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정용민

  • 위기관리 컨설팅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 컨설팅은 기업에 어떤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미리 진단하고, 위기가 실제로 발생했을 때 무엇을 어떤 순서로 결정할지를 설계하는 자문 서비스입니다. 기사를 막거나 여론을 돌리는 일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런 기대를 갖고 찾아오시는 경우가 있지만, 그 영역은 애초에 컨설팅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네 가지 영역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자문입니다. 이슈나 위기 상황에서 정보를 분석해 상황을 판단하고, 이해관계자별 대응 전략을 설계하고, 메시지를 개발하고, 무엇을 먼저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을 함께 합니다. 실행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방향을 조율하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둘째는 시스템 구축입니다. 위기요소를 진단하고, 위기관리 매뉴얼을 개발하고, 위기관리위원회와 대응 체계를 설계합니다.

    셋째는 트레이닝입니다. 미디어 트레이닝, 대변인 트레이닝, 워크샵,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어 둔 체계가 사람의 역량으로 옮겨지도록 합니다.

    넷째는 실행입니다. 위기 국면에서 실제 커뮤니케이션을 함께 수행하거나 창구 역할을 맡습니다.

    진단에서 시작합니다

    제대로 된 컨설팅은 위기요소 진단에서 출발합니다. 회사 안에 이미 존재하지만 아무도 위기라고 부르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 목록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진단은 두 가지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발생 가능 빈도와 발생 시 위해 정도입니다. 이 두 축으로 점수를 매겨 최고 위험군을 소수로 추려 냅니다. 나머지는 담당 부서에 오너십을 배분해 평시에 관리하게 합니다.

    굳이 좁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위기에 똑같이 대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목록이 길어질수록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습니다.

    위기관리 컨설팅이 다루지 않는 영역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법적 유불리 판단, 소송이나 조정, 중재 전략, 계약서 작성과 검토, 법령 해석, 형사와 민사 절차에서의 대응 방향은 법률 대리인의 영역입니다. 위기 국면에서 법무 검토와 커뮤니케이션 대응은 나란히 진행되지만 서로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업 연속성 계획과도 구분됩니다. 설비 복구, 생산 대체, 공급망 복원처럼 사업 자체를 되살리는 상황관리 영역은 별도의 전문 분야입니다. 위기관리 컨설팅은 그 상황을 둘러싼 판단과 커뮤니케이션을 다룹니다.

    그리고 사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회사에 불리한 사실이 존재한다면 커뮤니케이션이 그것을 없애 주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시스템 구축은 몇 주 만에 끝나지 않습니다. 진단, 워크샵, 매뉴얼 통합, 훈련의 순서를 밟아야 하고 각 단계마다 조직 구성원이 실제로 참여해야 합니다.

    짧은 기간에 문서만 받아 보는 방식으로는 성과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매뉴얼은 위기가 왔을 때 열리지 않습니다. 계획서보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 자체가 조직에 남기 때문입니다.

    컨설팅사를 고를 때 확인할 것

    첫째, 하지 않는 일을 분명히 말하는지 보십시오. 무엇이든 해 주겠다는 곳보다 그것은 저희 영역이 아니라고 말하는 곳이 대체로 안전합니다.

    둘째, 평시 서비스가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위기 발생 후 대응만 하는 곳과 진단, 매뉴얼, 훈련까지 하는 곳은 축적한 경험의 종류가 다릅니다.

    셋째, 경영진 곁에서 일해 본 경험을 확인하십시오. 위기관리의 결정적 순간은 실무 회의실이 아니라 최고 의사결정자 앞에서 옵니다.

    넷째, 비밀 유지를 어떻게 다루는지 물어보십시오. 실적을 화려하게 나열하는 곳일수록 우리 회사의 사안도 나중에 어딘가에서 언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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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은 가상의 위기 상황을 설정하고 실제와 같은 조건에서 의사결정과 대응을 실습하는 훈련입니다. 통상 의사결정 그룹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하는 워룸(War Room)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매뉴얼이 작동하는지, 조직이 실제로 움직이는지는 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진행합니까

    위기 상황을 단계별로 나눈 시나리오가 준비됩니다. 참가자들은 제한된 정보와 제한된 시간 안에서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에 따라 다음 상황이 전개됩니다. 진행자는 언론 문의, 규제기관 연락, 소셜미디어 확산, 내부 동요 같은 변수를 상황에 맞춰 투입합니다.

    참가자는 실제 위기 시 의사결정에 참여할 사람들로 구성합니다. 대리 참석은 훈련의 의미를 없앱니다. 결정할 사람이 그 자리에 없으면, 실제 위기에서도 결정은 나오지 않습니다.

    시뮬레이션은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효과가 유지됩니다. 한 번 해 보고 끝내면 조직의 기억은 몇 달 안에 흩어집니다.

    시뮬레이션이 드러내는 것

    시뮬레이션의 목적은 잘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를 찾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자주 드러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정보가 위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현장은 알고 있는데 의사결정 그룹은 모릅니다. 둘째, 결정이 내려지지 않습니다. 참석자들이 서로의 판단을 기다립니다. 셋째, 결정이 아래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정해졌는데 실행 조직은 모릅니다.

