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위기관리 용어 사전

기업 위기관리와 이슈관리 현장에서 쓰이는 핵심 용어를 하나씩 정의합니다. 각 편은 용어의 정의에서 시작해, 30년 위기관리 컨설팅 현장에서 그 개념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어디서 오해되는지를 짧게 설명합니다. 스트래티지샐러드 정용민 대표가 씁니다.

  • 위기관리에서 투명성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에서 투명성은 핵심 이해관계자가 기대하는 수준에 맞추어 확인된 사실을 제때 그리고 반복해서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기준은 회사의 결심보다 상대의 눈높이에 있습니다. 그 눈높이에 못 미치면 은폐로 읽히고, 필요 이상으로 넘어서면 스스로 다음 질문을 만들어 냅니다. 가진 정보를 모두 털어놓는 고해성사로 투명성을 이해하는 순간 기업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투명성은 전부 공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위기관리 업계에는 투명성이 위기 시 기업의 모든 「더러운 빨래(dirty laundry)」를 바깥에 널어 놓는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투명성에 관한 조언 앞에서 고민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밝혀야 투명한 것인지 기준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누구도 자신의 더러운 빨래를 널고 싶어 하지 않으며, 반대로 대부분의 상대도 그것을 굳이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사안을 빌미로 다른 의지를 관철하려는 일부 이해관계자를 제외하면, 위기를 겪는 기업의 밑바닥까지 들추려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업이 찾아야 하는 것은 적절한 균형입니다. 투명성의 기준은 핵심 이해관계자의 눈높이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개 범위를 먼저 정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일입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핵심 이해관계자가 무엇을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실무 기준은 제3자가 검증할 수 있는가입니다

    눈높이라는 기준은 방향은 알려 주지만 당장의 판단에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실무에서 쓰는 기준은 더 단순합니다. 해당 정보가 제3자 검증이 가능한가입니다.

    제3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라면 최대한 공개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검증 가능한 사실을 숨기거나 부정하는 것으로 비치는 순간, 사안 자체보다 은폐가 더 큰 문제로 자리를 옮깁니다. 반대로 제3자 검증이 불가능한 정보에 한해서만 기업의 전략적 선택이 가능합니다. 그 경계가 곧 투명성의 허용 범위입니다.

    문제는 검증 가능 영역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내 기록, 거래 데이터, 내부 제보, 온라인에 남은 흔적이 모두 검증의 재료가 됩니다. 기업이 투명성을 선택하는 시대가 아니라, 투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경계를 잘못 읽었을 때 나타나는 전형이 「악당과 바보의 딜레마」입니다. 문제를 최고경영진이 알았다고 하면 악당이 되고, 몰랐다고 하면 바보가 됩니다. 위기 시에는 많은 기업이 악당보다 차라리 바보처럼 보여지려 합니다. 그러나 규모가 크고 기간이 길었던 사안에서 최고경영진이 전혀 몰랐다는 설명은 좀처럼 신뢰받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 설명이 이후 조사로 뒤집히면, 원래의 사안에 은폐라는 별도의 사안이 더해집니다.

    구분핵심 이해관계자의 관심이 높음핵심 이해관계자의 관심이 낮음
    제3자 검증이 가능함가장 먼저 공개하고 인정함묻기 전에 정리해 두고, 물으면 지체 없이 제공함
    제3자 검증이 어려움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해 밝히고 확인 일정을 제시함공개 여부를 전략적으로 판단하되 그 판단 근거를 기록함
    표. 정보의 성격에 따른 공개 판단 — 스트래티지샐러드

    네 칸 가운데 실무에서 가장 자주 틀어지는 곳은 「제3자 검증이 가능함」과 「관심이 높음」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의 정보를 늦게 내놓으면 사안이 은폐로 옮겨 갑니다. 「제3자 검증이 어려움」 쪽은 판단의 여지가 있는 구간이므로, 그 판단을 언제 무엇을 근거로 내렸는지 기록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속도와 빈도가 투명성의 인상을 만듭니다

    투명성은 공개한 정보의 양으로만 평가되지 않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위기 발생 직후 신속하게 전달되면 투명하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시기를 놓치고 한참 침묵한 뒤에 같은 말을 하면 투명성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2017년 긴급 위험 커뮤니케이션 지침에서 일관된 메시지가 여러 경로를 통해 사안 초기에 나와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초기 메시지가 없는 공백이 소문이 자리 잡도록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CERC 원칙이 첫 번째로 「신속하라」를 두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빈도도 함께 작동합니다.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정기적인 업데이트가 이어지면 그 대응에는 투명성이 있다고 평가됩니다.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이 중단되거나 업데이트에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면 그때까지 쌓은 평가도 함께 내려갑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투명성을 지킵니다

    위기 초기에 회사가 가진 정보는 늘 불완전합니다. 이때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확정적으로 말하면 정정해야 할 순간이 오고, 정정은 곧 신뢰의 손실로 돌아옵니다.

    해법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확인 중인 것을 구분해 밝히는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 지침은 위험과 대응에 따르는 불확실성을 명시하고 현재 무엇이 알려져 있고 무엇이 알려져 있지 않은지를 밝히도록 권고합니다. CERC의 「정확하라」 원칙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함께 말하라는 주문입니다. 위기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모범 실무 원칙을 정리한 연구자 매튜 시거(Matthew W. Seeger)가 전문가 패널 논의를 거쳐 제시한 원칙에도 정직·솔직·개방성과 함께 불확실성의 인정이 나란히 들어 있습니다.

    이 원칙은 말하지 않는 선택과도 충돌하지 않습니다. 사실 확인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나, 지금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전략적 침묵은 말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투명성과 부딪히는 것은 이유를 밝히지 않은 침묵입니다.

    투명성은 위기 이전에 쌓이는 자산입니다

    평소 투명해 보이지 않던 기업이 위기 시에만 투명해 보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평소 투명하게 인식되던 기업이 위기 시에도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 점이 투명성을 위기관리의 영역에 두는 이유입니다. 위기가 발생한 뒤에 꺼내 쓰는 데미지 컨트롤의 기술이라기보다, 평시에 축적해 두어야 확보되는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평소 투명성의 가치를 얼마나 구현해 왔는가가 그 자체로 중요한 위기관리 역량이 됩니다.

    투명성은 고해성사가 아닙니다. 영원히 그럴 수도 없습니다. 기업이 감당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을 밝히는 일이 아니라, 밝혀야 할 것을 제때 밝히는 일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이해관계자란 무엇인가: 투명성의 기준이 되는 눈높이를 가진 주체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의 전제란 무엇인가: 평시에 갖추어 두어야 하는 조건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사실을 아직 말할 수 없는 구간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전략적 침묵이란 무엇인가: 말하지 않는 선택이 성립하는 좁은 조건을 다룹니다.
    답변책임(answerability)이란 무엇인가: 무엇에 답해야 하는가의 범위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WHO, Communicating risk in public health emergencies (2017) — 권고 A.1, A.2, C4.2
    U.S. CDC, CERC Manual 2018 update — 여섯 원칙
    Matthew W. Seeger, Best Practices in Crisis Communication, Journal of Applied Communication Research (2006) — 전문가 패널이 정리한 실행 원칙
    ISO 22361:2022, Security and resilience — Crisis management
    위 자료들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핵심 이해관계자의 눈높이와 제3자 검증 가능성이라는 두 기준으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 기업 이슈관리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기업 이슈관리는 회사의 사업과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 아직 결론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발견하고, 개입 여부와 시점을 판단하여,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관리하는 활동입니다.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를 가르는 기준이 시간의 주도권이라는 점은 앞서 정리한 바와 같습니다.

    이슈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입니다

    이슈관리라는 개념은 1976년 4월 하워드 체이스(W. Howard Chase)가 뉴스레터 《Corporate Public Issues and their Management》 창간호에서 처음 제시했습니다. 기업이 외부에서 형성되는 사안에 뒤늦게 반응하는 대신 그 형성 과정에 미리 참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전략경영학자 이고르 앤소프(H. Igor Ansoff)는 해로운 흐름이 본격화되기 전에 약한 신호를 포착하는 조기 경보 체계를 주문했습니다.

    무엇이 이슈인지는 세 가지로 갈립니다.

    • 회사의 사업이나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 관련 당사자들의 입장이 갈려 있습니다.

    세 번째가 이슈관리를 성립시킵니다. 입장이 갈려 있다는 것은 사안이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다는 뜻이고, 회사가 그 방향에 영향을 줄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이슈관리 연구자 토니 자크(Tony Jaques)는 이슈를 정의하는 방식이 세 갈래로 모인다고 정리했습니다. 다툼의 여지가 있는 견해 차이로 보는 방식, 조직의 행동과 이해관계자의 기대 사이에 생긴 간격으로 보는 방식, 조직에 영향을 주거나 줄 수 있는 사건·흐름·상태로 보는 방식입니다. 위의 세 요건은 이 세 갈래를 실무에서 한꺼번에 묻는 형태에 해당합니다.

    학계는 이슈관리를 두 갈래로 정의해 왔습니다

    이슈관리는 정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어려운 개념입니다. 위기관리 연구자 로버트 히스(Robert L. Heath)는 1997년에 합의에 이른 정의가 아직 없다고 정리했고, 그 상태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자크는 2009년 학술지 Public Relations Review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때까지의 정의들을 두 갈래로 나누었습니다.

    • 공공정책 접근: 이슈관리를 회사가 공공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활동으로 봅니다. 체이스(1982)와 미국PR협회(1987)의 정의가 여기에 속합니다.
    • 내부 프로세스 접근: 이슈관리를 공공정책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조직 안의 관리 과정으로 봅니다. 터커·브룸·케이우드(1993)와 워틱·루드(1986)의 정의가 여기에 속합니다.

