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위기관리 원칙

  • 위기는 인정한 만큼만 관리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스토아 학파의 두 번째 수장 클레안테스가 남긴 시구가 있다. 세네카가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옮겨 적어 오늘까지 전해진다. “운명은 따르는 자를 인도하고, 거스르는 자를 끌고 간다.” 두 사람에게 같은 운명이 온다. 피할 수는 없다. 다만 따르는 자는 제 발로 걸어가고, 거스르는 자는 끌려간다. 갈림길은 운명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는 뜻이다.

    위기를 맞은 기업의 첫 대응 회의실을 떠올려 보자. 많은 회의가 조금 색다른 말로 시작된다. “이게 무슨 위기입니까?” “언론이 과장하는 겁니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요.” “조금 지나면 잠잠해집니다.” 사실 이런 주장과 대화는 상황 분석이 아니다. 섣부른 부정(denial)이다. 이 경우 눈앞에 도착한 위기를 위기가 아니라고 우기는 데 회의의 절반이 쓰인다는 특징이 있다.

    부정은 공짜가 아니다. 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동안 대응은 시작조차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연락하지 않고, 사실 확인을 미루고, 입장 정리를 뒤로 민다. 그렇게 골든타임은 소모된다. 더 나쁜 것은 부정이 밖으로 새어 나갈 때다. “별일 아니다”라는 부정의 초기 입장은 며칠 뒤 거의 수정된다. 의도적으로 축소하려던 위기는 그 의도 때문에 이내 심각성이 두 배가 되어 돌아온다.

    그런 경우 기업들은 위기 앞에서 왜 부정부터 하게 될까? 위기를 인정하는 일이 곧 잘못을 인정하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은 다르다. 위기의 인정은 죄의 자백이 아니다. 상황의 직시다. “지금 우리에게 위기가 왔다”는 문장에는 아무런 법적 책임도 담겨 있지 않다. 다만 그 문장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조직은 비로소 움직일 근거와 동력을 얻는다.

    수용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클레안테스가 권한 것도 두 손 놓고 떠밀려 가는 삶이 아니었다. 받아들이되, 받아들인 그 지점에서 자기 몫의 일을 시작하는 태도였다.

    에픽테토스는 이를 주사위 놀이에 비유했다. 어떤 수가 나올지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 그러나 나온 수를 잘 쓰는 것, 그것은 온전히 우리의 일이다. 이를 위기관리에 적용해 보자. 위기라는 패는 이미 기업 앞에 던져졌다. 그 패를 무르겠다고 우기는 데 시간을 쓰는 기업이 있고, 던져진 패를 손에 쥐고 다음 수를 두는 기업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위기가 왔다”를 인정하는 것은 항복 선언이 아니라 출발 신호다. 인정해야 목표가 서고, 목표가 서야 우선순위가 생기고, 우선순위가 생겨야 조직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위기는 인정한 만큼만 관리된다. 절반만 인정한 기업은 절반만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장에서 보아도, 위기를 빨리 인정하는 기업일수록 위기를 짧게 겪는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당연한 이치다. 일찍 인정한 기업은 일찍 움직이고, 일찍 움직인 기업이 상황의 주도권을 쥔다. 늦게 인정한 기업에는 유효한 대응 없이 흘려보낸 시간만 쌓인다.

    위기가 왔는가.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회의실에서 “이게 무슨 위기냐”는 말이 나오려는 순간, 클레안테스의 시구를 떠올리자. 따르는 자는 인도되고, 거스르는 자는 끌려간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 위기관리의 전제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의 전제란 기업이 선의의 행위자로 행동하고 있고, 경영진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직원이 성실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다는 조건을 말합니다. 위기관리의 원칙과 프로세스, 그리고 컨설턴트가 내놓는 조언과 전략은 모두 이 조건 위에서 설계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조건은 법령이 정한 의무를 지켰다는 뜻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왔다는 뜻입니다.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 사안에 위기관리의 원칙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 그것은 관리가 아니라 은폐가 됩니다.

    선의는 착함이 아니라 상태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의는 도덕적 선함이 아닙니다. 두 가지 조건으로 정의되는 기능적인 상태입니다.

    첫째는 해악을 기획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기를 의도적으로 설계하거나, 그렇게 될 것을 알면서 선택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둘째는 문제를 인지한 시점부터 즉시 바로잡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선의는 이 둘이 결합할 때만 성립합니다. 의도만 있고 행동이 없으면 선의가 아닙니다.

    이 정의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위기의 발생 여부는 그 회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기준이 되는 것은 위기 앞에서 선의의 행위자로 움직였는가입니다.

    전제는 세 층위로 나뉩니다

    선의는 회사 전체의 지위이지만, 회사라는 법인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경영진의 결정과 직원의 실행을 통해서만 움직입니다. 그래서 전제도 하나의 덩어리로 확인할 수 없고, 세 층위에서 나누어 확인해야 합니다.

    세 주체는 각각 다른 의무를 지고 있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각각 다른 항목에서 확인됩니다.

