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2026 0 Responses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창구일원화는 기업이나 조직이 평시와 위기 상황에서 외부로 나가는 모든 메시지를 하나의 창구(부서)와 지정된 책임자를 통해서만 내보내는 원칙을 말한다. 목적은 커뮤니케이션의 통제가 아니라 일관성 확보다. 같은 사안에 대해 회사가 여러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순간, 그 자체가 새로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공문 한 장으로는 실현되지 않는다

위기가 발생하면 대개 전 임직원 언론 응대 금지, 모든 문의는 홍보팀으로라는 공문이 내려간다.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창구일원화는 실패한다. 기자는 홍보팀에서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자신이 아는 임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한다. 그리고 열에 아홉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만다.

평시의 훈련이 있어야 흉내라도 낼 수 있다

창구일원화가 작동하려면 전 임직원이 사전에 반복해 교육받고 훈련받아야 한다. 왜 한 사람만 말해야 하는지, 연락이 오면 무엇이라고 답하고 어디로 넘겨야 하는지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위기 시에 지시만 하면 다 된다는 상상은 금물이다.

온라인에서는 더 어렵다

개인 소셜미디어와 익명 커뮤니티까지 포함하면 창구는 사실상 무한대로 열려 있다. 하지 말라고 해서 기업 구성원 모두가 따르지도 않는다. 여기에서는 통제보다 이해가 먼저다. 지금 왜 한 목소리가 필요한지를 구성원이 납득하면, 통제 없이도 상당 부분 정렬된다.

창구일원화는 입을 막는 원칙이 아니라, 회사가 하나의 방향으로 말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8월 112026 0 Responses

전략적 침묵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전략적 침묵은 지금 말하지 않는 편이 위기관리 목적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해 선택한 침묵을 말한다. 실익과 손실을 저울에 올려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판단 자체가 멈춰 버린 마비 상태와는 전혀 다르다.

겉모습은 같아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르다

밖에서 보면 전략적 침묵을 택한 기업과 단순히 마비된 기업은 둘다 모두 조용하다. 그러나 전략적 침묵을 택한 기업은 그 시간에 사실을 확인하고 다음 소통을 준비한다. 반면 마비된 기업은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낸다. 판별 질문은 하나다. 지금 말하지 않는 이유를 조직이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있는가. 답이 나오면 전략이고, 나오지 않으면 마비다.

침묵도 하나의 메시지다

기업은 어떤 경우에도 소통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지 않는 것 역시 이해관계자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래서 전략적 침묵은 말을 아끼는 기술이 아니라, 침묵이 어떤 메시지로 읽힐지를 미리 계산하고 그 해석을 감당하기로 결정하는 행위다.

가장 어려운 것이 침묵이다

현장에서 전략적 침묵을 끝까지 유지하는 조직은 그리 많지 않다. 위기시 전략적 침묵을 택한 뒤 며칠이 지나면 내부에서 반드시 반대 의견이 올라온다.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느냐, 최소한 해명은 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들이다. 그 압박이 쌓이면 원래의 기조는 대개 무너진다. 전략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버티기 어려워 포기하는 것과 판단해서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말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도 시한과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침묵은 전략이 아니라 방치다.

8월 112026 0 Responses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홀딩 커뮤니케이션은 사실 확인이 완전하지 않은 위기 초기 국면에서, 침묵도 확정 발표도 아닌 중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내보내는 최소한의 공식 메시지를 말한다. 상황을 인지하고 있고, 확인 중이며, 정리되는 대로 알리겠다는 세 가지가 뼈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위기 초기에 기업이 침묵하면 그 공백은 다른 사람들의 추측과 해석이 그 자리를 채운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은 아직 답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공백을 최소화 하기 위한 장치다. 내용이 없어 보이지만, 이 회사가 상황을 인지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하나를 분명히 전달한다.

시간을 벌되, 그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시간을 버는 것이다. 문제는 번 시간을 쓰지 않는 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확인 중이라고 해 놓고 실제로 확인하지 않으면 다음 국면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고, 그때부터 이 메시지는 회피로 읽힌다. 여기에는 반드시 다음 소통의 시점이 함께 계산돼 있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확인해주지 않는다

초기에 흔한 실수가 확인되지 않은 원인이나 책임 범위를 미리 언급하는 것이다. 나중에 사실이 달라지면 그 문장이 그대로 발목을 잡는다. 이 단계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 지금 하고 있는 조치, 다음에 알릴 시점까지다.

