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위기관리 용어 사전

기업 위기관리와 이슈관리 현장에서 쓰이는 핵심 용어를 하나씩 정의합니다. 각 편은 용어의 정의에서 시작해, 30년 위기관리 컨설팅 현장에서 그 개념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어디서 오해되는지를 짧게 설명합니다. 스트래티지샐러드 정용민 대표가 씁니다.

  • 위기 상황에서 누가 답해야 하는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결과책임(accountability)은 아래로 넘길 수 없다는 말이 최고경영자가 모든 사안에 답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답변의 자리는 사안의 성격과 규모, 피해의 크기, 그리고 이해관계자가 누구를 향해 묻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정해진 자리보다 낮은 사람이 답하면 질문이 종결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높은 사람이 일찍 답하면 사안의 크기를 회사가 스스로 키우게 됩니다. 답변 주체를 정하는 일은 가장 높은 사람을 세우는 문제이기보다 정확한 자리를 찾는 문제입니다.

    넘길 수 없다는 말의 뜻

    결과책임이 위임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실무에서 자주 오해됩니다. 사고가 나면 무조건 대표이사가 나서야 한다는 뜻으로 읽히는 경우입니다.

    정확한 의미는 다릅니다. 아래로 넘긴다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답변의 자리는 특정 지점에서 시작하되, 그 자리에서 답이 충분하지 않으면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위로 올라갑니다. 위로만 열려 있는 구조입니다.

    부문에서 발생한 사안의 첫 답변자는 부문장일 수 있습니다. 그 답변이 질문을 감당하지 못하면 다음 답변자는 현장 팀장이 아니라 경영진입니다. 아래에는 갈 곳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를 구분해 두어야 합니다. 누가 사과할 것인가와 누가 답할 것인가는 다른 결정입니다. 사과는 회사가 시점과 형식을 정해 한 번 내놓는 것이고, 답변은 제기된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것은 뒤쪽입니다.

    자리를 정하는 네 가지 기준

    실무에서 답변 주체를 판단할 때 다음 네 가지를 함께 봅니다.

    첫째, 문제가 된 판단이 어느 자리에서 이루어졌는가. 현장의 실행 오류라면 현장 책임자, 정책이나 투자나 구조의 문제라면 경영진, 지배구조나 조직 문화의 문제라면 최고경영자입니다. 답변자는 그 결정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어야 합니다. 권한이 없던 사람은 질문에 답할 재료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둘째, 피해를 되돌릴 수 있는가. 인명 피해는 원인이 현장의 단순 오류라 하더라도 답변의 자리를 자동으로 위로 올립니다. 되돌릴 수 없는 피해 앞에서 이해관계자가 묻는 것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에서 그치지 않고 이 회사는 어떤 회사인가로 넘어가며,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자리는 위에 있습니다.

    셋째, 사안이 어디까지 걸쳐 있는가. 한 사업장에서 끝나는 국지적 사안인지, 여러 사업장과 전사에 걸친 구조적 사안인지에 따라 자리가 달라집니다. 반복해서 발생한 사안은 단발 사안보다 한 단계 위로 올라갑니다. 재발은 개별 사고가 아니라 관리 체계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이해관계자가 누구를 향해 묻고 있는가. 감독기관이나 국회가 특정 직위를 지목한 상황에서 그보다 아래에서 나온 답변은 기능하지 않습니다. 질문의 수신자를 회사가 정할 수는 없습니다.

    자리가 낮으면 답이 되지 않습니다

    흔히 대리 사과라고 부르는 대응이 있습니다. 사고 부문의 장이나 계열사 대표를 첫 답변자로 두고 최고경영자는 뒤에 남는 방식입니다.

    이 대응이 반복해서 실패하는 이유는 사과하는 사람의 직위가 낮아서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기된 질문이 전사 차원의 결정이나 관리 체계를 향하고 있는데 부문 단위의 답변자가 배치되면, 그 사람은 질문에 답할 권한도 정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답변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답할 수 없는 자리에 배치된 것입니다.

    그 결과 질문은 종결되지 않고, 왜 저 사람이 나왔는가라는 질문이 하나 더 늘어납니다.

    낮은 자리에서 답변이 이루어지면 회사가 이 사안을 그 정도 크기로 판단하고 있다는 신호도 함께 전달됩니다. 사안의 크기에 대한 회사의 인식과 이해관계자의 인식이 어긋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사안 자체보다 그 인식 차이가 문제가 됩니다.

    자리가 높으면 다음이 없습니다

    반대 방향의 실패도 있습니다. 사안의 크기에 비해 높은 자리에서 답변이 일찍 이루어지는 경우입니다.

    최고경영자가 초기부터 답변자로 배치되면 두 가지가 발생합니다. 하나는 상향할 여지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후 사안이 확대되거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 질문의 층위가 올라갔을 때, 회사가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의 자리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회사가 이 사안을 최고 수준의 위기로 규정했다는 신호가 전달되는 것입니다. 통제 가능한 범위의 사안이 이 신호 하나로 확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두 가지를 함께 놓고 판단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답하지 않으면 늦는가, 지금 여기서 답하면 다음에 무엇이 남는가. 답변의 자리는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지 않습니다.

    자리는 사건 이전에 정해 두어야 합니다

    답변 주체를 사안이 터진 뒤에 정하면 늦습니다. 판단에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의 공백이 회사가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는 인상으로 읽힙니다.

    실무적으로는 위기 유형별로 답변 자리를 미리 배정해 두는 방식을 씁니다. 어떤 유형의 사안에서 누가 첫 답변자이고,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자리가 위로 올라가는지를 사전에 정해 두는 것입니다. 조건은 앞의 네 가지 기준을 사용합니다. 인명 피해 발생, 복수 사업장 확산, 감독기관의 직위 지목, 동일 사안의 재발이 대표적인 상향 조건입니다.

    여기에 답변자의 준비 상태가 함께 관리되어야 합니다. 자리만 정해 두고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이 질문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배정은 의미가 없습니다. 스트래티지샐러드가 경영진과 대변인을 대상으로 미디어 트레이닝과 대변인 트레이닝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도 답변의 자리가 층위별로 다르고, 각 층위가 받게 되는 질문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답변의 자리를 정하는 일은 위기 대응의 첫 결정입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대체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답변책임(answerability)이란 무엇인가: 답해야 하는 몫 자체가 무엇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 시 대변인이란 무엇인가: 답하는 사람의 역할과 요건에 관한 것입니다.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답하는 창구를 하나로 모으는 원칙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상법 제382조 제2항 · 제393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9호 — 경영책임자등의 정의
    Mark Bovens, Analysing and Assessing Accountability: A Conceptual Framework, European Law Journal (2007) — 답변 주체와 상대(forum)의 관계 규정
    Ruth W. Grant & Robert O. Keohane, Accountability and Abuses of Power in World Politic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2005)
    답변 자리의 상향 구조와 네 가지 판단 기준, 자리가 낮을 때와 높을 때의 실패 구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 답변책임(answerability)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답변책임이란 위기와 이슈 상황에서 기업이 이해관계자가 던지는 질문에 사실과 판단의 경위를 제시하고 그 평가를 감당할 수 있는 상태로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할 의무를 말합니다. 결과책임(accountability)은 답하는 몫과 감당하는 몫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중 앞의 것이 답변책임입니다. 국내 기업의 위기 대응에서 문책과 배상은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답변은 자주 비어 있습니다. 새로 도입해야 할 개념이라기보다 책임이라는 말에 원래 들어 있던 절반입니다.

    책임이라는 말에는 원래 답한다는 뜻이 있었습니다

    우리말 「책임(責任)」은 맡은 바를 뜻합니다. 맡는다는 의미는 있지만 답한다는 의미는 담기지 않습니다.

    영어 accountability는 사정이 다릅니다. 어근인 account는 회계 장부와 진술을 함께 뜻하며, 중세 잉글랜드에서 왕이 봉신을 불러 맡긴 재산의 내역을 직접 말하게 했던 제도가 이 단어의 배경으로 지목됩니다. 책임은 처음부터 무엇을 보유하거나 수행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불려 나와 답하는 일이었습니다.