    주체전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확인되는 것
    기업선의의 행위자로 행동함해악을 기획하지 않았는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준과 절차를 갖추어 두었는가
    위험 신호가 위로 올라오는 경로를 만들고 불이익 없이 쓰이게 했는가
    직원을 방패로 세우지 않고 보호했는가
    경영진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평시의 의사결정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충실하게 처리되었는가
    사적인 말과 행동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는가
    감지되거나 보고된 위기 요소를 적시에 처리했는가
    결정의 정보와 대안과 이유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가
    직원성실의무맡겨진 분야와 영역의 업무를 기준대로 처리했는가
    현장에서 알게 된 사실을 제때 회사에 전달했는가
    표. 위기관리의 세 가지 전제와 확인 항목 — 스트래티지샐러드

    여기에서 말하는 회사의 이익에는 평판이 포함됩니다. 재무적으로는 이득이 되는 결정이 회사의 이름을 깎는다면, 그것은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 아닙니다. 경영진 개인의 말과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의 발언이나 처신이라도 회사의 자산을 깎는 순간 사적인 일로 남지 않습니다.

    세 층은 서로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경영진이 아무리 신중해도 현장의 사실이 올라오지 않으면 그 신중함은 틀린 사실 위에서 작동하고, 직원이 아무리 성실해도 회사가 기준과 절차를 갖추어 두지 않았다면 개인의 성실로 메울 수 있는 범위를 넘습니다.

    특히 위기의 상당수는 특별한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조금씩 밀리고 생략된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회사가 직원을 방패로 세우거나 책임을 아래로 내려보내는 순간, 그 직원은 우리 편이 아니라 회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해관계자가 되고 동시에 가장 유력한 제보자가 됩니다.

    법이 정한 선은 바닥이지 천장이 아닙니다

    위의 세 가지 전제는 각각 법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에는 준법통제기준을 마련하라는 상법 조항이 있고, 경영진에게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가 있으며, 직원에게는 신의성실 원칙에서 도출되는 성실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켰다는 사실만으로 전제가 갖추어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위기의 성패를 가르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법원이 아니라 공중이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사안이 위기가 되는 경우는 흔합니다. 절차를 다 지켰고 위법도 없었는데 여론이 돌아서는 상황입니다. 이때 위법 사항이 없다는 해명을 앞세우면 위기는 대개 더 커집니다. 공중이 묻고 있는 것은 적법했느냐가 아니라 마땅했느냐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함의 범위는 회사마다 다르고 사안마다 다릅니다. 그 회사가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신뢰의 크기, 사업이 다루는 위험의 성격, 이해관계자가 대신 감수하고 있는 위험의 크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법령은 그 가운데 사회가 최소한으로 합의해 문서로 옮겨 놓은 부분일 뿐입니다. 법적 방어선을 위기관리의 목표선으로 삼으면, 지키기는 하겠지만 그 자리에서 신뢰가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전제를 지키는 일이 곧 위기관리입니다

    전제가 성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이 터졌다면, 그것은 위기 사안이 아니라 스스로 불러들인 경영의 실패입니다. 경영의 실패에는 위기관리의 원칙과 도구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세 전제가 지켜지고 있는 회사에서는 위기가 잘 발생하지 않습니다. 위기관리의 본령이 발생 가능한 위기를 미리 예상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두는 것이므로, 전제를 지키는 일 자체가 이미 위기관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준비는 위기가 닥친 뒤에 급히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운이 따르지 않아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과가 갈리는 것은 그때입니다. 전제를 지켜 온 회사에는 설명할 것이 남아 있고, 지키지 않은 회사에는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위기 상황에서 회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평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왔다는 사실을 정확하고 충분하게 입증하는 커뮤니케이션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실행입니다. 실행 없는 입증은 변명이 되고, 입증 없는 실행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두 가지가 함께 성공할 때 위기관리가 완성됩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상법 제382조 제2항 · 제382조의3 · 제542조의13
    민법 제2조 · 제681조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은 2025년 개정으로 그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되었습니다. 본문에 인용한 조항은 전제의 최소선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며, 위기관리가 요구하는 수준은 그보다 넓습니다.

  • 창구일원화와 창구다양화는 어떻게 다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창구일원화는 외부로 나가는 모든 메시지를 지정된 하나의 창구를 통해서만 내보내는 체계이고, 창구다양화는 이해관계자별로 지정된 여러 창구가 하나의 메시지를 나누어 전달하는 체계입니다. 둘은 대립하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어느 쪽이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변수는 창구의 수가 아니라 회사가 하나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가입니다.

    창구일원화는 원보이스가 어렵기 때문에 나온 차선책입니다

    위기가 오면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원칙이 먼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현장에서 구현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대표이사와 임원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말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나온 차선책이 창구를 좁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 수 없다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줄이자는 접근입니다. 창구를 좁히는 것은 통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실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임원들은 자사의 공식 메시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의 취재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응하다 문제를 키웁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간 한마디를 되돌리는 비용은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큽니다.

    하나의 창구로 감당되지 않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창구일원화의 원형은 대언론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왔습니다. 상대가 언론 하나였을 때는 홍보실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하나의 위기에 언론, 규제기관, 수사기관, 국회, 고객, 투자자, 협력사, 시민단체, 커뮤니티가 동시에 관여합니다. 각각이 요구하는 정보의 성격도, 대응의 속도도, 필요한 전문성도 다릅니다. 한 부서가 이 전부를 감당하려면 그 부서가 회사만큼 커져야 합니다.

    창구를 하나로 유지하려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대응의 지연입니다. 창구는 하나인데 처리량이 넘치면, 답을 받지 못한 상대들이 각자 다른 경로를 찾아 나섭니다. 통제하려던 시도가 통제 밖의 접촉을 만들어 냅니다.

