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스토익 위기관리

7월 132026 0 Responses

위기와 위기관리 속에는 사람이 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위기를 일으키는 것도 사람이고, 그 위기를 힘겹게 수습해 나가는 것도 사람이다. 위기를 둘러싸고 그것을 더 큰 재앙으로 키우는 것 역시 사람들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답은 한결 분명해진다. 사람이 없는 곳에는 위기도 없다. 이것은 위기관리에서 가장 확실한 진리다. 그렇기에 위기관리를 제대로 해내고 싶은 기업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원칙은 사실 위기관리 매뉴얼의 뼈대에도 새겨져 있다. 잘 만들어진 매뉴얼이 던지는 첫 질문은 언제나 ‘누가(who)’다. 누가 이 사안을 판단하는가, 누가 회사를 대변하는가, 누가 피해를 입었고 누가 분노하고 있는가, 누가 영향력을 쥐고 있는가. 위기를 대비하는 일의 상당 부분도 결국 사람의 일로 채워진다. 임직원과 함께 땀 흘리는 훈련과 시뮬레이션이 그 한가운데 있고, 위기 유형별로 이해관계자와 영향력자, 곧 사람들을 미리 살피고 관계를 다져 두는 일이 그 나머지를 이룬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 히에로클레스의 통찰을 참고해 보자. 그는 ‘오이케이오시스(Oikeiosis)’, 우리말로 옮기면 ‘내 것으로 여김’ 정도가 될 개념을 동심원으로 설명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한가운데 두고, 그 바깥으로 가족과 이웃, 동료 시민, 그리고 마침내 온 인류로 이어지는 여러 겹의 원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가 권한 삶의 태도는 이러했다. 저 바깥쪽 원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씩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마치 가까운 이처럼 여겨 보라는 것이다.

이 동심원이 바로 위기 시 이해관계자 관리 지도다. 가장 안쪽에 경영진과 조직이 있고, 그 다음 원에 임직원이, 이어 협력사와 거래처가, 그리고 고객과 지역사회가, 맨 바깥에 더 넓은 사회와 여론이 겹겹이 놓인다. 위기를 맞은 기업이 해야 할 일도 히에로클레스의 조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 바깥 원의 사람들까지 안쪽으로 끌어당겨, 그들의 감정과 시선을 내 일처럼 헤아려 보는 것이다. 이 지도를 평온한 시절에 미리 그려 둔 기업과, 위기가 터진 뒤에야 ‘누가 있었더라’ 하고 뒤늦게 헤매는 기업의 걸음걸이는 첫날부터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사람’의 양면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는 ‘명상록’에 이렇게 적었다. “사람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그들을 가르치든지, 아니면 견뎌내라.” 짧지만 위기관리의 본질을 관통하는 말이다. 사람은 때로 참고 견뎌야 할 골칫거리이면서도, 결국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해법이라는 뜻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도 그렇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사람이고, 그 문제를 더 크게 키우는 것도 사람이지만, 끝내 그 문제를 풀어낼 열쇠를 쥔 것 또한 사람이다. 사람이 곧 문제이며, 동시에 사람이 곧 해법이다.

반면 돈과 숫자만 들여다보거나,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좇거나, 자기 느낌과 확신에만 기대어 판단할 때, 정작 그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들은 슬그머니 시야에서 사라진다. 준비도, 의사결정도, 대응도 사람을 향하고 있을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법이다.

위기관리는 이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향한 일이다. 숫자 뒤에, 현상 뒤에, 그리고 나의 확신 뒤에 가려진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위기 속에 사람이 있고, 위기관리 속에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데서 위기관리는 비로소 시작되고, 또 그렇게 마무리된다.

