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2026 0 Responses

만루의 투수에게서 배우는 위기관리

[blog exclusive]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국내 뉴스에서 ‘위기관리’라는 단어의 용례를 모니터링해 보면, 압도적 다수는 기업 기사가 아니라 스포츠 기사에 등장한다. 만루 위기를 넘긴 투수의 위기관리, 선제 실점 후 흔들리지 않은 팀의 위기관리. 우리 사회에서 위기관리라는 말의 표준 이미지는 기업의 회의실이 아니라 경기장에 있는 것 같다. 스포츠 기자들이 야구 중계를 보도하며 쓰는 단어 ‘위기관리’는 대체로 정확한 용법이다. 문제는 기업이 스포츠에서 위기관리를 배울 때, 배워야 할 것은 배우지 않고 엉뚱한 것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투수냐 타자냐, 그것이 문제다

만루에 몰린 투수가 계산하는 것은 실점의 최소화다. 한 점은 주더라도 병살로 이닝을 끊는 것, 장타만은 피하는 것. 그래서 구질을 바꾸고, 수비 위치를 조정하고, 때로는 고의사구를 던진다. 볼넷 하나가 최선의 위기관리가 되기도 한다. 이 자체가 훌륭한 위기관리 교과서다. 목표를 승리에서 손실 최소화로 즉시 재설정하고, 최악의 경로를 먼저 차단하고, 나쁜 선택지 중 덜 나쁜 것을 고른다.

그러나 기업이 실제로 수입해 오는 것은 9회말 만루 홈런이다. 타석의 타자에게 만루는 기회이고, 마운드의 투수에게 만루는 위기다. 위기를 맞은 기업의 자리는 명백히 마운드다. 그런데 배우려는 대상은 타자인 경우가 있다. 위기 직후 회의실의 언어가 증거다. 반전, 뒤집기, 승부수, 정면돌파, 총력전. 모두 타석의 어휘다. 위기는 기회라는 오래된 격언이 이 착각을 부추긴다. 기업은 같은 장면에 처해 배역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점수판이 아니라 원인이 문제다

마운드의 위기관리는 점수판으로 판정이 나지만, 기업의 위기는 그 원인으로 판정이 향한다. 물론 투수가 만루에 몰린 과정에도 원인은 있다. 그러나 심판은 원인을 판정에 넣지 않는다. 점수판은 결과만 기록하고, 점수판을 되돌리면 그 경기의 위기는 소멸된다.

기업 위기는 다르다. 어떤 위기든 판정은 원인과 책임을 향한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는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는가. 재난이든 팬데믹이든, 기업이 만들지 않은 위기에서조차 판정은 기업을 향한다. 왜 대비하지 않았는가. 왜 복구가 늦는가. 기업이 다치는 지점은 대비와 대응에 대한 소급된 평가다. 이후 매출을 회복하고 주가를 방어해도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억울해도 역전의 유혹은 문제다

루머가 번졌고, 경쟁사가 흘렸고, 기자가 확인 없이 썼다고 기업들은 억울해한다. 상대가 반칙을 한 상황이라는 이 억울함은 대체로 근거가 있다. 그러나 발생 원인과 판정 대상은 다르다. 발생은 외부에서 왔어도 판정은 우리를 향한다. 루머 위기에서도 사람들은 기업에게 왜 초기에 루머를 잡지 못했는가, 왜 그런 루머가 믿길 만한 회사였는가를 묻는다. 억울한 위기조차 원인을 묻는 구조 안에서 굴러가는 것이다.

점수판을 되돌려도 마찬가지다. 반박에 성공하고 정정 보도를 받아내도 형성된 인식은 남는다. 결과의 위기라면 결과를 바꾸는 순간 끝나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것이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위험한 것은 억울함 그 자체다. 억울한 위기일수록 역전의 유혹이 강해진다. 잘못이 없다고 믿을 때 사람은 이기고 싶어진다. 그래서 실제로는 잘못을 저지른 기업이 아니라, 억울함을 동력으로 분노의 반격에 나선 기업이 더 큰 피해를 본다.

