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 위기관리 매뉴얼에는 위기 단계를 총 4단계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심각성에 따라 옐로우, 오렌지, 레드, 블랙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현 상황이 어떤 단계인지 규정도 어렵고, 상황이 변화되었을 때 단계 조정도 어렵습니다. 단계별로 더욱 더 구체적인 기준을 설정해야 하겠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물론 위기와 관리 단계를 일단 설정해 놓으셨으니, 단계별로 판별 기준을 정확히 설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최대한 상황별 공감대를 기반으로 정확한 기준 설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사전에 아무리 자세하고 정확하게 판별 기준을 설정해 놓는다 하더라도, 실제 위기 발생 시 단계를 규정하고, 변경하는 실행은 기본적으로 ‘정무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분이 위기관리 매뉴얼만 있으면 그 매뉴얼에 의해 마치 ‘자로 잰 듯’ 상황 판별이 가능해지고, 세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실행팀이 ‘기계적으로’ 실행을 척척하게 될 것이라 희망합니다. 그래서 위기를 경험한 기업은 위기관리 매뉴얼을 하나의 만병통치약처럼 갈구합니다. 다음번에는 이번과 같은 실수와 혼란을 경험하지 않아야 하겠다 하는 바램 때문입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매뉴얼 자체보다는 그 매뉴얼을 만드는 과정에 90%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 보시면 됩니다. 우리에게 어떤 위기들이 발생될 것인지 미리 확인해 정리해 놓는 가치가 그 첫번째입니다. 상황에 따라 우리는 어떤 준비와 대응 연습을 해 놓아야 하는지가 그 다음입니다. 그 각각의 결정과 실행을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미리 상상해 놓아야 합니다. 그 내용을 그냥 모아 놓은 것이 위기관리 매뉴얼입니다.
질문과 같이 일단 실행에 들어가면 많은 것이 바뀝니다. 미리 상상해 놓기는 했는데, 구체적 상황에 맞닥뜨리면 더욱 혼란스러워 지기만 합니다. 매뉴얼 문장 하나 하나를 읽어 보면, 현상황이 오렌지 단계에 해당하면서도, 레드 단계의 조짐도 엿보입니다. 어떤 부분은 이미 블랙 단계까지 이르고 있어 보입니다. 이런 실제 상황에서 단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논의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논의는 매뉴얼에 의한 실행을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미 정리되어 있는 위기관리 단계를 두고, 현 단계를 최종 규정하는 것은 순수하게 최고의사결정자의 몫입니다. 많은 상황정보와 향후 시나리오를 검토하더라도 결국은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 판단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 신속함은 모두의 다양한 경험과 훈련에 의해서만 가능해집니다.
만약 위기관리 단계 설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왈가왈부만 있고, 시의적절한 단계 조정이 힘들기만 하다면, 최고의사결정자가 단계 설정에 있어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위기상황 단계에 대한 매뉴얼적 이해조차 없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또한 다양한 상황정보를 조합하여 단계 설정에 대한 정무적 판단을 내리는 역량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보이는 단계 판별 기준도 이런 경우에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결국 경험 있고 훈련된 정무적 판단이 위기를 관리합니다. 위기관리 매뉴얼 같은 종이들은 절대로 정무적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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