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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32018 0 Responses

[The PR 기고문] 진정성이라는 건 대체 뭘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진정성. 진정성. 위기관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이 ‘진정성’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저 대표이사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없어” “좀 더 진정성 있게 공식입장을 꾸며주세요.” “위기관리에는 진정성이 곧 핵심이지” 사람들은 이런 표현으로 위기관리와 관련 해 ‘진정성’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그러나, 그리 말하는 사람들에게 “진정성? 그게 무슨 의미지?”라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답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거 있잖아…뭐…지금 저 사람이 진짜로 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거 아니겠어?” 이런 식의 정의가 대부분이다.

원래 국어사전에는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없다. 우리가 쓰는 ‘진정’이라는 말에 ‘성’이라는 말을 붙여 만든 조어이기 때문이라 한다. 헷갈림은 이 진정성 단어가 두 가지 한문 표현으로 존재한다는 데에서부터 온다. 첫 번째 개념의 ‘진정성’은 ‘眞正性’으로 쓴다. 그 의미는 간단히 ‘진짜’라는 의미다. 사실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두 번째 개념의 ‘진정성’은 한자로 ‘眞情性,’으로 쓰인다. ‘참된 마음. 애틋한 마음, 정’ 이런 의미다.

진정성(眞正性)은 일치에 관한 의미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인 “진정?”이라는 말의 의미는 아마 첫 번째 개념의 진정성인 “진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진정성 없다’는 의미는 ‘진짜가 아니다’ ‘가짜다’라는 의미와 통한다 볼 수 있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보면 위기관리 주체가 ‘내부적으로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이 진정성 (眞正性)이라 본다. 그렇게 보면 이 진정성(眞正性) 개념은 ‘내부적인 합치’나 ‘생각과 행동의 일치’를 뜻한다 볼 수 있다.

또 다른 진정성(眞情性)은 느낌에 관한 의미

두 번째 ‘진정성(眞情性)’이란 개념을 보다 알기 쉽게 풀어보면 무슨 의미일까? 가운데 ‘정(情)’이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진짜 그런 마음이 있느냐?’ ‘진짜 그런 감정이 있느냐?’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마 위기관리 관점에서 “저 대표이사의 사과를 보면 진정성(眞情性)이 없어”라고 하는 의미는 “저 대표이사의 사과를 보면 스스로 진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 않아 보여”와 같은 의미라고 보면 되겠다. 즉, 위기관리를 위해 사과문을 발표하는 대표이사인 화자의 표정이나, 행동이나, 목소리나, 말투나, 메시지를 포함한 모든 이미지를 통 털어 해석해보니 그 사람의 마음속에 진실한 감정이 있지 않아 보인다는 ‘감정에 대한 이미지’로서의 ‘진정성(眞情性)’이다.

화자와 청자간 다른 진정성 의미

위기관리 관점에서 사용되는 ‘진정성’이라는 의미가 과연 둘 중 어떤 것일까에 따라 그 실행에는 큰 차이가 생겨버리기 때문에 위기관리 매니저들은 골치 아파한다. “우리는 진정성이 있는데, 공중들이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 주지 않는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여기에서 보면 문제의 원인이 보인다. 앞의 진정성과 뒤의 진정성이 각각 다른 의미로 쓰이니 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회사와 공중이 사용하는 진정성이라는 의미가 공히 ‘진정성(眞正性)’으로 동일한 것이라면, ‘우리의 진정성(眞正性)을 공중들이 신뢰하게 할 수 있게 만들면 된다’라는 간단한 해답이 보인다. 순수하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나 PR 등의 활동이 이런 해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 회사 제품에서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알려진 중금속이 검출되었다는 소비자단체 조사 결과 발표가 나왔다. 회사에서는 수년간 수회에 걸쳐 반복적으로 안전성 평가를 했어도 그런 인체 유해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생각을 그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진정성(眞正性)

대표이사가 앞에 나서서 기자회견을 한다. “저희 회사의 모든 기술 연구 역량을 믿어 주십시오. 인체에 유해한 성분은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회사를 믿고 제품을 사용해 오신 여러분 저희가 여러 공인 시험 기관에 재 조사 의뢰를 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발표문을 읽었다.

이 메시지에는 진정성(眞正性)이 들어 있을까? 들어 있다. 진짜 회사 내부에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강력한 전략과 메시지를 들고 나왔던 것이다. 이를 진정성(眞正性) 있다 믿는 공중들이 많으면 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성공하게 된다. 소비자들 대부분이 “그러면 그렇지. 나는 저 회사를 믿어. 다시 공인기관들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믿고 기다릴 거야”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위기관리는 일단 성공인 것이다. 회사의 진정성(眞正性)을 공중이 신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소비자 단체의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해당 회사 대표이사와 핵심 임원 몇 명이 모여 이런 논의를 한다. “큰일이네. 하필이면 그 제품만 딱 뽑아 안전성 조사를 했지? 그거 중금속 수치가 좀 나온다는 게 몇 년 되었죠? 그래도 그 동안 내부적으로 많이 줄인다고 줄인 건데 … 이번에 딱 걸려 버렸네. 어쩌지?” 이런 상황에서 해당 회사가 진정성(眞正性)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정말 잘 못했다. 우리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판매를 했다. 중금속 함유량을 줄인다고 했는데 완벽하지 못했다”라고 공중들에게 사과한다면 어떨까? 그랬다면 이 자체도 또한 ‘진정성(眞正性)’이 있는 것이다. 진짜를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이런 경우에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아주 일부 제품에서 소량 논란의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체에는 유해하다 볼 수 없지만, 소비자께서 걱정하시지 않게 일단 자발적 리콜을 실시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지속적으로 안전성 검사를 해 왔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이런 경우 이 회사는 ‘진정성(眞正性)’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 진짜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하게 되면 진정성 (眞情性)

다시 돌아가서 반대로 회사와 공중이 사용하는 진정성이라는 의미가 진정성(眞情性)으로 동일한 것이라면, ‘우리가 더욱 진실한 감정을 실어서 공중들이 우리에 대해 진정성(眞情性)을 느끼게 하자’하는 해답도 가능하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측면에서는 훈련되고 리허설 되어 완벽하게 연출하고 전략적인 레토릭을 사용하면 위기가 관리 될 것이다 라는 주장이 이런 개념에 어울린다.

위와 같은 예를 들어 보자. 해당 제품 유해성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발표하는 대표이사의 모습에 강한 자신감이 들어있는 경우다. 대표이사가 당당하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자세한 조사결과들을 여러 개 공개하고, 신뢰감 가게 행동하는 것을 여러 국민들이 보게 되는 것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저 대표이사의 설명을 들으니 왠지 믿음이 가는 걸. 저렇게 당당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데 설마 문제가 있겠어?”하는 느낌이 들게 될 것이다. 진정성(眞情性)이 통했다는 개념이 이런 것이다.

반대로도 예를 들 수 있다. 유해물질 함유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쉬쉬하면서 판매를 계속해 오고 있었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대표이사가 전문 컨설턴트의 자문을 얻어 기자회견을 준비한다. 여러 번 반복되는 리허설을 통해 아주 절절한 표정과 고개 숙임을 각도까지 재가면서 연습한다.

기자회견장에서 대표이사가 “우리가 잘 못했다”하면서 고개를 한 없이 숙이면서, 눈물을 떨군다. 손을 덜덜 떨면서 “다 내 부덕의 소치”라 하면서 사죄와 사죄를 구한다. 회견장에 앉은 기자들 조차 ‘세상에 참 딱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진짜 사죄를 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많은 소비자들이 “이전까지는 그런 나쁜 생각을 했었어도, 아마 이제부터는 이번 교훈을 발판 삼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겠지..”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경우 공중은 이 회사가 ‘진정성(眞情性)’ 있게 사과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부적인 진정성(眞正性)과 표현으로서의 진정성(眞情性)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대표이사가 사죄해야 하겠다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기자회견 준비 없이 달랑 사과문 메모만 가지고 단상에 올라가 버린 경우를 보자. 딱딱하게 “사과 드립니다”는 말 몇 마디로 기자회견을 마무리 하려 하려 했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임원들에게 답변 하라는 제스츄어를 한다. 포마드 발라 정갈하게 탄 가르마와 빤짝 빤짝한 시계가 공중들의 눈에 들어 온다. 기자들이 화를 내고, 회견장은 다시 아수라장이 된다. 소비자들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지? 알면서도 유해물질을 그대로 섞어 팔았으니 정부에서는 최대한 처벌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이런 반응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내부적인 진정성(眞正性)이 미처 표현으로 연결되어지지 못해 공중들이 진정성(眞情性)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생각을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하지 못한 것이다.

평소 철학과 원칙에 문제가 있으니 진정성(眞正性)이 문제

정리해 보자. 사실에 근거한 생각을 그대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진정성(眞正性)이라고 볼 때, 그대로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으니 진정성(眞正性)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게 되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회사라는 오명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는 사과하고 싶지 않는데도 어떨 수 없이 기자들 앞에 나가 고개를 숙이는 대표이사의 경우. 진정성(眞正性)을 의심받게 된다. 사과하고 싶지 않다면 왜 자신이 사과할 수 없는지를 밝히는 것은 개념 측면에서 차라리 진정성(眞正性) 있는 선택이다. 진정성(眞正性)을 일부에서는 선과 악으로 개념을 나누곤 하는데, 실제 진정성은 그 차제만으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일치 여부에 관한 것이지, 그래서는 된다 안 된다의 주제는 아니다.

물론 기업 위기관리 측면에서 대표이사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하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기업을 위해서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하는 의미일 것이다. 기업 관점에서 볼 때는 기업 전체가 생각하는 그대로를 대표가 온전히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위기관리의 핵심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홍보담당자라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생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면 회사 이미지가 남아 나겠나?” “회사 내부의 생각을 어떻게 그대로 전달을 하나?” 질문 할 것이다.  이 경우는 대부분 회사의 철학과 원칙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회사다. 투명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반사회적, 반시장적, 반소비자적인 철학과 원칙이 지배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꺼려지는 것이다. 위기관리 이전에 기업의 철학과 원칙을 경영품질의 차원에서 검토해야 맞다.

평소 경험과 훈련이 없으니 진정성 (眞情性) 문제

이 진정성(眞情性) 개념으로 보면, 자사의 생각을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하지 못하니 매번 진정성(眞情性)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숙련의 문제일 수 있다. 일부는 진짜 자신의 숨은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해 진정성(眞情性)을 의심받기도 한다.

앞의 개념을 빌어 자사의 생각을 ‘그대로’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다면, 해당 커뮤니케이션은 ‘제대로’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되지 않는 경우라면, 자사 스스로의 생각을 ‘그대로’ 커뮤니케이션 하려 하고 있는지 돌아 봐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일부 홍보담당자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마음은 굴뚝 같은데, 이게 표현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대표께서는 진짜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는데, 이분이 원래 웃는 얼굴상이라서 덜 심각하게 보여지는 게 문제지요” 이런 경우가 생각을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하기 힘든 경우다. 이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경험과 훈련이 답이다. 리더로서 만인에게 호감 가는 자세와 외모 표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 복잡하고 헷갈리는 여러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 왔다. 영어로 풀어보면 생각을 그대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진정성(眞正性)은 ‘Authenticity’라는 단어를 쓴다. 반면 생각을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해서 얻는 진정성(眞情性)은 ‘Sincerity’라는 단어를 쓴다.

기업에게 제대로 된 철학과 원칙이 있다면 진정성(Authenticity)은 실현되게 마련이다. 또한 거기에 해당 기업이 제대로 훈련되고 경험되어 있다면 진정성(Sincerity)도 부여 받게 된다. 만약 자신의 회사의 위기관리에 대해 “진정성이 없다”는 공중들의 반응을 받았었다면, 다시 한번 고민해 보자. 자사에게 진정성(Authenticity)이 없었는지 아니면, 진정성(Sincerity)이 부족했던 것인지 구별해 보자. 거기에서 큰 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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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32018 0 Responses

[The PR 기고문] 기복이 심하면 그건 진짜 실력이 아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학창 시절 기억을 되살려 보자. 반에서 1등짜리도 그렇지만, 전교에서 또는 전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친구들은 매번 시험에서 그 꾸준하게 일관성 있는 성적을 거둔다는 특징이 있다. 어쩌다가 운이 좋아 단 한 번 반에서 2~3등까지를 찍어 본 20등짜리 학생과는 무언가 다른 일관성이 있었다. 성적에 기복이 없다는 것이다.

시험 준비를 별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전교 1등짜리 친구 녀석이 바로 그랬다. 쉬는 시간에 곧잘 농구도 하고, 방과후 아이들과 라면집에서도 어울리던 그 녀석은 항상 입에 “이번엔 시험 공부 많이 못했다. 큰 일이야”라는 중얼거림을 달고 살았다. 그러나 시험 당일 방과후 함께 답을 맞추어 보면 그 녀석은 별로 틀린 문제가 없이 완벽했다. 그것도 매번.

실력이라는 것은 기복이 없이 꾸준하게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그 때 하게 되었다. 시험 때마다 일희일비하는 학생들은 그 실력이 없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시험 범위를 잘 못 알았었다. 이번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이번에는 시험감독 선생님이 시험지를 너무 빨리 뺐어 갔다는 등등의 핑계도 실력이 없다는 증거였던 것이다.

점점 시간이 가며 기업이나 조직의 위기관리도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기관리를 잘 하는 기업에서는 자사가 위기관리를 잘한다 이야기하지 않는다. 위기관리 시스템을 자랑하는 보도자료도 내지 않고. 항상 무언가 모자라다 생각 하면서 지속적으로 노력 한다.

기업이나 조직의 수많은 위기 요소들 중 실제 위기로 발화되어 수면위로 떠 오르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알려져 기억되는 비율은 채 1%가 되지 않는다. 그 외 대부분의 위기요소는 사전에 관리되고, 방지되고, 약화된다. 그런 모든 노력이 위기관리다. 이런 위기관리 활동이 꾸준히 수면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알려지는 위기의 수나 비율은 그나마 관리되고 있다 볼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일이 터졌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 그건 사실 의미가 맞지 않는 말이다. 어떻게’일’이라는 것이 스스로 터질 수 있나? 일은 사람이 터뜨리는 것이다. 반대로 일을 터뜨리는 사람이 없다면 일은 터지지 않는다. 일을 터뜨리지 않게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이 곧 위기관리이기도 하다.

