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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살아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은 조직 구성원이 그 내용을 알고 있고, 정기적으로 고쳐지고 있으며, 훈련·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제로 검증되고 있는 매뉴얼을 말합니다. 문서의 두께나 완성도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매뉴얼이 작동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보유와 활용은 다릅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없어도 문제고 있어도 문제인 계륵 같은 존재입니다. 없는 상태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매뉴얼도 없이 대응했다는 비판이 따라옵니다. 있는 상태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매뉴얼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거나 매뉴얼이 낡아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따라옵니다.

    여기서 보유라는 말에 주목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보유가 곧 활용이나 참고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홍보실을 포함해 유관 부서를 통틀어 매뉴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위기관리 매뉴얼의 유효 기간은 제작 후 딱 여섯 달뿐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위기가 터진 뒤에야 매뉴얼을 펼치기 시작하는 것은, 비행기가 추락하는 중에 기장이 매뉴얼을 처음 여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언제나 누가입니다

    준비의 중심은 무엇이 아닙니다. 누가와 어떻게입니다. 매뉴얼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목은 늘 누가입니다.

    위기관리를 준비하자고 하면 곧바로 팀을 짜자, 매뉴얼을 만들자, 훈련·시뮬레이션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부 무엇에 대한 논의입니다. 그러다 예산 앞에서 막힙니다. 순서를 바꾸어야 합니다. 누가 판단하고 누가 실행하는지가 정해지면 무엇은 그 뒤에 자연히 따라옵니다.

    결국 위기관리는 매뉴얼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합니다. 위기관리에 실패한 사례를 들여다보면 매뉴얼 자체보다 그것을 관리하고 개선하는 사람이 더 근본적인 문제였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현실성은 문장이 아니라 자원에서 나옵니다

    매뉴얼이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현실성이 무엇인지는 잘 정의되지 않습니다.

    매뉴얼이 반영해야 할 현실성은 실행에 쓸 수 있는 유무형 자산과 관련된 것입니다. 예산, 인력, 장비, 설비, 협력 체계입니다. 고층 건물 화재에 고가 사다리와 헬리콥터를 쓰라고 적어 두었는데 그것을 가진 조직이 없다면, 그 매뉴얼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매뉴얼에 위기 시 특정 공간을 확보하고 설비를 갖춘다고 적고 그 책임을 총무팀으로 지정했다고 해 보십시오. 소집 명령 뒤 한두 시간 안에 모든 설비를 갖추라는 구절을 읽은 총무팀장의 첫 반응은 정해져 있습니다. 예산은, 누가, 어떻게입니다. 이 질문에 답이 없으면 그 조항은 문장으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반면 위기 국면의 판단이 현실적인가 아닌가는 상황에 따라 갈리는 문제입니다. 그것까지 매뉴얼에 적어 넣으려 하면 분량만 늘고 실효는 없습니다.

    업데이트는 문서 작업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업데이트되지 않은 매뉴얼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무자 입장에서 업데이트는 고역입니다. 직제 개편은 수시로 일어나고 담당자는 계속 바뀝니다. 새로 온 사람은 매뉴얼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리 책임이 있는 임원도 점차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 매뉴얼은 생명력을 잃습니다. 몇 달 뒤에 다시 들춰 보면 고서적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알려지지 않은 것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뉴얼의 내용을 구성원에게 알리고, 이해시키고, 피드백을 받아 고치는 일이 쌓일 때 매뉴얼은 조직 안에서 생명력을 얻습니다. 매뉴얼을 살리는 방법은 결국 끊임없는 내부 커뮤니케이션뿐입니다.

    훈련·시뮬레이션이 매뉴얼을 고칩니다

    훈련·시뮬레이션은 두 개의 사업이 아니라 하나의 묶음입니다. 실무에서 따로 떨어져 굴러가는 법이 없습니다.

    둘은 검증하는 대상이 다릅니다. 훈련은 사람의 역량을 봅니다. 대변인이 질문 앞에서 어떻게 답하는지, 실무자가 초기 정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확인합니다. 시뮬레이션은 체계의 작동을 봅니다. 보고가 제시간에 올라가는지, 소집이 실제로 되는지, 결정이 어디서 막히는지를 확인합니다.

    한쪽만 하면 반쪽이 됩니다. 훈련만 하면 사람은 늘었는데 그 사람이 설 자리가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뮬레이션만 하면 체계는 그려졌는데 그 자리에 설 사람이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둘은 처음부터 하나의 팩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매뉴얼의 결함은 책상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대응 단계 구분이 애매하다거나 지휘 체계가 겹친다는 문제는 위기 국면에 처음 드러나서는 안 됩니다. 평시 훈련·시뮬레이션에서 드러나고 고쳐져야 합니다.