    창구다양화는 창구를 늘리는 것이지 목소리를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가 가장 자주 오해되는 지점입니다. 창구다양화는 각 부서가 각자의 판단으로 말하기 시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의 합의된 메시지를 여러 창구가 나누어 전달한다는 뜻입니다. 늘어나는 것은 창구의 수이고, 늘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목소리의 수입니다.

    구분하나의 목소리여러 목소리
    창구 하나창구일원화. 전통적인 안전판이며 실행 난도가 가장 낮음원칙이 선언만 되어 있는 상태. 지정되지 않은 창구가 이미 작동하고 있음
    창구 여럿창구다양화. 다양성 환경에서 가장 이상적인 체계창구다변화. 회사가 스스로 모순된 메시지를 노출하는 통제 상실 상태
    표. 창구의 수와 목소리의 수 — 스트래티지샐러드

    오른쪽 아래가 실무에서 가장 두려운 자리입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영업과 생산과 법무와 인사가 제각각의 사실관계와 해석을 내놓는 순간, 기자는 그중 가장 말이 헐거운 곳을 찾아 그 한마디를 회사의 공식 입장으로 보도합니다.

    회사 안에는 이미 창구가 여럿 있습니다

    창구다양화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회사에는 이미 이해관계자별 접점이 나뉘어 있습니다. 언론은 홍보실, 정부와 국회는 대외협력, 수사기관과 규제기관은 법무, 고객은 고객만족 부서, 투자자는 재무 담당이 상대합니다.

    창구다양화는 이 접점들의 역할을 위기 시에 커뮤니케이션 창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여기에 회사의 공식 소셜미디어 채널과 주요 커뮤니티처럼 새로 생긴 매체별 접점을 창구로 추가합니다. 구조를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구조에 메시지와 권한을 붙이는 작업입니다.

    창구다양화가 성립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창구를 공식적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다양화는 아무나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사람만 답하는 것입니다. 임명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창구일원화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둘째, 임명된 창구는 전원 대변인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창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훈련 대상이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셋째, 각 창구는 문의를 받는 즉시 그 사실과 내용을 실시간 수준으로 홍보실과 공유해야 합니다. 이 공유가 끊기면 회사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게 됩니다.

    넷째, 핵심 메시지가 사전에 합의되어 모든 창구에 공유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원보이스의 실체입니다. 창구일원화 역시 물리적으로 창구를 하나로 묶는 것만이 아니라, 사전에 합의된 동일한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는 체계를 뜻합니다. 이 체계가 서 있다면 창구를 항상 하나로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원보이스가 서지 않으면 창구일원화로 돌아와야 합니다

    네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창구만 늘리는 것은 가장 나쁜 선택입니다. 그것은 창구다양화가 아니라 창구다변화이며, 회사가 스스로 통제를 포기하는 결정입니다.

    판단은 단순합니다. 지금 이 회사가 하나의 메시지를 여러 창구에 정확히 실어 보낼 수 있는가. 답이 그렇다면 창구다양화가 더 나은 체계입니다. 답이 아니라면 창구일원화로 돌아와야 합니다. 창구일원화는 원보이스 역량이 부족한 조직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전판이기 때문입니다.

    이 판단은 회사의 이상이 아니라 현재 역량을 기준으로 내려야 합니다. 다양화가 이상적인 체계라는 것과 우리 회사가 지금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 판단할 때 확인할 것

    지금 이 사안의 핵심 메시지가 문서로 정리되어 있는지 먼저 보십시오. 정리된 메시지가 없으면 창구가 몇 개든 목소리는 갈라집니다.

    각 부서의 창구가 이름으로 지정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부서 단위로만 정해져 있으면 실제 상황에서는 전화를 받은 사람이 창구가 됩니다.

    그 창구들이 최근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지 짚어 보십시오. 임명과 훈련 사이의 간격이 실패가 발생하는 자리입니다.

    창구가 받은 문의가 홍보실로 모이는 경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보십시오. 이 경로가 없으면 다양화는 분산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표이사와 최고경영진이 이 원칙의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공유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최상단에서 한 번 깨지면 아래에서 쌓아 온 체계는 그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원칙의 정의와 적용 범위를 다룹니다.
    대변인이란 무엇인가: 창구를 맡는 사람의 역할입니다.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무엇인가: 창구를 늘리면 훈련 대상도 늘어납니다.
    이해관계자란 무엇인가: 창구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개념입니다.

  • 노코멘트는 해도 되는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노코멘트는 취재 문의에 답을 주지 않는 방식입니다. 다만 실무에서는 두 가지가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합니다. 하나는 취재를 피하고 입을 닫는 회피이고, 다른 하나는 왜 지금 답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답변입니다. 앞의 것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위험하고, 뒤의 것은 한정된 조건에서 유효합니다.

    노코멘트는 곧 코멘트입니다

    말하지 않는 것도 메시지입니다.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자리를 뜨고 전화를 받지 않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자동 번역됩니다. 회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받는 쪽에서는 이미 답을 들은 셈입니다.

    공백이 오래 유지되면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채웁니다. 목격자의 추측, 내부자의 전언, 경쟁 관계에 있는 쪽의 해석이 회사의 설명보다 먼저 자리를 잡습니다. 나중에 정확한 설명을 내놓아도 이미 형성된 서사를 뒤집기는 어렵습니다.

