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기업이 묻고 컨설턴트가 답하는 형식으로 실무 질문을 다룹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받은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한 편에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 회사가 언론에 관심이 없는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는 언론관계에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홍보실 직원들도 기자 전화를 피하고, 기자들은 또 반대로 홍보실이 일을 못한다고 하고 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심지어 회사에서는 언론기사도 직원들에게 공유하지 말라고 하는 정도입니다. 이런 기반에서 위기관리가 가능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솔직하게 답을 드리면, 그 기반에서 위기관리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위기가 왔을 때 회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원리는 단순합니다. 평시에 언론관계가 없는 기업은, 위기 시에도 언론의 지원이나 동의 없이 그 상황을 홀로 견뎌야 합니다. 우리 입장을 한 번 들어봐 줄 기자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써 줄 데스크도 없는 채로 말이지요. 급해진 기업들은 그때 가서야 언론관계를 ‘사오려’ 합니다. 광고를 급히 집행하고, 처음 보는 기자들에게 식사 자리를 청합니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합니다. 관계라는 것은 필요할 때 사오는 물건이 아니라, 필요 없을 때 쌓아 두는 저축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딱히 언론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정부, 기관, NGO, 노조, 거래처, 고객. 그 누구도 평시 관리 수준 이상으로, 그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위기 시에 협조해 주지 않습니다. 입장을 바꿔 보시면 금방 이해가 될 겁니다. 평소 연락 한 번 없던 사람이 곤경에 빠졌다며 갑자기 도움을 청해 온다면, 누가 얼마나 마음을 내시겠습니까. 위기 시 이해관계자의 협조는 평시 관계의 잔고 안에서만 인출됩니다.

    그런데 질문 중에 사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언론기사를 직원들에게 공유하지 말라고 한다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조직 전체가 회사의 기준에 따라 정무감각과 여론 읽는 역량을 기를 통로를 스스로 차단하는 셈입니다. 부정기사라도 회사의 공식입장을 담아 내부에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직원들이 ‘회사는 이 사안을 이렇게 본다’는 기준을 갖게 되지요. 긍정적인 기사는 또 어떻습니까. 직원들의 사기를 올리고, 회사의 핵심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는 훌륭한 교재입니다.

    기사를 차단한다고 해서 직원들이 회사 소식을 모르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공식 통로가 닫히면 직원들은 사적인 경로로 온갖 회사 정보를 취합니다. 단체 대화방에서, 익명 게시판에서, 소문으로 말이지요. 거기에는 회사의 입장도, 사실 확인도 없습니다. 조직 전체가 같은 사실을 같은 기준으로 이해한다는 얼라인먼트(alignment) 개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위기가 터지면 이 구조는 그대로 드러납니다. 직원들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밖에서 주워듣고, 저마다 다른 말을 밖으로 옮기는 것이죠.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평시에 하는 것을 보면, 위기 시에 할 수 있는 것이 보입니다. 평시에 언론과 등을 돌린 회사가 위기 때 언론의 이해를 얻을 수는 없고, 평시에 직원과 정보를 나누지 않은 회사가 위기 때 직원들의 한목소리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그 기반은, 위기관리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우려스러운 체계입니다. 위기가 오기 전에, 닫아 둔 문부터 하나씩 열어 두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

  • 사과보다 선행해야 하는 것?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위기관리 관점에서 사과 방식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 스터디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기업의 사과 사례를 모으고, 사과문 구조와 메시지를 분석하고 있지요. 저희도 사과문을 내 본 경험이 있는데, 이런 준비가 더 나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준비에 대한 조언이 있으실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일반적으로 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사과문을 붙들고 씨름하는 기업이 대부분인데 그런 준비를 미리 하신다니 대단합니다. 홍보실이 고민해 문안을 쓰고, 고치고, 여기저기 검수를 받는 데 아까운 시간을 다 빼앗기는데 말이죠. 그렇게 형식과 전략, 프로세스를 미리 개발해 공유해 두신다면 실제 위기 때 훨씬 수월하고 신속하게 제대로 된 사과문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준비 과정에서 꼭 함께 짚어 보셨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사과가 사과 자체로 홀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사과가 존재하려면 그 앞에 맥락(context)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왜 벌어졌고, 누가 어떻게 다쳤으며, 사람들은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가. 그리고 사과하는 기업 측에서 그 맥락 전반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런 이해 없이 내놓는 사과는 진짜 사과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진짜냐 아니냐’의 기준은 문구나 형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과를 받는 대상이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곧 수용성(acceptance)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은 문장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과가 아니지요. 그래서 맥락에 대한 기업측의 이해가 핵심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얼핏 그런 이해라는 것이 쉬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기업이 바로 이 이해의 단계에서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습니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어디까지가 우리 책임인지에 대해 부서마다 의견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시간에 쫓기지요. 결국 이해가 일부만 진행된 상태에서 “사과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일단 하자”는 결론으로 떠밀려 갑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어설픈 사과의 상당수가 이렇게 태어납니다.