    정치학자 안드레아스 셰들러(Andreas Schedler)는 이 개념을 두 축으로 나누어 정리했습니다. 답할 의무(answerability)와 그 결과를 감당할 의무(enforcement)입니다. 네덜란드의 행정학자 마르크 보번스(Mark Bovens) 역시 accountability를 행위자가 특정 상대에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며, 상대가 질문하고 평가하고,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뒤따르는 관계로 규정했습니다. 두 정의 모두 설명을 책임의 부속물이 아니라 구성 요소로 봅니다.

    번역어에 이 층이 빠져 있다는 사정은 실무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국내에서 책임을 진다는 말은 대개 사퇴하고 배상하는 것을 뜻하며, 답하는 일은 그 이후의 홍보 활동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맡긴 사람에게는 알려야 할 의무가 따라옵니다

    답할 의무는 두 가지 경로로 생깁니다. 첫 번째는 위임입니다.

    책임은 권한을 넘겨받는 순간 생깁니다. 주주는 경영진에게 회사의 운영을 맡기고, 경영진은 실무자에게 실행을 맡깁니다. 그런데 맡긴다는 것은 맡긴 사람이 직접 판단하지 않기로 한다는 뜻이므로, 맡긴 사람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자리에 놓입니다. 판단은 해야 하는데 판단할 정보가 없는 상태입니다. 이 공백을 메우는 장치가 맡은 사람의 설명입니다.

    법이 같은 논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민법은 위임을 받은 사람에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지우면서 바로 옆에 보고의무를 함께 두었고, 상법은 이사에게 이사회와 주주총회에 대한 보고 의무를 지우고 공시 제도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 경로는 주주와 이사회, 감독기관에 적용됩니다. 국제정치학자 그랜트와 코헤인(Ruth Grant, Robert Keohane)은 이를 위임 모형(delegation model)이라고 불렀습니다.

    맡기지 않은 사람에게는 왜 답해야 하는가

    그런데 위기 상황에서 답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기업에 아무것도 맡긴 적이 없습니다. 공장 인근의 주민, 사고를 당한 피해자와 가족, 제품을 쓰던 소비자, 일반 공중이 그렇습니다. 경영진이 이 지점에서 종종 묻습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맡기지 않은 사람들에게 왜 회사 안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해야 하는가.

    두 번째 경로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랜트와 코헤인은 이를 영향 모형(participation model)으로 구분했습니다. 권한을 맡긴 사람이 아니라, 그 권한의 행사로 영향을 받는 사람에게도 답할 의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결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결과만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최소한 그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권리를 가집니다. 참여할 수 없었다면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회사를 맡긴 주주보다, 맡긴 적도 없이 피해를 입은 주민 쪽의 요구가 더 정당한 측면도 있습니다.

    제도적인 근거도 있습니다. 기업은 법인격과 유한책임, 영업 인허가, 도로와 상하수도와 전력을 사회가 만들어 준 조건 위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한책임은 사업이 실패했을 때의 위험 일부를 사회가 나누어 지기로 한 결정입니다. 계약으로 맡긴 것은 없어도, 사회가 내어준 조건 위에 회사가 서 있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답하지 않는 것도 답이 됩니다

    공중은 기업에 답을 강제할 수단이 없습니다. 다만 강제할 수 없는 대신 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판단할 자유를 가집니다. 그 판단은 구매와 채용, 여론, 규제 요구, 정치적 압력으로 바뀌어 돌아옵니다.

    그래서 실제 질문은 설명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설명하지 않은 상태로 판단받을 것인가입니다. 침묵은 판단을 미루어 두는 선택이 아니라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내려지는 평가를 받아들이겠다는 선택입니다. 비어 있는 자리는 대체로 가장 나쁜 추정으로 채워집니다.

    설명을 부담으로 여기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만, 법적으로 보면 설명은 방어 수단이기도 합니다. 결과만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손실이라도 무모한 판단이 부른 것인지 합리적인 판단이 불운을 만난 것인지에 따라 책임의 유무가 갈리는데, 이 둘을 구별할 정보는 판단한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경영판단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이 요구하는 것도 결과의 정당성이 아니라 판단이 합리적인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의 제시입니다. 설명하지 못하면 보호받지도 못합니다.

    답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답변책임의 정의에서 중요한 대목은 답할 수 있는 상태라는 부분입니다.

    위기가 닥친 뒤에 잘 말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록이 없으면 설명할 재료가 없고, 그때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가 남아 있지 않으면 이유를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제 무엇을 보고받았는지가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인지 시점을 밝힐 수 없습니다.

    답변책임은 위기 이후의 커뮤니케이션 과제이기 이전에 평시 경영 기록의 문제입니다. 위기관리의 전제에서 결정의 정보와 대안과 이유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가를 확인 항목으로 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제를 지켜 온 회사에는 답할 것이 남아 있고, 지키지 않은 회사에는 답할 것이 없습니다. 답변책임은 위기가 닥친 뒤에 급히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에서 책임이란 무엇인가: 답변책임이 놓인 책임의 전체 구조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 시 대변인이란 무엇인가: 답하는 몫을 실제로 맡는 자리에 관한 것입니다.
    입장문, 해명문, 사과문은 어떻게 다른가: 답변이 문서로 나갈 때의 형식 구분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민법 제681조 · 제683조
    상법 제382조 제2항 · 제393조 제4항 · 제449조
    Andreas Schedler, Conceptualizing Accountability, in The Self-Restraining State (1999) — answerability와 enforcement의 구분
    Mark Bovens, Analysing and Assessing Accountability: A Conceptual Framework, European Law Journal (2007) — 행위자와 상대 사이의 관계로서의 accountability
    Ruth W. Grant & Robert O. Keohane, Accountability and Abuses of Power in World Politic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2005) — 위임 모형과 영향 모형의 구분
    경영판단원칙은 미국 회사법에서 형성되어 국내 법원 실무에도 수용되어 온 법리입니다. 위 개념들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답변책임이라는 용어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 위기관리에서 책임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에서 말하는 책임은 한 종류가 아닙니다. 맡은 일을 해내야 하는 수행책임(responsibility), 그 결과에 대해 답하고 감당해야 하는 결과책임(accountability), 그리고 법이 묻는 법적 책임(liability)이 각각 다르게 작동합니다. 세 가지는 같은 사람에게 함께 오지 않으며, 하나를 이행했다고 나머지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위기 대응에서 절차를 다 밟았는데도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은 대개 이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책임은 한 종류가 아닙니다

    영어에는 우리말 「책임」에 해당하는 단어가 여럿 있습니다. 그중 위기관리에서 반드시 나누어야 하는 것이 responsibility와 accountability입니다. 우리말로는 둘 다 책임으로 옮겨지지만 실제로 가리키는 대상은 다릅니다.

    수행책임(responsibility)은 맡은 일을 해내야 하는 의무입니다. 누가 그 일을 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안전 점검을 맡은 담당자, 품질을 검수하는 부서, 협력사를 관리하는 라인이 각각 나누어 지고 있는 책임입니다. 아래로 위임할 수 있고 여러 사람에게 나눌 수 있습니다.

    결과책임(accountability)은 그 결과에 대해 이해관계자에게 답하고 그 평가를 감당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누가 이 사태에 답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나눌 수 없고 아래로 넘길 수도 없으며, 직접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성립합니다.

    여기에 법적 책임(liability)이 더해집니다. 법원과 수사기관이 판단하는 배상과 처벌의 문제입니다.

    두 책임을 구분해서 보는 시각은 조직 이론과 거버넌스 연구에서 오래 다루어져 왔습니다. 영국의 행정학자 리처드 멀건(Richard Mulgan)은 accountability를 다른 사람에게 답하고 그 판단을 받아야 하는 외부적 관계로 규정하면서, 스스로 판단해 처리하는 내부적 의무인 responsibility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구분수행책임결과책임법적 책임
    묻는 것누가 그 일을 했는가누가 이 사태에 답하는가누가 법을 어겼는가
    작동 시점위기 발생 이전위기 발생 이후사후 판단
    나눌 수 있는가나눌 수 있음나눌 수 없음법이 정함
    판단하는 주체회사 내부이해관계자와 공중법원과 수사기관
    표. 위기관리에서 구분해야 하는 세 가지 책임 — 스트래티지샐러드

    일은 아래로, 답변은 위로

    두 책임은 방향이 서로 반대입니다.

