그 누군가에 의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할 수 있는 대응을 불철주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이미 잘 알고 있다.

해야 할 것은 안 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한다?

대대적으로 국민 앞에 나와서 사과하라는 여론이 많은데, 이상하게 그 회사는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광고 협찬 딜에 전력을 쏟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이 그런 식으로 해결될 건 아닌 것 같은데, 그 회사 고위 임원들은 언론사 데스크를 연이어 만나며 사정한다. 국회에서도 밤을 새우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변호사들과 규제기관 담당자 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해야 할 건 안 하고 엉뚱한 짓을 하는 걸 보니 위기관리를 잘 못 하는 것 아닌가?

아니다. 나름대로 자신들의 조작적 정의에 기반한 위기관리 계획을 성실히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해야 할 일에 대한 정의는 그 위기를 바라보는 주체가 누구인 가에 따라 다양하게 나뉠 수 있다. 기업 측에서는 자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대응이 바로 해야 할 일이라고 굳게 믿는다. 일단 실행이 적극적으로 되고 있다면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지가 다분히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기업 차원의 지원도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 해야 할 일이란 말인가? 단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솔직히 실무자도 그런 대응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것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하는 것이다.

우선순위나 타겟에 대한 생각이 없나?

그 기업의 위기관리를 보면 두서 없어 보인다. 주요 언론에서 다룬 부정보도에 대해서는 감내하면서, 온라인 소형 매체의 부정 기사에 대해서는 언중위에 제소하거나 기자 대상으로 내용증명을 보낸다. 여기저기에서 밀어내기나 물타기 방식으로 여론 희석을 시도하는데, 언론 기사는 계속 쏟아지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형국으로 보인다. 뭐가 중요하고 시급한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아닌가?

비슷한 현실이지만, 기업 내부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온라인 일부 매체에 대한 강력한 대응은 내부에서 신중히 결정된 대응일 뿐이다. 여러 사후 효과를 기대하고 변호사들을 대거 투입해 봉쇄 활동을 하는 것뿐이다. 그 일 때문에 다른 대응을 못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밀어내기나 물타기가 별 효과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최고의사결정자 그룹이 매시간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모니터링하는데, 그분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덜 띈다면 그것 만으로도 성과는 있는 셈이다. 기업이 하는 모든 실행은 최고의사결정자에 의한, 그를 위한, 그의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기업은 그런 위기관리를 일관되게 수행하는 것이다.

듣다 보니 무섭다. 수면 하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어떤 매체를 보니 열심히 그 회사를 취재하다가 갑자기 취재를 접었다. 부정 기사가 갑자기 사라지고, 주목받았던 폭로자도, 그가 올린 온라인 포스팅도 함께 사라졌다. 정치권도 갑자기 조용해졌다. 다른 이슈가 터져 주목을 덜 하는 건지 이제 별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대체 그 기업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걸까? 로비와 대관, 언론과 NGO 쪽에 막대한 예산을 쓴다더니 그 효과가 나타나는 걸까?

뭐 그런 경우도 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냥 상황이 그렇게 되어 버린 경우가 더 많다. 취재를 스스로 접은 매체에 대해 회사가 접촉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냥 취재하다 보니 기삿거리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 사라진 폭로자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자기 개인적인 어떤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 각종 대외 관계 관리 예산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니 이번 위기관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외부에서는 위기관리 하는 기업을 딱 두 가지로 보는 듯하다. 무능력자 또는 슈퍼맨. 즉, 기업의 실제 모습은 잘 모른 채 하는 단순한 감상평이라는 의미다.

그럼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만 따르면 위기관리인가?

앞에서 이야기한 실제 상황을 들어보면, 기업 구성원들은 모두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부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부 조언이나 상황의 맥락, 타겟과 우선순위 전략이 어떠하든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과 선호가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위기관리 원칙이나 이론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현실 같다. 이론적으로는 리더의 결단과 철학, 원칙과 가치를 중심으로 위기를 해결하는 것을 지향하지만, 실무자들이 단순히 리더의 의중에만 따른다면 그것은 해결보다 미봉이나 모면에 그치지 않겠는가?

