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잉크도 마르지 않은 것 같은데, 또 VIP 위기가 발생했다. 예전과 비슷한 위기가 이번에도 반복되었다. 많은 것이 예전과 유사하게 돌아간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전에는 없던 녹취와 동영상들이 제보되기 시작해 판을 키웠다는 점과 공분의 화살이 가족 전체에게로 확산되었다는 정도다.
VIP 위기관리는 위기관리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관리 예후 또한 아주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실무자들에게는 특A급 위기로 인식되는데도, 반면 실무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니 더더욱 답답할 노릇이다. 아무튼 괴상한 위기고 관리다.
톨스토이의 걸작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말은 위기관리에도 적용이 된다. “(위기관리에) 성공한 기업은 서로 닮았지만, 실패한 기업은 저마다의 이유로 실패한다.” 실패한 기업들에게 “왜 이번 위기관리를 그렇게 하셨나요?”라고 물으면, 각 기업마다 이유들이 매우 다양하다.
그 이유들을 하나 하나 챙겨 듣다 보면, 역시 그래서 위기관리가 실패할 수 밖에 없었구나 공감이 간다. 최근까지 VIP관련 위기관리를 직간접 자문하면서 들었던 여러 실패의 이유들을 한번 기억해 정리해 본다.
- VIP께서 잘못한 줄 모른다. 억울해한다.
가끔 법정에서 판사 앞에 서 사과문을 읽으시기도 하고, 기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시면서 수치감을 표하시기도 하시는데. 가까이서 뵌 분들의 후담에 의하면 상당히 억울해 하시고 언론과 여론에 대해 대노 하셨다 한다. VIP께서 이런 포지션을 유지하시는 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여론에 공감할 줄 모른다. 중요하지 않다 여긴다.
회사 제품이나 서비스에 찬사를 보내는 소비자 몇의 글을 보시면 전사 공유도 하시고, 행복해 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시는데. 자신과 관련된 위기가 발생한 후 온라인을 도배하는 여러 공중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별 가치를 두지 않으시려 한다. 언론은 이 기회를 통해 돈을 뜯으려 한다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초기 대응이 힘들다.
- 사과하는 매체를 자신에 맞춘다
페북에서 사과한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으로 사과하는 경우도 있다. 그건 연예인들이나 하는 사과 형식이라 해도 그걸 따라 하신다. 페북에 사과 하실 때도 공개범위 설정을 친구들만 볼 수 있게 하신다. 내가 사과하면 알아서 홍보팀이 오프라인 언론에 릴리즈 해 줄 것이라 믿는다. 홍보팀은 차라리 VIP가 앞에 나서 주었으면 하는데 말을 못한다.
- 사과를 여러 번 한다.
언젠가부터 한 위기에 사과를 비공식 공식해서 여러 번 반복한다. 상황관리가 안되니까 계속 상황을 따라가면서 사과를 하게 되는 셈이다. 한 번의 사과에도 수치심을 느끼시는 데 여러 번 사과를 하게 되니 더더욱 아래 직원들은 바늘 방석이다. 나중에는 “내가 사과했었는데도 상황관리가 안되더라. 그러니까 사과라는 게 무슨 효과가 있다는 거냐?”고 주변에 물으신다.
- 원점관리 자체를 싫어한다.
화가 나 계시기 때문이다. 이슈화가 시작된 원점들은 계속 언론과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에 대한 다가감을 원하지 않으신다. 이왕 그 사람이 문제를 일으킨 것, 끝까지 용서하지 않겠다 생각하시는 듯 하다.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에게 먼저 고개 숙여 사과하시는 것이 어떤가 하는 조언에 귀를 기울이시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래서 계속 된다.
- 말이 처음부터 계속 바뀐다. (정황 서술)
언론을 통하거나, 수사기관 등을 향해 하시는 말씀에 있어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다. 실제 상황은 그대로 인데, 그걸 기억해 말씀하시는 분의 생각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언론이나 수사기관은 바뀌는 그 말들을 따라가면 비교 분석한다. 말이 말을 낳는다고 했는데, 말들이 계속 바뀌어 나가니 말로 산을 이룬다.
- 내부 지지자가 없다.
내부 직원들이 원래는 안타까워했고, 슬퍼하기도 했고, 나아가 바깥으로 창피하다는 느낌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내부 의견은 블라인드나 공개채팅방에서 공유되다 보니 하나 둘 씩 사라져 버린다. 말 그대로 침묵의 나선형 이론이다. 이슈에 둘러 쌓인 VIP를 지지하는 의견을 밝히는 직원들이 사라져 가면서, VIP에 반감을 가진 직원들이 더욱 더 기세 등등하게 부정 의견을 피력한다. 이어 제보까지 하겠다고 으르렁댄다. 사면 초가가 따로 없다.
- 내부제보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자 한다.