    오늘날의 표준적 요약은 미국 PR연구소(Institute for Public Relations)의 정의입니다. 이슈관리는 조직이 사회·정치 환경에서 떠오르는 흐름이나 변화를 감지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돕는,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 관리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공공업무협의회(Public Affairs Council)는 여기에 평판을 명시적으로 넣었습니다. 평판이 들어오면서 이슈관리는 공공정책의 경계를 넘어섰습니다.

    구분공공정책 접근내부 프로세스 접근
    대표 정의공공정책의 형성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역량(체이스, 1982)시장을 지키고 위험을 줄이며 기회를 만드는 관리 과정(터커·브룸·케이우드, 1993)
    이슈가 놓인 자리회사 밖 공론장에서 형성되는 정책 의제사업과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 전반
    주로 상대하는 쪽입법·규제 당국과 여론이해관계자 전반과 사내 각 부문
    성공의 기준정책이 정해지는 방향에 영향을 주었는가피해를 만들지 않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는가
    남는 한계규제 논의가 없는 사안을 담기 어려움범위가 넓어 일반 경영과 경계가 흐려짐
    표. 이슈관리 정의의 두 갈래 — 스트래티지샐러드

    국내 기업의 실무는 뒤쪽 갈래에 가깝습니다. 규제 논의가 걸린 사안도 다루지만, 더 자주 다루는 것은 노사와 협력사, 온라인 여론, 지역사회처럼 공공정책 절차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 첫머리의 정의도 그 갈래에 서되, 이슈관리가 성립하는 국면을 시간의 주도권으로 판별한다는 기준을 하나 더 얹었습니다. 관리 과정으로만 정의하면 이슈관리와 일반 경영의 경계가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이슈 국면에만 있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시간을 쥐고 있다는 것은 고를 수 있는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이슈 국면에서만 열려 있는 선택지는 넷입니다.

    • 대응하지 않는 것: 개입하는 순간 그 사안에 회사의 이름이 붙고, 붙은 이름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 시점을 고르는 것: 너무 이르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사안을 회사가 키우고, 너무 늦으면 이미 굳어진 방향을 되돌려야 합니다.
    • 방식을 고르는 것: 공개와 비공개, 직접과 간접을 모두 쓸 수 있습니다.
    • 방어가 아닌 목표를 두는 것: 업계 기준이 회사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형성되게 하거나, 사회적 논쟁에서 회사의 포지션을 먼저 확보하는 일입니다.

    위기 국면으로 넘어가면 이 선택지들이 한꺼번에 사라집니다. 이슈관리를 위기 예방 활동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슈관리를 잘한다는 것

    위기 국면의 관리는 잃지 않기 위한 활동입니다. 이슈관리는 얻을 수 있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한 활동입니다. 두 가지를 같은 일로 다루면 대개 앞의 것만 하게 됩니다.

    판단의 기준은 하나로 모입니다. 이 실행으로 회사가 얻으려는 실익이 무엇인가. 답이 분명하게 나오면 전략이 있는 것이고, 나오지 않으면 반응한 것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두 영역을 가르는 시간의 주도권 개념입니다.
    원점관리란 무엇인가: 이슈 단계에서 다루어야 할 대상에 관한 것입니다.
    전략적 침묵이란 무엇인가: 개입하지 않는 판단의 근거입니다.
    위기관리 골든타임이란 무엇인가: 위기로 넘어간 뒤의 시간 개념입니다.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한다는 정의와 국면별 책임에 관한 것입니다.
    기업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기업의 위기관리가 정부·공공기관의 위기관리와 무엇이 다른지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W. Howard Chase, 「Objectives of CPI」, Corporate Public Issues and their Management Vol.1 No.1, 1976년 4월 15일 — 이슈관리 용어의 최초 사용. 온라인 원문은 공개되어 있지 않으며 아래 검토 논문에서 확인함
    Tony Jaques, Howard Chase: the man who invented issue management, Journal of Communication Management Vol.12 No.4 (2008), pp.336-343 — 이슈관리 개념의 형성 과정에 관한 검토
    Tony Jaques, Issue and crisis management: Quicksand in the definitional landscape, Public Relations Review Vol.35 (2009), pp.280-286 — 이슈관리 정의의 두 갈래 대조와 이슈 정의의 세 갈래 구분
    H. Igor Ansoff, Managing Strategic Surprise by Response to Weak Signals,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Vol.18 No.2 (1975), pp.21-33 — 약한 신호에 대한 조기 경보 개념
    W. Howard Chase, The Corporate Imperative: Management of Profit and Policy, Public Relations Quarterly Vol.27 No.1 (1982) — 공공정책 접근의 대표 정의
    Kenneth Tucker, Glen Broom and Clarke Caywood, Managing Issues Acts as Bridge to Strategic Planning, Public Relations Journal Vol.49 No.11 (1993) — 내부 프로세스 접근의 대표 정의
    Steven L. Wartick and Robert E. Rude, Issues Management: Corporate Fad or Corporate Function?,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Vol.29 No.1 (1986) — 조기 경보와 사내 조율·통합 기능
    Robert L. Heath, Strategic Issues Management: Organizations and Public Policy Challenges (Sage, 1997) — 이슈관리 정의에 합의가 없다는 관찰
    Institute for Public Relations, Issues Management — 이슈관리의 정의와 실무 적용 범위
    Public Affairs Council (2008) — 평판을 포함한 이슈관리 정의
    위 개념을 국내 기업 실무 관점에서 이슈의 요건, 정의 두 갈래의 대조, 이슈 국면에만 열려 있는 선택지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 기업 위기관리에서 의사결정은 왜 어려운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기업 위기관리에서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지켜야 할 대상이 여럿이라는 데 있습니다. 위기관리의 원칙은 주체가 무엇이든 같습니다. 다만 기업에서는 그 원칙을 실행하는 자리에 다른 조직이 겪지 않는 딜레마가 따릅니다. 주주와 투자자, 구성원, 거래처, 고객의 기대가 서로 같지 않고, 드물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 회사의 지속가능성과 부딪치기도 합니다.

    원칙대로 하면 대부분 풀립니다

    기업 위기관리라고 해서 위기관리의 원칙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이라는 정의는 주체가 무엇이든 그대로 적용되며, 기업이 겪는 위기의 대부분은 이 원칙을 지키는 것만으로 해결됩니다. 마땅함과 적시라는 두 축은 「위기관리란 무엇인가」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부 예외적인 국면에서는 큰 딜레마가 생깁니다. 이 글은 그 딜레마가 어디서 오고 어떤 모습인지를 다룹니다.

    기업은 존속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위기관리는 목적이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공공의 이익입니다. 눈여겨볼 것은 그 목적에 조직 자신의 존속이 들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공공기관의 존속은 법이 보장하므로 위기 때 지켜야 할 목표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목적이 하나로 유지되고, 무엇이 마땅한지를 두고 조직이 그때그때 고민할 여지도 좁습니다. 두 체계의 제도적 차이는 「기업 위기관리란 무엇인가」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기업의 사정은 여기서부터 갈립니다. 기업의 존속은 위기의 결과에 따라 결정됩니다. 지켜야 할 목표 안에 조직 자신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이 그 사정을 그대로 반영해 「자사의 안전과 사업의 이익」을 위기관리의 목적으로 세운다고 해 보겠습니다. 솔직한 문장이지만 이 목적으로는 위기관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마땅함의 판정자는 회사 밖에 있습니다. 자사의 안전과 사업의 이익만을 기준으로 내린 결정은 그들에게 마땅한 조치로 읽히지 않고, 그렇게 읽히지 않은 위기는 훨씬 길어집니다.

    게다가 「자사의 안전」도 「사업의 이익」도 하나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열어 보면 주주와 투자자, 구성원, 거래처, 고객이 각각 들어 있고, 이들이 원하는 안전과 이익이 서로 같지 않습니다. 기업 위기관리는 이 여럿을 동시에, 균형 있게 충족시켜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시작하며, 딜레마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의사결정이 전략의 문제가 됩니다

    지켜야 할 대상이 여럿이라는 조건에 기업 특유의 조건 세 가지가 더해집니다.

    경영진의 의사결정 부담입니다. 부서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선 사안이므로 대응 의사결정은 언제나 최고경영진의 몫이 됩니다. 문제는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의 지위가 결정의 결과에 함께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지켜야 할 대상 안에 결정하는 사람 자신이 들어 있는 셈이며, 이런 부담은 다른 조직의 위기관리에는 없습니다.

    법적 절차와 동시에 진행됩니다. 법무는 사실이 확정되기 전까지 책임을 인정하는 표현의 자제를 권고하고, 위기관리는 심각성을 인지한 그날 보호 조치를 요구합니다. 둘 다 각자의 소관에서 합리적입니다. 두 요구 사이에서 기업은 의사결정의 압력을 받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대부분 무형입니다. 조치에 드는 비용은 숫자로 나옵니다. 잃게 될 신뢰는 숫자로 나오지 않습니다. 신뢰가 지켜졌는지는 회사 밖에서 판정되고, 그 기준도 회사가 정하지 못합니다. 한쪽은 계산되고 한쪽은 계산되지 않는 상태에서 둘을 견주어야 하며, 계산되는 쪽이 언제나 더 커 보이는 현실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게다가 더 큰 딜레마가 생기곤 합니다

    여기까지는 정도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회사의 지속가능성 자체와 부딪칩니다. 이때 딜레마는 성격이 완전히 바뀝니다.

    제품에 이상이 확인되어 리콜이 마땅한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 규모로 리콜을 하면 회사가 존속하지 못합니다. 오너나 대표이사가 자리를 내놓아야 하고, 그만큼의 인원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함께 옵니다.

