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3월 272009 Tagged with , , , , , 2 Responses

What are you saying?

혹시나 싶어 화장실을 다녀오며 주방으로 가서 물컵을 좀 달라고 말하면서 하얀 가루를 퍼낸 통을 보니 진짜 화학조미료였다. 당장
식당을 나오고 싶었지만 이미 시킨 음식을 취소할 수 없어서 그냥 먹었으나 속이 이상했다. 맛있다고 먹는 아이들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화학조미료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다시는 그 식당에 가지 말라고 말해줬다. [
부산일보, 독자마당]



예전 소비자고발을 통해 중국음식점들의 비위생문제와 함께 화학조미료 과다사용문제들이 이슈화 된 적이 있다. 위의 독자기고는 한 동네 음식점에서 화학조미료를 아이들이 먹을 국수에 퍼 넣는 장면을 목격하고 놀란 독자의 글이다.

언제부터인가 화학조미료는 거의 공공의적 1호가 되었다. 30여년전만해도 마법의 음식 재료였던 화학조미료가 이제는 청산가리 수준의 극약으로 인식되고 있다.

화학조미료를 과다 사용하는 것은 물론 화학조미료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음식은 쓰레기 취급을 받기까지 한다. 지난 수십년간 화학조미료를 사용해 가며 음식을 해 오셨던 어머니들과 할머니들도 이제는 자식들에게 ‘조미료 쓰지 말고 음식해라”하신다. 심지어 아이들에게 조미료 음식을 먹이는 엄마들은 ‘무식한 엄마’로 치부 받는다.

화학조미료는 식약청에서 인정한 음식용 조미료다. 그런데도 이러한 이슈가 발생하고 화학조미료 생산업체가 독극물 제조사가 되고,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마약제조자 처럼 손가락질 받는 이 현실은 왜 일까?

이 화학조미료를 만드는 기업들은 과거와 현재 어떤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건가? 자신들에 대해 어떤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걸까?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싶어 하는 걸까?

위기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족과 실패에서 오는 게 아닐까?

3월 132009 Tagged with , , , , , , , , , 9 Responses

체험과 insight의 상관관계

이번 학기에는 대학원 하나와 학부 하나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두 강의 모두 ‘위기관리’에 대한 강의다. 사실 ‘위기관리’… 더욱 정확하게 표현해서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미국 대학원 시절에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 강의를 들어 보았지만…그 때도 상당히 아카데믹했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보통 이루어지는 케이스 스터디도 학생들에게는 별반 큰 insight를 오랫동안 제공하지는 못한다.

케이스 스터디가 가장 좋은 학습 방법들 중 하나이라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위기관리의 경우 다양한 성공 케이스들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별반 배움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보통 부러움과 배움을 혼동하는 데 이런 성공 케이스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지 바로 내가 써먹을 수 있는 배움에는 못 미치기 때문이다. (모든 성공 케이스들을 보면 잘 된 것들에게는 잘 될만한 환경이 존재했다)

최근들어서는 차라리 성공 케이스에 대한 스터디 보다는 실패 케이스에 대한 스터디가 좀더 배움을 주는 듯 해서 몰입 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라면 이 보다는 낫겠다’는 깨달음을 주고 싶은거다. 그래야 실제 위기와 마주쳤을 때 ‘최소한 이러지는 말자…’하는 가이드라인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제는 학부 강의를 진행했는데, 개강 이후 2주간 고민이 많았다. 학생들이 일단 너무 어렸다. 위기관리라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듣는 학생들도 있을만 했다. 이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진행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아주 어렵고 복잡하고 답답하고 어지러운 케이스를 하나 던져주고 브리핑을 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학생들을 회사측과 각 이해관계자 그룹으로 나누었다. 일정기간 각 이해관계자들의 생각들을 들어보고, 회사측의 입장을 이야기 해보라고 했다.

마치 공청회 같은 분위기였지만, 학생들은 참여라는 패러다임에 곧 익숙해 했고, 자신의 생각들과 메시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상호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면서 그들은 그 케이스 자체에 몰입하게 되었고, 각 이해관계자들의 역할에 공감 하게 되었다.

