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042021 Tagged with 0 Responses

[The PR 기고문]평시 언론관계 역량이 위기관리 성패 가른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 임원과 실무진들을 대상으로 위기관리 워크샵을 할 때 종종 ‘숙제를 잘 해 놓으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린 학생 시절 경험했을 수도 있는 기분을 다시 떠올려 보자. 숙제검사를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선생님이 하루는 수업을 시작하자 마자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제 내준 숙제해 온 사람은 숙제를 책상위에 펼쳐 놓도록 해. 숙제 안 한 사람들은 일어서서 앞으로 나오고.”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자.

물론 숙제를 정상적으로 해 온 학생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숙제를 펼쳐 놓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반면 숙제를 해 오지 않은 학생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벌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 가슴 두근거림과 두려움은 실제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기업에게 그 기분 나쁜 숙제검사는 곧 부정 이슈의 발생이나 위기의 발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세계적 투자자인 워렌 버핏이 이야기했다. “누구나 즐겁게 수영을 하지만, 그 풀장에 물이 빠져나가면 누가 수영복을 입고 있지 않았는지가 드러난다” 평소에는 다 비슷해 보여도, 시장이 악화되었을 때에는 어떤 기업의 펀더멘털이 좋은 지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비유다. 이슈나 위기관리에서도 그렇다. 평소에는 대부분 기업이 이미지 좋고, 평판도 훌륭해 보이 지만, 그 회사에 부정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그 기업의 실제 이미지와 평판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상기업인지 그 여부가 드러난다.

기업의 언론관계 역량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해당 역량에 대한 착시 현상이 존재한다. 요즘같이 유가(buying)를 기반으로 보도자료나 기사를 뿌려 댈 수 있는 환경에서는 더욱 더 언론관계 역량의 품질을 식별하기 어렵다. 예산이 풍부하면 그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기사와 버즈가 생성되니, 그 결과를 놓고 언론관계를 잘한다 홍보를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대한 부정 이슈나 위기가 발발 되면 해당 기업의 언론관계 역량은 그대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평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누가 맡겨진 숙제를 잘 해 왔는지를 그대로 검사 받는 상황이 돼 버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보담당이나 부서는 물론 대표이사와 여러 임원들까지 인지부조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는 지금까지 언론관계나 홍보를 잘 해 왔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지?’ 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흘러나온다.

특히 이런 현상은 정상 홍보 역량과 조직을 갖춘 대기업들에서 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최근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들에게서 훨씬 더 흔하게 목격된다. 부정 이슈나 위기 발생 시 언론관계 역량에 문제가 있는 기업에게는 어떤 구체적 해프닝들이 발생될까? 정리해 본다.

미디어리스트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가장 대표적 언론관계 역량의 문제가 미디어리스트와 관련되어 있다. 기업 언론관계의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홍보실로부터 최신 버전의 미디어리스트를 받아 점검해 보면 된다. 자사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리스트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대부분 언론관계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기업들의 미디어리스트는 기준이 모호하거나, 예전 담당기자의 정보가 들어있거나, 새롭게 변화는 상황과 정보를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갑작스럽게 상황이 발생하여 자사 해명문이나 사과문을 기자들에게 배포해야 하는데, 그 리스트가 충분하거나 유효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는 기업들이 있다. 미디어리스트 내 한 언론사에는 데스크급 기자의 정보가 전부이고, 어떤 언론사는 이미 퇴사해 버린 기자들의 정보만 가득 들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미디어리스트는 전혀 쓸모 없는 쓰레기인 셈이다.

아는 기자는 많은데, 친한 기자가 없다

이 또한 전형적으로 이슈나 위기관리 시 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다. 미디어리스트에 담당기자 정보가 200-300명 되지만, 그 중 누구 하나에게 딱히 전화 걸어 정보를 확인하기 쉬운 기자가 없는 상황이 이런 경우다. 예전에 친했던 기자는 이미 다른 부서로 발령 되어 직접적으로 해당 이슈와는 상관이 없다. 그래도 아주 모르는 기자보다는 낫겠지 하면서 그 옛 기자에게 전화해 간접적인 확인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전형적으로 언론관계 업무와 관련해 제 숙제를 그때 그때 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슈관리를 위해 한 경제지 내부 분위기를 알고 싶다고 그 경제지의 자매지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든가. 한 종편의 취재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 같은 오너의 일간지 기자를 만나 본다든가. 흔히 광고국을 통해 상황을 알아보는 것도 그런 류다. 직접적 언론 네트워크 대신 간접적으로 또는 두세 다리를 건너서 상황을 파악하는 활동이 많은데, 이 모든 것이 언론관계 역량이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 취득의 범위나 정확성이 떨어진다

