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를 최고 경영진이 해야 한다는 의미는 경영진이 현장에서 일선을 제치고 위기 대응 활동을 직접 실행하며 다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연히 실제 위기 대응 활동은 일선 실무자들이 한다. 경영진이 해야 하는 것은 그 실무자들을 위한 대응 방향 설정, 의사결정, 지원, 통합적 관제 역할이 핵심이다. 각자의 역할이 혼동되어서는 성공적 결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 위기가 발생한 기업에 들어가 내부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영진들은 실무자들이 너무 수동적이고 느리고 답답하다는 불만을 이야기한다. 관심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그들만’ 교육하고 훈련하려 평소 애쓰기도 한다.
반대로 실무자들은 위기 시 경영진의 우유부단함에 큰 불만을 제기한다. 일부는 임원들이 너무 현실과 동 떨어진 대응 지시를 해 골치 아프다 하기도 한다. 경영진이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의사결정을 주저하고, 지원 대신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실 실무자들은 자신이 현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현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왜 해야 하고,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해야 하며, 누구를 대상으로 언제까지 해 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뿐이다.
경영진도 마찬가지다. 실무자들이 임원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질문해 오면 그에 적절한 결정과 함께 우리가 실무자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좋다. 통합적 관제를 해 가면서 안되는 것을 어떻게 든 되게 지원하고,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
이번 편에서는 실무자 그룹들이 임원들에게 원하는 위기 시 실천 항목을 크게 7개로 뽑아 정리해 본다. 실무자들은 위기 시 임원들이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을까?
첫째, 제발 빨리 마주 앉아 주세요.
일선에서 팀장에게 문제 발생을 보고 한다. 팀장은 사내 메신저로 임원에게 보고한다. 해당 임원은 보고 받은 사실을 기반으로 관련 임원들에게 문제 발생 사실을 공유한다. 그 중 최고 임원이 사실관계를 좀더 정리해 부사장에게 보고 한다. 부사장도 추가적으로 확인할 내용을 정리해 대표이사에게 보고한다. 대표이사는 좀더 큰 의사결정을 위해 회장에게 보고한다. 이 프로세스를 한번 상상해 보자. 이 프로세스가 완결되어 다시 최초 실무자에게 대응 지시로 돌아오는 기간 까지는 대체 얼마나 소요가 될까?
위기 발생 시 담당 임원과 대표이사 비서와의 대화를 가상해 보자.
“대표님께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급하게 대표님을 좀 뵐 수 있을까요.”
“저 상무님 지금 대표님 중요한 회의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이제 대표님 회의가 끝나셨나요?”
“아…상무님, 지금 대표님 회의는 끝나셨는데. 해외와 컨퍼런스 콜 하고 계세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대표님 컨퍼런스 콜이 이제는 끝나셨나요?”
“상무님, 죄송해요. 제가 보고는 드렸는데, 지금 화장실 가셨습니다. 조금만…”
“대표님 돌아오셨나요?”
“상무님…방금 전 외출하신다고 나가셨습니다. 직접 휴대폰으로 연락해 보시지요.”
이런 식으로 현실에서는 길고 긴 시간이 보고 대기 행위로 소모된다. 이런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화 하기 위해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일단 위기가 발생되면 최고 의사결정자들과 위기관리팀 구성원이 한자리에 신속히 마주 앉으라”는 조언을 한다. 실무진들이 원하는 임원들의 실행 가장 첫번째도 그것이다.
모두 한꺼번에 한자리에 모여 한 번에 상황을 브리핑하고, 추가 질문과 확인을 진행하며, 신속한 의사결정에 대한 합의를 끝내 달라는 요청이다. 그래야 일선에서도 빨리 대응해서 문제를 관리해 나갈 수 있게 되니 하는 말이다.
두번째, 의사결정 좀 빨리 해 주세요.
실패하는 위기관리에는 항상 반복되는 메시지와 평가가 있다. “처음 겪는 사고라 경황이 없었다” “늦어진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 “때 늦은 사과” “늑장 대응” 이런 것들에 우리는 익숙하다. 가끔 그런 회사 사람들은 “우리도 최대한 빨리 한 건데, 그걸 가지고 늑장 대응이라고 하다니 정말 억울하다”며 하소연한다. 빠른 대응과 느린 대응을 나누는 기준은 대체 뭐냐 질문한다.
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빠르게 대응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는 신속함이 그 기준이다. 우리가 중심이 아니라 주변 핵심 이해관계자들의 시각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라는 하소연은 절대 기준이 아니다. 헷갈리지 말자.
의사결정은 그래서 더더욱 빛의 속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의사결정이 빨라 모든 대응 준비를 하고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대응 패턴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대응 준비를 해 놓았는데도 어떤 의사결정이 언제 이루어질지 몰라 모든 일선이 괴로운 게 현실이다. 일선에서는 위기관리가 기다림의 인내에 기반한다며 자조한다. 장시간 대기하며 상부의 의사결정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의사결정은 최대한 빨라야 한다.
세번째, 잡기술에 관심 같지 말아 주세요
임원들이 위기 시 자꾸 정석 대응 보다는 신기한 비밀 기술을 언급하며 일선에게 정상적이지 않은 대응을 주문하는 경우 일선은 크게 힘들어진다. 이런 경우 임원들은 “대응할 아이디어가 없나?” “뭐든 해야 하지 않을까?”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뭘 까?” 같은 질문을 많이 한다. 정해진 대응이라는 것은 명확한데, 그것 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것 같다.
