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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관리, ‘준비’란 무엇인가

    위기관리, ‘준비’란 무엇인가

    [blog exclusive]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여러 기업들이 위기관리를 공부한다. 강의를 듣고, 컨설팅을 받는다. 그러다 꼭 한 곳에서 멈칫한다. ‘준비’라는 단계다.

    준비. 말은 쉽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면 막막하다. 처음도 끝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엇을 준비하느냐를 물으면 의견이 갈린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준비인지 정해진 것도 없다. 얼마나 걸리는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누가 하느냐, 어디까지 관여하느냐도 현장에선 아주 현실적인 물음이다. 여기에 예산이 걸리고, 내부 정치가 얹힌다. 그래서 준비는 회사마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어정쩡하게 자리 잡는다.

    막히는 이유는 대개 같다. ‘무엇을’ 갖출지부터 따지기 때문이다.

    위기관리를 준비하자고 하면 곧바로 팀을 짜자고 한다. 매뉴얼을 만들자고 한다. 트레이닝을 하자, 시뮬레이션을 돌리자고 한다. 전부 ‘무엇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다 막힌다. 이건 필요하고 저건 필요 없고. 예산은 한정돼 있고. 그렇게 준비는 더 나아가지 못한다. 흔한 풍경이다.

    순서를 바꿔야 한다. 준비의 중심은 ‘무엇’이 아니다. ‘누가(who)’와 ‘어떻게(how)’다. 이 둘이 준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무엇’은 그 뒤에 자연히 따라온다.

    누가 관리하는가?

    준비는 여기서 시작된다. 모든 위기관리 체계의 공통 전제이자 첫 핵심이 ‘누가’다. 매뉴얼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목은 늘 ‘누가’다.

    CEO는 이 그림을 쥐고 있어야 한다. 누가 우리 회사의 위기를 관리하는가?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이 그림이 있어야 다음 준비가 굴러간다. 그 과정을 관리하고 감독할 수 있다. 준비된 것을 유지하고, 보수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다.

    ‘누가 우리 회사의 위기를 관리할 것인가?’ 철학적 질문이 아니다. 지극히 실전적인 질문이다.

    위기관리 위원회를 둔다. 그 아래 위기관리팀을 붙인다. 핵심 대응 인력을 선별해 팀을 짠다. 구성원 하나하나에 정확한 역할과 책임을 준다. 그리고 이 사실을 사내에 공식적으로 공유한다. 그 조직과 사람들에게 권한을 준다. 임파워먼트다.

    권한은 공짜가 아니다. 권한을 받은 조직은 그 정당성과 생산성을 CEO에게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증명하지 못하는 권한은 거둬들여진다. 이 긴장이 살아 있어야 ‘누가’가 제대로 작동한다.

    어떻게 관리하는가?

    ‘누가’가 서면 다음은 이 물음이다. 위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걸 조직 안에서 하나씩 합의로 만들어 간다.

    품질 위기가 터졌다고 하자.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어떻게 정의하는가? 무엇을 우선하는가? 어떻게 끝내는가? 이런 ‘어떻게’를 위기관리 조직을 중심으로 미리 생각해 둔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철학이 정리된다. 미션과 비전, 가치와 방향이 구체적인 언어로 손에 잡힌다. 이런 평시 자산이 없는 회사가 위기 앞에서 무너진다. 대응의 근거를 찾지 못해서다. 그러니 준비 없이 임기응변에 매달리다 재앙으로 간다.

    방향을 미리 잡아 보는 것. 머릿속으로 위기를 한 번 겪어 보는 것. 그것이 ‘어떻게’의 준비다.

    무엇으로 관리하는가?

    ‘누가’와 ‘어떻게’가 익으면, 그제야 ‘무엇’이 보인다. 필요한 것들의 목록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조직 간 실시간 소통을 위한 비상연락망. 대책을 세우고 지시를 내릴 워룸. 정해진 방향을 정리한 매뉴얼. 분석과 벤치마킹을 위한 사례집. 여기에 트레이닝과 시뮬레이션, 드릴과 진단이 붙는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의 준비다.