    이 세 가지는 매뉴얼을 아무리 정교하게 써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모여 실제로 해 봐야 보입니다.

    잘못 설계된 시뮬레이션의 특징

    첫째, 시나리오가 자사와 무관한 경우입니다. 일어날 법하지 않은 상황을 다루면 참가자들이 몰입하지 않습니다. 위기요소 진단에서 나온 실제 후보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경우입니다. 진행자가 원하는 답으로 유도하면 훈련이 아니라 시연이 됩니다.

    셋째, 결과를 인사 평가에 쓰는 경우입니다. 참가자들이 평가받는다고 느끼면 실수를 감추게 되고, 실수를 감추면 배울 것이 없어집니다.

    넷째, 사후 정리를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시뮬레이션의 가치는 훈련 자체가 아니라 이후의 복기와 개선에 있습니다. 무엇이 막혔는지 기록하고 매뉴얼과 체계에 반영하는 데까지 가야 한 번의 훈련이 완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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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 시 사과문은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 시 사과문은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를 회사가 스스로 정확히 서술하는 문서입니다. 다만 사과의 성패는 문장에서 갈리지 않습니다. 그 사안을 둘러싼 맥락을 회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사실을 확인한 과정을 밖에서 믿을 수 있는가. 사과의 수용 여부는 이 두 가지에서 이미 결정됩니다.

    맥락을 읽지 못한 사과는 닿지 않습니다

    사과가 진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사과의 전제가 되는 맥락을 기업이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지, 어느 지점이 건드려졌는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 이해가 없거나 일부라도 부족하면 사과의 수용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사안이라도 사람들이 문제 삼는 지점은 회사가 생각하는 곳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회사는 절차상 하자가 없었다고 설명하는데 밖에서는 태도를 문제 삼고 있거나, 회사는 피해 규모를 이야기하는데 밖에서는 왜 미리 막지 못했는지를 묻는 식입니다. 이 어긋남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쓴 사과문은 아무리 정성껏 써도 빗나갑니다.

    이러한 맥락 해석 능력을 전략적인 용어로 정무감각이라고 부릅니다. 여론과 공감을 읽어 내는 기업의 해석 역량을 뜻합니다.

    정무감각은 개인의 재능이라기보다 상당 부분 기업 문화에 속합니다. 그리고 최고의사결정자가 실제로 지닌 정무감각에 크게 좌우됩니다. 평소 밖의 시선을 살피지 않던 조직이 위기 상황에서만 갑자기 여론을 정확히 읽어 내기는 어렵습니다. 사과 직전에 급히 갖출 수 있는 역량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과가 실패하는 또 하나의 이유

    맥락을 읽었다 해도 남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을 확인한 과정을 밖에서 믿을 수 있는가입니다.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원인을 대개 표현에서 찾지만, 실제로는 사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실을 확인한 과정을 신뢰할 수 없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과문을 쓰기 전에 점검해야 할 것은 문장이 아니라 절차입니다. 사실관계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확인했는지, 그 과정을 밖에서 납득할 수 있는지가 먼저입니다. 이 부분이 취약하면 아무리 정제된 문장을 내놓아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머리와 가슴을 함께 겨냥해야 합니다

    사과는 논리적 납득과 정서적 수용을 동시에 목표로 설계됩니다. 사실관계 설명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정서적 차원의 응답이 별도의 축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구성 요소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명시해야 합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는 사과가 아닙니다. 심려를 끼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회사가 먼저 서술해야 합니다.

    둘째, 누구에게 하는 사과인지 밝혀야 합니다. 피해자, 고객, 임직원, 지역사회는 각각 다른 것을 기다립니다. 모두를 향한 사과는 아무에게도 닿지 않습니다.

    셋째, 무엇을 할 것인지 담아야 합니다. 피해 회복 조치와 재발 방지 방안이 없는 사과는 문장으로 끝납니다. 다만 지킬 수 없는 약속은 담지 않아야 합니다. 지켜지지 않은 재발 방지 약속은 다음 위기에서 그대로 되돌아옵니다.

    발표 전에 피해자를 먼저 만나야 합니다

    실무에서 자주 빠뜨리는 절차입니다. 대외 발표 이전에 피해자 또는 그 대표를 대상으로 사전 브리핑을 진행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언론 보도로 결과를 처음 알게 되면, 그 순간 사과는 회사의 일방적 발표가 됩니다. 반대로 사전에 공유하고 피해자가 요구하는 추가 조사를 수용해 그 결과까지 포함해 발표하면, 같은 내용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사과가 역풍을 부르는 경우

    첫째, 평시 언행과 어긋나는 경우입니다. 사과의 신뢰도는 평소 경영진이 해 온 말과 직접 연동됩니다. 앞서 말한 정무감각이 평시에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평소 밖의 시선과 어긋난 발언이 쌓여 있다면, 같은 사안을 두고 실수였다고 해명해도 구조적으로 신뢰받지 못합니다.

    둘째, 조건이 붙는 경우입니다. “만약 불편을 느끼셨다면”, “일부의 오해가 있었다면” 같은 표현은 사과의 효력을 없앱니다.

    셋째, 시점이 늦거나 주체가 맞지 않는 경우입니다. 여론이 이미 형성된 뒤의 사과는 압박에 못 이긴 것으로 읽힙니다. 최고경영자가 나서야 할 사안에 실무 부서 명의의 사과문이 나오면 회사가 사안의 무게를 모른다는 신호가 됩니다.