그러한 지속적인 위기관리 속에서도 몇몇 기업들은 반복적으로 연이어 문제를 터뜨리는 것을 보게 된다. 다른 기업이 한 개의 문제를 터뜨릴 때, 어떤 기업은 두 세 개 이상의 문제를 터뜨려 세상을 떠들썩 하게 놀라 킨다. 문제를 터뜨리지 않는 기업과 문제를 계속 터뜨리는 기업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간단히 말해 위기관리 역량에 있어 전교 1등과 전교 50등의 차이라고나 할까? 기복이 있다면 더더욱 그 차이의 원인은 궁금해진다.

기복이 있는 그리고 심한 기업의 위기관리 역량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CEO가 바뀌면 위기관리 역량도 바뀐다.

이런 기업의 경우 완전히 바뀐다. 매뉴얼 구조가 바뀌고,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바뀐다. 외부 자문 그룹도 바뀌고, 심지어 보고하는 포맷조차 바뀐다. 새로운 CEO의 경험과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전과 동일한 위기에 대한 대응도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작년까지 쉬쉬하고 홍보실의 짧은 코멘트로 가늠하던 논란이 새로운 CEO가 오시면서 CEO가 주최하는 대대적인 사과 기자회견으로 가늠된다. 적폐라는 말이 튀어 나오고, 철저히 개선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뀌지 않은 직원들은 어리둥절해 진다.

둘째, CEO는 그대로 인데, 위기관리 철학이 그때 그때 바뀐다.

한번은 CEO께서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 가셔서 고개를 숙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위기 때는 움직이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지난 번에 그렇게 하셨으니, 이번에도 그리 하심이 어떠신가를 말씀 드리지도 못한다. 그 때는 왜 그랬고, 이번에는 왜 다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홍보실도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한다. 다음 번에 또 유사한 위기가 발생되지 않기만 기도한다.

셋째, 위기관리 위원회에 경험 있는 임원들이 적다.

대표이사가 젊다고 평소 홍보를 열심히 했다. 언론에서 젊은 대표의 성공신화를 찬양한다. 그러다가 위기가 발생했다. 대표이사가 젊어서인지 주변 임원들도 젊다. 생애 첫 번째로 경험해 보는 대형 위기다. 평소 일부 임원들이 개인적인 모임에서 들어 봤던 위기관리 전략과 대응 방식을 기억해 낸다. 각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창의적으로 대응하려 애쓴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집중해서 드라마틱한 결과를 얻어 낸다. 다음 번에는 어떻게 잘 해 낼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든다.

넷째, 자사의 위기와 위기관리 히스토리를 잘 모른다.

어렴풋이 자사에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있다. 위기가 발생해서 알음알음으로 오래된 문서 파일을 얻어 열어보니, 예전 홍보실이 만든 부정기사 대응 매뉴얼이다. 이건 위기관리 매뉴얼이 아니다. 더구나 기자들이 우리 회사에게 몇 년 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내부에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래된 기사를 찾아 봐도, 무슨 일이었는지가 구체적으로 떠 오르지 않는다. 당연히 당시 누가 무슨 대응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다시 새롭게 위기대응을 한다.

다섯째, 관리 역량 이상의 큰 위기를 그대로 방치한다.

실제 발생되면 그 때에는 무슨 별 수가 있겠어? 그냥 최악의 상황이 되는 거지. 이런 위기를 알면서도 방치한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방치할 수 밖에 없는 위기유형이다. 일반적으로 오너 관련 위기가 그렇다. 그 외에도 핵심 경쟁력과 관련된 위기 유형들도 비슷하다. 단순하게 해당 위기가 스쳐 지나가면 어느 정도 위기관리도 가능해 보이는데, 제대로 정통으로 터지게 되면 감당이 안될 것이 뻔하다. 그 때가서 한번 생각해 봐야지 하는 마음이 평소 지배한다.

여섯째, 매뉴얼을 따르기 보다 트렌드를 따른다.

위기가 발생하고 나면 주변에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찾는다. 임원들이 트렌디 하게 여론을 선도하고 있다는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특히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 온다. 소위 말하는 밀어내기, 물타기, 댓글 달기, 바이럴 등등 정치권 뉴스에서나 들어 봤을 법한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실질적인 위기대응은 왠지 버겁고, 일단 여론을 좀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시도한다. 매뉴얼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일단 최근 트렌드가 그러니 따라가 보자는 거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본다.

일곱 째, 매번 미신을 믿는다.

위기관리에는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알고는 있다. 그러나 그런 원칙이 우리에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대신 여러 편법과 창의적인 어프로치가 국면을 전환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누구는 ‘가만히 있으시라’한다. 누구는 ‘대표가 앞에 빨리 나서시라’한다. 누구는 ‘내가 힘을 좀 써 줄 테니, 잠깐 기다려 보라’한다. 행동은 마비되고, 믿음만 앞선다.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상황이 관리 될 텐데, 여러 조언들이 상호 출동하고 복잡 다단하다. 일단 문제를 뒤에서 해결해 준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봐야지 하는 미신이 위기관리를 지배한다.

여덟 째, 잘 못된 방식으로 위기관리 역량을 키우려 한다.

들어보니 정치권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 보라고 한다. 일간지하고 방송사 출신 임원들도 좀 뽑아 놓아야 한단다. 검찰하고 국세청에 공정위, 감사원 출신 인사들을 영입해 보라고 HR임원에게 지시한다. 어떤 로펌에 관련 기관 출신 인사가 있는지를 알아 보면서, 어떤 로펌이 더 힘을 잘 써줄 수 있는지를 비교 평가한다. 관계는 구입하면 되고, 사람도 사서 쓰면 된다고 믿는다. 이번 만 어떻게 잘 넘기면 그때부터 무언가 제대로 된(?) 조직을 꾸미겠다는 결심을 한다.

아홉 째, 부서 간 사일로(silo)가 강하다.

작년에 한번 위기를 겪고 나서 감사부서하고 대관부서 홍보부서에게 협업체를 꾸리라고 대표이사가 지시 했다. 올해 초에 다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해서 그 협업체가 챙겨서 좀 처리하라고 했더니, 감사와 대관 임원이 금시초문 처럼 이야기한다. 그나마 홍보임원이 협업체계가 가동하지 않는 것이 감사쪽 임원이 바뀌어서 그랬다고 올해 상반기 까지는 가동시키겠다고 보고를 한다. 대관 임원은 그대로 인데, 그 임원은 왜 금시초문 인 것처럼 이야기하는지는 오리무중이다. 평소에 서로 아무 커뮤니케이션도 없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한다.

열째, 이상의 기복 원인에 대한 반면교사가 부족하다.

사실 반면교사가 있고, 지속적인 개선과 업데이트만 있어도 기복은 적다. 최소화는 된다. 이상의 여러 기복의 원인들을 한 두 개 이상 골고루 경험하고도 새로운 위기를 맞으면 또 다른 새로운 원인들 때문에 또 다른 기복을 경험한다. 그 후에도 이는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된다.

다른 회사가 위기관리를 한다고 하면서 황당한 대응을 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어 한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면서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삼는다. 그러나, 그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비슷한 위기를 맞아 그와 유사한 위기관리를 한다. 저번에는 우리가 이렇게까지는 하지는 않았는데, 왜 이번에는 이럴 수 밖에 없었는가 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내 사라진다. 어느 한 두 부서의 잘못이라는 평가가 너무 부담된다는 표정이다.

기복이 있는 시험 결과에는 이렇듯 언제든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 다양한 이유를 찾아 정확하게 하나 하나 개선하면 그 다음 시험에서는 기복을 줄일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한다. 재미있는 것은 기복이 없는 시험 결과에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냥 예전처럼 해 왔을 뿐이라는 것이 전부다.

기업이나 조직의 위기관리에서도 그런 ‘예전처럼 꾸준히 해 오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좀더 많아 지기를 바란다. 매년 그렇게 노력 하고 있다. 꾸준히 개선해 나가고 있다. 열심히 훈련하고 시뮬레이션 하면서 여러 이슈를 살피고 있다.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많아 지기를 바란다.

성적이 나쁜 것은 사실 부끄러운 것이 아닐 수 있다. 원래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자기 재능에 열심인 학생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학교 공부에 관심이 있으면서, 매번 시험 결과에 기복이 심한 학생은 최소한 부끄러워할 필요가 있다. 이전 시험에서 그리 잘 할 수 있었다면 이번 시험에서도 잘 할 수 있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전 시험에서 그리 잘 못했다면, 이번 시험에서는 잘 할 수 있게 노력했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험 성적에 있어서 빵점과 백점을 넘나드는 큰 기복을 보이는 학생들은 이상한 학생이다. 부끄러워하기 보다 진짜 무엇이 스스로에게 문제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렇듯 최소한 이상한 기업이나 조직은 되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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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 기고문] 위기관리를 위한 독재는 필요하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독재(獨裁)라고 하니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위기 시 기업 내에는 어느 정도 독재자가 있어야 위기관리에 성공하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독재라는 표현을 써 봤다. 원래 독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 또는 집단이 모든 권력을 쥐고 독단적으로 지배하는 정치형태’을 의미한다.

더 알아보면 어원적으로 공화정 로마의 관직인 독재관(獨裁官)(dictator)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독재관이라는 직책은 상설의 관직이 아니라 전쟁이나 내란 등의 비상사태에 기간을 한정하여, 정치적 권한을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제도였다. 말 그대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특수 직책이었다.

기업 위기관리에서도 이 독재 체계와 독재관이라는 특수직책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위기관리 매뉴얼에서 위기관리팀 또는 위기관리위원회의 장(長)을 명기해 놓고 그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기술해 놓는다. 대체적으로 위기 시 모든 의사결정권한을 그에게 집중하는 방향으로 위기 시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평시 기업의 경영활동에서도 이 독재의 의미가 살아 있는 기업의 경우에는 대부분 위기 시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피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평시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경우 위기 시 리더십의 분산으로 많은 고통 받는 문제가 발생한다.

평시 경영에 참여한 다수에 의해 민주적 토론과 합의를 거쳐 차근차근 의사결정을 하는 습관이 베인 기업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런 기업의 CEO인 경우, 위에서 말한 독재라는 개념이나, 위기 시 독재관으로서의 역할에 별로 익숙하지 못하다.

위기가 발생한 직후에도 그런 습관은 이어진다. 매뉴얼에 따라 위기관리위원회를 소집했음에도 매뉴얼에 명기되어 있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도출하지 못한다. 위기관리위원회에 소속된 각 부서장들로부터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보와 의견을 듣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 몇몇 부서가 대응 전략과 방식에 이견을 보이게 되면 그 쟁점을 상당시간 풀어내지 못한다.

외부 상황과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요구는 계속 증대되면서 변화해 나가는데, 내부적으로는 그 조차 쫓아가지 못한 채 내부 토론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평시에 그랬던 의사결정 습관이 위기 시에도 그대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위기 발생 후 첫 번째 초기 대응에 실패한다.

이런 기업은 일단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고 뒤늦은 실행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다양한 의견이 합의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 시간이 소요되는 법이다. 그러한 다량의 물리적 시간은 위기 시에는 부정적인 의미의 사치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면 더 빨리 대응 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위기관리 현장에서 미리 준비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실행을 지연시키면서 이어지는 토론만큼 황당한 것이 없다.

또, 이런 기업은 첫 대응에 있어 적절하지 못한 대응을 할 가능성이 많다. 장기간 토론을 거쳐 결정된 실행은 일반적으로 보수적이라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저런 다양한 실행의 문제들이 검토되고, 실행을 했을 때 새롭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하나 하나 점검하기 때문에, 실제 실행은 김빠진 맥주와 같은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과감성이 희석된 실행이 많다는 의미다.

이렇게 의사결정에 있어 독재가 없는 기업의 또 다른 문제는 초기 실행이 뒤늦고 적절하지 않았음에도 그 이유를 찾거나 개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모두 대응을 위한 토론에 참여해 있었고, 그 길고 긴 토론을 거친 후 결정된 싯점과 실행 내용에 다 같이 합의 했다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고안해 낸 실행의 싯점과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이해관계자들의 비판에 스스로 동의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내심 ‘우리도 나름대로 고민 해 결정한 것인데, 그게 왜 비판 받아야 하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연히 개선이나 수정 실행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게 된다.

의사결정 과정에 독재가 존재하지 않는 기업의 경우 매뉴얼에 명기되어 있는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역할과 책임도 매뉴얼상에서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직책은 대표이사나, 수석부사장 같이 고위 직책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 독재력을 발휘 하지 못하는 구조하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평시 누가 누구를 강제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위기 시 부서별로 나누어진 역할과 책임의 실행을 강제하지 못한다. 누군가 스스로 나서서 협조해 주고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의지를 실현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 이런 기업의 경우 아무도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위기 시 말 그대로 리더십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지속되는 위기대응 회의와 회의 속에서 의사결정그룹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반면, 일선에서 실행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 직원들은 스스로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대증적인 대응에만 매달리게 된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중장기적 방향성을 가진 안정된 메시지가 공유되지 않는다. 대신 일선 창구 담당자의 단편적인 애드립이 계속 이어진다. 당연히 이해관계자들은 그에 다시 분노하게 되고, 문제는 증폭된다. 이런 경우 일선 직원들이 무능한 것이 아니라, 일선직원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이라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상황을 만든 내부가 문제의 핵심이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위기관리를 한다고 하는데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 판단되면, 이내 각 부서별 대응이 일선의 단편적 대응으로 이어지게 된다. 문제는 이때부터 또 발생한다. 이때부터는 부서별 사일로(silo)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지난했던 그간의 대응 토론이 쓸모 없었다 생각되는 순간부터 부서별 대응 조급증은 극대화 된다. 이미 놓쳐버린 타이밍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기 때문에, 빠른 선제적 대응을 고민하게 된다. 각 부서별로 각자가 비슷한 대응을 고민하고 준비해서 각자 실행한다. 당연히 엇박자가 생기고, 상호 충돌이나 중복이 큰 흐름을 이루게 된다. 서로가 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예 모르면서 실행에만 열중하게 되는 희극이 벌어진다.