    위기 국면에 치명적 결함이 드러났다면, 그것은 매뉴얼을 잘못 썼기 때문이 아니라 훈련·시뮬레이션을 통해 고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뉴얼과 훈련·시뮬레이션은 별개가 아닙니다. 훈련·시뮬레이션은 매뉴얼을 검증하는 절차이고, 매뉴얼은 그 대본이 아니라 훈련·시뮬레이션이 고쳐 나가는 대상입니다. 이 순환이 돌지 않는 조직에서 매뉴얼은 캐비닛 안의 문서로 남습니다.

    죽은 매뉴얼과 살아 있는 매뉴얼

    구분죽은 매뉴얼살아 있는 매뉴얼
    인지존재를 아는 사람이 소수관련자 모두가 자기 역할을 알고 있음
    기준무엇을 할지가 먼저 적혀 있음누가 판단하고 누가 실행할지가 먼저 정해져 있음
    현실성가진 적 없는 자원을 전제함예산·인력·장비·협력 체계로 뒷받침됨
    갱신인사이동과 직제 개편이 반영되지 않음정기 점검 주기와 담당이 정해져 있음
    검증위기 때 처음 펼쳐짐훈련·시뮬레이션에서 결함이 드러나고 고쳐짐
    소통만든 부서만 알고 있음알리고 이해시키고 피드백을 받음
    표. 죽은 매뉴얼과 살아 있는 매뉴얼 — 스트래티지샐러드

    우리 매뉴얼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법

    첫째, 위기관리 책임자와 실무자에게 매뉴얼에서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문서를 찾아봐야 답할 수 있다면 그 매뉴얼은 아직 살아 있지 않습니다.

    둘째, 마지막 개정일을 확인하십시오. 그 이후에 있었던 인사이동과 직제 개편이 반영되어 있는지 함께 보십시오.

    셋째, 지난 일 년간 매뉴얼을 놓고 훈련·시뮬레이션을 한 적이 있는지, 그 결과로 매뉴얼이 실제로 고쳐졌는지 확인하십시오. 훈련·시뮬레이션은 했는데 매뉴얼이 그대로라면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넷째, 매뉴얼이 지정한 책임 부서에 필요한 예산과 자원이 실제로 배정되어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이 네 가지에 답하지 못하는 매뉴얼은 보유하고 있을 뿐 작동하지는 않는 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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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매뉴얼의 정의와 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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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은 가상의 위기 상황을 설정하고 실제와 같은 조건에서 의사결정과 대응을 실습하는 훈련입니다. 통상 의사결정 그룹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하는 워룸(War Room)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매뉴얼이 작동하는지, 조직이 실제로 움직이는지는 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진행합니까

    위기 상황을 단계별로 나눈 시나리오가 준비됩니다. 참가자들은 제한된 정보와 제한된 시간 안에서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에 따라 다음 상황이 전개됩니다. 진행자는 언론 문의, 규제기관 연락, 소셜미디어 확산, 내부 동요 같은 변수를 상황에 맞춰 투입합니다.

    참가자는 실제 위기 시 의사결정에 참여할 사람들로 구성합니다. 대리 참석은 훈련의 의미를 없앱니다. 결정할 사람이 그 자리에 없으면, 실제 위기에서도 결정은 나오지 않습니다.

    시뮬레이션은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효과가 유지됩니다. 한 번 해 보고 끝내면 조직의 기억은 몇 달 안에 흩어집니다.

    시뮬레이션이 드러내는 것

    시뮬레이션의 목적은 잘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를 찾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자주 드러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정보가 위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현장은 알고 있는데 의사결정 그룹은 모릅니다. 둘째, 결정이 내려지지 않습니다. 참석자들이 서로의 판단을 기다립니다. 셋째, 결정이 아래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정해졌는데 실행 조직은 모릅니다.

    이 세 가지는 매뉴얼을 아무리 정교하게 써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모여 실제로 해 봐야 보입니다.

    잘못 설계된 시뮬레이션의 특징

    첫째, 시나리오가 자사와 무관한 경우입니다. 일어날 법하지 않은 상황을 다루면 참가자들이 몰입하지 않습니다. 위기요소 진단에서 나온 실제 후보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경우입니다. 진행자가 원하는 답으로 유도하면 훈련이 아니라 시연이 됩니다.

    셋째, 결과를 인사 평가에 쓰는 경우입니다. 참가자들이 평가받는다고 느끼면 실수를 감추게 되고, 실수를 감추면 배울 것이 없어집니다.

    넷째, 사후 정리를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시뮬레이션의 가치는 훈련 자체가 아니라 이후의 복기와 개선에 있습니다. 무엇이 막혔는지 기록하고 매뉴얼과 체계에 반영하는 데까지 가야 한 번의 훈련이 완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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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하는 대상입니다.
    위기관리위원회란 무엇인가: 시뮬레이션에 참여하는 조직입니다.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무엇인가: 개인 단위의 훈련입니다.
    위기관리 시뮬레이션

  • 우리 같은 조그만 회사도 위기관리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저희 회사는 지방에서 사업을 하는 조그만 중소기업입니다. 직원도 100명이 채 안 되고요. 지역에서는 오래된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유명하거나 큰 기업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업에게 위기관리 체계와 역량을 계속 강조하시던데, 저희 같은 규모의 회사도 그렇게 해야 할까요?”

