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외부에서는 어떻게 홍보실이 그런 문제를 만드는 것을 회사가 모를 수 있냐 하지만, 실제 내부는 각 부서 일 하나 하나가 세세히 공유되거나, 허가 받는 체계가 아닙니다. 당연히 윗분들이 사전에 모를 수 있는 부분이 생기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른다는 비판은 좀 너무 한 거 같습니다.”
컨설턴트의 답변
물론 실무 현장에서 부서 간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회사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른다’는 비판을 받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서로가 서로의 업무 정보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의 전략적 일관성이 무너졌다고 보기 때문일 겁니다.
홍보실을 포함한 특정 부서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 부서의 기저에는 두 가지 심리적 기제가 작동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고경영진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반대로 ‘이 정도는 윗분들도 원하실 것’이라며 과잉 판단하는 것이지요. 해당 부서가 이 두 판단 기준 이외에 부서 자체의 이익만을 위해 그런 행위를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치명적인 문제는 해당 부서가 문제성 행동을 하면서도 ‘우리 내부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확신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기업이 내외부로 공표하고 있는 핵심 가치와 우선순위가 실무자들의 판단 기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이지요.
이것이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경영 거버넌스의 품질’ 문제입니다. 평시에 자율성과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방치’와 ‘방목’이 허용될 때, 조직의 경영 품질은 서서히 잠식됩니다. 위기관리 관점에서도 경영진이 부정적 위기나 이슈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외면하는 태도가 실무자들에게 전달되면, 그들은 이를 ‘무한 자율성’으로 오해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전략적 정렬과 통제력 없는 자율성은 기업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시한폭탄이 됩니다.
이러한 거버넌스의 품질 저하는 모든 위기 상황에서 곧바로 ‘소통 강박’이라는 병리적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평소 경영진의 의도와 전략적 일관성이 실무자들에게 체화되지 않았기에, 막상 사고가 터지면 경영진은 “내 뜻은 그게 아니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회사는 강박적으로 메시지를 과도하게 쏟아내며 반복 해명에 매달리게 됩니다. 혹은 반대로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하지요. 이 모든 혼란은 결국 평시 경영 거버넌스가 실무의 판단 기준을 제대로 세워주지 못한 데서 기인한 조직의 오작동 현상입니다.
따라서 경영진께서는 그러한 유형의 위기 발생 시 단순히 “몰랐다”는 소통보다는 왜 우리 조직의 ‘자기 통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율성이라는 이름의 포장지를 걷어내고, 경영진의 전략적 의도가 실무 말단까지 제대로 흐를 수 있는 ‘전략적 정렬’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거버넌스의 품질은 단순히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의 확고한 위기 관리 의지가 실무자의 일상적인 판단 기준이 되도록 만드는 끊임없는 정렬의 과정으로만 강화됩니다. 오른손이건 왼손이건 최상부 뇌(腦)의 의지대로 정확히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병증일 뿐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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