    위험한 노코멘트는 회피입니다

    취재 거부, 전화 불통, 자리를 피하는 것, 그리고 함구입니다. 이 방식은 사안의 성격을 가리지 않고 위험합니다. 숨길 것이 있다는 해석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는 한마디만 반복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 문장에는 왜 말할 수 없는지가 없습니다. 기자에게는 답을 거부한 것으로 기록되고, 독자에게는 회사가 대응하지 않는다는 인상으로 남습니다.

    유효한 노코멘트는 이유를 설명하는 답변입니다

    한정된 조건에서 노코멘트가 유효한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그때의 노코멘트는 함구가 아니라, 회사가 왜 지금 답을 줄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답변의 본체가 되는 형식입니다.

    실제로 쓰이는 표현은 이런 것들입니다.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회사가 밝힐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합니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라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있어 지금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밝힙니다. 수사 중인 경찰에 협조하고 있어 회사가 별도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전합니다.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답을 주지 못하는 상태를 상대가 납득할 수 있는 근거와 함께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이 경우 기자는 답을 거부당한 것이 아니라 답할 수 없는 사정을 확인한 것이 됩니다. 기사에도 그렇게 반영됩니다.

    이 형식을 쓸 때도 조건이 붙습니다. 그 사정이 해소되면 알리겠다는 약속을 함께 하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사정이 끝났는데도 같은 말을 반복하면 그때부터는 회피가 됩니다.

    루머에는 코멘트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낡았습니다

    루머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둔 기업이 많습니다. 대응하면 오히려 키운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루머가 루머에 머무르는 미디어 환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근거를 갖고 초기에 개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거나 하늘이 알고 있다는 믿음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루머 무대응 원칙은 투자자 관계 목적으로 제한적으로만 유효합니다. 그 밖의 영역에서는 사안별로 다시 판단해야 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답할 것이 없을 때 내보내는 최소한의 발화입니다.
    전략적 침묵이란 무엇인가: 판단해서 말하지 않기로 정하는 경우의 조건입니다.
    입장문, 해명문, 사과문은 어떻게 다른가: 무엇을 언제 내보낼지의 구분입니다.
    위기관리 108수

  • 원점관리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원점은 위기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을 부정적인 상태로 유지시키며, 나아가 악화시키거나 확산시킬 수 있는 핵심 이해관계자를 뜻합니다. 장소나 게시물이 아니라 사람 또는 집단입니다. 원점관리는 그들을 찾아 그 관계에서 상황을 다루는 접근입니다.

    누가 원점이 됩니까

    어떤 기업 위기에나 이해관계자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파하는 사람, 손해나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 화를 내는 사람, 억울해하는 사람, 공격성을 드러내는 사람, 자신의 확산 역량을 과시하는 사람, 그리고 실제로 행동에 나서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그룹이 원점입니다. 때로는 한 사람이 원점이 되기도 합니다. 조직 안에 있을 수도 있고 밖에 있을 수도 있으며, 처음부터 드러나기도 하고 한참 뒤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상황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위기 대응에서 가장 먼저 살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왜 원점을 먼저 보아야 합니까

    부정적 상황은 한 사람 또는 한 집단에서 시작해 여러 경로로 퍼집니다. 커뮤니티 게시물이 기사가 되고, 그 기사가 인용되고, 인용된 내용이 다시 옮겨 갑니다. 확산이 시작된 뒤에 대응하면 상대해야 할 대상이 계속 늘어납니다. 하나를 해명하는 사이 세 개가 새로 생깁니다.

    반면 원점에는 대상이 분명합니다. 그가 무엇을 문제 삼는지, 그 문제가 사실인지, 해소할 수 있는 것인지를 다루면 됩니다. 위기관리에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구간이 여기입니다.

    원점 케어는 위기관리의 핵심 원칙 가운데 하나로 다뤄집니다. 위기 초기에 원점을 신속히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상황의 조기 종결 가능성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원점을 찾는 순서

    첫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 보이는 정보가 어디서 인용되었는지 추적하면 대개 몇 단계 안에 최초 발신자에게 닿습니다.

    둘째,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합니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지, 내부 관계자인지, 경쟁 관계에 있는 쪽인지, 단순 목격자인지에 따라 대응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같은 게시물이라도 누가 썼는가에 따라 다른 사안이 됩니다.

    셋째, 그가 원하는 것을 확인합니다. 사과인지, 보상인지, 개선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인지에 따라 해소 가능성이 갈립니다. 상당수의 사안은 이 확인 과정에서 실마리가 나옵니다.

    원점관리는 발신자를 압박하거나 게시물을 지우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접근은 대부분 더 큰 확산을 부릅니다. 원점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관리 대상입니다.

    원점관리가 어려운 경우

    이미 주요 매체가 다루기 시작한 사안은 원점의 의미가 줄어듭니다. 이 단계에서는 확산 국면의 대응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원점이 여럿인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각자 문제를 제기했다면 이는 개별 사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원인 자체를 다뤄야 합니다.