밀어내기를 할까? 물타기는 어때? 하드를 OOO을 가지고 다 지워 버리자. 단톡방을 폭파해야 한다. 서류와 자료들을 직원 개인 차량으로 운반해라. 해당 기관에 빨대를 꼽아 놓아라. 엘리베이터를 중지 시키고, 관계 기관 사람들의 진입 시도를 최대한 끌며 방어해라. 가능하다면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 영장을 복사한다고 하면서 시간을 끌어라. 여러 디테일 한 기술들을 언급하며 모두가 한마디씩 거드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결론적으로 이러한 자잘한 기술들은 정해진 정석의 대응을 진행한 후에 고민하거나 이내 생략해도 된다. 그와 같은 기술을 가지고 그것이 곧 위기관리라 착각하면 안 된다. 일선에서는 그런 자잘한 기술에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는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낀다. 그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가? 이 질문이 대응 전반의 결정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네번째, 정상적 이해관계자관을 수립해 놓아주세요
만약 임원들이 언론을 극히 싫어 하거나 규제기관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그건 언젠가 문제가 된다. 소비자들을 폄하하거나, 시민단체와 국회를 우습게 안다면 더 큰 문제다. 거래처, 공장 주변 커뮤니티, 직원들과 그 가족들 어느 누구 하나도 정상적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평소 임원들이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자를 바라보는 시각, 대하는 자세, 관련한 깊은 고민이 정상화되어 있어야 위기 시 제대로 된 대응이 가능 해 진다. 물론 그와 같은 정상적 이해관계자관은 임원은 물론 일선에도 똑같이 공유되어 있어야 한다. 같은 이해관계자관을 전사 구성원들이 정상적으로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해관계자들을 존경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존중하는 습관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위기 시 모든 문제를 푸는 가장 훌륭한 열쇠가 이해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이해관계자들이 위기를 위기라 부르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 이해관계자들이 우리 회사의 위기대응 방식에 공감하고 칭찬한다면 그 위기관리는 성공한 것이 된다. 나아가서 기회로 이어질 가능성도 생겨난다. 그런 이해관계자를 두려워하고 존중하는 임원들이 제대로 된 위기관리를 한다.
다섯 번째, 코디네이터와 컨트롤타워 역할에 주목해 주세요.
기억해 보자. 국가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모든 언론의 공통된 평가와 주된 지적은 무언가? 바로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비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일선 실무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현재 누가 이 위기관리 전반을 관제하고 있는가?”다. 위기 시 컨트롤타워가 어디에 있고, 누가 컨트롤타워의 핵심인가 하는 것을 일선은 계속 궁금 해 한다.
컨트롤타워의 역할은 ‘하게 하고, 되게 만드는 것’이다. 일선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면 그 어려움을 풀어주는 것이 컨트롤타워의 역할이다. 대응을 주저하는 일선 부서가 있다면 그 부서로 하여금 대응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역할이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의미는 강제로 그것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게끔 지원해 주라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
어떤 대응 분야에 혹시 빈틈이 존재하는지를 모니터링 해 가며 확인하는 것도 컨트롤 타워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미 실행한 대응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반응을 센싱하는 것도 컨트롤타워의 임무다. 다음 추가 대응이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컨트롤타워 없는 위기관리는 머리 없이 움직이는 몸뚱이와 다를 게 없다. 반대로 정해진 컨트롤타워 없이 임원 개개인이 대응을 지시하는 체계는 마치 머리가 여럿 달린 몸을 떠올리게 한다.
여섯 번째, 멀리 보며 순리를 따져 주세요
임원이 일희일비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조급함을 신속함과 혼동해서도 안 된다. 큰 흐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불같이 타오르는 이 상황이 지나면 일주일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한달 후는? 일년 후는? 이런 생각과 질문에 집중 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순리는 과연 어떤 것일까 질문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위기관리 기법이다. 만약 제대로 된 순리를 찾게 된다면 의외로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다. 그 순리적 대응이 비록 아프고, 입에 쓴 것이라 할지라도 당면 문제를 풀어내는 데에는 그 이상 가는 명약이 없다고 믿어야 한다.
대부분 위기관리 실패에는 그러한 순리를 무시하거나, 역행하려는 시도와 실행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그런 순리에 어긋나는 대응을 진짜 위기관리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멀리 보면 순리가 보인다. 감정을 스스로 자제하고 합리성과 이성을 확보하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에 대한 인위적 훈련과 반복적 경험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한다. 임원들에게 아주 필요한 훈련이다.
마지막, 항상 벤치마크, 벤치마크, 벤치마크 해 주세요
타사 위기 사례들은 아주 소중한 기출문제로서 의미가 크다. 자사의 전례들도 아주 소중한 위기관리 자산이다. 최근 어떤 위기 발생 트렌드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공부가 바로 벤치마크다. 젠더갈등에 대한 관심. 녹화 녹음 캡쳐 트렌드. 내부고발. 블라인드. 소송. 온라인 갈등. 정치적 갈등. 갑질. 폭력. 미투. 사회적 책임. 투명성. MZ세대들과의 위기관리 협업. 법의 강화. 다양한 위기관리 주제와 흐름에 익숙해져야 실제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게 된다.
나는 위기관리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릅니다. 그런 위기가 있었나요? 몰랐네요. 그게 뭐지요? 유행어인가요? 우리 회사는 그 회사와 다릅니다. 그런 민감한 내용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전례가 있다고요? 솔직히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실제 임원의 입을 통해 나와서는 안 된다. 단순히 관심의 여부라고 하기에는 매우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선 실무자들의 일곱가치 실천 요청을 임원들은 좀 더 귀기울여 들었으면 한다. 이상과 같은 요청 하나 하나를 충실하게 실천해 나가기만 한다면 보다 성공적이고 효율적인 위기관리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 보자.
위기관리는 최고경영진이 한다는 말의 의미도 다시 한번 새겨 보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