    지속가능성이 무너지는 국면에서는 무엇이 마땅한가를 보는 기업의 관점 자체가 달라집니다. 마땅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회사가 사라지면 남은 약속도 지킬 수 없으므로, 회사의 존속 자체가 의사결정의 조건으로 들어옵니다. 무엇을 먼저, 어디까지, 어떤 속도로 이행할 것인가가 그때부터 의사결정의 대상이 됩니다. 이 어려움까지 다루어야 하는 것이 기업 위기관리의 실체입니다.

    같은 결정도 이해관계자에 따라 다르게 읽힙니다

    딜레마의 증거는 평가에서도 드러납니다. 기업의 위기관리는 유독 평가가 엇갈립니다. 보는 자리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위의 리콜 상황을 두 갈래로 놓고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보는 자리평가의 기준즉시 전면 리콜을 택했다면범위를 좁혀 단계적으로 했다면
    고객과 소비자단체내 안전이 언제 확보되었는가마땅했다늦고 인색했다
    주주와 투자자회사 가치가 지켜졌는가과했다합리적이었다
    구성원조직과 내 자리가 남았는가무책임했다회사를 지켰다
    거래처거래를 계속할 수 있는가불안해졌다예측 가능했다
    규제기관과 언론의무를 이행했는가모범적이었다미흡했다
    표. 하나의 결정에 대한 이해관계자별 평가 — 스트래티지샐러드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지가 표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딜레마의 정확한 모습입니다. 기업 위기관리의 결과를 두고 전문가들의 평가가 갈리는 것도 대개 평가자가 어느 행에 서 있는가에 따라 갈리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문제도, 둘 중 하나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 딜레마를 도덕의 문제로 단순화하면 실무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고객을 지킬 것인가 회사를 지킬 것인가라는 구도로 세우는 순간 회의실에서는 아무도 진짜 계산을 말하지 않게 됩니다. 말하면 악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입 밖에 내지 않는다고 그 계산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결정에 반영될 뿐입니다.

    이분법도 같은 함정입니다. 딜레마에서는 두 선택지 중 옳은 쪽을 고르는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충분한 고민입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를 전부 꺼내 놓고, 잃기로 한 것을 잃는 줄 알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기업 위기관리가 다른 유형의 위기관리보다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려운 것은 그 답을 회사가 감당하기로 정하는 과정입니다.

    딜레마를 감당하는 힘은 평시에 만들어집니다

    이 조건들은 기업이라는 형태를 유지하는 한 계속 작동합니다. 그 위에서 의사결정을 해내는 능력을 실무에서는 정무감각이라고 부릅니다. 결국은 경영의 문제이기도 하며, 경험과 훈련으로 길러집니다.

    필요한 것은 경영진이 반론을 들을 수 있는 소통 구조, 이해관계자 우선순위에 대한 사전 합의, 법무와 커뮤니케이션이 같은 회의에 앉는 관행, 그리고 회사의 존속이 걸린 시나리오를 실제로 몇 번씩 돌려 보는 평시의 준비와 훈련입니다.

    위기가 닥친 뒤에는 만들 수 없는 것들입니다. 위기 앞에서 그 의사결정을 처음 해 보는 회사는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기업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 제도의 차이로 본 정의입니다.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 마땅함과 적시라는 정의 자체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 시 이해관계자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하는가 — 누구를 먼저 볼 것인가를 정하는 실무입니다.
    위기관리 시 포지션이란 무엇인가 — 엇갈리는 기대 앞에서 세우는 기준입니다.
    오너 리스크란 무엇인가 — 결정자의 이해가 함께 걸리는 국면입니다.
    리콜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 이 글의 사례가 실제로 벌어지는 자리입니다.

  •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말할 것인지를 사전에 규정한 문서입니다. 위기관리 매뉴얼과 이름이 비슷해 같은 문서로 오해되지만, 두 문서는 다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조직을 움직이는 문서라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그 조직이 밖을 향해 말하게 하는 문서입니다.

    두 매뉴얼은 다른 질문에 답합니다

    두 문서가 대등하게 나란히 놓이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상위 체계이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그 체계 안에서 대외 발화를 맡습니다. 그럼에도 두 권으로 나누어 만드는 이유는 위상이 같아서가 아니라 읽는 사람과 펼치는 국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규정하는 것은 조직과 절차입니다. 무엇을 위기로 볼 것인지, 심각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어느 단계에서 어떤 조직이 소집되는지, 감지에서 종결까지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각 부서가 무엇을 책임지는지를 담습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이 규정하는 것은 메시지와 창구입니다. 누가 회사를 대표해 말하는지, 어떤 이해관계자에게 어떤 기조로 응대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 어떤 문서를 어느 시점에 내보내는지를 담습니다.

    구분위기관리 매뉴얼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
    답하는 질문누가 무엇을 하는가누가 무엇을 말하는가
    중심 내용위기 정의, 심각성 기준, 대응 조직, 프로세스, 부서별 역할과 책임대변인 체계, 핵심 메시지, 이해관계자별 대응, 채널 운용
    주 사용자위기관리위원회, 실무대응그룹 전 부서대변인, 홍보부문, 이해관계자 접점 부서
    검증 방법위기관리 시뮬레이션미디어 트레이닝, 대변인 트레이닝
    개정을 부르는 변화조직 개편, 사업 구조 변경대변인 교체, 채널 환경 변화
    표. 두 매뉴얼의 구분 — 스트래티지샐러드

    이 구분이 실무에서 중요한 이유는 두 문서를 한 권에 섞어 담았을 때 나타나는 결과 때문입니다. 조직과 절차를 다루는 장 사이에 메시지 템플릿이 끼어 있으면, 위기 상황에서 대변인은 자기가 볼 부분을 찾지 못하고 실무 부서는 절차를 확인하려다 문안을 마주합니다. 두 문서의 사용자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무엇이 들어가는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의 구성은 회사마다 달라지지만, 빠지지 않아야 할 요소는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첫째는 커뮤니케이션 원칙입니다. 사실에 근거할 것, 확인되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을 것, 이해관계자보다 언론에 먼저 알리지 않을 것과 같은 기준입니다. 개별 상황에서 판단이 갈릴 때 되돌아올 자리가 되는 부분입니다.

    둘째는 대변인 체계입니다. 누가 대변인인지, 부재 시 누가 대행하는지, 위기 심각성 단계가 올라갈 때 대변인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규정합니다. 규제기관이나 수사기관을 상대하는 대변인은 단계와 무관하게 별도로 지정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셋째는 이해관계자별 대응 기준입니다. 언론, 온라인, 고객, 피해자, 직원, 거래처, 투자자, 규제기관처럼 이해관계자마다 담당 부서와 채널과 메시지 방향이 다릅니다. 이를 한 장의 매트릭스로 정리해 두면 위기 상황에서 각 부서가 자기 역할을 즉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문서 유형별 기준입니다. 홀딩 스테이트먼트, 공식 입장문, 해명문, 사과문은 각각 쓰이는 국면과 담기는 내용이 다릅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느 문서를 쓸 것인지의 판단 기준이 문안 자체보다 중요합니다.

    다섯째는 핵심 메시지와 예상 질의응답의 개발 구조입니다. 완성된 메시지를 미리 만들어 둘 수는 없지만, 어떤 항목을 어떤 순서로 채우면 메시지가 완성되는지의 틀은 미리 만들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창구 일원화 지침과 내부 커뮤니케이션 기준입니다. 전 임직원이 외부 문의를 받았을 때 어떻게 응대할지, 개인 채널 사용을 어떻게 제한할지, 내부 공지는 언제 나가는지를 정합니다.

    문안집이 아니라 판단의 문서입니다

    가장 흔한 오해는 이 매뉴얼을 문안 모음집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상황별 사과문과 입장문을 미리 여러 개 써 두면 위기 시에 꺼내 쓸 수 있다고 보는 방식입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쓰이지 않습니다. 실제 위기의 사실관계는 미리 써 둔 문안의 전제와 거의 언제나 다릅니다. 회사가 준비한 문안을 상황에 억지로 맞추면 그 어긋남이 문장에 드러나고, 읽는 쪽은 그것을 준비된 대응이 아니라 형식적인 대응으로 읽습니다.

    이 매뉴얼이 실제로 제공해야 하는 것은 문안이 아니라 그 문안을 만드는 판단 기준입니다. 사실관계가 어디까지 확인되었을 때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책임을 인정하는 표현과 유감을 표하는 표현을 가르는 선이 어디인지, 법무 검토와 커뮤니케이션 판단이 충돌할 때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지가 그것입니다.

    예시 문안은 이 기준이 적용된 결과물로서 참고 자료 위치에 놓이는 것이 맞습니다. 순서가 뒤집히면 매뉴얼은 두꺼워지지만 쓸모는 줄어듭니다.

    위기관리 매뉴얼과 어떻게 맞물리는가

    두 문서는 별개이되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접속 지점이 명확해야 실전에서 함께 작동합니다.

    가장 중요한 접속 지점은 심각성 단계입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정한 단계가 올라갈 때 대변인이 누구로 바뀌는지가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에 대응되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의사결정 단계입니다. 메시지를 누가 승인하는지가 위기관리 매뉴얼의 의사결정 주체와 일치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대응실행 단계입니다. 각 부서가 담당하는 이해관계자가 두 문서에서 같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용어의 불일치입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실무대응그룹이라고 부르는데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대응팀이라고 쓰는 식입니다. 두 문서를 다른 시기에 다른 주체가 만들면 이런 어긋남이 생깁니다. 위기 상황에서 이 차이는 사소하지 않습니다. 문서를 대조하는 데 시간이 들고, 그 시간은 대응에서 빠져나갑니다.

