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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RM, BCP,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ERM은 회사의 목표 달성을 흔들 수 있는 불확실성을 전사 차원에서 다루는 체계이고, BCP는 업무가 중단되었을 때 핵심 기능을 정해진 시간 안에 되살리기 위한 체계이며, 위기관리는 발생 가능한 위기를 미리 예상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두는 활동입니다. 세 가지가 모두 위기관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실무의 혼선이 시작됩니다. 셋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근거로 삼는 표준부터 서로 다른 별개의 체계입니다.

    세 개념은 각각 다른 표준 위에 서 있습니다

    ERM의 근거는 리스크관리 표준인 ISO 31000과 COSO의 전사적 리스크관리 프레임워크입니다. 여기에서 리스크는 「목표에 대한 불확실성의 영향」으로 정의됩니다. 손실만이 아니라 목표를 흔드는 모든 불확실성이 대상이며, COSO는 2017년 개정에서 이를 전략 수립과 성과 관리에 통합되어야 하는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BCP의 근거는 사업연속성 관리 표준인 ISO 22301입니다. 여기에서 사업연속성은 「중단 상황에서도 사전에 정해 둔 허용 시간과 수준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제공을 계속할 수 있는 조직의 역량」으로 정의됩니다. 업무영향분석으로 복구 우선순위를 정하고, 목표복구시간과 목표복구시점으로 허용 한계를 수치화합니다.

    위기관리의 근거는 위기관리 표준인 ISO 22361입니다. 여기에서 위기는 「조직을 위협하며, 존립과 온전함을 지키기 위해 전략적이고 적응적이며 시의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비정상적이고 이례적인 사건 또는 상황」으로 정의됩니다. 주목할 것은 이 표준의 목적입니다. 대응 절차의 제공이 아니라 「전략적 위기관리 역량을 계획하고 수립하고 유지하고 검토하고 개선하는 것」입니다. 위기관리를 사후 절차가 아니라 평시에 쌓는 역량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한 단어를 더 볼 필요가 있습니다. 리스크관리를 규정해 온 표준 계열은 리스크관리를 「조직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조정된 활동」으로 정의합니다. 위기관리 표준은 위기관리를 「조직을 이끌고, 지휘하고, 통제하는 조정된 활동」으로 정의합니다. 앞에 이끈다가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통제 위에 판단이 얹혀야 한다는 뜻이며, 두 영역의 성격 차이가 이 한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세 체계는 다루는 대상이 다릅니다

    구분ERMBCP·BCM위기관리
    근거 표준ISO 31000, COSO ERMISO 22301ISO 22361
    다루는 대상목표를 흔드는 불확실성업무의 중단이해관계자의 판단을 흔들 소지
    핵심 질문무엇이 얼마나 흔들 수 있는가멈추면 언제까지 되살리는가지금 무엇을 해 두어야 하는가
    주관 부서재무, 감사, 전략운영, 생산, 정보기술최고경영진, 커뮤니케이션
    주 산출물리스크 목록과 한도, 보고 체계복구 우선순위와 절차선행 조치, 포지션, 창구 체계
    성공의 모습손실이 한도 안에 머무름정해진 시간 안에 복구됨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성공의 판정자회사 자신회사 자신회사 밖의 이해관계자
    표. 세 체계의 비교 — 스트래티지샐러드

    성공의 모습과 성공의 판정자, 이 두 항목이 실무에서 가장 큰 차이를 만듭니다. ERM은 손실이 한도 안에 있었는지를, BCP는 몇 시간 만에 복구했는지를 회사가 스스로 판정할 수 있습니다. 위기관리에는 그런 내부 지표가 없습니다. 판정은 회사 밖에서 이루어지고, 판정의 기준도 회사가 정하지 않습니다.

    주관 부서가 서로 다르다는 점도 뒤에서 다시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세 체계가 위기 상황에서 충돌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 체계 모두 본령은 평시에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사고가 난 뒤에 꺼내 드는 대응책이 아닙니다. ERM은 평시에 무엇이 회사를 흔들 수 있는지 목록으로 만들어 두는 일이고, BCP는 멈췄을 때 무엇부터 되살릴지 미리 정해 두는 일입니다.

    위기관리도 같습니다. 진짜 위기관리는 발생 가능한 위기를 미리 예상하고, 그에 대해 지금 해야 할 일을 그때 해 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위기는 이 단계에서 소멸합니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알려지지 않고, 평가받지도 않은 채 사라집니다.