    첫 입장과 최종 발표는 다릅니다

    사안 발생 직후의 첫 입장에는 자체적인 결론을 담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단계에서 회사가 밝힐 것은 사과의 의지와 조사를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약속까지입니다.

    사실관계와 책임자 처분, 재발 방지책은 조사가 끝난 뒤 한꺼번에 발표합니다. 이때 경영 책임자의 직접 사과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론을 나눠서 조금씩 내보내면 그때마다 새로운 국면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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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관리위원회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위원회는 위기 상황에서 회사의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기구입니다. 실행 조직이 아니라 결정 조직이며, 위기의 심각성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을 때 가동됩니다. 모든 위기에 위원회가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 대응 조직은 단계로 나뉩니다

    잘 설계된 위기관리 체계는 대응 조직을 하나로 두지 않습니다. 심각성에 따라 가동되는 조직이 달라지고, 조직마다 책임자와 권한이 다릅니다.

    가장 아래에는 상황을 처음 감지한 부서와 그 사안에 가장 관여도가 높은 주관부서가 있습니다. 사안이 커지면 실무대응그룹(위기관리팀)이 소집됩니다. 주관부서를 중심으로 유관부서와 홍보, 법무 등 실행팀이 합류하고, 필요하면 외부 자문이 참여해 초기 대응과 상황 관리를 총괄합니다.

    사안이 더 커지면 위기관리위원회가 열립니다. 사업부문장 또는 최고경영자가 위원장을 맡고, 사업부문장 그룹과 실무대응그룹이 함께 들어옵니다. 물리적으로 모이는 공간이 위기관리센터(워룸)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작은 사안에 최고경영자가 매번 소집되면 조직은 지치고, 큰 사안에 실무자만 남으면 결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누가 들어가야 합니까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야 합니다. 보고할 사람이 아니라 결정할 사람입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확인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한다면 그 위원회는 기능하지 않습니다.

    위원장이 자리를 비울 경우를 대비한 대행 순서도 미리 정해 두어야 합니다. 위기는 위원장의 일정에 맞춰 발생하지 않습니다. 대행 원칙이 없는 조직은 위원장이 출장 중이라는 이유로 반나절을 흘려보냅니다.

    규모는 작을수록 좋습니다. 참석자가 늘어날수록 결정 속도는 느려지고 정보 유출 위험은 커집니다.

    결정과 실행을 나누는 이유

    위기 상황에서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방향을 정하는 일과 정해진 방향을 실행하는 일입니다. 이 둘을 같은 사람들이 하면 어느 쪽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위원회는 방향을 정합니다.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보류할지, 누가 대변인이 될지, 어느 이해관계자를 먼저 다룰지를 결정합니다. 실행은 실무대응그룹과 각 부서가 맡습니다.

    결정과 실행이 분리되면 위원회는 상황 변화에 따라 방향을 조정할 여유를 갖습니다. 실행에 매몰된 조직은 방향이 틀렸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위원회가 작동하지 않는 조건

    첫째, 소집 기준이 없는 경우입니다. 어느 정도 사안이면 위원회를 여는지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열어야 할 때 열리지 않고 열지 않아도 될 때 열립니다.

    둘째, 최종 결정자가 빠진 경우입니다. 위원회에서 합의한 내용이 나중에 뒤집히면 이후의 모든 논의가 무의미해집니다.

    셋째, 전문가에게 결정을 미루는 경우입니다. 법무, 홍보, 외부 자문이 각자의 관점에서 조언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 조언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위원회의 일입니다. 전문가들끼리 합의하도록 맡겨 두면 결정은 나오지 않습니다.

    넷째, 평시에 한 번도 모이지 않은 경우입니다. 잘 운영되는 위원회는 위기가 없을 때도 정기적으로 만나 위기 요소를 점검하고 대비 상태를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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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위원회의 근거가 되는 문서입니다.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이란 무엇인가: 위원회가 실제로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위기 시 이해관계자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하는가: 위원회가 내리는 첫 판단입니다.
    CEO 위기관리 가이드 50

  • 위기관리는 모든 기업에게 필요할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더피알=정용민|위기관리 컨설턴트에게 “모든 기업에 위기관리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반드시 필요한가”라고 물으면, 대답은 대개 정해져 있다. “그렇다. 예외는 없다.” 그러나 현장은 이 대답과는 약간 다르다. 지방 기업과 중소기업의 대표들은 이 말을 들으면 고개를 돌린다. 그들에게 위기관리란 대기업의 사정이고, 전국적 명성을 가진 회사의 숙제일 뿐이다. 그들은 위기관리를 몰라서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자신에게는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관심을 두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정말 위기관리는 잃을 것이 많은 대기업만의 것일까.

    위기관리를 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나란히 놓아 보면 그 격차가 선명하다. 대기업에는 위기가 오기 전부터 상비군이 있다. 전담 홍보실과 법무팀, 대외협력 조직이 상시로 돌아가고, 수백 페이지짜리 위기관리 매뉴얼과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가 서랍에 준비되어 있다. 정기적으로 모의 훈련과 미디어 트레이닝을 돌리고, 외부의 로펌과 PR 회사, 모니터링 업체와도 평소에 계약을 맺어 둔다. 위기가 터지면 즉시 가동되는 하나의 시스템이 이미 서 있다.