    얼핏 단순한 순서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아니다. 이건 우선순위와 중요도의 순서다. 누가, 어떤 생각으로 위기를 보고, 무엇을 들고 관리할 것인가. 그 무게의 순서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앞의 준비가 제대로 됐는지는 몇 마디 질문으로 드러난다.

    첫째. “CEO가 자리에 없거나 유고일 때, 귀사는 위기를 관리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다면 누가 조직을 이끌고 최종 결정을 내립니까?” 이 질문 하나면 그 회사의 ‘누가’가 얼마나 단단한지 드러난다.

    둘째. “최근 귀사가 주목하고 분석한 경쟁사, 동종업계, 타업계의 위기 사례는 무엇입니까?” 이건 ‘어떻게’를 묻는 질문이다. 준비 안 된 회사는 남의 사례를 모른다. 알아도 조각으로 안다. 잘못 아는 경우도 많다. 이 답이 부실하면 ‘누가’도 부실하다는 뜻이다.

    매뉴얼이 있느냐, 얼마나 구체적이냐, 업데이트는 됐느냐. 이런 걸 굳이 묻지 않아도 된다. 앞의 몇 질문이면 그 회사의 준비 수준이 측정된다.

    근데 그건 그렇고… 왜?

    앞에서처럼 ‘누가’와 ‘어떻게’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회사가 많다면, 왜 그럴까? 준비하는 방법을 몰라서일까? 이유는 하나다. 순서의 문제도, 지식의 문제도, 예산의 문제도 아니다. ‘왜(why)’가 없어서다.

    지금까지 누가, 어떻게, 무엇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셋을 처음부터 움직이게 하는 힘은 따로 있다. 바로 ‘왜(why)’다.

    인간에겐 본능이 있다. 위협 앞에서는 싸우거나 도망친다. 싸움-도피 반응(fight or flight)이다. 그런데 이 본능은 위협을 위협으로 느껴야 켜진다. 목숨이 걸렸다고 느껴야 몸이 움직인다.

    기업 구성원은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목숨을 위협한다고까지 느끼지 않는다. 현장에서 보면 딱 이 정도다. 골치 아프다. 귀찮다. 그뿐이다. 그러니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평시에 위기를 준비할 마음이 생길 리 없다.

    이 본능을 켜는 것이 ‘왜’의 힘이다. ‘왜’가 살아 있고 큰 회사는, 준비의 절반을 이미 마친 셈이다. ‘왜’가 ‘누가’와 ‘어떻게’를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준비를 어렵다 생각할 시간에 먼저 ‘왜’를 생각하라. 강한 동기를 만들어라. CEO와 전 구성원이 위기를 두려워해 보라. 무서워해 보라. 목숨이 위태로운 것처럼 처절하게 싫어해 보라. 그러면 준비로 가는 길이 열린다. 의외로 간단하다.

  • 직원의 실수로 벌어진 위기인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번 사건도 그렇습니다. 이건 엄연히 저희 직원이 직무상 실수를 해서 발생된 사건입니다. 그에 대해서 회사가 해당 직원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 내부적으로 조치를 했고, 대표께서도 도의적으로 사과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계속 회사를 비판하는데요.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먼저 조금 냉정한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느끼시는 억울함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실수한 직원에게 책임을 물었고, 대표께서 도의적 사과까지 하셨는데도 비판이 이어지니 심하다 느끼실 만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위기의 책임은 실수한 그 직원 개인보다 오히려 회사 쪽이 더 큽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을 회사가 놓치고 있기에 비판이 잦아들지 않는 것이지요.