    원점 파악에 시간을 지나치게 쓰는 것도 위험합니다. 초기 대응 시간 안에 원점을 찾지 못했다면 확산 대응을 병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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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 시 이해관계자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하는가: 원점이 우선순위에서 차지하는 자리입니다.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원점 관리가 가장 효과적인 구간입니다.
    위기 시 기자회견은 열어야 하는가: 원점을 대하는 일이 소통에 앞서는 이유입니다.
    위기관리 원 포인트 레슨

  • 기업은 왜 위기관리를 외부에 맡기는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기업이 위기관리를 외부에 맡기는 이유는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위기 국면의 내부 판단은 이해관계와 감정에서 자유롭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시선을 하나 두어 판단의 균형을 잡는 것이 외부 자문의 본질입니다.

    내부만으로 어려운 이유

    첫째, 내부 구성원은 이해당사자입니다. 사안의 원인이 특정 부서에 있을 때, 그 부서와 함께 일해 온 사람이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책임 소재가 걸린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둘째, 조직에는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최고경영자의 판단이 문제의 원인일 때, 내부에서 그 말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외부 자문은 그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셋째, 안에서만 보게 됩니다. 위기관리에 실패하는 기업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위기를 내부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말해 줄 사람이 회의실에 없으면, 회사가 납득한 논리가 밖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넷째, 경험의 빈도가 다릅니다. 한 기업이 큰 위기를 겪는 것은 몇 년에 한 번입니다. 외부 자문은 여러 기업의 여러 위기를 동시에 봅니다. 우리에게 처음인 상황이 그들에게는 여러 번째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론을 맡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위기 국면의 회의실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최고경영자의 의중이 읽히는 순간 반대 의견이 사라집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결과는 나빠집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반론을 맡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 결정이 최악으로 흐르면 어떤 그림이 되는지, 상대편은 이 발표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를 굳이 소리 내어 말하는 사람입니다.

    내부 인사에게 이 역할을 맡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리와 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 자문이 이 역할을 대신 맡을 수 있다는 점이 실무에서는 생각보다 큰 가치를 가집니다.

    언제 외부 자문을 부릅니까

    가장 좋은 시점은 위기가 없을 때입니다. 위기요소를 진단하고 체계를 만들고 훈련하는 작업은 평온한 시기에만 가능합니다.

    위기가 이미 발생한 뒤라면, 사안의 성격이 다음에 해당할 때 외부 자문이 필요합니다. 최고경영자나 오너가 관련된 경우, 사안이 여러 부서에 걸쳐 있어 내부 조율이 어려운 경우, 전례가 없어 판단 기준 자체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입니다.

    반대로 담당 부서가 명확하고 전례가 있는 사안은 내부에서 처리하는 편이 빠릅니다. 모든 위기에 외부 자문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외부에 맡겨도 대신할 수 없는 것

    결정은 회사가 합니다. 외부 자문은 선택지와 각 선택의 결과를 정리해 줄 수 있지만, 무엇을 감당할지는 회사가 정합니다.

    사과와 책임 인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임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이해관계자들은 회사가 스스로 판단해 말했는지를 봅니다.

    그리고 조직의 체질은 외부가 바꾸지 못합니다. 문제를 보고했을 때 비난받는 문화, 부서 간에 정보가 흐르지 않는 구조, 위기요소를 말하면 불이익을 받는 분위기는 외부 자문이 있어도 그대로 남습니다. 이런 조직은 위기를 감지하는 단계에서 이미 실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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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창구일원화는 위기 상황에서 외부로 나가는 모든 메시지를 지정된 하나의 창구와 책임자를 통해서만 내보내는 원칙을 말합니다. 목적은 커뮤니케이션의 통제가 아니라 일관성 확보입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 회사가 여러 목소리를 내는 순간, 그 불일치 자체가 새로운 기사가 됩니다.

    어디까지가 창구일원화의 범위인가

    언론 대응만 해당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범위는 그보다 넓습니다. 실무에서는 다음을 모두 포함합니다.

    언론의 취재 문의와 인터뷰 요청, 회사가 운영하는 공식 소셜미디어 채널의 위기 관련 게시물, 투자자와 주주의 문의, 규제기관과 정부부처의 공식 문의, 거래처와 유통 채널의 문의, 소비자와 시민단체의 항의 및 입장 요청, 그리고 임직원 대상 내부 공지까지입니다.

    내부 공지가 포함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는 하루 안에 밖으로 나갑니다. 내부용과 외부용의 내용이 다르면 그 차이가 곧 문제가 됩니다.

    개인적인 발언이라는 구분은 없습니다

    창구일원화가 발령되면 임직원 개인이 언론이나 소셜미디어, 지인을 통해 위기 관련 내용을 말하거나 게시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이 원칙이 엄격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기자와 말을 섞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하는 모든 발언은 회사의 공식 메시지로 받아들여집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라거나 아는 범위에서 말한다는 구분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받는 쪽에서는 회사 사람이 한 말일 뿐입니다.

    그래서 실무 지침은 단순하게 정합니다. 문의를 받으면 답하지 말고 상대의 성명과 소속, 연락처를 파악해 담당 부서로 전달할 것. 이 한 줄이 전 임직원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창구를 좁힐수록 정보는 더 필요해집니다

    창구일원화를 실패하게 만드는 가장 흔한 원인은 정보 부족입니다. 창구는 좁혔는데 그 창구에 정보를 주지 않으면, 담당자는 답할 것이 없어 침묵하게 되고 결국 다른 경로가 열립니다.

    창구를 하나로 모으는 결정에는 그 창구에 사실관계를 신속히 전달하는 체계가 따라와야 합니다. 현장에서 확인된 내용이 담당 부서에 도달하는 경로가 없으면 창구일원화는 형식으로만 남습니다.

