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언론사 기자들의 경우에도 특정 기업에 위기가 발생하면 자기 나름의 취재를 기반으로 그 회사의 위기관리 방식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의견들의 대부분은 해당 기업 홍보실의 대응 방식이나 홍보실 핵심 인력에 대한 뒷담화, 혹은 대표나 일부 고위 임원으로부터 전해 들은 단편적인 내부 정보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누가 보아도 뻔한 해결책을 실행하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업은 많다. 전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비치는 기업도 꽤 보인다. 심지어 큰 위기가 발생했는데도 기자가 보기에 별로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업도 있다고 한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더 혼나 봐야 한다”, “개념 없이 대행사만 보내서 기사에 대해 하소연만 하더라” 등등, 자신이 경험한 단편적인 경치를 감상하며 해당 기업의 위기관리에 대해 사적인 감상평을 이야기하곤 한다.
기업의 위기관리 현장 내부 깊숙이 접근해 본 경험이 많지 않은 일반인들이 주로 가지는 기업과 위기관리에 대한 공통적인 오해를 몇 가지 꼽아 보려 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실제로는 내부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현실감 있게 그려 보고자 한다.
위기인데도 기업은 듣지 않는다?
기업에게 위기 시 리스닝 하라는 조언을 하는 분들이 많다. 공중과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잘 새겨들으면 거기에 위기관리의 해답이 있는데, 그걸 잘 못 한다고 핀잔을 준다. 일부 화 난 공중은 위기가 발생하니까 기업은 아예 입과 귀를 막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한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천만의 말씀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일단 위기가 발생되면 평시보다 수 십에서 수백 배 더 많이 보고 듣는다. 모니터링의 영역과 빈도를 급격하게 늘린다. 자사에 대한 부정 기사가 수백 개라 해도, 그 기사 하나하나를 밑줄 치며 읽으며 뉘앙스를 해석한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상에서 부유하는 엄청난 목소리들을 정리 분석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이해관계자와 영향력자들의 전화를 받으며 온도를 감지한다. 위기 시에 눈이나 귀를 막고 있는 기업은 없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차가 시속 100킬로 이상으로 달리고 있는데,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운전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을 잘 모른다?
언론을 보든, 국회에 나가 보든, 사회 전문가들의 주장을 찾아보든, 심지어 주부나 노인들이 써 놓은 소셜미디어 포스팅을 봐도 해답이 뻔해 보이는데 기업만 해답을 모르는 것 같다. 해법을 찾지 못하니 계속해서 지지부진한 대응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직접 만나 그 회사 핵심 임원에게 조언했는데도 감감무소식인 상황을 보니, 답을 줘도 답인 줄 모르나?
오히려 반대다.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그 위기관리 주체인 기업이 아마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해답을 알아도 일반인들보다 훨씬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그 해답이라는 것을 기업의 최고의사결정자가 해답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일한 해답이 아닐 수도 있으니, 다른 해답을 찾아보라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즉, 그 최고의사결정자는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해답이 그냥 ‘싫은 것’이다. 그 뿐이다. 그 회사의 임직원들은 최고의사결정자가 좋아할 만한 또 다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위기관리에 ‘위’자도 모르는 것 같다?
그 기업이 위기관리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는 평가도 많다. 내부적으로 봐도 위기관리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홍보실이나 핵심 임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중구난방이니 아무래도 전문가가 필요할 것 같다. 갈피를 못 잡고 개념이 약해 보이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 또한 오해다. 위기관리는 기업이 상당 수준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어떻게 든 움직여 해결 방안을 만들려고 하는 아주 진지한 행위다.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기업은 더 많이, 다양하게, 그리고 자주 움직이며 위기관리를 수행한다. 수면 위에 고요히 떠 있는 백조처럼 보이지만, 그 발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방향을 튼다. 누군가 내부에서 중심(Anchoring)을 잡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누군가는 항상 존재한다. 그 누군가에 의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할 수 있는 대응을 불철주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이미 잘 알고 있다.
해야 할 것은 안 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한다?
대대적으로 국민 앞에 나와서 사과하라는 여론이 많은데, 이상하게 그 회사는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광고 협찬 딜에 전력을 쏟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이 그런 식으로 해결될 건 아닌 것 같은데, 그 회사 고위 임원들은 언론사 데스크를 연이어 만나며 사정한다. 국회에서도 밤을 새우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변호사들과 규제기관 담당자 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해야 할 건 안 하고 엉뚱한 짓을 하는 걸 보니 위기관리를 잘 못 하는 것 아닌가?
아니다. 나름대로 자신들의 조작적 정의에 기반한 위기관리 계획을 성실히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해야 할 일에 대한 정의는 그 위기를 바라보는 주체가 누구인 가에 따라 다양하게 나뉠 수 있다. 기업 측에서는 자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대응이 바로 해야 할 일이라고 굳게 믿는다. 일단 실행이 적극적으로 되고 있다면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지가 다분히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기업 차원의 지원도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 해야 할 일이란 말인가? 단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솔직히 실무자도 그런 대응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것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하는 것이다.
