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21편] 일선이 무너지지 않게 하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북한과 휴전선을 놓고 대치하고 있는 우리 전방의 부대와 군인들을 생각해 보자. 어떠한 상호 충돌에서도 전방 일선이 쉽게 무너지면, 그 다음부터는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군은 그래서 전방의 일선 군인들을 강하게 훈련한다. 조금이라도 이상 조짐이 감지 될 때에는 경계지시와 준비 태세를 갖추게 한다. 충돌이 발생하면 보다 신속히 방어 또는 공격에 그들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 위기관리에서도 이런 당연한 원칙은 살아있어야 한다. 생산시설 안전사고를 방지 하기 위해서 관련 시설을 운영하는 여러 임직원들을 훈련하는 것이 바로 그런 노력이다. 각 매장 매니저와 직원들에게 위생교육을 시키고, 불만 고객이나 매장내 사고에 대응하는 가이드라인과 훈련을 실시 하기도 한다. 일부는 미스테리 쇼퍼 등을 통해 대응 시뮬레이션을 해 보기도 한다.
고객응대센터나 영업라인, 대관업무 부서나 홍보조직을 위해서도 이러한 비상 상황을 대비한 훈련은 제공된다. 비상시 언론을 대응하는 미디어트레이닝과 창구 일원화 교육,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 훈련도 마찬가지다.
“왜 신입부터, 공장, 지점, 지사에 있는 말단 직원까지 훈련 시켜야 하나요? 훈련 예산과 조직이 한정되어 있는데요.” 같은 반론을 제기하는 기업도 있다. “일선 직원들에게 고급훈련을 시켜 보았자, 창피한 이야기지만 그걸 알아서 스스로 실행할 수준이 안됩니다. 위기대응도 다 본사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거죠.” 같이 하소연을 하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실제 위기발생 시 힘없이 무너지는 일선을 보게 되면 말이 바뀔 수 밖에 없다.
공장에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려 사내 소방대가 몰고간 소방차를 확인해 보니 소방수(물)가 들어 있지 않았다든가.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의 배를 발로 걷어 차는 매장 직원 모습이 CCTV화면으로 확인된다 거나.
지점을 찾아가 지역 논란을 취재하는 한 언론사 기자에게 막말과 폭력까지 행사하는 자사 주부사원들을 뉴스에서 마주하게 된다 거나. 영업직원 일부가 온라인에서 거래처와 익명으로 욕설 섞인 설전을 벌이다 발각되어 엄청난 공분을 산다 거나.
갑작스럽게 들이 닥친 규제기관 요원들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이 미는데도 회사를 위해(?) 직원들이 그들을 로비 바닥에 밀어 넘어뜨렸다는 보고를 받았다 거나. 학교 후배인 국회와 시민단체측 인사를 만난 일선 직원이 회사의 최근 민감한 문제를 생각없이 털어 놓고 조언을 구해 논란에 처한 상황이 되어보면 알게 된다. 일선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훈련이 얼마나 소중 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 골치 아픈 상황은 문제를 깨닫지 못한 일선 직원들이 그후 이렇게 사내적으로 자기 변명을 하는 경우다. “나는 지난 20년간 이 회사 공장에서 재직하면서 한번도 언론사 기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교육 받지 못했다. 내가 왜 그걸 알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온라인은 분명 사생활인데, 왜 회사가 간섭을 하나? 그건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폭행 당한 고객 하고는 내가 형사나 민사 책임을 질 테니 회사는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저는 순수하게 애사심으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친한 후배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왜 저를 죄인 취급하나요?”
이런 일선 직원들의 생각은 단순히 무식하거나, 부주의하거나,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평소에 무식했고, 무심했고, 부주의 했고, 틀린 것은 회사측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을 지금까지 아무런 가이드 없이 방치했던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에서는 일선을 대상으로 하는 위기관리 교육과 훈련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산과 조직만 탓하며 수년을 허비한 대가를 그대로 경험하게 된 것뿐이다.
이것은 마치 전방에 수많은 군인들을 배치해 놓고도 예산이나 조직이 부족하다면서 아무런 훈련 교본도 주지 않고, 군사 훈련도 시키지 않는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이런 군대의 문제에 대한 책임은 그러면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일선이 무너진 이후라도 지휘그룹은 살아남아 제대로 전쟁을 수행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그 지휘그룹의 가장 큰 죄는 무엇인가?
일선을 무너지게 만들었다는 것이 가장 큰 죄다. 그들에게 가이드를 주지 못했고, 교육과 훈련에 등한시 했던 회사가 그들이 발생시킨 문제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일선을 그대로 방치했다는 의미는 전쟁에서 이기기는 커녕 살아 남을 의지조차도 없다는 의미다. 패배는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자초한 것이니 일선을 탓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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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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