짧고 밋밋해 보이는 이 메시지 한 줄이 실제로는 가장 판단이 많이 필요한 문장이다.

8월 112026 0 Responses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슈관리는 아직 위기가 되지 않은 문제를 다루는 활동이고, 위기관리는 그 문제가 이미 표면화되어 이해관계자가 반응하기 시작한 상황을 다루는 활동이다. 둘을 가르는 기준은 사안의 크기가 아니라 시간의 주도권이 어느 쪽에 있느냐다.

이슈는 우리가 시간을 쥐고, 위기는 상대가 쥔다

이슈 국면에서는 기업이 언제 무엇을 할지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자료를 더 모을 수도 있고, 구조를 고칠 수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할 수도 있다. 위기 국면에서는 그 선택권이 사라진다. 언론의 마감 시각과 이해관계자의 반응 속도가 일정을 대신 정한다. 같은 사안이라도 이 선을 넘어가는 순간 다루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대부분의 위기는 관리되지 않은 이슈였다

현장에서 만나는 위기의 상당수는 예고 없이 찾아온 사건이 아니다. 내부에서 이미 알고 있었고, 몇 차례 보고도 올라갔으며, 그때마다 뒤로 미뤄진 사안이 어느 날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이슈관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조직에서 위기의 총량이 줄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활동은 필요한 역량이 다르다

이슈관리에 필요한 것은 감지와 분석, 그리고 내부를 정렬하는 힘이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안에 자원을 쓰자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기관리에 필요한 것은 속도와 일관성, 그리고 감정을 통제하는 힘이다. 한쪽을 잘한다고 다른 쪽을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

이슈관리를 건너뛴 조직은 위기관리를 자주 하게 된다. 자주 하면 익숙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번 처음처럼 흔들린다.

8월 112026 0 Responses

위기관리 골든타임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에서 골든타임은 기업의 대응이 당면한 위기 상황의 방향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적절한 시간대를 말한다. 통상 위기가 표면화된 뒤 24시간 이내로 본다. 이 시간을 지나면 같은 대응을 해도 효과가 급격히 떨어지고, 기업은 상황을 이끄는 위치에서 끌려가는 위치로 내려앉는다.

시계는 사고 시점이 아니라 인지 시점부터 돈다

많은 기업이 사건이 발생한 시각을 기준으로 골든타임을 계산한다. 현장의 기준은 다르다. 이해관계자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시점부터 시계가 돈다. 사고가 사흘 전에 났더라도 오늘 아침 첫 기사가 나갔다면 골든타임은 오늘 아침부터다. 반대로 아직 내부에서만 알고 있는 사안이라면 골든타임은 시작되지 않았다. 그 시간은 대응이 아니라 준비에 쓸 수 있는 시간이다.

골든타임에 해야 할 일은 발표가 아니다

골든타임을 빨리 입장을 내는 시간으로 이해하면 오히려 위험해진다. 준비 없이 나간 말은 반드시 수정을 부르고, 수정이 반복되면 메시지의 신뢰가 먼저 무너진다. 이 시간에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확인된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분리하는 것, 피해자 및 핵심 이해관계자들과의 직접 소통할 창구를 여는 것, 지금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을 정해 내보내는 것이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조직의 공통점

대응이 늦는 조직은 대개 몰라서 늦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채 급조된 결정이 여러 단계의 보고를 거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늦는다. 골든타임은 실무의 속도보다 의사결정의 속도에 달려 있다.

골든타임은 시간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준비의 문제다. 평시에 결정 구조가 서 있는 조직만 그 귀중한 시간을 제대로 쓸 수 있다.

8월 112026 0 Responses

높이 올라 조망(眺望)하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플라톤의 가르침을 빌려 이렇게 권했다. 인간사를 논하려거든 높은 곳에 올라 지상의 일들을 내려다보라. 무리 지어 모인 사람들, 행군하는 군대, 농사와 혼인과 이별, 태어남과 죽음까지. 그는 황제의 격무 한가운데서도 이 조망 훈련을 반복했다. 눈앞의 소란에서 한 발 물러나 전체를 내려다볼 때, 비로소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큰 것을 보지 못해 실패하는 회사 보다, 작은 것에 매몰되어 실패하는 회사가 더 많다. 그런 회사에서는 사소한 온라인 뒷말에 대응 회의가 소집되고, 지엽적인 기사 한 줄에 조직이 들썩인다. 그러는 사이 정작 치명적인 위험은 아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점점 자라난다. 낮은 곳에 서 있으면 모든 이슈가 같은 크기로 보인다. 눈앞에 있는 것이 가장 커 보이는 착시 때문이다.

