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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 위기를 우리는 왜 항상 몰랐었다 할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항상 몰랐다. 항상 대부분이 몰랐었다 한다. 대형 위기가 발생하면 그렇게들 군다. 그러나 책임 있는 자들에게 “정말 몰랐던 것인가?” 물으면 이내 답이 궁해진다. “꿈도 꾸지 못했던 위기인가?”라고 물으면 침묵 한다.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주체에게 그 스스로 ‘몰랐던’ 그리고 ‘꿈도 꾸지 못했던 위기’라는 것이 어떻게 발생 가능할 것인가? 실제 현장에서 아무 전조(前兆) 없이 발생하는 위기라는 것이 대체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억지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문제의 책임을 져야 하는 책임자 일지 모른다.

    실제로는 ‘알고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그 위기가 언젠가는 발생할 것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백 번 양보해서 그 위기가 ‘언제’ 발생할지 정도는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위기를 몰랐었다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상당 수의 위기관리 주체는 ‘알았지만 관심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이 말이 보다 정확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위기란 사전에 ‘알았다’ 또는 ‘몰랐다’의 주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조금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들켰다’ 또는 ‘들키지 않았다’의 주제가 아닌가 한다. 많은 조직들은 이미 해당 위기가 언젠가는 수면위로 떠올라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올 것이 왔다’는 표현도 보다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일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대형 위기가 발생해 알고 보면 그 위기의 뿌리는 깊고 오랫동안 지속된 것으로 알려진다. 언론이나 규제기관이 몇 일에서 몇 주면 그 뿌리를 정확하게 캐내곤 한다. 만약 그 위기관리 주체가 그 보다 오랫동안 그 위기의 뿌리를 감지 조차 하지 못했었다면, 그것은 철저한 직무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완전하게 직무를 유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지 했었지만, 개선이나 관리하지 않았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왜 매번 그래야만 했을까? 이는 사회적 임팩트가 큰 대형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상식적으로 누구든 자신 앞에 다가오는 위기를 알고 있다면, 스스로 재빠르게 그 위기를 완화시키려 하거나, 방지책을 찾아 나서거나, 관리 활동을 즉각 실행하는 게 정상일 텐데 왜 그러지 못할까?

    첫째, 위기 전조에 주목하지 않고 그냥 흘려 보낸 유형

    일종의 무관심이다. 철저한 직무유기일 수도 있다. 문제가 눈에 보인다 해도 자신들은 보지 못했다는 경우다. 잘 알려진 하인리히 법칙에서 이야기하는 300번의 전조와 관련된 이야기다. 큰 문제를 겪는 위기관리 주체들은 대부분 한번의 대형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에 선행되는 전조들을300번씩이나 그냥 무시해 버렸다는 바보 같은 이야기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아주 일부 무능한 조직을 빼고는 전혀 일반적이지 못하다.

    둘째, 위기 전조를 발견했지만, 이를 내부에서 공론화 하지 못한 유형

    이 경우 위기관리 관점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위기 요소들은 직원들의 책상 속에 있다.”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경영자 관점에서 보면 ‘숨겨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직원들 관점에서는 ‘관심 받지 못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는 조직내부적으로 위기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는 경우에 종종 해당한다. 한마디로 위기와 위기관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조직이다. 이 때문에 일선에서 상부로 위기 전조를 보고 해도 의사결정 중요도나 선호도에서 한참 밀리게 된다. 실제 위기가 발생해 버리면 그 때가서 경영자들은 “몰랐었다”하는 이유가 된다.

    셋째, 위기 전조와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관리 의지가 없었던 유형

    이 경우도 생각보다 흔하다. 위기관리는 기본적으로 조직 내에서 정치적인 행위다.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제대로 된 위기관리는 힘들다. 일부 부서에서 특정 위기의 전조를 발견했다고 치자. 이를 공론화 해서 문제 의식이 경영진 사이에서 형성 된다. 그 이후 일부 기업에서는 정치적인 논란이 발생한다. 이 전조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왜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 두었는가? 이 전조를 지금이라도 해결하자 하면 어떤 부서와 누가 다치게 될까? 누가 제일 고생 하게 될까? 그런데 누가 왜 이런 공론화를 하고 있나? 그 의도가 뭔가? 이런 조직 내 고민이 길어진다. 결국 누구도 아무도 직접 관리하려 하지 않게 돼버린다.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이 경우에는 차라리 다 같이 몰랐다 하는 게 더 쉬워진다.

