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 위기관리 골든타임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에서 골든타임은 기업의 대응이 당면한 위기 상황의 방향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시간대를 말합니다. 통상 위기가 표면화된 뒤 24시간 이내로 봅니다. 이 시간을 지나면 같은 대응을 해도 효과가 떨어지고, 기업은 상황을 이끄는 위치에서 끌려가는 위치로 내려앉습니다.

    시계는 사고 시점이 아니라 인지 시점부터 돕니다

    골든타임을 계산할 때 자주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사고가 난 시각을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실제 기준은 다릅니다. 이해관계자가 그 사안을 인지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시계가 돕니다.

    내부에서만 알고 있던 사안은 아직 골든타임이 시작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구간은 이슈관리의 영역입니다. 반대로 사고 자체는 몇 달 전 일이라도 오늘 외부에 알려졌다면 오늘부터 24시간을 셉니다.

    그래서 감지가 중요합니다. 우리 회사와 관련된 부정적 신호를 누가 언제 발견하는가에 따라 골든타임의 실질적 길이가 달라집니다. 감지가 늦은 조직은 시작부터 몇 시간을 잃고 들어갑니다.

    첫 한 시간에 무엇을 하는가

    24시간 전체를 균등하게 쓰는 것이 아닙니다. 실무에서는 첫 한 시간 안에 회사의 첫 공식 발화를 내보내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이 발화가 완전한 설명일 필요는 없습니다.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 확인되는 대로 알리겠다는 것. 이 세 가지면 충분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이해관계자별 대응을 설계하는 데 씁니다.

    첫 발화가 늦어지면 그 공백을 다른 사람들이 채웁니다. 목격자, 내부자, 경쟁 관계에 있는 쪽, 그리고 추측이 채웁니다. 나중에 정확한 설명을 내놓아도 이미 형성된 서사를 뒤집기는 어렵습니다.

    골든타임은 준비된 조직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판단 기준이 없는 조직은 첫 회의에서 이것이 위기인지 아닌지부터 논의합니다. 대변인이 정해져 있지 않은 조직은 누가 나갈지를 두고 시간을 씁니다. 사실을 확인할 경로가 없는 조직은 추측으로 답합니다. 이런 조직에게 24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무엇을 위기로 볼지, 누가 판단하고 누가 소집되는지, 누가 말하는지가 미리 정해진 조직은 같은 시간에 논의가 아니라 실행을 시작합니다. 두 조직의 결과는 첫날 저녁이면 이미 갈립니다.

    위기는 몰라서 터지지 않습니다

    기업 위기의 상당수는 예상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미뤄서 발생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위험 요소를 두고 아무도 손대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다가, 어느 시점에 밖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든타임 관리는 위기 대응 기술이 아니라 평시 관리의 문제입니다. 위기가 없는 시기에 무엇을 해 두었는지가 위기가 왔을 때의 몇 시간을 좌우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첫 한 시간에 내보내는 발화의 형식입니다.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골든타임이 시작되기 전 구간입니다.
    입장문, 해명문, 사과문은 어떻게 다른가: 그 시간 안에 무엇을 내보낼지의 선택입니다.
    위기관리 108수

  • 위기, 이렇게 라도 끝낼 수 있다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기업이 발생된 위기를 종결시키는 방식, 예를 들면 사업 철수, CEO 교체, 법적 판결 수용 같은 것으로, 극대화된 위기상황을 종결로 이끈다는 전략이 있더군요.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이런 강력한 결정으로 대형 위기를 종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먼저 한 가지 전제부터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를 기업이 ‘종결시킨다’는 표현 속에 담긴 생각이 그것입니다. 과연 위기의 종료를 기업이 결정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기의 종료는 기업이 선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를 지켜보던 이해관계자들 전반의 공유된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언론이 관심을 거두고, 여론이 시선을 옮기고, 피해자와 규제기관이 각자의 정리를 마치는, 공식 문서 한 장 없는 비공식적 흐름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합의이지요. 기업은 그 합의의 형성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입니다. 위기를 우리 손으로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은, 통제 불가능한 것을 통제 가능하다고 믿는 위험한 착각입니다.