    중소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대표 한 사람이 홍보실이자 법무팀이고, 총무이자 대외협력 담당이다. 문서로 정리된 매뉴얼은 없고, 대부분의 판단이 대표의 머릿속과 즉흥에 기댄다. 위기를 걸러 줄 견제 장치도, 대신 말해 줄 창구도 없다. 외부 전문가는 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검색창에 이름을 쳐 넣기 시작한다.

    차이는 조직과 문서에만 있지 않다. 의사결정의 구조가 다르다. 대기업의 위기 대응은 여러 사람의 검토와 견제를 거치며 다듬어지지만, 중소기업에서는 대표 한 사람의 판단이 그대로 회사의 대응이 된다. 잘못된 결정을 걸러 줄 장치가 없으니, 대표의 감정 섞인 한마디나 즉흥적 지시가 곧바로 밖으로 나가 버린다.

    노출의 성격도 다르다. 대기업은 늘 대중과 언론의 감시 아래 있지만, 그만큼 위기에 반응하는 근육도 단련되어 있다. 반면 평소 조명 밖에 있던 중소기업은 어느 날 갑자기 카메라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 빛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이 격차만 보면 ‘중소기업에 대기업식 위기관리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말이 맞다. 대기업이 24시간 대기하는 소방서를 갖췄다면, 중소기업에 똑같은 소방서를 지으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그렇다면 소방서를 지을 수 없는 회사는, 위기관리를 아예 접어도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위기관리가 대기업만의 것이라는 그 생각은 절반은 맞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그 중에서도 언론과 대중을 향한 커뮤니케이션의 투자 규모는 그 기업이 가진 명성 자산의 크기에 비례한다. 전국적 또는 글로벌 접점을 가진 대기업과 공개된 이미지가 거의 없는 지방 중소기업이 똑같은 수준의 상시 조직과 예산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잃을 명성이 클수록 그것을 지키는 데 더 많은 자원을 쓰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배분이다.

    위기는 대체로 그 회사의 몸집에 맞춰 온다. 사업의 범위와 영향력을 넘어서는 위기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작은 회사에는 작은 위기가, 큰 회사에는 큰 위기가 온다. 이 구조 위에서 보면 규모에 맞춘 대비가 상식이고, 대기업식 위기관리 체계를 모든 기업에 강요하는 것은 분명한 과잉이다. 다만 규모에 비례하는 것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지 ‘위기관리’ 그 자체는 아니다. 안전과 법규, 현금흐름과 핵심 인물의 리스크를 미리 관리하는 일은 회사 규모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기업에 해당한다.

    최악의 위기는 그 회사의 규모와 범위, 영향력을 훌쩍 뛰어넘는 형태로 폭발한다. 몇 년 전, 한 지방 산업단지의 배터리 공장에서 큰불이 나 다수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그때까지 그 회사의 이름을 아는 국민은 거의 없었지만, 사고는 순식간에 전국의 헤드라인을 뒤덮었다. 최근에도 직원의 사망 사고 뒤 대표가 사과에 나섰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오가던 정황이 드러나 전국적 지탄을 받은 지역 기업이 있었다. 이런 위기는 ‘위기는 몸집에 맞춰 온다’는 상식을 단숨에 배신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우리는 그럴 리 없다’는 마음이다. 규모를 초과하는 위기의 확률은 낮지만 결코 제로는 아니다. 대기업은 몸집을 넘어서는 위기를 맞아도 자본과 신뢰, 시간이라는 여력으로 버텨 낸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그런 위기 단 한 번에 사업 자체가 통째로 사라진다. 잃을 것의 절대 크기는 작아도, 그 한 번의 손실률은 100%가 되기 쉽다. ‘잃을 것이 적다’가 아니라 ‘한 번 맞으면 남은 전부를 잃는다’가 실상이다.

    ‘우리는 이미지도 명성도 없으니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대중적 명성이 없을 뿐, 지방 중소기업도 반드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매출을 좌우하는 소수의 핵심 거래처, 오래 쌓아 온 지역사회의 평판, 인허가와 감독 관청과의 관계, 은행 여신, 그리고 직원과 그 가족의 생계다. 이를 ‘관계 자본’이라 부른다. 위기는 바로 이 소수의 집중된 관계 안에서 터진다. 명성 자산이 없다고 잃을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은 자산의 종류를 잘못 읽는 것이다.

    게다가 ‘무명(無名)이라 안전하다’는 전제 자체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리뷰 앱과 지역 커뮤니티, 짧은 영상 한 편의 시대에는 평생 대중 이미지를 관리해 본 적 없는 지방 소상공인을 하루아침에 전국적 공개 위기에 노출시킨다. 오히려 평시 쌓아 둔 신뢰가 없는 기업일수록, 단 한 번의 확산 앞에서 더 쉽게 무너진다.