    그러니 사과문의 형식을 연구하시는 만큼, 이 이해의 과정과 방식에 대한 내부 고민도 함께 해 두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이해를 잘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핵심은 하나 있습니다. 기업의 정무감각입니다. 달리 말하면 기업의 입장에서 여론을 읽고 공감하는 역량이지요. 이것은 매뉴얼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연마해야 하는 것이고, 그중 상당 부분은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영역입니다.

    이런 전제와 선행 없이 맨 끝단의 사과에 대해서만 체계를 만든다는 것은, 영혼 없는 마네킹을 만드는 일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옷은 잘 갖춰 입었고 자세도 반듯한데, 정작 아무도 그 앞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죠. 사과문의 구조를 연구하시는 그 스터디에, ‘우리는 이 맥락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를 묻는 단계를 가장 앞에 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사과의 품질은 결국 거기서 갈릴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

  • 합의하라고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여러 유명 연예인의 스캔들을 보며, 저희 회사 소속 연예인들과 관련해서도 예상 못한 스캔들 발생시 대응 전략과 방안을 미리 마련해 놓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로펌이나 위기관리 자문 펌에서도 공히 상대측과의 조기 합의를 가장 우선순위로 조언하더군요. 무조건 합의하는 게 맞는 걸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미리 대비하시겠다는 접근이 훌륭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자문사들의 조언이 맞습니다. 다만 ‘무조건’이라서 맞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조언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논리가 있어서 맞는 것입니다. 그 논리를 순서대로 짚어 보지요.

    먼저, 위기관리에서는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한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스캔들이 터진 순간 언론의 보도, 대중의 분노, 온라인의 확산은 이미 통제 밖입니다. 그 국면에서 당사자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하나입니다. 상대방과의 관계, 곧 합의입니다. 통제 불가능한 여론과 싸우는 데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유일한 영역에 집중하는 것. 위기관리의 기본 원칙이지요.

    다음으로, 위기관리의 목적과 목표를 정확히 정해야 합니다. 이런 유형의 스캔들 대응에서 해당 연예인이 유일하게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연예계 생활의 지속가능성 확보’입니다. 억울함의 해소도, 진실 공방의 승리도, 여론전의 승리도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소송에서 이기고 연예계를 떠나게 된다면, 그 위기관리는 실패한 것이죠. 목적이 이렇게 정해지면 모든 판단의 기준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이 선택이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되는가?’

    그 기준 위에서 전략의 저울을 재 보십시오. 조기 합의해서 잃을 손실과, 하지 않아서 잃을 손실을 각각 확정해 보는 것입니다. 합의의 손실은 대개 돈과 자존심으로, 규모가 예측됩니다. 반면 합의 없이 공방이 길어질 때의 손실은 예측조차 되지 않습니다. 보도가 이어지는 하루하루가 이미지의 손실이고, 광고와 작품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이 실제 손실인 거죠.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는 자명합니다. 최악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그 저울 위에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간혹 이런 걱정으로 조기 합의를 주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합의해 주면,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유사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이런 생각을 하는 연예인이라면 이후에도 지속가능성 확보는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유사 문제 제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은, 곧 유사한 문제가 더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합의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관리의 문제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합의는 ‘조기’ 합의만 유효합니다. 여론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뒤의 중간 합의, 모든 것이 소진된 뒤의 최종 합의는 상대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잃을 것을 다 잃은 뒤의 합의는 대부분 목적 달성, 즉 지속가능성 확보에 유효하게 이바지하지 못합니다. 같은 값을 치르고도 초기의 합의는 위기를 봉합하지만, 늦은 합의는 봉합할 것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요.