    그렇다면 말씀하신 사업 철수, CEO 교체, 법적 판결의 수용 같은 강력한 결정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종료의 ‘선언’이 아니라, 거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종료를 ‘구매’하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사업 철수는 사업 그 자체를 지불한 것입니다. CEO 교체는 리더십을 지불한 것이지요. 이해관계자들이 ‘이 정도면 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값을 치르고, 그들의 합의를 앞당겨 사 오는 것입니다.

    구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곧 권한의 증거는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심판에게 몰수패를 요청해 경기를 끝내는 것과 같습니다. 경기는 분명 끝났지만 누구도 그것을 경기 운영 능력이라 부르지 않지요. 오히려 그 거대한 가격표야말로, 위기의 종료 시점을 기업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사실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스스로 끝낼 수 있었다면 그런 값을 치를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 방식이 효과적인가’가 아닙니다. ‘왜 이런 대가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가’입니다. 사업과 리더십을 내놓아야만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얻을 수 있는 지경이라면, 그 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관리의 영역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 앞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위기관리의 정의가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적시에 하는 것. 이 정의는 궁지에 몰려 사업과 CEO를 내놓는 순간에 구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의 초기에, 더 정확히는 위기가 오기 전 평시에 구현되는 것입니다. 제때 치렀어야 할 작은 비용을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에 가장 비싼 값으로 한꺼번에 치르는 것. 그것을 전략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강력한 결정으로 위기를 끝내는 장면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관리의 성공이 아니라, 위기관리에 실패한 기업이 지불하는 최후의 계산서에 가깝습니다. 그 계산서를 받아 들기 전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 위기 종료의 진짜 열쇠는 거기에 있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

  • 위기와 위기관리 속에는 사람이 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위기를 일으키는 것도 사람이고, 그 위기를 힘겹게 수습해 나가는 것도 사람이다. 위기를 둘러싸고 그것을 더 큰 재앙으로 키우는 것 역시 사람들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답은 한결 분명해진다. 사람이 없는 곳에는 위기도 없다. 이것은 위기관리에서 가장 확실한 진리다. 그렇기에 위기관리를 제대로 해내고 싶은 기업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원칙은 사실 위기관리 매뉴얼의 뼈대에도 새겨져 있다. 잘 만들어진 매뉴얼이 던지는 첫 질문은 언제나 ‘누가(who)’다. 누가 이 사안을 판단하는가, 누가 회사를 대변하는가, 누가 피해를 입었고 누가 분노하고 있는가, 누가 영향력을 쥐고 있는가. 위기를 대비하는 일의 상당 부분도 결국 사람의 일로 채워진다. 임직원과 함께 땀 흘리는 훈련과 시뮬레이션이 그 한가운데 있고, 위기 유형별로 이해관계자와 영향력자, 곧 사람들을 미리 살피고 관계를 다져 두는 일이 그 나머지를 이룬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 히에로클레스의 통찰을 참고해 보자. 그는 ‘오이케이오시스(Oikeiosis)’, 우리말로 옮기면 ‘내 것으로 여김’ 정도가 될 개념을 동심원으로 설명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한가운데 두고, 그 바깥으로 가족과 이웃, 동료 시민, 그리고 마침내 온 인류로 이어지는 여러 겹의 원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가 권한 삶의 태도는 이러했다. 저 바깥쪽 원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씩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마치 가까운 이처럼 여겨 보라는 것이다.

    이 동심원이 바로 위기 시 이해관계자 관리 지도다. 가장 안쪽에 경영진과 조직이 있고, 그 다음 원에 임직원이, 이어 협력사와 거래처가, 그리고 고객과 지역사회가, 맨 바깥에 더 넓은 사회와 여론이 겹겹이 놓인다. 위기를 맞은 기업이 해야 할 일도 히에로클레스의 조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 바깥 원의 사람들까지 안쪽으로 끌어당겨, 그들의 감정과 시선을 내 일처럼 헤아려 보는 것이다. 이 지도를 평온한 시절에 미리 그려 둔 기업과, 위기가 터진 뒤에야 ‘누가 있었더라’ 하고 뒤늦게 헤매는 기업의 걸음걸이는 첫날부터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사람’의 양면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는 ‘명상록’에 이렇게 적었다. “사람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그들을 가르치든지, 아니면 견뎌내라.” 짧지만 위기관리의 본질을 관통하는 말이다. 사람은 때로 참고 견뎌야 할 골칫거리이면서도, 결국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해법이라는 뜻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도 그렇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사람이고, 그 문제를 더 크게 키우는 것도 사람이지만, 끝내 그 문제를 풀어낼 열쇠를 쥔 것 또한 사람이다. 사람이 곧 문제이며, 동시에 사람이 곧 해법이다.

