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리터러시(Literacy)라는 단어는 원래 ‘읽고 쓰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이 개념은 단순한 문해력을 훨씬 넘어섰다. 오늘날의 리터러시는 특정 영역의 언어와 맥락과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기반하여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실행하는 능력 전반을 의미한다. 금융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표현들이 이미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 경영진에게 리터러시는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의사결정의 질을 결정하는 근본 역량이다. 위기는 대부분 무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알면서도 제대로 읽지 못했거나, 읽었지만 잘못 해석했거나, 해석은 맞았지만 실행이 틀렸거나 하는 데서 온다. 리터러시의 결핍이 위기의 진짜 원인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 글에서는 이슈관리와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기업 경영진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리터러시를 정리해 본다.
첫째, 여론 리터러시: 정무감각이라는 이름의 나침반
여론 리터러시는 흔히 ‘정무감각’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회사의 사업적·비사업적 의사결정들을 여론의 시각에서 역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이자, 아직 일어나지 않은 반응을 미리 그려낼 수 있는 예측의 능력이다.
정무감각이 있는 경영자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 결정이 우리 회사 밖에서 어떻게 읽힐 것인가?” 정확한 예측이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던지는 습관, 그리고 여론이 이 의사결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대형 제조기업이 공장 자동화 투자를 결정했다.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이라는 경영 논리는 완벽하다. 그러나 그 결정의 이면에는 대규모 생산직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게 따라온다. 여론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라면 이 지점에서 멈춘다. ‘고용 불안’이라는 키워드가 어떻게 기사화되고, 어떻게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되며, 어떻게 지역사회와 노동계의 반응을 촉발하는지를 미리 그려본다. 그리고 그 그림에 맞게 소통 전략과 실행 순서를 설계한다.
여론 리터러시가 부족한 경영자는 여론과 마주하면 항상 흔들린다. 여론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첫 반응이 나올 때 당황하고, 당황한 상태에서 내린 두 번째 결정이 또 다른 논란을 만든다. 정무감각이 있는 기업은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다. 여론의 반응을 사전에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 파도를 머릿속에서 한 번 겪었기 때문에, 실제로 파도가 왔을 때는 쉽게 조타를 잃지는 않는다.
둘째, 언론 리터러시: 여론과 언론은 다르다
많은 경영자들이 여론과 언론을 혼동한다. 이 혼동이 치명적인 실수의 출발점이 된다. 여론은 사회 전반의 인식과 감정의 총체이고, 언론은 그것을 매개하는 제도적 메커니즘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같은 것이 아니다.
언론 리터러시는 언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기자와 매체의 시각과 행동 양식을 예측하는 능력이다. 언론에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그것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현장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이 있다. 기업이 내부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언론사 기자로부터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 담당 임원은 기자와의 ‘관계’를 믿고 비공개를 전제로 배경 설명을 한다. 그 배경 설명이 기사의 핵심 프레임이 되어 다음 날 지면에 오른다. 이것은 배신이 아니다. 언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언론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는 기자와의 관계를 인간적 신뢰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기자는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고, 그것이 그의 직업적 본능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한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못지않게,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명확하게 정해두는 것이 언론 리터러시의 실천이다.
또 하나. 나쁜 뉴스가 생겼을 때 언론을 피하려는 본능적 반응이 있다. 그러나 언론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는 안다. 침묵은 종종 유죄의 언어로 읽힌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에 대한 치밀한 전략적 판단이 언론 리터러시의 본질이다.