얼마나 자신들이 전략적이지 못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지, 왜 내가 이렇게 성격이 급했었는지, 왜 이런 말은 우리 모두를 화나게 하는지 등에 대해 각자 경험을 하면서 insight들을 찾아나가는 모습이었다.

한시간 가량의 시뮬레이션 동안 이들 어린 학생들의 커뮤니케이션 유형이 실제 대기업의 위기 관리 커뮤니케이션 유형과 99% 이상 일치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주 정확한 실제감이었고, 결론적으로 대기업들도 이들 어린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본능에 충실한’ 커뮤니케이션만을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린 학생들을 통해 얻은 나의 insight)

학생들은 경험을 통해 insight들을 스스로 발굴했고, 공유했다. 느낌이 곧 학습이다. 다음주에는 또 다른 케이스를 가지고 똑같은 커뮤니케이션을 진행 할 예정이다. 이들이 성장하면서 남보다 조금만 더 전략적인 메시징 스킬과 공감의 패러다임을 평생 가져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5월 082008 Tagged with , , , , , , , , , , , , , 0 Responses

위기관리에서의 포지션

조선일보에 광우병 관련으로 기고를 하나 했는데, 기고문 담당자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기고문 내용중에서 ‘핵심 메시지들이 과연 적절한 포지션을 담고 있었는지도 의문이다’라는 문장 표현을 읽고 ‘포지션’이라는 단어 옆에 굵게 (?)표시를 해서 그 의미를 물어왔다.

사전적인 의미로 포지션(position)이란: <네이버 사전>

라고 한단다. ‘경기등에서 선수의 위치’라는 정의가 눈에 띈다. 위기관리에 있어서 적절한 우리말로 한다면 ‘입장’이 되겠다. 어떤 부정적인 이슈나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해당 기업이나 조직이 견지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위기관리 담당자들은 Position Paper, Position Statement, Position Pack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는 여러가지 ‘입장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자료’들을 만들게 된다. 이는 꼭 외부적인 용도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다 함께 아우르는 ‘입장’이다.

기자들이 물어보는 ‘정부의 공식입장은 어떤것입니까?”할 때 이 ‘입장’이라는 것과도 뜻이 맞닿는다.

위기가 딱!하고 터지면, 일단 위기관리팀이 소집이 되고,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 초기 시간을 많이 지체하게 된다. 팀의 구성과 평소 시뮬레이션을 통한 반복적인 훈련과정을 통해 소집과 상황파악 분석의 절대 시간을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건너뛸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아주 중요한 단계다.

모든 상황을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하고, 이 핵심 이슈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반응들이 정리가 되면,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진행해야 하는 것인 포지션의 정리다. 입장정리다. 우리 회사가 어떤 입장을 견지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 포지션에는 정답이 없다. 100개의 위기상황들 중 하나도 똑같은 상황들은 없다. 그 위기를 마주한 기업이나 조직의 상황에도 결코 100% 공통점은 없다. 따라서 이럴 때는 이런 포지션이어야 한다는 객관적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지션에 대한 중요한 원칙은 분명 존재한다.

1. 다수 stakeholder를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포지션을 정해라.
2. 될 수 있으면 같은 편에 서라.
3. 일관되게 지켜나가라.
4. 통합적으로 관리해라.
5. 그 포지션을 직접 눈으로 보여줘라.

이러한 원칙이 위기시 기업과 조직을 살리는 포지션의 근본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나 조직들은 이를 이해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포지션을 택한다.

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포지션을 택할까? 그 이유는 여러가지 이지만, 내 경험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corporate mantra의 공유 정도다. 실현 정도다. 평소에는 거의 병적으로 떠들다가도 위기가 터져버리면 헌신짝 처럼 mantra를 내 던지는 기업들이 바로 이 실패의 초이스를 하는 곳들이다.

그래서 corporate mantra가 위기관리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광우병 논란에 있어서 초기 정부의 포지션은 무엇이었을까? 정부는 초기에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루머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필요한 반대입장을 확산 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일부 국민들을 관리하고 사실관계를 이해 시키면 우리의 수입 재개 결정을 대부분 찬성할 것이다.”는 생각에 기반해 그들의 포지션을 정했던 듯 보인다.