만약 위기를 맞은 기업에게 독재 개념이나 독재관의 역할과 책임이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선, 위기가 발생 했을 때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대응이 빠르다. 만약 준비되어 있었다면 더더욱 그 대응은 빠르고 정확해 진다. 독재관의 역할을 맡은 최고의사결정권자가 고도로 훈련 받은 사람이라면, 초기 대응은 완벽에 가깝게 실행에 연결이 된다.

빠르게 진화하면서 자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이해관계자들의 변화를 독재관은 보다 신속하게 취합 보고 받을 수 있다. 지난한 토론보다는 정확한 정보의 취합과 보고 과정을 통해 보다 과감한 대응과 지속적인 수정 대응이 가능해 진다. 이때부터 위기관리위원회에 참여한 많은 부서장들은 그 독재관을 중심으로 정보 취합, 전달, 의사결정 지원에만 우선 집중하게 된다.

만에 하나 초기 실행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면, 그에 대한 수정 대응이나 개선도 보다 용이하게 된다. 독재관 스스로 초기 실행에서 발생한 문제를 그대로 인정하기만 하면 끝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럿이 문제를 모두 함께 인정하는 것 보다는 이견의 여지가 적어지게 마련이다. 보다 신속한 수정과 개선이 가능해 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의사결정과정 전반에서 독재관의 실질적 리더십은 점차 강화된다. 일부 초기 대응의 문제가 있었다 해도, 그 이후 신속한 수정과 개선이 잇따르게 되면서 위기관리는 어느 정도 안정화를 기할 수 있게 된다. 위기관리위원회를 구성하는 각 부서장들도 독재관의 의사결정 지원에만 집중하면서 부서별 실행 관제 역할을 맡게 되므로 위기 시 리더십을 독재관에게 의지하게 된다.

독재관은 지속적인 내부 공유와 관제를 바탕으로 부서별 대응 실행에 있어 사일로를 상당수준 방지할 수 있다. 각 부서별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공유되면서 독재관은 물론 각 부서장들이 서로 각자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놓친 트라우마나, 잘못된 초기 대응의 개선 수정이 불편하다거나, 조급증과 사일로 등 모든 것이 독재관 체계에서는 상당부분 극복된다. 물론 독재관 스스로 위기 시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부담은 존재한다. 그러나 반대로 위기관리가 제대로 되었을 경우에는 스스로의 리더십이 빛날 수 있다는 기회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독재관의 역할은 기업 오너가 맡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기업 오너가 충분하게 권한을 위임한 대표이사가 그 독재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의사결정에 있어서 이 독재관의 역할과 책임은 보장받게 되고, 지속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로 조직이 이루어진 특수집단의 경우에는 이런 독재관 체계가 존재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 고민이다. 수평적인 조직 구조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조직이라면 더더욱 취약하다.

그 대표적인 조직형태가 대학과 병원 그리고 종교단체다. 대학의 경우 위기관리를 힘들어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위기관리를 위한 독재관의 역할을 할 직책자의 부재를 꼽는다. 형식상 대학총장이 그 독재관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는 그 독재관의 리더십을 따르지 않는 강한 팔로워들이 위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 각기 대응 전략과 방식을 가지고 토론에만 주로 집중하면서 골든타임을 보내는 현상이 그래서 발생한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의료원장이나 병원장이라는 직책이 독재관의 역할을 해주어야 위기를 관리 할 수 있게 될 텐데, 실제로 그런 강력한 리더십은 좀처럼 보기가 힘들다. 각 전문분야 시니어 의사들이 독재관 한 명의 의사결정에 동의하려 하지 않는다. 독재관의 대응 지시에 대해서도 각자 이견이나 불만을 표하게 되면 상황은 관리하기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종교단체나 협회 같은 특수집단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똑같이 독재관 체계가 존재할 수 없는 구조로, 위기관리에는 시종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조직 체계를 가지고 있다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상당히 많은 위기관리 실패 사례가 이와 같은 조직 체계를 가진 단체에서 발생한다.

이해하기 쉽게 군대에 비유해 보자. 적군과 전쟁을 해야 하는 조직이 군대다. 적이 전쟁을 개시해 오면 그에 대응해서 몇 분내에 의사결정 해 군대를 움직여야 살아남는다. 이런 몇 분 내 대응이라는 의사결정은 이미 미리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이 이렇게 할 경우 우리는 이렇게 대응 한다는 준비된 대응 방식에 따르기 때문에 의사결정에서 실행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게 된다. 독재관인 지휘자는 그에 따라 스스로 명령을 내린다.

그렇지 못하고, 적이 전쟁을 개시해 왔을 때, 지휘부가 모두 모여서 각자 상황에 대한 토론을 하고, 상호간 합의를 도출 해 대응을 결정한다고 한번 상상해 보자. 쏟아지는 적군의 미사일 포화 속에서 우리 군의 일선은 대응 타이밍을 놓치게 될 것이다. 지휘부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선의 대응은 체계성을 가지기 힘들게 된다.

한마디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 그대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초전에 제대로 대응 하지 못하고, 전세가 지속 악화되면 각 예하부대들은 각자 살기 위해 지역적인 대응을 하게 된다. 더욱 더 중앙에서 전세를 파악하기는 힘들게 되고, 각 부대별로 다른 부대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 채 싸우는 사일로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은 피해야 한다.

위기관리위원회가 양질의 정보를 충분히 공유하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원론적으로는 지향해야 하는 위기관리 체계다. 그러나, 때때로 오너나 대표이사는 위기 시 독재관으로서 위기관리위원회를 물리고 홀로 판단해 결정해야 할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철저하게 독재 개념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성공했던 위기관리 리더십은 대부분 지루한 토론이나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합의 결정된 리더십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업의 철학과 원칙에 기반했다면 그 독재관의 의사결정은 당연히 존중 받고 평가 받아야 한다. 그가 경험 있고 제대로 훈련 받은 자라면 더더욱 그의 의사결정은 탄탄하게 실행에 연결 될 수 있어야 한다. 독재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조직과 독재관 스스로 공히 준비되어 있다면 위기관리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체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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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32018 0 Responses

[The PR 기고문] 들킨 기업, 들킬 기업 그리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미국 위기관리 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기업이 있다. 위기를 경험 한 기업과 위기를 경험 할 기업이다” 즉, 어떤 기업도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위기를 일단 경험한 기업은 그 위기로부터 반면교사를 찾아 다시 동일한 위기를 경험하지 않게 노력하라는 의미다.  또한 앞으로 위기를 경험할 기업은 미리 준비해서 더 나은 위기관리에 힘쓰라는 의미다.

이 명언에서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위기를 ‘경험 한’ 기업과 ‘경험 할’ 기업이라는 표현이다. 분명히 위기를 ‘만든 기업’과 ‘만들 기업’이라는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특정 기업이 위기를 단순히 ‘경험’하는 것과 위기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죤슨앤죤슨은 위기를 만들지 않았다

‘위기를 경험한다’는 것은 위기의 원인이나 책임 대부분이 기업에게 있지 않을 때 사용 가능한 표현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수 십 년간 위기관리 성공 케이스로 이야기하는 죤슨앤죤슨의 타이레놀 케이스를 기억해 보자. 그 케이스에서 죤슨앤죤슨은 해당 위기를 발생시킨 주체가 아니었다. 독극물 타이레놀 사태를 일으킨 주체는 악의를 품고 정상 제품에 독극물을 넣은 범죄자였다. 죤슨앤죤슨은 일종의 피해자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십을 보이면서 환자와 그 가족들을 보호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핵심이다. 죤슨앤죤슨은 해당 위기의 원인이나 책임에서 자유로웠다. 이런 경우 ‘죤슨앤죤슨은 위기를 경험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만약 죤슨앤죤슨이 생산 부실로 독극물이 포함된 타이레놀 제품을 시중에 판매하다 소비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 어떨까? 만약 죤슨앤죤슨 직원의 실수로 문제의 타이레놀을 생산 판매했었다거나, 죤슨앤죤슨 경영진의 지시로 비용절감을 위해 용량을 달리하다가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런 경우에는 우리가 단순히 ‘죤슨앤죤슨은 위기를 경험했다’는 표현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절대 그렇게 부를 수는 없다. 이런 경우 ‘죤슨앤죤슨은 위기를 만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위기를 만든 기업이 문제다

위기를 만든 기업이라는 의미는 위기관리 관점에서 대부분 평시 위기에 대한 개념이나 관심이 전혀 없는 기업들을 일컫는다. 경영적 의사결정은 물론 일선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과정들에 걸쳐 전혀 위기관리 마인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다.

최근 케이스들을 보자. 얼마 전 모 대형 병원에서 신입 간호사들에게 원내 행사장에서 걸그룹 댄스를 공연하게 하다 논란이 된 경우가 있었다. 선정적인 복장을 입게 하고, 간호사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선정적인 춤을 추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병원측은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고, 사려 깊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했다. 어떻게 수년간 그런 문제의 전통이 이어졌는데도 해당 병원 내 의사결정자들은 한번도 문제 가능성을 인식하지 않았을까? 문제 소지는 예상했어도 개선 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런 병원의 케이스를 보면 이 병원은 위기를 경험한 기업이라기 보다는 위기를 스스로 만든 기업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어떤 기업은 생산 과정에서 오염된 식자재를 정상 제품에 섞어 쓰다가 크게 논란이 되었다. 이런 경우에도 사내에서 그 누구도 이런 생산 관행이 문제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물론 누군가 문제를 지적했었지만 개선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생산 시설에서 일하던 내부고발자가 해당 관행을 언론에 제보하고 난 뒤에 이 기업은 허둥지둥 위기관리에 나섰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위기를 만들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사려 깊지 못한 것은 곧 죄

평소 조금만 사려 깊었으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으면, 조금만 개선했으면 이런 위기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이와 비슷한 사려 깊지 못한 관행을 계속하고 있는지 모른다. 유사한 위기와 논란은 계속 이어져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또 다른 개념인 ‘위기를 만들 기업’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 일까? 이전에 두 가지 케이스를 들었다. 신입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걸그룹 댄스 공연을 시켰던 병원과 오염된 식재료를 재활용했던 기업 케이스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한 호텔에서는 지난 송년회에서도 신입 직원들에게 그 병원과 동일한 걸그룹 공연을 요구했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바로 몇 달 전에 동일한 논란을 목도했음에도 그 호텔은 전혀 그 문제에 공감하거나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신입들은 그렇게 해 왔는데, 이게 무슨 문제냐 하는 식의 분위기라고 전해 들었다.

오염된 식재료를 재활용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식약처나 여러 규제기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안다. 그런 생산 관행을 계속 유지하는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이런 기업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곧 ‘위기를 만들 기업’이라는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위기로까지 대두되지는 않았지만 빠르면 다음달에서 올해 내 한번 정도는 위기를 만들어 낼 기업이 될 수 있다.

들킨 기업과 들킬 기업이라는 비아냥

그러다 보니 기업 위기관리 매니저들은 ‘우리나라에는 들킨 기업과 들킬 기업 이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농담을 한다. 위기를 만드는 기업과 위기를 곧 만들 기업간에 공히 적용되는 말이다. 위기를 만들다가 들키면 위기를 만든 기업이 되는 것이고, 들키지 않았다면 위기를 만들 기업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상당한 냉소다. 대체 기업들이 얼마나 위기관리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도 없다는 의미인가? 국내에서 발생한 여러 위기 케이스들을 살펴 보자. 기업들은 대부분 이미 전례가 있었고, 상당히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아주 익숙한(?) 위기를 계속해서 반복 경험하고 있다.

어느 기업에게도 전례 없던 생소한 위기만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고객개인정보 유출 케이스를 보자. 전혀 생소하지 않다. 이미 사회적으로도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고객정보유출 위기를 경험하는 기업들은 끊이지 않는다. 뻔하게 알고 있는 위기인데도 생소한 듯 이어서 돌아가며 경험한다.

기업 오너들의 직원 폭행이나 폭언 유형도 보자. 이제는 거의 놀랍지도 않을 만큼 익숙하다. 이미 관련된 많은 기업 오너들이 언론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검찰에 소환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다른 기업 오너가 유사한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진짜 그럴까? 앞으로는 기업 오너의 직원 폭행이나 폭언 논란이 사라질까?

갑질 논란도 마찬가지다. 영업망을 통해 밀어내기를 하고, 영업대리점들을 압박하고 폭언하고 하는 관행들이 얼마나 자주 문제가 되었나? 그로 인해 대표이사가 실형을 판결 받고,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받고 하는 위기가 얼마나 많았나?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그와 유사한 갑질 논란을 더 이상 볼 수 없을까?

전혀 새롭지 않은 위기를 놀라며 맞는 기업들

기업들은 동일한 위기를 반복해서 그리고 서로 돌아가며 경험한다. 아니다. 정확하게는 동일한 위기를 반복해서 그리고 서로 돌아가며 ‘만들어’ 낸다. 우리가 특정 위기와 관련해 아는 기업은 ‘들킨 기업’일 뿐이다. 그렇다면, 국내에는 동일한 위기를 지금도 만들고 있는 수많은 ‘들킬 기업들’이 존재 하고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필자가 종종 기업 임원들과 위기관리 워크샵을 하면서 질문하는 것이 있다. “이 내부 이슈가 만약 언론을 통해 보도 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라는 질문이다.  많은 임원들이 각자 위기에 대한 정의와 위기관리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정리해 보기 위해 하는 질문이다. 임원들은 누구나 언론에 대한 인식이나 두려움이 있어 이런 질문은 대체적으로 유효하다.