모든 이슈에 전력으로 대응하는 회사는 부지런한 회사가 아니다. 위험한 회사다. 조직의 힘은 한정되어 있다. 작은 이슈마다 전력을 쏟는 회사는, 정작 회사의 명운이 걸린 이슈가 왔을 때 쓸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위기관리는 체력전이다. 어디에 힘을 쓰고 어디에 힘을 아낄지의 배분도 전략이다.

응급실을 떠올려 보자. 환자가 밀려들 때 의료진은 접수 순서대로 진료하지 않는다. 생명이 위태로운 중환자부터 본다. 트리아지(triage), 곧 중증도 분류다. 먼저 온 경상 환자에게 매달리다 중환자를 놓치는 응급실은 없다. 그런데 기업의 위기나 이슈 대응실에서는 이 당연한 일이 자주 뒤집힌다. 먼저 눈에 띈 이슈, 윗분이 언급한 이슈, 목소리 큰 부서의 이슈가 중환자보다 먼저 진료대에 오른다.

지난 편에서 위기의 신호는 듣는 데서 잡힌다고 했다. 그런데 제대로 듣기 시작한 회사에는 새로운 과제가 생긴다. 들리는 소리가 너무 많아지는 것이다. 그 모든 소리에 일일이 반응할 수는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분별이다. 어느 소리가 중하고 어느 소리가 가벼운가. 이 분별이 조망에서 나온다.

조망은 타고나는 감각이 아니다. 훈련이다. 마르쿠스가 매일 높은 곳에 오르기를 반복했듯, 경영진에게도 정기적인 ‘물러남’의 시간이 필요하다. 눈앞의 현안에서 한 발 떨어져, 우리 회사를 둘러싼 위험의 전체 지형을 내려다보는 시간. 어떤 위험이 자라고 있고, 어떤 이슈가 시들고 있으며, 우리의 힘은 지금 어디에 쏠려 있는가. 분기에 한 번이라도 이 질문 앞에 앉는 회사와, 매일 눈앞의 불씨만 쫓아다니는 회사는 위기 앞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얻는다.

조망이 주는 선물이 하나 더 있다. 마음의 평정이다. 마르쿠스가 높은 곳에 오른 본래 이유이기도 하다. 코앞에서 보면 거대해 보이던 이슈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제 크기로 돌아온다. 회사를 삼킬 것 같던 논란이 사실은 지나가는 소나기였음이 보이고, 반대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균열이 사실은 둑 전체를 위협하고 있었음도 보인다. 조망은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함께 교정한다. 이슈를 실제 크기로 보는 것, 위기관리는 거기서부터 정확해진다.

낮은 곳에서는 모든 것이 위기로 보이고, 그래서 아무것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높이 올라야 경중이 보인다. 경중이 보여야 순서가 서고, 순서가 서야 힘이 남는다. 그 남은 힘이, 진짜 위기가 왔을 때 회사를 지킨다.

8월 082026 0 Responses

위기, 이렇게 라도 끝낼 수 있다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기업이 발생된 위기를 종결시키는 방식, 예를 들면 사업 철수, CEO 교체, 법적 판결 수용 같은 것으로, 극대화된 위기상황을 종결로 이끈다는 전략이 있더군요.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이런 강력한 결정으로 대형 위기를 종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먼저 한 가지 전제부터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를 기업이 ‘종결시킨다’는 표현 속에 담긴 생각이 그것입니다. 과연 위기의 종료를 기업이 결정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기의 종료는 기업이 선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를 지켜보던 이해관계자들 전반의 공유된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언론이 관심을 거두고, 여론이 시선을 옮기고, 피해자와 규제기관이 각자의 정리를 마치는, 공식 문서 한 장 없는 비공식적 흐름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합의이지요. 기업은 그 합의의 형성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입니다. 위기를 우리 손으로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은, 통제 불가능한 것을 통제 가능하다고 믿는 위험한 착각입니다.