7월 022026 0 Responses

1. 신의 영역, 인간의 영역, 그리고 그 사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가 닥친 기업의 회의실은 대개 아우성과 분노로 가득하다. 쏟아지는 비난 기사, 들끓는 소셜 미디어와 여론, 분노한 고객과 거래처, 몰려오는 기관들의 압박 앞에서 CEO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때 경험 부족한 CEO는 패착을 저지른다. 지금 이 순간에는 결코 바꿀 수 없는 대상을 통제하려 드는 것이다. 여론과 언론의 입을 막으려 하고, 고객과 거래처를 힘으로 누르려 하고, 기관들을 마음대로로 움직이려 시도한다. 신의 영역을 인간의 영역으로 착각하고 뭐든 해 보려 하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의 거두 에픽테토스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일”을 꼽았다. 이 구분은 얼핏 ‘통제 가능’과 ‘통제 불능’의 단순한 이분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업 위기 현장에서 이 원칙을 실제로 적용해 보면, 두 영역 사이에 세 번째가 반드시 존재함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잠재 통제 영역’이다. 즉시 바꿀 수는 없지만, 평시에 쌓아 둔 준비만큼 위기 시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 그것이다. CEO가 상대해야 할 것은 결국 세 가지다. 지금 이 순간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는 외부 환경, CEO가 결단하면 즉시 바뀌는 내부 결정과 행동, 그리고 평소에 쌓아 둔 만큼만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와 자산. 이 셋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모든 전략의 출발점이다.

첫째, 통제 불가능한 것에 매달리는 집착을 끊자. 지금 이 순간 어떤 수를 써도 직접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이 신의 권한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무능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다. 위기 상황에서 CEO가 이러한 대상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순간, 정작 자신이 완전히 통제해야 할 의사결정과 실행, 메시지와 내부 단속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신의 영역을 넘보다 인간의 영역마저 잃는 것이 위기관리 실패의 가장 전형적인 경로다.

둘째, 지금 당장 통제 가능한 것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자. 위기 시 CEO가 즉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의사결정, 실행 조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조직 통제다. 이것들은 모두 CEO의 판단과 결단이 개입되는 영역이며, 지시하면 바로 바뀌는 것들이다. 통제 불가능한 여론과 비난은 거대한 장애물처럼 보이지만 외부 환경일 뿐이다. 그 장애물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전략은 지금 당장 통제 가능한 인간의 영역이다. 정교하게 관리된 내부의 통제 가능 요소들은 결국 외부 환경을 변화시킨다. 내부의 완벽한 대응이 외부의 비난을 잠재우는 길이 된다.

셋째, 평시에 잠재 통제 영역을 꾸준히 확장하자. 언론과 탄탄한 신뢰를 구축하고, 준법 및 안전 체계를 고도화하며, 꾸준히 명성을 쌓는 행위가 그것이다. 잠재 통제 영역은 위기가 닥친 이후에는 넓힐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평시에만 가능한 투자이며, 위기 순간에는 이미 축적된 것만 쓸 수 있다. 반대로 평소 소홀했던 영역은 위기 시 통제 불능한 괴물이 된다. 언론 관계를 방치한 기업은 헤드라인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고, 준법과 안전 체계를 최소 비용으로만 유지해 온 조직은 작은 사고에도 전체 시스템이 흔들린다. 평판 관리를 방치한 기업은 단 한 번의 논란에 다년간의 브랜드 가치를 잃는다.

CEO에게 필요한 것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다. 지금 당장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평시에 내가 쌓아 두었거나 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 질문의 답은 내려놓고, 두 번째 질문의 답에 집중하라. 세 번째 질문의 답은 오늘부터 투자를 시작하라. 위기는 준비된 자에게 돌파구를 허락한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7월 022026 0 Responses

2. 위기 앞에서 분노를 내려놓는 세 가지 방법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 현장에서 경영진으로 부터 가장 자주 목격하는 감정이 있다. 분노다. 위기 대응 회의실에서 고성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 전화기 너머로 전달되는 날선 분노, 침묵 속에 응축된 차가운 분노.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같다. 통제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경영진의 저항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기업 위기는 대체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가.