    수행책임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갑니다. 조직이 일을 나누어 맡기는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책임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현장에서 발생한 일이라도 최종적으로 답해야 할 사람은 위에 있습니다.

    일은 여럿이 나누어도, 답변은 한 사람이 합니다. 그 한 사람이 어느 자리에 있는가는 사안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달라집니다.

    위기 대응이 실패하는 지점은 두 방향이 같아지는 순간입니다. 일도 아래로 내려보내고 답변까지 아래로 내려보내는 경우입니다. 사고가 나면 현장 책임자를 앞에 세우고 담당 임원을 문책해 사안을 종결하려는 대응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흔히 꼬리 자르기라고 부르는 것의 구조입니다.

    답변을 아래로 내리면 다음 위기를 모르게 됩니다

    꼬리 자르기의 문제는 도의적인 데 그치지 않습니다. 조직의 작동 방식을 망가뜨립니다.

    회사가 위기를 미리 아는 경로는 현장에서 올라오는 보고입니다. 이상 징후를 처음 보는 사람은 언제나 현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났을 때 답변의 부담이 현장으로 내려간 전례가 생기면, 다음번에 이상 징후를 발견한 직원은 그것을 올리지 않습니다. 올리는 순간 자신이 그 사안의 답변자가 된다는 것을 학습하기 때문입니다.

    조직 심리학자 에이미 에드먼드슨(Amy Edmondson)이 병원 조직을 관찰하면서 확인한 것도 같은 현상입니다. 오류 보고 건수가 많은 팀이 실제로 오류가 많은 팀이 아니라, 보고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 팀이었습니다. 보고가 적은 조직은 안전한 조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조직입니다.

    결과책임을 아래로 내리면 수행책임의 기반까지 무너집니다. 보고가 끊긴 조직은 위기를 예방할 수 없고, 경영진의 판단은 틀린 사실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위기관리의 전제에서 위험 신호가 불이익 없이 위로 올라오는 경로를 확인 항목으로 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실무자를 지키는 일이 다음 위기를 아는 방법입니다.

    법적으로 이겨도 책임은 남습니다

    세 가지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부분입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직접 관여하지도 않은 사안에서 결과책임이 발생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협력사 사업장에서 일어난 중대재해, 가맹점에서 발생한 위생 사고, 인수하기 전에 벌어진 피인수기업의 부정행위가 그렇습니다. 법적으로는 방어할 수 있고 인과적으로도 연결되지 않지만, 공중은 그 회사에 답을 요구합니다.

    이때 위법 사항이 없다는 해명을 앞세우면 상황은 대개 나빠집니다. 법적 책임에 대한 답을 결과책임에 대한 답으로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공중이 물은 것은 처벌받을 일인가가 아니라 이 회사가 이 일을 어떻게 다루었는가입니다.

    법적 방어에 성공한 기업이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은 대응이 부실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답해야 할 질문과 답한 내용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생깁니다.

    세 가지를 따로 다루어야 합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분리해서 판단해야 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누가 그 일을 했는가는 내부 조사가 밝힐 문제입니다. 무엇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인가는 법무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누가 이 사태에 답할 것인가는 커뮤니케이션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세 가지를 같은 자리에서 함께 처리하면 두 방향의 사고가 발생합니다. 내부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법적 책임을 인정해 버리거나, 반대로 법적 방어 논리가 대외 메시지를 지배해 답해야 할 질문에 답하지 못하게 됩니다. 실제 위기 상황에서 자주 발생하는 실패는 후자 쪽입니다.

    책임을 정확히 이행하려면 먼저 책임을 정확히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 국내 기업이 가장 자주 놓치는 것이 답하는 책임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의 전제란 무엇인가: 책임이 나오는 자리인 기업의 전제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 시 이해관계자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하는가: 누구에 대한 책임을 먼저 볼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 시 사과문은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책임을 문서로 옮길 때 갖춰야 할 요소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상법 제382조 제2항 · 제382조의3
    민법 제681조 · 제683조
    Richard Mulgan, 「Accountability」: An Ever-Expanding Concept?, Public Administration (2000) — responsibility와 accountability의 구분
    Amy C. Edmondson, Learning from Mistakes Is Easier Said Than Done, Journal of Applied Behavioral Science (1996) — 오류 보고와 심리적 안전에 관한 병원 조직 연구
    위 개념들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두 책임의 방향으로 정리하고 세 가지 책임의 분리 운용으로 구성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 위기관리의 전제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의 전제란 기업이 선의의 행위자로 행동하고 있고, 경영진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직원이 성실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다는 조건을 말합니다. 위기관리의 원칙과 프로세스, 그리고 컨설턴트가 내놓는 조언과 전략은 모두 이 조건 위에서 설계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조건은 법령이 정한 의무를 지켰다는 뜻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왔다는 뜻입니다.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 사안에 위기관리의 원칙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 그것은 관리가 아니라 은폐가 됩니다.

    선의는 착함이 아니라 상태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의는 도덕적 선함이 아닙니다. 두 가지 조건으로 정의되는 기능적인 상태입니다.

    첫째는 해악을 기획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기를 의도적으로 설계하거나, 그렇게 될 것을 알면서 선택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둘째는 문제를 인지한 시점부터 즉시 바로잡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선의는 이 둘이 결합할 때만 성립합니다. 의도만 있고 행동이 없으면 선의가 아닙니다.

    이 정의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위기의 발생 여부는 그 회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기준이 되는 것은 위기 앞에서 선의의 행위자로 움직였는가입니다.

    전제는 세 층위로 나뉩니다

    선의는 회사 전체의 지위이지만, 회사라는 법인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경영진의 결정과 직원의 실행을 통해서만 움직입니다. 그래서 전제도 하나의 덩어리로 확인할 수 없고, 세 층위에서 나누어 확인해야 합니다.

    세 주체는 각각 다른 의무를 지고 있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각각 다른 항목에서 확인됩니다.

    주체전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확인되는 것
    기업선의의 행위자로 행동함해악을 기획하지 않았는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준과 절차를 갖추어 두었는가
    위험 신호가 위로 올라오는 경로를 만들고 불이익 없이 쓰이게 했는가
    직원을 방패로 세우지 않고 보호했는가
    경영진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평시의 의사결정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충실하게 처리되었는가
    사적인 말과 행동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는가
    감지되거나 보고된 위기 요소를 적시에 처리했는가
    결정의 정보와 대안과 이유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가
    직원성실의무맡겨진 분야와 영역의 업무를 기준대로 처리했는가
    현장에서 알게 된 사실을 제때 회사에 전달했는가
    표. 위기관리의 세 가지 전제와 확인 항목 — 스트래티지샐러드

    여기에서 말하는 회사의 이익에는 평판이 포함됩니다. 재무적으로는 이득이 되는 결정이 회사의 이름을 깎는다면, 그것은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 아닙니다. 경영진 개인의 말과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의 발언이나 처신이라도 회사의 자산을 깎는 순간 사적인 일로 남지 않습니다.

    세 층은 서로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경영진이 아무리 신중해도 현장의 사실이 올라오지 않으면 그 신중함은 틀린 사실 위에서 작동하고, 직원이 아무리 성실해도 회사가 기준과 절차를 갖추어 두지 않았다면 개인의 성실로 메울 수 있는 범위를 넘습니다.

    특히 위기의 상당수는 특별한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조금씩 밀리고 생략된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회사가 직원을 방패로 세우거나 책임을 아래로 내려보내는 순간, 그 직원은 우리 편이 아니라 회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해관계자가 되고 동시에 가장 유력한 제보자가 됩니다.