그렇다면 말씀하신 사업 철수, CEO 교체, 법적 판결의 수용 같은 강력한 결정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종료의 ‘선언’이 아니라, 거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종료를 ‘구매’하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사업 철수는 사업 그 자체를 지불한 것입니다. CEO 교체는 리더십을 지불한 것이지요. 이해관계자들이 ‘이 정도면 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값을 치르고, 그들의 합의를 앞당겨 사 오는 것입니다.

구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곧 권한의 증거는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심판에게 몰수패를 요청해 경기를 끝내는 것과 같습니다. 경기는 분명 끝났지만 누구도 그것을 경기 운영 능력이라 부르지 않지요. 오히려 그 거대한 가격표야말로, 위기의 종료 시점을 기업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사실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스스로 끝낼 수 있었다면 그런 값을 치를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 방식이 효과적인가’가 아닙니다. ‘왜 이런 대가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가’입니다. 사업과 리더십을 내놓아야만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얻을 수 있는 지경이라면, 그 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관리의 영역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 앞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위기관리의 정의가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적시에 하는 것. 이 정의는 궁지에 몰려 사업과 CEO를 내놓는 순간에 구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의 초기에, 더 정확히는 위기가 오기 전 평시에 구현되는 것입니다. 제때 치렀어야 할 작은 비용을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에 가장 비싼 값으로 한꺼번에 치르는 것. 그것을 전략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강력한 결정으로 위기를 끝내는 장면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관리의 성공이 아니라, 위기관리에 실패한 기업이 지불하는 최후의 계산서에 가깝습니다. 그 계산서를 받아 들기 전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 위기 종료의 진짜 열쇠는 거기에 있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

8월 012026 0 Responses

말실수 좀 했다고 큰 문제가 되나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경쟁사 공장 사고 위기관리를 면밀히 분석해 보고 있는데요. 당시 대표나 공장장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말 실수를 여러 번 하더라고요. 저희는 깜짝 놀랐는데요. 이후 그 말실수를 지적하는 부정기사 몇 개 외에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말실수하지 말라는 조언은 약간 과장된 거 아닐까요?

날카롭게 보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경쟁사의 말실수가 아니라, 그 장면을 보시고 대표님이 내리신 결론입니다. “말실수해도 별 문제 없더라”는 결론 말입니다.

잠깐 사업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대표님은 경쟁사 제품에 결함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왜 그런 결함이 생겼는지 뜯어보고, 우리 제품에는 그런 문제가 없도록 개선하시지요. 그렇게 남의 약점을 우리의 강점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경쟁력입니다. 옛말로 타산지석입니다. 남의 산에 있는 거친 돌로 내 옥을 간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상한 건 유독 위기관리에서는 이 타산지석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쟁사의 사고 대응을 그렇게 면밀히 지켜보시고도, 대표님이 얻으신 결론은 “말실수, 별거 아니네”였습니다. 만약 제품이었다면 어떠셨을까요. 경쟁사의 불량품이 어쩌다 리콜을 피해 갔다고 해서, “저 정도 불량은 괜찮구나”라고 결론 내리진 않으셨을 겁니다.

말실수도 똑같습니다. 그 경쟁사가 넘어간 것은 말실수가 무해해서가 아닙니다. 결함 있는 제품이 운 좋게 리콜을 피한 것과 같습니다. 사고 자체가 워낙 커서 말실수가 묻혔을 수도, 더 큰 뉴스가 관심을 가져갔을 수도, 회사의 평판 체력이 버텨 줬을 수도 있습니다. 조건이 조금만 달랐다면, 인명 피해가 조금만 더 무거웠다면, 그 한마디는 유가족의 마음에, 수사기관의 심증에, 법정의 판단에 그대로 새겨졌을 겁니다. 결함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가려졌을 뿐이지요.

그 사례에서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은 정반대입니다. “말실수해도 괜찮다”가 아니라 “우리는 절대 저렇게 하지 말자”입니다. 경쟁사가 카메라 앞에서 흔들렸다는 것 자체가, 사전 준비와 대변인 훈련이 부족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지점을 보고 준비하고 훈련하면 됩니다. 그것이 위기관리의 경쟁력입니다.