    먼저 대표님이 ‘위기관리’라는 개념을 어떻게 그리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아마도 대기업의 홍보실과 두꺼운 매뉴얼, 별도의 예산과 조직 같은 것을 떠올리고 계실 겁니다. 만약 위기관리가 그런 것이라면, 대표님 회사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점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표님 회사에 필요한 위기관리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질문 속에 이미 답의 실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대표님은 “지역에서 오래된 회사로 알려져 있다”고 하셨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수십 년 걸쳐 지역에서 쌓아 온 그 신뢰가, 대표님 회사가 가진 가장 값진 자산입니다. 유명하지 않다는 것과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오래 공들여 쌓은 신뢰일수록, 한번 금이 가면 회복에 몇 배 시간이 걸립니다. 대기업의 명성은 광고로도 사지만, 지역의 오래된 신뢰는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위기관리란 무엇일까요. 거창하게 볼 것이 없습니다. 그 오래된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 그것이 대표님께 필요한 위기관리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대표님은 이미 그 일을 매일 하고 계십니다. 현장의 안전을 살피고,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키고, 직원들의 사기를 챙기고, 자금이 막히지 않도록 신경 쓰는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위기관리입니다. 대표님은 이미 이 회사의 위기관리 책임자이신 셈이지요.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 일을 ‘무의식적으로, 마주치는 대로’ 하고 계실 뿐입니다. 위기관리라고 부를 만한 것은, 그 일을 ‘의식적으로, 미리’ 하는 것입니다. 그 작은 차이가 위기의 순간에는 생각보다 큰 격차를 만듭니다.

    지금까지 큰 탈 없이 회사를 잘 이끌어 오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위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운이 좋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위기가 아예 없는 회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다만 그 위기가 아직 대표님을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지요.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이야말로, 작은 회사를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제가 권해 드리는 것은 거창한 준비가 아닙니다. 우리 회사에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한두 가지를 평온한 지금 미리 떠올려 보시는 것, 그때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지를 마음속에 그려 두시는 것, 그리고 회사의 앞날을 쥔 몇몇 사람과 평소 신뢰를 두텁게 해 두시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돈이 드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한 번 먹는 일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위기관리는 회사를 크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오래 지켜 온 것을 지키는 일입니다. 대표님 회사는 유명하지 않아서 위기관리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오래 신뢰받아 왔기에 더더욱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규모가 작다는 것은 위기관리를 건너뛰어도 되는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더 조심히 지켜야 할 이유인 것이지요.

  • 위기관리, ‘준비’란 무엇인가

    위기관리, ‘준비’란 무엇인가

    [blog exclusive]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여러 기업들이 위기관리를 공부한다. 강의를 듣고, 컨설팅을 받는다. 그러다 꼭 한 곳에서 멈칫한다. ‘준비’라는 단계다.

    준비. 말은 쉽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면 막막하다. 처음도 끝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엇을 준비하느냐를 물으면 의견이 갈린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준비인지 정해진 것도 없다. 얼마나 걸리는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누가 하느냐, 어디까지 관여하느냐도 현장에선 아주 현실적인 물음이다. 여기에 예산이 걸리고, 내부 정치가 얹힌다. 그래서 준비는 회사마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어정쩡하게 자리 잡는다.

    막히는 이유는 대개 같다. ‘무엇을’ 갖출지부터 따지기 때문이다.

    위기관리를 준비하자고 하면 곧바로 팀을 짜자고 한다. 매뉴얼을 만들자고 한다. 트레이닝을 하자, 시뮬레이션을 돌리자고 한다. 전부 ‘무엇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다 막힌다. 이건 필요하고 저건 필요 없고. 예산은 한정돼 있고. 그렇게 준비는 더 나아가지 못한다. 흔한 풍경이다.

    순서를 바꿔야 한다. 준비의 중심은 ‘무엇’이 아니다. ‘누가(who)’와 ‘어떻게(how)’다. 이 둘이 준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무엇’은 그 뒤에 자연히 따라온다.

    누가 관리하는가?

    준비는 여기서 시작된다. 모든 위기관리 체계의 공통 전제이자 첫 핵심이 ‘누가’다. 매뉴얼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목은 늘 ‘누가’다.

    CEO는 이 그림을 쥐고 있어야 한다. 누가 우리 회사의 위기를 관리하는가?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이 그림이 있어야 다음 준비가 굴러간다. 그 과정을 관리하고 감독할 수 있다. 준비된 것을 유지하고, 보수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다.

    ‘누가 우리 회사의 위기를 관리할 것인가?’ 철학적 질문이 아니다. 지극히 실전적인 질문이다.

    위기관리 위원회를 둔다. 그 아래 위기관리팀을 붙인다. 핵심 대응 인력을 선별해 팀을 짠다. 구성원 하나하나에 정확한 역할과 책임을 준다. 그리고 이 사실을 사내에 공식적으로 공유한다. 그 조직과 사람들에게 권한을 준다. 임파워먼트다.

