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실무자 조언

  • 위기 시 왜 언론과 싸우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위기관리 때마다 자괴감이 들어 조언을 구합니다. 위기가 발생하면 회사는 그 상황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저희 회사는 위기관리를 한다면서 매번 여러 언론들과 싸웁니다. 이게 정상은 아닌 거죠?”

    컨설턴트의 답변

    맞습니다. 그런 기업의 경우들이 흔해 보이지만, 정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자괴감이 정상적인 감각입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를 몸이 먼저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근본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언론은 왜 개입하고, 왜 그렇게 관심을 가질까요? 언론은 공중을 대신해 묻는 존재입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회사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대신 물어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언론이 지적하는 핵심들을 잘 들여다보면, 거기에 문제 해결의 방향이 담겨 있습니다.

    위기관리는 기업의 선의(善意)의 행위를 전제로 진행됩니다. 잘못을 바로잡고 피해를 회복시키겠다는 선의 말입니다. 그 전제 위에 선 기업에게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과 지적은, 아프긴 해도 결국 해법으로 연결되는 조언과 같습니다. 무엇부터 고쳐야 할지를 짚어 주는 셈이니까요. 물론 일부 오보도 있고, 회사와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바로 커뮤니케이션 관리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사실을 바로잡고 맥락을 설명하는 것, 그것은 싸움이 아니라 소통이지요.

    그런데도 언론과 싸우는 것을 곧 위기관리라고 여긴다면, 그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앞서 말씀드린 전제, 곧 ‘우리는 선의의 행위자’라는 전제부터 의심해 봐야 합니다.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과 지적이 그토록 아플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통스러운 극심한 자극으로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까지 듭니다. ‘저들만 조용히 해 주면 아무 일도 없을 텐데.’ 문제를 해결할 생각보다, 문제를 말하는 입을 막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상태입니다.

    위기 시 언론과 싸우면 안 됩니다. 그런 위기관리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싸우는 동안 정작 위기의 원인은 방치되고, 피해자는 뒷전이 되며, 기사는 오히려 늘어납니다. 성공적인 기업은 위기 시 언론과 싸우지 않습니다. 언론과 함께, 위기와 싸웁니다. 언론의 질문을 상황 파악의 도구로 삼고, 언론의 지적을 개선의 목록으로 삼으면서 말이지요. 싸움의 상대를 잘못 고르는 순간, 위기관리는 방향을 잃습니다.

    만약 위기 때마다 언론과 싸우는 일이 반복되는 회사가 있다면, 이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언론이나 바깥 상황을 살피기 전에, 회사의 내면과 위기의 실제 원인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는 위기에 대한 언론 보도를 그토록 싫어하는가. 왜 우리는 지적을 받으면 고치는 대신 화를 내는가. 왜 우리의 위기는 비슷한 모습으로 되풀이되는가. 문제의 뿌리는 언론이 아니라 거기에 있습니다. 언론과의 싸움은 그 뿌리를 가리는 연막일 뿐이지요.

    임원께서 자괴감이 드셨다는 것은, 그 뿌리를 마주할 준비가 되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감각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기서부터 회사의 위기관리는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

  • 살아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살아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은 조직 구성원이 그 내용을 알고 있고, 정기적으로 고쳐지고 있으며, 훈련·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제로 검증되고 있는 매뉴얼을 말합니다. 문서의 두께나 완성도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매뉴얼이 작동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보유와 활용은 다릅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없어도 문제고 있어도 문제인 계륵 같은 존재입니다. 없는 상태에서 위기가 터지면 매뉴얼도 없이 대응했다는 비판이 따라옵니다. 있는 상태에서 위기가 터지면 매뉴얼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거나 매뉴얼이 낡아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따라옵니다.

    여기서 보유라는 말에 주목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보유가 곧 활용이나 참고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홍보실을 포함해 유관 부서를 통틀어 매뉴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위기관리 매뉴얼의 유효 기간은 제작 후 딱 여섯 달뿐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위기가 터진 뒤에야 매뉴얼을 펼치기 시작하는 것은, 비행기가 추락하는 중에 기장이 매뉴얼을 처음 여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언제나 누가입니다

    준비의 중심은 무엇이 아닙니다. 누가와 어떻게입니다. 매뉴얼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목은 늘 누가입니다.

    위기관리를 준비하자고 하면 곧바로 팀을 짜자, 매뉴얼을 만들자, 훈련·시뮬레이션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부 무엇에 대한 논의입니다. 그러다 예산 앞에서 막힙니다. 순서를 바꾸어야 합니다. 누가 판단하고 누가 실행하는지가 정해지면 무엇은 그 뒤에 자연히 따라옵니다.

    결국 위기관리는 매뉴얼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합니다. 위기관리에 실패한 사례를 들여다보면 매뉴얼 자체보다 그것을 관리하고 개선하는 사람이 더 근본적인 문제였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현실성은 문장이 아니라 자원에서 나옵니다

    매뉴얼이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현실성이 무엇인지는 잘 정의되지 않습니다.