    영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이 제시한 ‘스위스 치즈 모델(Swiss Cheese Model)’이라는 유명한 사고 이론이 있습니다. 큰 사고가 터지면 사람들은 대개 실수한 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대형 사고는 결코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직에는 여러 겹의 방어선이 있습니다. 설계, 검수, 결재, 교육, 감독, 그리고 조직문화까지. 마치 구멍이 숭숭 뚫린 치즈를 여러 장 겹쳐 놓은 것과 같지요. 평소에는 한 겹이 뚫려도 다음 겹이 막아 줍니다. 그런데 이 구멍들이 어느 순간 일직선으로 정렬되는 순간, 위험은 그대로 관통해 사고로 터지고 맙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사고가 최일선 담당자의 손에서 터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검수와 결재, 교육과 문화라는 방어선을 ‘모두 통과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순간적 실수 뒤에는, 그 실수를 걸러내지 못한 여러 겹의 구멍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구멍들은 대개 경영진의 판단과 조직문화 속에 오래 잠복해 있던 ‘구조적 결함’입니다. 다시 말해 직원은 방아쇠를 당겼을 뿐, 그 총에 실탄을 채우고 안전장치를 풀어 둔 것은 회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위기관리는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누가 실수했는가’를 찾는 데서가 아니라, ‘왜 우리의 방어선들이 한꺼번에 뚫렸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됩니다. 전자는 실수한 직원 한 사람을 징계하고 대표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후자는 회사의 시스템 그 자체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지금 공중이 비판을 거두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번 사건이 ‘어쩌다 한 직원이 저지른 일탈’로 정리되는 순간, 똑같은 사고가 언제든 다시 일어나리라는 것을 말이지요.

    이번 위기를 우연이나 개인의 일탈로 정의해 버리면, 문제의 핵심인 내부 체계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습니다. 구멍 뚫린 치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다음 사고는 예정된 수순이 되지요. 반대로 회사가 ‘이것은 우리 시스템의 문제였다’고 직시하고 그 방어선을 하나하나 손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비판은 잦아들고 신뢰는 회복의 길로 들어섭니다.

    직원의 실수를 감싸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실수를 개인의 것으로만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최일선의 실수를 걸러내는 것이 바로 회사의 체계이고, 그 체계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 경영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을 잠시 내려놓고 회사가 스스로 더 큰 책임을 지겠다고 나설 때, 그 위기는 비로소 반복의 고리를 끊고 관리되기 시작합니다.

  • 원 보이스 가이드라인을 지금?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생산시설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는데, 언론 커뮤니케이션은 홍보실이 주관해 초기에 잘 진행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사내와 협력사 쪽 발언을 어느 정도 통제해야 하는 건데요. 창구일원화나 사적 커뮤니케이션 금지 관련한 원보이스 가이드라인을 즉시 배포해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훌륭하십니다. 위기 상황에서 원 보이스(One Voice)의 중요성을 내부적으로 공감하고 계신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체계를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어 공유하겠다는 판단 역시 훌륭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위기 한복판에서 사내와 협력사의 흩어진 목소리 때문에 추가적인 곤욕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지요.