    대변인 지정과 함께 작동합니다

    창구일원화가 부서 차원의 원칙이라면, 대변인 지정은 사람 차원의 결정입니다. 어느 부서로 문의를 모을지와 그 부서에서 누가 얼굴을 내놓을지는 함께 정해져야 합니다.

    둘 중 하나만 정해진 조직은 실제 상황에서 멈춥니다. 창구는 있는데 말할 사람이 없거나, 말할 사람은 있는데 문의가 여러 부서로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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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변인이란 무엇인가: 창구를 맡는 사람의 역할입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이란 무엇인가: 창구가 준비해 두는 답변 자산입니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창구가 내보내는 첫 발화입니다.
    정용민의 미디어 트레이닝

  • 높이 올라 조망(眺望)하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플라톤의 가르침을 빌려 이렇게 권했다. 인간사를 논하려거든 높은 곳에 올라 지상의 일들을 내려다보라. 무리 지어 모인 사람들, 행군하는 군대, 농사와 혼인과 이별, 태어남과 죽음까지. 그는 황제의 격무 한가운데서도 이 조망 훈련을 반복했다. 눈앞의 소란에서 한 발 물러나 전체를 내려다볼 때, 비로소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큰 것을 보지 못해 실패하는 회사 보다, 작은 것에 매몰되어 실패하는 회사가 더 많다. 그런 회사에서는 사소한 온라인 뒷말에 대응 회의가 소집되고, 지엽적인 기사 한 줄에 조직이 들썩인다. 그러는 사이 정작 치명적인 위험은 아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점점 자라난다. 낮은 곳에 서 있으면 모든 이슈가 같은 크기로 보인다. 눈앞에 있는 것이 가장 커 보이는 착시 때문이다.

    모든 이슈에 전력으로 대응하는 회사는 부지런한 회사가 아니다. 위험한 회사다. 조직의 힘은 한정되어 있다. 작은 이슈마다 전력을 쏟는 회사는, 정작 회사의 명운이 걸린 이슈가 왔을 때 쓸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위기관리는 체력전이다. 어디에 힘을 쓰고 어디에 힘을 아낄지의 배분도 전략이다.

    응급실을 떠올려 보자. 환자가 밀려들 때 의료진은 접수 순서대로 진료하지 않는다. 생명이 위태로운 중환자부터 본다. 트리아지(triage), 곧 중증도 분류다. 먼저 온 경상 환자에게 매달리다 중환자를 놓치는 응급실은 없다. 그런데 기업의 위기나 이슈 대응실에서는 이 당연한 일이 자주 뒤집힌다. 먼저 눈에 띈 이슈, 윗분이 언급한 이슈, 목소리 큰 부서의 이슈가 중환자보다 먼저 진료대에 오른다.

    지난 편에서 위기의 신호는 듣는 데서 잡힌다고 했다. 그런데 제대로 듣기 시작한 회사에는 새로운 과제가 생긴다. 들리는 소리가 너무 많아지는 것이다. 그 모든 소리에 일일이 반응할 수는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분별이다. 어느 소리가 중하고 어느 소리가 가벼운가. 이 분별이 조망에서 나온다.

    조망은 타고나는 감각이 아니다. 훈련이다. 마르쿠스가 매일 높은 곳에 오르기를 반복했듯, 경영진에게도 정기적인 ‘물러남’의 시간이 필요하다. 눈앞의 현안에서 한 발 떨어져, 우리 회사를 둘러싼 위험의 전체 지형을 내려다보는 시간. 어떤 위험이 자라고 있고, 어떤 이슈가 시들고 있으며, 우리의 힘은 지금 어디에 쏠려 있는가. 분기에 한 번이라도 이 질문 앞에 앉는 회사와, 매일 눈앞의 불씨만 쫓아다니는 회사는 위기 앞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얻는다.

    조망이 주는 선물이 하나 더 있다. 마음의 평정이다. 마르쿠스가 높은 곳에 오른 본래 이유이기도 하다. 코앞에서 보면 거대해 보이던 이슈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제 크기로 돌아온다. 회사를 삼킬 것 같던 논란이 사실은 지나가는 소나기였음이 보이고, 반대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균열이 사실은 둑 전체를 위협하고 있었음도 보인다. 조망은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함께 교정한다. 이슈를 실제 크기로 보는 것, 위기관리는 거기서부터 정확해진다.

    낮은 곳에서는 모든 것이 위기로 보이고, 그래서 아무것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높이 올라야 경중이 보인다. 경중이 보여야 순서가 서고, 순서가 서야 힘이 남는다. 그 남은 힘이, 진짜 위기가 왔을 때 회사를 지킨다.

  • CEO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저희 대표께서는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말도 못하면 되겠냐 한탄을 하십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그런 권리를 행사하면 왜 안되냐는 거죠. 홍보실에서는 계속 불안합니다. 기자들과의 자리는 만들지 않으면 되는데, 개인적으로 하시는 소셜미디어가 문제지요. CEO의 표현의 자유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홍보실의 그런 불안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대표님의 한탄도 이해는 됩니다. 다만 이 문제를 ‘표현의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기 시작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대표께도, 저에게도,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걸 부정할 사람은 없지요.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말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 말한 뒤의 책임까지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누구도 대표님의 입을 막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활을 떠난 화살과 같습니다. 쏠 자유는 있어도, 그 화살이 날아가 일으킨 일까지 없던 일이 되지는 않지요. 원치 않는 오해를 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법적인 다툼으로까지 번집니다. ‘말할 자유’는 있어도 ‘그 말의 결과에서 도망칠 자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 이것이 표현의 자유의 진짜 얼굴입니다.