왜 우리는 유독 위기관리에서만 이 좋은 교본을 덮어 둘까요. 제품 경쟁은 매출과 점유율로 당장 성적표가 나오니 다들 열심히 배웁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역량은 평시에는 티가 나지 않습니다. 위기가 터지지 않으면 아무도 그 준비를 알아주지 않지요. 게다가 남의 위기는 ‘우리 일이 아니다’라며 밀어 두기 쉽고, 위기관리를 꾸준한 경쟁력이 아니라 한 번의 사고 대응쯤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경쟁은 제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관리에서도 합니다. 경쟁사의 그 말실수는, 대표님께 공짜로 배달된 기출문제입니다. 그 문제집을 덮지 마시고, 우리 대변인의 훈련 교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남의 실수에서 배우는 회사와, 그것을 남의 일로 흘려보내는 회사. 다음 위기 앞에서 두 회사의 격차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7월 302026 0 Responses

만루의 투수에게서 배우는 위기관리

[blog exclusive]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국내 뉴스에서 ‘위기관리’라는 단어의 용례를 모니터링해 보면, 압도적 다수는 기업 기사가 아니라 스포츠 기사에 등장한다. 만루 위기를 넘긴 투수의 위기관리, 선제 실점 후 흔들리지 않은 팀의 위기관리. 우리 사회에서 위기관리라는 말의 표준 이미지는 기업의 회의실이 아니라 경기장에 있는 것 같다. 스포츠 기자들이 야구 중계를 보도하며 쓰는 단어 ‘위기관리’는 대체로 정확한 용법이다. 문제는 기업이 스포츠에서 위기관리를 배울 때, 배워야 할 것은 배우지 않고 엉뚱한 것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투수냐 타자냐, 그것이 문제다

만루에 몰린 투수가 계산하는 것은 실점의 최소화다. 한 점은 주더라도 병살로 이닝을 끊는 것, 장타만은 피하는 것. 그래서 구질을 바꾸고, 수비 위치를 조정하고, 때로는 고의사구를 던진다. 볼넷 하나가 최선의 위기관리가 되기도 한다. 이 자체가 훌륭한 위기관리 교과서다. 목표를 승리에서 손실 최소화로 즉시 재설정하고, 최악의 경로를 먼저 차단하고, 나쁜 선택지 중 덜 나쁜 것을 고른다.

그러나 기업이 실제로 수입해 오는 것은 9회말 만루 홈런이다. 타석의 타자에게 만루는 기회이고, 마운드의 투수에게 만루는 위기다. 위기를 맞은 기업의 자리는 명백히 마운드다. 그런데 배우려는 대상은 타자인 경우가 있다. 위기 직후 회의실의 언어가 증거다. 반전, 뒤집기, 승부수, 정면돌파, 총력전. 모두 타석의 어휘다. 위기는 기회라는 오래된 격언이 이 착각을 부추긴다. 기업은 같은 장면에 처해 배역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점수판이 아니라 원인이 문제다

마운드의 위기관리는 점수판으로 판정이 나지만, 기업의 위기는 그 원인으로 판정이 향한다. 물론 투수가 만루에 몰린 과정에도 원인은 있다. 그러나 심판은 원인을 판정에 넣지 않는다. 점수판은 결과만 기록하고, 점수판을 되돌리면 그 경기의 위기는 소멸된다.

기업 위기는 다르다. 어떤 위기든 판정은 원인과 책임을 향한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는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는가. 재난이든 팬데믹이든, 기업이 만들지 않은 위기에서조차 판정은 기업을 향한다. 왜 대비하지 않았는가. 왜 복구가 늦는가. 기업이 다치는 지점은 대비와 대응에 대한 소급된 평가다. 이후 매출을 회복하고 주가를 방어해도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억울해도 역전의 유혹은 문제다

루머가 번졌고, 경쟁사가 흘렸고, 기자가 확인 없이 썼다고 기업들은 억울해한다. 상대가 반칙을 한 상황이라는 이 억울함은 대체로 근거가 있다. 그러나 발생 원인과 판정 대상은 다르다. 발생은 외부에서 왔어도 판정은 우리를 향한다. 루머 위기에서도 사람들은 기업에게 왜 초기에 루머를 잡지 못했는가, 왜 그런 루머가 믿길 만한 회사였는가를 묻는다. 억울한 위기조차 원인을 묻는 구조 안에서 굴러가는 것이다.