맞다. 그러나 먼저 중요한 것은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과 선호다. 그것이 곧 그 기업의 실질적인 위기관리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 전략이 제대로 실행된다면 그 위기관리는 절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 물론 그 실행들이 적절한 효과까지 생산해 낸다면 더욱 성공적일 것이다. 최고의사결정자가 원칙과 철학을 가지고 결단을 내리며, 여론의 맥락을 읽는 정무 감각과 과감한 재발 방지 의지를 갖추고 있다면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조직적인 위기관리 체계와 최고의사결정자의 개인적 판단은 현실에서 서로 얽혀 있다. 우선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이 그대로 실행에 옮겨지는가, 그리고 그것이 이상적인 결과를 생산할 수 있는가는 조직 체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이상과 같은 생각들이 일반인들이 가지는 기업 위기관리에 대한 공통적인 오해들이다. 모든 기업은 위기관리를 한다. 물론 잘하는 것과 그냥 하는 것은 다른 의미이지만, 일단은 열심히 한다. 해법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 해법을 내부에서 수용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최고의사결정자가 선호하는 해법을 찾았다면, 그 실행에 있어서 대부분의 기업은 최선을 다한다. 그 방식에 대해 외부에서 비판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대응의 실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운칠기삼이라고 하듯, 운이 좋아서 위기가 빨리 해결되는 기업도 꽤 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이 일관되게 반영된 위기관리에 최선을 다했다면, 해당 위기관리팀은 사후에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 외의 다른 평가나 비판은 현장 실무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주제다. 일단 임원과 직원들이 부정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 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성공인 셈이다.

이처럼 이론적이고 당위적인 위기관리와 실제 현장의 위기관리는 다른 점이 많다. 정확하게는 ‘현실적인 부분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현실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그 위에 형성되는 이론과 당위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반대로 이론과 당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닐 텐데, 현실만 강조하며 등을 돌리는 위기관리란 또 어떤 의미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균형을 잡아 이루어 내야 좋은 위기관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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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公的) 커뮤니케이션이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영어로 프레스 릴리즈(press release)로 부르는 보도자료는, 다른 표현으로 오피셜 스테이트먼트(official statement)라고도 한다. 우리가 흔히 공적 문서, 공식 행사, 공적 지위를 이야기할 때 그 공적인(公的, official) 메시지를 의미한다. 이는 누구에게나 공적으로 확인된 정확한 메시지라고 이해된다.

따라서 기업은 공적 메시지인 보도자료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공을 들이고, 정확성을 점검한다. 딱히 보도자료에 한하지 않아도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기업과 기업 주요 구성원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공적 커뮤니케이션을 연습하는 과정인 미디어트레이닝에서도 경영진의 모든 메시지는 공적인 것이다. 기자 질문에서 “대표님의 개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같은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훈련된 기업 대표는 “제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릴 주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라 답하거나 또는 기업의 기존 공적 메시지로 답변을 재반복 한다.

흥미로운 것은 분명히 ‘개인의 의견은 말하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이후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은 대표 개인의 생각과 느낌에 기반해 있는 경우다. 대표의 개인적 생각을 답변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 기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공적 커뮤니케이션인가? 사적 커뮤니케이션인가? 어떻게 봐야 할까?

지금도 수많은 공직자들과 기업 경영진들은 자신이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공적인 것인지, 사적인 것인지에 대한 때때로 혼란을 느낀다. 국정 홍보를 위해 인기 유투브 채널에 출연한 고위공직자의 메시지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업 대표가 기자들과의 저녁자리에서 부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해 다음날 지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생중계되는 기업의 사과 기자회견에서 실무임원들에게 하는 사적 메시지들이 그대로 방송되기도 한다. 대체 공적 메시지와 사적 메시지는 어떻게 달라야 할까?

기업과 조직의 리더들이 혼동할 수 있는 공적 커뮤니케이션과 사적 커뮤니케이션의 분별법을 정리해 보자. 이에 대한 이해가 정확할수록 개인적으로는 보신(保身)과 개인적 명예를 유지할 수 있다. 기업 차원에서는 구성원들에 의한 불필요한 논란과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된다. 공적 커뮤니케이션과 사적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첫째, 누구에게 커뮤니케이션 하는가?