    가끔 “가이드라인이 있어도 어차피 지켜지지 않는다”며 회의적인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은 생각입니다. 가이드라인이 있고 공유까지 되었는데도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과, 애초에 그런 것 자체가 없어 지킬 기준조차 갖지 못했던 사람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전자는 개인의 일탈 문제이고, 후자는 조직 체계의 부재 문제입니다. 따라서 그런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공유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정작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그 가이드라인을 공유하는 ‘시점’입니다. 미국 위기관리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카우보이는 달리는 말에 올라타려 하지 않는다.” 모든 위기관리 체계의 적시성(timing)에 대한 조언입니다. 지금 상황을 한번 그려 보시지요. 생산시설에서 이미 위기가 발생했고, 그 직후 언론 커뮤니케이션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내와 협력업체에서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와 정보들이 새어 나가기 시작하니, 부랴부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려는 상황인 것이죠. 이것은 이미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말을 뒤따라 뛰면서 어떻게든 올라타 보려는 사람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코 능숙한 카우보이의 모습은 아닌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가이드라인을 공유하는 적시는 언제일까요? 모든 위기관리 체계의 개발과 공유의 골든타임은 평시(平時)입니다. 위기가 발생하기 직전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럼 이미 위기가 터졌으니 이번에는 공유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유는 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예상하고 계셔야 합니다. 사전 교육이나 훈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위기 발생 후 가이드라인을 던지듯 공유하게 되면, 실제 현장에서의 실행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곤란한 것은, 일부 구성원들이 이를 함구령이나 입막음으로 해석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고도 또 다른 내부 불만과 잡음이라는 문제가 생기니, 공유하나 마나 한 결과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다시 강조 드립니다. 평시가 골든타임입니다. 일단 위기가 발생하고 나면, 그 시점에 새로 만들어 내놓는 모든 가이드라인은 상한 생선과 같아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경험은 공유하시되, 진짜 교훈은 따로 챙기십시오. 이번 위기가 정리된 직후, 가장 평온한 그 평시에 교육과 훈련을 곁들여 원 보이스 체계를 제대로 세워 두는 것, 그것이 다음 위기를 대비하는 가장 현명한 투자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Do와 Don’t 중 뭐가 더 중요하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회사 위기관리 매뉴얼이나 위기관리 책들을 보면 ‘해야 할 일(Do’s)과 하지 말아야 할 일(Don’ts)’들을 아주 다양하게 제안하고 있더군요. 저희가 볼 때에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서로 상반 관계에 있는 것 같고, 복잡해 보입니다. 그 둘 중 어느 쪽이 더 위기관리에서 중요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말씀처럼 위기관리에 대하여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정리된 분량은 방대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상당 부분 상반 관계에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뒤집으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반대로 읽으면 해야 할 일과 연결됩니다. 구조적으로는 동전의 양면이지요.

    그럼에도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주저 없이 하지 말아야 할 일(Don’ts)에 비중을 더 두겠습니다.

    만들어진 말이지만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백공불여일과(百功不如一過). 백 가지 공을 세웠어도, 과오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위기관리에서도 정확히 그렇습니다. 해야 할 일들을 아주 성실하게 모두 이행했다고 해도, 치명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나 저지르게 되면 상황은 크게 변하거나 더욱 악화됩니다. 위기 시 이해관계자와 상황 그 자체가 그만큼 엄중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사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산시설 사고로 직원과 하청업체 직원 여럿이 사망하는 위기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해야 할 일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기업 대표가 신속하게 장례식장을 방문하여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입니다. 반면 하지 말아야 할 일도 그만큼 분명합니다. 장례식장을 피하거나, 이해관계자들과의 직접 대면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보시죠. 대표가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이지만, 그 자리에서 유가족의 질문에 답을 못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현장에 나온 기자들의 질문에 준비되지 않은 말을 쏟아낸다면 어떻게 됩니까. 신속하게 달려갔다는 공은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오히려 방문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백공불여일과입니다.

    현장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예상하지 않은 것, 그에 대한 답을 정리하지 않은 채 자리에 나선 것, 이것들이 모두 하지 말아야 할 일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완성됩니다. 이는 순서의 문제입니다.

    기업 경영진에게 권하고 싶은 접근법은 이렇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먼저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하나씩 답을 정리하다 보면, 그것이 해야 할 일로 연결됩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먼저 이해하고 그것을 실제로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위기관리의 첫 단추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타운홀 미팅에서 한 약속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대표님께서 지난 해 말에 직원들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아주 난감한 질문을 하나 받으셨습니다. 당시 현장에서는 ‘관련해서는 조만간 정리해서 알려주겠다’하셨는데요. 수개월 지난 지금까지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요. 그냥 이렇게 있는 것이 나을지 어떨지 모르겠네요?”

    컨설턴트의 답변

    타운홀 미팅 현장에서의 “조만간 정리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는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수개월째 지켜지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는 것이 문제고요.

