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경영진들이 ‘왜 우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가?’ ‘그럴 의무는 없지 않은가’ 하면서 홍보실에게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사실 기업이 언론에게 설명할 의무는 없지 않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절반은 맞는 말씀입니다. 기업이 언론의 질문에 답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습니다. 답변을 거부해도 처벌받지 않지요. 하지만 시각을 바꿔 볼 필요는 있습니다. 기업의 답변은 의무(obligation)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accountability)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위기관리에서 말하는 ‘답변 책임’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 혹은 앤서러빌리티(answerability)라고 합니다. 자신의 행위와 결정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이 물을 때 성실하게 설명하고 답할 책임을 말합니다. 어원부터 그렇습니다. 어카운트(account)란 셈을 내놓는 것, 곧 설명을 내놓는 것입니다. 기업은 자신들의 업무와 관련하여 이해관계자들에게 성실하게 설명할 책임을 가진다는 것이지요.
왜 기업에게 그런 책임이 생길까요. 기업은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객의 돈으로 매출을 만들고, 직원의 삶을 빌려 일하며, 지역의 환경과 사회의 기반 위에서 사업합니다. 그 신뢰와 허락 위에 서 있는 존재가 기업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겨 그들에게 영향이 미쳤다면,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물을 권리가 생기고, 기업에게는 답할 책임이 생깁니다. 기자의 질문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 질문은 기자 개인의 호기심이 아닙니다. 기자 뒤에는 물을 권리를 위임한 소비자와 시민들이 서 있는 것이죠.
위기관리는 몇 가지 전제 위에서 성립합니다. 우리는 선의(善意)의 행위자라는 전제, 선량한 관리자로서 맡은 것을 성실히 관리한다는 전제,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성실히 설명하고 바로잡는다는 성실 의무의 전제입니다. 이 전제들이 살아 있는 기업에게 언론의 질문은 부담스럽긴 해도 거부할 대상은 아닙니다. 설명할 것이 있고, 설명할 자세가 되어 있으니까요. 반대로 “왜 우리가 답해야 하나”라는 말이 경영진 회의에서 나온다면, 그 전제들 중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 읽어야 합니다.
실익의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답변을 거부한다고 해서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기사는 회사의 답변 없이도 나갑니다. 다만 ‘회사 측은 답변을 거부했다’는 문장을 달고 나가겠지요. 독자들은 그 문장을 이렇게 읽습니다. ‘무언가 숨기는구나.’ 침묵도 하나의 대답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게 회사가 비운 자리는 다른 목소리들이 채웁니다. 상황에 대한 정의도, 책임의 크기도 남의 언어로 굳어져 갑니다.
물론 모든 질문에 모든 것을 즉시 답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확인 중이라 말하고,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그 사정을 설명하면 됩니다. 답변 책임의 핵심은 완벽한 답이 아니라 성실한 자세입니다. 성실하게 마주하는 회사와 문을 닫아거는 회사는 기자와 공중이 정확히 구별해 냅니다.
답변이란 언론에게 해 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 사업을 지탱해 온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의 이행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는 모습 자체가 위기관리입니다. 답할 이유를 묻는 회사보다, 답할 준비를 묻는 회사가 위기에서 살아남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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