아주 간단한 기준이다. 공적인 대상에게 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공적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직원, 거래처, 사업지역의 주민, 관공서, 국회, 규제기관, NGO, 언론 등 공적인 성격에 기반해 기업에 관련되어 있는 대상에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무조건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다.

모 언론사 데스크가 모 기업 CEO의 대학 동창이고 아주 친한 사이라면? 그 CEO가 언론사 데스크에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그럼 사적 커뮤니케이션일까? 그 다음 기준으로 넘어가자.

둘째, 주제가 무엇인가?

대화 주제가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기업이나 조직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다. 대학동창인 언론사 데스크에게 CEO 개인의 골프 스코어와 지난 라운딩에 대한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견 사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의 실적과 자신의 임기에 대한 하소연을 하는 것은 공적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 된다. 정말 친한 사람에게 그런 허심탄회한 말도 못하냐고 불평하는 경영진들도 많다. 현직에 있을 때는 조심하는 것이 좋다. 최소한 자신을 위해서라도.

셋째, 어떤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 하는가?

당연히 공적 상황에서 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다. 공장 완공식에서 직원들에게 하는 CEO의 축사, 타운홀에서 직원들에게 새로운 사업 구조에 대하여 하는 설명과 질의응답, 자기 회사를 담당하고 있는 언론사 기자와 하는 인터뷰 같은 것들은 당연히 모두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러면 회식에서 여러 부서 MZ직원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는 CEO의 커뮤니케이션은 공적 커뮤니케이션인가? 사적 커뮤니케이션인가? 일과에서 벗어나 업무에 대해서는 이야기 말자고 했고, CEO가 법인 카드가 아닌 개인 카드로 직원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술을 사주고 있는데? 하지만, 여기에서도 CEO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과 메시지는 모두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다.

넷째,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하는가?

커뮤니케이션하며 완전히 틀린 말을 하는 기업 경영진은 드물다. 그 중에서 못 할 말을 함부로 하는 경영진도 흔치 않다. 대부분이 자신의 직급과 분야에 맞는 ‘충분히 할 수도 있는 말’을 한다. 그럼에도 그 말들이 문제가 되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어 버리면, 대부분의 경영진은 “내가 틀린 말 했나?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나?” 같은 항변을 한다.

문제는 틀린 말이나 못 할 말을 해서 발생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락상 적절하지 않은 말을 했으니 문제가 되고 커진 것이다. 경영자 자신은 사적 대상과 주제 그리고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이야기했는데도, 맥락상 민감한 내용이라 문제가 되었고 이내 사회적 논란으로 커졌다면? 이는 어찌 보면 결과론 적일수도 있지만, 그 경영자는 잘못된 공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셈이 된다. ‘아닙니다. 그것은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이었습니다.’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수준이라면 공적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실수였던 것이다.

다섯째, 자신이 심각하게 책임져야 할 수도 있나?

자신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추후 문제나 논란이 되었을 때, 자신이 심각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라 생각하고 조심해야 한다. 가끔 언론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문제 발언을 한 기업 임원은 대부분 기자에게 ‘죄송한데, 그 내용은 기사 쓰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또는 “만약 꼭 기사화해야 하겠다면 제 이름은 꼭 빼 주셨으면 합니다.”같은 요청을 한다.

이는 자기 자신이 자신의 말로 심각한 책임을 질 수도 있겠다는 예상이 가능 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예상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해보자는 것이다.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란 그런 품이 들어야 하는 것이다.

여섯째, 회사의 메시지인가? 내 메시지인가?

이 또한 아주 간단한 기준이다. 기업 경영진이 어떤 상황에서 라도 커뮤니케이션 할 때 자신의 메시지가 회사의 메시지라면 이는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다. 회사 내부에서 합의된 공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분명히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다.

