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 위기관리에서 경계해야 할 생각이 하나 있다. ‘(그 때가서) 하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이다. 위기관리를 위해 “하면 된다”는 말은 위기 발생 이전까지만 맞는 말이다. 불행한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미연에 노력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위기가 발생했을 때 무조건적 ‘하면 된다’는 주장은 자칫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소지가 있는 말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하면 된다’는 말은 위험하다.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 ‘준비’다. 적절한 준비 없이 ‘하면 된다’라 믿는 막연함은 절대 경계해야 한다.
어떤 위기대응일지라도 일정시간의 물리적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메어 쓸 수 없다. 서양에서는 바쁘다고 수레를 말 앞에 메지 말라는 말도 한다. 위기대응이 바로 그렇다.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준비가 선행될 때 해당 위기대응은 그 효과를 발휘한다.
아주 간단해 보이는 해명문이나 사과문도 그렇다. 실제로 위기 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해명이나 사과문을 작성해 본 기업은 기억할 것이다. 초안 작성에서 각 부서별 검토와 수정 그리고 보고 작업이 생각보다 복잡다단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위기관리 매뉴얼에서는 ‘최대한 신속히’ 또는 ‘3시간 내에’ 등과 같은 ASAP(as soon as possible)명령이 쓰여 있지만, 말이 쉽지 그런 빛의 속도는 나지 않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급한 마음에 부서별 리뷰를 건너 띄거나, 몇몇 담당자와 임원이 후다닥 만들어 올린 해명이나 사과문은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일단 공개된 해명이나 사과문을 2-3일에 걸쳐서 여러 차례 사후 수정 개서하는 촌극이 목격되는 경우도 이 때문이다.
사과 기자회견도 그렇다. 대기업의 경우 빠르게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팀이 조직화 되어 있어 그나마 신속하게 가능하지만, 그 외 기업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기자회견을 연다고 끝이 아니다. 그 회견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누가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는 상당한 시간을 요구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꼭 불거지는 문제가 이런 것들이다. 일단 시간이 없다. 급하다. 경영진의 요구들이 쏟아진다. 여러 주변 이해관계자들이 경영진에게 훈수를 둔다. 의사결정 과정은 과도하게 지연된다. 정확한 지시가 내려오지 않으니 실행 해야 하는 팀에서는 무의미한 시간만 보낸다.
예산이 없다. 그리고 조직이 부족하고 없다. 문제가 발생된 원점에 대한 기존 관계나 투자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 한 사람을 만나 보려 해도 줄이 닿지 않는다. 어떻게 해 보려 해도 그걸 해 본적이 없다. 직원들을 닦달해 보지만 없는 답이 나올 리는 만무하다. 이 때와서 미리 준비 할 걸 하는 후회를 한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늦었다는 말이 있다. 위기관리에 있어 준비 하지 않고 위기를 맞았다면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준비는 미리 해 두어야 실제 위기 시 빛을 발한다. 부랴 부랴 준비를 시작하게 되면 해당 위기가 최악으로 종료 된 이후에나 겨우 나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저기에서 도움을 끌어 와 운 좋게 해당 위기를 넘겼다고 해 보자. 그런 뒤에도 대부분 이런 기업들은 준비를 시작하지 않는다. 지난 위기에 대한 반면교사를 찾지 않는 것이다. 바로 다음 달이나 다음 해에 동일한 위기가 발생해도 또 동일한 준비 부족을 토로하고 똑같이 허둥지둥 댄다. 이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미리 살펴 놓으면, 미리 경험하면, 미리 갖추면 위기 시 훨씬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진리다. 준비 된 기업은 위기 시 빠르다. 별도로 준비하는 데 드는 시간 소모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대응 하는 기업이 이런 기업이다.
신속한 대응인데도 그 품질에는 이상이 없다. 해명이나 사과문 속에도 상당한 수준의 심사숙고가 엿 보인다. 이 빠른 시간 내에 어떻게 이런 메시지가 잘 정리 되었는지 희한하게 보일 정도가 된다. 기자회견을 보아도 준비된 회견은 기자나 시청자 입장에서도 정돈된 모습처럼 느껴진다. 신뢰감도 배가되고, 무언가 위기가 관리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여기에 장기간 훈련된 경영진이 정확하게 전략적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면 금상첨화가 된다. 준비한 기업과 준비하지 않은 기업은 이렇게 차이가 난다. 위기 시에만 보이는 엄청난 차이다. 막연하게 ‘하면 된다’라는 생각은 지금이라도 버리자. 달리는 말에 올라 타는 것이 쉬운지, 미리 말에 올라타고 달려 나가는 것이 쉬운 것인지 합리적인 생각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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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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