위기는 경영자가 분노할 ‘대상’이 아니다. 위기는 풀어야 할 ‘숙제’다. 숙제 앞에 앉은 학생이 화를 낸다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를 내는 동안 시간이 흘러가고, 판단이 흐려지고, 골든타임이 소진된다. 위기관리에서 분노는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만 더 악화시킨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2000년 전에 이미 이것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그는 저서 ‘화에 대하여(De Ira)’에서 이렇게 말했다. “분노는 일시적 광기다(Ira furor brevis est).” 분노한 상태의 인간은 이성을 잃은 상태라는 것이다. 눈빛이 흔들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말이 거칠어진다. 세네카는 이것이 광기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광기가 오래 지속되느냐, 잠깐 지속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위기 현장에서 분노한 경영진이 내린 결정들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필자는 수없이 목격했다. 그 분노가 없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말들, 내리지 않았을 지시들, 취하지 않았을 행동들. 분노는 판단을 흐리고 조직을 흔든다. 경영자가 분노하는 순간 조직 전체가 그 분노의 파장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실무진은 옳은 판단보다 경영자의 분노를 잠재울 반응을 먼저 찾기 시작한다. 전략적 대응이 아니라 감정적 반응이 조직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분노한 경영자가 그 분노를 정당하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세네카는 이것이 분노의 가장 교활한 속성이라고 했다. 분노는 스스로를 의로운 감정으로 위장한다.

만약 위기 앞에서 경영자가 반드시 화를 내야 한다면, 그 화는 딱 하나의 방향으로만 향해야 한다. 이 위기를 평시에 대비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화, 그리고 준비의 중요성에 무관심했던 조직에 대한 화다. 그 화만이 생산적이다.

그 화만이 다음 위기를 막는 에너지가 된다. 언론을 향한 화, 이해관계자를 향한 화, 상황 자체를 향한 화는 모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세네카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파도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분노의 처방은 하나다. 지금 내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리는 것. 분노는 의식되지 않을 때 가장 강하고, 의식되는 순간 힘을 잃기 시작한다.

아, 나는 지금 분노하고 있구나. 이 짧은 자기 인식이 분노가 판단을 지배하는 것을 막는 첫 번째 방어선이다.

위기는 숙제다. 숙제는 그냥 풀어야 한다. 분노는 그 숙제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핵심요약

1. 분노가 느껴지는 순간 즉각 반응하지 말고, 먼저 ‘나는 지금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라.

2.언론, 이해관계자, 상황 자체를 향한 분노는 내려놓고, 그 에너지를 통제 가능한 대응 실행에만 집중하라.

3. 만약 화를 내야 한다면 이 위기를 평시에 대비하지 못한 자신과 조직을 향해 내고, 그 화를 다음 위기를 막는 준비의 동력으로 전환하라.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7월 022026 0 Responses

3. 위기란 ‘언제’에 관한 것이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어느 기업 임원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회사는 지금까지 큰 위기 없이 잘 왔습니다. 앞으로도 큰 이상이 없으면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회사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위기를 ‘발생 여부’의 문제로 보는 경영진은, 위기가 실제로 닥쳤을 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은 유형이다. 위기는 ‘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올 것인가’의 문제다. 이 명제를 받아들이는 순간, 위기를 대하는 경영진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죽음을 피할 수 없듯, 위기도 피할 수 없다

세네카는 기원후 64년, 로마 대화재가 리옹을 집어삼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편지를 썼다. “도시 하나가 하룻밤에 사라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놀라는가. 불, 홍수, 전쟁, 질병. 이것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가 외면했을 뿐이다.”

세네카가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재앙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예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 “어떤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 일이 닥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겪어보아야 한다.”

이것이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하는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Praemeditatio Malorum)이다. 직역하면 ‘나쁜 일들에 대한 사전 숙고’. 현대적 언어로는 ‘부정적 시각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로서 매일 아침 이 훈련을 실천했다. ‘명상록’ 전반에 걸쳐 그는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어떤 인간을 만나게 될지를, 어떤 실패와 좌절이 기다리는지를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나서 하루를 시작했다.

이 훈련의 목적은 비관론이 아니다. 패배주의적 낙담은 더더욱 아니다. 최악을 미리 직면함으로써, 실제 위기 앞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렇게만 잘 하면 위기는 없다”는 착각

기업 경영진에게는 세 가지 위기관에 대한 착각이 공통적으로 목격된다.

첫 번째는 “이렇게만 잘 가면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관리 착각이다. 규정을 지키고, 내부 감사를 하고,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면 위기를 차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런 노력이 위기 발생 확률을 낮추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로(0)로 만들지는 못한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없었으니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경험 착각이다. 과거의 평온함이 미래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논리는, 통계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위기는 대개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장 취약한 지점에서 발생한다.