    불교 철학에서 열반(涅槃)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불이 꺼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꺼짐은 억지로 불을 끄는 것이 아닙니다.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더 이상 장작을 던져 넣지 않는 것, 그것이 열반에 이르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지금 상황에 대입해 보면, 흐르는 매 시간이 바로 장작입니다. 대표님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매 하루가, 그 불꽃에 새로운 장작 한 개비를 던져 넣는 행위와 같습니다.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직원들은 그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조직 내부에서 그 침묵은 “역시 대표는 말만 하는 사람”이라는 해석으로, 혹은 “그 질문이 불편했던 것”이라는 추측으로, 서서히 신뢰의 균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이미 내부 신뢰 훼손이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답이 완전하지 않아도 커뮤니케이션해야 합니다. 완벽한 답을 기다리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해법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을 대표님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고 싶은 것입니다. 지금 가진 답이 70%라면 70%를 전달하고, 나머지 30%는 어떻게 찾아가겠다는 로드맵을 함께 제시하면 됩니다. 불완전한 답에 성실한 태도가 더해지면, 그것은 완전한 답보다 더 강한 신뢰를 만들어 냅니다.

    둘째, 함께 답을 찾자고 해야 합니다. 대표님 혼자 답을 찾으려고 수개월을 보낸 결과가 지금입니다. 다른 방법을 써야 합니다. 직원들에게 함께 방법을 고민하자고 제안하십시오. “나는 여러분의 질문을 계속 생각해 왔습니다. 혼자서 해결하려 했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그 답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이런 메시지는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리더십의 언어입니다.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가를 투입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것 역시 진지하게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신호로 직원들은 받아들입니다.

    셋째, 다음 커뮤니케이션 시점을 스스로 선언하십시오. 지금 당장 모든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최소한 “언제까지 어떤 형태로 다시 업데이트 드리겠다”는 약속이라도 해야 합니다. 데드라인이 있는 약속은 침묵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 데드라인을 스스로 지키는 행위가 쌓일 때, 신뢰는 회복됩니다.

    지금 위험한 것은 그 질문 자체가 아닙니다. 그 질문 이후의 침묵입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신뢰는 조용히 소멸하고, 조직 안에는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리더’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다음 타운홀 미팅에서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습니다. 이미 답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짜 위기입니다.

    열반은 불을 억지로 끄는 것이 아닙니다. 장작 던지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십시오. 그것이 유일하게 장작을 내려놓는 방법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이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는 언론문의에 대한 대응 규정이 아주 정교하게 짜여 있습니다. 따라서 임직원이 공식 창구를 거치지 않고는 개인적으로 기자와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적 커뮤니케이션 금지 규정이 가장 강력한 규정인데요. 사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의미가 더 넓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이유는?”

    컨설턴트의 답변

    좋은 질문입니다. 현재 사적 커뮤니케이션 금지 규정이 ‘임직원 개인이 회사의 허락이나 지시 없이 기자와 직접 접촉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취지라면, 그 자체로는 틀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이 수준의 규정을 두고 있고, 나름의 효과도 있습니다.

    언론 대응 창구를 단일화하고, 임직원이 개별적으로 기자와 접촉하는 것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 있는 규정입니다. 그런데 사적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를 접촉의 주체에서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로까지 넓혀 보면, 현재 규정이 실제로 막아야 할 것을 아직 막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디어트레이닝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고위 임원에게 “이 사안에 대한 전무님의 개인적인 생각은 어떠십니까”라고 물으면, 열에 열 모두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라고 방어합니다. 여기까지는 임원분들이 익숙해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이번 문제는 왜 발생한 것일까요?”라고 물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 이유는…”이라며 이후 본인의 해석과 판단에 따른 이유들을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하십니다. 본인은 회사의 공식 입장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같은 질문을 다른 임원들에게 격리된 상태에서 각각 물어보면, 답변이 제각각이고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밝히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실제로는 합의되지 않은 개인의 해석을 회사의 공식 메시지처럼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임원마다 각기 다른 내용으로.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임원들은 각자가 진심으로 회사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믿으면서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그 믿음의 근거가 내부의 합의와 공유가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해석에 있다는 것입니다. 합의되지 않은 선의는 때로 합의된 악의보다 더 큰 혼란을 만듭니다. 기자 입장에서는 같은 회사의 임원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기사 소재가 됩니다.