    개정도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직이 개편되어 위기관리 매뉴얼의 부서명이 바뀌었는데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의 담당 부서가 그대로인 경우가 실무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살아 있게 하는 조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이 작동하는지는 문서를 읽어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대변인이 실제로 질문을 받아 보아야 확인됩니다.

    미디어 트레이닝과 대변인 트레이닝이 이 매뉴얼의 검증 절차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매뉴얼이 정한 원칙과 메시지 구조가 압박 질문 앞에서 유지되는지, 대변인이 말하지 않기로 한 선을 지킬 수 있는지는 실습에서만 드러납니다. 훈련을 거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문서로만 존재하는 매뉴얼이 되기 가장 쉬운 종류의 문서입니다.

    갱신을 부르는 신호도 정해져 있습니다. 대변인이 교체되었을 때, 이해관계자 구성이 달라졌을 때, 회사가 실제 위기를 한 차례 겪었을 때입니다. 특히 세 번째가 중요합니다. 실전에서 쓰지 못했던 부분이 어디였는지는 그 시점에만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조직을 움직이게 한다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그 조직이 밖을 향해 말하게 합니다. 앞의 것만 갖춘 회사는 움직이지만 말하지 못하고, 뒤의 것만 갖춘 회사는 말하지만 그 말을 뒷받침할 조치가 없습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상위 문서인 위기관리 매뉴얼에 관한 것입니다.
    살아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매뉴얼을 살아 있게 유지하는 조건에 관한 것입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이란 무엇인가: 매뉴얼과 함께 쓰이는 문서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ISO 22361:2022, Security and resilience — Crisis management — Guidelines — 조직의 위기관리 역량 구성 요소로서 위기 커뮤니케이션(Clause 8)과 훈련·검증(Clause 9)
    스트래티지샐러드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 개발 프로젝트에서 적용해 온 구성 요소, 두 매뉴얼의 접속 지점, 검증과 갱신의 기준을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 그린워싱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그린워싱은 기업이나 제품이 실제보다 환경에 더 이로운 것처럼 보이도록 알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사실과 다른 표현을 쓰는 경우는 물론, 개별 내용은 사실이더라도 받아들이는 쪽이 전체를 오해하게 만드는 경우까지 포함됩니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이 사안이 다른 위기와 구별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거짓 진술이 하나도 없어도 성립한다는 점, 그리고 문제가 되는 자료를 회사가 직접 만들어 공개해 두었다는 점입니다. 그린워싱은 회사가 하지 않은 일 때문이 아니라 회사가 한 말 때문에 발생하는 위기입니다.

    거짓말의 문제가 아니라 격차의 문제입니다

    실무에서 마주하는 그린워싱 논란의 대부분은 명백한 허위 진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개별 문장은 사실인데 전체가 사실과 다른 인상을 만드는 경우에서 나옵니다.

    재활용 소재를 일부 적용한 제품에 친환경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경우, 포장재만 개선한 사실을 제품 전체가 환경에 이로운 것처럼 알리는 경우, 상쇄 크레딧 구매를 근거로 탄소중립을 표시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어느 문장도 거짓이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쪽의 인식은 사실과 벌어집니다.

    국내 규제도 이 지점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은 2023년 9월 개정 시행되면서 판단 기준을 일곱 가지 원칙으로 정비했습니다. 표시·광고가 진실한지만 보지 않고, 그 표현이 제품의 어느 부분에 관한 것인지 명확한지, 전체 생애주기를 고려했는지까지 함께 봅니다.

    원칙확인하는 것
    진실성표현의 내용이 사실과 일치하는가
    명확성무엇에 관한 표현인지 분명한가
    상당성환경 개선의 정도가 의미 있는 수준인가
    실증성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자료가 있는가
    전과정성원료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고려했는가
    구체성포괄적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밝혔는가
    완전성불리한 정보를 누락하지 않았는가
    표. 환경 관련 표시·광고 심사의 일반원칙 — 공정거래위원회 심사지침 기준으로 정리

    이 일곱 가지 가운데 기업이 가장 자주 걸리는 것은 뒤쪽 세 가지입니다. 전과정성, 구체성, 완전성은 회사가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가를 묻기 때문입니다. 홍보 부문의 통상적인 검토 절차로는 걸러지지 않는 영역입니다.

    규제의 대상이 광고에서 경영 메시지로 넘어왔습니다

    그린워싱을 제품 광고의 문제로 다루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마련한 것도 제품이 아닌 기업 자신에 관한 표현을 다루기 위해서였습니다. 탄소중립 선언,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투자자 대상 자료, 채용 페이지의 문구가 모두 검토 대상이 됩니다.

    국외 규제는 더 명확한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유럽연합의 「소비자의 친환경 전환 역량 강화 지침」(Directive (EU) 2024/825)은 2026년 9월 27일부터 적용됩니다. 인증이나 검증 근거 없이 친환경, 지속가능 같은 포괄적 표현을 쓰는 것, 상쇄에 근거해 제품의 탄소중립을 표시하는 것, 자체 제작한 지속가능성 라벨을 붙이는 것이 금지 목록에 올랐습니다. 위반 시 해당 회원국 연 매출의 4% 이상을 제재 기준으로 두고 있습니다.

    유럽에 제품을 내보내는 기업에게 이것은 규제 준수의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은 기업에게도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국제 규제가 금지한 표현은 국내 여론이 문제 삼을 때 그대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논란은 몇 해 뒤에 옵니다

    그린워싱에는 다른 위기와 다른 시간 구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위기는 사건이 발생하고 곧바로 논란이 됩니다. 그린워싱은 선언한 시점과 문제가 되는 시점 사이에 몇 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목표 연도를 제시한 탄소중립 선언, 특정 시점까지 달성하겠다고 밝힌 재생에너지 전환율, 폐기물 감축 약속이 모두 그렇습니다. 발표할 때는 좋은 소식이고, 문제가 되는 것은 중간 점검 시점이나 목표 연도가 가까워졌을 때입니다. 그 시점에는 선언을 주도한 경영진이 회사에 없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 구조 때문에 그린워싱은 이슈 단계에서 감지하기가 특히 어렵습니다. 회사 안에서 이것을 위기요소로 인식하는 부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홍보부문은 발표를 마친 사안으로 분류하고, 환경 담당 부문은 이행 실적을 관리할 뿐 그 선언이 대외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는 보지 않습니다.

    위기요소 진단에 회사가 과거에 대외적으로 한 약속을 항목으로 포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 이행되지 않은 공개 선언은 그 자체로 위기요소입니다.

    대응은 해명이 아니라 목록에서 시작합니다

    그린워싱 논란이 발생한 뒤의 대응 폭은 다른 위기보다 좁습니다. 문제가 된 표현을 회사가 직접 만들어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사실관계를 다툴 여지도, 오해였다고 설명할 여지도 크지 않습니다. 회사가 한 말이 그대로 증거입니다. 갑질 논란에서 증거가 회사보다 먼저 공개되는 것과 같은 구조이며, 다만 그 증거를 만든 쪽이 회사 자신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 영역의 위기관리는 발생 이후의 대응이 아니라 발생 이전의 정리에 가깝습니다. 평시에 확인해야 할 것은 셋입니다.

    첫째, 대외에 나가 있는 환경 관련 표현을 전수 목록으로 만듭니다. 제품 표시와 광고에 그치지 않고 홈페이지, 보도자료,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자료, IR 자료, 전시 부스, 채용 페이지까지 포함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자기 회사가 대외적으로 무엇을 약속해 두었는지 한 문서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 각 표현에 대해 실증 자료가 어디에 있고 누가 관리하는지 확인합니다. 실증할 수 없는 표현이 확인되면 논란이 생기기 전에 내리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대응입니다. 이미 지적을 받은 뒤에 내리면 그 행위 자체가 두 번째 기사가 됩니다.

    셋째, 앞으로 나갈 목표 선언에는 경로와 시점을 함께 명시합니다. 목표만 있고 경로가 없는 선언은 발표 시점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행 시점에 반드시 문제가 됩니다.

    위기관리의 전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왔는가를 묻는 것이라면, 그린워싱은 그 질문이 회사가 스스로 정한 기준에 대해 적용되는 경우입니다. 회사가 하겠다고 말한 것이 그 기준이 됩니다.

    그린워싱 논란에서 회사를 곤란하게 만드는 자료는 언제나 회사가 스스로 만들어 공개해 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역의 위기관리는 문제가 생긴 뒤에 답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 문제가 될 말을 미리 찾아 정리해 두는 일에 가깝습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그린워싱 지적이 위기로 넘어가는 경계에 관한 것입니다.
    이해관계자란 무엇인가: 그린워싱 여부를 판정하는 쪽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 시 포지션이란 무엇인가: 환경 관련 주장에서 회사가 설 자리를 정하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 — 공정거래위원회, 2023년 9월 1일 개정 시행, 일반원칙 7가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 부당한 표시·광고의 금지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제16조의10 — 환경성 표시·광고의 기본원칙
    환경성 표시·광고 관리제도에 관한 고시 — 환경부
    Directive (EU) 2024/825 on empowering consumers for the green transition — 2026년 9월 27일 적용, 포괄적 환경 표현과 상쇄 기반 탄소중립 표시의 금지
    위 규제와 지침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격차의 구조, 논란의 시차, 평시 정리 항목으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 위기관리 관점에서 컴플라이언스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컴플라이언스는 법령과 규제, 내부 규정과 윤리 기준을 조직이 지키도록 관리하는 체계입니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이 체계를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겹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컴플라이언스는 회사가 선을 넘었는가를 다루고, 위기관리는 회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했는가를 다룹니다. 대부분의 기업 위기는 이 두 기준 사이의 간격에서 발생합니다.