    법이 정한 선은 바닥이지 천장이 아닙니다

    위의 세 가지 전제는 각각 법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에는 준법통제기준을 마련하라는 상법 조항이 있고, 경영진에게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가 있으며, 직원에게는 신의성실 원칙에서 도출되는 성실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켰다는 사실만으로 전제가 갖추어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위기의 성패를 가르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법원이 아니라 공중이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사안이 위기가 되는 경우는 흔합니다. 절차를 다 지켰고 위법도 없었는데 여론이 돌아서는 상황입니다. 이때 위법 사항이 없다는 해명을 앞세우면 위기는 대개 더 커집니다. 공중이 묻고 있는 것은 적법했느냐가 아니라 마땅했느냐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함의 범위는 회사마다 다르고 사안마다 다릅니다. 그 회사가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신뢰의 크기, 사업이 다루는 위험의 성격, 이해관계자가 대신 감수하고 있는 위험의 크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법령은 그 가운데 사회가 최소한으로 합의해 문서로 옮겨 놓은 부분일 뿐입니다. 법적 방어선을 위기관리의 목표선으로 삼으면, 지키기는 하겠지만 그 자리에서 신뢰가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전제를 지키는 일이 곧 위기관리입니다

    전제가 성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이 터졌다면, 그것은 위기 사안이 아니라 스스로 불러들인 경영의 실패입니다. 경영의 실패에는 위기관리의 원칙과 도구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세 전제가 지켜지고 있는 회사에서는 위기가 잘 발생하지 않습니다. 위기관리의 본령이 발생 가능한 위기를 미리 예상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두는 것이므로, 전제를 지키는 일 자체가 이미 위기관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준비는 위기가 닥친 뒤에 급히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운이 따르지 않아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과가 갈리는 것은 그때입니다. 전제를 지켜 온 회사에는 설명할 것이 남아 있고, 지키지 않은 회사에는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위기 상황에서 회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평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왔다는 사실을 정확하고 충분하게 입증하는 커뮤니케이션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실행입니다. 실행 없는 입증은 변명이 되고, 입증 없는 실행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두 가지가 함께 성공할 때 위기관리가 완성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이해관계자란 무엇인가: 전제의 충족 여부를 판정하는 주체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전제를 말과 행동으로 옮기는 활동에 관한 것입니다.
    ERM, BCP,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위기관리가 인접 관리 체계와 어떻게 갈리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상법 제382조 제2항 · 제382조의3 · 제542조의13
    민법 제2조 · 제681조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은 2025년 개정으로 그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되었습니다. 본문에 인용한 조항은 전제의 최소선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며, 위기관리가 요구하는 수준은 그보다 넓습니다.

  • ERM, BCP,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ERM은 회사의 목표 달성을 흔들 수 있는 불확실성을 전사 차원에서 다루는 체계이고, BCP는 업무가 중단되었을 때 핵심 기능을 정해진 시간 안에 되살리기 위한 체계이며, 위기관리는 발생 가능한 위기를 미리 예상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두는 활동입니다. 세 가지가 모두 위기관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실무의 혼선이 시작됩니다. 셋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근거로 삼는 표준부터 서로 다른 별개의 체계입니다.

    세 개념은 각각 다른 표준 위에 서 있습니다

    ERM의 근거는 리스크관리 표준인 ISO 31000과 COSO의 전사적 리스크관리 프레임워크입니다. 여기에서 리스크는 「목표에 대한 불확실성의 영향」으로 정의됩니다. 손실만이 아니라 목표를 흔드는 모든 불확실성이 대상이며, COSO는 2017년 개정에서 이를 전략 수립과 성과 관리에 통합되어야 하는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BCP의 근거는 사업연속성 관리 표준인 ISO 22301입니다. 여기에서 사업연속성은 「중단 상황에서도 사전에 정해 둔 허용 시간과 수준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제공을 계속할 수 있는 조직의 역량」으로 정의됩니다. 업무영향분석으로 복구 우선순위를 정하고, 목표복구시간과 목표복구시점으로 허용 한계를 수치화합니다.

    위기관리의 근거는 위기관리 표준인 ISO 22361입니다. 여기에서 위기는 「조직을 위협하며, 존립과 온전함을 지키기 위해 전략적이고 적응적이며 시의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비정상적이고 이례적인 사건 또는 상황」으로 정의됩니다. 주목할 것은 이 표준의 목적입니다. 대응 절차의 제공이 아니라 「전략적 위기관리 역량을 계획하고 수립하고 유지하고 검토하고 개선하는 것」입니다. 위기관리를 사후 절차가 아니라 평시에 쌓는 역량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한 단어를 더 볼 필요가 있습니다. 리스크관리를 규정해 온 표준 계열은 리스크관리를 「조직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조정된 활동」으로 정의합니다. 위기관리 표준은 위기관리를 「조직을 이끌고, 지휘하고, 통제하는 조정된 활동」으로 정의합니다. 앞에 이끈다가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통제 위에 판단이 얹혀야 한다는 뜻이며, 두 영역의 성격 차이가 이 한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세 체계는 다루는 대상이 다릅니다

    구분ERMBCP·BCM위기관리
    근거 표준ISO 31000, COSO ERMISO 22301ISO 22361
    다루는 대상목표를 흔드는 불확실성업무의 중단이해관계자의 판단을 흔들 소지
    핵심 질문무엇이 얼마나 흔들 수 있는가멈추면 언제까지 되살리는가지금 무엇을 해 두어야 하는가
    주관 부서재무, 감사, 전략운영, 생산, 정보기술최고경영진, 커뮤니케이션
    주 산출물리스크 목록과 한도, 보고 체계복구 우선순위와 절차선행 조치, 포지션, 창구 체계
    성공의 모습손실이 한도 안에 머무름정해진 시간 안에 복구됨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성공의 판정자회사 자신회사 자신회사 밖의 이해관계자
    표. 세 체계의 비교 — 스트래티지샐러드

    성공의 모습과 성공의 판정자, 이 두 항목이 실무에서 가장 큰 차이를 만듭니다. ERM은 손실이 한도 안에 있었는지를, BCP는 몇 시간 만에 복구했는지를 회사가 스스로 판정할 수 있습니다. 위기관리에는 그런 내부 지표가 없습니다. 판정은 회사 밖에서 이루어지고, 판정의 기준도 회사가 정하지 않습니다.

    주관 부서가 서로 다르다는 점도 뒤에서 다시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세 체계가 위기 상황에서 충돌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 체계 모두 본령은 평시에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사고가 난 뒤에 꺼내 드는 대응책이 아닙니다. ERM은 평시에 무엇이 회사를 흔들 수 있는지 목록으로 만들어 두는 일이고, BCP는 멈췄을 때 무엇부터 되살릴지 미리 정해 두는 일입니다.

    위기관리도 같습니다. 진짜 위기관리는 발생 가능한 위기를 미리 예상하고, 그에 대해 지금 해야 할 일을 그때 해 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위기는 이 단계에서 소멸합니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알려지지 않고, 평가받지도 않은 채 사라집니다.

    위기관리에는 두 개의 국면이 있습니다

    평시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후의 활동은 성격이 다르며, 실무에서는 데미지 컨트롤이라고 부르는 편이 정확합니다.

    데미지 컨트롤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예상되는 피해를 신속하게 계산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며, 지속 기간을 최단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회복이 아니라 축소가 목표입니다.

    데미지 컨트롤은 표준에 등재된 용어가 아니라 실무에서 쓰는 말입니다. 다만 위기관리 표준이 사건과 위기를 나누는 방식과 짝을 이룹니다. 사건은 기존 절차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고, 위기는 준비된 절차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절차가 감당하는 구간까지는 준비의 영역이고, 그 밖으로 넘어간 구간이 데미지 컨트롤의 영역입니다.