    합의하십시오. 최대한 빨리 하십시오. 그 대응만이 통제 가능한 유일한 지점에서, 유일한 목적을 위해, 저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논리를 조직과 소속 연예인들이 평시에 공유해 두는 것, 그것이 지금 준비하실 대응 전략의 핵심일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

  • 위기, 이렇게 라도 끝낼 수 있다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기업이 발생된 위기를 종결시키는 방식, 예를 들면 사업 철수, CEO 교체, 법적 판결 수용 같은 것으로, 극대화된 위기상황을 종결로 이끈다는 전략이 있더군요.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이런 강력한 결정으로 대형 위기를 종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먼저 한 가지 전제부터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를 기업이 ‘종결시킨다’는 표현 속에 담긴 생각이 그것입니다. 과연 위기의 종료를 기업이 결정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기의 종료는 기업이 선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를 지켜보던 이해관계자들 전반의 공유된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언론이 관심을 거두고, 여론이 시선을 옮기고, 피해자와 규제기관이 각자의 정리를 마치는, 공식 문서 한 장 없는 비공식적 흐름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합의이지요. 기업은 그 합의의 형성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입니다. 위기를 우리 손으로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은, 통제 불가능한 것을 통제 가능하다고 믿는 위험한 착각입니다.

    그렇다면 말씀하신 사업 철수, CEO 교체, 법적 판결의 수용 같은 강력한 결정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종료의 ‘선언’이 아니라, 거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종료를 ‘구매’하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사업 철수는 사업 그 자체를 지불한 것입니다. CEO 교체는 리더십을 지불한 것이지요. 이해관계자들이 ‘이 정도면 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값을 치르고, 그들의 합의를 앞당겨 사 오는 것입니다.

    구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곧 권한의 증거는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심판에게 몰수패를 요청해 경기를 끝내는 것과 같습니다. 경기는 분명 끝났지만 누구도 그것을 경기 운영 능력이라 부르지 않지요. 오히려 그 거대한 가격표야말로, 위기의 종료 시점을 기업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사실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스스로 끝낼 수 있었다면 그런 값을 치를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 방식이 효과적인가’가 아닙니다. ‘왜 이런 대가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가’입니다. 사업과 리더십을 내놓아야만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얻을 수 있는 지경이라면, 그 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관리의 영역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 앞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위기관리의 정의가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적시에 하는 것. 이 정의는 궁지에 몰려 사업과 CEO를 내놓는 순간에 구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의 초기에, 더 정확히는 위기가 오기 전 평시에 구현되는 것입니다. 제때 치렀어야 할 작은 비용을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에 가장 비싼 값으로 한꺼번에 치르는 것. 그것을 전략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강력한 결정으로 위기를 끝내는 장면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관리의 성공이 아니라, 위기관리에 실패한 기업이 지불하는 최후의 계산서에 가깝습니다. 그 계산서를 받아 들기 전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 위기 종료의 진짜 열쇠는 거기에 있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

  • 말실수 좀 했다고 큰 문제가 되나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경쟁사 공장 사고 위기관리를 면밀히 분석해 보고 있는데요. 당시 대표나 공장장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말 실수를 여러 번 하더라고요. 저희는 깜짝 놀랐는데요. 이후 그 말실수를 지적하는 부정기사 몇 개 외에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말실수하지 말라는 조언은 약간 과장된 거 아닐까요?

    날카롭게 보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경쟁사의 말실수가 아니라, 그 장면을 보시고 대표님이 내리신 결론입니다. “말실수해도 별 문제 없더라”는 결론 말입니다.

    잠깐 사업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대표님은 경쟁사 제품에 결함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왜 그런 결함이 생겼는지 뜯어보고, 우리 제품에는 그런 문제가 없도록 개선하시지요. 그렇게 남의 약점을 우리의 강점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경쟁력입니다. 옛말로 타산지석입니다. 남의 산에 있는 거친 돌로 내 옥을 간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상한 건 유독 위기관리에서는 이 타산지석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쟁사의 사고 대응을 그렇게 면밀히 지켜보시고도, 대표님이 얻으신 결론은 “말실수, 별거 아니네”였습니다. 만약 제품이었다면 어떠셨을까요. 경쟁사의 불량품이 어쩌다 리콜을 피해 갔다고 해서, “저 정도 불량은 괜찮구나”라고 결론 내리진 않으셨을 겁니다.