요약하면 ‘우리는 성의껏 결정을 내렸다. 문제 없다. 한우농가들도 지원대책을 강구하고 있어 문제없다. 문제는 일부 국민들이 일으키고 있다’는 포지션이었다. <사실 일반 기업들의 대부분도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초기에 이런 포지션을 정한다, 그러고 보면 정부만을 욕할 것도 없다.>

이 포지션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해결은 간단해 보인다. 문제가 뭐가 있어…할꺼다.

이 포지션의 맹점은 정부의 상황분석에 오류에 기반한다. 온라인상에서 정보의 확산성을 미처 정확하게 간파 예측하지 못했었던 거다. media 1.0의 시각에서 media 2.0 환경을 해석했기에 이런 초기 포지션이 정해진 듯 하다.

정부는 초기 이런 포지션을 실행으로 보여주었다.
 
<광우병이 복어독 수준이라니..> 연합뉴스 경제 | 2008.04.22 (화) 오후 3:34
靑 “쇠고기 수입은 지난 정부때 일 마무리한 것”  뉴시스 정치 | 2008.04.29 (화) 오후 3:58
[기자의 눈] 설익은 쇠고기 발언… 광우병은 서민 몫? 한국일보 경제 | 2008.04.29 (화) 오전 2:57
정부, “미국 쇠고기 믿어도 된다”(종합) 머니투데이 경제 | 2008.05.02 (금) 오후 4:53
[일문일답]”과학적 근거에 의한 쇠고기 수입” 머니투데이 경제 | 2008.05.02 (금) 오후 6:51
정운천 농림수산장관 “광우병 공포 선동 때문” 조선일보 사회 | 2008.05.02 (금) 오전 9:01

이런 분석적 측면에서 정부의 커뮤니케이션 주체들은 자신들의 포지션에 나름 충실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해관계자들이 원하는 포지션 보다는 정부가 원하는 포지션을 택했다는 것과 될 수 있으면 같은편에 서라 했는데 반대편에 선 것이 오류라면 오류다. 큰 오류다.

그 포지션의 영향은 더욱 더 논란을 키웠고, 정부 포지션의 변화는 후반기에 들어 대통령 발언을 시작으로 180도 선회 되었다. 앞에서 지적한 두가지 원칙을 뒤 늦게 나마 주워 들었다. 처음부터 이런 포지션이었으면 그렇게 큰 문제는 없었을 텐데 포지션 전략에서 안이했다.

다시 기업으로 돌아가 논의를 해 보면, 보통 위기관리팀이 일정시간 분석과 논의를 거쳐서 합의된 포지션을 결정한다. 이 포지션을 결정할 때는 여러가지 포지션의 옵션들을 앞에다 띄워 놓고, 하나 하나의 pros & cons들을 분석 한다. 이를 통해 phase별로 position을 달리 갈 것인지, 아니면 몇개의 포지션을 섞어서 그 범위를 넓히거나 줄일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강력한 포지션을 가지고 끝까지 가볼 것인지 등을 결정한다.

보통 하나의 강력한 포지션으로 위기상황에 대처해 밀고 나가는 케이스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예로 들자면 수년전 모 식품사의 유기농 녹즙 논란이나, GM 콩 사용 논란등에서 보여준 그 회사의 포지션이 그 예라고 할 것이다. 자사의 결백함을 철저하게 믿을 때만 선택된다. 그러나 리스크가 크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phase를 나누어 단계적인 포지션을 선택한다. 그러나 앞서의 기본 원칙은 꼭 지키는 범위내에서 포지션을 정할 때만 성공한다.

일단 포지션이 결정되면, 이에 근거해 holding/official statement을 만든다. 또 이에 근거해 충분한 분량의 세부적인 expected Q&A 또는 FAQ를 만든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주체들이 통합적으로 공유한다. 그리고 이 범위내에서 커뮤니케이션 한다. 이 만큼 실행에서도 벽에 부딪치지 않으려면 애초 이 포지션은 ‘완벽’해야 한다. ‘모순’이나 ‘헛점’ 그리고 ‘비논리적’인 포지션이면 실패는 따논 당상이다.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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