    위기관리에는 두 개의 국면이 있습니다

    평시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후의 활동은 성격이 다르며, 실무에서는 데미지 컨트롤이라고 부르는 편이 정확합니다.

    데미지 컨트롤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예상되는 피해를 신속하게 계산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며, 지속 기간을 최단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회복이 아니라 축소가 목표입니다.

    데미지 컨트롤은 표준에 등재된 용어가 아니라 실무에서 쓰는 말입니다. 다만 위기관리 표준이 사건과 위기를 나누는 방식과 짝을 이룹니다. 사건은 기존 절차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고, 위기는 준비된 절차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절차가 감당하는 구간까지는 준비의 영역이고, 그 밖으로 넘어간 구간이 데미지 컨트롤의 영역입니다.

    이 구분을 놓치면 위기관리를 사후 대응으로만 이해하게 됩니다. 위기가 발생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구성되는 대책 기구가 그 결과입니다. 그런 기구는 유효한 대응 시점을 이미 지나 있으며, 위기관리 체계가 아니라 수습 기구로 보아야 합니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위기관리의 성과는 증명되지 않습니다

    ERM은 손실 한도로, BCP는 목표복구시간으로 성과를 숫자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위기관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잘 된 위기관리의 결과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이고, 그 상태에는 증명할 대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위기관리는 투자 판단이 가장 어려운 영역입니다. 다만 반대 방향의 신호는 분명합니다. 알려진 위기가 짧은 기간에 줄을 잇는 회사는 위기관리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부재가 곧 지표입니다.

    널리 알려진 위기관리 성공 사례들도 이 관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례들은 대부분 이미 위기가 발생해 알려진 뒤의 대응을 평가한 것입니다. 배울 가치가 있는 기록이지만, 위기관리의 표준이 아니라 데미지 컨트롤의 표준입니다.

    BCP를 갖췄다고 위기관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무에서 가장 비용이 큰 오해입니다. BCP는 멈춘 공장을 다시 돌리는 계획이지, 흔들린 신뢰를 되돌리는 계획이 아닙니다. 목적도 산출물도 실행 주체도 다릅니다.

    복구는 예정보다 빨리 끝났는데 시장에서의 자격은 회복되지 않은 상태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복구는 회사의 기준으로 완료되고, 신뢰는 상대의 기준으로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세 체계는 위기 상황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보고합니다

    소유 부서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르게 정의합니다. 재무는 손실 규모로, 운영은 복구 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은 이해관계자의 인식으로 보고합니다. 셋 다 맞는 보고지만 서로 번역되지 않습니다.

    조율되지 않은 채 각각 올라가면 최고경영진의 판단이 지연됩니다. 그리고 그 지연이 만든 공백은 회사의 설명이 아니라 외부의 해석으로 채워집니다. 위기 초기에 컨트롤타워가 하나로 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할 때

    회사가 보유한 문서가 세 가지 중 무엇인지 먼저 확인해 보십시오. 표지에 위기관리라고 적혀 있어도 내용이 복구 절차라면 그것은 BCP입니다.

    각 체계의 담당 부서와 최종 책임자가 각각 지정되어 있는지 보십시오. 한 부서가 셋을 모두 맡고 있다면 실제로는 하나만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시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짚어 보십시오. 세 체계 모두 평시 활동이 본령이며, 발생 이후의 절차만 있는 문서는 준비가 아니라 예고편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세 부서의 보고가 한자리에서 합쳐지는 구조가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이 구조가 없으면 세 체계를 모두 갖추고도 판단이 늦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외부 자문을 구할 때는 사전 체계를 세우는 일인지 발생 이후의 대응인지부터 정해 두십시오. 이 구분 없이 받은 제안들은 서로 비교되지 않습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위기가 되기 전 단계를 다룹니다.
    상황관리란 무엇인가: 발생 이후 회사가 실제로 하는 조치입니다.
    살아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평시 준비가 문서로 남는 자리입니다.
    위기관리 컨설팅이란 무엇인가: 외부 자문의 범위를 정할 때 보시면 됩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ISO 22361:2022 Security and resilience — Crisis management — Guidelines
    ISO 22301:2019 Security and resilience — Business continuity management systems — Requirements
    ISO 31000:2018 Risk management — Guidelines
    COSO Enterprise Risk Management — Integrating with Strategy and Performance (2017)