    이 구분을 놓치면 위기관리를 사후 대응으로만 이해하게 됩니다. 위기가 발생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구성되는 대책 기구가 그 결과입니다. 그런 기구는 유효한 대응 시점을 이미 지나 있으며, 위기관리 체계가 아니라 수습 기구로 보아야 합니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위기관리의 성과는 증명되지 않습니다

    ERM은 손실 한도로, BCP는 목표복구시간으로 성과를 숫자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위기관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잘 된 위기관리의 결과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이고, 그 상태에는 증명할 대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위기관리는 투자 판단이 가장 어려운 영역입니다. 다만 반대 방향의 신호는 분명합니다. 알려진 위기가 짧은 기간에 줄을 잇는 회사는 위기관리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부재가 곧 지표입니다.

    널리 알려진 위기관리 성공 사례들도 이 관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례들은 대부분 이미 위기가 발생해 알려진 뒤의 대응을 평가한 것입니다. 배울 가치가 있는 기록이지만, 위기관리의 표준이 아니라 데미지 컨트롤의 표준입니다.

    BCP를 갖췄다고 위기관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무에서 가장 비용이 큰 오해입니다. BCP는 멈춘 공장을 다시 돌리는 계획이지, 흔들린 신뢰를 되돌리는 계획이 아닙니다. 목적도 산출물도 실행 주체도 다릅니다.

    복구는 예정보다 빨리 끝났는데 시장에서의 자격은 회복되지 않은 상태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복구는 회사의 기준으로 완료되고, 신뢰는 상대의 기준으로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세 체계는 위기 상황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보고합니다

    소유 부서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르게 정의합니다. 재무는 손실 규모로, 운영은 복구 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은 이해관계자의 인식으로 보고합니다. 셋 다 맞는 보고지만 서로 번역되지 않습니다.

    조율되지 않은 채 각각 올라가면 최고경영진의 판단이 지연됩니다. 그리고 그 지연이 만든 공백은 회사의 설명이 아니라 외부의 해석으로 채워집니다. 위기 초기에 컨트롤타워가 하나로 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할 때

    회사가 보유한 문서가 세 가지 중 무엇인지 먼저 확인해 보십시오. 표지에 위기관리라고 적혀 있어도 내용이 복구 절차라면 그것은 BCP입니다.

    각 체계의 담당 부서와 최종 책임자가 각각 지정되어 있는지 보십시오. 한 부서가 셋을 모두 맡고 있다면 실제로는 하나만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시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짚어 보십시오. 세 체계 모두 평시 활동이 본령이며, 발생 이후의 절차만 있는 문서는 준비가 아니라 예고편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세 부서의 보고가 한자리에서 합쳐지는 구조가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이 구조가 없으면 세 체계를 모두 갖추고도 판단이 늦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외부 자문을 구할 때는 사전 체계를 세우는 일인지 발생 이후의 대응인지부터 정해 두십시오. 이 구분 없이 받은 제안들은 서로 비교되지 않습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위기가 되기 전 단계를 다룹니다.
    상황관리란 무엇인가: 발생 이후 회사가 실제로 하는 조치입니다.
    살아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평시 준비가 문서로 남는 자리입니다.
    위기관리 컨설팅이란 무엇인가: 외부 자문의 범위를 정할 때 보시면 됩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ISO 22361:2022 Security and resilience — Crisis management — Guidelines
    ISO 22301:2019 Security and resilience — Business continuity management systems — Requirements
    ISO 31000:2018 Risk management — Guidelines
    COSO Enterprise Risk Management — Integrating with Strategy and Performance (2017)

  • 창구일원화와 창구다양화는 어떻게 다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창구일원화는 외부로 나가는 모든 메시지를 지정된 하나의 창구를 통해서만 내보내는 체계이고, 창구다양화는 이해관계자별로 지정된 여러 창구가 하나의 메시지를 나누어 전달하는 체계입니다. 둘은 대립하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어느 쪽이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변수는 창구의 수가 아니라 회사가 하나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가입니다.

    창구일원화는 원보이스가 어렵기 때문에 나온 차선책입니다

    위기가 오면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원칙이 먼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현장에서 구현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대표이사와 임원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말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나온 차선책이 창구를 좁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 수 없다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줄이자는 접근입니다. 창구를 좁히는 것은 통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실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임원들은 자사의 공식 메시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의 취재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응하다 문제를 키웁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간 한마디를 되돌리는 비용은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큽니다.

    하나의 창구로 감당되지 않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창구일원화의 원형은 대언론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왔습니다. 상대가 언론 하나였을 때는 홍보실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하나의 위기에 언론, 규제기관, 수사기관, 국회, 고객, 투자자, 협력사, 시민단체, 커뮤니티가 동시에 관여합니다. 각각이 요구하는 정보의 성격도, 대응의 속도도, 필요한 전문성도 다릅니다. 한 부서가 이 전부를 감당하려면 그 부서가 회사만큼 커져야 합니다.

    창구를 하나로 유지하려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대응의 지연입니다. 창구는 하나인데 처리량이 넘치면, 답을 받지 못한 상대들이 각자 다른 경로를 찾아 나섭니다. 통제하려던 시도가 통제 밖의 접촉을 만들어 냅니다.

    창구다양화는 창구를 늘리는 것이지 목소리를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가 가장 자주 오해되는 지점입니다. 창구다양화는 각 부서가 각자의 판단으로 말하기 시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의 합의된 메시지를 여러 창구가 나누어 전달한다는 뜻입니다. 늘어나는 것은 창구의 수이고, 늘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목소리의 수입니다.

    구분하나의 목소리여러 목소리
    창구 하나창구일원화. 전통적인 안전판이며 실행 난도가 가장 낮음원칙이 선언만 되어 있는 상태. 지정되지 않은 창구가 이미 작동하고 있음
    창구 여럿창구다양화. 다양성 환경에서 가장 이상적인 체계창구다변화. 회사가 스스로 모순된 메시지를 노출하는 통제 상실 상태
    표. 창구의 수와 목소리의 수 — 스트래티지샐러드

    오른쪽 아래가 실무에서 가장 두려운 자리입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영업과 생산과 법무와 인사가 제각각의 사실관계와 해석을 내놓는 순간, 기자는 그중 가장 말이 헐거운 곳을 찾아 그 한마디를 회사의 공식 입장으로 보도합니다.

    회사 안에는 이미 창구가 여럿 있습니다

    창구다양화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회사에는 이미 이해관계자별 접점이 나뉘어 있습니다. 언론은 홍보실, 정부와 국회는 대외협력, 수사기관과 규제기관은 법무, 고객은 고객만족 부서, 투자자는 재무 담당이 상대합니다.

    창구다양화는 이 접점들의 역할을 위기 시에 커뮤니케이션 창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여기에 회사의 공식 소셜미디어 채널과 주요 커뮤니티처럼 새로 생긴 매체별 접점을 창구로 추가합니다. 구조를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구조에 메시지와 권한을 붙이는 작업입니다.

    창구다양화가 성립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창구를 공식적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다양화는 아무나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사람만 답하는 것입니다. 임명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창구일원화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둘째, 임명된 창구는 전원 대변인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창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훈련 대상이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셋째, 각 창구는 문의를 받는 즉시 그 사실과 내용을 실시간 수준으로 홍보실과 공유해야 합니다. 이 공유가 끊기면 회사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게 됩니다.

    넷째, 핵심 메시지가 사전에 합의되어 모든 창구에 공유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원보이스의 실체입니다. 창구일원화 역시 물리적으로 창구를 하나로 묶는 것만이 아니라, 사전에 합의된 동일한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는 체계를 뜻합니다. 이 체계가 서 있다면 창구를 항상 하나로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원보이스가 서지 않으면 창구일원화로 돌아와야 합니다

    네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창구만 늘리는 것은 가장 나쁜 선택입니다. 그것은 창구다양화가 아니라 창구다변화이며, 회사가 스스로 통제를 포기하는 결정입니다.

    판단은 단순합니다. 지금 이 회사가 하나의 메시지를 여러 창구에 정확히 실어 보낼 수 있는가. 답이 그렇다면 창구다양화가 더 나은 체계입니다. 답이 아니라면 창구일원화로 돌아와야 합니다. 창구일원화는 원보이스 역량이 부족한 조직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전판이기 때문입니다.