    두 체계는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합니다

    컴플라이언스의 기준은 외부에서 주어집니다. 법령, 규제, 산업 규약, 내부 규정처럼 문언으로 확정된 것들입니다. ISO 37301은 이를 조직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와 자발적으로 지키기로 선택한 요구사항 전체를 포괄하는 관리 체계로 규정합니다. 국내에서는 「상법」 제542조의13이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에 준법통제기준을 두고 준법지원인을 선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위기관리의 기준은 다릅니다. 위기관리의 전제에서 말하는 조건은 법령이 정한 의무를 지켰다는 뜻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왔다는 뜻입니다. 이 기준은 문언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고, 사안이 발생한 뒤에 이해관계자가 소급해서 적용합니다.

    구분컴플라이언스위기관리
    묻는 것규범을 위반했는가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는가
    기준의 출처법령·규제·내부 규정이해관계자의 기대
    기준의 확정 시점사전에 문언으로 존재사후에 소급 적용
    판정 주체규제기관과 법원이해관계자와 공중
    실패의 결과제재, 과징금, 형사책임신뢰의 상실
    방어의 언어준수했음의 입증조치했음의 설명
    표. 컴플라이언스와 위기관리의 기준 비교 — 스트래티지샐러드

    이 표에서 실무적으로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줄입니다. 컴플라이언스는 지켜야 할 선이 미리 정해져 있어 준비가 가능합니다. 위기관리의 기준은 사안이 터진 뒤에 확정됩니다. 그래서 컴플라이언스를 충실히 이행한 회사도 위기를 피하지 못합니다.

    준법과 위기 회피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위법이 아닌데 위기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협력사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 규정을 지킨 인력 감축, 법적 요건을 모두 충족한 가격 인상이 그렇습니다. 회사는 선을 넘지 않았지만 공중은 회사가 그 상황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묻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명백한 규정 위반이 확인되었는데도 논란이 짧게 끝나는 경우입니다. 회사가 스스로 밝히고, 조사하고, 조치한 사실이 함께 알려질 때 그렇게 됩니다.

    두 경우가 알려 주는 것은 하나입니다. 위기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위반 여부가 아니라 회사가 그 사안을 다룬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위기 국면에서 회사가 내놓는 첫 문장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일 때 상황은 대개 나빠집니다. 법적 책임에 대한 답을 결과책임에 대한 답으로 내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컴플라이언스가 준비해 준 언어를 위기관리의 자리에 그대로 가져다 쓴 결과입니다.

    컴플라이언스는 위기 이후에 심판대에 오릅니다

    컴플라이언스의 진짜 시험은 위기가 발생한 다음에 시작됩니다. 사안이 발생하면 조사와 취재의 대상은 사건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체계로 옮겨 갑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다면 그 회사의 내부 통제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미국 법무부의 기업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평가 지침은 이 질문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이 잘 설계되어 있는가, 충분한 자원과 권한을 갖추고 진지하게 운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실제로 작동하는가입니다. 지침은 문서로만 존재하는 프로그램을 별도로 지목하면서, 잘 설계된 체계도 운용이 부실하면 실패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질문이 쓰이는 자리는 형사 절차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언론과 규제기관, 투자자가 회사에 묻는 질문의 구조가 이와 거의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회사가 대부분입니다. 규정집과 교육 이수율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만,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작동 여부는 보고가 올라왔는가로 확인됩니다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지표는 단순합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사실이 위로 올라왔는가입니다.

    컴플라이언스 실패의 전형적인 형태는 규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규정도 있고 신고 채널도 있는데 아무도 쓰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직에서 경영진은 신고 건수가 적은 것을 위험이 낮다는 신호로 읽습니다. 보고가 적은 조직은 안전한 조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조직입니다.

    이 지점에서 컴플라이언스와 위기관리는 하나의 관문을 공유합니다. 위험 신호가 불이익 없이 위로 올라오는 경로가 열려 있는가입니다. 이 경로가 막히면 컴플라이언스는 위반을 탐지하지 못하고, 위기관리는 감지 단계에서부터 실패합니다. 두 체계가 같은 이유로 동시에 무너집니다.

    살아 있는 매뉴얼과 문서로만 있는 매뉴얼의 차이가 여기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두 체계를 어떻게 붙일 것인가

    실무에서 확인할 것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컴플라이언스가 위반을 인지한 시점이 위기관리의 감지 시점으로 연결되는지 확인합니다. 많은 조직에서 이 두 정보는 서로 다른 라인을 타고 흐르며 만나지 않습니다. 컴플라이언스 부서가 조사를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난 뒤에 홍보부문이 언론 문의를 통해 처음 알게 되는 구조가 드물지 않습니다.

    둘째, 컴플라이언스의 리스크 목록과 위기관리의 위기요소 목록을 대조합니다. 두 목록은 겹치지만 같지 않습니다. 컴플라이언스 목록에 없는데 위기요소 목록에는 있어야 하는 항목이 어디인지가 회사의 취약 지점입니다.

    셋째, 위기 시 공식 메시지의 법무 검토 기준을 정해 둡니다. 법적 노출을 줄이는 것과 답해야 할 질문에 답하는 것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우선할지, 그 판단을 누가 하는지를 사안이 발생하기 전에 합의해 두어야 합니다. 리콜 커뮤니케이션에서 법적 방어를 위해 다듬은 문장이 회수율이라는 숫자로 되돌아오는 구조가 이 충돌의 전형입니다.

    넷째, 컴플라이언스 담당 임원이 위기관리위원회의 구성원인지 확인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위기 국면에서 회사는 자기 체계의 작동 여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없이 대응하게 됩니다.

    컴플라이언스는 회사가 선을 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체계입니다. 위기관리는 선 안에 있었더라도 회사가 무엇을 했는지에 답하는 활동입니다. 위기는 대개 두 번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의 전제란 무엇인가: 규범 준수가 놓인 기업의 전제에 관한 것입니다.
    ERM, BCP,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인접 관리 체계와의 구분에 관한 것입니다.
    살아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규정을 살아 있는 문서로 유지하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ISO 37301:2021, Compliance management systems — Requirements with guidance for use — 규범준수 경영시스템의 요구사항, ISO 19600을 인증 가능한 표준으로 대체
    상법 제542조의13 — 상장회사의 준법통제기준과 준법지원인
    U.S. Department of Justice, Evaluation of Corporate Compliance Programs —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평가의 세 가지 기본 질문
    Amy C. Edmondson, Learning from Mistakes Is Easier Said Than Done, Journal of Applied Behavioral Science (1996) — 오류 보고 건수와 심리적 안전의 관계
    위 표준과 지침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두 체계의 기준 비교, 위기 이후의 심판 구조, 두 체계를 연결하는 실무 항목으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 위기관리 시 대변인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대변인은 조직을 대표해 언론과 이해관계자에게 공식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위기가 발생하면 조직은 하나의 목소리로 말해야 하고, 그 목소리를 맡도록 미리 정해 둔 사람이 대변인입니다.

    한국에서 이 단어는 주로 정부와 공공기관, 정당에서 쓰입니다. 기업에서 「우리 회사 대변인」이라는 표현을 듣는 일은 드뭅니다. 이 글은 그 인식의 차이를 먼저 정리하고, 대변인의 정의와 의미, 그리고 역할을 다룹니다.

    한국에서는 정부의 말, 영어권에서는 조직의 말

    우리나라에서 대변인은 공식 직위입니다.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는 직제에 대변인을 두고 정례 브리핑을 운영합니다. 각 정당도 대변인을 두고 논평을 냅니다. 이 단어를 접하는 자리가 대부분 정부와 정치권이니, 기업과는 거리가 있는 말로 느껴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영어권에서는 같은 단어의 쓰임이 훨씬 넓습니다. spokesperson은 정부 기관과 기업에 공히 씁니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이 단어를 「다른 사람이나 다른 이들을 대표해 말하는 사람, 흔히 직무로서 그렇게 하는 사람」으로 풀이합니다. 미국 기사에서 「a company spokesperson said」는 일상적인 문장입니다.

    우리말 사전도 이 단어를 좁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대변인을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대신하여 의견이나 태도를 표하는 일을 맡은 사람」으로 풀이합니다. 기업도 단체입니다. 말의 뜻은 처음부터 좁지 않았습니다. 좁아진 쪽은 관행입니다.

    구분한국의 관행영어권의 관행
    사전상 정의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대신하여 의견이나 태도를 표하는 일을 맡은 사람다른 사람이나 다른 이들을 대표해 직무로서 말하는 사람
    정부, 공공기관직제상 공식 직위, 정례 브리핑 운영spokesperson 또는 press secretary 로 운영
    정당대변인을 두고 논평 발표spokesperson
    기업호칭을 거의 쓰지 않음. 홍보실장이나 커뮤니케이션 담당 임원이 수행company spokesperson 으로 일상적으로 호칭
    실무상 결과기능은 있으나 역할 지정과 훈련이 빠지는 경우가 많음이름이 있어 지정과 훈련이 함께 따라옴
    표 1. 대변인이라는 말의 쓰임 — 스트래티지샐러드

    한국 기업에 이 기능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름이 다를 뿐입니다. 다만 이름이 없으면 설계도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변인이라는 직무가 조직도에 없으니, 누가 어떤 사안에서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 정하지 않은 채로 위기를 맞습니다. 그래도 회사는 말하게 됩니다. 기자 전화를 받은 현장 직원, 익명 게시판의 내부자, 사정을 모르는 협력사 담당자의 말이 모두 회사의 목소리로 보도됩니다.