만약 그러한 질문에 “(언론에 보도 된다면) 큰일이 나겠지요. 아마 소비자들로부터 소송이 이어질 것입니다. 규제기관이 개입해서 검찰 조사도 받을 거고요. 매출이 완전히 하락해서 회사 존립도 위태로워 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답변이 나오면 그 내부 이슈는 엄청나게 위험한 위기요소라는 의미다. 그에 더 이상 이의들은 없게 된다.

그렇다면 그 회사는 위기요소로 까지 받아들여지는 그 내부 이슈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거나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가? 누가 리드하고 책임지고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인가? 이런 논의가 이어져야 위기는 관리될 수 있다. 그런 기업은 위기관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언론에 보도되어도 떳떳한 기업이 되자

무엇보다도 가장 위기관리를 잘하는 기업은 언론에 어떤 내부 이슈들이 보도 되어도 항상 떳떳할 수 있는 기업일 것이다. 내부 이슈 하나 하나가 이미 위기관리 관점에서 문제 없는 것들로 이어질 때 가능한 경지다. 사소해 보이는 문제도 바로 감지해 개선하고 트레킹하는 체계가 갖추어진 기업일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매번 내부이슈가 불거지면 노심초사하며 언론이나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만 하는 기업들도 있다. 심지어 홍보실을 위기관리센터라고 부르면서 자사의 이슈가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방어하고, 보도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만 지속하는 기업들이 있다.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들킬까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이 많은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새롭게 시작된 2018년에는 우리 기업들이 들킨 기업과 들킬 기업이라는 비아냥에서 좀더 자유로워 졌으면 한다. 사내 주변을 돌아 보면서 위기관리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공유해 보았으면 한다. 저 회사가 경험한 위기를 우리 회사는 절대 똑같이 경험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생겨났으면 좋겠다.

2018년에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

한번은 기업도 실수 할 수 있다. 그 위기 경험이 앞으로 큰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최고경영자로부터 일선 직원들에 이르기 까지 한번 경험한 위기는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경험 할 수 있는 위기들이 과연 어떤 것 들인가 미리 예상하고, 불필요한 위기 경험을 피해 나가는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행복하고, 규제기관이 할 일이 없어지고, 시민단체들이 만족하며, 직원들이 안정감을 가지는 그런 기업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만약 과거와 같이 새해에도 다름이 없다면, 위기를 만든 기업과 만드는 기업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들킨 기업과 들킬 기업들로 사회는 더욱 어지러워 질 것이다. 그에 더해 들킨 기업과 들킬 기업으로 양분되던 냉소에 한 유형의 기업이 더 늘어 날 것이다. ‘반복해서 들킨 기업’이 그 유형이다.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미 여러 위기 케이스를 통해 일반 공중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또야?”라고 말하는 기업 위기 케이스들이 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바로 ‘반복해서 들킨 기업’이다. 이런 기업에는 심지어 아주 경험 많은 위기관리조직까지 존재한다. 아이러니다. 위기를 예상하고 준비해서 위기를 사전에 관리한 경험이 많은 위기관리조직이 정상이다. 동일한 위기를 자꾸 반복해 관리 하다 보니 경험이 쌓여버린 위기관리 조직이라면 말은 다한 것이다.

“실수를 반복한다면 이는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결단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내에 존재하는 ‘위기유발 의지’를 이길 수 있는 ‘위기관리 역량’은 있을 수 없다.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결단이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2018년에는 지난 해보다 훨씬 더 크고 적극적인 위기관리 의지와 결단이 생겨났으면 한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해지고 편안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 들킬까 두려워하는 그 고통이 모두 없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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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32018 0 Responses

[The PR 기고문] 조직 내 상위 1%가 위기관리를 성공시킨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여러 기업의 요청을 받아 위기관리 강의나 워크샵에 참여해 보면, 그런 교육 훈련에 참석한 직원수의 99%는 팀장급과 그 이하 직원들이다. 물론 계약을 맺고 실제 위기관리 서비스가 진행될 때에는 대표이사와 핵심 임원들과 마주하게 되지만, 평시 위기관리 교육과 훈련에 상위 1%인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참여해 열심을 보이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일부 기업에서는 임직원을 모아 놓고 하는 위기관리 강의에 대표이사가 참석해 강의 전 마이크를 들고 잠시 위기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대표이사께서 직접 위기와 위기관리에 대한 인사이트를 직원들에게 설명하시는 것이 참 보기 좋다. 그러나 그런 경우 대부분의 대표이사께서는 강의 직전 자리를 뜨신다. 핵심 임원들 다수가 대표이사를 따라 움직인다. 결국 위기관리에 대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남아있는 99% 일반 직원들이다.

클라이언트를 위해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할 때 필자는 클라이언트사 대표이사와 핵심 임원들과 마주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분들 상당수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직원들의 위기관리 마인드가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일선 직원들이 위기 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좀 알아야 하니 잘 부탁 드립니다.” “이번 기회로 우리 직원들이 위기관리를 잘 할 수 있도록 준비되었으면 합니다.”

그분들은 회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일반 직원들의 위기관리 마인드와 역량에 주로 관심을 보인다. 다양한 최근 사례를 들면서 “A회사 같이 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B회사 같은 경우도 직원들이 그런 짓을 저질러서 큰일을 치르지 않았습니까?” “직원들이 좀 스스로 깨쳐야 위기가 관리될 것 같습니다.”라는 평을 하기도 한다. 대표이사와 임원들의 이런 생각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 팀장들과 위기관리 업무를 실행하는 일선 직원들과의 이야기다. 회사 조직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그들에게서는 위기관리와 관련해 이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상황이 발생되면 일단 저희 일선에서는 초기 대응에 집중하고 추가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단이 잘 안 서는 게 문제입니다.” “매뉴얼에 따라 상황 보고를 하고 대응 방향이 정해지길 기다리는데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립니다. 어떤 때는 끝까지 대응 전략이나 방향에 대한 의사결정이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에서 결정만 해주시고 포지션만 확실하게 정해주시면 실행은 저희가 하죠. 실행은 사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상당히 다른 생각이다. 상위 1%의 위기관리 관심과 우려는 나머지 99%에게 있는 반면, 반대로 위기관리에 대한 99%의 관심과 우려는 상위 1%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조직 내에서 왜 이런 다름이 존재하는 것일까? 과연 상위 1%의 시각이 정답일까? 아니면 나머지 99%의 시각이 정답일까?

위기관리 컨설턴트로서 매번 마주하는 딜레마다. 하지만, 여러 기업과 함께 위기관리 업무를 해 오면서 그런 유사한 딜레마 간극을 좁히는 작업을 통해 얻은 결론은 하나다. 상위 1% 리더들이 위기관리 성패를 가른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기업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들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검증 되고도 있다.

왜 조직 내 상위 1%의 역량이 위기관리 성패를 나누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를 정리해 보자.

첫째, 위기관리란 업무는 상당부분 ‘정치적’ 행위다.

기업들 중 실제 정치권과 같은 수준의 사내 정치로 조직 내 군웅할거가 존재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위기관리 관점에서 ‘정치적 행위’란 그런 의미의 정치는 아니다. 위기관리 실행팀 차원에서는 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기관리 목적에 먼저 주목하게 된다. 이번 위기를 통해 조직 내에서 자신이 잃을 수 있는 부분과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부분을 따지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곧 위기 시 위기관리의 목적에 있어 조직의 것과 실행하는 개인의 것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해서 같은 조직 내에 있는 자라면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 같은 목적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길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같은 의사결정과 지시에도 반응하는 실행 직원들의 격차는 다양해 진다. 일사불란함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상위 1%의 역량이다. 그들 스스로 정확한 위기관리 목적과 그에 기반한 실행의 원칙들을 강하게 강조해야 위기관리에 그나마 성공을 기할 수 있게 된다. 그 목적과 원칙을 따르지 않는 조직원들에게는 그에 상응한 사후 평가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또한 상위 1%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직원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실행팀이 있으니 제대로 할 것이다”는 막연한 기대가 실제 위기 시에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 이유 대부분이 위기관리 시 직원들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주목과 관심이 부족한 상위 1%의 위기관리 리더십 때문이다.

둘째, 위기관리는 고품질의 정보와 첩보가 기반이 돼 주어야 한다.

위기관리는 물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있어 상황과 관련된 시의적절하고 정확한 정보의 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그러나 현장의 문제는 그러한 강력한 정보 자산 대부분이 상위 1% 그룹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 안에 고여있다는 점이다.

이는 위기대응을 위한 큰 의사결정을 하는 의사결정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 자산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의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런 귀중한 정보 자산을 일선 실행팀과 전략적으로 공유하고, 업데이트하고, 이 자산을 실제 실행 역량으로 연결시키게 만드는 주체 또한 상위 1%여야 한다.

상위 1% 그룹에서 “왜 일선에서는 이런 내용도 알지 못하고 그런 실행을 했는가?” “직원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누가 함부로 그런 판단을 하라고 했는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거나.

반대로 나머지 99%에서 “그런 정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진작에 그 내용을 알았으면 그렇게 시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런 정보를 아무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는가?”하는 푸념이 나온다면 그것은 대부분 상위 1%의 사려 깊지 못한 위기관리 리더십 때문이다.

셋째,  저품질 의사결정그룹을 이기는 고품질 실행팀은 없다

상황관련 보고를 얼마나 빨리 받아 처리하는가에 위기관리 초기 성패가 달려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아무리 빠른 일선이라 해도 느린 의사결정그룹을 이길 수는 없다. 아무리 풍부한 정보를 취득해 보고했다 해도 아무런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조직에서 위기관리는 잘 되기 힘들다.

조직 내 상위 1%로 이루어진 의사결정그룹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의사결정이라는 것이 다 절차가 있고, 책임이 있는 것인데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상황과 관련한 여러 다양한 정보들이 모두 취합되어야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 어떤 의사결정이 맞는 것인지 숙고의 시간과 리스닝의 과정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위기관리의 신중함에 있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위기 시 대응을 위한 의사결정은 ‘일선에서 필요한 시기’에 맞추어 적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대응 커뮤니케이션을 개시하는 싯점을 가르는 기준이 ‘이해관계자들이 질문하는 싯점’이라는 원칙과도 유사하다. 일선에서 절실하게 원하는 싯점에 내려오는 의사결정이야 말로 위기관리를 성공으로 이끄는 최대 자산이다.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경우 이런 말들이 일선에서 나온다. “최초 보고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아무 지시가 없는 거지?” “대표이사까지 보고가 되기는 된 건가?” “상황이 계속 바뀌고 있는데, 이 상황 또한 지속 보고 해야 하는가? 아무런 피드백이 없어서 불안하다”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의사결정그룹의 느린 스피드는 물론 잘못된 의사결정 자체도 위기관리 실패를 이끄는 큰 이유다. 일선에서 “이런 지시가 어떻게 내려올 수 있을까?” “지시 받은 그대로 하게 되면 더욱 더 상황은 악활 될 텐데 어쩌나?” “이건 문제가 있는 방향인데, 담당임원에게 다시 물어봐야겠다”는 반응들이 있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저품질의 의사결정그룹 만큼 위기관리 시 실무자들에게 무서운 대상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넷째, 비행기 사고 후 컨트롤 타워 개장은 아무 소용이 없다

평소 공항 활주로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수백 대라 치자.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관제탑인 컨트롤 타워는 그 모든 비행기들이 안전하게 뜨고 내릴 수 있도록 그들의 활동의 시종을 관제한다. 그들이 평시 하고 있는 활동 자체가 위기관리인 것이다.

만약 평시에는 관제탑이 정규 운영 되지 않고 있다가, 비행기들끼리 활주로에서 엉켜 사고가 나면 그 때 가서 관제탑이 운용되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자. 불타오르는 비행기와 활주로를 뛰어 다니는 승객들과 구조요원들을 관제한다는 목적이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컨트롤 타워가 분명 아니다.

우리 기업의 위기관리 컨트롤 타워도 한번 그에 비유해 보자. 기업 내에서 제대로 된 위기관리를 하려면, 평시에도 위기요소를 찾아내고 이를 관리하는 활동을 하는 컨트롤 타워 운용이 매우 중요하다. 이슈와 위기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트래킹 하면서 문제 발생 자체를 사전 관리하는 활동처럼 성공적인 위기관리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컨트롤 타워는 그래서 평시 규정된 활동을 지속 진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 구성원이 더욱 더 지속 훈련 받고, 토론하고, 시뮬레이션에 참여 해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실제 공항의 컨트롤 타워에서 일하는 전문 관제사들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잠깐 이야기한 것처럼 평시 교육 받지 않고, 훈련이나 시뮬레이션 경험이 부족한 상위 1%의 경우에 실제 위기 시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많은 의문이 드는 이유다.

조직 내 상위 1%의 교육, 훈련, 트레이닝, 시뮬레이션 경험의 양과 수는 나머지 99%의 그것을 훨씬 압도해야 맞다. 상위 1% 위치에 오르기 위해 20-30년을 노력한 핵심 임원들이라면 그래야 한다. 그들 스스로 완전하게 훈련되어 있어야만 위기 시 제대로 된 의사결정과 지시를 하달 할 수 있게 된다. 그 외에 급조된 컨트롤 타워가 위기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왕도는 없다.

다섯째, 위기관리는 예산과의 싸움이다

예산은 조직 내에서 곧 힘이다. 위기관리는 어떻게 보면 예산과의 싸움이다. 산속에 고립된 등산객을 찾기 위해 수백억 원짜리 구조전용 헬리콥터를 여러 대 띄우는 조직과 헬리콥터 운영 예산이 없어서 구조팀을 도보로 몇 시간씩 등산하게 하는 조직간에는 분명 상황관리 결과에 있어 차이가 있다.

“왜 위기관리가 이렇게 밖에 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에 “예산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또는 “저희에게 정해진 예산이 부족해서 그나마 그것이 최선입니다.” “저희 일선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예산은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라는 답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위기관리를 이끄는 상위 1% 의사결정그룹의 예산 지원과 결심이 실제 현장과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예산이라면 상위 1%의 의사결정그룹이 적극 챙겨 확보 해야 한다.

