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 기고문]
위기관리 시 음모론은 왜 떠오를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대형 위기가 발생되면 그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음모론이 슬금슬금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대형 재난이거나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면 그 음모론은 더욱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지속 각색되어 퍼져 나간다. 인간의 본성에 기반한 음모론 형태가 많은 것으로 보아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음모론을 기대하거나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기업에게 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그와 유사한 음모론이 다양하게 대두된다는 점이다. 사회나 국가 차원으로 접했던 습관에 의해 기업이 그런 음모론을 떠올리는 것인지, 자사를 타겟으로 하는 모종의 음모가 실재하기 때문에 기업이 주목하는 것인지 단순히 이야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위기를 맞은 기업 내부에서 생겨나는 음모론 형태와 그 배경 그리고 위기관리 컨설턴트로서 경험에 기반한 조언을 정리해 본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기업 위기관리 시 목격되는 맹목적 음모론 기반의 대응이나 의사결정 그리고 평가가 최대한 줄었으면 한다.
음모론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전지전능함을 전제로 한다
자사는 상대가 전지전능하다고 믿어야 음모론이 완성된다. 경쟁사가 언론을 통해 자사를 집요하게 음해하고 있다 믿는 경우도 그렇다. 자사보다 경쟁사 홍보실이 훨씬 더 강하고, 전략적이며, 주도 면밀하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런 음모론은 성장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경쟁사측에서 언론을 통해 자사에 대한 음해 정보를 마구 퍼뜨리고 있다면, 자사 홍보실에서는 그 내용이나 경로 그리고 기자들로부터의 정보 입수가 가능해야 정상이다.
그런 구체적 정보가 없거나 부족한 상태에서 심증은 있는 데 물증이 없는 상황이라면 제대로 된 상황판단은 아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그렇게 티끌 없이 치밀하고 전지전능한 상대나 개체는 없다. 최근 같은 투명적 사회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적인 상대방이 완벽하게 자사를 노리고 있다면, 왜 자사의 역량으로는 그 만큼 하지 못했는지를 먼저 돌아 보아야 한다.
음모론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공통적 공격성을 전제로 한다
일부 기업에서는 언론도 우리를 공격하고, 검찰과 청와대와 국회와 시민단체가 모두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자사가 그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고 하면서 그들 모두가 자사에게는 적으로 보인다는 해석을 한다. 자사가 무엇을 해도 제대로 이해하거나 반영해 주지 않으며, 항상 삐딱하게 자사를 바라본다는 이야기만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경우는 해당 기업의 지나친 피해의식이 그 기반이다. 이전에 특정한 계기를 통해 그런 피해의식이 사내에 생겨났고, 일정기간 동안 부정적 환경에 시달렸던 트라우마 때문에 주변 이해관계자들에게 자꾸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 일부가 적대적이라 해도 전체나 대부분의 이해관계자들이 실제로 ‘마녀사냥’을 하려면 단순한 느낌 보다 훨씬 많은 심각한 전제 상황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주변 이해관계자를 적으로 보고 음모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라고 해도 기업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주변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정상화 할 수 있을지를 우선적으로 고민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음모론은 자사의 무기력함을 먹고 자란다
기업 경쟁 차원에서도 상대 기업이 어떤 혁신적인 신제품을 출시해서 시장 전쟁을 일으키면, 자사에서도 그에 대한 응전과 반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 경쟁사 신제품 보다 훨씬 더 나은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전혀 다른 시장을 치고 들어가 시장을 흔들거나 하는 등 모든 전략과 역량을 집중해 열심히 대응하곤 한다.
기업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음모론을 주로 이야기하는 경영진들은 그런 도전과 응전이라는 개념을 위기관리에 적용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내부적으로 상대로부터의 그러한 도전을 감지했다면, 왜 자사에서는 적절한 응전을 하지 않는가 질문하면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저희는 경쟁을 젠틀하게 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그런 회사와는 좀 성향이 다릅니다.” “수준 낮은 회사가 막판 발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들으면 무언가 자사가 멋져 보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현실적으로 보면 상황에 대한 심리적 회피이자 포기로 보인다. 경쟁사의 음모로 인한 실질적 피해가 발생된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응전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경영진의 의무라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전을 포기한 채 음모론만 곱씹고 있다면 사실 그 상황은 음모론에 기반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젠틀함을 내세우는 무기력함이 그 원인인 것이다.
음모 자체를 인간으로서 불가항력한 것이라 해석한다.
이번 위기는 음모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자사가 어떤 대응을 해도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서 그 누가 이런 음모와 마주하더라도 성공적인 위기관리는 절대 어려울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음모라는 너무나 큰 힘이 자사를 둘러싸고 있고, 수많은 위해가 외부로부터 가해지고 있으니 일단 견디면서 생존하자는 모드로 바로 돌입한다. 데미지 컨트롤이라고 해서 일단 가만히 인내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집중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루기도 한다.