    반면 돈과 숫자만 들여다보거나,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좇거나, 자기 느낌과 확신에만 기대어 판단할 때, 정작 그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들은 슬그머니 시야에서 사라진다. 준비도, 의사결정도, 대응도 사람을 향하고 있을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법이다.

    위기관리는 이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향한 일이다. 숫자 뒤에, 현상 뒤에, 그리고 나의 확신 뒤에 가려진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위기 속에 사람이 있고, 위기관리 속에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데서 위기관리는 비로소 시작되고, 또 그렇게 마무리된다.

  • 2. 위기 앞에서 분노를 내려놓는 세 가지 방법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 현장에서 경영진으로 부터 가장 자주 목격하는 감정이 있다. 분노다. 위기 대응 회의실에서 고성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 전화기 너머로 전달되는 날선 분노, 침묵 속에 응축된 차가운 분노.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같다. 통제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경영진의 저항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기업 위기는 대체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가.

    위기는 경영자가 분노할 ‘대상’이 아니다. 위기는 풀어야 할 ‘숙제’다. 숙제 앞에 앉은 학생이 화를 낸다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를 내는 동안 시간이 흘러가고, 판단이 흐려지고, 골든타임이 소진된다. 위기관리에서 분노는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만 더 악화시킨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2000년 전에 이미 이것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그는 저서 ‘화에 대하여(De Ira)’에서 이렇게 말했다. “분노는 일시적 광기다(Ira furor brevis est).” 분노한 상태의 인간은 이성을 잃은 상태라는 것이다. 눈빛이 흔들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말이 거칠어진다. 세네카는 이것이 광기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광기가 오래 지속되느냐, 잠깐 지속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위기 현장에서 분노한 경영진이 내린 결정들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필자는 수없이 목격했다. 그 분노가 없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말들, 내리지 않았을 지시들, 취하지 않았을 행동들. 분노는 판단을 흐리고 조직을 흔든다. 경영자가 분노하는 순간 조직 전체가 그 분노의 파장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실무진은 옳은 판단보다 경영자의 분노를 잠재울 반응을 먼저 찾기 시작한다. 전략적 대응이 아니라 감정적 반응이 조직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분노한 경영자가 그 분노를 정당하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세네카는 이것이 분노의 가장 교활한 속성이라고 했다. 분노는 스스로를 의로운 감정으로 위장한다.

    만약 위기 앞에서 경영자가 반드시 화를 내야 한다면, 그 화는 딱 하나의 방향으로만 향해야 한다. 이 위기를 평시에 대비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화, 그리고 준비의 중요성에 무관심했던 조직에 대한 화다. 그 화만이 생산적이다.

    그 화만이 다음 위기를 막는 에너지가 된다. 언론을 향한 화, 이해관계자를 향한 화, 상황 자체를 향한 화는 모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세네카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파도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분노의 처방은 하나다. 지금 내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리는 것. 분노는 의식되지 않을 때 가장 강하고, 의식되는 순간 힘을 잃기 시작한다.

    아, 나는 지금 분노하고 있구나. 이 짧은 자기 인식이 분노가 판단을 지배하는 것을 막는 첫 번째 방어선이다.

    위기는 숙제다. 숙제는 그냥 풀어야 한다. 분노는 그 숙제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핵심요약

    1. 분노가 느껴지는 순간 즉각 반응하지 말고, 먼저 ‘나는 지금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라.

    2.언론, 이해관계자, 상황 자체를 향한 분노는 내려놓고, 그 에너지를 통제 가능한 대응 실행에만 집중하라.

    3. 만약 화를 내야 한다면 이 위기를 평시에 대비하지 못한 자신과 조직을 향해 내고, 그 화를 다음 위기를 막는 준비의 동력으로 전환하라.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 5. 준비가 곧 위기관리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CEO를 위한 스토익(Stoic) 위기관리 원칙

    첫째, 위기관리를 기술의 문제가 아닌 철학과 준비의 문제로 재정의하라.