예산 지출 프로세스가 복잡하거나, 추후 내부 감사 주제로서의 우려가 있거나, 컴플라이언스 차원의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그룹은 조직 내 상위 1%뿐이다. 이런 실제적인 개념과 노력은 평시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전에 점검할 수 있다. 그 시뮬레이션 과정에는 필히 상위 1%가 존재해야 한다.

여섯째, 평시 관심과 투자 또한 1%의 몫이다

위기관리는 ‘마땅히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적시 하는 것’이라는 정의가 있다. 평시에 과연 우리 기업이 위기관리를 준비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가해야 하는가? 어떤 예산을 가지고 해야 하는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위해서는 또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가? 그리고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누가 어떻게 일사불란함을 유지해야 하는가 등등에 관한 것들을 스스로 하는 것이 곧 위기관리다.

이런 모든 중요한 관심과 노력과 투자는 기업 내에서 누구에 의해 결심되는가? 당연히 상위 1%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위기관리 성패는 상위 1%의 의사결정그룹의 역량에 따라 갈린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관심, 주목, 투자, 교육, 훈련, 시뮬레이션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상위 1% 처럼 취약한 위기관리 주체가 없다. 나머지 99%가 아무리 훈련되어 있어도 위기관리 전쟁에서 이기기는 힘들다. 이는 딱히 기업만이 아닌 모든 조직에게도 공히 적용되는 진리다. 현재 우리 기업들의 역량을 보면 상위 1%가 좀 더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99%는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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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2017 Tagged with , , , 0 Responses

[The PR 기고문] 위기 시 일반 공중과 싸우지 말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꼭 위기 시에만 싸우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평시에도 일반 공중과의 싸움은 기업에게는 금물이다. 일반 공중이라는 것 자체가 실체가 없다. 어렵게 싸워서 얻을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위기가 발생 해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위기관리 시기에 있어 일반 공중과의 전면전이나 집중적인 대결은 위기관리 주체인 기업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업에 위기가 발생되면 내부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사람들이 너무 이 분야를 잘 몰라”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들 한 마디씩 하니 미치겠네” “사람들이 정말 무식해, 합리적이지도 않고, 그냥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비판만 해대는군” “억울해서 미치겠어. 사람들이 왜 저렇게 벌떼처럼 몰려들까?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위기를 맞은 그 회사 내부에 들어가 있으면 이런 푸념들이 이해가 된다. 공중은 절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거나, 정보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거나, 차분하거나, 교양 있지 못하다. 이를 평소에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자주 강조하지만, 위기를 맞은 기업의 위기관리팀은 이내 그런 전제를 망각하곤 다시 똑 같은 푸념을 한다.

게다가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환경이 이런 푸념들을 자극한다. 예전에는 기업이 일반 공중의 비판을 피부에 와 닿게 느낄 수 있는 채널이 그리 많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했을 대 회사로 걸려오는 사람들의 항의전화나, 영업이나 매장 또는 거래처 일선에서 들어오는 이야기들, 홍보실을 통해 수렴되는 기자들의 이야기 정도가 일반 공중의 일부 여론을 감지할 수 있는 통로였다. 그나마 일선에 있지 않는 의사결정자들은 그 마저 간접적인 보고로 약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채널들이 실시간으로 왱왱대고 있다. 위기를 맞은 기업의 구성원 누구든 바로 몇 번만 클릭하면 생생한 날 것 그대로의 공중 반응을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보다 더욱 더 자세하고, 강렬하고, 아프고, 심각하게 느껴지는 비판을 두 눈으로 접하게 돼 버린 것이다. 당연히 간접적으로만 느끼던 의사결정자들은 일반 공중의 반응을 달리 보기 시작하게 된다. 실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공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당장 그들을 설득하거나 맞서지 않는다면 금새 회사가 망가져 버릴 것 같은 착시를 가지기도 한다.

흥분한 의사결정자들은 위기관리팀에게 “어떻게든 해보라”는 지시를 한다. 엄청난 산불이 번져오고 있는데, 위기관리팀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말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이 읽었던 이곳 저곳의 댓글을 읽어보라고 한다. 사실이 아닌 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회자되고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고 이야기한다. 일부에서는 악의적인 공중들이 보이는 데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든 통제해야 하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법무팀이 동원되고 로펌을 만나러 다니면서 대응을 위해 그 각각의 악의를 평가하기도 한다.

흥분을 가라 앉혀라

흥분을 조그만 가라 앉히고 기본으로 돌아가 보자. 현재 자사가 관리해야 하는 것이 위기 그 자체인지 아니면 일반 공중들의 비난과 비판인지를 먼저 갈라 생각해 보자. 일반 공중의 그러한 이상 행동들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기억해 보자는 것이다.

맞다. 위기의 내용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위기 그 자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이 골치 아픈 일반 공중들도 조용해 지지 않게 될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당면한 위기를 한 시간이라도 빨리 해결해 마무리 해야 일반 공중들의 이상 행동도 점차 잠잠해 지고, 그들로부터의 고통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위기가 ‘병’이라면, 일반 공중의 이상행동들은 하나의 ‘증상’일 뿐이다. 넘어져 팔꿈치가 크게 까졌다, 그래서 팔꿈치와 전신에 걸친 고통을 느끼고 있다 생각해 보자는 거다. 그 고통을 점차 없애기 위해서는 빨리 병원에 가서 까져서 피가 흐르는 상처 자체를 치료해야 한다. 그 뿐이다. 너무 아프다면 진통제를 먹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치료를 건너뛰거나 포기하며 진통제만 먹고 그 상처가 아물 때만 기다릴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간단한 우선순위와 역량집중에 대한 이야기도,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금새 잊어버리는 기업 위기관리팀이 있다. 일반 공중의 비난과 비판이 너무 아파서다. 위기관리의 핵심은 일단 차치하고, 자꾸 앞으로 나가 실체 없는 일반 공중들에게 하소연 하고, 해명을 시도한다. 일일이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 들어 정보를 확산시켜보려 노력한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한다. 그러다가 지나치게 악의적인 공중으로 보이는 사람들과는 또 맞서 싸우기까지 한다. 스스로 그걸 위기관리라 생각하는 직원들도 있다. 착각이다.

증상과 싸우지 마라

항상 기억하자. 위기관리 역량은 유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관계자 개념을 빨리 이해하고, 그간에 우선순위를 두어 초기 대응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 관리해야 하는 이해관계자가 있고, 조금의 시간차나 대응차를 두어 관리해야 하는 이해관계자들이 있어야 한다. 문제의 일반 공중은 사실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일 경우도 적고, 우선순위를 높이 둘 수 있는 대상도 아닌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기업이나 유명인이 어떤 부정적인 일을 저질렀을 때면, 많은 사람들은 각자 한마디씩 이야기 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 부정적인 일과 관련된 아주 부정적인 것들이다. 서로 서로 부정적인 의견들을 주고 받다 보면, 더욱 더 부정적인 정보들이 공유되고, 그것이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다시 사람들은 한마디씩 더욱 부정적인 의견을 덧입히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그냥 바라만 보면서 아랑곳 하지 말라는 조언은 절대 아니다. 우선순위를 기억하자는 것이다. 그런 주변의 부정적인 이야기와 의견들은 모니터링을 통해 꾸준히 분석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어떤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지 알아야, 위기관리에 있어 입장을 정리하고, 보다 효과적인 핵심 메시지를 디자인 할 수 있어서다.

신속한 위기관리와 함께 모니터링을 통해 잘 준비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초기 일반 공중의 비난과 비판들을 점차 희석시키는 핵심이다. 이런 전략적인 대응이 그들의 운동장에 뛰어 들어가 그들 하나 하나의 그림자와 맞서 싸우는 노력보다 효과가 더 나을 것이다.

우선순위로 준비된 커뮤니케이션이 핵심

한두 마디씩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던 사람들도 점차 지쳐갈 것이다. 거기에 위기관리 주체인 기업이 전략적으로 위기를 관리하고 준비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추가적으로 쏟아 부을 부정적인 의견도 밑천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준비된 커뮤니케이션이 업데이트 되게 되면, 여기 저기 잔불만 남고 대부분의 공중들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결과가 성공적인 위기관리의 결과다.

기업이나 유명인들은 위기가 발생하면 먼저 그 위기를 그대로 잘 들여다 보아야 한다. 이 위기로 인해 우리나 또는 내가 잃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살펴 꼽아 보아야 한다. 그 다음에 그렇다면 그런 잃음을 만들어 낼 수 있거나, 그 잃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자들을 살펴야 한다.

당연히 그 핵심 이해관계자들을 읽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다. 그 핵심 이해관계자들이 바라고 직간접적으로 조언하는 바를 찾아 해결하는 것이 위기관리가 된다. 어찌 보면 부정적인 이해관계자들을 무력화 시킨다는 의미와도 뜻이 통한다.

절대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익명의 여러 공중들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 기업에게는 기업공식 계정이 있을 것이고, 유명인 개인에게는 개인 계정이 있을 것이다. 공히 그러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얻을 것이 없다. 당면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자사나 자신의 원통함을 해소 하겠다면서 마구잡이식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세세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이 위기관리에 도움이 된다면 모르지만, 단순하게 일반 공중들의 부정적인 인식과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면 그리 권장 할 만하지 않다. 더구나 논란에 불이 붙어 뜨겁게 불타 오르고 있는 그 순간에 장황한 인터뷰와 심경고백은 오히려 아주 좋은 새 장작이 될 것이다.

여러 지인들을 만나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면서 일반 공중의 무리함을 지적하는 것도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심리적으로 하소연은 하고 싶고 일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한다 해서 큰 흐름이 바뀌지는 않으니 그렇다. 오히려 더 여러 이야기들이 두서 없이 퍼져나갈 것이다.

악의적인 공중들에게 소송을 하는 경우도 그렇다. 번지는 산불을 진화하겠다고, 극약 처방을 쓰는 셈인데, 위기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선 이런 광범위한 소송전은 더욱 더 일반 공중의 비난을 생성시킨다. 오히려 악의를 가진 공중 일부를 더욱 더 단단하게 결속시켜 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 작업(?)을 통해 일반 공중의 부정적인 의견을 희석하거나, 조작하려 하는 시도도 위험하다. 일부 기업들이 위기 시 상당한 예산을 들여 온라인 여론에 영향을 주려 애쓰곤 하는데, 사실 그 자체는 대부분 내부 정치적인 목적이 짙다. 최고 의사결정자에게 위기관리팀이 이렇게라도 맞서고 있다는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함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들불처럼 번지는 부정 의견을 깨끗하게 희석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맞서 해명에 성공하는 경우도 별로 보지 못했다. 오히려 비밀스러운 작업을 들키거나, 스스로 드러내어 공중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들이 생기곤 한다.

해야 한다면 집중 해 압도적으로 하라

만약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면,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면 압도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은 권장된다. 준비된 채널을 통해 준비된 메시지를 광범위하게 전파하는 것은 권장할 만 하다. 그러나 그 이외에 산발적이고, 목적과 기준이 모호하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은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싸우고, 지우고, 댓글을 달고, 복사해 붙이고, 아는 언론인들에게 전화 걸어 원통함을 호소하고, 세세한 내용들을 아주 길게 써서 익명의 여러 공중들에게 배포 게시하고, 소송을 걸고 하는 이 모든 대응들은 일반 공중을 향한 것으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렇게 하고 싶어도 일단 한발자국 물러나 실제 관리해야 할 위기에 역량을 집중하자.

상처를 신속하게 잘 치료해서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고통 그 자체에 너무 주목하지 말자. 상처가 사라지면 고통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사람은 상처 때문에 앓다 죽는다. 고통 그 자체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나 유명인이나 위기를 맞았을 때 이 이야기를 꼭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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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2017 Tagged with , , , , , , , , , , , , 0 Responses

[The PR 기고문] 대형 위기를 우리는 왜 항상 몰랐었다 할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항상 몰랐다. 항상 대부분이 몰랐었다 한다. 대형 위기가 발생하면 그렇게들 군다. 그러나 책임 있는 자들에게 “정말 몰랐던 것인가?” 물으면 이내 답이 궁해진다. “꿈도 꾸지 못했던 위기인가?”라고 물으면 침묵 한다.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주체에게 그 스스로 ‘몰랐던’ 그리고 ‘꿈도 꾸지 못했던 위기’라는 것이 어떻게 발생 가능할 것인가? 실제 현장에서 아무 전조(前兆) 없이 발생하는 위기라는 것이 대체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억지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문제의 책임을 져야 하는 책임자 일지 모른다.

실제로는 ‘알고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그 위기가 언젠가는 발생할 것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백 번 양보해서 그 위기가 ‘언제’ 발생할지 정도는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위기를 몰랐었다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상당 수의 위기관리 주체는 ‘알았지만 관심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이 말이 보다 정확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위기란 사전에 ‘알았다’ 또는 ‘몰랐다’의 주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조금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들켰다’ 또는 ‘들키지 않았다’의 주제가 아닌가 한다. 많은 조직들은 이미 해당 위기가 언젠가는 수면위로 떠올라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올 것이 왔다’는 표현도 보다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일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대형 위기가 발생해 알고 보면 그 위기의 뿌리는 깊고 오랫동안 지속된 것으로 알려진다. 언론이나 규제기관이 몇 일에서 몇 주면 그 뿌리를 정확하게 캐내곤 한다. 만약 그 위기관리 주체가 그 보다 오랫동안 그 위기의 뿌리를 감지 조차 하지 못했었다면, 그것은 철저한 직무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완전하게 직무를 유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지 했었지만, 개선이나 관리하지 않았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왜 매번 그래야만 했을까? 이는 사회적 임팩트가 큰 대형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상식적으로 누구든 자신 앞에 다가오는 위기를 알고 있다면, 스스로 재빠르게 그 위기를 완화시키려 하거나, 방지책을 찾아 나서거나, 관리 활동을 즉각 실행하는 게 정상일 텐데 왜 그러지 못할까?

