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 기고문]
스트리트 파이터들의 위기관리 이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부서가 새롭게 위기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되거나, 위기관리를 실행하는 부서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는 실무자들은 일단 서점에서 위기관리 교과서를 찾아 읽는다. 국내외 학자들의 책을 가장 먼저 들쳐 본다. 일부는 해외 실무자들의 경험 서적을 주문해 읽기도 하지만, 아직도 위기관리 실무자들은 1980년대 이후 쓰여진 케이스와 교과서를 기반으로 위기관리에 대한 개념을 접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위기관리 실무자들은 대부분 이론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토로한다. 많은 케이스들이 오래 된 해외 사례라는 것도 아쉬워한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한국적 위기관리 방법론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질문한다. 일부 적극적인 위기관리 실무자들은 타사나 경쟁사 케이스를 분석해 보면서 실무 인사이트를 얻으려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각 기업별로 사정과 상황이 다르다는 현실적 토로는 이어진다.
위기관리에 있어 정답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일선에서 위기관리에 상당시간을 보내는 기업 내부 담당자들의 평소 이야기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기회는 필요하다. 그 이야기들을 ‘스트리트 파이터들(street fighters)의 위기관리 이론’이라 이름 지어 정리해 본다. 일선에서 위기와 싸우는 실무자들의 이야기이니 일부 상식과 다른 이론(?)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미리 감안하고 보자.
사전 위기관리보다 사후 위기관리가 더 편하다. 때때로 사후 위기관리가 더 싸다.
사전 위기관리처럼 경계가 넓고, 여러 부서가 얽혀 있는 주제가 없다. 정확하게 사내에서 누가 위기관리 매니저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정해져 있지 않다. 업무상으로는 정해져 있다 해도 권한이 없거나 약하다. 사전 위기관리라는 개념은 좋은데, 일단 위기가 터지면 사전에 진행했던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다. 10년에 한번 발생될까 말까 하는 위기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진단하고 대응 훈련하고 매뉴얼을 수정해 가는 것도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차라리 실제 위기가 발생되면 그 때가서 관리 노력을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저렴할 수 있다.
위기관리 보다 사과가 더 쉽다. 때로는 사후 사과가 더 효과적이다.
위기의 핵심 분야를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상당한 예산이 든다. 개선이나 재발방지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일단 위기관리를 위해 사과를 하고 개선과 재발방지 약속은 하지만, 대체 누가 그 예산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인가는 항상 숙제다. 사전에 그런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어서 위기관리를 한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된다. 그래서 위기가 발생되면 사과가 가치를 빛낸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잘하건 못하건 그 평가는 결국 정신승리에 기반한다. 때로는 멋진 정신승리가 진정한 위기관리 보다 낫다.
위기관리를 고생해서 했는데,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위기관리 문제를 지적하면 그보다 억울한 게 없다. 위기 보다 억울한 게, 위기관리에 대한 잘못된 평이다. 반대로 제대로 위기관리를 한 것이 없는데도, 여기저기에서 위기관리 잘했다는 평을 들을 때도 있다. 그런 경우 경영진부터 사내 분위기는 확 바뀐다. 그래서 일단 위기가 발생되면 위기관리를 하고 그 내용을 몇몇 기자에게 알려줘 긍정적인 평가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그걸 통해 VIP께서 잘했다 한마디 하면 그 위기관리를 성공한 것일 수 있다.
망신이나 수치스러움은 길게 보면 순간이다. 견디는 게 곧 위기관리인 경우도 많다.
맷집을 기르라는 말도 하지 않나? 일단 거의 모든 위기는 발생되면 일정기간 각종 비판과 욕설을 받는 것은 기본이 되었다. 그런 통과의례가 없으면 사실 위기도 아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망신이나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하는 기업은 더 위험 해 질 수 있다. 그렇다고 기업이 뻔뻔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참고 일정 기간을 견디라는 의미다. 외부의 부정적인 여론에 너무 단편적으로 반응하다 보면 전략적이지 못한 성급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논란이나 논쟁은 가만히 있으면 3일을 못 넘긴다. 그래서 위기관리의 시간은 우리편이다.
이슈는 이슈가 밀어낸다. 위기는 다른 위기로 대체된다. 물론 논란이나 논쟁에 대해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유효할 때도 있지만, 그것의 성격을 보고 일정 시간 지켜보는 것이 유효할 때도 있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매시간 계속해서 새로운 논란이 이어지고, 잊혀간다. 지나고 보면 그때 그냥 그 논란을 좀 더 지켜보았더라면 지금보다 결과가 나았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논란이나 논쟁에 있어 시간이 우리편이라는 생각을 좀 하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위기 때 평판을 따지는 건, 불 난 집에서 꽃병을 챙기는 짓이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일단 살아남아야 나중의 위기도 관리할 수 있고, 명성이나 평판도 회복할 기회가 온다. 특히 평판이나 명성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일단 위기가 발생되면 명성이나 평판은 훼손이 된다. 그 훼손 수준을 어느 정도에 머무르게 하는 가는 신경 써야 하겠지만, 너무 결벽증을 가지면 위기관리 과정만 힘들다. 어떻게 해야 살아 남아 연속성을 가지고 갈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명성과 평판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방법일 수 있다.
