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첫째, 위기가 발생하면 즉각 대응에 나서기 전에 해당 위기를 완전히 분석하라.
둘째, 분석이 끝나면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위기관리 목표를 세워 경영진이 합의하라.
셋째, 합의된 목표를 나침반으로 삼아 모든 대응 행동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정렬하라.
세네카는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목적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위기관리 현장에서 매일 확인되는 진실이다.
위기를 맞은 기업의 경영진을 보면 공통된 패턴이 있다. 위기 그 자체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다. 기사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소셜미디어의 흐름을 쫓고, 임직원들의 동요를 달래고, 규제기관의 동향을 살핀다. 분주하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생략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위기관리에서 목적과 목표를 세우는 일은, 위기를 완전히 이해한 이후에야 가능하다. 당면한 위기의 성격이 무엇인지, 이해관계자 구조는 어떤지, 법적·규제적 리스크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미디어와 여론의 동향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먼저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이 분석이 없는 상태에서 감으로 세우는 목표는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다.
분석이 완료되면 목적은 비교적 단순하게 정해진다. 전략적으로 적절하게 대응하여 기업의 일상적 운영 상태에 최대한 가깝게 위기를 관리해 내는 것. 이것이 위기관리의 보편적 목적이다. 하지만 목표는 다르다.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측정 가능해야 하며, 해당 위기의 특성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
유사한 위기를 맞은 세 기업을 상상해 보자. 첫 번째 기업의 위기관리 목표는 “부정 기사의 최소화”다. 이 기업은 언론사와의 관계 관리에 자원을 집중하고, 기사 건수를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기사 건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위기가 해소되는가? 이슈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은 채 언론 노출만 억제된 상황은, 이후 더 큰 폭발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 기업의 목표는 “부정 이슈 지속 기간의 단축, 1주일 이내 마무리”다. 이 기업은 속도에 집중한다. 이슈의 사이클을 빠르게 끊어내기 위해 선제적 입장 발표, 신속한 사과, 압도적인 재발 방지 대책 발표를 압축적으로 실행한다. 목표가 시간 기준이므로, 대응의 타이밍과 리듬이 달라진다.
세 번째 기업의 목표는 “해당 위기로 인한 검찰 개입의 사전 방지”다. 이 기업은 법적 리스크 관리에 최우선 자원을 배치한다. 대외 커뮤니케이션보다 규제기관과의 선제적 소통, 내부 감사와 자발적 시정 조치를 앞세운다. 물론 검찰을 자극할 만한 여론에 대한 적극적 대응은 기본이다.
같은 위기, 세 가지 목표. 각 기업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목표만 봐도 예측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후에 각 목표의 유효성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떠한 목표라도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다.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인간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판단이다.” 위기 앞에서 경영진이 오락가락하고, 같은 논의를 반복하고, 대응의 방향이 하루가 다르게 흔들리는 것은 대부분 목표가 없거나 목표가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가 없는 위기관리는 태풍의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배와 같다. 분주하게 노를 젓는다. 그런데 방향이 없으니 같은 자리를 맴돈다. 에너지는 소진되고, 조직은 지치고, 위기는 깊어진다. 경영진은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되는가”라고 탄식하지만, 열심히 한 것과 제대로 한 것은 다른 이야기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명상록’에 이렇게 썼다. “목적 없는 행동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그는 로마 제국의 수많은 위기 앞에서 매번 같은 질문을 먼저 던졌다. 우리가 지금 이 상황을 통해 도달해야 할 지점은 어디인가?
목적지 없이 출항하는 배는 없다. 적어도 정상적인 항해사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위기관리도 마찬가지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경영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의실에 모여 언론 대응 문구를 다듬는 것이 아니다. 당면한 위기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우리가 이 위기를 통해 도달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먼저 합의하는 것이다.
세네카의 말을 다시 꺼낸다. 목적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 위기관리라는 바다에서, 나침반은 목표다. 그 나침반을 세우는 것이 위기관리의 진짜 출발점이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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