이어지는 내부 제보에VIP는 엄청난 실망감을 느낀다. 배신감에 치를 떤다. 주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묻는다. 주변 자문단은 VIP얼굴에서 대응 방향을 읽는다.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어떨까 조언한다. 제3자 대화를 녹취하는 것은 불법이라 자문한다. 법적으로 강력 대응해 추가 제보를 방지하라는 지시가 나온다. 홍보팀을 비롯 일부에서는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 법적으로 별 것 아닌 일을 크게 키운다.
훌륭한 법률자문단이 주변에 있는데도 VIP의 위기관리 의사결정은 문제를 키우는 방향으로 자꾸 진화한다. 사실 법적으로 재판을 거쳐 VIP께서 받으실 수 있는 양형은 아무리 많아야 몇 개월 또는 집행유예 정도다 하는 건도 크게 키워진다. 법률 자문단에게 무죄나 혐의 없음 또는 내사종결을 이끌어 내라는 압력을 지속하신다. 그러다 보니 일이 커진다. 양형도 같이 커진다.
- 왜 우리만 주목 받는 거냐 억울해 한다.
여러 케이스를 둘러 보라 하신다. 저VIP는 이런 짓(?)을 했었고, 다른VIP는 이런 범죄도 저질렀는데 왜 우리에게만 여론이 이리 좋지 않은가 하신다. 그 VIP들을 향했던 당시 부정 여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지 못하시는 거다. 자기 설움이 제일 크다는 말이 맞다. 여론이 좋지 않는 ‘이유’를 들여다 보는 것이 위기관리의 시작인데, 이런 불만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수사기관 출두 할 때가 돼서야 얼굴을 공개한다.
위기를 관리하지 않으면, 위기가 자신을 관리하게 된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 빨리 위기관리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최악을 예측해 중간 목표를 세워 최악의 상황까지의 전이를 방지하라 한다. 기관이 나서지 않게 초반 여론을 관리해야 했다. 원점들에게 진심 사과하고, 그들의 불만을 완화시켰어야 했다. 언론 앞에 고개 숙이고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었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수사기관 출두 명령을 받고 나서야 수백 명 기자들과 마주하니 문제다. 극적 효과를 노리는 것일까?
- 초기부터 커뮤니케이션만 있고, 중요한 행동은 없다.
원점에 대한 사과도 문자나 이메일로 한다. 페북에서 사과하고 트윗을 날린다. 누군가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 조언하는 사람이 없어서다. 아니면 그런 조언에도 귀 기울이시지 않는 거다. 연세 있으신 VIP 경우에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기자들을 모아 직접 고개를 숙이시는데, 젊은 VIP경우에는 보다 쉬운 사과 방식을 찾는 것 같다. 행동은 없고 커뮤니케이션만으로 해결되는 위기는 사실 위기가 아니다.
- 홍보팀이 대응을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서러운 부서가 홍보팀이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을 평소에도 듣는데, VIP 위기가 발생하면 무얼 하던 본전 조차 못 찾는다. 지금까지 쓴 접대비와 광고비로 공격하시기도 한다. 돈을 더 얼마나 써야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느냐 물으신다. 보다 능력 있는 홍보임원 영입을 고민하시기도 한다. 기사를 막아라 빼라 하는 말이 드라마에서만 들리는 말인 줄 알았는데…라며 놀라는 홍보실 신입들이 있다.
- 외부에서 강호의 고수를 찾는다.
강호의 고수라는 말도 참 놀랍다. VIP 위기관리는 VIP가 하시는 것이다. 주변의 법무나 대관 그리고 홍보는 VIP가 직접 하시는 위기관리를 돕고 지원 할 뿐이다. VIP가 위기를 관리하려 직접 나서시지 않는 한 하나님을 영입해도 위기는 깔끔하게 관리되지 않는다. 그깟 강호의 고수 정도가 칼을 빼 해결할 수준이었으면 VIP위기란 말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 유사한 옛 이야기들이 재탕된다.
평소에도 언론에서 가끔 회자되면 VIP께서 경기를 일으키시는 과거 흑역사들이 VIP위기가 발생하면 다시 엄청난 수준으로 여기저기 회자된다. 홍보팀은 바늘방석이 되는데,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들이 재탕되지 않게 하려면 VIP께서 사전에 조심을 하셨어야 하는데” 같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입이 있어도 말 할 수 없는 위기인데도VIP는 홍보팀 역량이 부족하다는 시선을 보내신다.
- 수사기관이나 감독 규제기관을 더 힘들게 한다.
초기 여론 대응을 당사자 VIP가 유효하게 진행하지 않으니 그렇다. 사회적 공분까지 다다르면 수사나 규제기관도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처음부터 해당 기업에게 “빨리 여론을 관리해 우리가 나서지 않게 하라” 싸인을 보내는데.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도 좀 편히 직장생활 해 보자 하는데, 힘들게 되는 거다. 결국 그들이 여론에 부응 해 하이프로파일 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 한다. 칼춤을 추게 만든다. 압수수색을 하게 만든다. 공개소환을 하게 만든다. 영장을 치게 만든다.