당연한 결과다. 앞서 미디어리스트와 친한 기자의 부재 원인과 바로 연결되는 결과다. 부정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작업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인데, 이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지지 않는다. 상황 정보를 취합해 본 경험이 있는 실무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정보를 조각 조각으로 입수해서는 정확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다. 충분해 보이는 깊이 있는 정보를 얻었다 해도 그에 대해 크로스 체킹 해 보기 전에는 정확성을 부여할 수 없다. 자꾸 새롭게 충돌하거나 가려져 있는 다른 정보들이 나타나고, 주장과 예측이 진짜 정보들과 버무려져 혼란스럽기만 하게 된다.

언론관계 숙제를 제대로 해 놓지 못한 기업은 기자들을 통한 정보 취득과 분석 작업은 일단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입수되는 정보 양이나 질이 형편없을 뿐 아니라, 정확성도 상당히 떨어지는 수준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제공한다는 소스 기자들이 아주 예전 기자였던 분이거나, 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단순 시니어 기자이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분이면 상황은 더욱 더 재앙적으로 변한다.

다른 출입처 기자 리스트가 없다

일반적으로 기업에게 부정적 상황이라면 담당기자 리스트와 커넥션은 물론, 그에 더해 법조, 국회, 특정 규제기관 출입기자단 리스트가 어느 정도 구비되어 있어야 대응 업무가 가능 해 진다. 미디어리스트가 곧 언론관계나 커넥션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경험 있는 홍보임원이나 팀장이 있는 기업에서는 이전 담당기자들이 출입처가 변경되어 여러 주요 기자단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커넥션을 찾을 수 있다. 리스트만 있으면 즉각적인 커넥션 활용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기업에게 부정적 상황이 발생되면, 홍보실은 관련된 기관이나 조직의 담당기자 리스트를 구하려 애쓴다. 각종 방식으로 우회하여 미디어리스트를 입수하고, 그 중 커넥션 있는 기자들을 찾아 내 정리하며 접근 방식을 고민한다. 이는 그나마 언론관계 역량이 일정 수준 이상 갖춰진 기업이다. 그 외 기업은 혹시나 운이 좋게 해당 기관의 미디어리스트를 구했다 해도 별 소용이 없다.

해명문이나 사과문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다

보도자료는 평소 잘 써서 여기 저기 기사화했는데, 실제 발생된 문제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문 작성에는 자꾸 주저하게 되는 경우다. 다른 기업은 실제 해명문이나 사과문을 어떻게 작성했는지 샘플을 급히 구해 보기도 한다. 어떤 형식으로 글을 써야 할지, 어떤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상호간 왈가왈부만 이어진다.

일부 조언하는 내외부 분들로부터 자꾸 자신의 생각을 포함하라며 지시가 내려온다. 수정과 수정이 계속된다. 문서 하나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의 검토와 훈수가 이어지다 보면, 해명문이나 사과문이 장장 수 천자 수준의 길이가 되기도 한다. 형식 또한 많은 사공이 인풋을 한 결과 언론대상 해명문이나 사과문의 형식을 일찌감치 벗어나 버린다. 정치 성명문 같기도 하고, 법적 소장 같기도 한 괴상한 문서가 생성된다. 평소 제대로 된 언론관계 역량을 기반으로 정상적인 대 언론 커뮤니케이션이 지속되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해프닝이 내부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그후 결국 그 문서를 모르는 기자들에게 이메일 발송한 뒤 배포 완료를 선언한다.