    매뉴얼이 반영해야 할 현실성은 실행에 쓸 수 있는 유무형 자산과 관련된 것입니다. 예산, 인력, 장비, 설비, 협력 체계입니다. 고층 건물 화재에 고가 사다리와 헬리콥터를 쓰라고 적어 두었는데 그것을 가진 조직이 없다면, 그 매뉴얼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매뉴얼에 위기 시 특정 공간을 확보하고 설비를 갖춘다고 적고 그 책임을 총무팀으로 지정했다고 해 보십시오. 소집 명령 뒤 한두 시간 안에 모든 설비를 갖추라는 구절을 읽은 총무팀장의 첫 반응은 정해져 있습니다. 예산은, 누가, 어떻게입니다. 이 질문에 답이 없으면 그 조항은 문장으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반면 위기 국면의 판단이 현실적인가 아닌가는 상황에 따라 갈리는 문제입니다. 그것까지 매뉴얼에 적어 넣으려 하면 분량만 늘고 실효는 없습니다.

    업데이트는 문서 작업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업데이트되지 않은 매뉴얼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무자 입장에서 업데이트는 고역입니다. 직제 개편은 수시로 일어나고 담당자는 계속 바뀝니다. 새로 온 사람은 매뉴얼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리 책임이 있는 임원도 점차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 매뉴얼은 생명력을 잃습니다. 몇 달 뒤에 다시 들춰 보면 고서적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알려지지 않은 것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뉴얼의 내용을 구성원에게 알리고, 이해시키고, 피드백을 받아 고치는 일이 쌓일 때 매뉴얼은 조직 안에서 생명력을 얻습니다. 매뉴얼을 살리는 방법은 결국 끊임없는 내부 커뮤니케이션뿐입니다.

    훈련·시뮬레이션이 매뉴얼을 고칩니다

    훈련·시뮬레이션은 두 개의 사업이 아니라 하나의 묶음입니다. 실무에서 따로 떨어져 굴러가는 법이 없습니다.

    둘은 검증하는 대상이 다릅니다. 훈련은 사람의 역량을 봅니다. 대변인이 질문 앞에서 어떻게 답하는지, 실무자가 초기 정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확인합니다. 시뮬레이션은 체계의 작동을 봅니다. 보고가 제시간에 올라가는지, 소집이 실제로 되는지, 결정이 어디서 막히는지를 확인합니다.

    한쪽만 하면 반쪽이 됩니다. 훈련만 하면 사람은 늘었는데 그 사람이 설 자리가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뮬레이션만 하면 체계는 그려졌는데 그 자리에 설 사람이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둘은 처음부터 하나의 팩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매뉴얼의 결함은 책상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대응 단계 구분이 애매하다거나 지휘 체계가 겹친다는 문제는 위기 국면에 처음 드러나서는 안 됩니다. 평시 훈련·시뮬레이션에서 드러나고 고쳐져야 합니다.

    위기 국면에 치명적 결함이 드러났다면, 그것은 매뉴얼을 잘못 썼기 때문이 아니라 훈련·시뮬레이션을 통해 고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뉴얼과 훈련·시뮬레이션은 별개가 아닙니다. 훈련·시뮬레이션은 매뉴얼을 검증하는 절차이고, 매뉴얼은 그 대본이 아니라 훈련·시뮬레이션이 고쳐 나가는 대상입니다. 이 순환이 돌지 않는 조직에서 매뉴얼은 캐비닛 안의 문서로 남습니다.

    죽은 매뉴얼과 살아 있는 매뉴얼

    구분죽은 매뉴얼살아 있는 매뉴얼
    인지존재를 아는 사람이 소수관련자 모두가 자기 역할을 알고 있음
    기준무엇을 할지가 먼저 적혀 있음누가 판단하고 누가 실행할지가 먼저 정해져 있음
    현실성가진 적 없는 자원을 전제함예산·인력·장비·협력 체계로 뒷받침됨
    갱신인사이동과 직제 개편이 반영되지 않음정기 점검 주기와 담당이 정해져 있음
    검증위기 때 처음 펼쳐짐훈련·시뮬레이션에서 결함이 드러나고 고쳐짐
    소통만든 부서만 알고 있음알리고 이해시키고 피드백을 받음
    표. 죽은 매뉴얼과 살아 있는 매뉴얼 — 스트래티지샐러드

    우리 매뉴얼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법

    첫째, 위기관리 책임자와 실무자에게 매뉴얼에서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문서를 찾아봐야 답할 수 있다면 그 매뉴얼은 아직 살아 있지 않습니다.

    둘째, 마지막 개정일을 확인하십시오. 그 이후에 있었던 인사이동과 직제 개편이 반영되어 있는지 함께 보십시오.