    말실수도 똑같습니다. 그 경쟁사가 넘어간 것은 말실수가 무해해서가 아닙니다. 결함 있는 제품이 운 좋게 리콜을 피한 것과 같습니다. 사고 자체가 워낙 커서 말실수가 묻혔을 수도, 더 큰 뉴스가 관심을 가져갔을 수도, 회사의 평판 체력이 버텨 줬을 수도 있습니다. 조건이 조금만 달랐다면, 인명 피해가 조금만 더 무거웠다면, 그 한마디는 유가족의 마음에, 수사기관의 심증에, 법정의 판단에 그대로 새겨졌을 겁니다. 결함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가려졌을 뿐이지요.

    그 사례에서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은 정반대입니다. “말실수해도 괜찮다”가 아니라 “우리는 절대 저렇게 하지 말자”입니다. 경쟁사가 카메라 앞에서 흔들렸다는 것 자체가, 사전 준비와 대변인 훈련이 부족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지점을 보고 준비하고 훈련하면 됩니다. 그것이 위기관리의 경쟁력입니다.

    왜 우리는 유독 위기관리에서만 이 좋은 교본을 덮어 둘까요. 제품 경쟁은 매출과 점유율로 당장 성적표가 나오니 다들 열심히 배웁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역량은 평시에는 티가 나지 않습니다. 위기가 터지지 않으면 아무도 그 준비를 알아주지 않지요. 게다가 남의 위기는 ‘우리 일이 아니다’라며 밀어 두기 쉽고, 위기관리를 꾸준한 경쟁력이 아니라 한 번의 사고 대응쯤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경쟁은 제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관리에서도 합니다. 경쟁사의 그 말실수는, 대표님께 공짜로 배달된 기출문제입니다. 그 문제집을 덮지 마시고, 우리 대변인의 훈련 교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남의 실수에서 배우는 회사와, 그것을 남의 일로 흘려보내는 회사. 다음 위기 앞에서 두 회사의 격차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 우리 같은 조그만 회사도 위기관리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저희 회사는 지방에서 사업을 하는 조그만 중소기업입니다. 직원도 100명이 채 안 되고요. 지역에서는 오래된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유명하거나 큰 기업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업에게 위기관리 체계와 역량을 계속 강조하시던데, 저희 같은 규모의 회사도 그렇게 해야 할까요?”

    먼저 대표님이 ‘위기관리’라는 개념을 어떻게 그리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아마도 대기업의 홍보실과 두꺼운 매뉴얼, 별도의 예산과 조직 같은 것을 떠올리고 계실 겁니다. 만약 위기관리가 그런 것이라면, 대표님 회사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점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표님 회사에 필요한 위기관리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질문 속에 이미 답의 실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대표님은 “지역에서 오래된 회사로 알려져 있다”고 하셨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수십 년 걸쳐 지역에서 쌓아 온 그 신뢰가, 대표님 회사가 가진 가장 값진 자산입니다. 유명하지 않다는 것과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오래 공들여 쌓은 신뢰일수록, 한번 금이 가면 회복에 몇 배 시간이 걸립니다. 대기업의 명성은 광고로도 사지만, 지역의 오래된 신뢰는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위기관리란 무엇일까요. 거창하게 볼 것이 없습니다. 그 오래된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 그것이 대표님께 필요한 위기관리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대표님은 이미 그 일을 매일 하고 계십니다. 현장의 안전을 살피고,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키고, 직원들의 사기를 챙기고, 자금이 막히지 않도록 신경 쓰는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위기관리입니다. 대표님은 이미 이 회사의 위기관리 책임자이신 셈이지요.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 일을 ‘무의식적으로, 마주치는 대로’ 하고 계실 뿐입니다. 위기관리라고 부를 만한 것은, 그 일을 ‘의식적으로, 미리’ 하는 것입니다. 그 작은 차이가 위기의 순간에는 생각보다 큰 격차를 만듭니다.