세 번째는 “위기는 문제 있는 회사에게 생기는 것”이라는 타자화 착각이다. 이 착각은 가장 위험하다. 위기를 ‘우리 밖의 이야기’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어떤 내부 준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네카라면 이 세 가지 착각 모두에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네가 그것을 예상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 그것이 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최악을 직면하는 것이 진짜 위기관리의 시작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을 기업 위기관리에 적용하면 실천적 질문은 하나로 압축된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도 반드시 막아야 할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경영진이 불편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평판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시나리오, 핵심 인물의 돌발적 일탈, 협력사의 연쇄 부도, 내부 고발과 미디어의 동시 공세, 규제기관의 갑작스러운 조사. 이런 시나리오를 회의실에서 꺼내 놓는 것 자체를 불길하게 여기는 경영진이 많다. 하지만 정확히 그 불편함을 회피하는 순간, 준비는 멈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훈련을 ‘사전에 상처를 입어두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마음속에서 그 상황을 한 번 겪었다면, 실제로 닥쳤을 때 공황 상태 없이 대응할 수 있다. 이것이 스토아적 위기관리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위기관리는 예언이 아니라 준비의 문제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최악을 미리 상상하는 것이 실제로 준비에 도움이 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실제 위기 현장에서 수없이 확인되었다.

위기 대응 속도와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그 순간의 판단력’이 아니다. ‘그 이전에 얼마나 그 상황을 생각해 두었는가’다. 위기 시뮬레이션을 정기적으로 실시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자는 논의의 출발점이 ‘이미 생각해 둔 것’이고, 후자는 출발점 자체를 그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

세네카는 루킬리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을 마음속에 품고 잠들어라. 그러면 그것들이 닥쳤을 때, 너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CEO에게 위기관리란 결국 이것이다. 위기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올 것을 알고 준비하는 것. 위기는 ‘언제’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언제’를 앞서 살아보는 훈련이 곧 가장 강력한 위기 대비책이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7월 022026 0 Responses

4. 목표 없이 위기관리 없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첫째, 위기가 발생하면 즉각 대응에 나서기 전에 해당 위기를 완전히 분석하라.

둘째, 분석이 끝나면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위기관리 목표를 세워 경영진이 합의하라.

셋째, 합의된 목표를 나침반으로 삼아 모든 대응 행동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정렬하라.

세네카는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목적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위기관리 현장에서 매일 확인되는 진실이다.

위기를 맞은 기업의 경영진을 보면 공통된 패턴이 있다. 위기 그 자체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다. 기사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소셜미디어의 흐름을 쫓고, 임직원들의 동요를 달래고, 규제기관의 동향을 살핀다. 분주하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생략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위기관리에서 목적과 목표를 세우는 일은, 위기를 완전히 이해한 이후에야 가능하다. 당면한 위기의 성격이 무엇인지, 이해관계자 구조는 어떤지, 법적·규제적 리스크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미디어와 여론의 동향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먼저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이 분석이 없는 상태에서 감으로 세우는 목표는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다.

분석이 완료되면 목적은 비교적 단순하게 정해진다. 전략적으로 적절하게 대응하여 기업의 일상적 운영 상태에 최대한 가깝게 위기를 관리해 내는 것. 이것이 위기관리의 보편적 목적이다. 하지만 목표는 다르다.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측정 가능해야 하며, 해당 위기의 특성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

유사한 위기를 맞은 세 기업을 상상해 보자. 첫 번째 기업의 위기관리 목표는 “부정 기사의 최소화”다. 이 기업은 언론사와의 관계 관리에 자원을 집중하고, 기사 건수를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기사 건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위기가 해소되는가? 이슈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은 채 언론 노출만 억제된 상황은, 이후 더 큰 폭발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 기업의 목표는 “부정 이슈 지속 기간의 단축, 1주일 이내 마무리”다. 이 기업은 속도에 집중한다. 이슈의 사이클을 빠르게 끊어내기 위해 선제적 입장 발표, 신속한 사과, 압도적인 재발 방지 대책 발표를 압축적으로 실행한다. 목표가 시간 기준이므로, 대응의 타이밍과 리듬이 달라진다.