점수판을 되돌려도 마찬가지다. 반박에 성공하고 정정 보도를 받아내도 형성된 인식은 남는다. 결과의 위기라면 결과를 바꾸는 순간 끝나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것이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위험한 것은 억울함 그 자체다. 억울한 위기일수록 역전의 유혹이 강해진다. 잘못이 없다고 믿을 때 사람은 이기고 싶어진다. 그래서 실제로는 잘못을 저지른 기업이 아니라, 억울함을 동력으로 분노의 반격에 나선 기업이 더 큰 피해를 본다.

판정자를 착각하면 문제다

야구에서는 관중이 아무리 야유해도 판정은 바뀌지 않는다. 심판은 하나, 규칙도 하나다. 기업 위기에서는 관중석의 함성이 곧 판정이다. 심지어 그 관중석에는 완장을 찬 심판들도 앉아 있다. 피해자는 진정성으로, 언론은 뉴스 가치로, 규제기관은 법령으로, 법원은 증거로, 시장은 실적 전망으로 판정한다. 판정자마다 규칙집이 다르니 하나의 대응이 한쪽에는 성공, 다른 쪽에는 실패가 된다. 법적으로 완벽한 방어가 여론에서는 파국을 부르고, 여론을 달래려던 발언이 법정에서 자백으로 읽힌다.

그래서 기업 위기관리에서는 관중석을 보며 경기를 해야 한다. 단, 모두를 만족시키기보다 순서를 정하는 것이 이 경기의 운영법이다.

영원히 소급되는 기록이 진짜 문제다

야구 경기의 시간은 공평하다. 9회가 끝나면 결과가 확정된다. 감독의 투수 교체 실패가 몇 년씩 회자되어도 확정된 스코어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원인의 평가와 경기의 판정은 분리되어 있다.

기업 위기에서는 그 둘이 하나다. 원인의 평가가 곧 판정이다. 배상 규모, 처분 수위, 신뢰 회복의 속도가 모두 원인과 책임의 평가로 결정된다. 그에 더해 위기 시에는 골든타임이 짧아 초기 판단의 지연이 선택지를 좁힌다. 그 뒤로는 책임이 소급되어, 발생 이전에 무엇을 준비했어야 했는지까지 판정표에 올라간다.

종료도 스스로 정할 수 없다. 사업 철수나 경영진 교체로 상황을 끝내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은 큰 대가를 지불한 종료의 구매다. 그 가격표 자체가 기업에 종료 권한이 없다는 증거다. 위기의 끝은 이해관계자들의 태도가 변할 때 온다. 초기화도 없다. 대중은 일단 잊어도 기록은 잊지 않는다. 검색과 AI의 답변에 남은 사건은 다음 위기 때 패턴의 증거로 소환된다. 영원한 소급의 반복이다.

투지보다 전략이 문제를 푼다

스포츠에서 투지는 일견 미덕이다. 분함은 동력이 되고, 다 같이 더 뛰는 것이 확률을 높인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기업 위기에서도 독이 되는 것은 방향을 잃은 투지다. 위기관리를 잘하는 조직도 맹렬하게 움직인다. 다만 그 맹렬함은 냉철한 분석 위에 서 있다. 그런 분석 대신 불안과 분노가 판단의 동력이 되면 모든 에너지가 강박으로 변한다. 절박함이 근거 없는 해명을 쏟아내게 하고, 억울함이 반격을 부르고, 그 모든 활동이 위기를 오히려 증폭시킨다. 방향 없는 투지는 성과가 아니라 손실에 비례한다.

물론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허위사실에 대한 법적 조치, 오보에 대한 정정 요구, 사실의 규명. 이런 것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의 범위에 있다. 그 범위 안에 있는 것들은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해야 한다. 다만 그때도 목표는 설욕과 되돌리기가 아니라 최악의 차단이다.

위기 시 실무자를 소진시키는 것은 투지에 불타는 갈피 없는 지시다. 목표가 명확한 조직은 냉정해도 버틴다. 포수가 마운드에서 하는 말은 이겨라가 아니다. 낮게, 바깥쪽이다. 구체적인 지시가 곧 전략이다.