    셋째, 지난 일 년간 매뉴얼을 놓고 훈련·시뮬레이션을 한 적이 있는지, 그 결과로 매뉴얼이 실제로 고쳐졌는지 확인하십시오. 훈련·시뮬레이션은 했는데 매뉴얼이 그대로라면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넷째, 매뉴얼이 지정한 책임 부서에 필요한 예산과 자원이 실제로 배정되어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이 네 가지에 답하지 못하는 매뉴얼은 보유하고 있을 뿐 작동하지는 않는 문서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매뉴얼의 정의와 구성입니다.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이란 무엇인가: 매뉴얼을 검증하는 훈련·시뮬레이션입니다.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무엇인가: 훈련·시뮬레이션에서 사람의 역량을 다루는 쪽입니다.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 위기관리위원회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위원회는 위기 상황에서 회사의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기구입니다. 실행 조직이 아니라 결정 조직이며, 위기의 심각성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을 때 가동됩니다. 모든 위기에 위원회가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 대응 조직은 단계로 나뉩니다

    잘 설계된 위기관리 체계는 대응 조직을 하나로 두지 않습니다. 심각성에 따라 가동되는 조직이 달라지고, 조직마다 책임자와 권한이 다릅니다.

    가장 아래에는 상황을 처음 감지한 부서와 그 사안에 가장 관여도가 높은 주관부서가 있습니다. 사안이 커지면 실무대응그룹(위기관리팀)이 소집됩니다. 주관부서를 중심으로 유관부서와 홍보, 법무 등 실행팀이 합류하고, 필요하면 외부 자문이 참여해 초기 대응과 상황 관리를 총괄합니다.

    사안이 더 커지면 위기관리위원회가 열립니다. 사업부문장 또는 최고경영자가 위원장을 맡고, 사업부문장 그룹과 실무대응그룹이 함께 들어옵니다. 물리적으로 모이는 공간이 위기관리센터(워룸)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작은 사안에 최고경영자가 매번 소집되면 조직은 지치고, 큰 사안에 실무자만 남으면 결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누가 들어가야 합니까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야 합니다. 보고할 사람이 아니라 결정할 사람입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확인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한다면 그 위원회는 기능하지 않습니다.

    위원장이 자리를 비울 경우를 대비한 대행 순서도 미리 정해 두어야 합니다. 위기는 위원장의 일정에 맞춰 발생하지 않습니다. 대행 원칙이 없는 조직은 위원장이 출장 중이라는 이유로 반나절을 흘려보냅니다.

    규모는 작을수록 좋습니다. 참석자가 늘어날수록 결정 속도는 느려지고 정보 유출 위험은 커집니다.

    결정과 실행을 나누는 이유

    위기 상황에서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방향을 정하는 일과 정해진 방향을 실행하는 일입니다. 이 둘을 같은 사람들이 하면 어느 쪽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위원회는 방향을 정합니다.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보류할지, 누가 대변인이 될지, 어느 이해관계자를 먼저 다룰지를 결정합니다. 실행은 실무대응그룹과 각 부서가 맡습니다.

    결정과 실행이 분리되면 위원회는 상황 변화에 따라 방향을 조정할 여유를 갖습니다. 실행에 매몰된 조직은 방향이 틀렸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위원회가 작동하지 않는 조건

    첫째, 소집 기준이 없는 경우입니다. 어느 정도 사안이면 위원회를 여는지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열어야 할 때 열리지 않고 열지 않아도 될 때 열립니다.

    둘째, 최종 결정자가 빠진 경우입니다. 위원회에서 합의한 내용이 나중에 뒤집히면 이후의 모든 논의가 무의미해집니다.

    셋째, 전문가에게 결정을 미루는 경우입니다. 법무, 홍보, 외부 자문이 각자의 관점에서 조언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 조언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위원회의 일입니다. 전문가들끼리 합의하도록 맡겨 두면 결정은 나오지 않습니다.

    넷째, 평시에 한 번도 모이지 않은 경우입니다. 잘 운영되는 위원회는 위기가 없을 때도 정기적으로 만나 위기 요소를 점검하고 대비 상태를 확인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위원회의 근거가 되는 문서입니다.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이란 무엇인가: 위원회가 실제로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위기 시 이해관계자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하는가: 위원회가 내리는 첫 판단입니다.
    CEO 위기관리 가이드 50

  • 합의하라고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여러 유명 연예인의 스캔들을 보며, 저희 회사 소속 연예인들과 관련해서도 예상 못한 스캔들 발생시 대응 전략과 방안을 미리 마련해 놓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로펌이나 위기관리 자문 펌에서도 공히 상대측과의 조기 합의를 가장 우선순위로 조언하더군요. 무조건 합의하는 게 맞는 걸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미리 대비하시겠다는 접근이 훌륭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자문사들의 조언이 맞습니다. 다만 ‘무조건’이라서 맞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조언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논리가 있어서 맞는 것입니다. 그 논리를 순서대로 짚어 보지요.

    먼저, 위기관리에서는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한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스캔들이 터진 순간 언론의 보도, 대중의 분노, 온라인의 확산은 이미 통제 밖입니다. 그 국면에서 당사자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하나입니다. 상대방과의 관계, 곧 합의입니다. 통제 불가능한 여론과 싸우는 데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유일한 영역에 집중하는 것. 위기관리의 기본 원칙이지요.

    다음으로, 위기관리의 목적과 목표를 정확히 정해야 합니다. 이런 유형의 스캔들 대응에서 해당 연예인이 유일하게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연예계 생활의 지속가능성 확보’입니다. 억울함의 해소도, 진실 공방의 승리도, 여론전의 승리도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소송에서 이기고 연예계를 떠나게 된다면, 그 위기관리는 실패한 것이죠. 목적이 이렇게 정해지면 모든 판단의 기준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이 선택이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되는가?’