우선순위나 타겟에 대한 생각이 없나?
그 기업의 위기관리를 보면 두서 없어 보인다. 주요 언론에서 다룬 부정보도에 대해서는 감내하면서, 온라인 소형 매체의 부정 기사에 대해서는 언중위에 제소하거나 기자 대상으로 내용증명을 보낸다. 여기저기에서 밀어내기나 물타기 방식으로 여론 희석을 시도하는데, 언론 기사는 계속 쏟아지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형국으로 보인다. 뭐가 중요하고 시급한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아닌가?
비슷한 현실이지만, 기업 내부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온라인 일부 매체에 대한 강력한 대응은 내부에서 신중히 결정된 대응일 뿐이다. 여러 사후 효과를 기대하고 변호사들을 대거 투입해 봉쇄 활동을 하는 것뿐이다. 그 일 때문에 다른 대응을 못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밀어내기나 물타기가 별 효과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최고의사결정자 그룹이 매시간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모니터링하는데, 그분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덜 띈다면 그것 만으로도 성과는 있는 셈이다. 기업이 하는 모든 실행은 최고의사결정자에 의한, 그를 위한, 그의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기업은 그런 위기관리를 일관되게 수행하는 것이다.
듣다 보니 무섭다. 수면 하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어떤 매체를 보니 열심히 그 회사를 취재하다가 갑자기 취재를 접었다. 부정 기사가 갑자기 사라지고, 주목받았던 폭로자도, 그가 올린 온라인 포스팅도 함께 사라졌다. 정치권도 갑자기 조용해졌다. 다른 이슈가 터져 주목을 덜 하는 건지 이제 별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대체 그 기업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걸까? 로비와 대관, 언론과 NGO 쪽에 막대한 예산을 쓴다더니 그 효과가 나타나는 걸까?
뭐 그런 경우도 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냥 상황이 그렇게 되어 버린 경우가 더 많다. 취재를 스스로 접은 매체에 대해 회사가 접촉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냥 취재하다 보니 기삿거리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 사라진 폭로자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자기 개인적인 어떤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 각종 대외 관계 관리 예산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니 이번 위기관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외부에서는 위기관리 하는 기업을 딱 두 가지로 보는 듯하다. 무능력자 또는 슈퍼맨. 즉, 기업의 실제 모습은 잘 모른 채 하는 단순한 감상평이라는 의미다.
그럼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만 따르면 위기관리인가?
앞에서 이야기한 실제 상황을 들어보면, 기업 구성원들은 모두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부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부 조언이나 상황의 맥락, 타겟과 우선순위 전략이 어떠하든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과 선호가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위기관리 원칙이나 이론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현실 같다. 이론적으로는 리더의 결단과 철학, 원칙과 가치를 중심으로 위기를 해결하는 것을 지향하지만, 실무자들이 단순히 리더의 의중에만 따른다면 그것은 해결보다 미봉이나 모면에 그치지 않겠는가?
맞다. 그러나 먼저 중요한 것은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과 선호다. 그것이 곧 그 기업의 실질적인 위기관리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 전략이 제대로 실행된다면 그 위기관리는 절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 물론 그 실행들이 적절한 효과까지 생산해 낸다면 더욱 성공적일 것이다. 최고의사결정자가 원칙과 철학을 가지고 결단을 내리며, 여론의 맥락을 읽는 정무 감각과 과감한 재발 방지 의지를 갖추고 있다면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조직적인 위기관리 체계와 최고의사결정자의 개인적 판단은 현실에서 서로 얽혀 있다. 우선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이 그대로 실행에 옮겨지는가, 그리고 그것이 이상적인 결과를 생산할 수 있는가는 조직 체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이상과 같은 생각들이 일반인들이 가지는 기업 위기관리에 대한 공통적인 오해들이다. 모든 기업은 위기관리를 한다. 물론 잘하는 것과 그냥 하는 것은 다른 의미이지만, 일단은 열심히 한다. 해법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 해법을 내부에서 수용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최고의사결정자가 선호하는 해법을 찾았다면, 그 실행에 있어서 대부분의 기업은 최선을 다한다. 그 방식에 대해 외부에서 비판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대응의 실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운칠기삼이라고 하듯, 운이 좋아서 위기가 빨리 해결되는 기업도 꽤 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이 일관되게 반영된 위기관리에 최선을 다했다면, 해당 위기관리팀은 사후에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 외의 다른 평가나 비판은 현장 실무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주제다. 일단 임원과 직원들이 부정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 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성공인 셈이다.
이처럼 이론적이고 당위적인 위기관리와 실제 현장의 위기관리는 다른 점이 많다. 정확하게는 ‘현실적인 부분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현실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그 위에 형성되는 이론과 당위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반대로 이론과 당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닐 텐데, 현실만 강조하며 등을 돌리는 위기관리란 또 어떤 의미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균형을 잡아 이루어 내야 좋은 위기관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