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022026 0 Responses

3. 위기란 ‘언제’에 관한 것이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어느 기업 임원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회사는 지금까지 큰 위기 없이 잘 왔습니다. 앞으로도 큰 이상이 없으면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회사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위기를 ‘발생 여부’의 문제로 보는 경영진은, 위기가 실제로 닥쳤을 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은 유형이다. 위기는 ‘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올 것인가’의 문제다. 이 명제를 받아들이는 순간, 위기를 대하는 경영진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죽음을 피할 수 없듯, 위기도 피할 수 없다

세네카는 기원후 64년, 로마 대화재가 리옹을 집어삼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편지를 썼다. “도시 하나가 하룻밤에 사라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놀라는가. 불, 홍수, 전쟁, 질병. 이것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가 외면했을 뿐이다.”

세네카가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재앙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예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 “어떤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 일이 닥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겪어보아야 한다.”

이것이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하는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Praemeditatio Malorum)이다. 직역하면 ‘나쁜 일들에 대한 사전 숙고’. 현대적 언어로는 ‘부정적 시각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로서 매일 아침 이 훈련을 실천했다. ‘명상록’ 전반에 걸쳐 그는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어떤 인간을 만나게 될지를, 어떤 실패와 좌절이 기다리는지를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나서 하루를 시작했다.

이 훈련의 목적은 비관론이 아니다. 패배주의적 낙담은 더더욱 아니다. 최악을 미리 직면함으로써, 실제 위기 앞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렇게만 잘 하면 위기는 없다”는 착각

기업 경영진에게는 세 가지 위기관에 대한 착각이 공통적으로 목격된다.

첫 번째는 “이렇게만 잘 가면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관리 착각이다. 규정을 지키고, 내부 감사를 하고,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면 위기를 차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런 노력이 위기 발생 확률을 낮추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로(0)로 만들지는 못한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없었으니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경험 착각이다. 과거의 평온함이 미래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논리는, 통계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위기는 대개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장 취약한 지점에서 발생한다.

세 번째는 “위기는 문제 있는 회사에게 생기는 것”이라는 타자화 착각이다. 이 착각은 가장 위험하다. 위기를 ‘우리 밖의 이야기’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어떤 내부 준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네카라면 이 세 가지 착각 모두에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네가 그것을 예상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 그것이 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최악을 직면하는 것이 진짜 위기관리의 시작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을 기업 위기관리에 적용하면 실천적 질문은 하나로 압축된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도 반드시 막아야 할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경영진이 불편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평판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시나리오, 핵심 인물의 돌발적 일탈, 협력사의 연쇄 부도, 내부 고발과 미디어의 동시 공세, 규제기관의 갑작스러운 조사. 이런 시나리오를 회의실에서 꺼내 놓는 것 자체를 불길하게 여기는 경영진이 많다. 하지만 정확히 그 불편함을 회피하는 순간, 준비는 멈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훈련을 ‘사전에 상처를 입어두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마음속에서 그 상황을 한 번 겪었다면, 실제로 닥쳤을 때 공황 상태 없이 대응할 수 있다. 이것이 스토아적 위기관리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위기관리는 예언이 아니라 준비의 문제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최악을 미리 상상하는 것이 실제로 준비에 도움이 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실제 위기 현장에서 수없이 확인되었다.

위기 대응 속도와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그 순간의 판단력’이 아니다. ‘그 이전에 얼마나 그 상황을 생각해 두었는가’다. 위기 시뮬레이션을 정기적으로 실시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자는 논의의 출발점이 ‘이미 생각해 둔 것’이고, 후자는 출발점 자체를 그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

세네카는 루킬리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을 마음속에 품고 잠들어라. 그러면 그것들이 닥쳤을 때, 너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CEO에게 위기관리란 결국 이것이다. 위기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올 것을 알고 준비하는 것. 위기는 ‘언제’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언제’를 앞서 살아보는 훈련이 곧 가장 강력한 위기 대비책이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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