    권한은 공짜가 아니다. 권한을 받은 조직은 그 정당성과 생산성을 CEO에게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증명하지 못하는 권한은 거둬들여진다. 이 긴장이 살아 있어야 ‘누가’가 제대로 작동한다.

    어떻게 관리하는가?

    ‘누가’가 서면 다음은 이 물음이다. 위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걸 조직 안에서 하나씩 합의로 만들어 간다.

    품질 위기가 터졌다고 하자.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어떻게 정의하는가? 무엇을 우선하는가? 어떻게 끝내는가? 이런 ‘어떻게’를 위기관리 조직을 중심으로 미리 생각해 둔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철학이 정리된다. 미션과 비전, 가치와 방향이 구체적인 언어로 손에 잡힌다. 이런 평시 자산이 없는 회사가 위기 앞에서 무너진다. 대응의 근거를 찾지 못해서다. 그러니 준비 없이 임기응변에 매달리다 재앙으로 간다.

    방향을 미리 잡아 보는 것. 머릿속으로 위기를 한 번 겪어 보는 것. 그것이 ‘어떻게’의 준비다.

    무엇으로 관리하는가?

    ‘누가’와 ‘어떻게’가 익으면, 그제야 ‘무엇’이 보인다. 필요한 것들의 목록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조직 간 실시간 소통을 위한 비상연락망. 대책을 세우고 지시를 내릴 워룸. 정해진 방향을 정리한 매뉴얼. 분석과 벤치마킹을 위한 사례집. 여기에 트레이닝과 시뮬레이션, 드릴과 진단이 붙는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의 준비다.

    얼핏 단순한 순서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아니다. 이건 우선순위와 중요도의 순서다. 누가, 어떤 생각으로 위기를 보고, 무엇을 들고 관리할 것인가. 그 무게의 순서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앞의 준비가 제대로 됐는지는 몇 마디 질문으로 드러난다.

    첫째. “CEO가 자리에 없거나 유고일 때, 귀사는 위기를 관리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다면 누가 조직을 이끌고 최종 결정을 내립니까?” 이 질문 하나면 그 회사의 ‘누가’가 얼마나 단단한지 드러난다.

    둘째. “최근 귀사가 주목하고 분석한 경쟁사, 동종업계, 타업계의 위기 사례는 무엇입니까?” 이건 ‘어떻게’를 묻는 질문이다. 준비 안 된 회사는 남의 사례를 모른다. 알아도 조각으로 안다. 잘못 아는 경우도 많다. 이 답이 부실하면 ‘누가’도 부실하다는 뜻이다.

    매뉴얼이 있느냐, 얼마나 구체적이냐, 업데이트는 됐느냐. 이런 걸 굳이 묻지 않아도 된다. 앞의 몇 질문이면 그 회사의 준비 수준이 측정된다.

    근데 그건 그렇고… 왜?

    앞에서처럼 ‘누가’와 ‘어떻게’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회사가 많다면, 왜 그럴까? 준비하는 방법을 몰라서일까? 이유는 하나다. 순서의 문제도, 지식의 문제도, 예산의 문제도 아니다. ‘왜(why)’가 없어서다.

    지금까지 누가, 어떻게, 무엇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셋을 처음부터 움직이게 하는 힘은 따로 있다. 바로 ‘왜(why)’다.

    인간에겐 본능이 있다. 위협 앞에서는 싸우거나 도망친다. 싸움-도피 반응(fight or flight)이다. 그런데 이 본능은 위협을 위협으로 느껴야 켜진다. 목숨이 걸렸다고 느껴야 몸이 움직인다.

    기업 구성원은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목숨을 위협한다고까지 느끼지 않는다. 현장에서 보면 딱 이 정도다. 골치 아프다. 귀찮다. 그뿐이다. 그러니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평시에 위기를 준비할 마음이 생길 리 없다.

    이 본능을 켜는 것이 ‘왜’의 힘이다. ‘왜’가 살아 있고 큰 회사는, 준비의 절반을 이미 마친 셈이다. ‘왜’가 ‘누가’와 ‘어떻게’를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준비를 어렵다 생각할 시간에 먼저 ‘왜’를 생각하라. 강한 동기를 만들어라. CEO와 전 구성원이 위기를 두려워해 보라. 무서워해 보라. 목숨이 위태로운 것처럼 처절하게 싫어해 보라. 그러면 준비로 가는 길이 열린다. 의외로 간단하다.