    이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사적 커뮤니케이션은 접촉 주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메시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규정은 ‘내부에서 합의되고 공유된 메시지를 중심으로만 커뮤니케이션한다’는 원칙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합의와 공유를 거치지 않은 메시지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상대가 기자든 직원이든 기관이든 정부든 노조든 지역주민이든, 모두 사적 커뮤니케이션으로 보아야 합니다. 모든 이해관계자를 향한 커뮤니케이션에 공히 적용되어야 하는 기준입니다. 규정의 핵심은 접촉의 주체가 아니라 메시지의 내부 합의와 공유 여부에 있습니다. 그 두 가지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예상질의응답팩은 대체 왜?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이번 이슈로 사과 기자회견을 준비할 때 홍보팀이 기자들이 질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에 하나 하나 답변을 달아 ‘예상질의응답팩’이라는 걸 만들어 왔습니다. 대표인 제가 보기에는 실제로 그런 질문을 기자들이 할 것 같지 않습니다. 나오지 않을 질문을 준비한다? 좀 이상한 거 아닌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예상질의응답팩의 목적과 효과 등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상질의응답팩의 개발은 기업 커뮤니케이션을 앞둔 모든 경우 필수적 업무입니다. 준비 없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은 ‘안전 로프 없이 번지를 뛰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예상질의응답팩은 그런 생명줄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홍보실이 여러 루트와 분석을 통해 기자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논점들을 정리합니다. 그 논점간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그 순서에 따라 관련 부서들과 함께 질문과 답변을 꼼꼼하게 정리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여기에서 답변을 종합하고 편집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회사의 핵심 메시지라는 것도 도출됩니다.

    많은 기업 홍보실무자들이 이 과정을 반대로 진행해 업무를 어렵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핵심메시지를 만들어 놓고, 그에 따라 질문에 답을 끼워 넣는 것이지요. 하지만, 먼저 우선순위에 따른 질문에 하나 하나 답을 달아 정리해 보고, 그 중 중요하고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답변들을 추출해 모으면 그게 바로 핵심메시지가 됩니다. 업무가 훨씬 빠르고 쉽게 되지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왜 기자들이 물어보지 않을 질문에도 답을 만드는 수고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을 만드는 그 과정은 홍보실만의 업무 과정이 아닙니다. 발생한 이슈에 관련된 모든 부서들이 예상되는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함께 고민하고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플랜은 아무것도 아니고, 플래닝이 전부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듯 그 고민과 합의의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해당 이슈에 대한 회사(모든 부서 구성원)의 핵심 포지션과 메시지들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위에서 메시지를 정해서 아래로 공유하는 탑다운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훨씬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내부의 메시지를 만들게 되니까요.

    결국 예상질의응답팩은 외부를 넘어 내부 커뮤니케이션 목적 또한 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정 이슈가 갑작스럽게 발생했을 때, 회사 내부 관련 부서들은 각기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회사 공통의 포지션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 해 할 것입니다. 거래처나 각종 이해관계자, 파트너, 고객들에게 어떻게 이 상황과 회사의 노력을 설명해야 할지도 잘 정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를 이슈발생 시 혼돈(chaos) 단계라고 부릅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은 그런 혼동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정렬시키는 아주 좋은 도구입니다.

    기자들이 그러한 여러가지 질문을 실제로는 묻지 않을 가능성이 높더라도, 그런 모든 질문에 회사가 준비된 답변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혼돈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모두 공유하는 것이지요. 최악의 질문에도 준비되어 있고, 기자들의 어떤 시각에도 대응 가능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위기관리는 그런 준비 자체를 의미합니다.