    대변인 체계는 두 층으로 운영됩니다

    대변인을 고정된 직책으로 이해하면 실제 위기에서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안의 성격이 대변인을 정합니다.

    한국 기업의 실제 운영은 두 층입니다. 평상시 회사를 대표해 언론을 상대하는 자리는 홍보실장, 홍보팀장, 커뮤니케이션 실장이 맡습니다. 영어권에서 company spokesperson 이라 부르는 자리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 옆으로 사업 영역별 전문성을 가진 임원급을 부 대변인 그룹으로 묶어 관리합니다. 제품 결함과 공장 사고에는 생산기술 담당 임원, 정보 보안 사고에는 CSO, 소송과 법적 쟁점에는 법무 담당 임원이 배정되는 식입니다. 오너 관련 사안처럼 무게가 다른 경우에는 최고경영자가 직접 그 자리에 섭니다.

    이 구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위기의 질문은 대부분 기술적이어서 홍보 책임자 혼자 답할 수 없는 영역이 반드시 나옵니다. 그렇다고 해당 임원을 곧바로 마이크 앞에 세우면 회사 전체의 메시지와 어긋나는 답이 나옵니다. 두 층을 함께 두고 평시에 함께 훈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안 유형정 대변인부 대변인 그룹
    평시, 일반 언론 대응홍보실장, 커뮤니케이션 실장홍보팀장
    제품 결함, 공장 사고홍보실장생산기술 담당 임원, 공장장, 안전팀장, 환경팀장
    정보 보안 사고홍보실장CSO, 정보보호 담당 임원
    소송, 수사, 법적 쟁점홍보실장법무 담당 임원
    오너 관련 사안최고경영자홍보실장
    표 2. 사안 유형에 따른 대변인 배정 — 스트래티지샐러드

    각 역할에는 정과 부를 함께 지정합니다. 현장 대변인으로 지정된 공장장과 안전팀장이 사고 직후 조사와 수사에 불려 다니는 상황까지 계산해, 부 대변인을 여럿으로 두껍게 편제하는 것이 실무의 원칙입니다.

    조직이 대변인이라는 관문을 두는 이유

    첫째는 일관성입니다. 여러 사람이 각자의 언어로 답하면 같은 사안에 서로 다른 설명이 붙습니다. 언론과 이해관계자는 그 차이를 곧바로 찾아냅니다. 한 사람이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야 회사의 입장이 하나로 읽힙니다. 회사 안에 남아 있던 논리의 충돌이 밖으로 드러나는 일도 이 지점에서 막힙니다.

    둘째는 답변 과정의 관리입니다. 대변인이라는 창구가 있으면 질문이 들어오는 자리와 답이 나가는 자리가 정해집니다. 질문을 접수하고, 사실을 확인하고, 내부 검토를 거쳐 답하는 시간이 확보됩니다. 창구가 없으면 질문을 받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답하게 되고, 확인되지 않은 말이 회사의 공식 입장으로 기록됩니다.

    셋째는 전략적 메시지의 개발입니다. 대변인의 메시지는 내부 합의를 전제로 만들어집니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아직 말하지 않을지, 어떤 순서로 공개할지를 경영진이 함께 정한 뒤에 밖으로 나갑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메시지가 전략의 자리에 섭니다.

    대변인의 역할은 전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대변인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최고의사결정자들의 생각과 의도, 전략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입니다. 실패한 대변인은 대부분 자신이 대변하는 그룹의 의중과 합의된 핵심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부와 커뮤니케이션합니다. 그런 메시지는 회사의 메시지로 읽히지 않습니다. 대변인 개인의 메시지가 됩니다.

    동시에 대변인은 안과 밖의 중간에 서서 이슈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사람입니다. 내부의 결정을 밖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옮기고, 밖의 반응을 안이 감당할 수 있는 정보로 되돌립니다. 이 해석을 위해서는 정무적 감각과 이슈관리 전략이 함께 필요합니다. 회사 편을 들어 일방적 메시지를 선포하는 일만 반복하는 사람은 이 역할의 절반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변인도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집니다

    대변인을 단순 전달자로 보는 시각에서는, 대변인의 말에 대해 대변인이 질 책임은 없다는 오해가 나옵니다. 대변인의 말은 조직을 대변하는 동시에 외부를 향한 공식 메시지입니다. 그 영향에 따라 개인에게도 책임과 의무가 따릅니다. 특히 그 메시지가 내부에서 합의된 것이 아니었다면 책임은 훨씬 무거워집니다.

    정리

    위기관리에서 대변인은 조직을 대표해 공식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미리 지정된 역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주로 쓰는 말이지만, 기능 자체는 모든 조직에 존재합니다. 기업이 그 이름을 쓰지 않아도 위기가 오면 누군가는 회사를 대신해 말하게 됩니다.

    그 사람을 회사가 고르는가, 상황이 고르는가. 대변인 체계를 갖춘다는 것은 이 질문에 미리 답해 두는 일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무엇인가 — 지정된 대변인을 준비시키는 방법입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이란 무엇인가 — 대변인이 들고 서는 문서입니다.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 하나의 목소리를 만드는 원칙입니다.
    발표와 답변은 어떻게 다른가 — 대변인이 맡는 두 가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누가 답해야 하는가 — 답하는 사람을 정하는 기준입니다.

  • 기업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기업 위기관리는 기업의 존속과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위협하는 상황을 감지하고, 판단하고, 대응하여 그 위협을 관리하는 활동입니다. 국내에서 이 개념이 자주 흐려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위기관리라는 같은 말을 정부와 공공기관도 쓰기 때문입니다. 두 체계는 이름만 같을 뿐 위기를 정의하는 방식도, 지켜야 할 대상도, 쓸 수 있는 수단도 다릅니다. 기업 위기관리를 정의하려면 먼저 이 둘을 갈라 놓아야 합니다.

    같은 단어를 쓰는 두 개의 체계가 있습니다

    국가의 위기관리에는 법이 있습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재난의 유형을 정하고, 관리 책임 기관을 지정하고, 매뉴얼의 작성과 승인 절차를 규정합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가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제정한 것이 출발점이었고, 2014년 이 법에 관련 조항이 신설되면서 현재의 체계가 자리 잡았습니다.

    기업의 위기관리에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국제 표준으로는 ISO 22361이 조직의 위기관리 역량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침일 뿐 의무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을 위기로 볼지, 누가 판단할지, 무엇을 준비할지를 회사가 스스로 정해야 합니다.

    개별 국면에 걸리는 법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개인정보 보호법의 통지와 신고 의무가, 상장사라면 공시 규정이 작동합니다. 다만 이것들은 특정 사안에 붙는 의무이지, 무엇을 우리 회사의 위기로 볼 것인지와 어떤 체계로 그것을 관리할 것인지를 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 출발점의 차이가 이후의 모든 것을 갈라놓습니다.

    구분기업 위기관리정부·공공기관 위기관리
    근거총괄 규율법 없음 (ISO 22361은 지침)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위기의 정의회사가 스스로 정의법령이 유형을 열거
    지켜야 할 것사업의 존속과 신뢰국민의 생명·신체·재산
    권한의 원천외부에 대한 강제력 없음 (설득에 의존)법이 부여한 강제력
    매뉴얼의무 아님, 승인 절차 없음법정 의무, 승인 절차 있음
    성패의 판정자이해관계자와 시장국민과 감사·국회
    종결의 의미상황 종료 후에도 평판이 남음복구 완료로 종결
    표. 두 위기관리 체계의 비교 —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의 목록을 누가 만드는가가 다릅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에게 위기의 유형은 주어집니다.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2026년 7월 3일 기준 자료를 보면, 자연재난 15종과 사회재난 68종에 대해 위기관리 매뉴얼이 작성·운용되고 있습니다. 풍수해, 지진, 산불, 감염병, 다중운집인파, 행정정보시스템 재난처럼 유형이 이름을 갖고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기업에게는 그런 목록이 없습니다. 회사가 속한 산업, 사업 구조, 거래 관계, 조직 문화에 따라 위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전부 다릅니다. 그래서 기업 위기관리의 첫 단계는 대응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이 회사의 위기인지를 발굴하는 작업입니다. 위기요소 진단이 기업 위기관리 프로젝트의 출발점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차이는 준비의 성격도 바꿉니다. 목록이 주어진 쪽은 각 유형에 대한 절차를 정교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갑니다. 목록을 만들어야 하는 쪽은 아직 이름이 없는 상황까지 다룰 수 있는 판단 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지켜야 할 것이 다릅니다

    정부의 위기관리가 지키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와 재산입니다. 조직 자신의 존속이 목표가 아닙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인명 피해를 줄이고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 성패의 기준이 됩니다.

    기업의 위기관리가 지키는 것은 사업의 연속성과 회사의 존속입니다. 그런데 기업의 존속은 이해관계자의 신뢰 위에서만 성립합니다. 제품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시설이 복구되어도 소비자가 돌아오지 않으면 회사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체계는 종결의 의미가 다릅니다. 재난은 복구가 완료되면 종결됩니다. 기업의 위기는 상황이 정리된 뒤에도 평판이라는 형태로 남습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기업 위기관리에서 부가 기능이 아니라 본체인 이유가 이 지점에 있습니다.

    권한의 유무가 방법을 결정합니다

    두 체계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권한입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법이 부여한 강제력을 갖습니다. 대피를 명령할 수 있고, 통행을 통제할 수 있고, 자원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심각까지 단계별로 발령하면 관계 기관이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지시가 작동하는 구조입니다.