    그 기준 위에서 전략의 저울을 재 보십시오. 조기 합의해서 잃을 손실과, 하지 않아서 잃을 손실을 각각 확정해 보는 것입니다. 합의의 손실은 대개 돈과 자존심으로, 규모가 예측됩니다. 반면 합의 없이 공방이 길어질 때의 손실은 예측조차 되지 않습니다. 보도가 이어지는 하루하루가 이미지의 손실이고, 광고와 작품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이 실제 손실인 거죠.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는 자명합니다. 최악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그 저울 위에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간혹 이런 걱정으로 조기 합의를 주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합의해 주면,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유사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이런 생각을 하는 연예인이라면 이후에도 지속가능성 확보는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유사 문제 제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은, 곧 유사한 문제가 더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합의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관리의 문제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합의는 ‘조기’ 합의만 유효합니다. 여론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뒤의 중간 합의, 모든 것이 소진된 뒤의 최종 합의는 상대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잃을 것을 다 잃은 뒤의 합의는 대부분 목적 달성, 즉 지속가능성 확보에 유효하게 이바지하지 못합니다. 같은 값을 치르고도 초기의 합의는 위기를 봉합하지만, 늦은 합의는 봉합할 것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요.

    합의하십시오. 최대한 빨리 하십시오. 그 대응만이 통제 가능한 유일한 지점에서, 유일한 목적을 위해, 저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논리를 조직과 소속 연예인들이 평시에 공유해 두는 것, 그것이 지금 준비하실 대응 전략의 핵심일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

  • 왜 불완전한 사과도 효과가 있을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더피알=정용민|최근 기업 위기 현장에서 묘한 장면이 반복된다. 한참 늦었고, 표현도 군데군데 부적절하고, 책임 인정과 재발 방지 약속마저 어딘가 허전한 사과가, 그럼에도 논란을 비교적 빠르게 가라앉히는 장면이다. 원칙대로라면 불완전한 사과는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자꾸 어긋난다. 이런 장면을 몇 번 목격한 실무자들은 이내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이런 의문은 최근 상황에서 당연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위험하다. 한 발만 더 나가면 “어차피 운과 분위기가 좌우한다면 사과는 적당히 형식만 갖춘 통과의례 아닌가”라는 냉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실무자가 이미 사과를 그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냉소는 한 가지 결정적인 구분을 놓친 데서 비롯된다. 바로 ‘불완전한 사과’에도 전혀 다른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불완전한 사과는 겉으로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열어 보면 두 종류로 갈린다. 하나는 ‘구겨진 상자’다. 겉면이 찌그러지고 모양이 빠졌을 뿐, 그 안에는 책임 인정과 진심, 구체적인 시정이라는 알맹이가 멀쩡하게 들어 있는 사과다. 말이 좀 거칠었고, 타이밍이 늦었고, 전달이 어설펐던 정도다. 사람들은 구겨진 겉상자는 너그럽게 용서한다. 상자의 값어치는 겉모양이 아니라 그 안의 내용물에서 나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사과가 통하는 것은 당연하다. 완벽하진 않아도 제 몫은 하는, 이른바 ‘그럭저럭 괜찮은(good-enough) 사과’다. 우리가 ‘불완전한데도 효과가 있었다’고 말하는 사례의 상당수가, 실은 겉만 구겨졌을 뿐 알맹이는 온전했던 이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빈 상자’다. 겉포장은 번드르르하고 리본까지 묶였는데, 막상 열어 보면 비어 있다. 책임은 슬그머니 회피하고, 가해자의 해명과 자존심이 사과보다 앞서며, 시정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려진다. 알맹이가 없는 사과다. 원칙대로라면 이런 사과는 절대 통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가끔 논란이 가라앉는다. 바로 여기서 실무자의 착시가 시작된다. 빈 상자를 건넸는데 상대가 화를 풀었으니, ‘빈 상자도 괜찮구나’라고 잘못 배우는 것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모든 오해의 뿌리다. 그래서 현장 실무자들이 사과에 대해 흔히 품는 일곱 가지 오해를, 이 구분을 기준으로 하나씩 짚어 보고자 한다.

    “사과문 한 장 잘 내면 기사도 줄고 댓글도 식는다. 결국 사과란 이 소란을 멈추는 일 아닌가?”

    사과를 불 끄는 소화기로만 본다. 그러나 불에는 두 종류가 있다. 활활 타오르는 겉불과, 그 아래 숯처럼 남아 오래 가는 속불이다. 어설픈 사과로도 겉불, 즉 기사와 댓글의 불길은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속불이다. 훼손된 신뢰라는 속불은 겉이 잠잠해진 뒤에도 재 속에서 빨갛게 살아 있다. 소화기로 겉불만 끄고 ‘불 껐다’며 돌아서는 기업은, 며칠 뒤 같은 자리에서 다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사과의 진짜 임무는 겉불 진화가 아니라 속불 진화다.

    “지난번 그 회사도 사과는 엉망이었는데 결국 잠잠해졌잖아. 사과의 완성도가 그렇게 중요한가?”