    관련 개념 · 예상질의응답팩이란 무엇인가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저희 마음대로 안 되네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도 평시 나름대로 열심히 위기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대응팀이 훈련도 하고 여러 준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위기가 발생되니 제대로 잘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위기관리를 잘 하는 기업들은 어떤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요? 저희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컨설턴트의 답변

    기업이 위기와 같은 부정적 상황을 마주했을 때, 과연 스스로 통제가능한(controllable)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통제가능한 것을 스스로 통제할 때,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먹은 그대로의’ 결과가 나오게 될 텐데요. 그 통제가능한 것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완전하게 통제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위기관리가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기업의 위기 시 기업을 구성하는 임직원들은 통제가능한 자산일까요? 평소 직원 만족도가 그리 높았는데요? 자사 담당기자들은 통제가능한가요? 그렇게 친한 기자들이 많았는데 말이죠.

    오래된 거래처나 대관에서 담당하던 규제기관과 국회는 어떤 가요? 평소 자문 교수들과도 그리 좋은 관계를 다져왔다 생각했는데, 그 중 누구 하나 회사를 지지하는 언론 기고문을 써주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더군요. 소셜미디어로 대변되는 온라인 여론은 어떤 가요? 통제는 말그대로 언감생심 아닌가요? 실제로 위기 시 주변을 돌아봤을 때 통제 가능하다는 느낌이 드는 대상이나 주제를 찾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자사의 ‘커뮤니케이션’은 위기 시 그나마 통제 가능하다고 보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정확하게는 자사의 맥락 이해, 공감, 전략에 기반한 메시지와 타이밍 같은 ‘커뮤니케이션 시도 행위’가 통제 가능한 것이지요. 그 메시지가 전달되어 커뮤니케이션 목적이 달성 되는가는 또 다른 의미입니다. 커뮤니케이션 전반도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지요. 통제가능한 영역보다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 훨씬 크니, 이조차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 시 그나마 스스로 통제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상황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관리에 보다 집중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 부분들까지 포기해 버린다면, 위기관리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통제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상황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관리를 당연히 제대로 해 위기관리 목적에 한발자국이라도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이 곧 위기관리라고 불리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여러 기업 경영진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대상과 주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곤 합니다. 통제가능 할 수 있는 대상과 주제에만 집중하는 데에도 체계와 역량이 모자람에도, 마음은 온통 통제 불가능한 쪽에 가 있습니다. 물론 회사 스스로 그것이 통제 가능하다 믿는다면, 통제 시도를 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있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핵심은 무엇이 통제 가능한지, 통제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한 분별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통제 희망과 통제 가능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희망보다 가능의 영역을 평소에 늘려 놓는 것, 이를 위한 꾸준한 시도와 역량 구축이 비법입니다. 즉, 마음대로 되지 않을 영역을 확인해 아주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는 준비가 중요하다는 의미이죠.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단어와 표현을 전략적으로?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홍보임원인 저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메시지에 어떤 전략적 단어와 표현 그리고 맥락을 담아야 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사과나 해명문에서도 회사가 어떤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니까요. 전략적 단어와 표현의 활용 어떻게 보시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전략적 단어와 표현 그리고 맥락의 활용이 커뮤니케이션의 주축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 가치가 빛을 발합니다. 우리는 “‘아’다르고 ‘어’다르다” 이야기합니다. 위기 시 기업의 공식 메시지에 적확한 단어와 표현이 담기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볼 주제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맥락과 그 수용자 반응에 대한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화자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면, 그것이 수용자에게 정해진 반응을 만들어 낸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총알 이론’입니다. 이제는 그런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기업이 특정 위기를 맞아 자사 입장과 생각 그리고 대책을 여러 수용자에게 이야기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시죠. 해당 상황에 대해서는 수용자가 1차적으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개인별로 이미 그 상황에 대해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는 단계지요. 맥락이 일부 생겨 버린 겁니다.

    이때 그 기업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실행됩니다. 당연히 기업은 새롭게 형성된 맥락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가장 안전 합니다. 하지만, 그 맥락을 제대로 이해 못하거나, 무시하면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목적으로 특별히 고안된 단어나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용자 눈이나 귀에 거슬리는 메시지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그런 단어나 표현은 로펌, 변호사 또는 사내 특정 임원이 전략적 선택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고안해 낸 것입니다.