    기업에게는 그런 권한이 하나도 없습니다. 소비자에게 제품 사용을 중지하라고 명령할 수 없고, 언론에 보도를 멈추라고 지시할 수 없으며, 여론에 판단을 유보하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회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을 전달하고 조치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뿐입니다.

    기업 위기관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설득의 작업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부의 위기관리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여러 기능 중 하나라면, 기업의 위기관리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수단의 거의 전부입니다.

    매뉴얼의 성격이 다릅니다

    앞서 인용한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운용 중인 재난 분야 위기관리 매뉴얼은 모두 15,137건입니다.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83건, 위기대응 실무매뉴얼 410건, 현장조치 행동매뉴얼 14,644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표준매뉴얼은 행정안전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실무매뉴얼과 행동매뉴얼도 각각 승인 절차를 거칩니다.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에는 이런 구조가 없습니다. 만들 의무가 없고, 승인할 기관이 없고, 점검할 주체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매뉴얼은 만들어진 뒤 아무도 열어 보지 않는 상태로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매뉴얼이 살아 있는가를 별도로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이 차이에서 나옵니다.

    내용의 얼개도 다릅니다. 공공의 위기관리 매뉴얼은 재난 유형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전제 위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유형마다 별도의 문서가 만들어지고, 표준에서 실무로, 실무에서 현장조치로 내려가면서 기관별 임무와 조치 절차가 단계마다 구체화됩니다. 전체 15,137건 가운데 현장조치 행동매뉴얼이 14,644건을 차지하는 구성이 이 구조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대상이 정해져 있으므로 아래로 깊이 파고들 수 있습니다.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은 반대 방향으로 설계됩니다. 어떤 유형의 위기가 올지 미리 확정할 수 없으므로, 유형을 가리지 않고 작동하는 하나의 공통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문서의 본체가 됩니다. 위기의 정의, 심각성 판단 기준, 단계별 대응 조직, 감지에서 종결까지의 프로세스, 부서별 역할과 책임이 그 뼈대입니다. 위기 유형별 시나리오는 이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검증하고 보완하는 부속물이지 매뉴얼의 중심이 아닙니다.

    정리하면 공공의 매뉴얼은 확정된 유형을 따라 아래로 깊어지고, 기업의 매뉴얼은 확정되지 않은 유형을 감당하기 위해 옆으로 넓어집니다.

    공공기관의 양식을 그대로 가져와 기업 매뉴얼을 만든 조직이 실전에서 그 문서를 쓰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유형별 절차는 촘촘한데, 목록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것을 위기로 볼 것인지 판단할 기준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업의 위기는 대부분 목록에 없는 형태로 옵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별개의 문서입니다. 앞의 것이 조직과 프로세스를 규정한다면, 뒤의 것은 대변인 체계와 핵심 메시지, 이해관계자별 대응 방식을 다룹니다. 두 문서의 역할을 구분하지 않고 한 권에 섞어 담으면 어느 쪽도 실전에서 쓰기 어려워집니다.

    혼동은 실무에서 이런 형태로 나타납니다

    두 체계를 구분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증상은 대체로 셋입니다.

    첫째, 위기경보 단계를 그대로 옮겨 오는 경우입니다. 관심·주의·경계·심각의 네 단계는 국가적 대응 수준과 연동된 기준입니다. 기업의 심각성 기준은 회사의 대응 조직이 어느 단계에서 상향되는지와 연동되어야 합니다. 이름만 가져오면 단계는 있는데 그 단계에서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지가 비어 있게 됩니다.

    둘째, 위기관리를 안전·재난 부서의 일로만 두는 경우입니다. 사업장 사고와 설비 장애를 다루는 체계는 갖추어져 있는데, 언론 보도나 온라인 논란처럼 물리적 사고가 없는 위기를 다룰 체계가 없는 조직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회사에 위기관리 매뉴얼이 두 권 있는데 서로를 모르는 상태로 존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셋째, 공공기관이 자신의 이중 지위를 정리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재난관리책임기관인 동시에 사업을 운영하는 조직입니다. 법정 재난 대응 체계를 갖추어야 하는 것과 별개로, 기관의 평판과 이해관계자 신뢰를 다루는 위기관리 체계가 따로 필요합니다. 전자만 갖춘 공공기관이 국정감사나 언론 국면에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기업 위기관리를 다시 정의하면

    지금까지의 구분을 종합하면 기업 위기관리의 정의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법이 위기를 정의해 주지 않는 조건에서 무엇이 자기 회사의 위기인지를 스스로 발굴하고, 강제할 권한이 없는 조건에서 이해관계자의 이해와 수용을 얻어 내며, 상황이 종료된 뒤에도 남는 신뢰를 관리하는 활동입니다.

    세 가지 조건 모두 정부의 위기관리에는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기업 위기관리는 국가 위기관리의 축소판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작업입니다.

    위기관리의 전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왔는가를 묻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법이 정해 준 것을 지켰는가로는 답이 되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위기관리는 국민을 지키는 일입니다. 기업의 위기관리는 신뢰를 지키는 일입니다. 지켜야 할 것이 다르면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위기관리의 정의와 국면별 책임에 관한 것입니다.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위기 이전 국면과의 구분에 관한 것입니다.
    ERM, BCP,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인접 관리 체계와의 구분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4조의5 — 재난분야 위기관리 매뉴얼의 작성·운용과 승인. 2014년 2월 7일 시행(법률 제11994호)으로 신설
    행정안전부, 위기관리 매뉴얼 안내 — 2026년 7월 3일 기준 재난 유형별 매뉴얼 현황(총 15,137건, 표준 83건·실무 410건·행동 14,644건), 자연재난 15종·사회재난 68종
    ISO 22361:2022, Security and resilience — Crisis management — Guidelines — 조직의 전략적 위기관리 역량에 관한 국제 지침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 2004년 7월 대통령훈령 제124호, 국가 위기관리 활동의 개념과 기준
    위 법령과 지침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두 체계의 비교, 권한 유무에 따른 방법의 차이, 혼동이 실무에서 나타나는 형태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 갑질 논란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갑질 논란은 우위에 있는 쪽이 그 우위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문제 제기가 공론화된 상태를 말합니다. 계약서의 갑과 을이라는 표기에서 나온 말이며, 법률 용어가 아닙니다. 위기관리 실무에서 이 사안이 까다로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아래에는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되는 여러 국면이 섞여 있고, 여론이 판정하는 기준은 그 어느 법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이름 아래 세 개의 법이 있습니다

    갑질이라는 말이 실제로 가리키는 국면은 크게 셋으로 나뉩니다. 조직 내부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하는 행위, 거래 관계에서 우월한 사업자가 상대방에게 하는 행위, 그리고 고객이 응대 근로자에게 하는 행위입니다. 세 가지는 근거 법령도 다르고 회사가 지는 의무도 다릅니다.

    구분직장 내 괴롭힘거래상 지위 남용고객의 폭언 등
    근거근로기준법 제76조의2 · 제76조의3공정거래법 제45조 제1항 제6호, 하도급법·가맹사업법·대규모유통업법·대리점법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우위의 원천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거래상의 지위구매자의 지위
    피해 주체소속 근로자수급·가맹·납품·대리점 사업자고객응대근로자
    회사의 위치가해 또는 사용자가해 사업자보호 의무자
    법정 의무조사, 피해자 보호, 신고자 불이익 금지시정명령과 과징금의 대상예방조치, 업무 중단 또는 전환
    대응 주관인사·노무법무·구매·영업인사·현장 운영
    표. 갑질로 불리는 세 국면의 구분 — 스트래티지샐러드

    세 번째 국면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회사가 가해자가 아니라 근로자를 보호할 의무를 지는 쪽입니다. 그런데 이 국면에서도 여론은 회사에 묻습니다. 직원을 지키지 못한 회사인가를 봅니다. 갑질 논란에서 회사의 위치가 언제나 피고인 것은 아니지만, 답해야 하는 위치인 것은 언제나 같습니다.

    위법성이 아니라 우위의 사용 방식이 판정 기준입니다

    세 법령의 요건에는 공통 구조가 있습니다. 우위가 존재할 것, 그리고 그 우위가 적정 범위를 넘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근로기준법은 이를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행위로 규정하고, 공정거래법 계열은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행위로 규정합니다.

    여론도 같은 구조로 판정합니다. 다만 요건이 없고 입증 절차도 없습니다. 우위가 눈에 보이고 그 사용이 과했다고 느껴지면 그것으로 판정이 끝납니다.

    그래서 갑질 논란에서 회사가 법적 판단을 앞세우는 대응은 대개 작동하지 않습니다. 위법이 아니라는 문장은 우위 자체를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중이 물은 것은 처벌 대상인가가 아니라 그런 관계가 어떻게 가능했는가입니다.

    증거가 먼저 나옵니다

    갑질 논란에는 다른 위기와 구별되는 시간 구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위기는 사안이 먼저 알려지고 증거가 나중에 확인됩니다. 갑질 논란은 반대입니다. 녹취, 영상, 메신저 화면처럼 1차 증거가 먼저 공개되고 회사는 그것을 보고 나서 확인을 시작합니다.

    이 구조가 초기 대응의 표준 문장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홀딩 스테이트먼트는 공중이 이미 본 것을 회사만 보지 못했다는 인상을 만듭니다. 확인이 필요하다는 말 자체는 사실이지만, 그 말이 놓이는 자리가 다릅니다.