    이미 지방과 중소기업 대표들이 위기관리에 무관심하다는 현실은, 그들에게 위기관리가 필요 없다는 근거처럼 보인다. ‘대기업식 거대한 체계는 필요 없다’는 판단까지는 옳다. 그러나 거기서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로 건너뛰는 순간, 옳은 전제가 틀린 결론으로 뒤집힌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 없는 것은 위기관리라는 준비가 아니라, ‘우리는 예외’라는 무관심이다. 과도한 위기관리가 필요 없는 기업은 있을 수 있어도, 무관심해도 되는 기업은 없다. 무관심은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아니라 ‘준비하지 않기로 내린 결정’이다. 그리고 그 결정의 대가는, 아무 관심이 없는 기업에게 가장 가혹하게 돌아온다.

    답은 ‘필요하냐 아니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무엇을, 누구를 향해, 얼마나’라는 비례의 문제다. 중소기업에 필요한 것은 대기업식 미디어 워룸도, 두꺼운 매뉴얼도 아니다. 큰돈과 인력을 들이지 않고도 갖출 수 있는 네 가지면 충분하다.

    첫째, 최소한의 예방이다. 여기서 예방이란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는 업무 위에 ‘위기의 눈’ 하나를 얹는 일이다. 현장 안전 점검에서 반복된 지적 사항을 더는 미루지 않는 것, 인허가와 신고, 환경과 노무처럼 ‘설마 문제 되겠어’ 하고 넘겨 온 기본 규정을 다시 확인하는 것, 그리고 자금 흐름에 최소한의 여력을 남겨 두는 것이다. 위기는 종종 사고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자금 경색으로 회사를 무너뜨린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핵심 인물 리스크다. 오너 한 사람, 혹은 대체 불가능한 기술자 한 사람에게 회사가 과도하게 기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사고나 구설, 갑작스러운 이탈이 그대로 회사의 위기가 된다. 그 의존을 조금씩 분산해 두는 것도 훌륭한 예방이다.

    둘째, 소수 핵심 이해관계자와의 평시 관계다. 종이 한 장을 꺼내, 우리 회사의 생사를 실제로 쥐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 적어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개 그 수는 다섯을 넘지 않는다. 매출의 큰 몫을 차지하는 한두 거래처, 오래 관계를 맺어 온 지역사회와 감독 관청, 자금을 대는 주거래 은행, 그리고 회사를 함께 굴리는 직원들이다. 이 좁은 명단이 곧 위기 시 우리를 살리거나 무너뜨릴 사람들이다.

    평시에 이들과 신뢰를 쌓아 둔 회사는, 위기가 닥쳐도 ‘설명할 창구’와 ‘한 번 더 기다려 줄 여지’를 얻는다. 반대로 평소 소원했던 관계는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등을 돌린다.

    셋째, 최악의 시나리오 한두 개를 미리 그려 보는 일이다. 거창한 예측이 아니다. 우리 업종에서 다른 회사가 실제로 겪었던 사고를 가져와, ‘그 일이 우리에게 똑같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를 한 번 대입해 보는 것이다. 학생이 기출문제를 풀어 보듯, 남의 위기는 우리의 가장 좋은 예상 문제다. 그렇게 두어 개의 상황을 정해 두었다면, 그때 누가 회사를 대표해 말할지, 무엇을 가장 먼저 할지, 반대로 무엇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지를 종이 한 장에 적어 두면 된다.

    말하는 창구를 하나로 모으고, 사실을 먼저 확인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을 가장 앞에 두는 것. 이 몇 줄의 약속이 실제 위기의 첫 순간을 좌우한다.

    넷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겐 그런 일이 없다’는 마음을 버리는 일이다. 이것은 돈도 조직도 필요 없는, 가장 값싸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준비다. 확률이 낮다는 것과 아예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이 태도 하나가 앞의 세 가지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스위치가 된다. 그 마음이 닫혀 있으면 어떤 예방도, 어떤 관계도, 어떤 시나리오도 시작되지 않는다.

    모든 기업이 대기업처럼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외는 없다’는 만능 필수론은 과장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필요 없다’는 무관심 역시 똑같이 위험한 과장이다. 진짜 답은 두 극단 사이에 있다. 규모에 맞는 최소한의 대비, 그리고 ‘그럴 리 없다’는 마음의 폐기다. 그것은 소방서를 지으라는 요구가 아니라, 소화기 한 대를 곁에 두라는 부탁이다. 위기관리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거대한 시스템의 부재가 아니라, 준비하지 않기로 한 그 무관심이다. 지방의 아주 작은 회사라도, 그 한 가지만큼은 예외일 수 없다.

  •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 매뉴얼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그 위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미리 정해 둔 문서입니다. 영어로 옮기면 how to handle our corporate crises에 해당합니다. 특정 부서의 문서가 아니라 전사적으로 필요한 문서이며, 매뉴얼을 갖춘 것과 위기관리 역량을 갖춘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과 무엇이 다른가

    실무에서 가장 자주 혼동되는 두 문서입니다. 두 문서는 별도로 만들어지지만, 조직과 프로세스와 역할 체계를 공유하며 서로 연동됩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상위 체계이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그 체계 안에서 커뮤니케이션 실행에 집중합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위기 자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다룹니다. 사고 수습, 피해자 대응, 생산과 영업의 조정, 법적 대응, 규제기관 신고, 복구 절차가 모두 여기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대상은 전사입니다. 생산, 안전, 품질, 법무, 인사, 영업, 대관, 재무, 정보보안, 고객서비스, 커뮤니케이션 부서가 각자의 역할을 갖습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그 위기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를 다룹니다. 영어로는 how to communicate about it입니다. 대변인 지정, 창구일원화, 이해관계자별 메시지, 언론 응대, 기자회견 운영, 사과문의 원칙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대상은 커뮤니케이션 부서와 대변인, 그리고 최고경영자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매뉴얼만 만들어 두고 위기관리 체계를 갖췄다고 여기는 기업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직은 말할 준비는 되어 있으나 정작 위기 자체를 다룰 준비가 없습니다. 반대로 대응 절차만 정해 두고 커뮤니케이션을 뒤로 미룬 조직은, 잘 수습하고도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해 평가받지 못합니다.