    둘째,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위기 요소를 찾아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라.

    셋째, 사전 준비를 통해 이해관계자의 반응까지 미리 파악해 두어라.

    위기가 마주한 기업은 위기관리 컨설턴트를 불러 종종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떤 기업은 컨설턴트 여럿을 동시에 불러 마치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듯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제안을 경쟁시키기도 한다. 기업이 그저 위기관리를 기술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기업은 이미 위기관리의 절반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위기관리는 기술이 아니다.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것은, 위기관리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실패의 질문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수 천 년 전 이미 준비에 관해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에픽테토스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에 대해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압도당한다.”고 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의 자리에서도 매일 아침 닥쳐올 수 있는 어려움을 먼저 떠올리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준비는 사건 이후가 아니라 사건 이전의 일이라는 가르침이다.

    기업 위기관리도 이와 같다. 진정한 위기관리는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위기 요소를 사전에 찾아내고, 그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본체다. 여기에는 기술이 개입하지 않는다. 개입하는 것은 경영진의 철학이고, 조직의 심사숙고이며, 일상적인 훈련이다.

    위기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업 위기에는 사전 신호가 있다. 내부 갈등의 누적, 안전의식의 미비, 거버넌스의 허점, 규제 환경의 변화, 협력사 리스크의 증가, 핵심 인물의 행태 변화. 이 신호들은 위기가 터지기 한참 전부터 이미 조직 안에 존재한다. 그것을 포착하고 관리하는 기업과 그것을 외면하거나 인식조차 못하는 기업은, 같은 환경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맞는 것이 당연하다.

    위기 요소를 체계적으로 식별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단순한 리스크 목록 작성이 아니다. 각 위기 요소가 현실화될 경우 어떤 경로로 확산되는지, 어떤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직의 어떤 자원이 소진되는지를 미리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일이다. 이 작업이 완료된 기업은 위기를 맞았을 때 낯선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다. 이미 한번 겪어본 상황에 다시 들어서는 것이다.

    수험생에게 가장 효과적인 시험 준비는 기출문제 풀이다. 실제 시험에서 여러 번 출제된 문제의 유형과 수준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다. 기업의 위기관리 준비도 정확히 이와 같다. 우리 기업과 여러 타사들에게서 발생된 위기의 유형을 미리 분석하고, 각 유형별로 이해관계자의 반응과 대응 방향을 사전에 예상하여 대응을 설계해 둔 기업은,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혀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기업과, “우리는 이 상황을 이미 검토해 두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기업의 차이는, 위기의 첫 72시간 안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자는 논의의 출발점을 그 자리에서 찾기 시작한다. 후자는 이미 합의된 방향 위에서 실행을 앞두고 있다. 이렇듯 위기의 골든타임 또한 준비된 기업에게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세네카는 말했다. “행운은 준비된 마음을 만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위기관리에서도 그대로 성립한다. 위기관리 컨설턴트의 조언도,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위기 대응 매뉴얼도 모두 준비된 조직을 만났을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준비되지 않은 조직에게 기술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성공하는 기업 CEO에게는 이 개념적 정렬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위기관리란 위기가 발생한 이후의 기술적 대응이 아니라,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의 철학적 준비라는 것. 준비 없는 위기관리는 어렵고 힘들다. 실패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반대로 준비된 기업에게 위기는 조직의 역량을 증명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준비가 곧 위기관리다. 이 명제는 단순하지만, 실천하는 기업은 여전히 드물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 6. 기업 위기관리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CEO를 위한 스토익(Stoic) 위기관리 원칙

    첫째, 위기 대응 역량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반복된 훈련으로 길러지는 기술이다.

    둘째, 예상되는 위기 상황을 평시에 실제처럼 반복하여 몸에 익혀라.

    셋째, 훈련을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조직의 일상적 규율로 정착시켜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 이렇게 적었다. “삶의 기술은 춤보다 레슬링에 가깝다. 정해진 안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일격에 맞서 늘 준비된 자세로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기관리도 그렇다. 위기는 잘 짜인 안무처럼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예고 없이, 변칙적으로, 가장 취약한 곳을 노리고 들어온다. 그래서 위기 대응은 대본을 암기하듯 되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훈련된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듯, 조직이 평소 길들여 둔 습관과 절차가 그 순간 작동해야 한다. 레슬러는 상대의 다음 동작을 일일이 예측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어떤 변칙이 들어와도 무너지지 않도록 몸을 미리 단련해 두었기에 버티는 것이다.

