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책임(answerability)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답변책임이란 위기와 이슈 상황에서 기업이 이해관계자가 던지는 질문에 사실과 판단의 경위를 제시하고 그 평가를 감당할 수 있는 상태로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할 의무를 말합니다. 결과책임(accountability)은 답하는 몫과 감당하는 몫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중 앞의 것이 답변책임입니다. 국내 기업의 위기 대응에서 문책과 배상은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답변은 자주 비어 있습니다. 새로 도입해야 할 개념이라기보다 책임이라는 말에 원래 들어 있던 절반입니다.

책임이라는 말에는 원래 답한다는 뜻이 있었습니다

우리말 「책임(責任)」은 맡은 바를 뜻합니다. 맡는다는 의미는 있지만 답한다는 의미는 담기지 않습니다.

영어 accountability는 사정이 다릅니다. 어근인 account는 회계 장부와 진술을 함께 뜻하며, 중세 잉글랜드에서 왕이 봉신을 불러 맡긴 재산의 내역을 직접 말하게 했던 제도가 이 단어의 배경으로 지목됩니다. 책임은 처음부터 무엇을 보유하거나 수행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불려 나와 답하는 일이었습니다.

정치학자 안드레아스 셰들러(Andreas Schedler)는 이 개념을 두 축으로 나누어 정리했습니다. 답할 의무(answerability)와 그 결과를 감당할 의무(enforcement)입니다. 네덜란드의 행정학자 마르크 보번스(Mark Bovens) 역시 accountability를 행위자가 특정 상대에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며, 상대가 질문하고 평가하고,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뒤따르는 관계로 규정했습니다. 두 정의 모두 설명을 책임의 부속물이 아니라 구성 요소로 봅니다.

번역어에 이 층이 빠져 있다는 사정은 실무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국내에서 책임을 진다는 말은 대개 사퇴하고 배상하는 것을 뜻하며, 답하는 일은 그 이후의 홍보 활동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맡긴 사람에게는 알려야 할 의무가 따라옵니다

답할 의무는 두 가지 경로로 생깁니다. 첫 번째는 위임입니다.

책임은 권한을 넘겨받는 순간 생깁니다. 주주는 경영진에게 회사의 운영을 맡기고, 경영진은 실무자에게 실행을 맡깁니다. 그런데 맡긴다는 것은 맡긴 사람이 직접 판단하지 않기로 한다는 뜻이므로, 맡긴 사람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자리에 놓입니다. 판단은 해야 하는데 판단할 정보가 없는 상태입니다. 이 공백을 메우는 장치가 맡은 사람의 설명입니다.

법이 같은 논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민법은 위임을 받은 사람에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지우면서 바로 옆에 보고의무를 함께 두었고, 상법은 이사에게 이사회와 주주총회에 대한 보고 의무를 지우고 공시 제도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 경로는 주주와 이사회, 감독기관에 적용됩니다. 국제정치학자 그랜트와 코헤인(Ruth Grant, Robert Keohane)은 이를 위임 모형(delegation model)이라고 불렀습니다.

맡기지 않은 사람에게는 왜 답해야 하는가

그런데 위기 상황에서 답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기업에 아무것도 맡긴 적이 없습니다. 공장 인근의 주민, 사고를 당한 피해자와 가족, 제품을 쓰던 소비자, 일반 공중이 그렇습니다. 경영진이 이 지점에서 종종 묻습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맡기지 않은 사람들에게 왜 회사 안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해야 하는가.

두 번째 경로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랜트와 코헤인은 이를 영향 모형(participation model)으로 구분했습니다. 권한을 맡긴 사람이 아니라, 그 권한의 행사로 영향을 받는 사람에게도 답할 의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결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결과만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최소한 그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권리를 가집니다. 참여할 수 없었다면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회사를 맡긴 주주보다, 맡긴 적도 없이 피해를 입은 주민 쪽의 요구가 더 정당한 측면도 있습니다.

제도적인 근거도 있습니다. 기업은 법인격과 유한책임, 영업 인허가, 도로와 상하수도와 전력을 사회가 만들어 준 조건 위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한책임은 사업이 실패했을 때의 위험 일부를 사회가 나누어 지기로 한 결정입니다. 계약으로 맡긴 것은 없어도, 사회가 내어준 조건 위에 회사가 서 있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답하지 않는 것도 답이 됩니다

공중은 기업에 답을 강제할 수단이 없습니다. 다만 강제할 수 없는 대신 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판단할 자유를 가집니다. 그 판단은 구매와 채용, 여론, 규제 요구, 정치적 압력으로 바뀌어 돌아옵니다.

그래서 실제 질문은 설명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설명하지 않은 상태로 판단받을 것인가입니다. 침묵은 판단을 미루어 두는 선택이 아니라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내려지는 평가를 받아들이겠다는 선택입니다. 비어 있는 자리는 대체로 가장 나쁜 추정으로 채워집니다.

설명을 부담으로 여기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만, 법적으로 보면 설명은 방어 수단이기도 합니다. 결과만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손실이라도 무모한 판단이 부른 것인지 합리적인 판단이 불운을 만난 것인지에 따라 책임의 유무가 갈리는데, 이 둘을 구별할 정보는 판단한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경영판단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이 요구하는 것도 결과의 정당성이 아니라 판단이 합리적인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의 제시입니다. 설명하지 못하면 보호받지도 못합니다.

답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답변책임의 정의에서 중요한 대목은 답할 수 있는 상태라는 부분입니다.

위기가 닥친 뒤에 잘 말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록이 없으면 설명할 재료가 없고, 그때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가 남아 있지 않으면 이유를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제 무엇을 보고받았는지가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인지 시점을 밝힐 수 없습니다.

답변책임은 위기 이후의 커뮤니케이션 과제이기 이전에 평시 경영 기록의 문제입니다. 위기관리의 전제에서 결정의 정보와 대안과 이유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가를 확인 항목으로 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제를 지켜 온 회사에는 답할 것이 남아 있고, 지키지 않은 회사에는 답할 것이 없습니다. 답변책임은 위기가 닥친 뒤에 급히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민법 제681조 · 제683조
상법 제382조 제2항 · 제393조 제4항 · 제449조
Andreas Schedler, Conceptualizing Accountability, in The Self-Restraining State (1999) — answerability와 enforcement의 구분
Mark Bovens, Analysing and Assessing Accountability: A Conceptual Framework, European Law Journal (2007) — 행위자와 상대 사이의 관계로서의 accountability
Ruth W. Grant & Robert O. Keohane, Accountability and Abuses of Power in World Politic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2005) — 위임 모형과 영향 모형의 구분
경영판단원칙은 미국 회사법에서 형성되어 국내 법원 실무에도 수용되어 온 법리입니다. 위 개념들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답변책임이라는 용어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2009년 국내 최초의 기업 위기관리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창업했습니다. 약 30년간 국내외 300여 개 기업과 조직의 위기, 이슈관리를 자문해 왔으며 위기관리 분야 저서 다섯 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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