    가장 위험한 오해다. 빈 상자를 건넸는데도 상황이 잠잠해졌다면, 그것은 사과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운’이 대신 해 준 것이다. 시간이 흘렀거나, 더 큰 뉴스가 터졌거나, 충성 고객이 많았거나, 회사가 워낙 커서 버틸 체력이 있었을 뿐이다. 이는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나갔는데 마침 처마 밑으로만 걸어 비를 피했다고 해서, ‘우산은 필요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격이다.

    게다가 사과는 운 옆에 가만히 앉은 들러리가 아니다. 제대로 된 사과는 그 운을 직접 만들어낸다. 좋은 사과는 언론이 기사를 거두게 하고, 충성 고객을 붙들며, 비판자에게 빌미를 주지 않는다. 반대로 빈 상자 사과는 스스로 악운을 부른다. 사과 자체가 또 다른 기삿거리가 되고, 조롱의 소재가 되며, 비판자에게 새 탄약을 쥐여 준다. 빈 상자가 통했다면 운이 좋았던 것이고, 구겨진 상자가 통했다면 그 안의 알맹이가 운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타이밍을 잘 잡아 그럴듯하게 연출해서 한 방에 터뜨리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빈 상자를 화려한 포장으로 덮으려는 발상이다. 그러나 연출된 사과는 잠깐의 침묵은 살 수 있어도 신뢰는 사지 못한다. 요즘 대중은 사과의 무대 조명을 보면서 그 뒤의 계산까지 함께 읽는다. 공들인 연출일수록, 그 속내가 들통나는 순간의 역풍은 더 사납다. 사과는 남을 향해 쏘아 올리는 한 발의 폭죽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회사인가’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선언문이다. 폭죽은 터지는 순간 가장 화려하고, 곧바로 차갑게 식는다.

    “사과문을 더 절절하게, 눈물 한 방울 쏙 빠지게 다듬자.”

    진정성은 문장을 다듬어 짜낸다고 생기지 않는다. 진정성은 말이 아니라, 그 말 앞에 놓인 행동에서 새어 나온다. 피해를 실제로 복구했는지, 보상이 구체적인지, 재발을 막을 조치가 손에 잡히는지가 먼저다. 옳은 행동이 9할이고 그에 대한 말은 1할이다. 행동이라는 9할을 비운 채 말이라는 1할만 화려하게 꾸미는 사과는, 알맹이 없이 리본만 예쁜 빈 상자일 뿐이다. 사과문의 미사여구를 손보기 전에, 보상안의 빈칸부터 채워야 한다.

    “급할 것 없다. 충분히 검토하고 완벽하게 다듬어서 내보내자.”

    지연된 사과가 그럭저럭 넘어간 사례를 보고 타이밍을 사소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과에서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가 또렷한 메시지다. 사과가 늦어진 만큼 사람들은 ‘버티다가 떠밀렸구나’, ‘계산하느라 늦었구나’라고 읽는다. 식어 버린 음식은 원래 맛과 다르다. 늦었는데도 통한 듯 보였다면, 그건 식은 음식을 손님이 배가 고파 그냥 먹어 준 것일 뿐이다. 적시성은 사과의 곁가지가 아니라 재료의 일부다.

    “우리가 이만큼 고개를 숙였으면 됐지, 뭘 더 바라나?”

    완전한 사과와 빈 상자를 가르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누구를 바라보는가’이다. 제대로 된 사과는 상처받은 상대를 바라본다. 그가 무엇에 아팠고 무엇을 듣고 싶은지에서 출발한다. 빈 상자 사과는 거울을 바라본다. ‘사과하는 나’의 입장, 억울함, 체면이 한가운데 놓인다. 최고의사결정자의 개인적 속내나 서운함이 사과문에 끼어드는 순간,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두 번째 상처가 된다. 사과라는 선물의 주인은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다.

    “책임을 인정하면 소송에서 불리하다. 표현은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가자.”

    빈 상자가 만들어지는 가장 흔한 통로가 바로 이 법적 방어 논리다. 법적 위험을 챙기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책임을 요리조리 피한 모호한 사과는 받는 사람에게 ‘사과가 아니라 변명’으로 읽히고, 줄이려던 여론의 불길을 오히려 키운다. 법정에서 한방으로 이기려다 광장에서 열방을 먼저 얻어 맞는 셈이다. 법무의 방패와 평판의 회복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손에 함께 쥐고 균형을 잡아야 할 두 개의 공이다.

    결국 사과의 값어치는 날씨에 비유하면 분명해진다. 날씨는 못 바꿔도 외투는 챙길 수 있다. 햇볕이 좋았다고, 폭풍이 너무 거셌다고 외투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똑같은 날씨라면 외투를 챙긴 쪽이 늘 덜 고생한다. 사과는 위기라는 궂은 날씨 속에서 기업이 챙길 수 있는 유일한 외투다.

    그래서 사과는 보험을 닮았다. 우리는 보험의 가치를 ‘어차피 올해 집에 불 안 났잖아’로 따지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빈 상자로도 한 번은 넘어간다. 그러나 운이 나쁜 날을 대비하는 것, 그것이 사과가 존재하는 이유다.