첫째, 위기 전조에 주목하지 않고 그냥 흘려 보낸 유형

일종의 무관심이다. 철저한 직무유기일 수도 있다. 문제가 눈에 보인다 해도 자신들은 보지 못했다는 경우다. 잘 알려진 하인리히 법칙에서 이야기하는 300번의 전조와 관련된 이야기다. 큰 문제를 겪는 위기관리 주체들은 대부분 한번의 대형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에 선행되는 전조들을300번씩이나 그냥 무시해 버렸다는 바보 같은 이야기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아주 일부 무능한 조직을 빼고는 전혀 일반적이지 못하다.

둘째, 위기 전조를 발견했지만, 이를 내부에서 공론화 하지 못한 유형

이 경우 위기관리 관점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위기 요소들은 직원들의 책상 속에 있다.”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경영자 관점에서 보면 ‘숨겨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직원들 관점에서는 ‘관심 받지 못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는 조직내부적으로 위기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는 경우에 종종 해당한다. 한마디로 위기와 위기관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조직이다. 이 때문에 일선에서 상부로 위기 전조를 보고 해도 의사결정 중요도나 선호도에서 한참 밀리게 된다. 실제 위기가 발생해 버리면 그 때가서 경영자들은 “몰랐었다”하는 이유가 된다.

셋째, 위기 전조와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관리 의지가 없었던 유형

이 경우도 생각보다 흔하다. 위기관리는 기본적으로 조직 내에서 정치적인 행위다.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제대로 된 위기관리는 힘들다. 일부 부서에서 특정 위기의 전조를 발견했다고 치자. 이를 공론화 해서 문제 의식이 경영진 사이에서 형성 된다. 그 이후 일부 기업에서는 정치적인 논란이 발생한다. 이 전조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왜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 두었는가? 이 전조를 지금이라도 해결하자 하면 어떤 부서와 누가 다치게 될까? 누가 제일 고생 하게 될까? 그런데 누가 왜 이런 공론화를 하고 있나? 그 의도가 뭔가? 이런 조직 내 고민이 길어진다. 결국 누구도 아무도 직접 관리하려 하지 않게 돼버린다.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이 경우에는 차라리 다 같이 몰랐다 하는 게 더 쉬워진다.

넷째, 위기 전조와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관리 못할 이유가 더 컸던 유형

‘누가 함부로 이 위기를 관리하자고 할 수 있을까?’하는 위기다. 예를 들어 오너와 관련된 위기인 경우가 그렇다. 오너께서 앞으로 큰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하고 계신다. 그 정황을 조직에서 감지했고, 그 심각성을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해당 조직이 정작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오히려 위기를 관리하자고 나서는 부서나 임원은 다른 마음이 있다고 비판 받고 오히려 그런 경고 행위가 문제가 되어 버린다. 전조는 공식적으로 무시된다. 몰랐던 것으로 추후 알려진다. 정확히는 그렇게 알려지길 원한다.

다섯째, 위기 전조와 심각성을 알았지만, 잘못된 대응책을 세웠던 유형

대응책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경우 위기가 발생했다는 의미는 이전에 실행된 대응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위기를 더욱 더 키워 폭발 시켰다는 의미일 것이다.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감지된 문제를 정공법을 통해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무마나 은폐 시도를 통해 사전 대응 하려 했던 경우다. 이 경우에는 사후에 ‘해당 조직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는 의심을 크게 받게 된다. 실제로 사전에 실행했던 행위들이 일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도 해당 조직은 “몰랐다”고 한다. 팩트가 어떻게 드러나건 지속적으로 몰랐다는 포지션을 지키려 노력한다.

여섯째, 악당과 바보의 딜레마에서 살아 남기 위해 몰랐다는 택한 유형

위기가 발생하면 바로 당면하게 되는 ‘악당과 바보’의 딜레마. 위기 발생 이후 많은 사회적 이해관계자들이 질문을 한다. ‘이 문제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이에 대한 조직의 질문은 “알고 있었다”와 “몰랐다”의 두 옵션으로 나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해당 문제를 “알고 있었다”라고 답하게 되면 해당 조직은 그 심각한 문제를 알고도 수수방관했던 ‘악당’이 되어 버린다. 더 이상 정상참작이나 사회적인 관용이 적용되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린다.

반면 “몰랐다” 답하게 되면 “어떻게 그런 큰 문제를 모르고 있었나?”는 비판은 받겠지만, 일부 책임은 면하게 된다. 대신 ‘무능한 바보’ 이미지를 떠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조직들은 ‘악당’으로 인정 받느니 ‘바보’라는 이미지를 택하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조직들이 습관적으로 위기 발생 이후 “몰랐다” 이야기한다.

이상의 유형들은 다시 한번 살펴보자. 실제로 몰랐던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할 것이다. 몰랐다 이야기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 보다 편리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느끼기 때문에 몰랐다 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몰랐다’는 조직의 포지션이 실제로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다. 해당 조직이 “몰랐다”고 했지만, 언론이나 규제기관이 밝혀보니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다. 이미 그 조직이 해당 문제를 오래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고, 그 문제를 수수방관 했으며, 오히려 그 문제를 덮고 숨기려 했고, 결국에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니 단순히 몰랐다 주장 하고 있다고 이해관계자들이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 만큼 이해관계자들의 관심과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직이 스스로 투명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는 위기관리 환경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비밀은 없다는 말도 요즘처럼 생생한 적이 없었다. 환경은 그렇게 훌쩍 변해 버렸다.

그에 비해 조직이 가진 위기관리에 대한 관심, 문화, 역량, 습관, 방식들은 별반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예로 든 여러 유형들을 골고루 답습하고 그를 반복하는데 익숙하기만 하다. 이미 여러 케이스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데도 계속 ‘몰랐다’는 포지션으로 일관한다. 최초 얻은 ‘바보’의 포지션이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결국에는 ‘바보 악당’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되어도 조직들은 계속 ‘몰랐다’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런 실패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으려면 위기관리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보여야 한다. 위기의 전조를 실시간 감지하려 애써야 한다. 그 심각성을 입체적으로 논할 수 있는 체계와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내부적으로 위기 민감성을 극대화 하고, 위기관리를 위해 이를 쉽게 공론화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제대로 된 사전 대응을 통해 위기의 발생을 지금보다 더욱 더 제한해야 한다. 실제로 위기가 발생하게 되면 정확하게 책임 범위를 설정하고 전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해야 살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조언을 추가한다.

일선 조직이 문제의 전조를 감지했다고 치자. 그 문제의 전조를 입체적으로 분석해 해당 조직이 어떤 대응을 기해야 하는가 고민 할 때 참고 해 볼 기준이 하나 있다. 의사결정 그룹이 다 함께 모여 해당 전조를 놓고 이렇게 스스로 물어 보길 바란다.

“언론이 이 문제를 세세하게 보도했을 때 우리 조직에게 어떤 상황이 예상될 것인가?”

언론이 해당 문제를 보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말이다. 일단 보도가 아주 자세하게 된다 가정하고 그 이후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 문제가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을 때, 고객, 직원, 거래처, 규제기관, 기타 정부, 국회, 정치권, 시민단체 등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로 인해 우리 조직이 어떤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게 될까? 이런 질문을 해 보자는 것이다.

만약 그런 질문에 대해 “보도가 되어도 별반 우리의 책임을 묻는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을 것이다” 또는 “보도되더라도 별 문제가 없어 이해관계자들이 우리 조직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주를 이룬다면 해당 전조는 아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반면에 보도가 되면 우리 조직에게 큰 책임이 지워질 것이라던가,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공격적인 영향력을 행사 하게 될 것이라는 답변이 나오면 이 전조는 필히 신속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큰 문제인 것이다. 그 이전에 “이는 보도되면 안 된다”는 내부 느낌이 있다면 그 또한 심각한 문제의 전조란 의미다.

사회에서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어도 문제 없는 일만 해야 맞다. 언론에서 보도하려 해도 너무 당연하고 일반적이라 보도되지 못할 일들이 대부분인 게 정상이다. 만약 아주 일부의 경우 보도되면 민감할 전조들이 있다면, 필히 그 전조를 관리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지속적이고 민감한 감지와 개선 노력들이 있어야 위기는 관리 된다. 기존의 “몰랐다”는 비전략적인 노력은 점점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경영 품질의 관점에서도 제대로 된 조직은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그럴 리가 없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 조직의 현실이다.

항상 ‘몰랐다’는 포지션 뒤로는 ‘숨는 실행’이 따라온다. 한마디로 쉬쉬하는 것이다. 해당 조직은 당연히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고 피해 다니게 된다. 이는 곧 위기 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길티(guilty)의 제스처로 해석된다.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으려 하지만, 실제로는 부정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는 셈이 돼 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전략적이지 못한 대응인가?

지금이라도 어떤 문제의 전조를 발견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이 것이 언론에 보도돼도 괜찮을 까?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진짜 그럴까? 이런 질문이 곧 위기관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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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2017 Tagged with , , , , , , , , , , , , , , , , 0 Responses

오너 위기관리를 위한 십계명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최근 연이어 발생되는 기업 오너들의 다양한 부정 이슈 케이스들을 들여다 보자. 그런 오너 이슈 하나 하나를 보면 그리 낯설어 보이거나 별로 새롭지가 않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고, 간간히 드러나 이미 크고 작은 문제가 되었던 유형들이다.

그 중 일부는 타사 이슈라 자사와는 상관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발생했을 수도 있다. 또 일부는 타사 사례를 보면서 “우리도 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무관심으로 일관한 것이 문제 발생의 주요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오너에 의해 발생되는 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위기관리 차원에서 사전 위기관리가 가장 성공한 위기관리라고 하는데, 과연 오너 위기에도 그런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실제 오너 케이스를 다루어 본 경험에 의하면, 그러한 사전 위기관리는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불가능하다. 즉, 언젠가는 해당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 이후를 대비하며 사내 위기관리 체계나 역량을 키우는 것이 현실적 상책이라는 의미다.

기업 오너와 관련된 위기. 발생하게 되면 즉시 따라야 할 위기관리 십계명은 다음과 같다.

  1. 6시간 내에 원점관리하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항상 오너 관련 위기에는 ‘원점’이 존재한다. 그 원점이란 피해를 주장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오너와 회사에 공격적인 불만을 토로하며, 언론을 비롯한 여러 규제기관에게 문제를 제기 확산하고 있는 주체다. 그 원점을 파악한 직후 6시간내에 그 원점을 만나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 원점이 원하고 바라는 바를 압도적으로 해결해 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크게 불거진 오너 관련 위기는 오너나 회사가 이 원점관리를 하기 싫어했거나, 피상적으로 했거나, 너무 늦게 실행한 케이스들이다.

  1.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하라

정신이 없다. 문제가 불거져 온라인과 언론이 빨갛게 달아 올랐다. 이걸 어쩌나 저걸 어쩌나 고민만 한다. 일단 변호사를 구해야 한다. 오너 위기의 대부분은 결국 법정에서 최종 결론이 난다. 그 이전에 언론을 비롯한 각종 규제기관들이 개입한다. 다양한 조사가 이루어진다. 제대로 검증된 훌륭한 변호사 없이 이 모든 대응 작업을 제대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너께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미리 준비해야 결과가 좋다. 필히 오너 개인 돈으로 고용해야 한다.

  1. 여론 감각을 극대화 하라

억울하다 하실 것이다. 사실이 아닌 내용들이 떠 돈다 분개 하실 것이다. 이때 여론 감각이 필요하다. 일단 실제 재판장에 가기 위해서는 항상 여론의 법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여론의 법정에서 일단 완벽하게 유죄가 인정되어 버리면, 실제 재판장에서의 무죄 판결도 별 의미나 가치가 없게 된다. 최근에는 여론의 법정이 실제 재판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명심해야 한다. 여론의 법정은 재심(再審)이 없다. 또한 권투경기처럼 12라운드를 KO 당하지 않고 견뎌야 그나마 판정도 기대할 수 있다.

  1. 기자회견이나 사과문에는 필히 원점과의 화해를 명기하라

무조건 사과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머리를 숙이는 연습만으로 완벽하지 않다. 실패하는 기업들은 사과 기자회견이나 사과문에서 미래형 어미를 주로 사용한다. “찾아 뵙고 사과 할 예정이다” “손해 배상을 할 계획이다” 이런 미래형은 좋지 않다. 앞에서 원점관리를 강조했다. 기자회견이나 사과문 공히 완료형 어미를 써야 낫다. “찾아 뵙고 사과 했습니다” ”손해배상을 했습니다”가 훨씬 유효하다. 일부 성공 사례에서는 직접 해당 원점을 기자회견에 초청하기도 했다. 화해를 마쳤던 거다.

  1. 비선라인을 제한하라

오너 스스로 명심하셔야 할 부분이다. 문제가 불거지면 도와주겠다는 지인들이 나타난다. 오너 스스로도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여러 지인에게 연락을 취할 것이다. 전현직 고위 관료나 규제기관장 그리고 정치인들이 일반적 대상이다. “병은 자랑하라”는 말이 있다. 그 병을 알게 된 지인들이 도움을 주거나, 스스로 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절제 할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러나, 오너 관련 위기는 자랑 할 거리가 아니다. 일단 지인이나 비선이 개입하면 더 일이 꼬인다. 검증된 창구로의 일원화와 극소수 인력으로 수면 위에서 담담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훨씬 깨끗하다.

  1. 오너 개인과 회사 법인을 분리하려 노력하라

가능한 분리해야 산다. 분리하려고 노력해야 예후가 좋다. 오너 때문에 자사 제품 판매가 반 토막 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회사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불매운동 피켓 시위를 하게 하면 안 된다. 사과문의 경우 그 사과문을 발표한 주체를 정확하게 오너 자신으로 명기하자. 실패한 많은 케이스들을 보면 법인이 오너 대신 사과한다. 임직원들이 동시에 대신 사과한다. 오너의 아드님이 대표이사라서 대신 사과한다. 이는 가장 흔한 치명적 실수다.