    넷째, 위기 전조와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관리 못할 이유가 더 컸던 유형

    ‘누가 함부로 이 위기를 관리하자고 할 수 있을까?’하는 위기다. 예를 들어 오너와 관련된 위기인 경우가 그렇다. 오너께서 앞으로 큰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하고 계신다. 그 정황을 조직에서 감지했고, 그 심각성을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해당 조직이 정작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오히려 위기를 관리하자고 나서는 부서나 임원은 다른 마음이 있다고 비판 받고 오히려 그런 경고 행위가 문제가 되어 버린다. 전조는 공식적으로 무시된다. 몰랐던 것으로 추후 알려진다. 정확히는 그렇게 알려지길 원한다.

    다섯째, 위기 전조와 심각성을 알았지만, 잘못된 대응책을 세웠던 유형

    대응책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경우 위기가 발생했다는 의미는 이전에 실행된 대응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위기를 더욱 더 키워 폭발 시켰다는 의미일 것이다.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감지된 문제를 정공법을 통해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무마나 은폐 시도를 통해 사전 대응 하려 했던 경우다. 이 경우에는 사후에 ‘해당 조직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는 의심을 크게 받게 된다. 실제로 사전에 실행했던 행위들이 일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도 해당 조직은 “몰랐다”고 한다. 팩트가 어떻게 드러나건 지속적으로 몰랐다는 포지션을 지키려 노력한다.

    여섯째, 악당과 바보의 딜레마에서 살아 남기 위해 몰랐다는 택한 유형

    위기가 발생하면 바로 당면하게 되는 ‘악당과 바보’의 딜레마. 위기 발생 이후 많은 사회적 이해관계자들이 질문을 한다. ‘이 문제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이에 대한 조직의 질문은 “알고 있었다”와 “몰랐다”의 두 옵션으로 나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해당 문제를 “알고 있었다”라고 답하게 되면 해당 조직은 그 심각한 문제를 알고도 수수방관했던 ‘악당’이 되어 버린다. 더 이상 정상참작이나 사회적인 관용이 적용되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린다.

    반면 “몰랐다” 답하게 되면 “어떻게 그런 큰 문제를 모르고 있었나?”는 비판은 받겠지만, 일부 책임은 면하게 된다. 대신 ‘무능한 바보’ 이미지를 떠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조직들은 ‘악당’으로 인정 받느니 ‘바보’라는 이미지를 택하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조직들이 습관적으로 위기 발생 이후 “몰랐다” 이야기한다.

    이상의 유형들은 다시 한번 살펴보자. 실제로 몰랐던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할 것이다. 몰랐다 이야기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 보다 편리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느끼기 때문에 몰랐다 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몰랐다’는 조직의 포지션이 실제로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다. 해당 조직이 “몰랐다”고 했지만, 언론이나 규제기관이 밝혀보니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다. 이미 그 조직이 해당 문제를 오래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고, 그 문제를 수수방관 했으며, 오히려 그 문제를 덮고 숨기려 했고, 결국에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니 단순히 몰랐다 주장 하고 있다고 이해관계자들이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 만큼 이해관계자들의 관심과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직이 스스로 투명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는 위기관리 환경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비밀은 없다는 말도 요즘처럼 생생한 적이 없었다. 환경은 그렇게 훌쩍 변해 버렸다.

    그에 비해 조직이 가진 위기관리에 대한 관심, 문화, 역량, 습관, 방식들은 별반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예로 든 여러 유형들을 골고루 답습하고 그를 반복하는데 익숙하기만 하다. 이미 여러 케이스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데도 계속 ‘몰랐다’는 포지션으로 일관한다. 최초 얻은 ‘바보’의 포지션이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결국에는 ‘바보 악당’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되어도 조직들은 계속 ‘몰랐다’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런 실패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으려면 위기관리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보여야 한다. 위기의 전조를 실시간 감지하려 애써야 한다. 그 심각성을 입체적으로 논할 수 있는 체계와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내부적으로 위기 민감성을 극대화 하고, 위기관리를 위해 이를 쉽게 공론화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제대로 된 사전 대응을 통해 위기의 발생을 지금보다 더욱 더 제한해야 한다. 실제로 위기가 발생하게 되면 정확하게 책임 범위를 설정하고 전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해야 살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조언을 추가한다.