    불완전한 사과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실패’가 아니다. 빈 상자가 운 좋게 통해 버리는 ‘성공’이다. 그 한 번의 요행이 조직에 가장 나쁜 교훈을 새기기 때문이다. “사과는 알맹이 없이 겉만 그럴듯하면 된다, 나머지는 분위기가 해결해 준다.” 이 학습이 쌓이면, 기업은 위기에서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능력, 곧 ‘제대로 사과하는 힘’을 스스로 녹슬게 만든다. 그렇게 능력이 텅 빈 자리에 정작 운 나쁜 위기가 찾아오는 날, 기업의 손에는 운도 사과도 없이 빈 상자 하나만 남는다.

    게다가 빈 상자 사과가 남긴 신뢰의 빈자리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외상값처럼 장부에 차곡차곡 적힌다. 그리고 다음 위기 때 ‘그때도 그러더니’라는 이자까지 얹어 한꺼번에 청구된다. 빈 상자로 불을 껐다고 믿는 기업은, 실은 불을 끈 것이 아니라 다음 화재의 불씨를 곳간에 쌓아 둔 것이다. 불완전한 사과가 통한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이, 기업이 가장 비싼 청구서에 외상으로 서명하는 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오른손이 하는 일을 몰랐는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외부에서는 어떻게 홍보실이 그런 문제를 만드는 것을 회사가 모를 수 있냐 하지만, 실제 내부는 각 부서 일 하나 하나가 세세히 공유되거나, 허가 받는 체계가 아닙니다. 당연히 윗분들이 사전에 모를 수 있는 부분이 생기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른다는 비판은 좀 너무 한 거 같습니다.”

    컨설턴트의 답변

    물론 실무 현장에서 부서 간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회사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른다’는 비판을 받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서로가 서로의 업무 정보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의 전략적 일관성이 무너졌다고 보기 때문일 겁니다.

    홍보실을 포함한 특정 부서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 부서의 기저에는 두 가지 심리적 기제가 작동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고경영진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반대로 ‘이 정도는 윗분들도 원하실 것’이라며 과잉 판단하는 것이지요. 해당 부서가 이 두 판단 기준 이외에 부서 자체의 이익만을 위해 그런 행위를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치명적인 문제는 해당 부서가 문제성 행동을 하면서도 ‘우리 내부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확신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기업이 내외부로 공표하고 있는 핵심 가치와 우선순위가 실무자들의 판단 기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이지요.

    이것이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경영 거버넌스의 품질’ 문제입니다. 평시에 자율성과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방치’와 ‘방목’이 허용될 때, 조직의 경영 품질은 서서히 잠식됩니다. 위기관리 관점에서도 경영진이 부정적 위기나 이슈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외면하는 태도가 실무자들에게 전달되면, 그들은 이를 ‘무한 자율성’으로 오해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전략적 정렬과 통제력 없는 자율성은 기업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시한폭탄이 됩니다.

    이러한 거버넌스의 품질 저하는 모든 위기 상황에서 곧바로 ‘소통 강박’이라는 병리적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평소 경영진의 의도와 전략적 일관성이 실무자들에게 체화되지 않았기에, 막상 사고가 터지면 경영진은 “내 뜻은 그게 아니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회사는 강박적으로 메시지를 과도하게 쏟아내며 반복 해명에 매달리게 됩니다. 혹은 반대로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하지요. 이 모든 혼란은 결국 평시 경영 거버넌스가 실무의 판단 기준을 제대로 세워주지 못한 데서 기인한 조직의 오작동 현상입니다.

    따라서 경영진께서는 그러한 유형의 위기 발생 시 단순히 “몰랐다”는 소통보다는 왜 우리 조직의 ‘자기 통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율성이라는 이름의 포장지를 걷어내고, 경영진의 전략적 의도가 실무 말단까지 제대로 흐를 수 있는 ‘전략적 정렬’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거버넌스의 품질은 단순히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의 확고한 위기 관리 의지가 실무자의 일상적인 판단 기준이 되도록 만드는 끊임없는 정렬의 과정으로만 강화됩니다. 오른손이건 왼손이건 최상부 뇌(腦)의 의지대로 정확히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병증일 뿐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위기관리에도 크리에이티브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는 크리에이티브 사업을 하고 있으며, 평시에도 기발한 마케팅 활동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저희가 볼 때 기존 기업들의 이슈나 위기관리 방식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좀 더 크리에이티브 한 전략에 기반한 대응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일단 말씀하시는 크리에이티브(창조적 대응)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어떤 방식까지 고민 중이신지 확인하기 어려워 정확한 조언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단, 제 생각에 이런 고민은 어느 한쪽이 옳다 혹은 그르다의 이분법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성격이라고 봅니다. 또한 기존 기업들의 위기관리 방식이 효과가 없다고 볼 수도 없으며, 반대로 귀사의 방식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아직은 이른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발생한 이슈나 위기의 성격일 것입니다.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어떤 원인과 형태로 발생해 확산되었는지를 잘 판단해야 대응 기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반 맥락에 따라 전략이 세워지는 것이지, 무조건 크리에이티브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전제를 두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이슈나 위기 자체가 기본적으로 상당한 부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수적인 대응과 창조적인 대응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최고의사결정자의 권한입니다. 관리 활동 전반에 책임을 져야 하는 리더가 판단한 상황에 기반해 대응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적으로 어떤 방향이 맞고 틀린지를 분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임상적으로 확실한 점은 기존 기업들의 크리에이티브 한 대응 방식이 현장에서 과연 효과적이었는가 하는 평가입니다. 생각보다 그런 방식은 오히려 부정적인 주목만 증폭시키거나, 운이 좋은 경우라도 불필요한 화제만 낳았을 뿐 관리 효과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케이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대개 보수적인 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과 신생 기업에서 젊은 경영자 개인의 판단에 의해 실행되곤 했습니다.