  • 3. 위기란 ‘언제’에 관한 것이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어느 기업 임원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회사는 지금까지 큰 위기 없이 잘 왔습니다. 앞으로도 큰 이상이 없으면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회사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위기를 ‘발생 여부’의 문제로 보는 경영진은, 위기가 실제로 닥쳤을 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은 유형이다. 위기는 ‘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올 것인가’의 문제다. 이 명제를 받아들이는 순간, 위기를 대하는 경영진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죽음을 피할 수 없듯, 위기도 피할 수 없다

    세네카는 기원후 64년, 로마 대화재가 리옹을 집어삼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편지를 썼다. “도시 하나가 하룻밤에 사라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놀라는가. 불, 홍수, 전쟁, 질병. 이것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가 외면했을 뿐이다.”

    세네카가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재앙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예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 “어떤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 일이 닥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겪어보아야 한다.”

    이것이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하는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Praemeditatio Malorum)이다. 직역하면 ‘나쁜 일들에 대한 사전 숙고’. 현대적 언어로는 ‘부정적 시각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로서 매일 아침 이 훈련을 실천했다. ‘명상록’ 전반에 걸쳐 그는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어떤 인간을 만나게 될지를, 어떤 실패와 좌절이 기다리는지를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나서 하루를 시작했다.

    이 훈련의 목적은 비관론이 아니다. 패배주의적 낙담은 더더욱 아니다. 최악을 미리 직면함으로써, 실제 위기 앞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렇게만 잘 하면 위기는 없다”는 착각

    기업 경영진에게는 세 가지 위기관에 대한 착각이 공통적으로 목격된다.

    첫 번째는 “이렇게만 잘 가면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관리 착각이다. 규정을 지키고, 내부 감사를 하고,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면 위기를 차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런 노력이 위기 발생 확률을 낮추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로(0)로 만들지는 못한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없었으니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경험 착각이다. 과거의 평온함이 미래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논리는, 통계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위기는 대개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장 취약한 지점에서 발생한다.

    세 번째는 “위기는 문제 있는 회사에게 생기는 것”이라는 타자화 착각이다. 이 착각은 가장 위험하다. 위기를 ‘우리 밖의 이야기’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어떤 내부 준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네카라면 이 세 가지 착각 모두에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네가 그것을 예상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 그것이 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최악을 직면하는 것이 진짜 위기관리의 시작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을 기업 위기관리에 적용하면 실천적 질문은 하나로 압축된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도 반드시 막아야 할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경영진이 불편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평판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시나리오, 핵심 인물의 돌발적 일탈, 협력사의 연쇄 부도, 내부 고발과 미디어의 동시 공세, 규제기관의 갑작스러운 조사. 이런 시나리오를 회의실에서 꺼내 놓는 것 자체를 불길하게 여기는 경영진이 많다. 하지만 정확히 그 불편함을 회피하는 순간, 준비는 멈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훈련을 ‘사전에 상처를 입어두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마음속에서 그 상황을 한 번 겪었다면, 실제로 닥쳤을 때 공황 상태 없이 대응할 수 있다. 이것이 스토아적 위기관리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위기관리는 예언이 아니라 준비의 문제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최악을 미리 상상하는 것이 실제로 준비에 도움이 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실제 위기 현장에서 수없이 확인되었다.

    위기 대응 속도와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그 순간의 판단력’이 아니다. ‘그 이전에 얼마나 그 상황을 생각해 두었는가’다. 위기 시뮬레이션을 정기적으로 실시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자는 논의의 출발점이 ‘이미 생각해 둔 것’이고, 후자는 출발점 자체를 그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

    세네카는 루킬리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을 마음속에 품고 잠들어라. 그러면 그것들이 닥쳤을 때, 너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CEO에게 위기관리란 결국 이것이다. 위기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올 것을 알고 준비하는 것. 위기는 ‘언제’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언제’를 앞서 살아보는 훈련이 곧 가장 강력한 위기 대비책이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 6. 기업 위기관리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CEO를 위한 스토익(Stoic) 위기관리 원칙

    첫째, 위기 대응 역량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반복된 훈련으로 길러지는 기술이다.

    둘째, 예상되는 위기 상황을 평시에 실제처럼 반복하여 몸에 익혀라.

    셋째, 훈련을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조직의 일상적 규율로 정착시켜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 이렇게 적었다. “삶의 기술은 춤보다 레슬링에 가깝다. 정해진 안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일격에 맞서 늘 준비된 자세로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기관리도 그렇다. 위기는 잘 짜인 안무처럼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예고 없이, 변칙적으로, 가장 취약한 곳을 노리고 들어온다. 그래서 위기 대응은 대본을 암기하듯 되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훈련된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듯, 조직이 평소 길들여 둔 습관과 절차가 그 순간 작동해야 한다. 레슬러는 상대의 다음 동작을 일일이 예측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어떤 변칙이 들어와도 무너지지 않도록 몸을 미리 단련해 두었기에 버티는 것이다.