    이 판단은 회사의 이상이 아니라 현재 역량을 기준으로 내려야 합니다. 다양화가 이상적인 체계라는 것과 우리 회사가 지금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 판단할 때 확인할 것

    지금 이 사안의 핵심 메시지가 문서로 정리되어 있는지 먼저 보십시오. 정리된 메시지가 없으면 창구가 몇 개든 목소리는 갈라집니다.

    각 부서의 창구가 이름으로 지정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부서 단위로만 정해져 있으면 실제 상황에서는 전화를 받은 사람이 창구가 됩니다.

    그 창구들이 최근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지 짚어 보십시오. 임명과 훈련 사이의 간격이 실패가 발생하는 자리입니다.

    창구가 받은 문의가 홍보실로 모이는 경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보십시오. 이 경로가 없으면 다양화는 분산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표이사와 최고경영진이 이 원칙의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공유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최상단에서 한 번 깨지면 아래에서 쌓아 온 체계는 그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원칙의 정의와 적용 범위를 다룹니다.
    위기관리 시 대변인이란 무엇인가: 창구를 맡는 사람의 역할입니다.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무엇인가: 창구를 늘리면 훈련 대상도 늘어납니다.
    이해관계자란 무엇인가: 창구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개념입니다.

  • 하이 프로파일, 로우 프로파일, 리액티브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다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하이 프로파일과 로우 프로파일은 회사의 커뮤니케이션을 얼마나 눈에 띄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개념이고, 리액티브 커뮤니케이션은 회사가 먼저 나설 것인가 들어오는 요청에 응할 것인가를 정하는 개념입니다. 세 용어가 같은 줄에 놓인 선택지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축입니다. 실무의 혼선은 대부분 이 두 축을 하나로 섞는 데서 시작됩니다.

    두 개의 축을 하나로 섞기 때문에 혼선이 생깁니다

    첫 번째 축은 노출의 수준입니다. 하이 프로파일은 가시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고, 로우 프로파일은 가시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축은 개시의 주체입니다. 프로액티브 커뮤니케이션은 회사가 먼저 언론과 이해관계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이고, 리액티브 커뮤니케이션은 먼저 나서지 않고 들어오는 요청에 응답하는 방식입니다.

    두 축은 서로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인 대응과 소극적인 대응이라는 하나의 눈금 위에 세 용어를 늘어놓는 순간 판단이 뭉개집니다. 회의실에서 로우 프로파일로 가자는 말이 나왔을 때, 그 말이 노출을 줄이자는 뜻인지 먼저 나서지 말자는 뜻인지 서로 다르게 알아듣는 일이 실제로 자주 일어납니다.

    네 가지 조합이 나옵니다

    구분프로액티브리액티브
    하이 프로파일재난이나 감염병처럼 모두가 알아야 하는 상황. 채널과 인력을 동원해 반복 전달함먼저 나서지는 않되 들어오는 질의에는 충분히 답함. 사실관계가 정리된 뒤의 국면
    로우 프로파일공개 확산 없이 핵심 이해관계자에게 개별적으로 먼저 설명함갈등이나 논란의 초기. 다수가 인지하지 못한 사안을 회사가 키우지 않음
    표. 노출 수준과 개시 주체의 조합 — 스트래티지샐러드

    실무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조합은 오른쪽 아래입니다. 그리고 가장 자주 오해받는 조합도 오른쪽 아래입니다.

    로우 프로파일은 침묵이 아닙니다

    언론의 확인 요청이나 소셜미디어의 문의에 응답하지 않는 것을 로우 프로파일로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정 규모를 넘어선 위기에서 회사의 침묵은 오히려 하이 프로파일로 해석됩니다. 침묵 자체가 모든 이해관계자의 관심과 비판을 끌어모으기 때문입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런 침묵은 실패한 하이 프로파일로 남습니다. 노출을 줄이려던 선택이 노출을 극대화하는 선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노코멘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그 사안에 대해 왜 언급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노코멘트입니다. 입을 닫는 것은 전략이 아닙니다.

    로우 프로파일이 줄이는 것은 곁가지입니다

    로우 프로파일은 정보를 적게 주는 전략이 아닙니다. 줄이는 대상은 곁가지입니다. 길게 붙는 배경 설명, 회사 입장에 대한 강조, 억울함의 토로, 상대 주장에 대한 반박처럼 사안을 판단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남겨야 하는 것은 상대의 의혹에 직접 답하는 사실입니다. 무엇이 확인되었고 회사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답까지 함께 줄이면 그것은 로우 프로파일이 아니라 회피가 됩니다.

    설명 없이 일부 정보만 내놓는 방식도 로우 프로파일이 아닙니다. 그런 답변은 확인 요청을 한 번 더 부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출을 늘립니다.

    실행 자체는 단순합니다. 정해진 메시지와 논리를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반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명백한 사실 오류에 대한 제한적인 교정까지가 로우 프로파일의 영역입니다. 회사가 모든 보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전제를 함께 전달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실을 말할 수 없을 때는 절차를 말합니다

    위기 초기에는 회사도 아직 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원인이 무엇인지, 피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때 말할 것이 없다는 이유로 커뮤니케이션을 멈추면 정보의 진공이 생깁니다. 그 빈자리는 회사의 설명이 아니라 추측과 상대의 주장으로 채워집니다.

    이 국면에서 프로파일을 올려야 하는 대상은 사실관계가 아니라 절차입니다. 지금 무엇을 확인하고 있는지, 누가 어떤 조사를 맡고 있는지, 어떤 조치가 이미 진행 중인지, 확인 결과를 언제쯤 알릴 수 있는지를 계속 알리는 것입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것이 없어도, 진행에 대해서는 매일 말할 것이 있습니다.

    이 구분을 놓치면 두 가지 오류가 나옵니다. 하나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서둘러 발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확인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앞의 오류는 번복을 낳고, 뒤의 오류는 정보의 진공을 낳습니다. 위기 초기에 회사가 잃는 신뢰의 상당 부분이 이 두 오류에서 나옵니다.

    리액티브는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리액티브 커뮤니케이션은 회사가 먼저 접근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들어온 접촉을 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창구는 열려 있어야 하고, 응답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제한하는 것은 접촉이 아니라 메시지입니다. 크게 인용될 만한 표현, 새로운 뉴스가 될 만한 표현을 사전에 걷어 내는 작업입니다. 여기에는 프로액티브하게 나설 적절한 시기를 준비하며 기다린다는 의미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무엇이 선택을 결정하는가

    첫째는 회사가 지금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입니다. 의혹을 정리할 사실을 이미 쥐고 있다면,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반복하는 로우 프로파일이 성립합니다. 아직 쥐고 있지 않다면 앞서 말한 대로 절차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의 프로파일을 올려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침묵은 선택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둘째는 커뮤니케이션과 상황의 상관관계입니다. 회사가 정확하게 설명할수록 사안이 가라앉는 구도라면 프로파일을 올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한마디가 몇 배의 반박을 부르고 말이 꼬리를 무는 구도라면, 그 흐름에 계속 섞이는 것이 회사에 남기는 것은 없습니다.

    셋째는 평소의 자산입니다. 위기에서 프로파일을 올리는 기업은 대부분 자신감이 있는 기업입니다. 법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미리 검토와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프로파일만 올리면 방어할 수 없는 자리에 회사를 세우게 됩니다.

    로우 프로파일이 더 어렵습니다

    실행 난도는 로우 프로파일 쪽이 훨씬 높습니다. 홍보 조직의 평시 기본값이 프로액티브이자 하이 프로파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대 모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담당자들은 상당한 어색함과 불안을 느낍니다.

    같은 메시지만 반복하면서 동시에 주목을 끌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다소 모순적인 요구입니다. 그래서 이 전략은 최고경영진과 위기관리 조직이 하나의 목적을 일관되게 유지할 때만 성립합니다. 창구일원화는 전제 조건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무너지면 로우 프로파일은 그 자리에서 실패합니다.