싸움에서 상대를 너무 크게 보거나 상상하면 초기부터 전의를 상실하게 되는데, 바로 그 형상이다. 그러나, 좀 더 전략적인 기업이라면 처음부터 상황을 음모론의 틀속에서만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해서 상대가 누구인지, 어떻게 하면 상황을 관리할 수 있을지를 합리적으로 논의하려 노력해 볼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그런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찾으려 노력은 할 것이다.
음모론이라고 생각해야 편안한 경우도 있다.
발생한 모종의 사회적 지탄과 그로 인해 이어지는 이해관계자의 공격을 피부로 경험하면서, 음모론을 떠올리는 기업 내부에는 ‘자사는 아무 잘 못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겨우 그 정도의 잘못을 가지고 왜 우리가 이렇게 음모에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생각하는 거다. 경쟁사의 경우 우리와 비슷한 잘못을 해도 우리만큼 여론의 지탄을 받지 않는데 왜 우리만 이런 가 불평한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해당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진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기업이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주변 이해관계자들은 그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자신들이 생각할 때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관행이었고, 문화이었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해석하는 것이다. 자사가 주변 이해관계자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맞추지 않으려 하는 셈이다. 당연히 이런 경우에는 음모론이 의심의 대상이자 큰 변명이 된다. 우리는 별 잘못이 없는 데 이상한 음모론에 희생되었다는 자체 해석을 하게 된다.
음모론을 다뤄야 무언가 수준이 높다는 느낌을 가진다
상당수의 음모론은 기업 말단 실무진에서 나오기 보다는 고위 경영진으로부터 나온다. 일부 실무진이 음모론을 이야기해도 경영진이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당 실무자의 개인 의견으로만 머문다. 반대로 최고경영진이 음모론을 이야기하면 실무자들은 그에 동의하며 의사결정 방향을 그 방향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최고경영진이나 그 주변에서 조언하는 전문가들은 부정적 상황과 맞닥뜨리면 ‘이 상황이 왜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가?’ 궁금해한다. 최근 시시각각 바뀌는 시류나 환경을 단시간에 따라잡아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에 해당 상황의 특수성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 그러다 보니, 해당 상황을 그냥 음모론이라는 아주 단순한 프레임에 넣어 해석하는 선택을 한다.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이건 분명 음모’라는 사고의 프로세스를 거치는 것이다.
사내 시각으로는 고위경영층이 실무진 보다 훨씬 더 많은 고급 정보와 인맥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이 해당 상황을 음모론에 연계해 이야기하면 그걸 믿을 수밖에 없다. ‘VIP가 청와대 이야기를 들었는데…’ ‘VIP 사위가 검찰에 있는데 그 쪽 이야기가…’ ‘VIP 지인들이 알아보니 그런 음모가…’ 이런 사내통신이 돌아다니게 된다. 무언가 그런 정보와 음모론을 꿰뚫고 있어야 수준 높은 위치라는 느낌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이는 음모론에 기반한 위기관리 방식 중 가장 위험한 유형이다.
음모론을 위기관리 사후 평가에 활용하려는 생각도 있다
큰 음모가 있었다, 그것이 기반이 되어 현재 같은 사태가 발생되었다, 지금 같은 최악의 상황은 불가항력적인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사내 공감대가 일단 있으면 위기관리 실무는 차라리 쉬워 질 수 있다. 사후 평가에 있어서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가능해진다. 일종의 피해의식으로 인한 동질감이 사내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 스스로 이번 건은 강력한 음모로 인해 우리가 희생양이 되었고, 마녀사냥의 광풍이 분 것이라 생각하면 실무진들의 문제를 이해하게 된다. 실무자들은 비슷하게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했으면 최선을 다한 것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음모론이 혹시나 있었을 수 있는 위기관리 전반 프로세스에서의 취약성과 문제점을 일시에 덮어주게 된다. 책임으로부터 모두가 자유롭게 된다. 만약 회사의 위기 시 마다 자주 음모론이 떠오른다면, 이와 같은 직원들의 현실적 이유 때문이 아닌가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결론을 정리하자면, 음모론을 이야기하려면 심증이나 일부 근거만을 기반으로 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반대로 확실한 증거나 근거들이 충분하다면 일단 그 상황은 음모론에 의해 움직여지는 상황은 아니다. 음모론을 습관적으로 언급하거나 초기부터 프레임화 하려는 시도는 상호간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단순한 분석이나 동질감을 느끼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실제 위기관리에는 큰 장애가 된다.
또한 음모론이 자주 생겨나는 기업 내 분위기는 건전하다 보기 어렵다.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다. 음모론이 판을 치고, 그 음모론에 의해 모든 것이 돌아가며 충돌하고, 음모론이 또 다른 음모론을 낳고 하는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 종종 발견되는 사내 분위기로서의 음모론은 그래서 문제다. 음모론은 그냥 소셜이나 영화속에서만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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