    훈련되지 않은 기업이 위기를 맞으면 어떤 모습이 되는가. 오합지졸이라는 표현 그대로다. 누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모른 채 미루고, 사실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각각 입을 열고, 사과의 타이밍을 놓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기자 앞에서 내뱉는다. 돌이켜 보면 대단한 전략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을 뿐이다. 정상적인 훈련을 한 번이라도 거친 조직이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사려 깊지 못한 실수와 황당한 대응이 위기를 더 키운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평시에 경험해야 할 위기관리 목적의 훈련은 무엇인가. 가장 일반적인 것이 미디어트레이닝이다. 그리고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 위기관리 시뮬레이션, 대변인 트레이닝이 그 뒤를 잇는다. 나아가 고객, 정부, 기관, NGO, 지역 주민, 투자자, 노조 등 각 접점에서 벌어질 상황을 가정한 이해관계자 접점 시뮬레이션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안전 대피 훈련, 해킹 방어 훈련처럼 부서별 책임과 역할에 직결된 주제별 대응 훈련은 더욱 기본에 속한다. 이러한 훈련에 관심이 없거나, 기회가 없거나, 늘 부족한 상태로 위기를 맞는 기업은 그 대가를 고스란히 현장에서 치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에픽테토스는 “어려움이야말로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낸다”고 했다. 그는 레슬링 코치 비유를 하기도 했다. 신은 마치 거친 상대와 우리를 짝지어 주는 코치와 같아서, 그 힘겨운 상대를 통해 우리를 단련시킨다는 것이다. 단, 그는 분명히 덧붙였다. “그것은 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위기라는 거친 상대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그 이전에 흘려 두어야 할 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훈련은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에픽테토스는 또 이렇게 권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너 자신을 훈련하라. 그리고 거기서부터 더 큰 것으로 나아가라.” 위기관리 훈련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대규모 모의훈련을 이벤트처럼 치르고 끝낼 일이 아니다. 작은 상황 대응부터 반복적으로 몸에 새겨 두는 것이 핵심이다. 반복된 훈련은 위기의 순간, 판단의 속도와 정확성으로 되돌아온다. 이미 여러 번 겪어 본 상황과, 그 자리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은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훈련의 진짜 목적은, 예기치 못한 일격이 들어왔을 때 조직이 공황에 빠지지 않고 기본을 지키도록 만드는 데 있다. 화려한 묘수가 위기를 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기본기를 갖춘 조직이 황당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위기의 절반은 관리된다.

    춤추는 자는 정해진 음악이 멈추면 길을 잃는다. 그러나 단련된 레슬러는 상대가 어떤 변칙을 걸어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기업 위기관리에도 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평시에 흘린 땀이, 위기의 순간 조직을 지탱하는 훌륭한 근력이 된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 싸울 준비를 다하고 싸우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에서도 평시에 위기에 대한 이해와 위기관리에 대한 준비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준비라는 것이 말은 간단한데, 어디에서 어디까지 준비해야 할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에 대한 내부 의견이 분분합니다. 기업내에서 위기관리에 대한 준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손자병법을 보면 전쟁에서는 ‘지(地)와 계(計)’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지(地)’는 전쟁이 벌어지는 지리적 환경과 조건을 의미합니다. 위기관리에서는 자사에게 발생될 위기를 둘러싼 이해관계자 환경과 반응을 예측해 보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사 대표제품과 관련된 특정 품질관련 위기가 발생된다면, 고객, 유통 및 거래처, 규제기관, 정부, 언론, 내부직원, NGO 등이 어떻게 반응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사전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계(計)’는 전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승패를 미리 헤아리고 계산하는 모든 전략과 계획을 의미합니다. 앞의 지(地, 환경)에서 그러면 어떤 전략과 계획을 세워서 싸움(위기관리)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지요. 품질문제 원인과 영향을 분석해서, 해당 제품을 대대적으로 리콜해야 할 것인지, 단순히 교환 환불 처리해야 할 것인지, 그 외 보상이나 다른 베네핏을 고객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생각을 해 놓는 것이죠. 그와 함께 어떤 메시지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택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미리 하는 것입니다.

    질문에서 궁금 해 하신 사전 준비는 이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특정 위기를 상정하고, 그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인식과 반응을 예측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응책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준비입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 위기관리 실무자들은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예상되는 모든 위기에 대해 각각 준비를 따로 해야 하는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아니오”입니다. 예상되는 위기 유형을 모아 보면, 그에 대한 환경이나 대응 방식은 유사한 몇가지로 추려 질 수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환경과 준비 부분이 오버랩 되는 것이지요. 이해관계자들의 특성이나 반응 방식에도 일정한 흐름이 있습니다. 반응 수위가 강하거나, 중간이거나, 약하다는 정도의 분류가 가능하지요. 대응 전략에 있어서도 하이프로파일과 로우프로파일, 또는 전면적 대응과 제한적 대응과 같은 분류가 가능합니다.

    실제 위기발생 이후 변화하는 환경과 반응들을 보며, 준비했던 지와 계를 분류된 바에 따라 상응해 그때 그때 변화 적용시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수백 개 각기 다른 준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무집을 짓는 목수가 집의 규모와 형태에 따라 연장과 도구를 수백 개 가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준비된 것들로 적절히 바꾸어 적용해 나가면 된다는 것이지요.