    기업의 연력과 규모, 의사결정 구조와 리더의 성향이 주요 변수였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젊은 경영자의 시각에서는 기존 기업들이 매번 고개 숙여 사과하고, 저자세로 일관하며, 합리적 수준을 넘어서는 보상을 하는 모습이 고리타분하고 답답해 보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에 대한 대안이 곧 크리에이티브라고 쉽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자사에서 발생 가능한 위기의 성격과 형태에 대해 보다 깊고 넓게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기 발생 시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세심히 살펴야 합니다. 대응 방식에 대한 판단은 그 이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심지어 광고대행사 대표님들께도 위기 때는 크리에이티브를 잠시 내려놓으시라고 조언하곤 합니다. 이는 크리에이티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슈와 위기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사과문을 꽤 잘 썼네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최근 사회적 관심의 중심에 있는 한 기업 대표가 발표한 사과문을 보았습니다. 사과의 이유, 공감, 해법, 개선책 등 사과문의 정석을 보는 듯했습니다. 사과문이 이렇게 제대로 만들어져 발표되었으니, 이제 어느 정도 위기관리가 마무리 수준에 들었다고 보아도 되겠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기업 위기관리에서 가장 흔히 오해되는 주제가, ‘사과가 곧 위기관리’라는 개념입니다. 이런 단순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추측하는 것은 이전 여러 기업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려 하고, 사과문을 발표해도 그 품질이나 구성이 확연하게 떨어졌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이유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 사람들이 그런 기업을 목격해 오다가, 어느새 부터 신속하게 먼저 사과하고, 멋지게 사과문을 만들어 발표하는 곳들이 나타나자 ‘사과’가 곧 위기관리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기업의 사과 커뮤니케이션을 인간 개인의 사과 커뮤니케이션과 동질의 것으로 보면서, 인간적 사과를 기업의 사과 형식에 그대로 대입하려 해서 그런 생각이 만들어지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주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인간 개인의 사과와 기업의 사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주제입니다.

    인간 개인이 하는 사과와 기업이 ‘해야만’ 하는 사과는 고민의 차원이 다릅니다. 앞의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당위나 윤리에 기반한다면, 뒤의 것은 실익과 전략에 상당부분 기반합니다. 기업의 위기관리가 전략적이며 정치적 행위라는 이유가 그 기반 때문입니다. 무리하게 인간적 사과와 기업의 사과를 혼동하면 여러 추가적 문제가 생길 뿐입니다.

    다시 질문에서 언급된 잘 쓰여진 사과문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제대로 된 사과문은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업에게는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기업이 사과문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지요. 핵심은 제대로 된 사과문이 당면해 있는 위기상황을 사과자의 의도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과라는 커뮤니케이션만으로 해결될 상황인 것이냐는 확인도 필요합니다.

    성공적인 위기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행동(상황관리)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여러 행동에 대해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해 사과문 같은 커뮤니케이션 관리가 따르는 것이죠. 제대로 된 행동, 대응, 상황관리를 계란의 노른자로 비유한다면, 그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관리는 계란의 흰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른자 없이 흰자만 있는 계란? 반대로 노른자만 있고 흰자가 없는 계란? 이 둘 중 어느 것이 좋은 계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제대로 된 사과문은 제대로 된 초기 행동을 통한 상황관리와 ‘함께’ 할 때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사과문이 곧 위기관리라는 생각은 그래서 잘 못이라는 것이죠.

    기업이 사과문을 잘 써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특히나 AI가 발달하면서 “세상에는 멍청함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과문 같이 당연함과 일반성이 곧 우수성으로 보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사과문이 제대로 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이후 상황이 어떻게 관리되어 가는가에 따라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창하게 흰자만 꽉 차 있는 계란인지, 노른자와 흰자가 함께 들어 있는 계란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관련 개념 · 위기 시 사과문은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Problem solver? Problem maker?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최근 저희와 관계 있는 한 회사의 위기관리를 전사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언론이나 국회나 여러 핵심인사들이 공통적 위기대응 방식을 조언하고 있는데요. 그 회사는 그것을 충분히 알 것 같은데, 결코 그 방식을 따르지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유가 무얼 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기업의 위기 시 언론이나 국회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제시하는 공통된 해법을 해당 기업이 외면하는 모습에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많습니다. 외부 시선에서는 해답이 명확해 보이는데, 왜 당사자인 기업은 그 길을 택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현장의 실상은 일반적인 추측과는 사뭇 다릅니다.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주체는 사실 무엇이 정답인지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해답을 인지하는 것과 이를 실제 실행으로 옮기는 것 사이의 거대한 간극에서 발생됩니다.

