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진은 위기 시 왜 ‘소통 강박’에 빠지나?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이 부정 이슈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경영진이 가장 먼저 취하는 행동을 상기해 보자. 대개의 경우 홍보팀을 긴급 소집해 사과문을 다듬거나, 언론 보도의 흐름을 전환하기 위한 전방위적 커뮤니케이션을 지시하는 것이 그 첫 수순이다. 그러나 위기관리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는 이러한 필사적 노력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귀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소통 강박(Communication Obsession)’이라 정의한다.

소통 강박이란, 기업이 위기 해결을 위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상황관리(Action)를 실행하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수단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병적 증상을 말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발현된다. 첫째는 ‘강박적 소통 폭주’로, 실효적 해결책이 뒷받침되지 않은 메시지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전시 효과에 집착하는 형태다. 둘째는 ‘전략 없는 마비’로, 냉철한 전략적 판단 대신 공포와 무력감에 사로잡혀 의사결정 자체를 유예해 버리는 상태다.

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경험이 풍부한 커뮤니케이션 부서장이나 임원들은 종종 “대응을 자제하자” 혹은 “대응할 실익이 없다”는 조언을 건넨다. 외부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판단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사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적 목적은 문제 해결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로 인한 데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에 있다. 내외부 베테랑들이 대응 자제를 권고하는 것은, 해당 사안이 아직 임계 수준의 위기가 아니거나, 대응의 시점과 대상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경험적 판단에 근거한다.

그러나 소통 강박에 사로잡힌 경영진은 이러한 조언을 실무진의 무능이나 무관심, 혹은 책임 회피로 곡해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불이 났는데 가만히 있자는 것이냐”는 식의 경영진발(發) 강박은 결국 무리한 소통 시도로 이어진다. 대응이 불필요한 작은 불씨에 소통의 연료를 무차별적으로 투입해 문제를 오히려 키우는, 이른바 ‘미필적 실수’가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미국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선구자 아서 페이지(Arthur W. Page)는 “PR이란 90%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고, 10%는 그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 명제는 위기관리 현장에서도 변함없는 진리로 통용된다. 성공적인 전략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실질적인 상황관리(행동, 개선, 보상)가 전제되거나 병행될 때에만 그 가치를 발휘한다.

90%에 해당하는 실질적 조치 없이 10%의 커뮤니케이션에만 매달리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다. 경영진은 소통의 기술을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 조직이 과연 90%의 ‘옳은 일’을 실행하고 있는지, 즉, 상황을 실질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를 먼저 자문해야 한다. 9:1의 균형이 무너진 소통은 자칫 기만에 가까운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소통 강박에 빠지는 일곱 가지 원인

위기관리 현장에서 관찰되는 경영진의 소통 강박 증상은 단순한 개인적 실수가 아니라, 다음과 같이 고착화된 심리적 오류와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다.

첫째. 소통은 상황관리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는 가성비 함정

“지금 당장 사과문 올리고 보도자료 배포해. 비용이 드는 보상안은 나중에 검토하고, 일단 말로라도 사태를 진정시켜야 하지 않겠어?”

경영진에게 리콜, 보상, 시스템 전면 개편과 같은 ‘상황관리’는 막대한 비용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고통스러운 결단이다. 반면, 메시지는 즉각 작성해 배포할 수 있고 비용도 미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체 없는 소통은 대중에게 ‘언젠가는 갚아야 할 부채’로 차곡차곡 누적된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언어는 결국 더 큰 이자를 얹어 상환해야 하는 치명적 위기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경영진은 간과한다.

둘째. 무대응은 곧 패배라는 공포와 통제력 과시 욕구

“가만히 있을 거야? 우리가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 아무것도 안 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꼴밖에 안 돼.”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무능해 보인다는 공포가 경영진을 지배한다. 특히 위기 국면에서 자신의 통제력을 내외부에 가시화하려는 리더십 증명 욕구가 강박적 지시로 이어진다. ‘전략적 인내’와 ‘무능한 방치’를 구별하지 못한다. 의미 없는 활동량으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 하지만, 이는 전술적 목적도 없이 제한된 자원만 소진하는 패착에 불과하다.

셋째. 기술적 해결주의와 프레임 전환에 대한 맹신

“우리에게 유리한 기사들로 포털을 채워. 댓글 여론만 잡으면 이번 고비는 넘길 수 있어. 기술적으로 어떻게든 프레임을 바꿔봐.”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알고리즘 제어나 검색 결과 정화, 혹은 고도화된 언론 플레이가 본질적 결함을 은폐할 수 있다고 믿는 오류다. 구조적 결함이라는 몸통은 방치한 채 여론의 흐름이라는 깃털에만 에너지를 쏟는 셈이다. 오늘날의 대중은 메시지의 기교보다 행위의 일관성과 진정성을 먼저 읽어낸다는 사실을 망각한 지시다.