    손자병법에서 손자는 또 이렇게 강조합니다. “싸울 준비를 다 하고 나서 싸워라.”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싸움의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회사는 또는 우리 위기관리팀은 위기를 관리할 준비가 잘 되어 있는가? 위기관리를 바로 시작 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가?를 내부에서 계속 점검해야 하는 것이지요. 기술적으로는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실시해보면, 자사 위기관리팀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발견한 개선점이나 헛점을 평시 발견해서 준비 수준을 더욱 완벽히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준비의 완성은 시뮬레이션이라고도 합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위기 때 무얼 가장 먼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도 여러 번 상황이 발생해 위기관리를 했었습니다. 그때마다 여러 개선점이 논의되곤 했는데요. 위기가 발생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매번 의견이 분분합니다. 성공적으로 위기를 관리한 회사들의 공통적인 첫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조언드릴 수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다양한 위기상황과 마주했을 때 공통적으로 하는 첫 일을 보면, 실패한 케이스와 성공한 케이스 사이에는 딱 한가지 다름이 있습니다. 위기 발생 후 즉각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좌장이 되어 홍보, 법무, 재무, 대관 및 기타 위기 관련 부서가 참가하는 통합적 컨트롤타워를 구성하는 가, 구성하지 못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부 컨트롤타워가 위기 발생 후 상당시간이(예를 들어 일주일 후) 지나 구성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는 사후 수습 목적이 클 뿐이었습니다. 실제 초기 대응이나 유효한 대응 시점에는 회사의 효과적 대응이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의미지요. 사후 데미지컨트롤을 목적으로 하는 이런 컨트롤타워의 구성도, 아예 컨트롤타워가 구성되지 않거나, 유명무실 한 경우보다는 낫습니다.

    항상 문제는 그 컨트롤타워가 진짜 컨트롤타워인가 하는 것입니다.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좌장이 되어 직접 컨트롤타워 구성원 보고와 의견을 청취하고 즉각적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그 후 그 결정 방향에 따라 컨트롤타워 구성 부서들이 상호 협업하여 실행까지 완료하는 방식이 가장 이상적인 컨트롤타워 효과입니다.

    그러나, 유사 컨트롤타워의 경우는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컨트롤타워 좌장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별도 공간과 시간대에 머무릅니다. 컨트롤타워 의결사항을 별도 보고받으며, 최고의사결정권자 의견이나 피드백이 다시 컨트롤타워에 내려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컨트롤타워 구성에서 실무핵심그룹이 제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사결정자들만의 타워 형태입니다. 하지만, 위기관리에서는 일선 실무그룹 보고와 시각은 의사결정 과정의 아주 중요한 축입니다. 실무그룹이 빠져 있는 컨트롤타워는 한쪽 눈에만 의지해 사냥하는 형태와 비슷합니다.

    그 외에 컨트롤타워에 외부 전문가 그룹이 철저하게 배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컨트롤타워에 일부 비선라인 인사들이 포함되거나, 원격으로 의견을 하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컨트롤타워는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상황과 전략을 보고하기 위한 문서 개발팀으로 주로 역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이라면 기술적으로 컨트롤타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그 결과에 다름은 없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가장 먼저 구성하십시오. 최고의사결정권자에서 실행그룹에까지 상호간 사일로(silo)를 없애야 합니다. 같은 정보를 실시간 공유할 수 있어야, 가까운 미래를 같이 내다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컨트롤타워 없는 조직의 위기관리는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채 각자 움직이는 거대한 문어를 상상하게 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철학적 이야기가 위기관리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위기 시에는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곧 존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더 옳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비용 대비 효과적인 위기관리?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이번 위기를 관리하는데 있어 예산이 계속 투입되어 회사의 고민이 큽니다. 최초 대응후에도 논란이 가라 앉지 않으니, 여러 번 반복 사과하며 개선 예산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혹시 비용대비 효과적인 위기관리라는 것은 없을까요? 다음 번에는 그 부분에도 신경을 쓰고 싶군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 예산에 대한 주제는 사실 평시에 합리적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에는 누구나 비슷한 의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실제 그런 위기가 발생해서 여러 딜레마 속에 처했을 때, 경영진 내부에서는 평시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지요.