반면, 그런 상황에서 일부 사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면? 이런 상황은 어떻게 봐야 할까? 기업 경영진이 전달하는 모든 메시지는 공적 메시지로 이해된다고 했다. 사적인 메시지라고 해도 듣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적인 메시지로 이해한다. 이후 부가적인 반향과 반응, 확산 등도 공적 메시지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기업 경영진에게 개인의 사적인 메시지는 극히 제한된다. 기억하자.

마지막, 이런 기준들보다 좀더 단순한 기준은?

있다. 조직이나 기업에서 공적인 위치에 있는 분들은 그 자리에 오른 직후부터 자신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생각을 하면 된다. 자신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회사와 구성원 그리고 이해관계자들과 심지어 공중에게도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보는 것이다.

사기업 대표에게도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너무 가혹하지 않나 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잣대가 없어 구설수를 일으키고, 사회적 논란을 만들고, 결과적으로 그 중요한 자리를 떠나게 된 여러 선배 사례들을 기억해 보자. 반대로 취임부터 퇴임 때까지 자신의 모든 행동과 말 한마디 한마디를 잘 관리하며 공적 커뮤니케이션만 하다 명예로운 성과를 남긴 선배들도 기억해 보자. 어떤 결과가 자신에게 더 나은 것인가는 자명하다.

예전 전직 모 부총리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고위 공직자의 모든 발언은 연출되어야 한다.” 이는 기업 경영진에게도 똑 같이 적용된다. 연출하며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부자연스럽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진정성이 없으니 소통이 될 수 있냐고 묻는 분도 있다.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해야 겨우 서로 이해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그럼에도 핵심은 백공일과(百功一過)다. ‘백 가지 잘한 일(功) 중 한 가지 잘못(過)’이라는 뜻으로, 주로 잘한 일이 많더라도 한 번의 실수나 잘못이 전체를 무효로 만들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백공일과다. 기업과 조직의 리더로서 백공(百功)으로만 머무르려면 공적 커뮤니케이션에만 신중히 집중하자. 사적 커뮤니케이션은 아예 없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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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2026 0 Responses

실익(實益) 속에 전략 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고문에서 여러 번 반복해 강조했던 내용 중 하나가 전략과 실익의 관계다. 전략이 실익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시각 보다는 실익이 전략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현장에서는 좀 더 현실적이다. 실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전략과 실행은 정당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종종 “A라는 실행과 커뮤니케이션은 왜?”라는 질문을 한다.

이슈나 위기 시 주체가 어떤 실익을 얻기 위해 그 특정 실행과 커뮤니케이션을 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이 정확하게 나오는 경우에는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했다고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 실행과 커뮤니케이션에는 전략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질문해 보면 상당수 경우에 정확한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실익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구성원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서 실익이라는 것이 다르게 나뉘기도 한다. 특정 실행을 해서 실익을 얻을 것이 확실하다면, 그것은 전략적인 것이다. 특정 실행을 해도 별 실익이 없고, 손해도 없을 것이 확실하다면, 그 경우는 정치적인 결정의 대상이다. 무언가 하라, 어떤 것이든 해보라는 지시에 따라 하는 실행의 대부분이 이런 것이다. 마지막으로 특정 실행을 했을 때 상당한 손해가 예상되거나 확실할 때에는 (상식적으로도) 그 실행은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실행 유형은 생각보다 많고 흔하다. 일반적이지 않고 무언가 창조적인 이슈관리, 위기관리를 한다는 경우들이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런 경우 결과로 얻어진 손해가 부정 이슈나 위기 자체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전략적이지 않은 실행에 의한 것인지를 사후 분별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경우 비전략적, 반전략적 실행이 쉽게 용인된다.

이슈와 위기관리 현장에서의 실익과 전략의 관계를 좀더 들여다보자.

목적을 정해야 실익이 보인다

이슈나 위기 발생시 특정 실행과 커뮤니케이션을 결정한 이유가 뭔가 하는 질문에 “속이라도 시원 하려고” “억울해서 이렇게 안 하면 미칠 것 같아서” “(상대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줄라고” “뭐든 해야 할 것 같아서” 등의 답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대부분은 이슈나 위기관리의 목적을 정확하게 정하지 않은 채 반응적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실익과 비실익을 구분하지 못한다. 실익의 정의와 시각이 제각각이 된다.

