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일본 여행을 가면 여기 저기 상점들을 기웃거리면서 일본만의 그 무엇을 찾아보려고 애를 쓴다. 아주 어렸을 때 서울의 거리에서 보았던 그 풍경들이 일본 소도시들의 뒷골목에 남아 있음을 보면서 내가 겪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가 일본의 치하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피부에 와 닿을 때가 많다. (가끔 서울의 1950-60년대 거리 풍경 사진을 보면 이게 서울 한국인지 일본의 도시인지 헷갈린다)
일본에 가서 꼭 하나 구입해 와야지 하는 게 있는데…일본칼이다. 일돈도까지는 아니고 그냥 주방에서 쓰는 칼말이다. 아직까지 구입하기 적절하고 가지고 싶은 칼을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언젠가는 가지고 싶은 칼을 하나 사서 집사람에게 선물 할까 한다.
좋은 칼을 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PR을 한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좋은 메시지 하나는 역사에 남겨 놓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마련인데 좋은 칼은 나에게 좋은 메시지의 모습 같이 보인다.
미디어트레이닝을 하면서도 “좋은 핵심 메시지는 날카롭고, 단순하면서 뾰족해서 오디언스의 마음속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창(spear) 그림을 보여드리곤 하는데…메시지는 그래야 한다고 본다.
반대로 메시지가 무디고, 복잡하면서 둔하다면…그건 둔기지 칼이 아니라고 본다. (둔기로 오디언스를 친다 하면 문제는 달라지는데…아무튼 그건 아니다)
위기시에도 핵심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좋은 칼 하나 만들기 만큼 좋은 메시지를 하나 구워낸다는 건 간단히 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기업들이 좋은 칼 같이 날이 선 메시지들을 내부적으로는 종종 개발해 내고 있다. 어려운 이 칼 만들기를 잘 해내는 아주 멋진 인재들과 팀들이 실제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여러 클라이언트들과 인하우스 시절 동료들로 부터 큰 insight를 얻으면서 목격했던 것들이다.
이렇게 날이선 멋진 메시지들이 ‘만들어지는 것’과 ‘실행되는 것’에는 태평양만큼의 거리가 있다는 게 문제다.
아무리 멋진 칼도 사용되지 않으면 칼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과 같다. PR이나 마케팅적인 의미로 완벽하고 훌륭한 consumer insight를 담은 매력적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도 전달되지 않으면 그냥 습자지에 남겨진 메모나 낙서와 다름이 없다.
수년전 수십명의 전문가들이 공을 들였던 신제품 관련 셀링스토리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메시지가 아주 강력하게 정리되어 사내적으로 공유되 흥분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 기반해 만들어진 TVC와 프로모션 및 PR프로그램들은 커뮤니케이션 개시 후 한달여만에 예산변경으로 인해 중단되고 일부는 산을 넘어 갔다. 결국 아무도 그 메시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좋은 칼을 만들어 책상 서랍속 추억의 주머니에 넣어 놓고 말았던거다.
실무자들로서 우리가 하는 일을 한번 돌이켜 보자. 개인적으로 진짜 좋은 칼을 꿈꾸며 하나 하나의 주제들을 두드리고 날을 열심히 갈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공들여 만들 칼을 진정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그리고 사용할 능력과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지…
칼모양의 쇳덩어리를 만지작만 거리다가 이내 서랍속 주머니에 계속 던져 넣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자.
칼
위험한 칼 – 비유
기업 커뮤니케이터들이 자사 제품의 안전성 등과 관련 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첫 번째로 주장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사실 이 함유 물질이라는 게 인체에는 영향이 미미한 수준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을 해서 문제에요…’이다.
일단 제품에 들어가거나 함유되지 말아야 할 것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는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그게 사실 영향이 없이 미미하기 때문에…이렇게 까지 난리를 칠 문제는 아니다 라는 포지션에 최초부터 무게를 많이 둔다. 사실 억울하기도 하겠다.
이 상황에서 커뮤니케이터들은 오디언스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을 하고 ‘좀 더 알기쉽게 이해’ 시키기 위해 ‘비유’라는 날선 칼을 섣불리 뽑아드는 유혹을 버리지 못한다.
예를들어, (사실과는 관계없음)
- 우유에 든 OOO은 60kg 성인이 하루에 100리터씩 연속 10년에 걸쳐 마셔야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 이 제품에 든 호르몬의 함유량은 아주 적어서 인체에 흡수 되더라도 태평양에 소주잔 하나 정도의 물을 붓는 것과 같다.
- 이 와인에 든 살충제 잔여 성분은 무시할 수 있는 정도로 매일 2-3병씩 20-30년에 걸쳐 마셔도 문제가 없다.
- 이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골퍼가 맑은 날씨에 골프를 치다가 벼락에 맞을 확률 보다 더 적다.
- 이번 처럼 비행기가 추락한 경우는 여러분들이 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당할 사고의 10만분의 1이다.
뭐 이런 식의 그럴듯한 비유를 하곤 한다.
내심 커뮤니케이터들은 모여서 이런 메시지를 보고 무릎을 탁 치면서 ‘역시 프로야. 이렇게 알기 쉽게 비유를 멋지게 하다니 말이지. 자…이런 우리의 메시지를 듣고도 이해를 못 하는 오디언스들은 다 문제가 있어…좌익이나 변태들일 꺼야…’ 이런 공감대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핵심은 오디언스들의 마음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고 적절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면서 피부에 와 닿는 비유라고 해고 오디언스의 마음이 닫혀 있는데 무슨 소용이 있나. 콩으로 메주를 쓴다 해도 안 믿는다는 데 어쩔껀가.
닫힌 마음에 대고 아무리 메시지라는 창을 날려 봤자 힘만 드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일단 오디언스의 마음에 공감 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닫힌 문을 함께 천천히 열어가라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비유도 그다음이라는 말이다.
아직 말도 못하는 아기가 먹어치운 우유병을 보면서 불안해하는 엄마의 마음을 열라는 거다. 그 엄마의 머리통을 때리면서 ‘이 바보야…인체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니까…이 빙신아…;하는 기업이 되지 말자는 거다. 그 엄마의 불안함을 같이 진정성을 가지고 느끼고 그 엄마와 대화를 하려 노력하려는 거다. 같은 입장이 돼서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공감을 하자는 거다.
그 이후에 그 엄마가 눈물을 닦고 기업에게 ‘진짜 이 우유가 안전한 게 확실한가요? 진실을 말해 주세요. 네?’ 할 때 …그 때 적절한 비유를 들어 커뮤니케이션 하자는 거다. 그때 가야 메시지의 흡수가 가능하고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아닌가.
멋진 비유. 좋다. 하지만…커뮤니케이션에는 순서와 타이밍이 있다. 이 부분에 민감하게 신경을 쓰지 않고 메시지의 배열을 교과서적으로 때려 넣어 날리는 커뮤니케이터는 진정한 프로가 아니다.
관련글: 위험한 비유와 지식의 저주
관련글: 포지션을 정해야 메시지가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