    매뉴얼이 담아야 하는 것

    매뉴얼의 출발점은 정의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무엇을 위기로 볼 것인가를 먼저 정합니다.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는가, 평판과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가, 정상적인 사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가, 나아가 회사의 존립이나 관계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판별 기준이 있어야 현장에서 판단이 섭니다.

    다음은 심각성 구분입니다. 모든 위기를 같은 무게로 다룰 수는 없습니다. 사안의 규모와 파급력에 따라 단계를 나누고, 단계마다 가동되는 조직과 대응 수준을 연동시킵니다.

    그리고 조직입니다. 누가 감지하고, 누가 주관하며, 어느 단계에서 실무대응그룹(위기관리팀)이 소집되고, 어느 단계에서 위기관리위원회가 열리며, 위기관리센터(워룸)를 언제 여는지를 정합니다.

    마지막으로 프로세스입니다. 감지에서 시작해 상황파악, 초기대응, 보고, 의사결정, 대응실행, 추이확인을 거쳐 종결과 사후평가, 개선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단계별로 정리합니다. 연락망은 별첨이지 본체가 아닙니다.

    매뉴얼만으로 부족한 이유

    매뉴얼은 문서이고 위기는 사람이 관리합니다. 그 사이의 거리를 메우는 것이 훈련입니다. 위기관리에 실패한 기업 중 상당수는 매뉴얼이 없었던 곳이 아니라 있었는데 쓰지 못한 곳입니다.

    실무자가 매뉴얼을 찾지 않고도 첫 한 시간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 조직은 매뉴얼을 제대로 갖춘 것입니다. 반대로 매뉴얼을 찾아 읽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면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입니다.

    매뉴얼이 죽는 조건

    첫째, 갱신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조직이 바뀌고 사업이 바뀌면 매뉴얼의 전제도 바뀝니다. 담당자 이름이 절반 이상 맞지 않는 매뉴얼은 이미 문서가 아닙니다. 법령에 근거한 신고 기한이나 적용 기준도 개정되므로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 너무 두꺼운 경우입니다. 분량이 늘어날수록 실제로 읽는 사람은 줄어듭니다. 위기 상황에서 펼쳐 볼 수 있는 분량인지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남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입니다. 다른 회사의 매뉴얼은 그 회사의 위기 요소와 조직 구조를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형식은 참고하되 내용은 자사의 위기요소 진단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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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미디어 트레이닝은 경영진과 대변인이 언론을 상대할 때 필요한 판단과 화법을 실습으로 익히는 훈련입니다. 말솜씨를 다듬는 과정이 아닙니다. 질문에 담긴 구조를 읽고, 답할 것과 답하지 않을 것을 순간적으로 가르는 훈련입니다.

    질문을 분별하는 훈련

    숙련된 기자의 질문에는 확인하려는 사실과 끌어내려는 발언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확인해 주지 않아도 될 것까지 확인해 주게 됩니다.

    실제 현장에서 반복되는 질문 형태가 있습니다.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방식, 같은 답변이 반복될 때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강요하는 방식, 현장에 없는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 잘못된 전제를 깔아 두고 묻는 방식, 확언을 요구하는 방식,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해 묻는 방식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은 잘못된 전제를 깔아 둔 질문입니다. 전제를 그대로 두고 답하면 그 전제를 인정한 것이 됩니다. 훈련의 핵심은 이런 질문을 만났을 때 전제부터 바로잡고 답변으로 넘어가는 습관을 몸에 붙이는 것입니다.

    메시지를 유지하는 훈련

    열 개의 질문에 열 개의 다른 답을 하면 기사에는 가장 자극적인 하나만 남습니다. 무엇을 반복할지 정하고 그것을 흔들리지 않고 지키는 것이 훈련의 중심입니다.

    질문에서 핵심 메시지로 넘어가는 연결이 특히 중요합니다. 이 연결이 어색하면 회피로 보이고, 자연스러우면 설명으로 읽힙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이어 붙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전달됩니다.

    답변의 길이도 훈련 대상입니다. 질문보다 답변이 훨씬 길어지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이 섞여 들어갑니다.

    습관을 교정하는 훈련

    훈련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몸에 밴 습관을 걷어내는 데 쓰입니다.