셋째, 내부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 안과 밖의 경계는 사라졌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오랫동안 ‘대내용’이라는 이름으로 안전하게 관리되는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직원들에게 하는 말, 사내 게시판에 올리는 공지, 임원 회의에서 나누는 대화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제 그 믿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내부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의 출발점은 내외부 커뮤니케이션 사이의 벽이 사라졌다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사내 메신저의 스크린샷이 소셜미디어에 올라가고, 임원의 전사 이메일이 언론에 전달되며,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직원의 내부 폭로가 기사화된다. “내 주변 모든 사람이 기자다”라는 말이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현장의 현실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리터러시는 단순히 ‘직원들에게 말을 조심하라’는 수준이 아니다. 밖에서 할 말과 안에서 할 말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기반으로, 무엇을 어떻게 직원들에게 커뮤니케이션해야 외부 커뮤니케이션까지 일관성 있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실행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보자. 회사가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대외 발표는 “사업 효율화와 미래 경쟁력 강화”라는 언어로 설계되었다. 그런데 같은 날 사내에서 팀장들에게는 “원가 절감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취지의 브리핑이 이루어졌다. 그 말은 며칠 안에 밖으로 나간다. 대외 메시지의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내부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는 직원들을 단순한 내부 구성원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들은 회사의 메시지를 외부 세계에 가장 먼저, 가장 광범위하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다. 그 사실을 전제로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이 리터러시의 실천이다.
넷째, 온라인 리터러시: 소셜미디어를 넘어 소셜 아젠다로
한국에서 소셜미디어의 원년은 대략 2010년으로 본다. 그로부터 16년여가 지났다. 초기에 기업들이 소셜미디어에 접근하는 방식은 주로 플랫폼 중심이었다.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관리하고,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소셜미디어 전략’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온라인 리터러시는 그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오늘날 기업이 집중해야 할 것은 소셜미디어 플랫폼 그 자체가 아니라 소셜 아젠다(Social Agenda)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어떤 의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확산되며, 어떻게 여론화되는가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현대적 온라인 리터러시의 핵심이다.
또한 이제 레거시 공중(언론 독자, 방송 시청자)과 소셜미디어 공중은 더 이상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둘은 하나로 합쳐졌다. 같은 사람이 아침에 종이신문을 읽고, 낮에 유튜브를 보며, 저녁에 커뮤니티에 댓글을 단다. 공중은 통합되었고, 기업의 모든 의사결정은 이 통합된 공중 앞에 동시에 놓인다.
온라인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가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이 의사결정은 소셜 공중에게 어떤 감정으로 읽힐 것인가?” “결국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이후 그들은 어떤 질문을 해 올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사전에 답을 준비해두는 것이 온라인 리터러시의 실천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식품기업이 원재료 원가 상승을 이유로 제품 용량을 소폭 줄였다. 가격은 그대로다. 마케팅팀은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크게 주목받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며칠 뒤 소비자 커뮤니티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적나라한 비교 사진이 올라온다. 그것이 주요 온라인 밈과 언론의 기사로 이어지고, 브랜드 신뢰도에 타격을 입는다. 소셜 아젠다의 메커니즘을 읽지 못한 결과다.
온라인 리터러시가 있는 경영자는 자사의 의사결정이 소셜 공중의 언어로 어떻게 번역될지를 미리 상상한다. 그리고 그 번역이 왜곡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맥락을 설계한다.
이상 네 가지 리터러시는 각각 독립된 능력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연결된 역량 체계다. 여론을 읽는 눈, 언론을 다루는 전략,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일관성, 소셜 아젠다에 대한 감각. 이 네 가지 모두 기업에게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있다. 전략, 투명성, 그리고 충분한 고민과 준비다.
이제 이전과 같이 전략 없이, 불투명하게, 고민과 준비 없이 움직이는 기업은 매일매일이 이슈이고 위기다. 경영진은 점점 더 당황스러운 상황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적절한 리터러시 없이는 적절한 의사결정도 불가능하다. 그 결과는 기업과 경영자 자신 모두를 최악의 상황으로 이끈다.
위기관리에서 이상향으로 삼는 개념이 있다. 세네카가 말한 에우티미아(Euthymia), 즉 평정(平靜)이다. 외부의 소란과 무관하게 내면의 중심을 잃지 않는 상태. 그러나 리터러시 없는 경영자는 절대 그 평정에 다다르지 못한다. 폭풍 속에서 지도도 없이 배를 몰듯, 매 순간 방향을 잃고 표류할 뿐이다.
리터러시는 지도다. 완벽한 지도는 없다. 그러나 지도를 가진 항해사와 지도 없이 바다에 나선 항해사의 결말은 다르다. 기업 경영진에게 리터러시란, 더 나은 항해술과 그 자신에 대한 확신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가장 실질적인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