    지금까지 큰 탈 없이 회사를 잘 이끌어 오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위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운이 좋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위기가 아예 없는 회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다만 그 위기가 아직 대표님을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지요.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이야말로, 작은 회사를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제가 권해 드리는 것은 거창한 준비가 아닙니다. 우리 회사에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한두 가지를 평온한 지금 미리 떠올려 보시는 것, 그때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지를 마음속에 그려 두시는 것, 그리고 회사의 앞날을 쥔 몇몇 사람과 평소 신뢰를 두텁게 해 두시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돈이 드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한 번 먹는 일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위기관리는 회사를 크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오래 지켜 온 것을 지키는 일입니다. 대표님 회사는 유명하지 않아서 위기관리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오래 신뢰받아 왔기에 더더욱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규모가 작다는 것은 위기관리를 건너뛰어도 되는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더 조심히 지켜야 할 이유인 것이지요.

  • CEO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저희 대표께서는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말도 못하면 되겠냐 한탄을 하십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그런 권리를 행사하면 왜 안되냐는 거죠. 홍보실에서는 계속 불안합니다. 기자들과의 자리는 만들지 않으면 되는데, 개인적으로 하시는 소셜미디어가 문제지요. CEO의 표현의 자유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홍보실의 그런 불안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대표님의 한탄도 이해는 됩니다. 다만 이 문제를 ‘표현의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기 시작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대표께도, 저에게도,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걸 부정할 사람은 없지요.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말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 말한 뒤의 책임까지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누구도 대표님의 입을 막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활을 떠난 화살과 같습니다. 쏠 자유는 있어도, 그 화살이 날아가 일으킨 일까지 없던 일이 되지는 않지요. 원치 않는 오해를 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법적인 다툼으로까지 번집니다. ‘말할 자유’는 있어도 ‘그 말의 결과에서 도망칠 자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 이것이 표현의 자유의 진짜 얼굴입니다.

    여기에 CEO라는 자리의 특별함이 더해집니다. 대표님은 회사를 ‘내 회사’라고 느끼시겠지만, 조금 냉정하게 보면 회사와 주주로부터 경영을 ‘맡은’ 사람입니다. 남의 소중한 것을 대신 맡아 지키는 자리라는 뜻이지요. 이런 사람을 법에서는 ‘수임자’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피듀시어리(fiduciary)’라고 하는데, 말은 거창해도 뜻은 단순합니다. 나를 믿고 맡긴 사람들의 이익을 내 기분보다 앞에 두어야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갈등이 생깁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개인’과, 맡은 것을 지켜야 하는 ‘수임자’가 한 사람 안에서 부딪히는 것이지요.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제 기분대로 핸들을 꺾을 수 없듯, 회사를 맡은 사람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둘을 다 가지려 하니 늘 갈등과 스트레스가 따라오는 것이죠. 결국 어느 하나는 택하셔야 합니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사실지, 책임 있는 수임자로 사실지.

    그렇다면 CEO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요. 바로 회사 이야기 안에서입니다. 회사의 비전과 미션, 지켜야 할 가치와 원칙, 우리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조직문화까지. 대표님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쏟아부어도 좋을 주제가 회사 안에 이미 넘쳐납니다. 사실 이것들만 부지런히 이야기해도 하루가 모자란 것이 CEO입니다. 표현의 욕구는 바로 그 넓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푸시면 됩니다.

    사회적으로 구설에 오른 CEO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분들의 ‘하고 싶은 말’은 예외 없이 ‘그만한 책임’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놓고 하면 안 될 말’만이 아닙니다. CEO가 한 말 가운데 조금이라도 ‘적절하지 않은 말’은, 그게 무엇이든 문제가 됩니다. 그 기준은 개인의 상식이 아니라 맡은 자리의 무게에 맞춰지니까요.

    정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 싶으시다면, 그건 은퇴 후에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돌아가 마음껏 찾으시면 됩니다. 그 자리에 계신 동안만큼은, 하고 싶은 말보다 지켜야 할 책임이 늘 반걸음 앞선다는 것. 이것이 CEO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답일 것입니다.

  • 직원의 실수로 벌어진 위기인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번 사건도 그렇습니다. 이건 엄연히 저희 직원이 직무상 실수를 해서 발생된 사건입니다. 그에 대해서 회사가 해당 직원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 내부적으로 조치를 했고, 대표께서도 도의적으로 사과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계속 회사를 비판하는데요.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먼저 조금 냉정한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느끼시는 억울함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실수한 직원에게 책임을 물었고, 대표께서 도의적 사과까지 하셨는데도 비판이 이어지니 심하다 느끼실 만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위기의 책임은 실수한 그 직원 개인보다 오히려 회사 쪽이 더 큽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을 회사가 놓치고 있기에 비판이 잦아들지 않는 것이지요.