정확한 목적이 내부에 공유되면, 위와 같은 이상한 답변은 나올 수가 없다. 누군가 그런 의지를 피력하며 특정 실행을 제안한다면, 내부적으로 비웃음만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전략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찍히는 것은 그 다음이다. 실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예상하는 기준이 곧 목적이다. 그 목적이 전략이 된다.

실익이 타이밍을 정한다

지금 실행을 해야 하는가? 하루 이틀 후에 해야 하는가? 적절한 타이밍은 언제인가? 이런 질문도 이슈나 위기관리 현장의 흔한 질문이다. 그 타이밍을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할까? 가장 간단하고 중요한 기준은 실익이다. 지금 실행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과 하루나 이틀 후 실행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 중 어느 것이 더 큰가? 앞으로 전개될 타임라인을 예상해 놓고 본다면 과연 언제의 실행이 가장 큰 실익을 보장할 것인가? 이런 검토가 타이밍 전략의 기반이다.

실패하는 이슈나 위기관리 케이스에서는 실익을 기준으로 타이밍을 정하지 못한다. 대신 자신들의 준비 수준이나 속도, 자의적 의향, 무조건 신속해야 한다는 생각, 타사 유사사례에서의 타이밍 비교 등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실행 타이밍을 맞춘다. 실익을 전제하지 않는 타이밍 결정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실익이 메시지를 정한다

메시지를 제대로 정해야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되지 않는 메시지는 그냥 해프닝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면 그것은 노이즈다. 더 나아가 해사(害社)행위가 된다. 잘 된 메시지에도 실익은 기준이 된다. A라는 메시지와 B라는 메시지간에 어떤 메시지의 실익이 더 큰가를 결정해 보아야 한다.

A메시지는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될 수 있도록 해당 메시지를 개선해야 실익을 기대할 수 있다. B라는 메시지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면 해당 메시지는 절대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아야 실익을 기대할 수 있다. 차라리 메시지 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홀딩하거나 로우프로파일을 견지해야 실익이 있다면, 그것도 좋은 전략이 된다. 이 모든 것의 기준이 실익이다.

실익이 타겟을 정한다

대체 누구에게 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건가요?라는 타겟 질문에 대한 답도 실익이다. 길거리에 휘날리는 정치인의 우스꽝스러운 현수막은 과연 누구를 타겟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일까? 앞에서와 같이 실익을 기준으로 판단했더라면, 그런 괴상한 메시지는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럼에도 그 메시지가 흉측한 현수막으로 커뮤니케이션 되었다. 누가 그 메시지를 흡족 해 할까? 아마 그 대상은 그 현수막에서 웃고 있는 국회의원 자신일 것이다. 이런 타겟팅을 통해 실익을 얻는 사람도 있다는 의미다.

이슈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타겟의 적절한 설정은 상당한 의미와 효과를 가진다. 특별히 이상한 커뮤니케이션의 경우에는 타겟이 따로 정해져 있다. 우리가 얼핏 예상하는 대상이 그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또한 실익에 대한 것이다. 이상한 타겟에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이유는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실익을 얻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 타겟을 보면, 그 주체가 어떤 실익을 추구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실익이 실행을 거른다

뭐든 한다. 일단 하고 본다. 모든 것을 한다. 이런 생각은 전략적 이슈관리와 위기관리의 최대 적들 중 하나다. 이를 제대로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은 실익을 판단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A에서 Z까지의 실행안에 있어 실제 실행 시 가장 실익이 큰 것은 어떤 것인가를 예상해 보아야 한다. 실익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것을 우선 실행해야 한다. 별 실익이나 손해도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판단해서 실무선에서 결정한다. 실행해서 손해만 예상되는 것이라면 실행안에서 지워 버려야 한다.