판정자를 착각하면 문제다

야구에서는 관중이 아무리 야유해도 판정은 바뀌지 않는다. 심판은 하나, 규칙도 하나다. 기업 위기에서는 관중석의 함성이 곧 판정이다. 심지어 그 관중석에는 완장을 찬 심판들도 앉아 있다. 피해자는 진정성으로, 언론은 뉴스 가치로, 규제기관은 법령으로, 법원은 증거로, 시장은 실적 전망으로 판정한다. 판정자마다 규칙집이 다르니 하나의 대응이 한쪽에는 성공, 다른 쪽에는 실패가 된다. 법적으로 완벽한 방어가 여론에서는 파국을 부르고, 여론을 달래려던 발언이 법정에서 자백으로 읽힌다.

그래서 기업 위기관리에서는 관중석을 보며 경기를 해야 한다. 단, 모두를 만족시키기보다 순서를 정하는 것이 이 경기의 운영법이다.

영원히 소급되는 기록이 진짜 문제다

야구 경기의 시간은 공평하다. 9회가 끝나면 결과가 확정된다. 감독의 투수 교체 실패가 몇 년씩 회자되어도 확정된 스코어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원인의 평가와 경기의 판정은 분리되어 있다.

기업 위기에서는 그 둘이 하나다. 원인의 평가가 곧 판정이다. 배상 규모, 처분 수위, 신뢰 회복의 속도가 모두 원인과 책임의 평가로 결정된다. 그에 더해 위기 시에는 골든타임이 짧아 초기 판단의 지연이 선택지를 좁힌다. 그 뒤로는 책임이 소급되어, 발생 이전에 무엇을 준비했어야 했는지까지 판정표에 올라간다.

종료도 스스로 정할 수 없다. 사업 철수나 경영진 교체로 상황을 끝내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은 큰 대가를 지불한 종료의 구매다. 그 가격표 자체가 기업에 종료 권한이 없다는 증거다. 위기의 끝은 이해관계자들의 태도가 변할 때 온다. 초기화도 없다. 대중은 일단 잊어도 기록은 잊지 않는다. 검색과 AI의 답변에 남은 사건은 다음 위기 때 패턴의 증거로 소환된다. 영원한 소급의 반복이다.

투지보다 전략이 문제를 푼다

스포츠에서 투지는 일견 미덕이다. 분함은 동력이 되고, 다 같이 더 뛰는 것이 확률을 높인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기업 위기에서도 독이 되는 것은 방향을 잃은 투지다. 위기관리를 잘하는 조직도 맹렬하게 움직인다. 다만 그 맹렬함은 냉철한 분석 위에 서 있다. 그런 분석 대신 불안과 분노가 판단의 동력이 되면 모든 에너지가 강박으로 변한다. 절박함이 근거 없는 해명을 쏟아내게 하고, 억울함이 반격을 부르고, 그 모든 활동이 위기를 오히려 증폭시킨다. 방향 없는 투지는 성과가 아니라 손실에 비례한다.

물론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허위사실에 대한 법적 조치, 오보에 대한 정정 요구, 사실의 규명. 이런 것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의 범위에 있다. 그 범위 안에 있는 것들은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해야 한다. 다만 그때도 목표는 설욕과 되돌리기가 아니라 최악의 차단이다.

위기 시 실무자를 소진시키는 것은 투지에 불타는 갈피 없는 지시다. 목표가 명확한 조직은 냉정해도 버틴다. 포수가 마운드에서 하는 말은 이겨라가 아니다. 낮게, 바깥쪽이다. 구체적인 지시가 곧 전략이다.

기업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살피자

위기 직후 첫 회의에서 최고의사결정권자가 꺼내는 단어를 들어 보면 그 조직의 결말을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다. 체계를 갖춘 기업은 역전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

언어는 그 조직이 어느 프레임에서 판단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가장 빠른 증상이다. 역전 대신 던져야 할 질문은 정해져 있다. 이 위기의 원점은 무엇인가. 누구의 판정이 가장 파괴적인가. 지금 하지 않으면 무엇을 잃는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야구 경기장에서 무언가를 가져오겠다면 9회말 홈런이 아니라 만루의 마운드 개념을 가져오시기 바란다. 지금 우리 조직이 타석이 아니라 마운드에 서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하는 것, 그것이 첫걸음이다. 그 투수는 역전하려 하지 않는다. 최악을 막고 있다. 그리고 공격의 차례는 그 이닝을 무사히 끊어낸 팀에게만 온다. 그것이 실제 위기관리다.


Communications as Ikor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Please enter your name, email and a comment.

Communications as Ikor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