    기자를 가르치려 드는 태도, 기사나 질문을 비난하는 반응, 오프 더 레코드를 시도하는 버릇, 질문이 끝나기 전에 답을 시작하는 조급함, 경쟁사를 언급하며 갈등 소재를 스스로 제공하는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습관은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실습 장면을 녹화해 다시 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신의 답변 영상을 처음 보는 경영진은 대부분 놀랍니다. 스스로 생각한 태도와 화면에 담긴 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선, 표정, 침묵의 길이 같은 비언어 요소도 이 과정에서 함께 점검합니다.

    강의와 훈련은 다릅니다

    미디어 트레이닝의 본질은 실습입니다. 강의만 듣고 끝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실제로 질문을 받고, 답변하고, 그 장면을 복기하는 과정이 있어야 훈련입니다.

    질문자 역할을 맡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현직 기자의 질문 방식을 아는 사람이 압박 수위를 조절하며 물어야 실전에 가까워집니다. 친절한 질문만 오가는 세션은 훈련이 아니라 예행연습입니다.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미디어 트레이닝은 기술 습득이 아니라 감각 유지에 가깝습니다. 훈련한 지 오래된 경영진은 실제 상황에서 훈련하지 않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게 반응합니다. 언론 환경도 몇 년 단위로 바뀌고, 경영진이 바뀌면 조직의 훈련 이력은 개인에게 이전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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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변인이란 무엇인가: 훈련 대상이 되는 역할입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이란 무엇인가: 훈련에 쓰이는 자산입니다.
    위기 시 기자회견은 열어야 하는가: 훈련의 결과가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정용민의 미디어 트레이닝

  • 예상질의응답팩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예상질의응답팩은 위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과 그에 대한 회사의 답변을 미리 정리해 둔 문서입니다. 실무에서는 흔히 Q&A팩이라고 부릅니다. 보도자료가 회사가 하고 싶은 말을 담는다면, 예상질의응답팩은 상대가 물을 말을 담습니다.

    무엇을 담습니까

    질문과 답변만 담는 것이 아닙니다. 네 가지가 함께 들어가야 문서로서 기능합니다.

    첫째,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입니다. 답변만 있고 근거가 없으면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쓸 수 없습니다. 확인된 것과 확인 중인 것을 구분해 적어야 합니다.

    둘째, 반복할 핵심 메시지입니다. 통상 세 개를 넘지 않게 정합니다. 질문이 어디로 흐르든 돌아올 지점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쓰지 말아야 할 표현입니다. 무엇을 말할지만큼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가 중요합니다. 법적 부담이 있는 단어, 확언으로 읽히는 표현, 책임 범위를 넓히는 문장을 미리 걸러 둡니다.

    넷째, 법적 검토 완료 여부입니다. 검토를 거치지 않은 답변이 섞여 있으면 문서 전체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답변을 미리 정해 두는 진짜 효용

    예상질의응답팩의 목적은 준비한 문장을 그대로 읽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실제 질문은 준비한 것과 조금씩 다르게 들어옵니다.

    효용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답변을 만드는 과정에서 회사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지점, 부서 간에 말이 다른 지점, 법무와 홍보의 판단이 갈리는 지점이 문서를 만들며 보입니다. 이것을 위기 발생 전에 발견하는 것이 핵심 효용입니다.

    질문 목록을 만들 때는 가장 아픈 질문부터 씁니다.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빼놓고 만든 문서는 실전에서 무용합니다.

    대변인에게 건너가는 문서입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은 서랍에 두는 문서가 아닙니다.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직전, 대변인에게 건네는 준비 브리핑의 뼈대가 됩니다. 확인된 사실, 핵심 메시지, 예상 질문과 답변 방향, 금지 표현이 한 장으로 정리되어 대변인의 손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문서를 만든 뒤에는 답변할 사람과 함께 읽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실무자만 알고 있는 문서는 현장에서 다른 말이 나오게 만듭니다.

    팩이 무용해지는 조건

    첫째, 오래된 경우입니다. 사실관계는 계속 바뀝니다. 위기 국면에서는 하루 단위로 갱신해야 합니다.

    둘째, 방어 논리만 담은 경우입니다. 회사 입장만 나열한 문서는 상대의 질문에 대응하지 못합니다. 질문하는 쪽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 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셋째, 분량이 지나친 경우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펼쳐 볼 수 있는 분량인지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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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변인이란 무엇인가: 이 자산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무엇인가: 답변을 몸에 익히는 과정입니다.
    위기 시 기자회견은 열어야 하는가: 준비한 답변을 실제로 쓰는 자리입니다.
    정용민의 미디어 트레이닝

  • 대변인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대변인은 조직을 대표해 언론과 이해관계자에게 공식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직책이 아니라 사안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역할입니다. 평소 홍보실장이 맡던 자리를 안전사고에서는 공장장이, 오너 관련 사안에서는 최고경영자가 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 대변인과 부 대변인을 함께 정합니다

    대변인은 위기가 발생한 뒤에 정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때 논의하면 몇 시간이 걸리고, 그사이 회사 대신 다른 사람들이 말합니다. 기자 전화를 받은 현장 직원,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린 내부자, 사정을 모르는 협력사 담당자의 말이 모두 회사의 목소리로 전달됩니다.

    실무에서는 위기 심각성과 사안 유형에 따라 대변인을 미리 배정합니다. 이때 정 대변인과 부 대변인을 함께 지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며칠씩 이어지는 위기에서 한 사람이 모든 응대를 감당하면 반드시 지치고, 지친 대변인의 말실수가 새로운 국면을 엽니다.