    흔히 제3자들은 위기 주체가 상황의 엄중함을 모르거나 해법을 찾지 못해 방황한다고 생각하여 반복적인 조언을 건네곤 합니다. 하지만 기업은 외부 우려보다 훨씬 민감하게 움직입니다. 기사 속의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의 뉘앙스에도 일희일비하며 대응책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명해 보이는 해답이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그 해법 자체가 자신들이 실행하기 원하는 방향이나 유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위기관리 현장에서 목격한 바에 따르면, 기업들은 위기 시 ‘어떻게(How)’라는 방법론적 해답을 찾기보다, 철저히 자신의 ‘호오(好惡, Like or Dislike)’에 기반하여 대안을 쇼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전략이라 할지라도, 의사결정권자가 ‘하기 싫은(Dislike)’ 방식이라면 그것은 결코 선택되지 않습니다. 일단 리더가 ‘하고 싶다(Like)’는 의지를 가져야만 비로소 그 다음 단계인 ‘어떻게’를 논의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기조를 거스르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내부의 위기관리팀은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전략적 조언과 설득이 무력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위기관리의 격언 중 “리더는 문제 해결자(Problem Solver)가 되어야지, 문제 유발자(Problem Maker)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위기의 파고 속에서 리더는 조직을 구하는 구원자(Life Saver)로서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의 많은 리더는 문제 해결의 책임을 하부 조직에 위임한 채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임직원들에게 신속한 수습을 주문하며 절치부심(切齒腐心)을 요구하지만, 리더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실무진이 내놓는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미봉이나 모면에 그칠 뿐입니다.

    진정한 위기관리의 성패는 결국 리더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리더가 스스로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 자신이 ‘하기 싫은 해답’이라 할지라도 이를 수용하고 실행하는 결단을 내릴 때 비로소 위기는 수습의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위기관리란 단순히 기술적인 대응의 영역이 아니라, 리더가 자신의 책임을 대면하고 ‘옳은 선택’을 실행에 옮기는 결단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증세와 병의 관계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에는 가끔씩 유사한 이슈가 연이어 발생합니다.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정말 유사한 형태의 문제가 반복해서 불거지는 거죠. 그때 그때 대응하다 보니, 이제는 아주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이슈관리를 잘하고 있는 건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일단 반복 경험을 통해 대응에 관련한 개선점을 찾고, 이를 반복 실행해 대응 수준과 품질을 높이신다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것 자체를 가지고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까지 평가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입니다. 대응을 잘하시는 것이죠.

    궁금한 것은, 왜 그런 유사 이슈가 반복해 발생하는가? 입니다. 그 이슈 발생을 원천 차단하거나 방지할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과제의 핵심은 그 부분인데, 그것을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할 상황이기 때문에 일단 발생 후 대응에만 전력을 다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상당히 많은 기업이 그와 유사한 생각과 실행을 하고 있습니다. 알기 쉬운 환자의 비유를 하자면, 자신에게 특정한 병적 증상이 반복되는데, 그 증상을 완화하거나 제거하는 약품이나 시술을 해 해당 증상을 그때 그때 사라지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증상은 병과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증상을 병과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유사한 증상이 반복된다면, 그 뿌리에는 무언가 큰 병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훌륭한 의사라면, 왜 그런 유사 증상이 반복되는지에 대해 좀더 심도 있는 진단을 시도하겠지요. 그 원인을 못 찾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증상에 대한 대응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럴 때도 그 근원인 병은 사라지지 않지요.

    진단을 통해 병에 대해 일부나 상당부분을 확인하게 되면, 그 의사는 그 병에 대한 근본적 치료를 권장할 것입니다. 그 병을 그대로 놓아두고, 증상만 반복 관리한다 해서 나아질 것은 없을 테니까요. 어떤 경우에는 그렇게 증상 관리만 반복해도 근원적인 병은 악화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증상관리에만 신경 쓰는 동안, 근원적인 병이 계속 악화되는 경우지요. 기업의 위기관리나 이슈관리에 있어서는 두번째 케이스들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공중이 특정 기업의 대형 부정 이슈나 위기 케이스를 목격하게 된 상황이라면, 그렇게 된 이유의 역사와 뿌리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 스스로 우연하거나, 예상하지도 못했거나, 생소해서 원인을 찾지 못할 부정 이슈나 위기란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슈나 위기관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습의 주제도 아니지요) 위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업 내부에서는 그런 부정 이슈나 위기의 원인을 파악은 하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증상에 대한 대응에만 집중할 뿐입니다. 증상에 대한 대응이 기업에게 유일한 대응방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여러 증상에 신속하게 잘 대응하는 기업을 두고 ‘위기관리를 잘한다’는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증상에 대한 ‘대응’만 잘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수면하에서 근본적인 병은 그대로 거나, 오히려 악화되어가는 것이고요. 상식적으로나 합리적으로 보면 위험한 병을 그대로 놓아두고 하염없이 증상만 없애는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있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참 많아 보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