  • 위기 시 첫 보고에 의지하지 말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에픽테토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훈련하라고 가르쳤다. 거칠고 강렬한 인상이 밀려올 때마다 그것을 향해 말하라. “너는 인상일 뿐, 보이는 그대로의 것이 아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를 정교하게 구분했다. 밖에서 밀려오는 것은 인상(phantasia)이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동의(synkatathesis)다. 인상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동의는 언제나 내 권한이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위기관리의 눈으로 읽으면 이것은 놀랍도록 실전적인 지침이다. 위기가 터진 첫날, 경영진의 책상에 올라오는 첫 보고가 바로 그 ‘인상’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오래 확인해 온 법칙이 있다. 위기의 첫 보고는 대부분 틀리며 정확하지 않다. 피해 규모는 더 커지거나 줄어들고, 사고 원인은 며칠 뒤 다른 것으로 밝혀지며, 책임 소재는 거의 반드시 수정이 반복된다. 첫 보고가 끝까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보고자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위기 초기의 정보란 원래 부서지고 뒤섞인 채로 급박하게 도착한다. 안개 속에서 급히 그린 지도가 정확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많은 경영진이 그 첫 보고에 즉시 ‘동의’해 버리는 경우다. 첫 지도를 손에 쥐고 전군에 진격 명령을 내린다. 원인을 단정한 공식 입장이 나가고, 책임자를 지목한 발표가 이어지면 문제다. 그리고 하루 이틀 뒤 사실이 수정되면, 회사는 말을 바꿔야 한다. 첫 발표의 신뢰가 무너지고, ‘거짓말하는 회사’라는 새 프레임까지 얻는다. 위기 그 자체보다 번복이 회사를 더 깊이 상처 낸다.

    여기서 반론이 나온다. “요즘 같은 속도전에 기다리라는 말이냐. 골든타임을 놓치면 어쩌냐.” 의미있는 걱정이다. 그러나 신속과 성급은 다르다. 신속은 확인된 것을 빠르게 말하는 것이고, 성급은 확인되지 않은 것을 빠르게 말하는 것이다. 위기 초기에 회사가 내야 할 메시지는 원인 규명도 책임 판정도 아니다. 상황을 인지했고, 문제나 피해자를 살피고 있으며, 사실을 확인 중이라는 것. 이것만으로 첫 메시지는 충분하다. 확인되지 않은 것을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능이 아니라 정직이며, 실은 상당한 용기다.

    에픽테토스의 훈련을 위기관리의 책상 위로 옮겨 보자. 첫 보고가 올라오면 그것에 의지해 의사결정 하기 전에 한 번 말해 보는 것이다. “이건 첫 보고일 뿐, 사실 그대로가 아니다.” 그리고 세 가지를 물어보자. 이 중 정확하게 확인된 것은 무엇인가? 추정인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이 세 줄의 분류가 성급한 의사결정을 막는 방어선이 된다.

    일시 의사결정을 유보하는 것은 판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판단을 제자리에 놓는 것이다. 그 기간을 견디면 오판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결정한 오판은 두고두고 회사를 따라다닌다. 인상은 밀려오게 두되, 동의는 아껴라. 위기의 첫날, 리더의 품격은 무엇을 말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에 급히 서명하지 않았느냐에서 갈린다.

  •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은 가상의 위기 상황을 설정하고 실제와 같은 조건에서 의사결정과 대응을 실습하는 훈련입니다. 통상 의사결정 그룹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하는 워룸(War Room)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매뉴얼이 작동하는지, 조직이 실제로 움직이는지는 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진행합니까

    위기 상황을 단계별로 나눈 시나리오가 준비됩니다. 참가자들은 제한된 정보와 제한된 시간 안에서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에 따라 다음 상황이 전개됩니다. 진행자는 언론 문의, 규제기관 연락, 소셜미디어 확산, 내부 동요 같은 변수를 상황에 맞춰 투입합니다.

    참가자는 실제 위기 시 의사결정에 참여할 사람들로 구성합니다. 대리 참석은 훈련의 의미를 없앱니다. 결정할 사람이 그 자리에 없으면, 실제 위기에서도 결정은 나오지 않습니다.

    시뮬레이션은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효과가 유지됩니다. 한 번 해 보고 끝내면 조직의 기억은 몇 달 안에 흩어집니다.