    전략을 바꿔야 할 신호

    언론이 회사의 공식 창구가 아니라 실무 담당자의 발언을 자세히 인용하기 시작하면, 기존 전략은 이미 유효하지 않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주도권이 회사 밖으로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이 시점에서 같은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일관성이 아니라 방치입니다.

    프로파일 수준을 판정하는 쪽도 회사가 아닙니다. 회사가 하이 프로파일이라고 여기고 올린 홈페이지 공지를 이해관계자는 로우 프로파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채널을 열었다는 사실과 메시지가 도달했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전략적 침묵이란 무엇인가: 침묵이 전략이 되는 좁은 조건을 다룹니다.
    노코멘트는 해도 되는가: 로우 프로파일과 가장 자주 혼동되는 대응입니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사실을 말할 수 없는 구간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로우 프로파일의 전제 조건입니다.

  • 이해관계자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이해관계자는 회사의 목표 달성에 영향을 미치거나 회사의 활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집단과 개인을 말합니다. 임직원, 주주와 투자자, 고객, 협력사, 지역사회, 규제기관이 대표적입니다. 위기관리에서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위기의 성패를 판정하는 주체가 회사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무게가 같지는 않습니다

    경영 분야에서는 이해관계자를 두 층으로 나누어 봅니다. 하나는 그 집단의 참여가 끊기면 회사가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집단입니다. 임직원, 주주와 투자자, 고객, 협력사, 그리고 사업 인허가를 쥐고 있는 규제기관이 여기에 속합니다.

    다른 하나는 회사와 주고받는 영향은 분명하지만 거래 관계로 직접 묶여 있지는 않은 집단입니다. 언론, 시민단체, 업계 단체, 일반 여론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구분이 실무에서 갖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앞의 집단은 관계가 끊어지면 사업이 멈춥니다. 뒤의 집단은 관계가 나빠져도 사업이 곧바로 멈추지는 않지만, 앞의 집단의 판단을 바꿔 놓습니다. 위기 시 언론 대응을 하는 이유도 언론 자체가 목적이어서가 아니라, 언론을 통해 고객과 임직원과 규제기관이 상황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공중과 이해관계자는 다른 기준으로 나눈 개념입니다

    두 용어는 자주 섞여 쓰이지만 나누는 기준이 다릅니다. 이해관계자는 회사와의 관계 자체를 기준으로 한 개념이고, 공중은 특정 이슈에 대한 반응을 기준으로 한 개념입니다.

    구분이해관계자공중
    나누는 기준회사와 이해가 걸려 있는 관계특정 이슈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상태
    형성 방식사업 구조에 따라 회사가 미리 규정함이슈가 생기면 스스로 형성되어 회사를 주목함
    사전 특정명단으로 정리 가능함사전 명단화가 어려움
    위기 시 성격위기가 끝난 뒤에도 관계가 남는 대상위기 국면의 여론 압력을 만드는 대상
    대응 방식평시 관계 구축과 개별 커뮤니케이션이슈 모니터링과 공개 커뮤니케이션
    표. 이해관계자와 공중의 구분 — 스트래티지샐러드

    실무에서 기억할 점은 이것입니다. 한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집단은 원래부터 회사의 이해관계자였을 수도 있고, 회사와 아무 거래가 없던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앞의 경우는 관계 회복의 문제이고, 뒤의 경우는 여론 대응의 문제입니다. 이 둘을 같은 방식으로 다루면 양쪽 모두 실패합니다.

    이해관계자는 위기마다 다시 그려야 합니다

    회사에는 상시 이해관계자 목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하면 그 목록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제품 사고라면 소비자와 유통 채널과 식약 당국이 앞으로 나오고, 인사 이슈라면 임직원과 노동 당국과 채용 시장이 앞으로 나옵니다. 회계 이슈라면 투자자와 감독기관과 신용평가사가 앞으로 나옵니다.

    위기 발생 직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이 재배열입니다. 이번 위기에서 누구의 판단이 회사의 손실 규모를 결정하는가. 이 질문에 답이 나오면 메시지의 순서와 형식이 결정됩니다.

    위기의 정의는 회사가 아니라 이해관계자가 내립니다

    회사가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해도, 이해관계자가 위기로 인식하면 위기입니다. 반대로 회사 내부에서 심각하게 보는 사안이 이해관계자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기의 크기를 재는 자는 회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발생하는 오류가 여기에서 나옵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단, 기술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 경쟁사도 같다는 판단은 모두 회사 내부의 기준입니다. 이해관계자가 그 기준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 판단은 위기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부 구성원이 첫 번째 이해관계자입니다

    위기가 발생하면 회사는 대개 외부부터 봅니다. 그러나 회사의 설명을 가장 먼저 검증하는 사람들은 임직원입니다. 회사 발표가 내부에서 납득되지 않으면 그 내용은 반드시 밖으로 흘러 나갑니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위기관리의 부속 절차가 아니라 앞 단계인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해관계자 관리가 아닌 것

    이해관계자 목록을 문서로 보유하는 것은 관리가 아닙니다. 관리는 평시에 각 이해관계자와 실제 접점을 유지하고, 그들이 회사의 무엇을 신뢰하고 무엇을 의심하는지 파악해 두는 활동입니다. 위기가 발생한 뒤에 처음 연락하는 이해관계자에게 회사의 설명은 거의 전달되지 않습니다.

    우호적인 이해관계자만 관리 대상으로 삼는 것도 관리가 아닙니다. 위기 시 회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쪽은 대개 평시에 회사와 거리가 있던 집단입니다.

    이해관계자를 정리할 때 확인할 것

    이번 사안에서 회사의 손실 규모를 실제로 결정하는 쪽이 누구인지 먼저 적어 보십시오. 목록의 맨 위에 놓이는 이름이 바뀌면 메시지의 순서도 바뀝니다.

    그다음 그 집단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모르는 정보를 나누어 보십시오. 회사가 설명해야 할 것은 회사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그들이 모르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 집단에 회사의 메시지가 도달하는 경로가 실제로 확보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경로가 없으면 아무리 정확한 설명도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회사가 아닌 곳에서 정보를 얻고 있다면 그 출처가 어디인지 확인해 보십시오. 회사보다 먼저 도달한 설명이 판단의 기준선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위기가 끝난 뒤에도 관계가 계속되어야 하는 집단이 누구인지 짚어 보십시오. 그 집단에게는 지금의 대응이 관계의 마지막 기억으로 남습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 시 이해관계자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하는가: 정리된 이해관계자에 순서를 매기는 작업입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이해관계자에게 회사의 설명이 가 닿는 축입니다.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공중이 형성되기 전에 다루는 영역입니다.
    위기관리 시 포지션이란 무엇인가: 이해관계자 앞에 세우는 회사의 입장입니다.

  • 상황관리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상황관리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실제로 하는 조치를 정하고 실행하는 영역입니다. 사고를 수습하고, 피해자를 돌보고, 제품을 회수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막는 일이 여기에 속합니다. 위기관리는 이 상황관리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두 축으로 이루어지며, 두 축 가운데 앞서는 쪽이 상황관리입니다.

    상황관리는 말이 아니라 조치입니다

    위기가 오면 회의실에서 가장 먼저 오가는 말은 대개 무엇을 발표할 것인가입니다. 그러나 발표할 내용을 만드는 일과 사태를 실제로 해결하는 일은 다른 작업입니다.

    상황관리의 산출물은 문장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회수 결정, 보상 기준, 원인 조사 착수, 재발 방지책, 조직 개편 같은 것들입니다. 이 산출물이 없는 상태에서 나가는 말은 설명이 아니라 약속이 되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다음 위기의 재료가 됩니다.

    상황관리는 네 가지 일을 순서대로 합니다

    첫째는 사실 확인입니다. 무엇이 언제 어디서 왜 벌어졌고 지금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합니다. 이 단계를 건너뛰면 이후의 모든 판단이 추정 위에 놓입니다.

    둘째는 조치 결정입니다. 확인된 사실 위에서 회사가 무엇을 할 것인지, 누가 언제까지 할 것인지를 정합니다. 이 자리에서 결정되지 않은 일은 밖에서도 말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실행입니다. 결정한 조치를 실제로 집행하고 그 과정을 기록합니다. 기록이 없으면 나중에 증명할 수 없습니다.