세 번째 기업의 목표는 “해당 위기로 인한 검찰 개입의 사전 방지”다. 이 기업은 법적 리스크 관리에 최우선 자원을 배치한다. 대외 커뮤니케이션보다 규제기관과의 선제적 소통, 내부 감사와 자발적 시정 조치를 앞세운다. 물론 검찰을 자극할 만한 여론에 대한 적극적 대응은 기본이다.

같은 위기, 세 가지 목표. 각 기업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목표만 봐도 예측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후에 각 목표의 유효성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떠한 목표라도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다.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인간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판단이다.” 위기 앞에서 경영진이 오락가락하고, 같은 논의를 반복하고, 대응의 방향이 하루가 다르게 흔들리는 것은 대부분 목표가 없거나 목표가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가 없는 위기관리는 태풍의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배와 같다. 분주하게 노를 젓는다. 그런데 방향이 없으니 같은 자리를 맴돈다. 에너지는 소진되고, 조직은 지치고, 위기는 깊어진다. 경영진은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되는가”라고 탄식하지만, 열심히 한 것과 제대로 한 것은 다른 이야기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명상록’에 이렇게 썼다. “목적 없는 행동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그는 로마 제국의 수많은 위기 앞에서 매번 같은 질문을 먼저 던졌다. 우리가 지금 이 상황을 통해 도달해야 할 지점은 어디인가?

목적지 없이 출항하는 배는 없다. 적어도 정상적인 항해사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위기관리도 마찬가지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경영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의실에 모여 언론 대응 문구를 다듬는 것이 아니다. 당면한 위기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우리가 이 위기를 통해 도달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먼저 합의하는 것이다.

세네카의 말을 다시 꺼낸다. 목적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 위기관리라는 바다에서, 나침반은 목표다. 그 나침반을 세우는 것이 위기관리의 진짜 출발점이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7월 022026 0 Responses

5. 준비가 곧 위기관리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CEO를 위한 스토익(Stoic) 위기관리 원칙

첫째, 위기관리를 기술의 문제가 아닌 철학과 준비의 문제로 재정의하라.

둘째,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위기 요소를 찾아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라.

셋째, 사전 준비를 통해 이해관계자의 반응까지 미리 파악해 두어라.

위기가 마주한 기업은 위기관리 컨설턴트를 불러 종종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떤 기업은 컨설턴트 여럿을 동시에 불러 마치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듯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제안을 경쟁시키기도 한다. 기업이 그저 위기관리를 기술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기업은 이미 위기관리의 절반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위기관리는 기술이 아니다.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것은, 위기관리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실패의 질문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수 천 년 전 이미 준비에 관해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에픽테토스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에 대해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압도당한다.”고 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의 자리에서도 매일 아침 닥쳐올 수 있는 어려움을 먼저 떠올리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준비는 사건 이후가 아니라 사건 이전의 일이라는 가르침이다.

기업 위기관리도 이와 같다. 진정한 위기관리는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위기 요소를 사전에 찾아내고, 그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본체다. 여기에는 기술이 개입하지 않는다. 개입하는 것은 경영진의 철학이고, 조직의 심사숙고이며, 일상적인 훈련이다.

위기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업 위기에는 사전 신호가 있다. 내부 갈등의 누적, 안전의식의 미비, 거버넌스의 허점, 규제 환경의 변화, 협력사 리스크의 증가, 핵심 인물의 행태 변화. 이 신호들은 위기가 터지기 한참 전부터 이미 조직 안에 존재한다. 그것을 포착하고 관리하는 기업과 그것을 외면하거나 인식조차 못하는 기업은, 같은 환경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맞는 것이 당연하다.

위기 요소를 체계적으로 식별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단순한 리스크 목록 작성이 아니다. 각 위기 요소가 현실화될 경우 어떤 경로로 확산되는지, 어떤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직의 어떤 자원이 소진되는지를 미리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일이다. 이 작업이 완료된 기업은 위기를 맞았을 때 낯선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다. 이미 한번 겪어본 상황에 다시 들어서는 것이다.