    훈련되지 않은 기업이 위기를 맞으면 어떤 모습이 되는가. 오합지졸이라는 표현 그대로다. 누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모른 채 미루고, 사실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각각 입을 열고, 사과의 타이밍을 놓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기자 앞에서 내뱉는다. 돌이켜 보면 대단한 전략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을 뿐이다. 정상적인 훈련을 한 번이라도 거친 조직이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사려 깊지 못한 실수와 황당한 대응이 위기를 더 키운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평시에 경험해야 할 위기관리 목적의 훈련은 무엇인가. 가장 일반적인 것이 미디어트레이닝이다. 그리고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 위기관리 시뮬레이션, 대변인 트레이닝이 그 뒤를 잇는다. 나아가 고객, 정부, 기관, NGO, 지역 주민, 투자자, 노조 등 각 접점에서 벌어질 상황을 가정한 이해관계자 접점 시뮬레이션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안전 대피 훈련, 해킹 방어 훈련처럼 부서별 책임과 역할에 직결된 주제별 대응 훈련은 더욱 기본에 속한다. 이러한 훈련에 관심이 없거나, 기회가 없거나, 늘 부족한 상태로 위기를 맞는 기업은 그 대가를 고스란히 현장에서 치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에픽테토스는 “어려움이야말로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낸다”고 했다. 그는 레슬링 코치 비유를 하기도 했다. 신은 마치 거친 상대와 우리를 짝지어 주는 코치와 같아서, 그 힘겨운 상대를 통해 우리를 단련시킨다는 것이다. 단, 그는 분명히 덧붙였다. “그것은 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위기라는 거친 상대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그 이전에 흘려 두어야 할 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훈련은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에픽테토스는 또 이렇게 권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너 자신을 훈련하라. 그리고 거기서부터 더 큰 것으로 나아가라.” 위기관리 훈련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대규모 모의훈련을 이벤트처럼 치르고 끝낼 일이 아니다. 작은 상황 대응부터 반복적으로 몸에 새겨 두는 것이 핵심이다. 반복된 훈련은 위기의 순간, 판단의 속도와 정확성으로 되돌아온다. 이미 여러 번 겪어 본 상황과, 그 자리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은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훈련의 진짜 목적은, 예기치 못한 일격이 들어왔을 때 조직이 공황에 빠지지 않고 기본을 지키도록 만드는 데 있다. 화려한 묘수가 위기를 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기본기를 갖춘 조직이 황당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위기의 절반은 관리된다.

    춤추는 자는 정해진 음악이 멈추면 길을 잃는다. 그러나 단련된 레슬러는 상대가 어떤 변칙을 걸어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기업 위기관리에도 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평시에 흘린 땀이, 위기의 순간 조직을 지탱하는 훌륭한 근력이 된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 보여지는 게 중요하다고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어떻게 보여지는지가 실제로 중요합니까? 아니면 무엇을 제대로 하는지가 중요합니까? 윗분들은 항상 남들이 어떻게 볼지에 대해 과도하게 고민할 시간에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살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희가 볼 때 이게 평시와는 다른 위기상황에서는 좀 의미가 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컨설턴트의 답변

    모든 말씀들이 다 맞습니다. 무엇을 제대로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 경영의 본질에서 보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임원분의 질문 의미도 정확합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상당히 많이 달라집니다.

    위기란 무엇입니까? 무언가를 제대로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 위기입니다.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위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제대로 하는 것”은 이미 전제가 흔들린 상태입니다. 디폴트, 즉 기본값이 이미 부실해진 상황인 것이죠. 그 부실의 문제를 관리하는 전 과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를 예측하고 설계하는 것이 바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역할입니다.

    아무리 잘해도 그대로 보여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으로 보여지면 더욱 심각한 상황인 것이죠. 이것은 단순한 오해의 문제가 아닙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았을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남들의 시각에 연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보다 선제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를 설계하고 그것을 실행에 연결시키라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에 대한 예측 능력은 사실 공감 능력과 같습니다. 이해관계자의 시각에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점입니다.