    일선 조직이 문제의 전조를 감지했다고 치자. 그 문제의 전조를 입체적으로 분석해 해당 조직이 어떤 대응을 기해야 하는가 고민 할 때 참고 해 볼 기준이 하나 있다. 의사결정 그룹이 다 함께 모여 해당 전조를 놓고 이렇게 스스로 물어 보길 바란다.

    “언론이 이 문제를 세세하게 보도했을 때 우리 조직에게 어떤 상황이 예상될 것인가?”

    언론이 해당 문제를 보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말이다. 일단 보도가 아주 자세하게 된다 가정하고 그 이후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 문제가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을 때, 고객, 직원, 거래처, 규제기관, 기타 정부, 국회, 정치권, 시민단체 등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로 인해 우리 조직이 어떤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게 될까? 이런 질문을 해 보자는 것이다.

    만약 그런 질문에 대해 “보도가 되어도 별반 우리의 책임을 묻는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을 것이다” 또는 “보도되더라도 별 문제가 없어 이해관계자들이 우리 조직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주를 이룬다면 해당 전조는 아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반면에 보도가 되면 우리 조직에게 큰 책임이 지워질 것이라던가,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공격적인 영향력을 행사 하게 될 것이라는 답변이 나오면 이 전조는 필히 신속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큰 문제인 것이다. 그 이전에 “이는 보도되면 안 된다”는 내부 느낌이 있다면 그 또한 심각한 문제의 전조란 의미다.

    사회에서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어도 문제 없는 일만 해야 맞다. 언론에서 보도하려 해도 너무 당연하고 일반적이라 보도되지 못할 일들이 대부분인 게 정상이다. 만약 아주 일부의 경우 보도되면 민감할 전조들이 있다면, 필히 그 전조를 관리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지속적이고 민감한 감지와 개선 노력들이 있어야 위기는 관리 된다. 기존의 “몰랐다”는 비전략적인 노력은 점점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경영 품질의 관점에서도 제대로 된 조직은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그럴 리가 없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 조직의 현실이다.

    항상 ‘몰랐다’는 포지션 뒤로는 ‘숨는 실행’이 따라온다. 한마디로 쉬쉬하는 것이다. 해당 조직은 당연히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고 피해 다니게 된다. 이는 곧 위기 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길티(guilty)의 제스처로 해석된다.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으려 하지만, 실제로는 부정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는 셈이 돼 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전략적이지 못한 대응인가?

    지금이라도 어떤 문제의 전조를 발견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이 것이 언론에 보도돼도 괜찮을 까?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진짜 그럴까? 이런 질문이 곧 위기관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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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conBrain 기고문] 위기관리의 패러독스, 이 이중적 역설

    위기관리의 패러독스, 그 이중적 역설

     

    정용민 대표

    스트래티지샐러드

     

    OO주식회사
    홍보실 홍실장. 업무평가 기간이다. 사장께서 홍실장을 불러
    여러 이야기를 하신다. “작년 한 해부터 올해 초까지 홍보실에서 잘 한 것 같은데…OOO TV에서 취재를 나온 것은 약간 문제가 있었다. TV방송 하나 제대로 관리를 못하나. 홍보실에 그런 걸 잘 막아내
    주어야 마케팅이나 영업이 더욱 힘을 받아 일을 할 수 있는 데.”

     

    홍실장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사장님, 사실 그것도 저희측에서 사전에 그쪽 취재진과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눠 그나마 그 정도로 단순 보도 된 것입니다. 원래는 상당히 심도 있게 취재를 하겠다 해서
    저희 홍보실이 애 많이 썼습니다.” 사장은 머리를 좌우로 저으며 다시 한번 이야기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홍보실이 더욱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TV
    신문이 우리 회사에 대해 부정적 기사나 보도를 하는 것을 완벽하게 막아내야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올해와
    내년에는 부정적 기사 0%를 기대합니다.”