- 로펌을 의지한다. 초기부터 법적 해결책에 집중한다
VIP께서 로펌에 절대 의지한다. 처음부터 법적 부분에 포커스 맞추어 대응 시도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로펌 조언에도 별반 의지하지 않으시는 듯 하다. 대응 회의나 시간의 길이를 봐도 여론에 대한 대응 숙고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로펌과 하신다. “법은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법조인 조언을 믿는다. 그런데 그 말을 잘 들어보셔야 한다. “법은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었다. “않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들도 확신이 없다는 걸 아셔야 한다.
- 연이은 내부 고발을 진정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을 영입해도 관리하시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가 이래서 나온다. 내부고발이 이어지는 상황이라면 그 어떤 기업도 대응안을 만들 수 없다. 일부 기술적 기교적 대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임계치를 넘은 사내 공분이라면 더더욱 관리 할 수 없다. 이 정도 수준이 되면 “오는 비를 맞고 가자”는 전략이 슬슬 공유된다.
- 압수수색을 연달아 받는다
여론에 영향을 받는 기관들의 작품이다. 그들도 불쌍하다. 각종 시민단체나 언론에서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국회와 정치권에서는 너희는 뭘 하고 있냐 자꾸 질문한다. 기관장께서는 어떻게 해서든 우리가 열심히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일선을 질책한다. 한번 할 압수수색을 여러 번 연출 한다. 일부에서는 빈 박스 압수 연출 의혹까지 만든다. 그 만큼 절실 한 거다.
- 녹취와 영상들이 여기 저기 공개된다
그렇게 외부불만세력(?)이 많았는지 VIP께서 이제야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온통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받아들이신다. 제보자들도 문제고, 그걸 무책임하게 보도하는 언론도 문제가 많다 비판하신다. 주변 자문단은 함께 언론의 의식을 비판하며 한탄 해 드린다. VIP께 공감해 드리는 것이 그들 업무라 생각한다. 여론이 표출되는 트렌드가 바뀐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일부 해도 말은 하지 않는다.
- 논란이 추가 논란으로 전이되며 알을 깐다.
바퀴벌레도 이렇게 번식력이 좋지는 않을 것이라며 놀란다. 전국민이 이렇게 까지 관심 가질 일이냐면서 의아 해 한다. 주변 자문단에서는 음모론을 거론한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시는 VIP가 좋아하실 시각이다. 요처 누구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요…이렇게 시작되는 음모론이 여론을 보는 시각을 결정해 버린다. 홍보팀은 이 때부터 위기관리 실패를 더욱 확실하게 예상한다.
- 홍보팀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가능한 말을 줄이는 것이 전략이 되어 버린다. 하이프로파일 할 것이 없다. 우리가 말을 하지 않거나 적게 해서 기사 분량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한다. 한 두 줄이라도 줄었으면 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VIP위기가 발생했을 때 홍보팀이 언론에게 하는 모든 말은 VIP가 그대로 확인 가능한 것이라서 민감하다. 평소 기사에 나온 홍보팀 말은 잘 확인 안 하셔도, 자신 관련 코멘트는 상당히 민감해 하신다. 홍보팀이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이유다.
- 노조의 최초 솔루션에 귀 기울지 않는다.
미운 놈은 어떤 말을 해도 밉다. 노조가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라 VIP를 향해 외치는 말이 고깝게만 들린다. 가만히 이성적으로 그들 주장을 보면 일견 일리 있는 솔루션이기도 한데, 외면 하시는 거다. 저들도 다 다른 속셈이 있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신다. VIP 자신을 돕기 위해 그런 요구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상황이 최악으로 치 닫는 시점이 오면 침묵을 선택한다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체념한다. 며칠 전 무언가를 했었으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이와 이렇게 된 것, 이제는 정신 차리고 전략을 세우자 한다. 장시간 토론을 통해 내리는 공통적 결정은 ‘침묵’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현재 상황은 관리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VIP와 위기관리팀이 공유한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자. 지금까지도 기술적 침묵을 해 온 거 아닌가?
- 그 이후부터는 내부에서 서로 힘을 주는 말만 한다.
VIP가 진짜 VIP라는 이유는 주변에 그를 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은퇴한 정치인이나 기관 출신 인사, 교수와 은퇴 언론인이 많이 조언한다. 그들 대부분은 이쯤 되면 정신승리를 주장한다. “VIP께서 강건하셔야 합니다” “VIP께서 마음을 단단히 가지셔야 합니다.” 같은 조언은 기본이다. 가끔 영화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는 분도 나온다.
쭉 기억을 정리 하다 보니, 위기관리에 실패하는 이유가 다양해 보여도, 그 속에는 또 나름 공통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회사도 저 회사도 비슷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는 말도 맞겠다. 톨스토이가 보면 ‘서로 닮았네’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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