    성격을 검토해야 합니다

    대변인 선정에서 자주 빠뜨리는 항목이 성격입니다. 성격은 커뮤니케이션 태도와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대변인에 적합한 성격은 이렇습니다.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겸손합니다. 인간미가 있습니다. 침착하고 논리적이며 잘 흥분하지 않습니다. 대화를 즐기되 공감대를 중시합니다. 주변의 조언에 귀를 기울입니다.

    반대로 재검토가 필요한 성격도 분명합니다. 독선적이거나 거만합니다. 성격이 급하고 감정적입니다. 화를 잘 내고 곧잘 흥분합니다. 대화를 상대를 이해시키는 수단으로만 여깁니다.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습니다. 이런 성격은 훈련으로도 완전히 덮이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말솜씨가 아닙니다

    대변인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정보에 접근할 권한과 답변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마이크 앞에 서면 추측하게 되고, 추측은 번복을 부르며, 번복은 거짓말로 읽힙니다. 반대로 사실은 알지만 답변할 위치가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는 대변인도 실패합니다. 회사가 답할 의지가 없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전에는 별도의 준비 브리핑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 반복할 핵심 메시지, 예상 질문과 답변 방향, 쓰지 말아야 할 표현, 법적 검토 완료 여부를 정리해 대변인에게 건네는 절차입니다.

    교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되는 습관

    훈련을 받은 대변인이라도 다음 습관이 남아 있으면 현장에서 사고가 납니다.

    기자를 가르치려는 권위적 표현, 기자의 기사나 질문을 비난하는 태도, 오프 더 레코드를 시도하는 버릇, 질문이 끝나기 전에 답을 시작하는 경청 부재, 질문보다 답변이 훨씬 긴 과도한 부연, 그리고 경쟁사를 폄하하는 발언입니다. 마지막 항목은 특히 위험합니다. 기자에게 갈등 소재를 스스로 제공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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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무엇인가: 대변인을 준비시키는 훈련입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이란 무엇인가: 대변인이 들고 들어가는 자산입니다.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대변인 체계의 전제가 되는 원칙입니다.
    정용민의 미디어 트레이닝

  • 합의하라고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여러 유명 연예인의 스캔들을 보며, 저희 회사 소속 연예인들과 관련해서도 예상 못한 스캔들 발생시 대응 전략과 방안을 미리 마련해 놓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로펌이나 위기관리 자문 펌에서도 공히 상대측과의 조기 합의를 가장 우선순위로 조언하더군요. 무조건 합의하는 게 맞는 걸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미리 대비하시겠다는 접근이 훌륭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자문사들의 조언이 맞습니다. 다만 ‘무조건’이라서 맞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조언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논리가 있어서 맞는 것입니다. 그 논리를 순서대로 짚어 보지요.

    먼저, 위기관리에서는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한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스캔들이 터진 순간 언론의 보도, 대중의 분노, 온라인의 확산은 이미 통제 밖입니다. 그 국면에서 당사자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하나입니다. 상대방과의 관계, 곧 합의입니다. 통제 불가능한 여론과 싸우는 데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유일한 영역에 집중하는 것. 위기관리의 기본 원칙이지요.

    다음으로, 위기관리의 목적과 목표를 정확히 정해야 합니다. 이런 유형의 스캔들 대응에서 해당 연예인이 유일하게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연예계 생활의 지속가능성 확보’입니다. 억울함의 해소도, 진실 공방의 승리도, 여론전의 승리도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소송에서 이기고 연예계를 떠나게 된다면, 그 위기관리는 실패한 것이죠. 목적이 이렇게 정해지면 모든 판단의 기준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이 선택이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되는가?’

    그 기준 위에서 전략의 저울을 재 보십시오. 조기 합의해서 잃을 손실과, 하지 않아서 잃을 손실을 각각 확정해 보는 것입니다. 합의의 손실은 대개 돈과 자존심으로, 규모가 예측됩니다. 반면 합의 없이 공방이 길어질 때의 손실은 예측조차 되지 않습니다. 보도가 이어지는 하루하루가 이미지의 손실이고, 광고와 작품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이 실제 손실인 거죠.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는 자명합니다. 최악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그 저울 위에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간혹 이런 걱정으로 조기 합의를 주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합의해 주면,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유사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이런 생각을 하는 연예인이라면 이후에도 지속가능성 확보는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유사 문제 제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은, 곧 유사한 문제가 더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합의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관리의 문제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합의는 ‘조기’ 합의만 유효합니다. 여론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뒤의 중간 합의, 모든 것이 소진된 뒤의 최종 합의는 상대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잃을 것을 다 잃은 뒤의 합의는 대부분 목적 달성, 즉 지속가능성 확보에 유효하게 이바지하지 못합니다. 같은 값을 치르고도 초기의 합의는 위기를 봉합하지만, 늦은 합의는 봉합할 것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요.

    합의하십시오. 최대한 빨리 하십시오. 그 대응만이 통제 가능한 유일한 지점에서, 유일한 목적을 위해, 저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논리를 조직과 소속 연예인들이 평시에 공유해 두는 것, 그것이 지금 준비하실 대응 전략의 핵심일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