    중세의 마녀사냥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마녀로 지목된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한 인식이나 노력이 부족했던 사람들이었을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마녀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사냥감이 된 사람의 비율이 대다수는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마녀사냥의 재물이 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마녀처럼 굴지 않는 것이면서, 동시에 마녀처럼 보여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훈은 지금 기업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위기 상황에서 기업이 실제로 올바른 일을 하고 있어도, 그것이 이해관계자들에게 올바르게 보여지지 않는다면 그 노력은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반대로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를 먼저 설계하면, 실행의 방향과 우선순위도 자연스럽게 정렬됩니다. 무엇을 먼저 하고, 어떤 방식으로 하고, 누구에게 어떤 언어로 전달할 것인지가 구체화됩니다.

    최근 기업 위기관리에서 어떻게 보여지는가의 문제는 시작이자 끝입니다. 위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해관계자들은 이미 그 기업을 보고 있습니다. 그 시선은 기업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그 시선을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선제적으로 설계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아주 중요한 선택이지요.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Do와 Don’t 중 뭐가 더 중요하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회사 위기관리 매뉴얼이나 위기관리 책들을 보면 ‘해야 할 일(Do’s)과 하지 말아야 할 일(Don’ts)’들을 아주 다양하게 제안하고 있더군요. 저희가 볼 때에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서로 상반 관계에 있는 것 같고, 복잡해 보입니다. 그 둘 중 어느 쪽이 더 위기관리에서 중요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말씀처럼 위기관리에 대하여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정리된 분량은 방대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상당 부분 상반 관계에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뒤집으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반대로 읽으면 해야 할 일과 연결됩니다. 구조적으로는 동전의 양면이지요.

    그럼에도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주저 없이 하지 말아야 할 일(Don’ts)에 비중을 더 두겠습니다.

    만들어진 말이지만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백공불여일과(百功不如一過). 백 가지 공을 세웠어도, 과오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위기관리에서도 정확히 그렇습니다. 해야 할 일들을 아주 성실하게 모두 이행했다고 해도, 치명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나 저지르게 되면 상황은 크게 변하거나 더욱 악화됩니다. 위기 시 이해관계자와 상황 그 자체가 그만큼 엄중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사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산시설 사고로 직원과 하청업체 직원 여럿이 사망하는 위기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해야 할 일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기업 대표가 신속하게 장례식장을 방문하여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입니다. 반면 하지 말아야 할 일도 그만큼 분명합니다. 장례식장을 피하거나, 이해관계자들과의 직접 대면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보시죠. 대표가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이지만, 그 자리에서 유가족의 질문에 답을 못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현장에 나온 기자들의 질문에 준비되지 않은 말을 쏟아낸다면 어떻게 됩니까. 신속하게 달려갔다는 공은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오히려 방문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백공불여일과입니다.

    현장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예상하지 않은 것, 그에 대한 답을 정리하지 않은 채 자리에 나선 것, 이것들이 모두 하지 말아야 할 일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완성됩니다. 이는 순서의 문제입니다.

    기업 경영진에게 권하고 싶은 접근법은 이렇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먼저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하나씩 답을 정리하다 보면, 그것이 해야 할 일로 연결됩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먼저 이해하고 그것을 실제로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위기관리의 첫 단추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경영적 의사결정과 소통이 충돌하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소통 절차가 생략되어서 이번 이슈가 더 커졌다는 지적을 하는데요. 저희가 봤을 때 사전에 구체적 소통이 있었다면, 이번 결정은 대폭 지연되거나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경영적 의사결정과 소통이 서로 충돌하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경영 현장에서는 실제로 이런 충돌이 존재합니다. 사전에 구체적이고 다양한 이해관계자 소통을 충실히 이행했다면, 해당 의사결정 자체가 불가능했거나 대폭 지연되었을 것이라는 판단, 충분히 현실적인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절차적 소통을 생략하거나 형식적으로만 진행하는 것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단, 그것은 최고경영자의 경영적 판단의 영역입니다. 절차적 소통을 생략하는 선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선택에 수반되는 리스크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상 분석했느냐에 핵심이 있습니다.