    사전에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할 때 부정적인 고객과 제품 상황을 놓고, 그에 관한 시나리오를 경영진에게 공유하면. 대부분은 짧은 논의 후 “이런 경우에는 저희 회사 원칙 상 전체 리콜을 해서 고객을 보호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 같습니다.”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에 따라 시뮬레이션도 리콜 커뮤니케이션을 적극 실행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그 이후 동일한 고객 및 제품 관련 부정 상황이 실제 발생해 일부 고객의 심각한 문제제기 등과 마주하게 되면. 경영진은 내부적으로 공통된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문제 제품을 리콜 한다면, 그 비용만 수백억이 소모되는데, 이 비용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가? 대표이사 연임 시즌이 다가오는데, 이런 리콜 비용 소모가 있다면 되겠나? 일부 전문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단순 A/S건으로 처리해 조용하게 마무리하는 게 최고라고 하던데? 이런 전혀 낯선 논의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물론 평시 시뮬레이션 경우와 같이 원칙이나 당위성만 따지면서 기계적으로 ‘리콜!’을 외치는 경영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지만, 평시에 좀더 현실적 고민을 하고, 여러 방향에서 옵션을 검토하는 사전적 노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이는 시뮬레이션을 한 기업과 하지 않은 기업 모두에 해당하는 공통점인 듯합니다.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은 기업도 평시에는 막연하게 위기를 상상만 합니다. 심각한 고객과 제품관련 위기가 발생하면 리콜하는 게 당연하지. 법적으로도 그렇게 규정되어 있으니까. 이렇게 위기에 대한 대략적 그림만 그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상황을 ‘위기관리 주체의 부재’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나의 직접적인 일이 아니면 모두가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것이지요.

    비용대비 효과성이라는 질문을 주셨는데요. 가장 비용대비 효과성이 좋은 위기관리는 평시에 여러 고민을 기반으로 한 옵션을 마련해 놓고 이후 실제 위기관리를 하는 기업에게만 가능한 것입니다. 위기가 발생해 모든 것이 변화무쌍하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온 나라가 우리 때문에 떠들썩 한 상황에서는 모든 결정은 취약할 수 있습니다. 위기 시 그런 취약한 의사결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 위기관리는 물론, 비용관리에서도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됩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형식이지요.

    항상 결론은 비슷합니다. 평시 고민과 옵션의 준비가 비용대비 효과가 좀더 나은 위기관리를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은 진리입니다. 항상 문제는 그런 진리를 알면서도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발생됩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합니다. 만약 다음번에 비용대비 효과가 좋은 위기관리를 하려 하신다면, 바로 지금 시작하십시오. 숙제를 해야 합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모든 변수를 어떻게 통제하나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회사에서 이번 위기대응방안으로 나름대로 과감한 대책을 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실제 실행과정에서 고객과 거래처 등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변수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위기관리라는 것을 변수에 대한 최대한의 통제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런 변수들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 건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일단 변수의 통제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발생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위기나 이슈에는 변수가 필수적으로 따라 붙습니다. 변수가 없는 상황은 딱히 위기나 이슈로 정의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위기나 이슈는 변수와 함께 가고, 변수와의 싸움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위기관리는 변수를 최대한 통제하는 게임이라는 시각에도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런 변수 통제가 사전에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사후에(변수가 드러난 시점 이후) 이루어지는가, 이 두가지 선택에서 발생한다고 봅니다.

    사전에 어떻게 변수를 통제할 수 있을까요? 점쟁이나 천리안도 아닌데, 아직 대두되지도 않은 변수를 어떻게 미리 통제한다는 것일까요? 답은 사전 시뮬레이션입니다. 성공적 기업들은 위기나 이슈 상황을 전제로 하여 평시 사전 시뮬레이션을 실행합니다. 정기적으로 특정 상황을 전제로 하여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특정 상황이 예견되는 경우 사전에 시뮬레이션을 해 가능한 변수를 모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뮬레이션이란 발생을 예상한 특정 상황을 놓고, 해당 상황의 발아 전개 성장 소멸 되는 전체 과정을 말 그대로 시뮬레이션 해 보는 것입니다. 여행을 예로 들자면, 도쿄 여행이라고 하면, 인천공항 출발부터 시작해 나리타 공항 도착에서 시내 이동 그리고 식사들, 호텔 체크인, 관광, 쇼핑, 귀국 등의 일정을 구체적으로 쭉 예상해 보는 것이지요. 그에 더해 날씨, 현지 상황, 동반여행자, 교통 상황, 시간, 기타 예기치 못하게 만날 수 있는 해프닝까지 더해 다각적으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 경영진은 다양한 변수들을 예상하게 됩니다. 사실 이 변수에 대한 발견은 그렇게 힘들이지 않아도 가능한 아주 쉬운 일입니다. 여러 변수들을 사전에 만나보고, 그 각각에 대한 위해성이나 중요성 여부를 그때 그때 판단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변수에 대한 통제 노력을 계속 시뮬레이션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더 현실적이고 더 튼튼한 대응방안이 미리 설계됩니다. 이 프로세스는 아주 쉽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위기대응을 하느냐고 했는데, 그런 변수가 발생될지는 몰랐습니다.” 이 주장은 ‘우리는 사전에 시뮬레이션을 실시하지 않아, 해당 상황을 둘러싼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아무도 점검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고백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기대응을 하고 나서 바로 드러날 중대한 문제(변수)를 업무 전문성이 있는 위기관리 주체가 전혀 예상하지 못 할리는 없습니다. 사전에 예상하려는 노력과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변수로 하여금 상황이 어려워지게 만든 것이지요. 사전에 예상해보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중대한 변수는 발견 가능 합니다. 해 보면 알게 됩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