    시뮬레이션이 드러내는 것

    시뮬레이션의 목적은 잘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를 찾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자주 드러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정보가 위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현장은 알고 있는데 의사결정 그룹은 모릅니다. 둘째, 결정이 내려지지 않습니다. 참석자들이 서로의 판단을 기다립니다. 셋째, 결정이 아래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정해졌는데 실행 조직은 모릅니다.

    이 세 가지는 매뉴얼을 아무리 정교하게 써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모여 실제로 해 봐야 보입니다.

    잘못 설계된 시뮬레이션의 특징

    첫째, 시나리오가 자사와 무관한 경우입니다. 일어날 법하지 않은 상황을 다루면 참가자들이 몰입하지 않습니다. 위기요소 진단에서 나온 실제 후보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경우입니다. 진행자가 원하는 답으로 유도하면 훈련이 아니라 시연이 됩니다.

    셋째, 결과를 인사 평가에 쓰는 경우입니다. 참가자들이 평가받는다고 느끼면 실수를 감추게 되고, 실수를 감추면 배울 것이 없어집니다.

    넷째, 사후 정리를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시뮬레이션의 가치는 훈련 자체가 아니라 이후의 복기와 개선에 있습니다. 무엇이 막혔는지 기록하고 매뉴얼과 체계에 반영하는 데까지 가야 한 번의 훈련이 완결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하는 대상입니다.
    위기관리위원회란 무엇인가: 시뮬레이션에 참여하는 조직입니다.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무엇인가: 개인 단위의 훈련입니다.
    위기관리 시뮬레이션

  • 직원의 실수로 벌어진 위기인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번 사건도 그렇습니다. 이건 엄연히 저희 직원이 직무상 실수를 해서 발생된 사건입니다. 그에 대해서 회사가 해당 직원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 내부적으로 조치를 했고, 대표께서도 도의적으로 사과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계속 회사를 비판하는데요.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먼저 조금 냉정한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느끼시는 억울함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실수한 직원에게 책임을 물었고, 대표께서 도의적 사과까지 하셨는데도 비판이 이어지니 심하다 느끼실 만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위기의 책임은 실수한 그 직원 개인보다 오히려 회사 쪽이 더 큽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을 회사가 놓치고 있기에 비판이 잦아들지 않는 것이지요.

    영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이 제시한 ‘스위스 치즈 모델(Swiss Cheese Model)’이라는 유명한 사고 이론이 있습니다. 큰 사고가 터지면 사람들은 대개 실수한 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대형 사고는 결코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직에는 여러 겹의 방어선이 있습니다. 설계, 검수, 결재, 교육, 감독, 그리고 조직문화까지. 마치 구멍이 숭숭 뚫린 치즈를 여러 장 겹쳐 놓은 것과 같지요. 평소에는 한 겹이 뚫려도 다음 겹이 막아 줍니다. 그런데 이 구멍들이 어느 순간 일직선으로 정렬되는 순간, 위험은 그대로 관통해 사고로 터지고 맙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사고가 최일선 담당자의 손에서 터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검수와 결재, 교육과 문화라는 방어선을 ‘모두 통과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순간적 실수 뒤에는, 그 실수를 걸러내지 못한 여러 겹의 구멍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구멍들은 대개 경영진의 판단과 조직문화 속에 오래 잠복해 있던 ‘구조적 결함’입니다. 다시 말해 직원은 방아쇠를 당겼을 뿐, 그 총에 실탄을 채우고 안전장치를 풀어 둔 것은 회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위기관리는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누가 실수했는가’를 찾는 데서가 아니라, ‘왜 우리의 방어선들이 한꺼번에 뚫렸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됩니다. 전자는 실수한 직원 한 사람을 징계하고 대표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후자는 회사의 시스템 그 자체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지금 공중이 비판을 거두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번 사건이 ‘어쩌다 한 직원이 저지른 일탈’로 정리되는 순간, 똑같은 사고가 언제든 다시 일어나리라는 것을 말이지요.

    이번 위기를 우연이나 개인의 일탈로 정의해 버리면, 문제의 핵심인 내부 체계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습니다. 구멍 뚫린 치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다음 사고는 예정된 수순이 되지요. 반대로 회사가 ‘이것은 우리 시스템의 문제였다’고 직시하고 그 방어선을 하나하나 손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비판은 잦아들고 신뢰는 회복의 길로 들어섭니다.