    영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이 제시한 ‘스위스 치즈 모델(Swiss Cheese Model)’이라는 유명한 사고 이론이 있습니다. 큰 사고가 터지면 사람들은 대개 실수한 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대형 사고는 결코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직에는 여러 겹의 방어선이 있습니다. 설계, 검수, 결재, 교육, 감독, 그리고 조직문화까지. 마치 구멍이 숭숭 뚫린 치즈를 여러 장 겹쳐 놓은 것과 같지요. 평소에는 한 겹이 뚫려도 다음 겹이 막아 줍니다. 그런데 이 구멍들이 어느 순간 일직선으로 정렬되는 순간, 위험은 그대로 관통해 사고로 터지고 맙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사고가 최일선 담당자의 손에서 터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검수와 결재, 교육과 문화라는 방어선을 ‘모두 통과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순간적 실수 뒤에는, 그 실수를 걸러내지 못한 여러 겹의 구멍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구멍들은 대개 경영진의 판단과 조직문화 속에 오래 잠복해 있던 ‘구조적 결함’입니다. 다시 말해 직원은 방아쇠를 당겼을 뿐, 그 총에 실탄을 채우고 안전장치를 풀어 둔 것은 회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위기관리는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누가 실수했는가’를 찾는 데서가 아니라, ‘왜 우리의 방어선들이 한꺼번에 뚫렸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됩니다. 전자는 실수한 직원 한 사람을 징계하고 대표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후자는 회사의 시스템 그 자체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지금 공중이 비판을 거두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번 사건이 ‘어쩌다 한 직원이 저지른 일탈’로 정리되는 순간, 똑같은 사고가 언제든 다시 일어나리라는 것을 말이지요.

    이번 위기를 우연이나 개인의 일탈로 정의해 버리면, 문제의 핵심인 내부 체계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습니다. 구멍 뚫린 치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다음 사고는 예정된 수순이 되지요. 반대로 회사가 ‘이것은 우리 시스템의 문제였다’고 직시하고 그 방어선을 하나하나 손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비판은 잦아들고 신뢰는 회복의 길로 들어섭니다.

    직원의 실수를 감싸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실수를 개인의 것으로만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최일선의 실수를 걸러내는 것이 바로 회사의 체계이고, 그 체계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 경영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을 잠시 내려놓고 회사가 스스로 더 큰 책임을 지겠다고 나설 때, 그 위기는 비로소 반복의 고리를 끊고 관리되기 시작합니다.

  • 자극 없는 자극은 소멸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최근 한 업계의 담합 사실이 적발되어 크게 논란이 되는 상황을 모니터링 중인데요. 그 담합 제품을 받아 오래 사업해 온 곳에서 언론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담합 기업들에게 손해배상을 받아야겠다는 거죠. 저희가 볼 때는 그 회사들이 그런 자극에 대응해도 실익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아주 근본적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만으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착각이라는 사실입니다. 위기는 말로 풀리지 않습니다. 실제 행동과 커뮤니케이션이 함께 갈 때, 비로소 위기관리, 더 정확히 말하면 데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정도가 겨우 가능해질 뿐이지요.

    애초에 사후 위기관리에는 ‘성공’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위기가 발생한 그 순간, 위기관리는 이미 절반 이상 실패한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피해를 줄이기 위한 데미지 컨트롤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데미지 컨트롤 안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해낼 수 있는 몫은 생각보다 훨씬 제한적입니다.

    질문하신 다른 업계 상황도 본질은 같습니다. 담합이 적발된 회사들을 향해 거래처들이 손해배상을 외치며 대대적인 언론전을 펼치고 있다 하더라도, 그 회사들이 커뮤니케이션으로 맞대응 해 얻을 실익은 없습니다. 효과도 없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말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담합이라는 행위와 그로 인한 실제 피해, 그 자체가 본질인 사안에 말의 응수를 더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는 일입니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드실 겁니다. 그렇다면 회사들은 ‘그저 침묵한 채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먼저 ‘침묵’입니다. 대응 실익이 없는 상황에서는, 침묵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때 ‘낫다’는 것은 옳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설프게 커뮤니케이션에 나서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낫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침묵이란 언론이나 매체를 통해 공중을 향해 메시지를 내보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공개 대응은 실익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잠잠해지려던 언론의 관심과 거래처의 분노를 계속 자극할 뿐입니다.