이는 초등학생도 이해 가능한 단순한 기준이다. 하지만, 기업의 실행 현장에서는 아주 어려운 고민 주제가 된다. 실익을 누가 판단하는가? 누구에게 실익인가?와 같은 고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무선에서는 경험상 A 실행은 사후 손해 부담과 규모가 크다고 예상하지만, VIP의 강력한 의지가 내려오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더 이상 설득은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손해 부담과 규모를 계속 강조하며 실행에 반대한다면, 실무총괄임원이 인사조치를 당하게 될 수도 있다면. 대부분 실무그룹은 이를 일단 실행한다. 그리고 사후 데미지컨트롤 모드로 전환한다. 실익에 대한 공유된 시각과 정의가 필요한 이유다.

실익이 성패를 평가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 실익 없는 장기간의 이슈관리나 위기관리란 어떤 의미인가? 재정적 부담과 인적 부담만 쌓였고, 명성과 이미지는 무너졌다면 그 제반 관리 활동은 무엇이었다는 것일까? 덩그러니 손해만 산처럼 남았다면 이슈관리나 위기관리는 왜 했던 것일까? 성공한 이슈관리와 위기관리의 정의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서 정답은 당연히 실익이다.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를 우리가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해 나가는 이유는 그로 인해 실익을 얻어 내기 위함이다. 명성의 절반이 무너졌어도, 위기관리를 하지 않았다면 전체가 다 무너져 내렸을 것이라면, 이 또한 실익은 남긴 셈이다. 실행했을 때와 실행하지 않았을 때의 실익의 규모와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만약 실행했더라면 실익을 기대할 수 있었음에도, 실행하지 않아 손해만 남았다면 이는 실패한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라는 의미다. 물론 사후 정신승리 자체를 실익이라 정의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실익을 만들어야 성공한 위기관리다

이 개념은 상당히 민감한 것이다. 이슈나 위기관리 사후에 실무진은 어떻게든 지난 실행들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내부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이 때 실익을 어떻게 조작적으로 정의하는 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원래는 A라는 실익을 추구하며 실행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B라는 실익을 얻었으니, 이는 성공이다.”와 같은 긍정적인 사후 정의 부여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실익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사후 논의는 중요하다. 그런 논의가 생산적일수록 차후 다른 이슈관리나 위기관리에서 실익을 기준으로 하는 판단이 당연해지고 익숙해진다. “이 실행을 했을 때 실익이 있을까?” “실익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이 실행은 꼭 실행되어야 하는가?” “실익을 제대로 얻지 못한 실행은 과연 어떻게 수정 실행해야 최초 예상했던 실익을 얻어낼 수 있을까?” 등과 같은 현장의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 글을 읽은 경영진과 실무진은 앞으로 여러 기업의 이슈관리와 위기관리 실행을 볼 때 이런 질문을 해 보자. “이 실행으로 저 회사가 얻을 실익은 무엇일까?” 그 답 안에 그 기업의 의지와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예상과 기대가 들어있을 것이다. 전략이 확실한 윤곽을 나타낼 것이다. 반대로 그 많은 것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경우라고 해도 이제부터는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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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2026 0 Responses

최선의 전략도 최고의사결정자를 이기지 못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와 위기관리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항상 ‘전략’이라는 개념은 핵심 중 핵심으로 자주 언급된다. 언론에서도 “OO사의 위기관리 전략, 어떤 문제가 있었나?” 라던가 “OO사는 어떤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했나?”라는 제목으로 위기관리 전략을 궁금 해 한다. 이는 업계 전문가들과 경쟁사 임원들도 마찬가지다. 자사는 물론 경쟁사들에게 발생된 위기와 그에 대한 관리에 있어서 어떤 대응 전략을 구사하는 지에 대한 관심은 흔하다.