    이 국면에서 회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확인 중이라는 상태가 아니라 확인의 방식입니다. 누가 조사하는지, 언제까지 하는지, 그동안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호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초기 메시지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확인의 절차를 말하는 것과 확인 중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같은 시점에 나가도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피해자가 조직 안에 남습니다

    갑질 논란이 다른 위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조직 안에 있거나 거래 관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논란이 정리된 뒤에도 그 관계는 계속됩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은 여기에 절차를 두고 있습니다. 신고를 접수하거나 발생 사실을 인지하면 지체 없이 객관적인 조사를 실시해야 하고, 조사 기간 동안 피해 근로자를 보호해야 하며, 신고자와 피해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도 조치를 요구한 고객응대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절차는 법적 의무인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의 선행 조건입니다. 절차를 밟지 않은 상태에서 나가는 사과문은 두 번째 논란을 만듭니다. 실제로 갑질 논란의 2차 국면은 처음 알려진 행위보다 그 뒤에 회사가 무엇을 했는가에서 열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조사가 형식적이었다는 이야기, 신고자가 부서를 옮겼다는 이야기, 가해로 지목된 사람이 조용히 복귀했다는 이야기가 두 번째 기사를 만듭니다.

    상황관리가 커뮤니케이션에 앞선다는 원칙이 가장 분명하게 확인되는 영역입니다.

    사실을 다투면 대개 집니다

    갑질 논란에서 회사가 자주 선택하는 대응은 맥락의 제시입니다. 전후 사정이 있었다, 업무상 필요한 지시였다, 일부는 사실과 다르다는 방향의 설명입니다.

    이 대응에는 구조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업무상 적정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회사가 설명하는 순간, 그 범위를 정하는 쪽이 회사라는 사실이 다시 드러납니다. 우위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설명이 우위를 재확인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여론이 본 것은 행위의 세부가 아니라 관계의 비대칭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실관계가 명백히 왜곡되었다면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만 그 정정은 관계에 대한 답과 분리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실을 바로잡는 문장과 관계를 설명하는 문장이 한 발표문에 섞이면, 앞의 것은 변명으로 읽히고 뒤의 것은 형식으로 읽힙니다.

    답해야 할 질문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리고 다시 가능하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을 바꿀 것인가입니다.

    갑질 논란은 한 사람의 행동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서 그 행동이 가능했던 조직에 대한 질문으로 끝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논란이 위기로 넘어가는 경계에 관한 것입니다.
    원점관리란 무엇인가: 논란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핵심 이해관계자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 시 사과문은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논란 이후의 사과가 갖춰야 할 요소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 제76조의3 —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와 발생 시 사용자의 조치 의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 제1항 제6호 — 거래상 지위의 남용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 거래 분야별 특별법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 — 공정거래위원회,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의 유형과 판단 기준
    위 법령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세 국면의 구분, 증거 선행 구조에 따른 초기 메시지 설계, 2차 국면의 발생 지점으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 오너 리스크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오너 리스크는 지배주주와 그 일가의 행위나 판단이 회사의 평판과 가치에 직접적인 손실을 발생시키는 위험을 말합니다. 위기관리 실무에서 이 개념이 특별하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사안이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회사의 위기관리 체계가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주체에서 발생하는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너 리스크는 위기의 한 유형이라기보다, 회사가 만들어 둔 모든 위기관리 장치가 닿지 않는 영역의 이름에 가깝습니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이름입니다

    경영학에서 오래 다루어 온 개념 중에 키맨 리스크(key-man risk)가 있습니다. 특정 인물의 역량에 조직이 과도하게 의존할 때, 그 인물이 부재하면 발생하는 위험입니다. 오너 리스크는 방향이 반대입니다. 그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위험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있어서 생기는 위험입니다.

    이 차이는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에서 나옵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구조에서 지배주주는 이사회와 주주의 실효적인 견제를 받지 않은 채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합니다. 권한이 한 사람에게 모이면 그 사람에게 발생하는 모든 사안이 회사의 사안이 됩니다. 개인의 발언, 사생활, 태도, 판단 착오가 곧바로 기업 가치의 문제로 전환되는 경로가 여기에서 만들어집니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의 CG Watch 2023에서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12개 시장 가운데 8위, 57%대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개인 주주의 증가와 주주행동주의의 확산으로 직전 조사보다 개선된 결과입니다. 다만 이사회 평가, 이사 보수 공시, 다양성 정책에서는 여전히 뒤처진다는 지적이 함께 있었습니다. 견제 장치가 작동하는 정도가 곧 오너 리스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오너 리스크는 개인의 성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판단이 검증 없이 실행되는 구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 층으로 나누어야 대응이 갈라집니다

    오너 리스크를 하나의 덩어리로 다루면 대응이 섞입니다. 실무에서는 세 층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유효합니다.

    구분사법 리스크평판 리스크경영 리스크
    발생 영역횡령·배임, 사익편취, 조세언행, 태도, 사생활, 가족 관계독단적 의사결정, 승계, 투자 판단
    판정 주체수사기관과 법원여론과 이해관계자시장과 투자자
    회사의 통제 가능성낮음낮음제한적
    대응 주관법무커뮤니케이션재무·IR
    시간 축수년 단위수일에서 수주중장기 누적
    표. 오너 리스크의 세 층 — 스트래티지샐러드

    사법 리스크는 절차가 정해져 있어 예측이 가능한 편입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7조의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처럼 규제의 문언과 판단 기준이 축적된 영역이 여기에 속합니다.

    관리가 가장 어려운 것은 평판 리스크입니다. 요건도 절차도 없고, 판정은 여론이 하며, 확산 속도가 다른 두 층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층에서 발생한 사안이 나머지 두 층으로 옮겨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의 언행에서 시작된 논란이 회사의 내부거래 구조에 대한 취재로 이어지고, 다시 주가와 신용도의 문제로 넘어가는 전개입니다.

    세 층은 대응 주관 부문이 다릅니다. 이 구분 없이 하나의 대응 조직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루면, 법적 방어 논리가 커뮤니케이션을 지배하거나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이 법적 리스크를 키우는 결과가 나옵니다.

    위기관리 체계가 닿지 않습니다

    기업 위기관리의 기본 구조는 위기관리위원회를 소집하고, 대응 조직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지정된 대변인이 답하는 것입니다. 오너 리스크에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흔들립니다.

    위기관리위원회는 오너를 소집할 수 없습니다. 위원장이 대표이사이고 그 대표이사가 오너인 구조에서는 사안의 당사자가 의사결정자를 겸합니다. 사실관계 확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너 본인이 제공하는 정보 외에 회사가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적이고, 그 정보의 정확성을 검증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조직 안에 없습니다.

    대변인 문제는 더 까다롭습니다. 회사가 오너 개인의 사안에 답하는 순간, 그 사안은 회사의 사안이 됩니다. 반대로 답하지 않으면 회사가 그 사안을 방치했다는 판단이 따라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선택 자체를 사전에 설계해 두지 않으면 현장에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너 리스크 대응의 첫 판단은 언제나 같습니다. 이 사안이 회사의 사안인가 개인의 사안인가입니다. 그리고 이 판단은 회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이 합니다.

    답할 수 없는 구조가 위기를 키웁니다

    오너 관련 논란에서 회사가 가장 자주 내놓는 문장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일이므로 회사가 답할 사안이 아니라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이 사실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중이 회사에 묻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 사람이 행사하는 권한이 회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권한의 출처가 회사라면 그 권한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한 질문도 회사로 옵니다.

    결과책임은 나눌 수 없고 아래로 내릴 수도 없습니다. 오너 리스크에서 이 원칙은 반대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회사가 답변을 개인에게 미루면, 답하지 않은 자리를 언론과 여론이 채웁니다. 그리고 그렇게 채워진 내용은 회사가 나중에 정정할 수 없습니다.

    답할 내용이 없는 것과 답할 구조가 없는 것은 다릅니다. 오너 리스크에서 회사가 침묵하는 이유는 대개 후자입니다.

    평시에 정해 둘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발생한 오너 리스크를 커뮤니케이션으로 해소할 수 있는 폭은 넓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영역에서는 평시의 준비가 대응 그 자체가 됩니다.

    정해 두어야 할 것은 네 가지입니다. 오너 관련 사안이 발생했을 때 대응을 주관하는 부문과 창구를 미리 지정하는 것, 회사 사안과 개인 사안을 가르는 기준을 사전에 합의해 두는 것, 사외이사와 이사회가 어느 국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정해 두는 것, 그리고 오너 본인을 위기관리 훈련과 미디어 트레이닝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입니다.

    네 가지 모두 오너가 없는 자리에서는 결정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여기에서 오너 리스크 관리의 실제 난점이 드러납니다. 이 논의를 오너 앞에서 꺼낼 수 있는 조직인가가 첫 번째 관문입니다.

    꺼내지 못하는 조직은 준비하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조직은 사안이 발생한 뒤에 처음으로 그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때는 이미 결정할 시간이 없습니다. 위기관리의 전제에서 위험 신호가 불이익 없이 위로 올라오는 경로를 확인 항목으로 두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오너 리스크의 크기는 오너가 어떤 사람인가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회사가 오너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로 정해집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의 전제란 무엇인가: 경영진에게 부여된 주의의무와 충실의무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에서 책임이란 무엇인가: 오너의 행위에 따르는 책임의 구조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위원회란 무엇인가: 통제 밖 주체를 다루기 위한 의사결정 기구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7조 —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등의 금지
    상법 제382조의3 · 제399조 — 이사의 충실의무와 회사에 대한 책임
    ACGA·CLSA, CG Watch 2023 Korea Chapter: Dismantling the Discount — 아시아·태평양 12개 시장 중 한국 8위, 57%대
    정진효·정세희·이창무, 산업보안 관점에서 바라본 오너리스크 관련 사건들의 피해수준 분석, 한국산업보안연구 (2021) — 오너 리스크 사건의 주식 수익률 영향에 관한 사건연구
    위 제도와 연구를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세 층의 구분, 위기관리 체계의 공백, 평시 준비 항목으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