    직원의 실수를 감싸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실수를 개인의 것으로만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최일선의 실수를 걸러내는 것이 바로 회사의 체계이고, 그 체계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 경영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을 잠시 내려놓고 회사가 스스로 더 큰 책임을 지겠다고 나설 때, 그 위기는 비로소 반복의 고리를 끊고 관리되기 시작합니다.

  • 경영적 의사결정과 소통이 충돌하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소통 절차가 생략되어서 이번 이슈가 더 커졌다는 지적을 하는데요. 저희가 봤을 때 사전에 구체적 소통이 있었다면, 이번 결정은 대폭 지연되거나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경영적 의사결정과 소통이 서로 충돌하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경영 현장에서는 실제로 이런 충돌이 존재합니다. 사전에 구체적이고 다양한 이해관계자 소통을 충실히 이행했다면, 해당 의사결정 자체가 불가능했거나 대폭 지연되었을 것이라는 판단, 충분히 현실적인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절차적 소통을 생략하거나 형식적으로만 진행하는 것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단, 그것은 최고경영자의 경영적 판단의 영역입니다. 절차적 소통을 생략하는 선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선택에 수반되는 리스크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상 분석했느냐에 핵심이 있습니다.

    예상되는 사회적 후폭풍의 규모와 부담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차적 소통을 생략하거나 형식적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면, 그것은 리스크를 인지하고 관리하는 의사결정입니다. 반면, 절차적 소통과 관련한 리스크를 예상조차 하지 못한 채 경영적 의사결정을 밀어붙이다가 후폭풍을 맞이하는 경우는 다릅니다. 이것은 리스크를 관리한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인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유사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리스크를 인지했다면, 그 다음은 그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숙제입니다. 그 관리의 실질적 도구가 바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결국 위의 두 선택지 결과를 실질적으로 나누는 것은, 절차적 소통의 유무 자체라기보다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의 질입니다. 어떤 논리와 서사, 프레임과 메시지, 그리고 근거를 어떤 방식으로 전개했는지가 핵심이 됩니다.

    일부에서는 절차적 소통의 목적을 의사결정을 미화하거나 사회적 불만을 희석시키는 것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절차적 소통의 진짜 목적은, 해당 기업이 사회적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태도를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적을 통해 더 발전적인 이해관계자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본래 목적입니다.

    기업들 중에는 무엇을 해도 비판받고 매번 유사한 질타를 받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그런 기업들은 이미 이해관계자 관계의 품질이 오랫동안 좋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절차적 소통을 생략하는 것은 그 관계 품질을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 의사결정에서 더 큰 후폭풍으로 돌아오지요.

    만약 절차적 소통을 생략하여 사회적 후폭풍을 경험했음에도, 이후에도 동일한 패턴을 반복한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역시도 최고경영자의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후폭풍이 있더라도 일단 해당 의사결정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우선이라는 의미이죠.

    결국 최고의사결정권자 앞에 놓인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절차적 소통을 충실히 이행한 뒤 의사결정 하거나, 절차적 소통을 생략 또는 형식적으로만 진행한 뒤 의사결정을 하거나입니다. 실무적으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부족하거나 그에 대한 자신이 없는 기업일수록, 절차적 소통에 부담을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기업이라면 사후 데미지 컨트롤에 모든 역량을 집중적으로 준비해 투입하는 것이 현실적 차선책이 될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홍보팀에서 위기관리 시나리오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대표님께서 홍보팀에 향후 발생 가능한 OO위기건을 놓고, 준비차원에서 위기관리 시나리오를 짜보라 하셨습니다. 홍보팀 차원에서 OO위기 발생 시 커뮤니케이션 팩을 만들어 보라 하셔도 힘든데, 전사 차원의 위기관리 시나리오 작업이 홍보팀 실무차원에서 가능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홍보팀이 단독으로 전사적 위기관리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대표님의 지시 의도를 먼저 파악하셔야 합니다. 동일한 지시라도 해석에 따라 작업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해석은, 홍보팀이 전사 위기관리팀을 대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먼저 제시하고, 각 부서가 자기 역할에 맞는 대응 방안을 제출하면 홍보팀이 이를 취합해 통합 시나리오로 구성하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이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식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홍보팀 관점에서 예상 위기 상황별로 회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적 밑그림을 그려보라는 지시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홍보팀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홍보팀이 부서 자체적으로 전사 대응전략과 방안까지 모두 설계해 내라는 의미라면, 이건 현실적이지 않은 지시입니다. 왜 그럴까요?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느 정도 사내 공통으로 수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과 방법론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각 부서마다 해당 위기 시나리오에 대한 책임의 유무와 강도가 다르고, 역할 배분과 의사결정, 그에 따른 활동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홍보팀이 이를 대신 정리해 주거나 독자적으로 완성할 수는 없는 것이죠.