문제는 그런 전략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다. 위기관리 전략이라는 것을 해당 위기를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생산할 수 있도록 고안된 문제 해결 방식이라고 정의했을 때. 현장에서는 전략이 항상 그런 정의와 목적에 제대로 이바지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과연 좋은 전략과 나쁜 전략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은 전략이고 어떤 것이 나쁜 전략일까? 모두에게 좋은 전략이 일부에게 나쁜 전략이라면 그 전략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까? 반대로 모두 또는 대부분에게 나쁜 전략이 일부에게는 좋은 전략이라면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명실상부하게 훌륭한 전략이라면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이번 글에서는 위기관리 전략의 현실적 문제와 최고경영자와 전략 간의 관계에 대하여 정리해 본다. 흔히 일반적 시각에서 전형적인 전략의 우수성이나 정당성, 당위성을 논하는 습관이 있는데, 현실에서는 얼마나 다른 상황이 펼쳐 지는지에 대한 위기관리 실무자들의 확실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략은 최고의사결정자의 생각

어떻게 보면 이것이 결론이다. 전략을 흔히 전문가들이 어려 변수와 상황을 감안하고, 전례와 사례를 연구하고, 대응 옵션에 따른 결과들을 예상하여 종합적 대응의 방향성을 마련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현장에서의 전략은 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원래부터 경영분야 컨설턴트들은 기업 자문 시 최고의사결정권자의 머릿속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 머릿속에 답이 있고, 컨설팅 방향과 결론이 들어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확실히 경험적인 인사이트다.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그런 경험적 인사이트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위기관리 전략 또한 최고의사결정권자의 머릿속에 이미 존재한다. 만약 내외부에서 정리된 위기관리 전략이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생각과 다르다면. 이는 결코 전략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실행되지 않는다. 반대로 실행되는 전략의 모습 속에는 그 기업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생각이 반영되어 보여 진다. 즉, 일선 임원들이 위기관리를 잘 한다 잘 못 한다 하는 외부 평가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위기관리 전략은 곧 그 기업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생각 그대로 이기 때문이다.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좋은 전략이 곧 좋은 전략

당연한 이야기다. 위기관리 주체인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싫어하고, 자신에게 부담이나 일부 해가 될 수도 있는 위기관리 전략이란 실행되기 어렵고, 그에 대한 의미를 내부적으로 부여 받기도 어렵다. 일부 임원들은 “이 상황에서는 이 쓴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고언을 할 때도 있지만, 내부적으로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이 전략이 그렇게 쓰기만 한 전략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 때에만 해당 전략에 대한 선택이 가능하다.

운이 좋아서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좋은 전략이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좋은 전략이라면 문제없겠지만, 위기관리 전략에서 그러한 윈윈 전략은 흔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얼마나 현 위기상황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고, 이를 얼마나 중대한 위협으로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수용 가능한) 좋은 전략’의 방향과 수위는 결정된다. 전문가와 임원들이 집중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나쁜 전략은 또 다른 위기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싫어하거나 심지어 나쁘다 생각하는 전략을 억지로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부 부정적으로 간주되는 실행을 하는 임원의 경우에는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만약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나쁜 전략이 현존하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고의사결정권자를 끝까지 설득해야 할까? 아니면, 회사를 위한 차원에서 일단 해당 전략을 실행해 버리고 결과를 입증해야 할까?

대부분 기업들은 이런 경우 아무 전략도 실행하지 않는 실행을 선택한다.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싫어하는 전략은 곧 나쁜 전략이다. 실행해서는 안 되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그런 전략은 실행하지 않아야 한다. 대신, 유효 전략을 실행하지 않는 부작용을 일부라도 관리할 수 있는 노력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흔히 위기 시 전략 없이 기업이 몸으로 때우려 한다는 평가가 있다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절대 적절한 전략을 모르거나, 그런 전략을 실행할 역량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성공 전략이라는 기준도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것

위기관리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에 대한 평가에는 여러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위기관리 실무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평가 기준은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실질적 평가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일반인들도 있겠지만, 이는 아주 중요하고 당연한 현실이다. 최고의사결정권자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업 구성원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나? 결국 위기관리 성패는 최고의사결정권자의 판단과 평가에 따른다.

따라서, 외부적으로 일부 또는 상당부분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위기관리라 해도, 내부적으로 최고의사결정권자께서 중립 또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이는 선방이라 정의할 수 있다.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다. 경험 있는 위기관리 실무자들은 공감하지만,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어떻게 위기가 인식되어지고, 대응전략과 방식에 대한 어떤 공감대를 생성할 수 있는가, 그리고 사후 평가에 대해서도 긍정성 중심의 활발한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어찌 보면 실무적 위기관리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다.