    예상되는 사회적 후폭풍의 규모와 부담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차적 소통을 생략하거나 형식적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면, 그것은 리스크를 인지하고 관리하는 의사결정입니다. 반면, 절차적 소통과 관련한 리스크를 예상조차 하지 못한 채 경영적 의사결정을 밀어붙이다가 후폭풍을 맞이하는 경우는 다릅니다. 이것은 리스크를 관리한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인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유사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리스크를 인지했다면, 그 다음은 그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숙제입니다. 그 관리의 실질적 도구가 바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결국 위의 두 선택지 결과를 실질적으로 나누는 것은, 절차적 소통의 유무 자체라기보다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의 질입니다. 어떤 논리와 서사, 프레임과 메시지, 그리고 근거를 어떤 방식으로 전개했는지가 핵심이 됩니다.

    일부에서는 절차적 소통의 목적을 의사결정을 미화하거나 사회적 불만을 희석시키는 것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절차적 소통의 진짜 목적은, 해당 기업이 사회적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태도를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적을 통해 더 발전적인 이해관계자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본래 목적입니다.

    기업들 중에는 무엇을 해도 비판받고 매번 유사한 질타를 받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그런 기업들은 이미 이해관계자 관계의 품질이 오랫동안 좋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절차적 소통을 생략하는 것은 그 관계 품질을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 의사결정에서 더 큰 후폭풍으로 돌아오지요.

    만약 절차적 소통을 생략하여 사회적 후폭풍을 경험했음에도, 이후에도 동일한 패턴을 반복한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역시도 최고경영자의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후폭풍이 있더라도 일단 해당 의사결정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우선이라는 의미이죠.

    결국 최고의사결정권자 앞에 놓인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절차적 소통을 충실히 이행한 뒤 의사결정 하거나, 절차적 소통을 생략 또는 형식적으로만 진행한 뒤 의사결정을 하거나입니다. 실무적으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부족하거나 그에 대한 자신이 없는 기업일수록, 절차적 소통에 부담을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기업이라면 사후 데미지 컨트롤에 모든 역량을 집중적으로 준비해 투입하는 것이 현실적 차선책이 될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소통은 평시에?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문제가 발생해 요 며칠간 엄청나게 바쁩니다. 계속 해명문을 내고, 각종 자료를 뿌리고, 이해관계자들과도 다각도로 소통하고 있는데요. 제대로 소통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부 부서에서는 소통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네요.”

    컨설턴트의 답변

    아주 중요한 주제를 질문해 주셨습니다.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은 이슈나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소통이 문제의 부정적 영향을 관리하고 해결로 이끄는 효과적인 도구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점입니다. 소통이 문제 해결에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시점은, 그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입니다. 적절한 사전 소통은 문제가 문제로 불거지기 전에 이를 미리 해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평소에 충분한 소통 없이 문제가 터진 뒤에 이루어지는 사후 소통은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이야기 입니다.

    흔히 말하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처럼, 때늦은 소통은 이미 발생한 문제를 그 이전 상태로 되돌리거나 없애는 데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소통은 문제 발생 이전까지의 예방적 효과를 지닙니다.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소통은 가능한 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데미지 컨트롤’의 수단으로만 유효합니다.

    해명, 사과, 개선책, 재발방지대책, 보상에 관한 소통들은 모두 그 목적이 데미지 컨트롤에 있습니다.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통이라기 보다는 문제가 재앙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소통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혼동을 겪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소통하고 있는데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걸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마치 엄청난 물을 퍼붓고 있는데도 불이 쉽게 꺼지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하고 이상한 느낌이지요.

    하지만 사후 소통의 역할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불이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데 있습니다. 주변을 충분히 적셔 놓으면 불길이 옮겨붙거나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비유를 문제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시점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불씨가 생기기 전에 집 안팎을 충분히 적셔 놓는다면 어떨까요? 설령 불씨가 생기더라도 폭발적으로 번지거나 커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전 소통의 효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현재 문제 발생 후 소통을 지속하고 계신 것 자체는 좋습니다. 다만 그 소통의 목적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전 소통과 사후 소통은 그 성격과 목적이 다릅니다. 빨리 이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시고, 현재 상황의 목적에 맞게 소통을 잘 관리해 나가시길 권해 드립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