  1. 오너가 직접 앞에 나서라

무조건은 물론 아니다. 위기 상황의 수준을 잘 판별해 결정하라. 경찰이나 검찰에서 출두 명령이 오면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언제 어떤 장소에서 어떤 형식으로 오너가 직접 앞에 나서야 하는지를 전략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위기관리 전문가나 언론홍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조사기관 출두 때 처음 언론 앞에 나서는가, 아니면 그 이전에 책임을 표명하고 사과하면서 사전에 언론에 나서는가는 전략적인 다름이다. 핵심은 오너께서 직접 앞에 나서는 것이다. 숨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 오너께서 최대한 훈련 받아야 한다

사과 기자회견이나 조사 기관 출두 시 오너께서 하시는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얼굴 표정, 머리를 숙이는 방식, 말씀하시는 자세, 그리고 메시지들은 오너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핵심 중 핵심이다. 공감을 표현하고, 책임을 인정하며, 사과 하고, 인간미를 극대화해 표현하고, 개선책과 재발방지책을 이야기하는 모든 과정은 훈련되어야 한다. 모든 공식 커뮤니케이션은 연출(준비)의 과정이 필요하다. 준비하면 더 낫다.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너의 메시지나 태도가 다시 구설수에 오른다.

  1. 로드맵을 짜라

오너 관련 위기 케이스들을 보면 전형적인 상황 전개 프로세스가 있다. 성공과 실패 케이스들간에는 해당 논란을 어느 단계에서 멈추게 하였는가와 얼마나 이해관계자 개입을 전략으로 제한했는가에 다름이 있다. 문제가 불거지면 바로 향후 발생할 시나리오들을 정리해 로드맵을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 언론 노출-온라인 확산-원점의 노출-언론과 온라인의 관여 증가-고소 고발-조사기관 개입-정치권 또는 시민단체 개입-법적 다툼과 판결 등 대략적 흐름 사이에도 여러 변수들과 이해관계자 전망들이 있다. 로드맵을 가지고 길을 가는 회사와 로드맵 없이 그 때 그 때 두리번 거리며 길을 가는 회사간에는 큰 다름이 있다. 일단 오너께서 과도하게 불안해 하신다.

  1. 뭐든 신속하게 하라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너 위기관리에서 시간은 독이다. 대응 없이 시간이 흐르면 분명 그 시간은 독이 된다. 예전에는 일간지 마감 시간을 중심으로 위기관리가 흘렀다.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과 각종 소셜미디어 흐름에 따라 위기관리가 흐른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허비하는 시간은 치명적이다. 입장 정리 못하고, 주저하고, 원점 관리 싫어하고, 메시지를 가지고 내부적으로 왈가왈부 하는 모든 시간이 독이다. 문제가 불거지면 빨리 대응해야 한다. 평소 관심 가져야 하는 부분이 이 시간관리다. 준비되어 있고, 누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마가 타있다면 대응 시간은 최소화 된다. 오너가 문제 직후 스스로 나서 전략적 결정을 단박에 하시면 시간은 대폭 줄어든다.

이상의 오너 위기관리 십계명은 실제 대응 시 절대 지켜지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전제하고 철저히 준비하라는 의미다. 발생을 미연에 막을 수 없다면, 그 후에라도 잘 관리해야 한다. 위기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하기 보다, 그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위기관리는 곧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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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 기고문]미디어트레이닝? 홍보담당자들이 먼저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자는 훈련되어 있다. 일정 기간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훈련을 기반으로 매일 매일 취재를 하며 취재원과 커뮤니케이션 한다. 기자는 질문하는 자다. 그들은 숙련된 전문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맞서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홍보담당자들은 어떤가?

대부분의 기업이나 홍보대행사에서 홍보를 처음 시작하는 홍보담당자 중 기자처럼 상당기간 훈련 받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이 훈련되어 있지 않다. 어깨 넘어 일을 배우거나 또는 선배를 따라 다니며 받는 개인적인 사사가 전부다. 그 중 상당 부분이 네트워크 형성에 관련된 의전이나 형식이다.

기자가 질문하는 자라면, 홍보담당자는 답변하는 자다. 매일 매일 취재 일선에서 마주치면서도 질문하는 기자는 훈련 받은 자임에도, 답변자는 훈련 받은 자가 아니라는 점은 큰 아이러니다. 홍보담당자들 스스로 자신을 전문가라고 칭하기에 겸연쩍어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다.

일부 홍보담당자들은 실무를 시작하면서 홍보교육을 받으러 다닌다. 보도자료 작성을 배우고, 홍보기획서 작성을 공부한다. PR의 정의와 언론관계 기술에 대해서 배운다. 일부는 특수대학원에 진학해서 PR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공부가 실무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또 상당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반면 실무에 도움이 되는 ‘훈련’에 대해서는 상당수가 낯설어 한다.

훈련된 기자와 매일 커뮤니케이션 하는 홍보담당자들은 과연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가? ‘대변인 훈련’과 같이 수준 높은 훈련 과정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기본적인 ‘미디어 트레이닝’을 받아야 하는 홍보담당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일선에서 홍보실무자들의 기자 커뮤니케이션 실행을 자문하면서 발견한 일반적 유형들을 정리해 본다. 이런 식으로 기자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홍보담당자들은 하루 빨리 미디어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 자신은 물론 회사와 클라이언트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첫 번째 유형, 기자와 대화를 함에 있어서 너무 캐주얼 한 스타일

이런 유형의 홍보담당자들은 대부분 시니어급이다. 종종 기자와의 통화 초기와 말미에 친근함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한다. 편하게 좋은 형이나 동생으로서 기자에게 각인되는 스타일이다. 평소에는 별 문제가 없고, 일부 기자들은 그런 친근한 스타일로 해당 홍보담당자를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기자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 받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런 스타일의 커뮤니케이션 습관을 가진 홍보담당자는 스스로 ‘모드 변경’을 어려워한다. 평소에 친근하고 구수하기만 했던 자신이 이슈가 발생 했다고 차갑고 딱딱해지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불가근 불가원’의 원칙을 잠시 망각 하곤 한다. 캐쥬얼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로 이슈를 둘러 댄다. 부주의 하게 취재하는 기자에게 작은 퍼즐 쪼가리를 선물한다. 큰 그림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지만, 좋은 형이나 동생인 기자가 그냥 알아서 감안해 기사를 써 줄 것으로 믿는다.

일부 이런 유형의 홍보담당자는 부정 이슈 시에도 기자와 서로 ‘마음이 통하면’ 이슈를 관리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친한 기자에게 모른다고 이야기하거나, 오리발(?)을 내밀고 어떻게 다시 그들을 보겠냐 한다. 사실을 그대로 말해 주어도 친한 기자니 알아서 처리 해 주곤 한다 자랑한다.

상당히 위험한 유형이다. 기자에게는 “좋은 홍보인” 또는 “좋은 대변인”으로 각인되는 것이 “좋은 사람”으로 각인 되는 것보다 영예로운 일이다. “OOO홍보 상무? 사람만 좋지 뭐…” 이런 평가는 경계해야 한다.

두 번 째, 기자들의 심각한 취재에 대응한 경험이 적은 스타일

이런 유형들은 대부분 자신이 모르는 기자에게 급격히 약한 모습을 보인다. 출입기자들과는 상시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 보았지만, 갑자기 경찰이나 검찰 출입 기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긴장 하는 유형이다. 출입기자들과는 관심사가 달라서 그들과 무엇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할는지 막막해 한다.

반대로 일부는 출입기자들과 하듯이 캐쥬얼 하게 커뮤니케이션 한다. 대충 대충 얼버무리기도 하고,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의 발언도 하며 그냥 넘기려 한다. 낯선 상대 기자가 그 부분을 꼬투리 잡아 지속적으로 질문을 하면, 부담을 느끼고 뒤로 빠지려 한다. 자기가 어떤 부분에 대해 설명을 잘 못 했는지 모른 채 기자가 좀 무례하구나 생각한다.

가끔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공격적인 기자의 질문이 들어오면 “보통 기자들은 이런 식으로 질문 안 합니다” 또는 “기자들이 이렇게 까지는 안 하죠?” 묻는 홍보담당자들이 있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 ‘발생 할 리 없다’ 또는 ‘그럴 리 없다’ 생각해서는 나아짐이 없다.

이런 유형의 홍보담당자들은 기자로부터 “경험이 적은가 보다” “원래 홍보하던 선수가 아닌가 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또한 경계해야 할 평가다.

세 번 째, 기자와 항상 거리를 두려는 스타일

이런 유형의 홍보담당자들은 기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다분히 사무적이다. 그렇다고 차갑고 무례하게 기자를 대하지는 않는다. 때대로 살갑게 그리고 부드럽게 기자와 커뮤니케이션 하지만, 민감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한 내용을 교환 할 때나 부정적인 취재 응대 시에는 상당히 거리감을 내세운다.

“그 내용을 저희가 기자님께 알려드려야 할 의무가 있나요?” “제가 그걸 왜 기자님께 답변해야 합니까?” “기자님이 잘 모르고 취재하시는 것 같은데요. 저희가 소송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딱딱하게 응대한다. 일단 이런 유형의 홍보담당자는 기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 기자가 뭔데 함부로 회사나 조직의 문제에 대해 비판을 하고, 사업상 피해를 입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기자들과는 친해져 봐야 필요 없다 생각한다. 정기적으로 광고나 협찬 정도의 처리만으로도 홍보 업무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언론사에 따라 기자를 대 놓고 차별한다. 부정적인 취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 코멘트나, 무시, 법적 대응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기자와의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 필요성에 대해서는 그리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이런 유형들은 기자들로부터 “개념이 없다” “언젠가는 혼 좀 나야 할 사람” “저 사람 때문에 그 회사가 안 된다” 등등의 평가를 받는다. 당연히 회사에게 득이 되는 홍보담당자는 아니다.

네 번째, 원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전략에는 약한 스타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기자에게 하는 경우다. 불필요한 이야기를 기자에게 계속 하기도 한다. 말에 사족이 많고, 애드립이 난무한다. 평소 취재 때는 홍보담당자가 자세하게 여러 이야기를 해 주어 기자들이 재미있다고 한다. 때때로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안되고, 약간은 기사 쓰기에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감은 주는 취재원이다.

부정 이슈가 발생해도 그 습관은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 있는 식품에 대해) 먹어도 안 죽어요” “그건 말도 안 되는 X소리라니까” “생각해 보세요,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도 이렇게 하겠어요?”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뭐 자선사업 하나?” “그렇게 건강을 신경 쓰는 분이 아이들에게 그런걸 먹여요?” 이런 식으로 전략 없이 이야기 한다. 기자는 물론 제3자가 들어도 황당한 이야기들이 바로 이런 홍보담당자들의 입에서 나온 것들이다.

내가 못할 말을 했나? 내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잖아?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알고 나면 이게 사실이라는 걸 깨닫게 될 거야. 이런 식으로 사후에 자신을 합리화 하려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나름대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전략’이라고 믿는다. 홍보담당자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시각이다.

기자들은 이런 홍보담당자들을 보고 “참 특이한 양반” “말을 함부로 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찌르면 항상 무언가 답을 준다”는 평가를 한다.  회사측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이 보다 위험한 홍보담당자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유형으로,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지 못한 채 커뮤니케이션 하는 스타일

대부분 주니어 홍보담당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의외로 시니어 홍보담당자들 중에서도 일부 이런 유형이 있으니 문제다. 기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압도할 정도의 정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그에 대한 사전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일부 또는 전부 부족한 유형이다.

대외비라서 모르는 척하거나, 상세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는 ‘전략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고 있음’이라는 모습을 풍기지만, 실제로는 해당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주로 “알아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는 말만 한다.

일부는 알고 있어도 상당히 피상적인 정보만 가지고 있어서, 기자가 깊이 있는 질문을 하고 들어오면 바로 개인적인 애드립으로 대충 모면을 한다. 하나의 이슈에도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관련되어 있고, 해당 이슈가 법적으로 여러 다툼의 여지가 있고, 여론의 관점에서도 민감한 내용이 걸쳐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도 자신이 가진 피상적 이해와 관점으로 기자와 커뮤니케이션 한다.

이런 경우 해당 홍보담당자의 사내 위치는 최고 의사결정자들과의 거리가 있다. 그들이 결정한 세부적인 논리와 지시 사항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기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한다. 이슈 대응을 위한 대책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기자와 약속된 중식 시간을 보낸다. 이후 대책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아래 팀장에게 브리핑 받아 기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나선다. 당연히 충분한 소화가 없다.

기자들은 이런 홍보담당자 유형을 “똑똑하지 못한 분” “회사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 “별로 답이 안 나오는 양반”으로 평가한다. “왜 모르면서 말을 해요?”하고 기자로부터 불만을 듣기도 한다. 홍보담당자들이 경계해야 하는 습관이다.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잘 한다고, 공적인 커뮤니케이션까지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꼭 좋은 홍보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언제나 완벽한 공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적인 홍보담당자라면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야 한다.

기자가 훈련 받고 공부하는 것만큼 홍보담당자도 훈련 받고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소위 말하는 ‘건전한 긴장관계’가 형성 될 수 있다. 물론 기자들도 다 같은 기자가 아니라고들 말한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훈련 받지 못했고, 공부하지 않는 기자들이 많다는 지적도 한다. 만약 그들이 그런 상황이라고 해도 홍보담당자들은 더욱 더 훈련 받고 공부해야 한다. 홍보담당자는 기업이나 조직 그 자체다. 평시와 위기 시 기업이나 조직의 입의 역할을 하니 그렇다.

개인적인 생각은 기업이나 조직을 대변하는 홍보담당자의 커뮤니케이션 주제가 절대 아니다. 홍보담당자는 공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자신이 대표하는 기업이나 조직의 생각과 메시지를 공적인 채널을 통해 전달하는 임무를 가진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사실 누구에게도 자연스럽지 않다. 평생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에만 집중해 성장해 온 성인이기 때문에 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낯선 것이 당연하다. 이 것이 따로 훈련 받아야만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이유다.