     

    홍실장은 사장실을 나서면서 한숨을 내쉰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우리 홍보실에서 사전에 막아낸 위기들이
    얼마나 많은 가 말이야. TV 취재만 해도 올해 들어서만 대여섯 번이었는데 홍보실 직원들을 지방까지
    파견해 가면서 막아냈는데그런 부분은 하나도 인정 안 해 주시니 정말 섭섭하군…”

     

    홍실장이 이끄는 홍보실 인원은 총 10명이다. 이들 중 주로 언론에 대응하면서 소위 언론 위기관리를
    하는 직원들은 홍실장을 포함 5명이다. 홍실장은 물론, 이들 중 몇몇은 한 달에도 대여섯 번씩 벌어지는 위기상황으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들이 다반사다. 일부는 지방지와 지역방송사들을 대상으로 인맥을 엮어가면서,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당연히 해당 지역에서 이슈가 발생하면 바로 지역에 투입이 되고, 2-3일간 현지에서 고군분투한다.

     

    각종 지점과 영업현장에서의 문제들, 소비자 불만들과 고발들, 마케팅 프로모션 쪽에서 벌어지는 각종 논란과
    트러블들이 주요 위기 요소들이다. 화난 소비자까지 커버하지는 못해도,
    이에 주목하는 언론사 기자들을 커버는 해야 한다. 소비자만족 팀에서나마 초기에 일을 잘
    처리해 주면 홍보실 잡일이 줄 텐데, 100건에 대여섯 건은 홍보실이 도맡아 해결해야 하는 중증 컴플레인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이런 위기들을 홍실장과 그 인력들이 열심히 방어(?)아닌 방어를 하고 있는데도 그 결과에 대해서만 평가를 받는다는 게 홍실장은 너무 안타깝다. 10을 잘 막아내도 하나만 자칫 잘못 막아내면 완전히 사내에서 역적이 되는 신세다. 일 잘한다 하는 평가도 위기관리 실패 한번이면 다 도루묵이다.

     

    홍보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돈다. “차라리 저희가 위기 9개를 못 막아내다가 하나만 제대로 막아내는
    게 더 평가가 좋을 것 같습니다.”하는 의식이다. 예전 홍실장이
    초급 직원 시절에는 선배들이 일부러 위기를 초기에 막지 않는 트릭을 부리기도 했었다. 그 당시 홍보실장이었던
    왕실장은 종종 이런 말을 했었다. “너무 깨끗하게 위기를 초기에 해결해 버리면 사후에 우리의 존재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러니 어느 정도 위기를 바라보다가 사내에서 문제의식을 깨닫게
    되면 그 때 구원투수처럼 나타나는 게 우리에게 더 나은 거야

     

    홍실장은 그 선배의 이야기에 담긴 뜻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그 때 회사에게
    심각해 보이는 위기였는데도 윗분들은 그렇게 느릿느릿 대응했었구나그게 사는 길이었어…”하고 혼잣말을 한다.

     

    위기관리에 있어서 몇 가지 역설(paradox)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이런 부분이다. 해당 부서가 사전에 위기를 일선에서 잘 발견해 조치를 취하거나, 해결하고, 관리해내면, 조직에서는 그 위기가 원래 위기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연히 힘들게 성공적으로 위기관리를 한 직원들은 평가에 있어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반대로 위기를 사전에 모니터링 못하거나, 대응 조치의 시기를 놓쳐서 실제적 위기로 조직에게 일정 임팩트를 가한 위기에 대해서는, 사후 위기관리가 진행되어 그 문제가 해결되면 위기관리를 잘 했다하는 평가를 해당 조직이 부여 받게 된다.

     

    당연히 사전 위기 방지활동이나 초기 대응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일선에서 고생을 해도 그런
    일이 있었어? 해결 된 거 보니 별 것 아니군하는 반응이나
    평가가 떨어지니 고생할 동기나 보람이 없는 거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위기는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라 말 하지만, 현실에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차라리 가시적이고 실제적인 임팩트가 없는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특히나 사장님의 피부에 닿지 않는 위기는 위기가 될 수 없는 거다. 그에 따라 사장님의 피부에 닿는 위기관리 또한 필요한 거다.

     

    홍보실 인력들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씩 집에 못
    들어가고, 불철주야 고생을 하고, 일부는 기자들과의 술자리에
    건강이 무너져 가도, 현실적으로 사장과 타 부서 임원들이 볼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일부 임원들은 홍보실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다닌다.

     

    사장과 임직원들이 이런 위기 인식과 위기관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나 조직은 제대로 된 위기관리 시스템이나 평가를 수립 진행하기 힘들다. 상당히
    소모적이고 구태적인 시스템으로만 운영이 가능할 뿐이다. 이런 조직에서 전문적이거나 성공적인 위기관리
    담당자들 또한 살아남기 조차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