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용히 넘어가려 할까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위기관리나 이슈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강조되는 것이 상황이 발생되면 신속하게 회사 입장을 밝히고, 여러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지속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라 보는데요. 심지어 오버 커뮤니케이션도 훌륭한 전략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네 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주제입니다. 학계나 언론에서는 위기관리의 모범 사례로 1980년대 초 미국 ‘존슨앤드존슨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을 단골 소재로 꼽습니다. 이 사례는 너무나 자주 인용되어, 이제는 위기관리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대중조차 내용을 알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케이스에서 늘 강조되는 성공 요인은 ‘신속함’,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원칙 준수’, ‘고객 중심 사고’, 그리고 ‘과감한 리콜’ 등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 대목에서만 인사이트를 얻으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 기업들에게 “미국의 그 기업을 본받으라”고 주문하며, 똑같이 대응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훈수를 둡니다. 하지만 그러한 처방은 현실적이지 않고 유효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위기의 ‘본질’에 있습니다. 당시 타이레놀 사건은 회사의 제조 과실이 아니라, 신원 미상의 범인이 저지른 테러였습니다. 즉, 위기관리 주체인 기업에게 귀책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례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Even though)’의 정신입니다. 자사 책임이나 잘못이 없었음에도, 환자와 고객의 안전을 위해 막대한 매출 손실을 감수하며 과감한 전국적 리콜을 단행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반면 우리 현실은 어떤 가요? 우리 기업이 직면하는 위기나 이슈 중에는 자사의 책임이나 과실이 명백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기업에게 귀책사유가 전혀 없는, 억울한 위기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 드문 케이스는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도 못하며, 일부 언론이나 온라인에서 잠시 노이즈를 일으키다 소멸합니다. 반면, 대중의 이목을 끄는 대형 위기는 대부분 기업에게 태생적으로 불리한, 부정적인 기반 위에서 발생합니다.

이처럼 기업의 책임이 막중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기업은 발생한 상황에 대해 모든 책임과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과감한 약속과 실천을 즉각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가장 이상적이고 훌륭한 대응이지요.

그러나 현실의 많은 기업은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을 극도로 부담스러워 합니다. 법적,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고, 무엇보다 향후 완벽한 재발 방지나 개선을 약속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어려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다수 기업이 위기 발생 시 전략적으로 ‘로우 프로파일’을 선택하는 이유입니다. 당장은 비판 받더라도 일단 조용히 상황을 넘기면, 훗날 회복할 기회가 다시 올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업의 침묵과 소극적 대응에 익숙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냉혹한 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2009년 국내 최초의 기업 위기관리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창업했습니다. 약 30년간 국내외 300여 개 기업과 조직의 위기, 이슈관리를 자문해 왔으며 위기관리 분야 저서 다섯 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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