의사결정권자들이 언론 체계나 습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홍보실 사람들에게 당연하고 일상적인 언론 관련 내용들에 대해 대표이사나 임원들이 생소 해 한다. 평소 언론관계 역량이 안정된 기업에서는 대표이사나 주요 임원들도 언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경험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 못한 기업에서는 언론이 매우 새롭다. 홍보실에서 ‘그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해도 임원들이 그 조언을 듣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홍보실이 너무 언론 시각에서만 이야기한다 거나, 언론편을 들고 그들의 눈치를 너무 살핀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의사결정자들이 언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꾸 대응 의사결정을 하다 보니 무리수가 이어진다. 홍보실은 그 사이에서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하부 업무만 반복한다. 언론을 비롯한 외부 이해관계자들을 관리해야 하는데, 내부 의사결정자들의 심기를 관리하고 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평소 경영진의 언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경험은 언론관계 역량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대표이사나 주요 임원들이 언론을 몰라서는 이슈나 위기관리는 커녕 사업도 어렵다.

의사결정권자들이 홍보실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이러니다. 평소에는 대표이사나 임원들이 자사 홍보실에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발생되니 금세 신뢰를 거두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의사결정자들은 기본적으로 변덕스럽다. 각 기능들의 실체와 수준을 신속하게 평가하고, 대안을 찾는데 익숙하다. 평소 언론관계 역량은 위기 시처럼 직접 평가받지 못하게 마련이다. 반면 상황이 발생하고 하루 정도면 의사결정자들은 홍보실의 실제 역량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

문제는 단순히 의사결정자들이 홍보실에 대한 신뢰만 거두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더 큰 난맥상이 목격된다. 전문성 없고, 허락되지 않은 임원들의 개인적 언론 접근이 이어진다. 현장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공식 메시지가 아닌 내용들이 전파된다. 상당히 위험한 언론 매체들의 동원 시도도 이어지고, 전혀 다른 위기를 양산해 낸다. 통제불가능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 돼 버린다. 일단 홍보실이 약간 부족하더라도 경영진이 기존 홍보실을 제외하거나 무력화시켜서는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홍보담당자나 홍보임원이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어떤 홍보담당자라도 평소 언론관계 역량을 제대로 가꾸어 왔고, 맡겨진 숙제를 잘 해 왔다면 이슈나 위기 발생 시 무력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역량과 커넥션을 잘 발휘해서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이끌어 내려 현장을 뛰며 밤을 새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경우 홍보담당자는 극도의 불안과 패배감 그리고 조직적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이슈나 위기가 발생되면 해야 할 업무는 더 줄어드는 경험을 한 홍보담당자는 그런 상황에 처한 경우다. 일부 대응 업무만 맡겨진다 거나, 위기관리팀을 소집 운영하거나 보조하는 총무의 역할로 홍보담당자의 역할이 바뀌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단 이슈나 위기 발생 시 홍보담당자가 무력감을 느낀다면, 그 기업의 언론관계 역량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다.

자사에게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되어 진짜 거대한 이슈관리나 위기관리를 경험해 본 경영진이나 홍보담당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경험이 오랜 홍보팀장이나 임원들의 경우에는 물론 기억에 남는 자신의 위기관리 케이스를 몇 개 꼽을 것이다. 그 외에는 자잘하거나 부정적인 해프닝에 대한 홍보실 차원의 다양한 대응 경험이 대부분이다.

우선 주목해야 하는 건 그 자잘하고 부정적인 해프닝 수준의 일상적 이슈관리에 관한 것이다. 그 때 그때 해당 해프닝에 대응하면서 자신과 자기 부서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역량이 부족하다 느꼈는지 기억해 낼 수 있어야 한다. 평소에 무엇을 해야 그런 어려움과 부족함을 해소시킬 수 있을지를 경영진과 함께 여럿이 고민해 보면 좋다.

그런 일상적인 깨달음과 기억들 그리고 고민들이 실행으로 이어져야 언론관계 역량이 성장한다. 정상기업으로서 필요한 정상적 언론관계 역량을 갖추게 된다. 지금은 상황이 평온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아 이만하면 충분하다 느낄 수 있겠지만, 문제를 찾아내는 노력은 언제나 부족하다. 언제 이 풀장의 많은 물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우리의 수영복이 드러날지 노심초사해 보는 것은 결과적으로 유익한 일이다. 막연히 불안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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