넷째. 이해관계자를 공감 대신 제압 대상으로 간주하는 태도

“저들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집단이야. 대화해봤자 소용없어. 법무팀과 협의해서 우리 논리로 밀어붙여. 입도 못 열게 만들어.”

피해자나 여론을 소통을 통한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무력화해야 할 ‘장애물’로 간주할 때 소통 강박은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전략 없는 마비’ 증상은 대중에게 오만과 폭력으로 읽히며, 내부 고발이나 추가 폭로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어 위기를 전이·확산시킨다.

다섯째. 내부 보고 체계의 왜곡과 ‘보고를 위한 소통’의 악순환

“사과문 조회수가 얼마야? 기사는 몇 건이나 나갔어? 수치가 부족해. 더 적극적으로 우리 입장을 뿌려!”

위기 상황에서 실무진은 경영진으로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소통 활동을 보고용 실적으로 활용한다. 경영진은 이 수치에 안도하며 더욱 강도 높은 소통을 주문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로 문제가 얼마나 해결되었는지가 아니라, 메시지가 얼마나 많이 노출되었는지가 성공의 척도가 되는 전형적인 ‘활동성 함정’에 빠진 상태다.

여섯째. 한국적 망각 주기에 대한 요행과 전략 없는 마비

“일단 소나기만 피하자. 담당자 없다고 하고 시간을 끌어봐. 며칠 지나면 다른 이슈가 터져서 다들 잊어버릴 거야.”

과거의 위기가 시간의 흐름 속에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던 경험은 나쁜 학습 효과를 낳는다. 이는 전략적 인내가 아닌, 무책임한 방치로서의 침묵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기록은 영구적이며, 이러한 마비 상태는 훗날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강박적 폭주’를 불러오는 시한폭탄으로 작동한다.

일곱째. 전략적 현실주의의 부재와 감정적 호소에 대한 과의존

“사과문을 더 절절하게 써! 진정성이 느껴져야 해. 눈물 한 방울 쏙 빼낼 수 있다면 여론도 돌아서지 않겠어?”

법적 배상 규모를 냉정하게 산정하고 비즈니스 안정성을 검토하기보다, 감성적 호소로 여론을 전환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다. 실질적 행동이 수반되지 않은 감정적 호소는 대중에게 기만으로 비치며, 기업의 도덕적 신뢰를 앞당겨 소진시킨다. 위기관리 전략가라면 사과문의 수사(修辭)를 다듬기 전에, 보상안의 구체성부터 먼저 점검해야 한다.

전략의 부재가 강박을 낳는다

결론적으로, 경영진이 경험하는 이 모든 소통 강박의 증상들은 단 하나의 근본 원인에서 기인한다. 바로 ‘전략과 준비의 부재’다. 사전에 위기를 진단·분석해 구체적인 대응 시나리오를 갖추지 못한 기업은, 위기가 실제로 닥치는 순간 본능적 공포에 사로잡힌다. 준비되지 않은 경영진에게 소통은 가장 달콤한 도피처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감옥이 된다.

소통 강박은 전략 보유 여부에 따른 조직적 병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성공적인 전략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상황관리라는 실체가 수반되어야 한다. 90%의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소통은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 평시의 안일함이 위기 시의 강박을 낳고, 그 강박은 다시 실패한 소통으로 이어져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소통 강박이 매번의 위기에서 아무런 성찰 없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실수를 넘어 기업의 DNA 자체를 파괴하는 조직적 재앙으로 진화할 수 있다.

경영진 스스로 자문해보기를 권한다. 우리 기업은 지금 소통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소통 강박을 앓고 있는가? 소통 강박에서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소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소통의 기술을 연마하기 전에, 위기 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상황관리 전략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

미리 준비된 전략을 토대로 위기 시 조직의 의사결정과 실행을 철저히 통제·관리해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위기관리의 성공은 얼마나 화려하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아서 페이지의 조언처럼 얼마나 충실하게 90%의 ‘옳은 행동’을 선행하고 그 결과를 10%의 정교한 소통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강박이라는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략이라는 강력한 치료약을 손에 쥘 때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2009년 국내 최초의 기업 위기관리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창업했습니다. 약 30년간 국내외 300여 개 기업과 조직의 위기, 이슈관리를 자문해 왔으며 위기관리 분야 저서 다섯 권을 썼습니다.

Communications as Ikor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Communications as Ikor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