좋은 전략이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외부 전문가들이 평가하듯 이랬어야 했다 또는 저랬어야 했다는 평가에 따라 좋은 전략이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느껴지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렇게 홀로 독립적으로 세워져 있는 전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의사결정권자를 중심으로 수많은 변수와 의견들이 셀 수 없는 충돌과 갈등 그리고 융합을 일으키며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생각을 자극하여 결론화 된 것이 겨우 전략의 모습을 띌 뿐이다.

그런 최초 전략도 상황이 변하고 시간이 지나고 최고의사결정권자 생각이 바뀜에 따라 다시 지속적으로 변화되고 변경된다. 원래부터 위기관리 전략에 일관성이나 목적성을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마치 흘러가는 물 위에 글씨를 쓰듯 전략은 계속 변화하며 사라져 간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런 흐름과 사라짐이 만들어 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더 고민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쁜 전략이란 없다

실패한 전략은 곧 나쁜 전략이었을까? 만약 실패했다 평가받는 전략이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강력한 생각에 기반한 것이었고, 그것이 제대로 실행되었고, 그래서 그런 결과를 얻게 되었다면? 그 전략은 내부적으로 ‘나쁜’ 또는 ‘실패한’ 전략이라 평가받을 수 있을까? 이는 매우 현실적인 주제다. 따라서 나쁘거나 실패한 전략이 정해져 있기 보다는 최고의사결정권자의 평가만 있을 뿐이다.

물론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의중에 반하고, 전혀 이질감 있는 전략이 실행되었다면, 이는 분명 나쁜, 실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심지어 그 나쁜 전략으로 인해 외부적으로는 정상참작을 받거나, 일부 유효하게 평가받는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그 나쁜 전략이 좋은 전략으로 달리 평가받게 되는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많은 기업의 위기관리 임원들이 절대로 나쁜 전략과 좋은 전략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어떤 전략이든 유효하다. 최고의사결정권자가 허락하는 것이라면.

핵심은 최고의사결정권자

이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몇번을 반복해도 무리가 될 수는 없다.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이해와 의지가 곧 위기를 관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관리를 함께 하는 전문가나 담당 임원들은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이해와 의지에 가능한 유효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 할 뿐이다. 초기부터 시종일관 어떻게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생각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꾸준하게 관리해 합의된 전략으로 실행에 연결시킬 수 있을까가 위기관리팀의 핵심적인 관심 분야가 된다.

따라서, 위기관리팀은 위기 시 외부의 환경과 반응을 제대로 분석해 신뢰 있는 의견을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 업데이트 하는 노력을 한다. 흔히 말하는 좋은 전략과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좋아하실 전략이 가능한 합치되도록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런 노력이 일부 또는 전부 실패하는 경우라면, 가능한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의중에 따른 전략 중 유효할 수 있는 실행에 보다 집중한다. 그 유효함을 판단하는 것은 순수한 전문성과 경험이다. 이러한 모든 노력을 통해  위기를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 또한 제대로 사후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상과 같은 전략에 대한 생각 그리고 현실에 대해 이미 다양한 경험을 가진 실무자들이 많을 것이다. 일부는 전략이라는 생각을 포기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른 일부는 이미 철저하게 시키는 대로 한다는 생각으로 태도를 바꾼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에서 핵심은 최고의사결정권자다.

평시나 위기 시 그 핵심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위기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최고의사결정권자를 위해 언론에 대한 이해, 여론에 대한 이해, 정무감각에 대한 인식과 감각 강화, 여러 전문가들과의 교류와 상시적 커뮤니케이션 등이 꾸준히 이루어진다면, 보다 이상적인 위기관리 환경이 구축될 수 있다는 것도 상식이다.

위기관리는 평시에 하는 것이라는 교훈이 이번 글 주제의 결론이다. 위기관리팀의 핵심이해관계자는 최고의사결정권자다. 평시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 누구에게 집중되어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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