    여기에 CEO라는 자리의 특별함이 더해집니다. 대표님은 회사를 ‘내 회사’라고 느끼시겠지만, 조금 냉정하게 보면 회사와 주주로부터 경영을 ‘맡은’ 사람입니다. 남의 소중한 것을 대신 맡아 지키는 자리라는 뜻이지요. 이런 사람을 법에서는 ‘수임자’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피듀시어리(fiduciary)’라고 하는데, 말은 거창해도 뜻은 단순합니다. 나를 믿고 맡긴 사람들의 이익을 내 기분보다 앞에 두어야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갈등이 생깁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개인’과, 맡은 것을 지켜야 하는 ‘수임자’가 한 사람 안에서 부딪히는 것이지요.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제 기분대로 핸들을 꺾을 수 없듯, 회사를 맡은 사람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둘을 다 가지려 하니 늘 갈등과 스트레스가 따라오는 것이죠. 결국 어느 하나는 택하셔야 합니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사실지, 책임 있는 수임자로 사실지.

    그렇다면 CEO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요. 바로 회사 이야기 안에서입니다. 회사의 비전과 미션, 지켜야 할 가치와 원칙, 우리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조직문화까지. 대표님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쏟아부어도 좋을 주제가 회사 안에 이미 넘쳐납니다. 사실 이것들만 부지런히 이야기해도 하루가 모자란 것이 CEO입니다. 표현의 욕구는 바로 그 넓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푸시면 됩니다.

    사회적으로 구설에 오른 CEO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분들의 ‘하고 싶은 말’은 예외 없이 ‘그만한 책임’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놓고 하면 안 될 말’만이 아닙니다. CEO가 한 말 가운데 조금이라도 ‘적절하지 않은 말’은, 그게 무엇이든 문제가 됩니다. 그 기준은 개인의 상식이 아니라 맡은 자리의 무게에 맞춰지니까요.

    정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 싶으시다면, 그건 은퇴 후에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돌아가 마음껏 찾으시면 됩니다. 그 자리에 계신 동안만큼은, 하고 싶은 말보다 지켜야 할 책임이 늘 반걸음 앞선다는 것. 이것이 CEO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답일 것입니다.

  • 기업 위기관리에서 맷집이란?

    [Blog Exclusive]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권투를 아는 사람이라면 ‘맷집’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겉보기에 우람하고 화려한 펀치를 뽐내는 선수가 한 방에 무너지는가 하면, 크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온갖 타격을 견디며 끝까지 링 위에 서 있는 선수가 있다. 후자를 두고 맷집이 좋다고 말한다. 기업 위기관리에서 이 맷집은 위기를 맞은 기업에게 가장 절실하면서도 가장 저평가된 역량이다.

    위기관리 시 기업의 맷집이란 이런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다 했음에도 불운하게 위기를 맞은 기업이, 그 위기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부화뇌동 없이 견뎌내는 조직적 내구력. 위기를 사전에 회피하는 예방역량과는 달리 맷집은 위기가 이미 도래한 국면, 즉 펀치가 이미 날아든 순간에 조직이 무너지지 않고 기능을 유지하며 그 국면을 통과해 내는 힘이다.

    일부 기업은 맷집을 오해한다. 맷집을 그저 버티기, 침묵하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로 여긴다. 맷집은 방관이 아니다.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하되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힘이다.

    맷집을 덩치나 명성과 혼동하는 오해도 있다. 규모가 크고 브랜드가 강하면 어떤 위기도 견딜 수 있으리라 믿지만, 겉보기에 강한 상대일수록 한 방에 무너지는 경우가 오히려 잦다.

    맷집이 타고나는 것이라는 오해도 흔하다. 맷집은 기질이 아니라 위기 이전에 길러 두는 역량이다. 평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온 기업만이 위기 국면에서 그 힘을 꺼내 쓸 수 있다.

    맷집은 서구의 조직 이론과 철학, 그리고 스포츠 과학이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하는 개념이다. 좀 더 들여다 보자.

    무너지지 않는 조직의 과학

    미시간대학의 칼 웨익(Karl Weick)과 캐슬린 서트클리프(Kathleen Sutcliffe)는 원자력 발전소, 항공모함, 응급의료처럼 사소한 오류가 곧 대형 재난으로 이어지는 고위험 환경의 조직을 연구해 왔다. 이들이 정립한 ‘고신뢰조직(High Reliability Organization)’ 이론은 조직이 예상치 못한 사건 앞에서 어떻게 붕괴하지 않는가를 다룬다.

    이 이론의 핵심에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있다. 웨익과 서트클리프는 회복탄력성을 세 가지로 나눈다. 역경 속에서도 긴장을 흡수하고 기능을 보존하는 능력, 충격적 사건으로부터 정상으로 복귀하는 능력, 이전 사건으로부터 학습하고 성장하는 능력이다. 이들은 회복탄력성을 단순히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그 순간에 견뎌내는 힘까지 포함한다.

    최고의 고신뢰조직은 오류가 닥친 뒤에야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소에 지식과 기술적 숙련, 자원에 대한 장악력을 미리 확장해 둠으로써 불가피한 위기에 대비한다.