12살 때 앓았던 감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 세월이 약이다. 회복가능성도 길게 봐야 한다.
실제 여러 케이스를 보아도 해당 기업이 오래전 경험했던 위기를 공중 누구나 정확하게 기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위기가 있었지 정도의 인식은 있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자초지종에 대해 기억하는 경우는 적다. 일단 기업 위기는 10년 정도 지나가면 상당부분 잊혀지고 사람들의 인식속에서 사라진다. 인터넷 검색을 일부러 해봐야 알게 되는 케이스들도 많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그럴 때 쓰는 말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집중하는 게 좋은 전략일 수도 있다.
위기로 죽은 기업은 없다. 똑같은 위기를 여러 번 만들며 죽어가는 기업은 있어도.
기업은 사업을 영위하면서 많은 위기를 경험한다.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건, 타의에 의한 것이건 위기가 없는 기업은 없다.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위기를 경험하지만, 그 위기 한두번으로 회사가 망하거나, 형편없게 되는 경우는 매우 적다. 물론 유사한 위기를 종종 연이어 만드는 기업의 경우는 달리 보아야 한다. 핵심 사업보다 문제 이미지로 더 유명해진 기업도 있다. 그렇지만, 펀더멘털이 강한 경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하지는 않는다. 오명이 기업을 죽이지 까지는 못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쓰나미 같이 밀려오는 부정기사. 예전에는 소나기는 맞고 가자, 지금은 구명정에 매달려 일단 살고 보자.
요즘에는 위기가 발생되면 언론 기사 모니터링도 힘들어 졌다. 기사가 일단 수백개가 넘어가면 홍보실에서 취합이나 분석도 불가능 해 져 버린다. 거기에다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여론까지 모니터링 해 보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까지 실무자 사이에서 든다. 예전에는 부정기사나 극단적인 기사들에 대해서는 해당 기자에게 연락을 취해 수정이나 삭제까지도 노력해 보고 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한두개면 모르지만, 쓰나미가 오면 일단 살아남을 길을 찾는 게 맞다. 중요한 모니터링 이외에 소모적인 모니터링은 일단 접어야 할 때도 있다.
위기유발 의지를 이기는 위기관리 역량은 없다. 자사를 제대로 보고 위기관리 체계나 방식도 바꾸자.
다른 회사에서 이렇게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그 회사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다. 그게 부러워서 우리도 똑같이 그 시스템을 복사해 온다고 실제 위기에서 유효하다는 보장은 없다. 보기에는 좋아도 우리 회사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 회사에서는 상식이라 보는 게 우리 회사에서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그 회사 VIP는 그런 방식을 좋아할지 몰라도, 우리 회사 VIP는 그런 방식을 선호하지 않을 수 있다. 일단 위기유발 의지가 사내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측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수준에 따라 사전과 사후 위기관리의 비율을 회사에 맞추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위기 때 젠틀해야 한다는 강박도 버려야 할 때가 있다. 이해관계자 같은 소리 말자. 아군과 적군이 있을 뿐.
위기가 발생되었을 때 무조건 이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만약 문제를 제기하는 상대가 악의적이고 계획적이라면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도 있어야 한다. 기업은 더 이상 강자가 아니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 악의를 가진 공격적 개인 한명에게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개인이 회사보다 빠르고 더 자극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능하다. 심지어 언론 플레이까지 더 잘하는 경우도 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그들과 맞서 싸울 수 없다면, 완벽하게 위기관리에 성공하기도 힘들다. 싸울 수 있는 개념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여부가 중요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해라. 돈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그건 차라리 쉬운 위기관리다.
우리는 광고 안 한다. 우리는 돈으로 기사를 거래하지 않는다. 기업이 저널리즘에 영향을 주려 해서는 안된다. 자사에게 유리한 여론을 위해 스핀(spin) 활동을 해서는 안된다. 이런 교과서적인 이야기에만 몰입한 기업은 위험할 수 있다. 핵심은 그런 대응 활동을 정확하게 했을 때 위기관리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여부다. 만약 효과가 있다면 해야 한다. 불타는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 하는 것은 위기관리에 대한 강한 의지가 빈약하다는 것을 의미 할 뿐이다. 불법만 아니라면 위기관리를 위해 뭐든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기업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원할 뿐이라는 사람을 경계해라. 관리할 수 없는 사람이다.
위기 시 가장 힘든 관리 대상이 ‘진정한 사과’를 운운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사과라는 의미는 사람에 따라 각자 정의와 범위가 다르다. 진정한 사과를 원한다는 사람에게 기업이 사과해서 한 번에 깨끗하게 문제를 마무리한 경우는 없다. 기업이 나름대로 사과를 하면 그 사람은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다시 사과를 요구할 것이다. 두 번 세번 사과를 반복하고 그 수위를 높이다 보면 위기관리 주도권은 이미 상대에게 넘어가 버린다. 사과는 가능한 한 번으로 끝낸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상대가 만족할 때까지 사과하겠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도 유효하지도 않다. 위기관리는 단순한 인문학이 아니다.