더 이상 전략적이지 못한 공적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하고 나서 언론이나 기자를 욕하는 습관을 버리자. 예전 같으면,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나서 그에 기반한 기사가 나면 사내에서는 기자에게 손가락질을 했었다. “제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 기자가 소설을 썼습니다” “기자가 제 말을 잘 못 알아 들었나 봅니다” “저는 기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부주의 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부정적인 기사가 나왔던 상황을 경험한 홍보담당자들은 보통 이런 핑계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핑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대부분의 민감한 취재 내용은 상호간에 녹취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꺼져있는 듯한 TV 취재 카메라는 책상 위에 놓여 계속 녹화 녹취를 하고 있다. 자기 양복 깃에 달려 있는 취재용 핀마이크를 끼고 대책 회의에 들어온 홍보담당자도 있다. 기자들의 모든 스마트 폰은 녹화 녹취가 가능하한 것들이다. 더 이상 언론이나 기자가 이상해서(?) 이런 기사가 나왔다 핑계를 대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이다.

항상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그 문제를 알고 있다면, 고치고 개선하면 더 이상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그 것이 문제인 줄 알면서도 고치고 개선하지 않는 것이다. 위에서 들었던 유형들과 같이 자신이나 자신의 팀원들에게 유사한 문제가 있다면, 당장 고치고 개선하려 노력하면 된다. 제대로 훈련 받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기업이나 조직을 대표하는 홍보담당자의 자세다. 좋은 홍보담당자를 넘어 훌륭한 홍보담당자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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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2017 Tagged with , , , , , , , , , , , , 0 Responses

[The PR 기고문] 새로운 국가재난관리의 체질을 위한 5대 조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정권이 교체되었다. 새 대통령이 취임했고, 새 총리와 새 정부가 만들어지고 있다. 굳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많은 것들이 새로워지고 있다. 국가재난관리체계에도 새로운 메쓰가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이전 정부에서 세월호 사고 이후 급조한 국민안전처가 어떤 형태로든 탈바꿈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국민안전처가 진행해 온 여러 사업들을 보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해당 부처는 일종의 ‘재난관리 홍보처’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로 완전한 의미의 재난관리 개념과는 거리가 있는 활동들을 상당수 진행했다. 급조된 태생적 한계 때문일 수도 있고, 여러 부처 조직들이 뭉쳐있어 내부에서 한가지 방향을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느렸고, 부정확 했으며, 국민들이 그들의 역량에 의문을 자주 가지게 했다. 일단 새롭게 탈바꿈될 부처이기 때문에 이전 활동들은 그냥 그랬었다 정도로 남겨두자.

숙제는 이제부터다. 필자는 기업 위기관리 워크샵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만약 세월호와 같은 대규모 선박 침몰 사고가 지금 이 시간에 다시 발생한다면 2014년 그 때보다는 훨씬 더 많은 승객 구출을 해 낼 수 있을까요?” 수많은 기업 대표와 임원들은 거의 대부분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들이 보기에 정부의 재난관리 역량이 그 때와 지금이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필자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그 때 이후 실제 현장에서 어떤 재난관리 역량의 급성장이 있었는지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부하에서는 재난관리도 새로운 체질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세월호에 대한 재난관리 실패가 국가적 비극으로 오래 지속된 것과 같이 앞으로 또 어떤 대형 재난이 새 정부의 생사 또는 성패를 가를지 모른다. 2014년에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고 치자. 그때는 운이 없었다고 치자. 그 때는 일선 인력들이 제대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었다고 치자. 그러면 지금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운에 기대지 말고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적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선의 인력들은 그때 보다는 훨씬 더 낫게 대응 해 재난을 관리하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국가재난관리 체질에 있어 몇 가지 의견을 정리해 본다.

첫째, 국가재난기관이 어디가 되든 ‘홍보’하지 않게 하라

물론 미국의 FEMA(미국연방재난관리청)에도 커뮤니케이션 예산이 있고, 평시에 커뮤니케이션과 트레이닝 업무가 핵심 업무들 중 하나이기는 한다. 그러니 ‘홍보하지 않게 하라’는 말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 국가재난관리 기관이라면 두 가지 큰 커뮤니케이션 주제가 있다.  그 첫째가 국가재난 예방이나 재난관리를 위한 ‘국민행동요령’이다. 이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은 당연한 재난관리 업무의 일환이다. 둘째는 국가재난관리 부처가 어떤 새로운 국가재난관리 체계를 만들었는지, 어떤 투자를 해서 국민의 안전보호에 있어 큰 진일보를 이루었는지 새로운 체계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다. 이는 발전한 국가재난체계를 국민들에게 교육한다는 목적이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그 이외에는 대부분이 말그대로 ‘홍보’이니 자제하라는 것이다. 왜 해당 부처가 잘하고 있는지를 국민들이 알아야 하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부처는 당연하게 일을 잘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부처 홍보가 왜 필요한가 말이다. 또 왜 해당 부처 핵심 고위 공무원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특별히 국민들이 알아야 하나? 당연한 것인데. 부처 자체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인 ‘홍보’을 하지 말고, 국가재난관리와 국민을 위한 ‘재난 커뮤니케이션’에 열중하라는 것이다.

둘째, 실전 역량으로 말하고, 성과로 입증하게 하라

국민과 새 정부는 국가재난관리 부처에게 지속적으로 물어보아야 한다. 세월호와 같은 대형 선박 사고가 다시 발생한다면, 현재 일선에서 완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역량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원전사고가 난다면 어떨까 질문해야 한다. 피해가 광범위한 대형 지진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무엇을 그들이 할 수 있을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에 대해 국가재난관리 부처는 성실하고 정확하게 답해야 한다. 없는 역량은 없다. 부족한 장비와 물자는 부족하다 해야 한다. 사실 아직 체계가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완전한 대응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그리고 얼마가 필요하고 어떤 로드맵을 따라야 한다는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 기반해 국가와 국민은 생존 차원에서 우선순위를 두어 국가재난관리 부처를 지원 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 실전 역량을 점검하게 하고, 그에 기반한 지원을 통해 실전 역량을 새롭게 갖출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간의 지원과 투자를 재난 시 성과로 보답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 위기관리도 그렇듯, 국가재난관리는 ‘돈’이 한다. 관심만 가지고는 힘들다. 관심만으로는 되는 것이 없다. 국가재난관리 부처는 그 ‘돈’을 달라고 새 정부와 국민들에게 요청해야 한다. 먼저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그전에 그럴 만 해야 한다.

셋째, 컨트롤 타워 타령이나 핑계는 그만하자

우리나라에서는 위기가 발생하면, 사후 평가를 하며 항상 비슷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만들자.” “컨르롤타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를 만들자.” “컨트롤타워가 너무 많았다. 컨트롤 타워를 컨트롤 할 그랜드 컨트롤 타워를 만들자” 이를 비판하는 쪽에서도 동일한 지적을 하며 재난관리 주체를 비판한다.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다.

만약 그렇게 컨트롤타워가 문제라면 왜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갖추지 못했을까가 더 문제다. 컨트롤 타워가 문제인 것을 알면서도 국민이나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평소에 무엇을 했느냐가 더 위험한 것이다. 만약 컨트롤타워가 평소 잘되어 있다, 잘 할 수 있다 했다가 실제 재난 발생 시 전혀 역할을 못했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문제는 ‘컨트롤타워’ 자체가 아니다. 컨트롤타워가 중요하다 생각하면서도 컨트롤타워에 대해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는 습관이 문제다. 이전 정부에서는 어땠나? 자신이 컨트롤타워의 수장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고위공무원도 있었다. 컨트롤타워가 정부 조직상 종류가 너무 많아 누가 수장이고 누가 구성원인지 헷갈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종이 매뉴얼이나 조직 규정에만 있는 컨트롤타워가 실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 자체는 ‘미신’이나 ‘병’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 재난이 발생하고, 그 관리가 어처구니 없이 진행되면 여지없이 동일한 변명이 나온다. ‘컨트롤타워 부재’가 아주 효과적인 변명인 셈이다. 실제로 문제 있는 의사결정과 대응을 한 많은 관련자들은 컨트롤타워라는 개념만 끌어다 십자가에 못 박으면 되었다. 국민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컨트롤타워에 대해서만 손가락질 하며 욕했다. 그러고는 시간이 흐르면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변명과 손가락질과 욕은 지속 반복되었다. 이 정도 되면 집단적으로 ‘병’에 걸린 셈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다시는 재난 관리 이후 컨트롤타워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 문제가 없도록 살피고 노력해야 한다. “위기가 발생한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그 위기를 관리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창피해” 해야 맞다.

넷째, 대통령이 곧 재난을 관리 한다

대통령에게 침몰하는 선박을 직접 손으로 끌어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전사고나 지진을 몸으로 막아내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느 헐리우드 영화처럼 대통령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날아오는 운석에 몸을 날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 위기관리에서도 대표나 오너가 빠져있는 위기관리는 그 성공 가능성이 극히 낮다. 기업에서도 실제 대표가 일선에 나서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고 하는데,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위기관리는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주 깊은 의미가 있다.

만약 위기관리를 ‘시스템’이라는 것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면, ‘로봇’이나 ‘기계’들이 맡겨진 일을 해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업의 대표나 국가의 대통령이 위기를 관리한다는 개념은 그 빛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위기나 국가의 재난이나 공히 ‘사람’이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표, 오너, 대통령의 ‘관심과 관여 그리고 관제’가 매우 중요한 실제 역량으로 빛을 발하게 된다.

재난 시 일선에서 “이건 이래서 어렵습니다” 하는 보고를 들은 대통령은 해결의 실마리를 줄 수 있다. 오히려 “할 수 있는 방법이 뭡니까?”라고 물어 볼 수도 있다. 그래야 재난을 관리하는 일선에서는 “이렇게 이렇게만 지원된다면 할 수 있겠습니다”라는 긍정형 보고가 가능해 진다. “그건 왜 안 되는 건가요?” “그건 누가 해서 그렇게 문제가 된 건가요?”라고 묻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기업 위기나 국가재난관리에서나 발생 초기부터 대표, 오너,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관여해 해결책을 같이 찾아 관제하며 지원 조치했는데도 실패했다면, 그 것은 ‘사람’의 힘으로서 애초 관리가 불가능했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 정도가 되면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는 논란의 주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반대이기 때문에 항상 발생한다.

마지막 다섯째, 국민이 재난을 관리하는 일선이다.

손가락질 하는 것은 재난관리가 아니다. 컨트롤타워가 문제라며 욕하는 것도 재난관리가 아니다. 재난관리에 실패했으니 VIP가 책임을 지라 주장하는 것도 사실 제대로 된 재난관리는 아니다. 재난관리는 일선에서 국민이 먼저 해야 성공한다.

한 역사학자는 우리의 역사는 정부에 의지해 국난을 극복한 경우보다 국민들이 스스로 일어나 외부의 적과 맞서 싸우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 극복한 경우가 더 많다 이야기한다. 국가재난관리 관점에서도 국민들의 그런 관심과 참여는 매우 중요한 핵심 역량이다. 국가재난관리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생명과 안전은 일차적으로 누구의 것인가? 국민의 것이고, 내 자신의 것이고, 내 가족의 것이다. 당연히 국가재난관리의 중심은 내 자신이고 우리 가족이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족이 사는 동네가 자주 침수되는 지역이라면,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전 조치들에 우리 스스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관심들이 모여 지역 차원에서 홍수 피해를 상당수 감소 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홍수가 발생한다면 우리 가족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생각해 놓아야 한다. 비상식량에 대해 생각하고, 피난 장소와 장비들을 준비해 놓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주말에는 피난을 가보는 연습도 해 보자는 것이다. 준비된 쉘터에서 일정기간 생활하는 방식도 알아 봐야 한다. 쉘터에서 서로간 지켜야 할 예의와 공동생활 규칙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맞다.

국민 스스로 “만약에?”라는 생각을 하면서, 국가재난관리 부처의 체계적 노력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5천만 국민들이 항상 생활 주변에서 ‘재난관리 마인드’를 지니고, 재난관리를 위해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와 연습이 완료되어 있다면, 국가재난관리는 한층 성공률이 높아질 수 있다.

그것이 전제된 채로 5천만 국민들은 국가재난관리에 대한 정부의 준비 수준과 역량을 지속적으로 묻고 확인해야 한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인재(人災)’라고 부르는 국민적 습관을 이제는 버리자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 없는 나라가 된다. 정부는 항상 견제되어야 하고 감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재난관리 부처는 국민의 가장 중요한 견제 및 감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상이 새 정부가 주목했으면 하는 새로운 국가재난관리의 체질이다. 이전의 많은 국가재난관리 반면교사에 기반한 조언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새 정부가 경계했으면 하는 습관이 하나 더 있다. 관료 조직에서 윗사람들이 하는 가장 위험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잘 하세요”라고 한다. 위로부터 대통령에서 국가재난관리 부처장까지 아래 책임 및 일선 직원 들에게 “잘 하세요”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 하라”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게 맞다. 그냥 “잘 하세요”라고 하니 일선으로 갈수록 중구난방이 된다. 당황스러운 실행들이 여기저기 벌어진다. 재난관리가 이벤트가 된다. 당연히 일사불란은 있을 수가 없다. 이전의 사례들만 봐도 “(나는 구체적으로 모르겠으니) 잘 하세요”라는 개념이 국가재난관리를 지배했었던 것 아닌가 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필히 국가재난관리를 잘 아는 사람들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놓아 본 경험이 있는 재난관리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무엇과 무엇을 해서 잘해냅시다”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있게 해야 하고, 그에 대해 정확하게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한다.

일선에서도 그러한 구체적 지시에 따른 일사불란 함을 갖추어야 한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에게 국민이 신뢰를 부여해야 한다. 그들이 못하면 우리가 못하는 것이고 우리가 못하면 그 누구도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평시부터 그들과 가깝게 협업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국가재난관리는 그들의 것이고 그들의 책임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함께 참여해야 한다.

새 정부가 새로운 조직을 갖추어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한다. 국가재난관리에 있어서도 그러한 새로운 자세와 철학이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관심과 지원과 투자가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역량과 시스템이 갖추어 지기를 바란다. 국민에게도 새로운 공감과 참여의 기회가 생기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도 성공적 국가재난관리라는 새로운 역사가 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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