    특히 최고의사결정그룹의 시나리오별 의사결정 방향이 먼저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정교한 대응전략과 방안도 사실상 나올 수 없습니다. 위기관리위원회나 멀티부서 협력체가 함께 작업한다 해도 의사결정그룹의 그런 전제 없이는, 그건 전략 문서가 아니라 그냥 상상화에 불과합니다.

    더 심각한 상황은 욕심을 내어 모든 상황, 모든 변수를 반영한 시나리오를 최대한 다양하게 개발하려 하는 경우입니다. 특정 위기유형 하나만 해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시나리오가 수십 개, 많게는 수백 개까지 만들어집니다. 그 각각에 서로 다른 대응전략을 매칭한다? 작업량만 폭발적으로 늘어날 뿐, 실전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단 하나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기관리 시나리오 개발 작업은 다른 위기관리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시작 전에 상하좌우가 동일한 프로젝트 정의와 범위, 그리고 방식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막연히 A4 용지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위기 시나리오를 그려 나가다 가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홍보팀의 무능함만 안팎으로 드러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대표님께 작업에 앞서 프로젝트 정의와 범위, 참여 주체,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사전 합의를 요청하시는 것, 그것이 이 상황에서 홍보팀이 취해야 할 가장 현명한 첫 번째 대응일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위기관리에도 크리에이티브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는 크리에이티브 사업을 하고 있으며, 평시에도 기발한 마케팅 활동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저희가 볼 때 기존 기업들의 이슈나 위기관리 방식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좀 더 크리에이티브 한 전략에 기반한 대응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일단 말씀하시는 크리에이티브(창조적 대응)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어떤 방식까지 고민 중이신지 확인하기 어려워 정확한 조언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단, 제 생각에 이런 고민은 어느 한쪽이 옳다 혹은 그르다의 이분법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성격이라고 봅니다. 또한 기존 기업들의 위기관리 방식이 효과가 없다고 볼 수도 없으며, 반대로 귀사의 방식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아직은 이른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발생한 이슈나 위기의 성격일 것입니다.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어떤 원인과 형태로 발생해 확산되었는지를 잘 판단해야 대응 기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반 맥락에 따라 전략이 세워지는 것이지, 무조건 크리에이티브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전제를 두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이슈나 위기 자체가 기본적으로 상당한 부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수적인 대응과 창조적인 대응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최고의사결정자의 권한입니다. 관리 활동 전반에 책임을 져야 하는 리더가 판단한 상황에 기반해 대응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적으로 어떤 방향이 맞고 틀린지를 분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임상적으로 확실한 점은 기존 기업들의 크리에이티브 한 대응 방식이 현장에서 과연 효과적이었는가 하는 평가입니다. 생각보다 그런 방식은 오히려 부정적인 주목만 증폭시키거나, 운이 좋은 경우라도 불필요한 화제만 낳았을 뿐 관리 효과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케이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대개 보수적인 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과 신생 기업에서 젊은 경영자 개인의 판단에 의해 실행되곤 했습니다.

    기업의 연력과 규모, 의사결정 구조와 리더의 성향이 주요 변수였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젊은 경영자의 시각에서는 기존 기업들이 매번 고개 숙여 사과하고, 저자세로 일관하며, 합리적 수준을 넘어서는 보상을 하는 모습이 고리타분하고 답답해 보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에 대한 대안이 곧 크리에이티브라고 쉽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자사에서 발생 가능한 위기의 성격과 형태에 대해 보다 깊고 넓게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기 발생 시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세심히 살펴야 합니다. 대응 방식에 대한 판단은 그 이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심지어 광고대행사 대표님들께도 위기 때는 크리에이티브를 잠시 내려놓으시라고 조언하곤 합니다. 이는 크리에이티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슈와 위기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해결? 관리? 그 차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 위기관리를 위해 전문가들께 조언을 얻고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궁금합니다. 가만히 놓아 두었다가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문제가 해결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우선 먼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핵심 개념이 있습니다. 위기관리를 위한 자문을 요청하셨는데, 구체적 질문 내용을 들어보면 ‘해결’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계십니다. 위기 대응을 논할 때는 보통 ‘관리’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선택합니다. 이는 ‘해결’과는 다른 뉘앙스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질문하신 기업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해결’은 스스로 문제를 풀어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경우에는 우선, 스스로 풀어낼 수 있는 구체적 문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영역을 한정 지어, 단계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하죠. 위기관리 관점에서 ‘해결’은 주로 해프닝이나 소규모 문제 수준의 대상에 해당하며, 기업이 ‘최대한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상황을 종결 짓는 것을 가리킵니다.