    자극 없는 자극은 소멸합니다. 상대가 던진 자극에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 자극은 갈 곳을 잃고 스스로 사그라듭니다. 그런데 ‘대응’이라는 명분으로 맞자극을 더하는 순간, 최초 자극을 시도했던 거래처는 더 큰 명분과 에너지를 얻어 그 공세를 더 오래, 더 강하게 키워 나가게 됩니다. 불은 끄겠다고 휘저을수록 더 거세지는 법이지요. 도전에 일일이 응전하지 않는 것, 그것 역시 하나의 전략, 곧 전략적 침묵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전략적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말을 아끼는 그 시간에도, 거래처와의 수면 아래 협의와 논의는 멈추면 안 됩니다. 겉으로 조용한 기업이 물밑에서는 오히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공개 대응을 멈추는 것과 문제 해결을 멈추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진짜 위기관리는 늘 조용한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 창구일원화가 부담되는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전문가들이 평시나 위기 시 창구일원화를 많이 강조하시는데요. 사실 저희 홍보실은 창구일원화가 부담이 됩니다. 저희에게 아무 정보가 없는데, 기자 문의를 받는 것이 힘듭니다. 차라리 각 부서에서 기자들에게 잘 답변해 주면, 결과가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컨설턴트의 답변

    어떤 상황인지 알겠습니다. 정작 손에 쥔 정보는 없는데 기자 문의는 홍보실로 쏟아지니 창구일원화가 부담스럽다는 말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부담의 원인을 창구일원화에서 찾으시면 해법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니 문제입니다.

    창구일원화는 전 세계 대부분 기업이 평시와 위기 시를 막론하고 사내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거의 모든 기업이 같은 원칙을 채택해 실행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창구가 여럿으로 흩어졌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창구를 하나로 모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보다 훨씬 많고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지요.

    창구가 다변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같은 사안을 두고 부서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갑니다. 영업, 생산, 법무, 인사가 제각각의 사실관계와 해석을 내놓는 순간, 기업은 스스로 모순된 메시지를 외부에 노출하게 됩니다. 기자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습니다. 부서를 한 곳씩 찔러 보며 가장 말이 헐거운 약한 고리를 공략하고, 거기서 나온 한마디가 회사의 공식 입장으로 둔갑해 보도됩니다.

    준비되지 않은 담당자의 부주의한 발언 하나가 법적 리스크로 번지기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통제 불능입니다. 누가,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회사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위기 시 책임 소재마저 흐려집니다. 톤과 수위가 제각각인 목소리들은 결국 내부 혼선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구 다양화가 꼭 필요하다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다변화가 목소리까지 갈라지는 상태라면, 다양화는 창구의 수만 늘고 목소리는 하나로 유지되는 체계입니다. 첫째, 부서별로 언론 창구를 공식적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다양화란 ‘아무나’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사람만 답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둘째, 그렇게 임명된 창구들은 집중적인 대변인 트레이닝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 각 대변인은 언론의 문의를 받는 즉시 그 사실과 내용을 실시간 수준으로 홍보실과 공유해야 합니다. 이런 내부 체계와 공적 실행이 갖춰지지 않은 채 창구만 흩어 놓는다면, 그것은 최악의 상황을 부르는 길입니다. 나아가 이는 홍보실의 직무유기와도 맞닿는 문제이기에,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부서별 공식 창구를 임명하고, 그들을 훈련시키고, 실시간 공유 체계를 만들고, 그 다수 대변인을 지속적으로 관리,점검,감독하는 일. 이 모든 수고를 감당하시겠습니까? 그 복잡한 길보다 훨씬 단순하고 확실한 길이 있습니다. 바로 내부에서 홍보실로 중요한 정보와 자료가 흘러 들어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홍보실이 사내에서 정보에 대한 임파워먼트를 확보하여, 명실상부한 유일의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홍보실이 힘든 진짜 이유는 창구일원화 그 자체가 아닙니다.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창구를 흩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홍보실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정보 없는 창구는 부담이지만, 정보를 쥔 창구는 기업의 강력한 방패입니다. 홍보실의 존재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관련 개념 ·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 창구일원화와 창구다양화는 어떻게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