수험생에게 가장 효과적인 시험 준비는 기출문제 풀이다. 실제 시험에서 여러 번 출제된 문제의 유형과 수준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다. 기업의 위기관리 준비도 정확히 이와 같다. 우리 기업과 여러 타사들에게서 발생된 위기의 유형을 미리 분석하고, 각 유형별로 이해관계자의 반응과 대응 방향을 사전에 예상하여 대응을 설계해 둔 기업은,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혀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기업과, “우리는 이 상황을 이미 검토해 두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기업의 차이는, 위기의 첫 72시간 안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자는 논의의 출발점을 그 자리에서 찾기 시작한다. 후자는 이미 합의된 방향 위에서 실행을 앞두고 있다. 이렇듯 위기의 골든타임 또한 준비된 기업에게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세네카는 말했다. “행운은 준비된 마음을 만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위기관리에서도 그대로 성립한다. 위기관리 컨설턴트의 조언도,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위기 대응 매뉴얼도 모두 준비된 조직을 만났을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준비되지 않은 조직에게 기술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성공하는 기업 CEO에게는 이 개념적 정렬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위기관리란 위기가 발생한 이후의 기술적 대응이 아니라,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의 철학적 준비라는 것. 준비 없는 위기관리는 어렵고 힘들다. 실패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반대로 준비된 기업에게 위기는 조직의 역량을 증명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준비가 곧 위기관리다. 이 명제는 단순하지만, 실천하는 기업은 여전히 드물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7월 022026 0 Responses

6. 기업 위기관리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CEO를 위한 스토익(Stoic) 위기관리 원칙

첫째, 위기 대응 역량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반복된 훈련으로 길러지는 기술이다.

둘째, 예상되는 위기 상황을 평시에 실제처럼 반복하여 몸에 익혀라.

셋째, 훈련을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조직의 일상적 규율로 정착시켜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 이렇게 적었다. “삶의 기술은 춤보다 레슬링에 가깝다. 정해진 안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일격에 맞서 늘 준비된 자세로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기관리도 그렇다. 위기는 잘 짜인 안무처럼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예고 없이, 변칙적으로, 가장 취약한 곳을 노리고 들어온다. 그래서 위기 대응은 대본을 암기하듯 되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훈련된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듯, 조직이 평소 길들여 둔 습관과 절차가 그 순간 작동해야 한다. 레슬러는 상대의 다음 동작을 일일이 예측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어떤 변칙이 들어와도 무너지지 않도록 몸을 미리 단련해 두었기에 버티는 것이다.

훈련되지 않은 기업이 위기를 맞으면 어떤 모습이 되는가. 오합지졸이라는 표현 그대로다. 누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모른 채 미루고, 사실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각각 입을 열고, 사과의 타이밍을 놓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기자 앞에서 내뱉는다. 돌이켜 보면 대단한 전략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을 뿐이다. 정상적인 훈련을 한 번이라도 거친 조직이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사려 깊지 못한 실수와 황당한 대응이 위기를 더 키운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평시에 경험해야 할 위기관리 목적의 훈련은 무엇인가. 가장 일반적인 것이 미디어트레이닝이다. 그리고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 위기관리 시뮬레이션, 대변인 트레이닝이 그 뒤를 잇는다. 나아가 고객, 정부, 기관, NGO, 지역 주민, 투자자, 노조 등 각 접점에서 벌어질 상황을 가정한 이해관계자 접점 시뮬레이션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안전 대피 훈련, 해킹 방어 훈련처럼 부서별 책임과 역할에 직결된 주제별 대응 훈련은 더욱 기본에 속한다. 이러한 훈련에 관심이 없거나, 기회가 없거나, 늘 부족한 상태로 위기를 맞는 기업은 그 대가를 고스란히 현장에서 치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에픽테토스는 “어려움이야말로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낸다”고 했다. 그는 레슬링 코치 비유를 하기도 했다. 신은 마치 거친 상대와 우리를 짝지어 주는 코치와 같아서, 그 힘겨운 상대를 통해 우리를 단련시킨다는 것이다. 단, 그는 분명히 덧붙였다. “그것은 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위기라는 거친 상대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그 이전에 흘려 두어야 할 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훈련은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에픽테토스는 또 이렇게 권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너 자신을 훈련하라. 그리고 거기서부터 더 큰 것으로 나아가라.” 위기관리 훈련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대규모 모의훈련을 이벤트처럼 치르고 끝낼 일이 아니다. 작은 상황 대응부터 반복적으로 몸에 새겨 두는 것이 핵심이다. 반복된 훈련은 위기의 순간, 판단의 속도와 정확성으로 되돌아온다. 이미 여러 번 겪어 본 상황과, 그 자리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은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훈련의 진짜 목적은, 예기치 못한 일격이 들어왔을 때 조직이 공황에 빠지지 않고 기본을 지키도록 만드는 데 있다. 화려한 묘수가 위기를 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기본기를 갖춘 조직이 황당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위기의 절반은 관리된다.