    반면, ‘관리’는 당면한 위기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기울이는 모든 중장기적 노력을 포괄합니다. 이는 단순 단기 해결을 넘어서는 더 넓은 개념으로, 기업의 자체 노력뿐 아니라 환경적 변수에 대한 대응까지 포함합니다. 즉, ‘최대한 할 수 있는’ 해결 활동에 더해 ‘꼭 해야 하는 추가 노력’과 ‘통제 불가능한 외부 요인에 대한 대비’를 아우르는 것입니다.

    기업 자체 역량으로 주도하는 ‘해결’과 달리, ‘관리’는 때때로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대상과 영역을 규정하기 어렵고, 환경 변수가 예상 밖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리’라는 표현이 적합합니다. 만약 상황이 단순 ‘해결’될 수 있다면, 그것은 애초에 위기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기업이 위기관리를 ‘위기 해결’로 인식하는 데 있습니다. ‘어떻게 이 위기를 해결할까’라는 적극적 사고방식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죠. 왜 우리가 ‘여론 해결’, ‘언론 해결’, ‘부정기사 해결’, ‘직원 해결’, ‘위기 해결’, ‘재난 해결’ 같은 표현을 피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 영역들은 단순히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관리’의 대상입니다. 이러듯 위기를 바라보는 마인드가 ‘해결’ 중심인지 ‘관리’ 중심인지에 따라 대응의 성패는 크게 좌우됩니다.

    이를 병원 비유로 설명 드리자면, 시술이나 수술로 병을 단번에 고쳐 ‘해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 여러 치료법과 지속 관리, 식이요법, 재활 운동 등으로 병을 ‘관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는 두 방식을 병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위기관리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수술처럼 ‘해결’ 가능한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수술로 고쳐지지 않거나, 수술할 수 없거나, 수술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질문으로 돌아가, 현재 위기가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인지, 아니면 ‘관리’해야 하는 성격인지를 먼저 명확히 규정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해결 가능한 구체적 대상이 있다면, 그 부분을 식별하고 해결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다음 단계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위기 해결’이라는 사고는 오히려 위기관리에 방해가 될 뿐,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큽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최근 몇몇 기업을 보면 자사 위기관리를 위해 상당히 특이한 실행을 해 더 큰 논란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이상 대응이나 수습책을 마구 실행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가는 느낌까지 있습니다. 현장에서 보시기에도 그런 트렌드가 느껴 지시는 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일단 최근 들어 기존의 전통적 위기관리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일반적 원칙이 상당부분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 금도라고 할까요?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그런 선을 넘는 위기관리와 커뮤니케이션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는 이유는 기업 내 의사결정그룹이 점차 ‘정치화’되어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업인으로서 기업 이슈나 위기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는 흡사 정치인의 시각으로 기업 이슈나 위기상황을 해석하는 곳들이 많아진 것이지요. 이는 자사 위기관리를 위해 영입한 정치권(대관) 인사들이 기업내에서 위기관리관련 의사결정그룹에 보다 적극 참여하면서 생긴 변화라고 보여집니다.

    기존 기업이 하던 이슈나 위기관리 패턴과 전혀 다른 정치적 의사결정 방식이 기업 최고경영진에게는 보다 신선하고 창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방어적, 수동적이었다고 느껴졌다면, 이제는 오히려 공격적, 적극적인 위기관리라 느껴지는 것이지요. 반면 이를 바라보는 이해관계자들은 이전과 같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변화된 기업의 위기관리 방식에 이질감을 느끼고 그것이 다시 논란으로 재발되곤 합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변화는 있어 보입니다. 기존에는 기업이 이슈나 위기관리를 위해 여론을 듣고, 분석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따라 입장을 정리하고, 메시지를 그들에게 맞추는 방식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주로 몰입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부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을 보면, 여론을 변화시키려 하고, 기업의 목소리를 최대한 증폭시켜 여론에 영향을 주려 합니다. 언론이나 소셜미디어 관련자들을 통제 매수 활용해서라도 프레임을 만들어 보려고 하기도 합니다. 기존 대기업에서 언론관계로 불리던 수준의 노력을 넘어서는 다양한 지휘 통제력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이는 정치권에서 흔하게 목격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입니다.

