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022026 0 Responses

1. 신의 영역, 인간의 영역, 그리고 그 사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가 닥친 기업의 회의실은 대개 아우성과 분노로 가득하다. 쏟아지는 비난 기사, 들끓는 소셜 미디어와 여론, 분노한 고객과 거래처, 몰려오는 기관들의 압박 앞에서 CEO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때 경험 부족한 CEO는 패착을 저지른다. 지금 이 순간에는 결코 바꿀 수 없는 대상을 통제하려 드는 것이다. 여론과 언론의 입을 막으려 하고, 고객과 거래처를 힘으로 누르려 하고, 기관들을 마음대로로 움직이려 시도한다. 신의 영역을 인간의 영역으로 착각하고 뭐든 해 보려 하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의 거두 에픽테토스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일”을 꼽았다. 이 구분은 얼핏 ‘통제 가능’과 ‘통제 불능’의 단순한 이분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업 위기 현장에서 이 원칙을 실제로 적용해 보면, 두 영역 사이에 세 번째가 반드시 존재함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잠재 통제 영역’이다. 즉시 바꿀 수는 없지만, 평시에 쌓아 둔 준비만큼 위기 시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 그것이다. CEO가 상대해야 할 것은 결국 세 가지다. 지금 이 순간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는 외부 환경, CEO가 결단하면 즉시 바뀌는 내부 결정과 행동, 그리고 평소에 쌓아 둔 만큼만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와 자산. 이 셋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모든 전략의 출발점이다.

첫째, 통제 불가능한 것에 매달리는 집착을 끊자. 지금 이 순간 어떤 수를 써도 직접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이 신의 권한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무능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다. 위기 상황에서 CEO가 이러한 대상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순간, 정작 자신이 완전히 통제해야 할 의사결정과 실행, 메시지와 내부 단속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신의 영역을 넘보다 인간의 영역마저 잃는 것이 위기관리 실패의 가장 전형적인 경로다.

둘째, 지금 당장 통제 가능한 것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자. 위기 시 CEO가 즉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의사결정, 실행 조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조직 통제다. 이것들은 모두 CEO의 판단과 결단이 개입되는 영역이며, 지시하면 바로 바뀌는 것들이다. 통제 불가능한 여론과 비난은 거대한 장애물처럼 보이지만 외부 환경일 뿐이다. 그 장애물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전략은 지금 당장 통제 가능한 인간의 영역이다. 정교하게 관리된 내부의 통제 가능 요소들은 결국 외부 환경을 변화시킨다. 내부의 완벽한 대응이 외부의 비난을 잠재우는 길이 된다.

셋째, 평시에 잠재 통제 영역을 꾸준히 확장하자. 언론과 탄탄한 신뢰를 구축하고, 준법 및 안전 체계를 고도화하며, 꾸준히 명성을 쌓는 행위가 그것이다. 잠재 통제 영역은 위기가 닥친 이후에는 넓힐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평시에만 가능한 투자이며, 위기 순간에는 이미 축적된 것만 쓸 수 있다. 반대로 평소 소홀했던 영역은 위기 시 통제 불능한 괴물이 된다. 언론 관계를 방치한 기업은 헤드라인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고, 준법과 안전 체계를 최소 비용으로만 유지해 온 조직은 작은 사고에도 전체 시스템이 흔들린다. 평판 관리를 방치한 기업은 단 한 번의 논란에 다년간의 브랜드 가치를 잃는다.

CEO에게 필요한 것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다. 지금 당장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평시에 내가 쌓아 두었거나 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 질문의 답은 내려놓고, 두 번째 질문의 답에 집중하라. 세 번째 질문의 답은 오늘부터 투자를 시작하라. 위기는 준비된 자에게 돌파구를 허락한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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