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CEO를 위한 스토익(Stoic) 위기관리 원칙
첫째, 위기관리를 기술의 문제가 아닌 철학과 준비의 문제로 재정의하라.
둘째,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위기 요소를 찾아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라.
셋째, 사전 준비를 통해 이해관계자의 반응까지 미리 파악해 두어라.
위기가 마주한 기업은 위기관리 컨설턴트를 불러 종종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떤 기업은 컨설턴트 여럿을 동시에 불러 마치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듯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제안을 경쟁시키기도 한다. 기업이 그저 위기관리를 기술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기업은 이미 위기관리의 절반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위기관리는 기술이 아니다.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것은, 위기관리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실패의 질문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수 천 년 전 이미 준비에 관해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에픽테토스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에 대해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압도당한다.”고 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의 자리에서도 매일 아침 닥쳐올 수 있는 어려움을 먼저 떠올리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준비는 사건 이후가 아니라 사건 이전의 일이라는 가르침이다.
기업 위기관리도 이와 같다. 진정한 위기관리는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위기 요소를 사전에 찾아내고, 그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본체다. 여기에는 기술이 개입하지 않는다. 개입하는 것은 경영진의 철학이고, 조직의 심사숙고이며, 일상적인 훈련이다.
위기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업 위기에는 사전 신호가 있다. 내부 갈등의 누적, 안전의식의 미비, 거버넌스의 허점, 규제 환경의 변화, 협력사 리스크의 증가, 핵심 인물의 행태 변화. 이 신호들은 위기가 터지기 한참 전부터 이미 조직 안에 존재한다. 그것을 포착하고 관리하는 기업과 그것을 외면하거나 인식조차 못하는 기업은, 같은 환경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맞는 것이 당연하다.
위기 요소를 체계적으로 식별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단순한 리스크 목록 작성이 아니다. 각 위기 요소가 현실화될 경우 어떤 경로로 확산되는지, 어떤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직의 어떤 자원이 소진되는지를 미리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일이다. 이 작업이 완료된 기업은 위기를 맞았을 때 낯선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다. 이미 한번 겪어본 상황에 다시 들어서는 것이다.
수험생에게 가장 효과적인 시험 준비는 기출문제 풀이다. 실제 시험에서 여러 번 출제된 문제의 유형과 수준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다. 기업의 위기관리 준비도 정확히 이와 같다. 우리 기업과 여러 타사들에게서 발생된 위기의 유형을 미리 분석하고, 각 유형별로 이해관계자의 반응과 대응 방향을 사전에 예상하여 대응을 설계해 둔 기업은,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혀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기업과, “우리는 이 상황을 이미 검토해 두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기업의 차이는, 위기의 첫 72시간 안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자는 논의의 출발점을 그 자리에서 찾기 시작한다. 후자는 이미 합의된 방향 위에서 실행을 앞두고 있다. 이렇듯 위기의 골든타임 또한 준비된 기업에게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세네카는 말했다. “행운은 준비된 마음을 만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위기관리에서도 그대로 성립한다. 위기관리 컨설턴트의 조언도,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위기 대응 매뉴얼도 모두 준비된 조직을 만났을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준비되지 않은 조직에게 기술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성공하는 기업 CEO에게는 이 개념적 정렬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위기관리란 위기가 발생한 이후의 기술적 대응이 아니라,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의 철학적 준비라는 것. 준비 없는 위기관리는 어렵고 힘들다. 실패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반대로 준비된 기업에게 위기는 조직의 역량을 증명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준비가 곧 위기관리다. 이 명제는 단순하지만, 실천하는 기업은 여전히 드물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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