    물론 확정적, 극단적, 과도한 단어나 표현은 경계하고, 부정적 표현은 가능한 중립적으로 바꾸어 사용한다 등등의 일반적 커뮤니케이션 스킬 범위에 있는 선택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외 특별하게 ‘고안된’ 단어나 표현은 대부분 수용자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질감 때문이죠. 더 큰 문제는 그 이질적 단어나 표현이 수용자로 하여금 해당 기업의 숨겨진 의도를 추측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부정적 추측이 불필요한 단정과 평가로 이어져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방해하는 새로운 상황이 생산됩니다.

    무엇이든 과도하거나 넘치면 모자람보다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법입니다. ‘일반적’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누구나 공히 이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평범하거나 품질이 낮다고 봐서는 안 됩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사과문이나 해명문을 포함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모든 메시지는 누가 봐도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수용자 인식과 느낌에 기반하고,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인지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합니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고안된 창조적 단어나 표현을 가미하는 순간, 또 다른 상황을 잉태하게 됩니다. 곧, 반(反)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이죠.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소통에 대한 강박?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는 평시에도 항상 고객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 것을 경영방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근데 부정이슈나 위기 때에도 실시간 소통해야 한다는 윗분들 생각이 강해서 고민입니다. 기본적으로 소통이 나쁜 것은 아닌데, 이슈나 위기 시에도 그런 소통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나은 건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소통을 여기에서는 편의상 커뮤니케이션이라 부르겠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상황에서도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그 자체로 수단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소통(커뮤니케이션)만능’ 열풍이 불면서 문제나 갈등을 커뮤니케이션으로 풀어야 한다거나, 풀 수 있다 주장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기업 이슈나 위기관리 분야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만능 분위기는 계속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많은 경영진이 이슈나 위기 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당면한 문제를 풀 수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무언가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비책이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

    평시에도 그런 오해는 계속됩니다.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나는 것이죠. 사내 많은 문제를 일단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아 생긴 것으로 전제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면 그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강박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 어떤 중대 이슈나 위기도 커뮤니케이션으로 풀린 케이스는 없습니다. 매번 강조하지만, 커뮤니케이션으로만 단순 해결된 문제였다면, 그것은 중대한 이슈나 위기가 아닙니다. 모든 문제, 이슈, 위기는 커뮤니케이션으로 해결된 다기 보다는 행동으로 해결됩니다.

    기업 부정 이슈나 대형 위기에 있어 해당 기업이 리더십을 가지고 적절한 행동을 해야 문제는 해결됩니다. 인간의 행동에는 자신의 속마음, 진실, 의지, 생각에서 심지어 무의식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업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관계자와 공중은 기업의 행동을 봅니다. 커뮤니케이션은 그 행동 속에 담겨있는 많은 의미와 진실을 그들에게 전달하여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 일 뿐입니다.

    적절한 행동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표현 그대로 기만입니다. 회사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은 없이,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겠다는 생각에 가치를 두는 직원은 없을 것입니다. 이슈나 위기에서 불거진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행동을 미룬 채, 커뮤니케이션에만 열중하는 기업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커뮤니케이션 강박은 문제입니다.

    미국 PR계 비조(鼻祖) 중 한명인 아서 페이지(Arthur Pag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PR이란 90퍼센트 옳은 일을 한 뒤, 10% 그에 대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반복 강조하는 소통(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90퍼센트의 노력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평소 행동으로 옮기는데 투자하십시오. 이후 그와 관련한 이슈나 위기가 발생된다면, 평소 해왔던 옳은 행동에 대하여 10퍼센트만큼만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하십시오. 사내에서도 90퍼센트 행동을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집중하십시오. 그런 경우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나머지 10퍼센트로도 충분합니다. 이와 다른 소통강박은 절대 경계하셔야 합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