기업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살피자

위기 직후 첫 회의에서 최고의사결정권자가 꺼내는 단어를 들어 보면 그 조직의 결말을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다. 체계를 갖춘 기업은 역전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

언어는 그 조직이 어느 프레임에서 판단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가장 빠른 증상이다. 역전 대신 던져야 할 질문은 정해져 있다. 이 위기의 원점은 무엇인가. 누구의 판정이 가장 파괴적인가. 지금 하지 않으면 무엇을 잃는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야구 경기장에서 무언가를 가져오겠다면 9회말 홈런이 아니라 만루의 마운드 개념을 가져오시기 바란다. 지금 우리 조직이 타석이 아니라 마운드에 서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하는 것, 그것이 첫걸음이다. 그 투수는 역전하려 하지 않는다. 최악을 막고 있다. 그리고 공격의 차례는 그 이닝을 무사히 끊어낸 팀에게만 온다. 그것이 실제 위기관리다.

7월 282026 0 Responses

위기는 듣는 자에게 먼저 보인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제논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귀가 둘, 입이 하나 있는 것은 더 많이 듣고 덜 말하라는 뜻이다.” 흔히 처세훈으로 알려진 말이다. 그러나 위기관리의 눈으로 다시 읽으면 이것은 정보 수집의 원칙이다. 듣는 양이 말하는 양의 두 배는 되어야 상황이 보인다는, 지극히 실전적인 가르침이다.

위기의 신호는 언제나 ‘소리’로 먼저 온다. 현장의 불평, 고객의 항의, 협력사의 머뭇거림, 퇴사자의 뒷말, 온라인의 수군거림. 위기가 터지고 나서 돌아보면 그 소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울리고 있었다. 문제는 신호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듣는 귀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를 맞은 기업들이 내놓는 단골 해명은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 “전혀 몰랐다. 이런 위기는 처음이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당황했다.” 신호를 듣지 않고 무시해 온 회사가 이렇게 말한다면, 둘 중 하나다. 정말 몰랐다면 그 회사는 멍청한 것이다. 그토록 오래 울리던 소리를 하나도 듣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라면 영리한 것이다. 책임을 ‘갑작스러운 불운’에 떠넘기는 연기이니까. 어느 쪽이든 부끄러운 고백이다. 듣는 귀가 없었거나, 들은 것을 감추었거나.

이 부끄러움은 위기가 터진 뒤에도 반복된다. 기업은 이번에도 듣는 대신 말부터 하려 든다. 해명하고, 반박하고, 설명하려 한다. 입이 귀를 앞지르는 순간 대응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지난 편에서 위기 속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무엇에 아파하고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듣지 않은 채 내놓는 말은, 과녁 없이 쏘는 화살과 같다.

그렇다면 왜 못 듣는가. 리더의 성품이 나빠서가 아니다. 조직에는 구조적인 난청이 있다. 나쁜 소식은 위로 올라갈수록 걸러지고 다듬어진다. 현장의 거친 경고가 보고서 몇 장을 거치면 ‘관리 가능한 이슈’로 순화된다. 보고 라인이 필터가 되고, 리더는 어느새 듣기 좋은 소리에만 둘러싸인다. 그래서 경청은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체계의 문제다. 마음먹는다고 들리는 것이 아니라, 장치를 만들어야 들린다.

경청 체계라고 해서 거창할 것은 없다. 가공되지 않은 현장의 소리가 경영진에게 닿는 통로 하나. 내부의 불편한 제보가 불이익 없이 올라오는 길 하나. 고객 불만과 온라인 여론을 정기적으로 수집해 보고하는 절차 하나. 이런 장치들이 곧 그 회사의 조기경보 시스템이다. 값비싼 모니터링 도구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듣기 싫은 소리를 환영하는 문화다. 나쁜 소식을 가장 먼저 가져온 직원이 칭찬받는 회사와 혼나는 회사. 위기 앞에서 두 회사의 운명은 갈린다.

듣기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이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그는 ‘명상록’에 이렇게 적었다. “말하는 사람에게 온 마음을 기울여, 그 사람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라.” 듣기는 수동적인 수신이 아니라 능동적인 행위라는 뜻이다. 위기 상황에서 유가족의 말, 분노한 고객의 말을 ‘처리’의 대상으로 접수하는 기업과, 그 말 속으로 ‘들어가서’ 듣는 기업은 전혀 다른 대응을 내놓는다. 대응의 실마리는 언제나 상대의 말 속에 있다.

입은 위기를 키우고, 귀는 위기를 줄인다. 제논의 비율을 기억하자. 두 배로 듣고, 절반만 말하라. 평시에는 그 귀가 위기의 신호를 먼저 잡아내고, 위기 시에는 그 귀가 대응의 방향을 알려 준다. 위기는 듣는 자에게 먼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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