    이해관계자들이 볼 때 특정 기업 위기관리 실행에서 갑자기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 실행을 결정한 의사결정그룹 내에 새로운 분위기가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나 내용에서도 이질감이 느껴진다면, 그 커뮤니케이션 타겟은 이해관계자 자신들이 아니라 다른 특정인(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최근 같은 변화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려면 기업은 스스로 더욱 올바른 정무감각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해 가야 합니다. 정치적 음모와 기술, 공작 등과 같은 노력에서 벗어나 여론, 원칙, 철학, 품격을 추구하는 위기관리와 커뮤니케이션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준법은 물론입니다. 현 상황만 극복해 보자. 어떻게든 뭐든 해 보자. 못할 것 없다. 일단 하고 나서 보자. 여기저기 동원해 보자. 기업 경영자들께서는 위기관리 미팅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면 좀더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위기관리는 절대 위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위기 때 무얼 가장 먼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도 여러 번 상황이 발생해 위기관리를 했었습니다. 그때마다 여러 개선점이 논의되곤 했는데요. 위기가 발생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매번 의견이 분분합니다. 성공적으로 위기를 관리한 회사들의 공통적인 첫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조언드릴 수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다양한 위기상황과 마주했을 때 공통적으로 하는 첫 일을 보면, 실패한 케이스와 성공한 케이스 사이에는 딱 한가지 다름이 있습니다. 위기 발생 후 즉각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좌장이 되어 홍보, 법무, 재무, 대관 및 기타 위기 관련 부서가 참가하는 통합적 컨트롤타워를 구성하는 가, 구성하지 못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부 컨트롤타워가 위기 발생 후 상당시간이(예를 들어 일주일 후) 지나 구성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는 사후 수습 목적이 클 뿐이었습니다. 실제 초기 대응이나 유효한 대응 시점에는 회사의 효과적 대응이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의미지요. 사후 데미지컨트롤을 목적으로 하는 이런 컨트롤타워의 구성도, 아예 컨트롤타워가 구성되지 않거나, 유명무실 한 경우보다는 낫습니다.

    항상 문제는 그 컨트롤타워가 진짜 컨트롤타워인가 하는 것입니다.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좌장이 되어 직접 컨트롤타워 구성원 보고와 의견을 청취하고 즉각적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그 후 그 결정 방향에 따라 컨트롤타워 구성 부서들이 상호 협업하여 실행까지 완료하는 방식이 가장 이상적인 컨트롤타워 효과입니다.

    그러나, 유사 컨트롤타워의 경우는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컨트롤타워 좌장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별도 공간과 시간대에 머무릅니다. 컨트롤타워 의결사항을 별도 보고받으며, 최고의사결정권자 의견이나 피드백이 다시 컨트롤타워에 내려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컨트롤타워 구성에서 실무핵심그룹이 제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사결정자들만의 타워 형태입니다. 하지만, 위기관리에서는 일선 실무그룹 보고와 시각은 의사결정 과정의 아주 중요한 축입니다. 실무그룹이 빠져 있는 컨트롤타워는 한쪽 눈에만 의지해 사냥하는 형태와 비슷합니다.

    그 외에 컨트롤타워에 외부 전문가 그룹이 철저하게 배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컨트롤타워에 일부 비선라인 인사들이 포함되거나, 원격으로 의견을 하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컨트롤타워는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상황과 전략을 보고하기 위한 문서 개발팀으로 주로 역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이라면 기술적으로 컨트롤타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그 결과에 다름은 없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가장 먼저 구성하십시오. 최고의사결정권자에서 실행그룹에까지 상호간 사일로(silo)를 없애야 합니다. 같은 정보를 실시간 공유할 수 있어야, 가까운 미래를 같이 내다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컨트롤타워 없는 조직의 위기관리는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채 각자 움직이는 거대한 문어를 상상하게 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철학적 이야기가 위기관리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위기 시에는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곧 존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더 옳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