추가적으로 이해관계자 개입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문제다. 그 외에는 의미 없을 수 있다.
부정적인 기사도 그렇다, 부정적인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 여론도 그렇다. 일부 이해관계자의 불만도 그렇고, 문제 원점의 주장을 볼 때도 기억해야 한다. 해당 상황, 의견, 주장, 메시지가 추가적으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개입에 연결될 수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그것이 일견 자극적이고 독특한 것이긴 하지만, 이해관계자 개입을 추가로 이끌어 내기까지는 어려워 보인다면 적절하게 로우 프로파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그것이 구조적으로 추가 이해관계재 개입과 바로 연결될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보다 적극적인 개입과 관리가 필요할 수 있다.
무시하려면 어떤 경우에도 무시하고, 관리하려면 매번 관리해라. 오락가락하니 밥이 된다. 밥이 되니 장이 서고.
일관성은 지키기 어려운 원칙이다. 하지만, 위기 시 대응에 있어 일관성만큼 효과 있는 대응 기조가 별로 없다. 우왕좌왕, 오락가락 하게 보이면 일단 위기관리는 물 건너 간 것이다. 일희일비 해도 문제가 크다. 일단 맞고 가자. 무시하자. 흔들리지 말자. 견디자. 이런 전략적 기조가 세워졌다면 맷집을 바탕으로 일관되게 견디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중간에 그로기 상태가 와 타올을 던지고 항복을 외치게 되면 문제다. 부정기사나 여론 건 건에 다른 기준을 적용해 개입해도 문제다. 어떤 방향이라도 일단 일관성 있게 끝까지 가면 흉해지지는 않을 수 있다.
위기관리는 몰라서 못하는 기업 없다. 알아도 못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다.
위기관리는 학문이 아니다. 위기관리에 정답도 없다 했다. 위기관리는 기업 내부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 하는 법이다. 따로 학습이나 연습을 하지 않아도 정확한 철학과 원칙만 세워 놓고 있다면 그리 어렵고 복잡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런 기본적 토대가 없을 때 일어난다. 내외부 반응에 휩쓸리고, 자중지란이 일어난다. 위로는 VIP로부터 이래로 일선 실무직원이 하나의 뚜렷한 원칙으로 위기 대응을 일관성 있게 하면 되는데, 그게 불가능하니 문제다. 평소에 알아도 못하거나, 안 하거나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찾아 개선하자는 게 그 때문이다. 몰라서 못했다는 것은 핑계일 수 있다.
말이 많은 위기관리에 실행 적다. 여럿 불러 의사결정 말라.
VIP가 혼자 앉아 의사결정 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습관적으로 여러 사람을 불러 모아 합의된 의사결정을 하려고 하지 말자.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은 정확히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의 방향을 정하는 데 까지만 유효하다. 중요한 결정은 홀로 해야 빨리한다.
위기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하기 싫은 걸 먼저 해라. 그게 답인 경우가 많다.
위기관리를 해보면 종종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맨 마지막에 했던 위기관리 활동을 맨 처음에 했더라면 좀더 성공적으로 위기관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바로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불편하고, 하기 어렵고, 하기 싫은 대응이 정답인 경우가 많다. 그걸 하지 않아 왔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되었을 것이다. 정확하게 대응 방법에 대한 의사결정이 어려우면 한번 기억해 보라. 어떤 대응이 제일 하기 싫은가. 그것이 문제를 풀 열쇠일 수 있다.
직원, 비서, 운전기사, 식당이나 청소용역, 경비…모두가 기자다.
투명사회라고 한다. 벌거벗은 듯 커뮤니케이션 하라고도 한다. 하고 싶은 말은 제쳐 두고 해야 할 말만 하라고도 한다. 기자들에게 하지 못할 이야기나 행동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하면 안되는 세상이 되었다. 모든 것은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시한폭탄이 된다. 스스로 철학과 원칙을 지켜야 위기관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준비하고 연습해서 해야 그나마 통하는 위기 대응이 된다.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해 발생된 위기에 대해 주변 사람들을 탓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상의 스트리트 파이터 이론은 일부는 농담이나 자조로 해석할 수도 있다.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 타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스트리트 파이터들의 주장의 공통된 핵심은 어떤 기업이라 할지라도 자사에게 맞는 위기관리의 모습이 각자 있으니 그것을 찾아내는 노력을 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명품 정장이 그대로 멋지기는 할지 몰라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으면 그 정장은 나에게 잘 맞는 싸구려 청바지 보다 의미 없을 수 있다. 위기관리 교과서 속 학자들의 이론과 스트리트 파이터들의 이론도 그런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자사에게 맞아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