    이렇듯 맷집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이전에 길러지는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기업이 곧 자신의 맷집을 미리 단련하는 기업이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 평정

    맷집이 조직의 물리적 내구력만을 뜻한다면 절반의 개념에 그친다. 나머지 절반은 마음에 있다.

    고대 스토아 철학에는 ’평정(euthymia)’이라는 개념이 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불안에 시달리던 친구 세레누스를 위해 쓴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De Tranquillitate Animi)』에서 이 그리스어 euthymia를 라틴어 ’트란퀼리타스(tranquillitas)’로 옮기며, 그리스인들이 ‘영혼의 안녕’이라 부르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안정성을 논했다.

    세네카가 말한 평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적인 부동성이 아니라, 운명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는 평형된 마음이다. 세네카는 이를 폭풍이 막 지나간 뒤에도 잔물결이 이는 바다에 비유했다. 완전한 무풍이 아니라, 큰 파도에 뒤집히지 않는 안정된 항해가 평정의 본질이다. 위기의 급류 속에서 속도를 늦추되 방향만은 잃지 않는 태도, 이른바 아다지오(adagio)와 전략적 조향(strategic steering)이 바로 이것이다.

    이 평정을 실천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또 다른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통제의 이분법’이다.

    에픽테토스는 우리 힘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을 구분했다. 판단과 반응, 선택은 힘 안에 있으나,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 자체는 힘 밖에 있다는 것이다. 위기관리에 대입하면 명료해진다.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했다는 것은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소임을 다했다는 뜻이며, 불운하게 맞은 위기는 통제 불가능한 외부의 몫이다.

    맷집이란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소임을 완수한 것을 전제로, 통제 불가능한 외부 충격 앞에서 부화뇌동을 다스리는 역량이다. 스토아 철학에서 외부적인 것이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에 대한 태도와 대응은 여전히 중요하다.

    잘 맞는 것도 기술이다

    격투기가 말하는 맷집의 구조는 앞의 두 개념들과 그대로 맞물린다.

    권투에서 펀치를 견디는 힘은 단일한 능력이 아니다.

    첫째는 목 근력이다. 스포츠 생체역학 연구는 목의 강성이 충격 시 머리 가속도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목 근육이 충격흡수기 역할을 하여 타격이 유발하는 머리의 회전과 가속을 버텨내는 것이다. 목 근육이 충격을 흡수해 뇌로의 전달을 막듯, 조직의 회복탄력성은 국소적 오류가 시스템 전체의 실패로 번지는 것을 막는다. 목 근력이 훈련으로 길러진다는 사실은 맷집이 배양 가능한 역량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해 준다.

    둘째는 기술이다. 최고의 수비형 복서들은 펀치를 완전히 피할 수 없을 때 머리를 펀치와 같은 방향으로 흘려보내 충격을 줄인다. 이른바 ‘롤링 위드 더 펀치’다. 이 기술의 요체는 예측이다. 언제 맞을지를 미리 읽고 그 방향으로 몸을 흘린다. 통제할 수 없는 펀치의 도래를 정면으로 맞받지 않고, 통제 가능한 자신의 반응을 조정해 충격을 무해화하는 것이다. 위기를 정면으로 받아치다 자멸하는 기업과, 흘려보내며 국면을 넘기는 기업의 차이가 여기서 갈린다.

    셋째는 평정이다. 격투기 전문가들은 진정한 맷집이 턱 강도만이 아니라 타격을 흡수하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정신적 강인함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목이 강해도 정신이 흔들리면 무너진다. 조직 역량이 충분해도 내부의 부화뇌동이 통제되지 않으면 위기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유리턱은 왜 무너지는가?

    미국의 위기관리 전문가 에릭 데젠홀(Eric Dezenhall)이 쓴 책의 제목이 『글래스 조(Glass Jaw)』다. ‘글래스 조’, 곧 유리턱은 권투에서 겉보기에 강해 보이나 펀치 한 방을 견디지 못하는 선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데젠홀은 오늘날 논란의 표적이 된 기업과 개인이 이 유리턱과 같다고 본다. 그는 스캔들의 세계에서는 약자가 강하고 강자가 약하며, 온라인 여론 동원이 무력한 자를 강력하게 만든다고 분석한다. 디지털 시대에 논란은 순식간에 퍼져 한때 강력했던 조직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날아든 펀치를 그대로 맞받아 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데젠홀이 왜 강자가 유리턱이 되어 무너지는가를 진단했다면, 남는 과제는 어떻게 맷집을 길러 무너지지 않을 것인가를 처방하는 일이다. 회복탄력성과 평정과 흘리기, 이 세 가지가 그 처방이 된다. 펀치를 맞받아 치지 말라는 데젠홀의 경고도 결국 충격을 흘려보내라는 맷집의 논리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맷집은 위기관리 성공의 비결

    기업의 맷집이란,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마땅한 소임을 적시에 완수한 기업이, 통제 불가능한 외부 충격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평정을 유지한 채 부화뇌동을 다스리며, 조직 기능을 보존하고 국면을 통과해 학습으로 전환하는 힘이다.

    위기를 완벽히 회피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그러나 마땅한 소임을 다하고 흔들림 없이 견뎌내는 기업은 있다. 그 기업의 성공 비결이 곧 맷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