    넷째는 검증입니다. 그 조치가 실제로 상황을 바꾸었는지 확인합니다. 바뀌지 않았다면 조치를 바꾸어야지 표현을 바꿀 일이 아닙니다.

    주관은 홍보가 아닙니다

    상황관리를 홍보실에 맡기는 회사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수와 보상과 원인 규명은 홍보실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상황관리의 주관은 사업, 안전, 품질, 생산, 법무처럼 그 조치를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는 부문입니다. 홍보실은 그 결정에 참여하되 대신 결정하지 않습니다. 두 축의 책임자가 각각 지정되어 있지 않으면, 급한 쪽이 다른 쪽을 밀어냅니다.

    행동이 소통을 이끌어야 합니다

    위기에서 경영진이 마주하는 가장 큰 유혹은 실체보다 소통을 앞세워 상황을 뒤집으려는 조급함입니다. 이 조급함은 대개 전략적 판단이 아니라 심리적 압박에서 나옵니다.

    소통 행위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사실, 사과문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기사거리가 되는 상황입니다. 반대로 조치가 먼저 서고 그 실체를 정확히 전달하는 경우, 소통은 주인공이 아니라 행동을 증명하는 조연이 됩니다.

    아직 준비된 조치가 없다면, 설익은 발표로 스스로 논란을 키우기보다 홀딩 메시지로 시간을 확보하고 대응의 내실을 갖추는 편이 낫습니다. 행동이 뒷받침된 소통만이 상황을 되돌립니다.

    상황관리가 아닌 것

    사업연속성계획과 다릅니다. 설비 복구, 생산 대체, 공급망 복원처럼 사업 자체를 되살리는 일은 별도의 전문 영역이며, 위기관리에서 말하는 상황관리와 목적이 다릅니다.

    법무 대응과도 다릅니다. 법적 유불리 판단과 소송 전략은 법률 대리인의 영역입니다. 위기 국면에서 법무 검토와 상황관리는 나란히 진행되지만 서로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여론 대응도 아닙니다. 여론을 읽는 일은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판단하는 데 쓰이는 것이지, 여론에 맞추어 조치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상황관리가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법

    지금 회의에서 논의되는 것이 조치인지 표현인지 확인해 보십시오. 두 가지가 섞여 있으면 둘 다 부실해집니다.

    발표 직전에 발표할 조치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다시 확인하십시오. 존재하지 않는 조치를 발표하는 순간 다음 위기가 시작됩니다.

    각 조치에 담당자와 기한이 붙어 있는지 보십시오. 붙어 있지 않은 조치는 결정된 것이 아니라 언급된 것입니다.

    외부 자문을 받고 있다면 그 자문이 어느 축을 다루는지 물어보십시오. 커뮤니케이션만 자문하는 곳에 상황관리까지 기대하면 위기 한복판에서 공백이 드러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상황관리를 뒤따르는 다른 한 축입니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조치가 정해지기 전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위기관리 골든타임이란 무엇인가: 두 축이 함께 굴러야 하는 시간대입니다.
    위기관리 시 포지션이란 무엇인가: 조치가 정해진 뒤에 입장이 섭니다.

  • 위기관리 시 포지션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 시 포지션은 사건이나 논란이 벌어졌을 때 회사가 그 사안에 대해 견지하는 공식 입장입니다. 기자가 「회사의 공식 입장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때의 그 입장이며, 회사가 내놓는 모든 문장과 모든 조치가 여기에서 갈라져 나옵니다. 포지션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말은 아무리 다듬어도 흔들립니다.

    포지션은 메시지보다 먼저 정해집니다

    위기가 발생하면 회사는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합니다. 이 사안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가 정리되고 나면, 그 위에서 회사의 입장을 정합니다. 메시지는 그다음입니다.

    실무에서는 이 순서가 자주 뒤집힙니다. 입장이 정해지기 전에 문장부터 만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은 기자의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바뀌고, 바뀐 문장이 다시 기사가 됩니다.

    입장이 정해지면 그것을 담은 문서가 만들어집니다. 흔히 포지션 페이퍼(position paper)라고 부르며, 회사에 따라 포지션 팩(position pack)이라고도 합니다. 회사가 이 사안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를 한자리에 모아 두는 문서입니다. 이 입장을 한두 문장으로 압축해 밖으로 밝히는 것이 포지션 스테이트먼트(position statement)입니다.

    포지션은 내부와 외부를 함께 향합니다

    포지션을 외부용 문서로만 여기는 회사가 많습니다. 그러나 포지션은 내부 구성원이 먼저 서 있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부서마다 다른 입장을 갖고 있으면, 밖으로 나가는 문장이 아무리 정교해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조직일수록 입단속에 매달립니다. 말이 새는 이유는 대부분 기댈 입장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입장이 서 있는 조직은 단속하지 않아도 말이 갈라지지 않습니다.

    실패하는 포지션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잘못된 상황 분석 위에 세워진 입장입니다. 확산의 속도나 경로를 잘못 읽으면 그 위에서 나온 입장은 처음부터 어긋납니다.

    둘째는 문제의 원인을 밖으로 돌리는 입장입니다. 우리는 성의껏 했고 문제가 없으며 문제는 일부가 만들고 있다는 형태입니다.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면 많은 조직이 초기에 이 입장을 고릅니다. 편해 보이지만 이 입장은 상대를 제압의 대상으로 만들고, 그래서 거의 예외 없이 실패합니다.

    셋째는 평소 내세우던 가치를 위기에서 버리는 입장입니다. 평소에 안전과 고객을 말하던 회사가 위기가 오면 절차와 규정만 말합니다. 회사가 스스로 반복해 온 가치가 위기에서도 그대로 유지되는지가 포지션의 성패를 가릅니다.

    포지션은 바꿀 수 있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최초 입장을 끝까지 지킨 회사와 중간에 바꾼 회사가 늘 함께 존재합니다. 바꾸었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고, 그에 맞추어 회사의 조치도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사실은 그대로인데 여론이 나빠졌다는 이유만으로 입장을 바꾸면, 그 변경 자체가 새로운 논란이 됩니다.

    구분포지션메시지
    성격회사가 사안을 보는 관점과 하겠다는 것그 관점을 상대에게 전하는 표현
    정하는 시점상황 파악과 이해관계자 분석 직후포지션이 확정된 뒤
    바뀌는 조건새로운 사실과 조치의 변화대상과 국면에 따라 달라짐
    개수사안당 하나이해관계자별로 여럿
    흔들릴 때회사 전체의 대응이 무너짐표현을 다듬어 회복 가능
    표. 포지션과 메시지의 구분 — 스트래티지샐러드

    포지션과 혼동하기 쉬운 것

    홍보 문구와 혼동하기 쉽습니다. 홍보 문구는 회사를 좋게 보이게 하는 표현을 고르는 일이고, 포지션은 회사가 이 사안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정하는 일입니다.

    법적 답변서와도 구별해야 합니다. 법무 검토는 입장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알려 주고, 어디에 설 것인지는 경영진이 정합니다.

    사과 여부를 정하는 일과도 다릅니다. 사과할 것인지는 입장이 정해진 뒤에 따라 나오는 결과입니다.

    포지션을 정할 때 확인할 것

    무엇을 인정하는지가 한 문장으로 적히는지 확인하십시오. 인정할 것이 비어 있는 입장은 대개 방어에 그칩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가 함께 적혀 있는지 보십시오. 조치가 없는 입장은 설명일 뿐입니다.

    이 입장을 한 달 뒤에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그때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면 지금 다시 정해야 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포지션이 정해진 뒤에 움직이는 영역입니다.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하나의 입장을 하나의 목소리로 지키는 장치입니다.
    입장문, 해명문, 사과문은 어떻게 다른가: 입장이 문서로 나올 때의 구분입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이란 무엇인가: 입장을 질문 앞에서 지켜 내는 도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