춤추는 자는 정해진 음악이 멈추면 길을 잃는다. 그러나 단련된 레슬러는 상대가 어떤 변칙을 걸어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기업 위기관리에도 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평시에 흘린 땀이, 위기의 순간 조직을 지탱하는 훌륭한 근력이 된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7월 022026 0 Responses

7. 미루는 사이, 골든타임은 흐른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CEO를 위한 스토익(Stoic) 위기관리 원칙

첫째, 위기는 무지가 아니라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둘째, 진짜 골든타임은 위기가 터진 뒤가 아니라 그 이전 평시에 흐르고 있다.

셋째, 방관,방치,방목을 멈추고, 미루어 둔 숙제를 오늘 시작하라

세네카는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는 것이다”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짧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는 한마디를 더 덧붙인다. “우리가 미루는 사이, 삶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 통찰은 2천 년의 시차를 건너 오늘날 기업 위기관리의 한복판에 그대로 꽂힌다.

많은 경영진이 ‘골든타임’을 위기가 터진 직후의 몇 시간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진짜 골든타임은 그 이전에,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평시에 이미 흐르고 있다. 위기를 막고 대비할 시간은 위기가 발생하기 한참 전부터 매일같이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을 우리는 무엇으로 보내고 있는가. 대부분은 ‘미루기’로 보낸다. 세네카의 말처럼, 오늘을 잃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은 ‘내일이면 되겠지’ 하는 기대다.

위기는 왜 발생하는가. 흔히 세 가지 ‘방’ 때문이라고 말한다. 방관, 방치, 그리고 방목이다. 위험의 신호를 보고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방관, 알면서도 손대지 않고 내버려 두는 방치, 아무런 관리 없이 그저 풀어놓는 방목이다. 주목할 점은 이 셋 중 어느 것도 ‘몰라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기는 무지(無知) 때문이 아니라 무관심(無關心) 때문에 발생한다. 답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미루어 둔 것이다.

이것은 밀린 숙제와 같다. 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학생도 안다. 다만 하지 않을 뿐이다. 심지어 가장 효과적인 시험 공부인 기출문제 풀이, 즉 다른 기업이 먼저 겪은 위기를 들여다보고 벤치마킹하는 일조차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위기가 정말 무섭냐고 물으면, 솔직한 속내는 ‘무섭다’가 아니라 ‘귀찮고 골치 아프다’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아니라 성가심. 바로 이 심리가 기업으로 하여금 준비도, 예측도 없이 골든타임을 흘려보내게 만든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 미루는 마음을 가장 날카롭게 경계했다. 에픽테토스는 제자들을 다그쳤다. “언제까지 너 자신에게 최선을 요구하기를 미룰 것인가. 너는 이제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그 시작으로 삼으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시 같은 말을 남겼다. “만 년을 살 것처럼 굴지 말라.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동안, 지금 선한 사람이 되라” 미루지 말고 지금 하라는 것, 그것이 그들이 평생 붙들었던 한 문장이다.

기업 위기관리도 마찬가지다. 미루어 둔 숙제는 위기라는 시험 당일에 반드시 심각한 성적표로 돌아온다. 그제야 부랴부랴 펜을 들어 보지만, 골든타임은 이미 다 흘러간 뒤다. 위기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위기를 자꾸 뒤로 미루는 그 마음이 무서운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기업의 골든타임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